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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ASH라는 영화를 보고 감상문
    윤리학 개론 시간에 교수님께서 CRASH라는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고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옛날에 TV속에서 영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기는 했는데 어떠한 내용인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상당히 컸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특이하다. 17세기 청교도 탄압을 피해 건너간 프로테스탄트계의 영국인들이 처음 발을 밝은 아메리카의 시작은 50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500년 남짓의 역사 속에서 전 세계의 모든 인종이 모인세계 인종 박물관과 같은 USA의 오늘이 이루어졌다. 백인, 라틴 아메리카, 히스패닉, 흑인, 아랍인, 유태인, 동양인 등등. 과연 인류 중 미국 내에서 찾을 수 없는 인종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아메리카 대륙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른 피부색과 다른 생활양식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양성. 이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니는 강점이자 약점이다. 다양한 민족의 평화로운 공존이란 생각보다 어렵다. 동일한 민족 간에도 대립과 불화가 빈번한데 타민족간의 충돌은 오죽하겠는가. 이는 멀리까지 내다보지 않아도 그 실례를 찾을 수 있다. 1992년 LA흑인폭동 사건이 가장 쉬운 예가 아닐까. 이 사건은 당시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LA에 거주하는 한인 교민들의 상점 피해가 막심했던 것. 이것은 백인 우월주의와 흑인의 열등의식간의 대립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소수민족간의 이권다툼을 둘러싼 감정적 갈등으로 번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말 그대로 다른 인종간의 갈등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제든 촉발될 수 있는 도화선과도 같다는 것이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서 사는 그 땅의 갈등에 과연 이해와 화해의 손길은 불가능한 것일까. 서로 갈등을 묵혀두고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가 적당한 시간에 폭발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현실일 것인가. 이 영화는 그런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서로의 단절된 공감대에 슬며시 손을 내민다. 일단 이 영화는 복잡하다. 그런데 복잡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오히려 쉽게 정리가 된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제마다 각각의 사연을 지닌다. 16명의 군상들이 저마다의 인종을 대표하며 개인적인 사념을 펼쳐나간다. 그리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들은 서로간의 동선 안에서 연관성을 지니며 크건 작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는 영민한 시나리오가 완성시킨 이야기의 탄탄함이 전달하는 즐거운 감동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기본적인 뼈대의 튼실함을 제대로 갖추었고 그 튼실함 위에 진실 된 감동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각자의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나의 감동으로 엮어내는 구성력의 탁월함이 일원론적인 거대한 감동으로 승화된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이라고 했다. 1겁이라는 것은 아주 얇은 비단조각으로 1만 킬로미터의 대리석을 아주 가볍게 쓸어내려서 대리석이 다 닳아버리는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 그러니 억겁이라는 시간은 상상조차 되는가. 하지만 분명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말도 안 될 것만 같은 격언은 실감나는 현실로 느껴질 법하다.이 영화는 우리 주변에 산재된 인연의 소중함을 침착하면서도 영민한 눈빛으로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된 인물들은 서로 전혀 연관이 없지만 서로 간에 스쳐 지나는 인연의 알고리즘을 형성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자질구례 할 법한 사소한 사연들을 놓치지 않고 주워 담으며 작은 이야기들을 묶어서 커다란 하나의 화두로써 완성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일부와 마주친다. 그중에는 인생동안 둘도 없는 인연으로 맺어지는 이도 있고 그냥 한 순간 인지조차 못하고 스쳐 지나는 인연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러한 한 순간의 인연하나하나조차도 신비로운 일이 아닐까. 넓은 세상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 우연히 길 한복판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중에서 특별한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은 또한 얼마나 될까. 이것은 막연하게도 혹은 통계적인 확률적으로도 상당히 신비하면서도 엄두조차 못 낼 사건이자 수치로 나타난다.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이 있다는 불가의 진리가 이 영화를 통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고귀한 담론으로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도시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에서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그들은 실상 자신 안에 갇혀 지낸다. 꽉 막힌 콘크리트 벽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개인성의 고집으로 인한 깊은 고독감 뿐. 그래서 현대인들은 외롭다. 현대인은 각박한 일상 안에서 갇혀서 이웃에 대한 관심을 지닐 여유를 잃었다. 그래서 메말라버린 정에 향수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는 시작부터 정이 그리워서 사람들은 충돌(크래쉬)을 일으킨다고 한다. 마치 주목받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은 타인과 충돌하고 다툼으로써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영역이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느끼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현실적인 사소함 들을 풀어놓지만 그 사소함은 신비롭게 빛난다.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이슬처럼 소박하지만 산재된 아름다운 일상의 굴레가 잔잔하게 흐른다. 우리는 과연 누구와 살고 있고 우리는 과연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이 영화는 우리, 즉 타인의 존재 그 자체에 손을 내민다.이 영화는 대립과 반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화해와 공존에 대한 이야기다. 충돌과 갈등은 변화를 위한 모색이다. 그 과격함은 새로움에 대한 열망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내재된 불만은 현실이 아닌 미래를 향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충돌은 일시적으로 불안정하지만 탄탄한 내일을 예고한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우리는 저마다 비를 맞고 있지만 단단한 결속을 도모하기 위해 갈등하는 오늘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인종간의 갈등만이 이 영화의 충돌을 야기하지 않는다. 은연중에스스로 지니게 되는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과 은연중에 지니게 되는 잠재된 피해의식이 부르는 자학과 같은 아픔이 영화에서 각혈하듯 쏟아진다. 상대방의 무시와 차별 때문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지닌 편견과 선입견이 상대방을 밀어내고 서로 오해하게 만들고 갈등으로 야기되며 결국 충돌을 부른다. 이해보다는 배척을, 공감보다는 무시를 선택하는 배려하지 않는 삶 속에서 남는 것은 안전한 삶이 아닌 불편하고 두려운 삶 뿐이라는 것을 영화는 관객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함과 두려움의 본질적 해소는 상대방이 아닌 본인에게 달려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악연도 필연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본인의 마음에 달려있는 법이라고. 물론 그 모든 결과가 항상 만족스럽거나 평화롭지만은 않다. 때론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예상 밖의 비극으로 도출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혼란으로 맺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려 했던 상대방의 이해를 돕기도 하고 끝없이 쌓아만 가던 분노를 한순간에 누그려 뜨려주기도 한다. 잠재되어 있는 오해와 이유모를 증오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씻겨 내려가게 만들어 준다. 이로써 손을 내밀 가치는 충분하다. 영화는 부담스러운 무게감을 지닌 소재를 일상적인 가벼움에 녹여 인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단지 아름다움에서 멈춘 것이 아닌 호소력 있는 감동이자 영혼에게 전하는 직설적인 설득으로 나아간다. 정말 어떠한 찬사를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 아닐까. 아카데미의 안목에 찬사를 던지며 멋 적은 오해가 경솔했음을 시인한다. 타인과의 낯선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영화는 웃음 짓는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렇게 살아가고 살아가야만 하지 않은가. 서로를 경계하고 더욱 높은 벽을 쌓고 문을 걸어 잠글수록 결국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감은 짙어진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벽을 허물고 문을 열어야만 우리는 좀 더 넓은 세상의 인연을 누릴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 낯설고 어렵겠지만 이해하고 다가간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행복하고 풍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영화는 손을 내밀고 있다. 우리도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와 다른 네가 아닌 우리에게 말이다. 한없이 꼬이고 꼬여서 풀 수 없는 매듭이라 포기한다면 영원히 풀리지 않은 매듭으로 남는다. 하지만 한 번씩 서서히 매듭을 풀어나간다면 언젠가 매듭이 풀리는 날이 온다. 매듭을 빨리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매듭을 풀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이 영화는 갈등과 차별이 내재된 인류적인 화합을 도모하고자 한다. 물론 영화는 소박하다. 그러나 본인도 모르게 서로간의 동떨어진 삶의 조각을 채우는 인연의 굴레를 통해 보여주는 내면적 감동은 영적인 울림을 동반한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이 영화에는 한국인이 출연한다. 한국어 대사도 나온다. 하지만 그들의 이미지는 조금 불미스럽다. 뻣뻣하고 경직된 인상의 그들은 신경질적이고 야박하게 보일 정도이다. 이는 단지 이 영화에 불만을 돌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 내 한인들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조금 경직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외국인들에게 보여 지는 우리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법도 하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지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여지가 아닐까
    독후감/창작| 2009.11.20| 3페이지| 1,000원| 조회(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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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만과 편견 레포트 입니다.
    「오만과 편견」을 읽고 나서...「오만과 편견」이란 책은 고풍스럽고 품격이 있는 포장지에 곱게 싼 선물을 기대에 부푼 가슴을 달래며 펼친 상자 안엔 손수건이 담겨있는 그런 느낌이 바로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바이다.오만과 편견이라는 타이틀에서 우리가 방자하게 모든 것들을 대한 그 동안의 태도에 허를 찌를 것 같은 무거움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책 속의 내용을 통해서 방자함을 뉘우쳐보려는 반성의 자세로 첫 장을 펼친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연애 소설 류 라는 점이 실망감을 안겨 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여류작가답게 가족구성원을 바탕으로 자매들의 사랑이야기로 이끌어 가는 잔잔함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편견들을 통해서 내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바른지에 대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봉건사회의 배경 속에서 신분과 명예 그리고 가진 것을 중시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이러한 사회체제에 역행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결혼을 통해서 신분상승과 보다 많은 재산이 어울러짐을 원하는 베네트 부인(어머니)의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가 다소 여류작가가 깨주길 바라는 여성 독자의 희망을 무시한 채, 책의 결말은 자매들이 모두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고 게다가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마무리는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비판을 가하고픈 심정이다.착한 아가씨 제인 에게는 사람을 대하는 어떤 편견도 없는 정말인지 순수한 인물이다. 제인 과는 달리 엘리자베스는 그 시대에는 말괄량이처럼 드세지만 분별력 있어 보이는 당찬 성격으로 제인과 대조적인 성격이다. 자신이 믿는 게 전부이고, 타인이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있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엘리자베스 그러나 다아시에 대한 나쁜 첫인상을 시작으로 결말에 이루어질 그들의 결혼은 예리한 독자라면 미루어 짐작하지 않을까 생각된다.소설의 중점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서로에 대한 편견과 오만으로 서로를 오해하다가 자신의 그릇된 판단,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두 사람은 함께 성숙해지고 사랑과 신뢰로써 자기 발견을 하면서 결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들 주위에 있는 여러 커플들이 겪는 경험과 본보기들은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일에 따르는 위험과 교훈을 준다.난 짧지 않은 분량의 책장을 넘기면서 신분을 초월하고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의 힘으로 사회적 편견들과 싸워가며 그들의 사랑을 지키려고 애쓰는 삼류 드라마 같은 역동적인 소설이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등장인물 속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노력으로 그 마음을 달랬다.소설 속의 인물들이란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현실에서 있지도 않을 법한 인물들을 그리기도 하고 현실에 있음직한 인물들을 그린 다지만, 등장인물들 중에서 나의 모습을 종종 찾으려고 애를 써 봤지만, 소설 속의 만들어진 인물이라서 인지 누가 꼭 나의 모습이라고 답하긴 어렵다.속물 근성이라 불리움직한 베네트 부인의 성격도, 괜한 첫인상이나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고 마는 엘리자베스와 같은 편견도 나뿐만 아니라 사람이며 누구나 이러한 속성은 지니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문/어학| 2009.11.20| 2페이지| 1,000원| 조회(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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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학개론 요약집입니다.
    1주 1강“사회있는 곳에 법이 있다”는말인간의 공동생활에는 질서유지에 필요한 법이 필수적이라는 의미.원시사회나 고대사회-미분화된 패로“터부”,종교,관습,법 등이 하나가 되어서 생활을 규제.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인간관계의 대한 홉스의 정의만인의 만인의 대한 투쟁.인간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정열은 죽음의 공포이고, 안락한 생활에 필요한 것에의 탐구이며, 그리고 이를 노동에 의해 획득하려는 희망이다.규범.규범이 추구하여 실현코자 하는 질서는 공정, 공평을 이상으로 함.법의 불완전성과 구현법 자체가 불비하기도 하고, 법의 실제가 불공평한 경우 법을 만드는 과정과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오판이 생겨남.규범에 따른 생활에서도 우리는 “완전성”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인간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추구하고, 나아가서 정의란 이상을 조금씩 구현해 나가는 것.1주2강독일어의 Recht란 말은 법이란 뜻도 있고, 정의란 뜻도 있다. 영어의 Justice도 재판이란 뜻과 함께 정의란 뜻도 있다. 법이 지향하는 이상이 정의에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고대 로마에서는 법이 정의의 기술이라는 점을 법학의 입문자에게 첫 번째로 가르쳤다.국가공직자에게는 엄중한 통제와 책임을 부과하고 있고, 법률가에게는 그 나름의 엄격한 직업윤리와 책임이 부과되고 있다.법률가의 필요성세상에는 법률가든 아니든 간에 법을 교모하게 나쁜 방향으로 악용하는 무리가 있다. 이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법이나 법률가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모순을 없이 하기위해서 법의 바른집행과 바른 법률가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사회 의사로서의 법률가.법률사건의 전문인으로서의 법률가.사회병리현상으로 인한 법률가의 필요성.사회병리현상의 치료와 예방의 역할로서의 법률가.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법률가의 생활인, 직업인으로서 심오한 법률지식과 풍부한 교양이 필요.법조윤리와 법률가의 인생관 가치관이 매우 중요함.1주 3강사회과학으로서의 법학.법학은 사회과학에 속한다.-서양에서 법학은 신학이나 의학과 함께 가장 의 안전을 위한 공동체의식 발당, 될 수 있는 한전제군주의 지배를 면하거나 덜 받으려 함근대 아시아의 법관념법은 지배자-통치자의 일방통행적 명령이나 의사라는 법의식이 전제군주의 지배의 전통과 결부되어 강조됨자유를 압살하는 곳에서의 법에 관한 의식은 권위주의적인 색채를 띠게 되는 것이 당연종적 지배의 질서라고 하여도 권리가 없이 의무만이 일방적으로 강요된 곳에서 법을 권리나 자유와 결부시켜서 생각할 수 없었음.민주주의의 법률관시민사회의 법 관념서양사회에서는 17~18세기의 시민혁명은 법률관도 일대전환을 마련시민혁명을 변호할 사상가들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의 상태를 자연상태라고 가정국가는 바로 이 자연권=천부인을 보다 적절히 보장하기 위해 인민간의 합의에 의해 성립국가의 질서가 천부인원을 침해, 유린하는 것이면 애당초의 약속에 어긋나는 것이고 그것은 이미 무법의 상태권련의 견제와 법시민 정치사상에 의해 법을 보면->법은 국민이 그들의 천부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이 직접 또는 그대표를 통해서 제정하는 국민의 의사의 표현이 재판관의 선임과 재판과정에의 참여->자연권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정한 것이면 법이 아님재판관의 선임과 권리의 적용민주사회에서 권력자는 국민의 대표이다.전제군주지배하에서 재판은 군주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재판관은 군주의 신하영미법에서 국민의 자유의 신장은 배심제와 깊은 관련이 있음.->일반서민이 기소결정이나 재판과정에 배심원으로 참여함으로써 권력자의 불법한 탄압을 배제할 수 있었던 것2주 3강사회관계속에서의 행동규칙사회구조에 따른 규범의 변화민주주의하에서 공동생활의 질서를 세우는 규범법은 사회 제관계의 행동규칙의 일종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사회생활 속에서 법과 다른 규범의 상존사회구조가 어떠한가에 따라 법의 모습도 달라짐현대법은 현대사회라는 고도로 발전된 산업사회의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제 규칙의 총체나라의 정치, 경제의 구조와 관련되어 그 구조적 특징이 법에 반영법률만능주의법은 그것만으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법이 입각하고 있는 사회관계를 알관념적인 것라.법은 인간의 외면적 행위를 규율마.도덕은 인간의 내면적 사상을 규율바.법에는 권리에 대응하는 의무가 뒤따르는 양면성을 갖는데 반하여도덕은 의무만 있는 편면성을 갖음3주 1강세종류의 법원철학적 법원-법철학상의 법의 효력 내지 구속성의 연원역사적 법원-법의 발생, 형식의 연원을 소급하여 구하는 방식, 어떤 법 자체의 역사적 연원이나 개개의 법규를 사적 연원에서 탐구형식적 법원-실정법의 존재를 두고 말하는 것, 실질적인 문제로서의 형식적 법원법 규범의 인식법률문제의 발생 시 구체적인 해당 규정을 인식해야 할 필요성의 대두법 규범 인식에 있어서의 문제점법원->현재에 통용되고 있는 실정법의 규범의 인식법해석->문자로 표시된 법 규범의 의미 파악성문법과 불문법의 적용과 참여근대국가:법 생활에 있어서 합리화로 인한 성문법의 채택법률문제의 복잡성과 변동에 의한 불문법의 고려법의 민주화 과정을 거쳐서 법의 제정으로부터 그 집행, 적용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참여법의 제정:헌법이나 법률의 제정은 국민의 이름으로 대의정치와 투표를 통해 실현3주 2강헌법국가의 기본 조직과 통치에 관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 규정을 정한 최고의 법규 ex)영국같은 나라는 헌법전은 없지만 헌법은 있다.헌법의 최고 규범성을 보장하기 위해 하위의 법규범을 규제법률국회에서 제정, 공포된 국법을 법류법일반을 부르는 뜻으로도 사용하지만, 여기선 국회의 제정법을 지칭하는 것법률의 의의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원칙국가의 통치의 중요한 사항은 반드시 국회의 법률에 의함법률과 동위의 효력을 가지는 것->헌법 제51조에 따른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의한 비상명령예산->특수한 법 형식으로서 법률과 같은 효력,국민에게 재정상의 부담을 직접, 간접으로 부과하는 예산은 재정입헌주의란 취지에서 보아서 법이라고 봄이 타당함일반적으로 체결된 국제법규도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명렬->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거하여서 행정기관이 제정하는 성문법, 오늘날 행정급심을 기속한다법령의 해성에 있어서는 일관된 통일성을 보지유권적인 판단으로서 판례에 나타난 의견은 법원으로서 중요한 구실판례법을 관습법과 대조해 볼 때에 관습법이 민중 사이에서 발생하는 ‘민중법’이라고 하면, 판례법은 법률가에 의해 생성되는 ‘법조법’판결은 주문+이뮤->이유는 그 주문인 결론에 이르게 된 사실에 대한 법적인 평가->사건의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결정적 이유’가 된 부분이 판례법조리조리의 의미->도리, 사리, 사물의 성질 또는 형평첫 번째 규칙은 남을 해치치 말라는 것구체적인 사회관계에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스위스 민법 제1조2항은 적용할 법이 없으면 “재판관 자신이 입법자였으면 정했을 법규에 따라서”재판을 해야한다우리 민법 제1조“민사에 관하여 법률의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4주 1강법의 분류공법과 사법으로 구별국가와 시민의 지위가 명확히 구분되기에 이른 근대사회에서 비롯된 것공,사법의 구분은 근대국가에서 한편에는 구가,다른 한편에는 구가, 다른 한편에는 시민사회를 예정한 데서 나온 근대법 특유의 제도근대국가에 있어서 법질서국가질서에 대응한 법이 공법이고, 사회질서에 대응한 법이 사법이다.시민사회에서 개인이 사회활동의 주체로서 독립적인 지위가 인정되고, 그러한 사회관계가 개인사이의 경쟁관계로 보장->공, 사법의 구분의 필요성 대두넓은 의미의 공법->헌법, 행정법, 형법, 소송법좁은 의미의 공법->헌법과 행정법구분의 실제적 이익사법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다.공법관계냐 아니냐에 따라 다른 종류의 소송이론적 구별에 앞서서 법제에서 기술적, 제도적으로 구별해야 할 실제적인 필요성공, 사법 구별에 관한 각종의 학설이익설-법이 공익을 목적으로 하느냐주체설-법률관계의 주체에 국가가 공공단체가 있느냐법률관계설-명령복종의 법률관계나 대등한 자 사이의 법률관계냐*제도자체가 지닌 의미를 바르게 파악해서 이 구분을 하여야 할 것형사법국가의 형벌권 발동의 근거와 한계 및 절차를 정한 법죄형법정주의, 인도적인 형사절차의 보장 등을 한다는 점에서 자연법이 재인식법의 효력범위에 따른 분류일반법-사항, 인, 지역에 제한이 없이 법의 효력 범위가 일반적인 법특별법-사항, 지역에 특수한 효력 범위를 갖는 법원칙법-어떤 특정의 사항에 대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예외법-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원칙법을 배제하고 적용되는 법법의 효력의 강행성 유무에 따른 분류강행법-법의 효력이 강행적이냐의 여부에 따라 강제성을 띤 법임의법-강행성이 적용되지 않는 법,사법에서 당사자가 어떤 법과 다른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 때에는 해당 규정이 적용된다.5주 1강법의 실정성법은 규범이지만 인간의 사회생활 속에서 작용그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는 요구가 내재법의 실질적 효력: 법의 타당성과 실효성법규범-행동규범, 강제규범행동규범으로서의 법: 규정대로 준수해야 한다는 요구법의 실질적 효력:타당성법의 타당성의 근거->사실의 규범력설-승인설-여론설-실력설-정의5주 2강법의 형식적 효력실정법은 어떤 구체적인 사실에 적용적용되는 사실이 “어느 시기에 발생 하였는가”법의 시간적 효력유효기간: 제정법의 효력은 시행일로부터 폐지일까지 계속된다.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이 경과하면 효력이 발생한다한시법, 신법우선의 원칙, 법률불소급의 원칙, 경과법법의 장소적 효력법의 인적 효력5주 3강법의 적용과 사실의 확정법의 적용-법을 적용함에는 사실의 확정과 법의 해석이라는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사실의 확정사실의 확정단계: 입증->추정->의제 또는 간주민사소송:당사자주의->형식적 실질주의형사소송:실체진실주의->입증책임은 검사 측: 인권보장이란 공익의 요구가 있기 때문법의 해석법규범이 가진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예)민법 제 3조: 추상적인 ‘사람’의 의미, ‘생존’의 의미, ‘사망’의 의미 해석법의 해석이란 법이 지닌 객관적 의미를 탐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해석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좌우, 이해의 대립이나 정치가 개입‘법은 선과 평등의 기술’법 해석의 방법유권해석법규범의 의미를 국가의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하여 법령이나 판 한정
    법학| 2009.11.20| 16페이지| 1,500원| 조회(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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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사회이론을 어떻게 이용했는가?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제1부종래의 패러다임들:우리는 사회이론을 어떻게 이용했는가2.케인스 경제학케인스 경제학은 전후 정치에서 발생한 많은 일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케인스는 경제사상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개한 경제학자이다. 케인스는 버나드 쇼(Bernard Shaw)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경제사상이 경제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혁명이 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많은 이론경제학자들과는 달리, 케인스는 경제학을 실천적인 해답을 제시 하는 데 사용했다. 케인스 경제학은 사회정책의 연구자들에게 아주 적실하다. 케인스 경제학은 정부가 시장을 거역할 수 없다는 일반적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책결정은 정치적인 선택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케인스 경제학은 시장경제의 맥락에 개입하기 위한 틀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장은 장기간에 걸쳐 조정된다는 이전의 통상적 시각의 토대를 침식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조정될지 모르나, 복지와 안녕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간 임금삭감, 노동시장의 탈규제, 노동조합의 영향력 최소화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되어왔다. 설사 그 같은 방식의 고용창출의 틀이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노동시장에 통합된 노동자집단이 노동시장 주변에서 저 숙련 직업에 종사하며 저임금으로 먹고 사는 자신들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케인스의 관점은 그 같은 틀은 아마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시장규율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고용창출이 좀 더 나은 대안이자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일 것이라고 보았다.케인스와 고전 경제학자들고전경제학자들은 경제는 자기조절적이라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76)는 경제는 시장을 움직이는 ‘숨어 있는 손’(hidden hand)에 의해 인도된다고 주장했다. 고전경제학의 모델은 경제 속에서 생산과 소비는 균형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 유명한‘세이의 법칙’(Say's law)의 언명이 바로 “공급이 자신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s curve)은 완전고용이 인플레이션을 대가로 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시도였다. 비록 필립스곡선이 케인스식의 논의로 널리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케인스식 접근방법의 근본적인 결함을 입증하는 것으로도 여겨졌다. 필립스는 실업수준과 임금변화율 간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Phillips, 1958). 그에 따르면, 실업률이 낮을 때, 노동을 위한 경쟁 때문에 임금이 급속히 상승한다. 반면 실업률이 높을 때, 임금은 떨어진다. 프리드먼(Friedman, 1975)은 필립스 상충관계가 노동자들이 명목임금을 놓고 협상할 QNs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노동자들이 단기적으로만 화폐착각으로 인해 고통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장기적으로는 실질임금을 놓고 협상할 것이다. 행위자들이 실질임금에 대해 협상하기 때문에, 임금교섭은 기대인플레이션율과 기대실질임금을 둘러싸고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케인즈는 자신의 관심이 경제문제에 있으며 또 실업이 하나의 경제적 쟁점이라고 주장했다. 완전 고용이 임금 인플레이션의 억제와 양립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임금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문제의 복잡성을 잘못 전달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노동비용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며, 필립스 곡선에 의해 기술된 관계는 일관성 있게 재생산되지도 않았다. 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문제이며, 물가상승은 다른 많은 요인들에 의해 부추겨질 수도 있다.케인즈주의와 지구경제괴란 테르본(Goran Therborn, 1986)은 일부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1980년대의 경기침체와 실업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들 나라의 경제정책을 운영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다른 나라들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케인스식 관리경제가 국제시장의 변화에 대해 갖는 취약성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암시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케인스주의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한다. 케인스의 분석은 폐쇄경제-각각의새로운 계급에 의해 붕괴되었다. 부르주아는 차례로 새로운 노동계급, 즉 반란을 일으키고 국가를 전복시킬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붕괴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억압보다는 평등과 유연생산에 기초한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수립함으로써 그 과정을 종식시킬 것이다. 이 같은 결론 속에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첫째로, 만약 모든 역사가 억압에 기초해 있고 냉혹한 논리를 통해 각 지배계급이 또다른 지배계급에 의해 대체된다면,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압제자에 의해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만약 사회의 발전이 정치체계보다는 그 사회의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된다면, 혁명을 통해 정치체계를 장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처리할 수 없을 것이다. 맑스주의는 혁명을 권고하고, 맑스주의는 그같은 혁명은 불가피하며 정치를 통해서는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혁명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자본주의맑스주의적 분석의 중심 논점은 그것이 근대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본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지배에 의해 특정지어진다. 자본주의는 일정한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체계이다. 자본주의는 사적 개인에 의한 사리추구와 이윤추구에 의해 동기지어진다. 이것은 실제로는 오늘날의 산업과정에 대한 아주 적절한 서술은 아니다. 첫째로 이윤은 반드시 사적 개인들에 의해서만 산출되지 않는다. 둘째로, 산업과 상업은 예전처럼 전적으로 사적이지 않다. 셋째로, 소유와 통제가 분리되었기 때문에, 산업과정은 경영자에 의존하게 되었다.노동착취맑스주의는 자본주의과정을 분업과 관련하여 묘사한다. 그같은 과정 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고, 또 자신들의 노동이 산출한 잉여가치를 착취당한다. 가치는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되나, 자본가들은 노동을 구매하고 그보다 높은 가격으로 재화를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 이것은 노동자에게 그의 진정한 가치보다 적은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즉 노동자들을적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맑스는 일련의 위기경향을 개관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이같은 위기경향은 자본주의경제의 토대를 침식하고, 전혀 다른 경제를 재촉한다. 자본주의는 자기파멸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맑스주의자들은 정부개입을 자본주의의 필요에 대한 응답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두 번째 접근방법은 맑스의 정치저작들에 근거하고 있다. 맑스는 예컨대 프랑스혁명기의 계급세력을 상세하게 그려내는 등 계급분석의 동학을 설명하고자 했다. 사회정책의 범위를 확장시켜준 국가개입은 노동계급의 승리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반면에 사회적 급여로부터의 후퇴는 노동계급의 패배를 의미하기도 한다.맑스주의:개관맑스주의적 사회분석에는 그것이 왜 그토록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그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실이 존재한다. 맑스주의가 영향을 발휘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분명 정치적이다. 다시 말해, 소련과 중국에서의 맑스주의의 지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맑스주의가 자본주의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또한 집단적 조처를 지지하는 모든 논의를 공산주의 내지 의사맑스주의로 낙인찍곤 하는 시장자유주의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아주 편리한 논거를 제공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 요소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하나는 맑스주의의 주장이 사회적 부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 주장이 사회주를 표상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집단적 조처를 제창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 주장은 모두 사이비였다.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논의는 적절하지 못했다. 맑스주의적 논의에서 정의에 대한 발전된 이론은 물론 평등에 대한 발전된 이론도 찾아볼 수 없다. 이차적 빈곤은 실제로 무시되었다. 즉 성과 인종의 문제는 사회계급의 부차적 측면으로 취급되었다. 맑스주의 사상의 초점은 항상 다른 곳, 즉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중추적’ 갈등에 맞추어졌다. 집단적 조처와 관련된 두 번째 논점 역시 산업 실업수준은 노동시장이 상품시장에서 결정된 가격문제를 처리하는 데 실패하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시장이 완전고용의 장애를 제거하기에 앞서 노동시장에서 임금을 조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시장에서 가격을 경정하는 것은 소비자주권이다. 높은 실업수준은 노동의 가격이 너무 높다는 것뿐만 아니라 만약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임금수준이 하향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시장자유주의자들과 케인스 경제학케인스주의자들이 볼 때, 이같은 논의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실업이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실업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경제는 자기조절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케인스주의들과 시장자유주의자들 같의 논쟁은 자신들을 케인스의 후계자로 여기며 정부개입, 시민적 덕성 창출의 필요성, 문명화된 경제를 주창하는 사람들과 전지구화된 경제의 도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시장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간의 긴장을 여전히 반영하고 있다. 경제영역에서 케인스주의는 인플레이션, 비효율성, 실업 등 일련의 문제의 근원으로 인식된다. 시장자유주의적 틀 안에서 실업은 시장경직성 수준의 사회보장급여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된다.공공선택‘공공선택’이론은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비롯한 경제학적 방법을 정치분석에 적용시키려는 시도이다. 공공선택이론은 모든 개인은 효용을 극대화 하려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재화와 용역의 시장과 마찬가지로, 정치에도 역시 정치상품을 공급하는 사람들과 정치상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반하는 시장이 존재한다. 공공정책이론을 창시한 사람은 다운스(A.Downs)였다. 그는 조지프리슘페터(Joseph A. Schumpeter)의 민주주의이론에 기초하여 그의 이론을 전개했다. 슘페터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표를 얻으려는 정당들 간의 투쟁으로 이루어지며, 그같은 정치적 반응이 발생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공공선택재한다.
    인문/어학| 2009.11.20| 16페이지| 1,000원| 조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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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자유주의와_인간성의_파괴’를_읽고 쓴 감상문입니다.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를 읽고사회과학부 20511620김윤호나는 리차드 세넷이라는 작가의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라는 책이름은 어디서 몇번 들어본 것 같았다. 신문에서이든지 아니면 논술을 공부 할 때 이든지 이 책은 상당히 유명한 책이다. 나는 사실 신자유주의가 정확히 어떤 것이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고등학교때 사회문화나 일반사회 윤리 등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는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전반적인 내용 즉 겉모습만 배우고 지나 갈뿐 이였고 그런 신자유주의 시대의 속의 모습, 생활방식 등 은 전혀 교과서엔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떄문에 나는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장점이 있지만 저러한 단점이 있다는 것을 책을 보면서 외우기에 급급했지 진진하게 이해하려고 하거나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논할 때 항상 빠지지않고 인간성의 상실, 파괴, 소외 등 을 말한다. 그러나 ‘왜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에 대한 답은 쉽게 떠올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책을 읽음으로써 조금 더 신자유주의의 대해 이해와 인간성 파괴라는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하였다. 이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신자유주의라는 어떻게 보면 무미 건조하고 딱딱할 수 있는 화제거리를 보다 쉽게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수필형식으로 묶은 독자층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보통 사회과학 내지 인문도서들을 보면, 온갖 전문용어의 사용으로 독자층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도서는 그러한 전문도서적인 성격을 탈피하고 보다 가까이 독자층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경험을 한 이해와 설명에 그 초점이 있다. 자신이 직접 접한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현 신자본주의 시대의 문제점과 적절히 접목시켜 날카롭은 풍자를 통해 이 시대에 진정한 인간성의 존재가 가능한가를 묻고, 그렇지 못한 원인을 쉽게 느낄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도서에서 흔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딱딱한 문어체적 말투와 자신을 돋보이고자 하는 현학적 느낌이 대부분인데에 반에 적어도 이책은 지은이 자신을 내새우기 보다도 읽는 사람을 배려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상으로 여겨진다. 자칫 논문형식의 딱딱한 사회과학 도서에 실증을 느낄 수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시도는 사회과학도서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제시적 업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선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어떠한 것인지 간단히 살펴 보도록 하겠다.신자유주의란 시장원리 준수, 자유경쟁 촉진, 정부규제 철폐, 기업구조 조정, 공공재 폐지 등을 주장하는새로운 경제사상을 말한다. 그 특징으로는 자유경쟁의 촉진, 극대의 효율성 추구, 이윤의 극대화, 시장경제원리의 준수, 규제 철폐, 기업의 경쟁적 우위 확보, 공기업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촉진, 실질임금의 하향 경직성 제거, 공공지출 축소, 중앙집권 지양, 정부기구 및 기업구조 조정, 사회복지부문에 대한 공공예산 삭감, 공공재의 개념 철폐등이다. 이 유연성을 본질로 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유연한 자본주의'(flexible capitalism)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새로운 노동형태를 강조한 개념, 즉 일정한 근무 시간과 장소를 요구하는 기존의 정형화된 근무 조건에서 탈피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조직에 유연성을 부여한다는 것 그래서 자유 출퇴근제, 재택근무제, 파트 타임 근무 등과 같은 용어가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제 눈치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언제 해고 통지서를 받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매순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일의 의미도 바뀌고 있다. 예컨데, '직업'이란 의미를 지닌 'career'라는 단어의 영어 어원은 마차가 다니는 길, 즉 노동에서는 평생 한 우물만 판다는 의미였는데, 유연한 자본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노동자들을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내몰면서 원래 일직선이던 '캐리어'의 길을 막아버렸다. 조직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아래 수시로 개혁을 하고 노동자의 일은 ‘career’보다는 ‘job’의 의미가 강해졌다. 이 유연성은 언뜻 보기에 일의 자유를 더 많이 주는 듯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착각이다. 삶의 자유는 오히려 더 억압받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보통시민 세 사람의 최근 몇 년 동안의 삶을 추적하는 이른바 ‘휴먼다큐’ 기법으로 신경제의 유연성 속에서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예로 들고 있다.우선, 금융 컨설턴트 리코다. 그는 언뜻 유연성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이중성 때문에 방황한다. 평생 소득 하위 25%내에 있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소득 상위 5%까지 올라가는 경제적 성공을 거둔다. 그동안 겪었던 전직, 실직, 마침내 독립하기까지의 경험을 ‘삶의 역동성’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한가지 일만 하는 것은 옛날 생각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혼란스럽다. 가장 먼저 충돌하는 곳이 가정이다. 가정만큼은 신경제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카멜레온적 가치 대신에 의무, 신뢰, 헌신, 목적 등과 같은 장기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그렇지 못하다. 자식들은 방과후 길거리를 배회하고 이기적이며 부모와 담을 쌓는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단절이나 이웃들과의 불화도 때로, 견디기 힘들다. 그에게 경제적 성공을 안겨 준 유연한 행동이 사실은, 그의 인간성을 약화시킨 것이다.두 번째 주인공 로드니 애버츠는 제빵사다. 그는 견습직원에서 20여년만에 현장 메니저까지 되었다. 최근 들어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제빵실에 기계들이 등장하면서 부터다. 땀냄새 나고 숨쉬기 어렵던 사무실 공기는 놀랍도록 신선해졌고 밤을 새며 했던 일들은 기계가 알아서 해 준다. 컴퓨터 아이콘 하나로 모든 종류의 빵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동료들간 연대의식은 약해졌고 후배들은 일에 대한 애착을 갖지 않는다. 후배들은 이렇게 말한다. “집에 가면 진짜 빵을 굽습니다. 근데 여기서는 버튼만 누릅니다.” 장인 정신이 요구되었던 빵만드는 공정은 오직 기계만이 진정한 주문의 표준이 되어 제빵사들은 일에 대한 애착심을 느끼지 못하고 감정적인 혼란만 겪고 있는 것이다.세 번째 주인공은 중년 여성 로즈이다. 신경제의 유연성이 근로 수명을 단축시켜 중년의 노동력을 얼마나 쓸모없게 만드는 지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술집을 운영하던 그녀는 새로운 일을 위한 모험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주류 광고 대행회사에 들어가지만 1년만에 그만둔다. 젊음과 미모가 없었던 그녀는 죽은 나무 토막 취급을 당했고 축적된 경험은 인정받지 못했다. 회사간부, 동료들은 퇴근 후 술자리에 그녀를 초대하지 않았으며 나이가 너무 많다고 변두리 사람으로 무시했다. 그녀는 현대의 조직 세계에서 자신과 같은 중년층은 서서히 부식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세사람의 경험은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이다.자, 그렇다면 우리를 표류하게 만드는 이 유연성을 견제할 대안은 무엇인가? 불행히도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추상적이다. “보다 넓은 공동체 의식, 더 풍부한 감각의 인간성이야말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늘어만 가고 있는 실패할 운명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저자는 우리가 왜 인간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그 소중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는 체제라면 정통성을 오래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외치지만, 그의 목소리는 외로워 보인다.언제나 자본주의는 누군가를 소외시켜왔다. 하지만 과거 계급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오늘날과도 같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여주지 않았다. 왜냐면 그 때는 지금보다 저항해야 될 대상이 보다 명확했고,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보다 쉬웠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오늘날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자본을 들여 교육을 받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되겠다며 사회에 발을 디디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나 한지 의문을 갖게 된다. 과거와 같이 함께 일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존재할 수 없으며, 내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잘못을 발견해야만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사회에는 인간이 없다. 진정 우리 모두는 정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그것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을 위한 본질적인 가치들이 외면당하는 속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의 파괴뿐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인간을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현재 우리사회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노동의 구조 변화에 대해서 저자의 결론은 좀 미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학에서 시작해서 철학적인 결론으로 빠지는 느낌이 조금 있는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09.11.20| 4페이지| 1,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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