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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포의 어거스틴
    히포의 어거스틴어거스틴 (원이름:Augustinus)은 신실한 기독교인 어머니 모니카와 이교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354년 11월 13일 누미디아 지방의 타카스테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자식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그의 부모는 그가 16세때에 마다우리라와 카르타고에서 교육과 출세의 기회를 장려 하였다. 어거스틴은 당대의 관습에 따라 문법, 주요한 라틴어 와 수사학을 배웠다. 아버지가 사망 후 그의 첫 번째 직업은 고향 도시의 수사학 선생이었다. 그 후 가르타고로 돌아가서 자리를 찼았다. 이시기 어거스틴은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을 낳아 아데오다투스(Adeodatus) 라는 아들을 얻었다. 카르타고 시절은 종교철학적 탐구로 키케로이 『호르덴시우스』를 읽고 마음이 바뀌어 지혜와 완성된 삶을 추구하게 된다. 373년 북아프리카에 유행하던 마니교는 젊은 지성인 어거스틴에 2원론적 악의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고 구약을 거부한 것이 믿음을 강조한 기독교 보다 오직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마니교에 탐닉했지만 기간은 길지 못했다. 어거스틴은 29세 때에 가르타고 에서 로마로 옯겨 수사학자로 얻었던 명성으로 사설학원을 열지만 수강생이 학비를 내지 않는 행태를 보이자 밀라노의 공식 수사학교수직 제의를 받아 받아들이는데 이는 마니교 친구들의 호의를 통하여 얻은 자리이다.그는 384년 밀라노로 갔고 그곳에서 뛰어난 공직생활을 기대하고 생활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종교적인 물음이 직업 생활의 문제를 앞질렀다. 친구들의 도움과 어머니 모니카는 기독교 신앙을 친근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때 즈음에 어거스틴은 마니교와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 후에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에 빠졌지만 이것으로도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가 없었다. 이후에 그는 밀라노에서 밀라노의 감독이었던 암브로시우스의 감화하에 강한 품성의 사람이 되었고 어거스틴은 자신을 한 영혼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성취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에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비취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밝혀주는 진리의 빛”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신이 그 빛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이런 지적인 혁명과 새로운 전망들에도 어거스틴은 여전히 명예와 이익과 결혼을 갈망하는 자기 환멸을 느끼며 고민하는데 아프리카 출신 폰티키아누스(Ponticianus) 영향을 받아 수도원적 이상에 눈을 뜨게 된다. 이렇게 갈등을 겪게된 밀라노의 한정원에서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 라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바울의 로마서 구절을 읽었다. “낮 에와 같이 단정하고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이 회심으로 그는 금욕적 생활과 카시키아쿰 영지로 은퇴 하여 몇 달 동안 책을 일고 토론을 벌려 자신을 괴롭혀온 문제를 다룬 대화편을 통하여 풀라톤적 견해에 영향과 삶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겨울에 어거스틴은 밀라노로 돌아가서 세례지원자로 등록 하였다.세례를 받은 후 어머니 아들과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남은 생애를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그의 후원자 어머니는 오스티 에서 사망했다. 이때 작품을 통하여 이전에 신봉했던 마니교를 비판하였다. 타가스테에 돌아온 조그만 공동체를 세우고 명상과 철학적 은퇴 생활 예상과 달리 391년 누미디아 히포 항구도시에서 주교 발레리우스에(Valerius)에 의해 장로로 임명되었다. 359년 이후 발레리우스를 승계하여 430년 사망 때까지 히포의 주교로 일하였다. 주교직을 계승한 것은 그의 생애 전환점이 되어 하나님을 마음으로 추구하는 변증법 의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성경해석 북아프리카 교회들의 실무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목회자가 되었다.어거스틴 시대의 도나투스 주의(Danatism)는 북아프리카에서 80년이상 지속되어 당국의 박해에도 어거스틴 서임당시 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의 다수를 포함할 정도로 번성하였다.북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은 배교자들의 성직이나 감독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했다. 도나투스들은 결국 분열을 야기시켜 북아프리카에서 두 개의 대등하고 경쟁적인 교회를 발전 시켰다. 어거스틴 시대에 도나투스파 교회와 카톨릭 교회사이에 적대감은 상대의 폭력을 기억하고 상호 교류를 거부함으로 불신이 깊어졌다. 어거스틴은 교회당 근처에 도나투스 회중의 바실리카 가 서있었기 때문에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거스틴의 시도가 실패하자 정치적 및 교권 싸움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는 제국 법정이 도나투스주의 자들에 반대하는 입법, 재산몰수 협력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법 제정에 힘을 기울였다. 이런 정책은 마침내 411년에 시행되었다. 이후 도나투스파 문제는 어거스틴의 중요한 관심사에서 벗어나고 그이 마음은 다른문제로 옳겨졌다.다른 공적은 문제보다 「삼위일체론」(On the Trinity)이라는 위대한 논문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그의 ‘심리학적 유비’(psychological analogy)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아무 힌트도 없는 이 부분에서 그는 삼위일체의 문제를 신학자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묘사하는 문제보다 인간의 지성이 삼중적인 존재로 계시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에 관한 문제로 파악한 사실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Source)이며 대상 (object)이고 힘(Power)이시다. 사랑을 실행하는 인간자아는 하나님의 존재와 행위의 새 인격적인 구조 속으로 들어가 반사적인 인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한다.‘성부’‘성자’‘성령’ 이라는 명칭들은 다른 존재 이름이 아니라 관계들의 이름이라는 사상을 발전시킨다. 하나님의 위격들은 단일한 ‘우시아’(ousia ‘존재’본질)의 구별이 아니라 한분 하나님께서 영원하게 스스로 관계하시는 실질적 방식이라는 것이 어거스틴의 확신이다. 이런 관계에서 ‘심리적 유비가 ’가 작용하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삼위일체 이미지에 따라 창조 되었고 자기 관계성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주장을 발전시켰다. 어거스틴은 성령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본질 표현이며 성령을 “성부와 성자로부터”발출하는 것은 ‘이중 발출’(double procession)교리였다. 이 용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라틴어 번역에 피리오케 라는 단어를 삽입하는 것으로 그리스 교회와 라틴 교회 사이의 갈등의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독후감/창작| 2006.10.09| 3페이지| 1,000원| 조회(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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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한국교회의 문제점
    한국교회 문제점과 대안아침기온이 10° 이하로 떨어지고 해지는 시간이 빨라지면서 교정에 심은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각종 수목이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고 있다. 사색하는 계절에 이번 토론 주제는 한국교회 문제점이 무엇인지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였다. 70~80년대에 성장과 은혜 시대를 보내고 오늘날에는 한국교회 문제를 넘어서 20~30년 후에는 교회 존립기반이 흔들리는 위기에 있다고 진단한다.한국교회 문제가 무엇이냐는 토론 주제 질문에 교회 외형적 대형화를 시작으로 많은 교파, 목회자 윤리문제, 교회세습, 이원론문제까지 14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공감을 나누었다. 시간제약이 없었다면 더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교회 문제점을 제기하였다면 성도 개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고 더 나아가 문제 해결에 대한 대안과 앞으로 나갈 바른 방향에 대하여 토론하지 못했다.한국교회 문제를 제기한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교회 외형적 성장문제이며 둘째는 신학적으로 극단에 가까운 이원론 문제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교회에 대한 전문가 그룹과 일반 평신도가 함께 지적한다. 두 가지 문제는 외형적 대형교회 문제에서 시작한다고 하여도 무리가 없다. 여기에 외형적 문제는 교회 건물과 성도가 많이 모이는 것뿐 아니라 바른 성경중심 신앙과 성도 개개인이 예수그리스도 분량에 이르는 기독교인이 적다는데 있다.외형적 성장 중에 첫째, 개 교회 중심이라는 데 있다. 개 교회 중심은 기독교 본질을 훼손한다. 주위 교회를 같은 공동체로 보지 않고 경쟁 대상으로 보며 통일성과 협력을 가로 막는다. 이런 결과는 기독교가 감당하는 사명을 효과적으로 실천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 지나친 개 교회 주의는 독선과 아집으로 빠져 극단적으로 흐를 때는 이미 노회와 총회 그리고 교계 올바른 조언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과거를 보면 이단들이 어떻게 거대한 모습으로 형성 되었는지 고찰하면 개 교회 주의는 심각하다. 셋째 개 교회 주의는 성도들을 교회에만 묶어 놓아 사회에 빛과 소금, 봉사실천 역할을 적극적으로 못하게 한다. 성도들에 신앙생활 영역이 교회 안에 한정되어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을 하지 못하게 하고, 지역적이며 현세 안에 형태적으로 흐르게 한다. 개 교회 사고는 하나님에 대한 봉사가 오직 교회 안에만 국한되어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교육 등에서 하나님 영역 주권을 실현하지 못하게 한다. 교회 안에서는 천국이지만 교회 밖에서는 비 천국인 장소로 인식하고 기독교인들이 삶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을 지나친 이원론적 신앙관으로 연결된다.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교회는 역사를 책임지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서울 장신대 어느 교수는 “교회가 세상을 보는 눈이 한참 뒤진다고 하시며 어제 좋은 교회가 오늘에도 좋은가 오늘 좋은 교회가 내일도 좋을 것인가를 교회는 항상 질문하며 시대를 이끌어 가는 영성을 가져야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교회는 외형으로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라는 것을 자각하고 성경을 지식으로 받지 않고 예수님 본을 보인 삶으로 살아야 한다. 한일 장신대 어느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삶이 뒤따르지 않는 예배는 영적 오락에 불과하다”라고 하면서,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 하나라도 주어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기독교인이다”라고 했다. 문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었다. 문제 해결 시작은 자기를 부인하는 무릎 꿇는 겸손함과 영성에 있다.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다. 문제가 많다고 불평만 할것인가? 그 문제는 타인이 아니라 항상 나에게 있음을 알고 지구촌을 교회로 여기며 거리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하나라도 주워 쓰레기통에 넣는 실천이 필요할 때다.
    사회과학| 2006.10.09| 1페이지| 1,000원| 조회(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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