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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교육사상이 가지는 제약성
    8장 삶의 역사화와 미래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의 가능성◎ 서론한국 기독교 교육이 갖는 문제점들은 교회의 무관심, 프로그램의 빈약성, 인적 자원의 결핍, 국가 정책, 사회 풍조, 한국교회의 신학 부재 등이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 삶의 구조속에 서야 할 땅을 잃고 있다.지금까지 우리가 학습한 많은 기독교 교육 사상들이 갖는 문제점을 알아보고 평가 해 봄으로서 그 문제점에 대한 보완과 대책, 즉 우리가 세속화 과정 속에서 서야 할 “장”을 인식하고 확립하여야 한다.◎ 본론Ⅱ. 기독교 교육 사상들이 가지는 제약성과 가능성1. 호레스 부쉬넬 -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① 장년 중심의 신학의 역점에서 어린이들도 인간 구원의 가능성과 약속을 소유한 인간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였다.② 구원을 부흥회와 회심이라는 직접적인 경험보다 양육이라는 신앙 성장의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 한순간의 경험보다 생활 전 과정에서 올바로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창조함.③ 기독교인 부모를 둔 가정 안에서 비로소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① 어린이의 신앙적 가능성을 주장하여 지나친 인간 성장을 강조한 듯한 느낌이 든다.② 성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성장의 근거를 낙관주의적으로 풀이하는데 그쳤다.③ 가정 이외에 다른 현장의 가능성들을 넓게 보지 못했다.2. 조지 코우, 해리슨 엘리옷 - “인간 성장의 사회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① 권위주의적 신앙 구조, 교육과정으로부터 인간과 어린이들을 자유롭게 하였다. 즉 내용 중심과 주입식 교육 형식으로부터 아동 중심의 교육 방법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② 소외되어 왔던 인간들에게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는 긍정을 주장하였다.③ 인간의 성장과 자기 실현은 상호 작용에서 이루어지며 이 과정을 “사회화”라고 불렀던 점이다.① 인간이 성장할 수 있다는 성서적 근거가 박약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② 하나님 형상대로 피조된 인간의 가능성이 인정되었지만 그 형상이 죄로 인해 깨어졌다는 역설을 외면하고 있다.=적 행위를 강조하기 위한 인간의 타락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관주의적 해석의 경향이 교육 과정을 부정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② 신앙중심의 교육으로서 끝나버리고 삶의 “장”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위험을 가졌다.=> 교육의 공헌과 뚜렷한 방향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생활, 교회와 역사 사이를 이어놓지 못하고 커다란 공백을 남겨놓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되어야 한다.4. “인간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①레티 러셀신의 선교라는 새로운 신학적 해석으로 교육의 장을 인간의 공동 운명과 전세계의 문제로 폭을 넓혔다.=>진보주의에 대해서 전세계가 하나님의 구원의 영역이라는 신주권성과 역사의 인간화를 내세움으로써 개인주의적 경향을 초극하려 하였다. 그와 동시에 교회를 선교공동체라고 정의함으로서 교회와 역사 사시의 공백을 초극하려 하였다.인간화 혹은 새 인간(new humanity)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교육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중요한 차원에서 아무런 구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러셀의 약점을 초극하고자 한 인물 : 파울로 프레어②파울로 프레어“세계”를 변화하고 창조(문화로서의 창조자로서)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의 인간화 작업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라고 보았다.=>세계속에서 인간은 주역이 되어 보다 나은 실재로 창조해 가는 역사 창조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인간화는 세계에 참여하여 변화하는 역사화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겼다.이것은 모든 공식교육, 사회교육, 교회교육, 가정교육의 전과정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공헌이다.인간의 주역화를 뒷받침하는 인간론 이해가 실존적인 타락의 가능성을 경시한 낙관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러셀과 파울로프레어는 한계점에 도달한 기독교의 교육론에 새로운 활력소와 방향을 제시해 준 선구자로서 인정되어야 한다.Ⅲ. 삶의 역사화와 미래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의 가능성)※기독교교육의 행위에 있어서 기본적 전제① 성서에서 증거되고 있는 하나님의 이해진보적 종교교육학 : 인간 경험속에 내재하는 하나님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로만 강조되는 동안, 공동의 역사라는 관계의 구조와 미래화는 외면되었고, 역사의 미래화라는 차원 또한 외면되었다. 인류의 공동 관계 구조 사이의 관계를 외면하기 때문에 결국 게토 문화)를 창조.※삶의 역사화와 미래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의 의미=> 가정화, 사회화, 기독화, 인간화를 “장”으로 하고 있는 모든 교육론의 장점을 소화하면서, 그들 모두가 외면한 삶의 “장”으로 교육의 초점을 옮기는 것.1. 삶과 역사는 신과 인간의 관계 구조이며 미래화의 장 - 신학구조)“삶”의 장 -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창조 본래의 의미=>“삶”은 주어진 것 - 주관성, 객관성과 초월성을 가지는 것※삶의 주체화의 요소들① 주관(실존의식) - 자기를 의식하는 주체성, 권리를 의미객관없이 주관만 강조 될 때 : 열광주의, 혁명주의, 자기 독선에 빠질 위험을 가짐.ex) 주관이 강조되어 취약점을 남긴 이들 : 오토 볼노브, 루이스 쉐릴, 루엘 하우- 실존만으로 삶을 이해하고 그 위에 교육론을 펼침.=> 교육은 지식 전달이나, 단순한 경험 개발이라는 값싼 이론을 초극하여 “삶”의 실존과 관계되는 것이어야 한다 - 만남, 응답, 관계, 인격적 생성은 교육에 있어 중요한 차원이다.② 객관(책임의 영역) - 삶의 주체들 앞에서 응답적, 책임적인 나의 위치를 의미사회성의 체제와 구조는 객관성에 의해 합리화 되어야 한다.주관없이 객관만 강조 될 때 : 가정의 횡포, 학교의 횡포, 사회와 국가의 횡포, 심지어는 교회의 횡포=> 주관과 객관이 만날 수 있을 때 제 삼의 차원이 창조된다. : “삶의 역사화와 미래화”※삶의 역사화 : 주관과 객관이 만나 새로운 사회를 형성해가는 과정 전체.-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역사화 속에 오시며, 그 속에서 경험되어지는 창조와 구원의 주체.※미래화에 대한 몰트만과 앨브스의 주장 삶과 역사는 ‘역사화’만으로 끝날 수 없고 ‘미래화’ 되어야 한다. 문제에 접근방법몰트만 : 역사화나 미래화는 미래에서 오는 초월적적인 만남이며, 대화의 과정이다.2. 응답하고 또한 창조하도록 피조된 인간 - 인간이해)※삶의 역사화와 미래화의 교육이 보는 인간이해 - 신학적 인간학에 속함(성서적, 신학적)“형상론” -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의 고백을 인간 이해의 근거로 삼는다.아날로기아) 관점에서 풀이하는 “형상”① 존재론적 아날로기아의 방법 - 주지주의), 로마 가톨릭 신학에 의해 주창되었다.인간이 타락 할 때, 이마고(지적기능))는 남아있고 시밀리튜드(도덕적 기능))는 상실된 것이라고 보았다.=>이 것은 구원 이해영역까지 영향을 주어 구원이란 잃어버린 초자연적 선물인 도덕적 기능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보게 만들었다. 즉 구원 이전에 타락된 상태에 있는 인간이라도 인간은 전적 타락 존재가 아니며, 이마고는 여전히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보적 종교교육 학파의 인간이해가 여기서 온 것이다.② 신앙 및 관계론적 아날로기아의 방법 -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이 해당.인간은 이마고와 시밀리튜드 모두 잃었다는 이른바 전적인 타락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구원은 자신의 능력에 있지 않고 신의 은총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으며 인간은 신앙으로 응답하는 책임뿐이었다.※삶의 역사화와 미래화의 교육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해석.- 인간은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응답할 수 있는 존재이며 동시에 삶과 역사를 창조해 갈 수 있는 책임적 존재이다.* 응답의 의미 : 신의 부르심과 말씀에 대한 인간의 결단- 역사와 역사의 사건 속으로 오시는 하나님께 그 역사의 “장” 속에서 결단하는 공동적 응답임을 뜻하며 공동의 응답은 곧 삶의 역사화를 뜻한다.* 응답과 창조 : 역사화와 미래화가 변증적 관계인 것과 같이 응답과 창조도 변증적 관계 속에 있다. 응답은 공동 운명이라는 삶의 장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기본적 존재의 표현이며 창조는 공동운명이라 하는 삶의 장 속에서 신과 만난 이에 응답한 인간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기본적 행동의 표현인 것이다.3. 새 하늘의 변증을 인간과 공동체가 형성되어 가는 모습으로 받아들인다.=>역사의 지평에서 삶의 투쟁과 승리의 엇갈림에서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가지고 역사화하며, 미래화하여 가는 역사적 존재들, 이 역사화하며 미래화하여 가는 인간 형성을 교육의 목적으로 둔다.※ 삶의 역사화와 미래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의 전체적 목적- 교육목적을 인간의 사회화에 두지만 그 이상의 근본적인 인간의 역사화와 미래화를 추구하며, 인간의 기독화에 초점을 두면서도 그 이상의 폭을 추구한다. 인간화를 교육의 목적으로 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삶의 역사화와 미래화를 촉구한다.=> “너”와 “나”의 공동의 운명을 장으로 하는 삶의 역사 참여와 삶의 미래로의 결단과 소망을 이루어가는 새 삶으로의 초대를 그 목적으로 한다.4. 삶의 역사화와 미래화가 경험되는 곳 - 교육현장)①삶의 현장 - 모든 인간들의 모든 관계의 얽힘이며, 모든 인간들이 함께 경험하는 절망과 소망의 구체적 경험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이이며, 너와 나의 분리이며 또한 만남과 화해의 경험을 말한다. 삶 그 모든 것의 문제와 희망, 그 모든 것의 정열과 창조를 향한 용기를 의미하기도 하며, 주고 받는 상호작용, 파멸, 성장하는 경험을 뜻한다.=> 삶은 지식, 문화, 경험도 포괄하지만, 그것은 그것들 이상의 생명과 공동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②교육 현장 : 가정, 사회공동체, 학교, 교회는 ‘삶의 장’인 동시에 ‘교육의 현장’이다. ‘교육의 장’으로서 목적을 가질 때의 의미는 ‘삶의 장’인 의미보다 넓은 폭으로 의미를 갖는다.ㄱ. 가정 공동체 : 부모와 자식이 이뤄가는 삶의 장* 교육의 장으로서의 의미 - 부시넬의 하나님의 은총의 방법으로서의 “가정”과 데이비드스튜어드의 “부모화”과정의 의미를 재확인하여 “가정”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인간과 인간이 진정 만날 수가 있는 가장 중요한 삶의 장이며, 기독교 교육이 일어나야 할 살아 있는 현장임을 깨달아야 한다. 가정 현장 속에서 하나님과 세계 공동체의 실현을 호흡하는 교차 행위가 일다.
    인문/어학| 2011.03.16| 8페이지| 1,500원| 조회(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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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적 해석과 의미
    4장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 Ⅱ.현대적 해석과 의미4장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Ⅱ. 현대적 해석과 의미◎ 서론· 교육이 일어나는 장들의 소개와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의 필요성장이라 하는 것은 “어떤일이 행하여 지는 곳” 이라 정의한다. 그래서 교육의 장이라 한정하려한다면 어떤 곳이든 장이 될 수 있다. 흔히 가정, 학교, 회사, 어떠한 단체 등이 대표적인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는데 이런 여러 교육의 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곳일까?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회구조가 변하게 되었고, 기술과 사회구조가 급변하면서 남녀의 역할의 경계가 허물어졌으며, 그로인해 가정도 변해왔고 변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정은 변하고 있으며 과거의 가정과 현재의 가정의 차이로 발생되는 결과는 사회에서 다양한 예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현재 사회의 많은 문제점의 근원을 최초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찾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가정의 교육과 부모역할의 중요성은 더욱더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4장을 통해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에 대해 공부한다. 과거에 이루어진 가정교육 그리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가정교육의 형태와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관련 학자들의 견해를 알아보며, 우리가 앞으로 이끌어 가야할 기독교적인 가정교육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본론· 호레스 부쉬넬은 누구이며,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기독교인의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난 호레스 부쉬넬은 예일대학을 졸업후, 법률을 공부하기위해 예일대학을 다시 찾지만 종교적 회의로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신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교육열은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시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부쉬넬이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의 중심에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중심의 사고’ 속에서 헤매던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교육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그 교육은 지극히 하나님 중심이었고 교육의리 현대사회에서 요구되어 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가 과거사회와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현대사회 속의 가정에서 나타나는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회의 변화를 야기 시키는 요소에는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기술의 발달과 전문인의 발달에 대하여 기술하며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을 알아본다.사회가 변하게 된 이유로 기술의 발달을 들 수 있다. 농업화 사회에서 공업화 사회로 흐름이 바뀌면서 엄청난 물량적 변화를 이끌었고 사람의 손으로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 속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 또한 도시로 옮겨지며 공업화와 도시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업에 뛰어들고 기술력 발달에 기여한 것이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를 만들어 냈고, 해롤드하스는 여기서 인간의 실리주의)로 표현되고 있다고 보았다. 공업화와 도시화는 고속 교통망과 매스컴의 발달을 이끌어 내게 되었고 이 네가지 요소는 과거와 다른 성격의 새로운 집단체제를 가진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사회적 문제속에서 가정의 교육이 중요시된 또 다른 결정적 이유는 ‘가정 기능 변화’이다. 자급자족하던 가정적 모습이 공업화로 인해 없어지고 도시화로 인해 전문인이 육성되기 시작하면서 분업화와 전문화가 사회대부분에 자리잡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가정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준 결정적 요소이며 실질적으로 가정의 기능을 바꿔놓게 된 역할을 하였다. 손직수 교수는 가정이 자급자족하면서 복합적인 기능(경제적, 생산적, 종교적, 보호적, 교육적, 오락적 기능)을 맡고 있다가 전문화와 분업화에 따라 이런 복합적인 기능들이 전문인들에게 각각 따로 맡겨짐으로 가정이 자급자족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로인해 복합적인 기능을 잃은 가정은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갖게 되었고 교육의 부재로 인한 문제점들을 낳게 되었다.· 가정의 부재가 가져오는 손실들① 장으로서 가정이 되어야 한다. 가정의 분위기는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장으로서 아동의 심리 및 인격 형성의 기본적인 장이 된다. 그러므로 부모에겐 안정의 장으로,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는 안정 그리고 사회화의 장으로서 가정이 되어야한다.하지만 기독교교육은 이러한 일반 교육적 주장에 동의를 하지만 이 이상의 의미를 내포해야 한다. 이유는 기독교에서 가정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신앙적 부모와 자녀 사이는 하나님이 약속한 언약 공동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을 준비하는 우리는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을 더욱 준비해야 하며 일반적인 교육보다 더 깊은 의미를 두어야 한다.· 기독교적인 마인드와 일반적 가정교육을 접목시킨 가정교육의 의미 (학자별 주장)기독교 가정 교육의 방법들 중 하나는 가정의 중요성을 나타낸 학자 중 랜돌프 밀러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가정이 인간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장임을 재차 강조하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인격적 형성 이상으로 기독교적 신앙의 힘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의 힘 안에서 자란 구성원들은 자기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과 신뢰적 관계 구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기독교적 사고 안에서 올바른 안내를 받아 자유로이 성장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하게 된다.’ 라고 쓴 그의 저서에서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 하며 결론적으로 신앙의 힘은 지금의 분열된 가족관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제임스 스마트는 ‘경험적 차원’을 강조하는 부쉬넬과 밀러와는 다르게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교육’을 강조한다. 그때 당시의 권위주의적 교육을 죄악이라고 규정하며 교리 암송식 교육등에 반대하던 그는 새로운 ‘권위’적 교육을 주장한다. 그 ‘권위’란 부모에 의해서 시행되는 가정교육이 일반적 권위가 아닌 성경말씀의 권위를 근거삼아 지혜와 사랑, 진리와 정의의 권위를 가지고 아동을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권위를 뜻한다.이처럼 기존에 이루어 졌던 교육의 개념에서 기독교적 사고방식을교육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해석 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자신에게로 예속해서는 안되며, 자녀들을 책임지고 있는 그리고 교육해야하는 인격적 상호 작용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스튜어드의 기독교 가정 교육에 있어서 ‘부모화’를 위한 교육론여기서 스튜어드가 말한 가정 교육은 단순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라나고 있는 인격들을 향한 책임 있는 삶의 행위와 형태를 말한 것이다. 이러한 책임과 전반적인 교육을 위해 거쳐야 하는 ‘부모화’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스튜어드가 말하는 부모화를 위한 교육론① 장 피아제)의 사상을 중심으로 풀이한 심리학적 접근 방법- 밖으로부터의 여러 가지 자극에 대해 자녀들이 어떻게 응답하는지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즉, 자녀의 능력을 그대로 이해하고 아는 것이다.②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게쉬탈트 이론) 적용- 자녀의 능력과 요구에 적합하도록 구체적 대상과 관계성을 제공함으로 자녀들이 인격적으로 성장을 할 수 있는 관계, 분위기를 구조화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능력 이해와 성장, 발달하도록 돕는 환경적 구조의 형성을 이루어야한다.·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을 공부하는 실질적 이유지금까지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기술발달로 인한 사회구조와 가정 역할의 변화 그리고 그로인한 사회문제의 근본을 알아보았다. 거기서 사회문제의 근본을 가정에서 찾았으며, 일반적인 가정교육의 의미와 우리가 속한 크리스찬의 세계관으로 본 가정교육의 의미, 그리고 변해가는 그 시대적 요소와 사회적 환경에 따른 대표적 학자들의 교육론을 짚어보았다.이제 우리 모두는 가정교육의 문제점과 필요성을 알게 되었지만 본인은 더욱 중요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는 ‘앞으로의 가정화를 장으로 하는 교육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앞에서 길게 이야기 했던 것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했던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과학기술 사회 속에서 이끌어야할 기독교적 가정교육의 방향첫째, 현 그녀의 저서)에서 이야기한다. 올바른 경청이 있는 곳에 진정한 응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둘째, 가정을 장으로 하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때에, 그 대화의 내용은 삶의 ‘물음’과 삶의 ‘목적’과 삶의 ‘참’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대화를 통하여 옳고 그름의 잣대가 형성이 되고, 자신에 대한 삶의 목표설정을 하는 과정은 가정에서의 대화가 큰 비중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공부 했던 것처럼 제임스 스마트의 ‘가정예배’, 밀러가 말하는 ‘분위기 창조’, 스튜어드가 말하는 ‘돌봄으로서의 부모화 과정’이 잘 적용 되어져야 한다.셋째,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 속에서 비판 정신과 창조 의식을 찾아 가는 이른바 역사 의식과의 호흡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기독교교육적으로 보면 역사와 세계는 우리 가정들의 넓고 본질적인 삶의 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임한 가정은 변화가 이루어지며, 그러한 가정들이 모일 때 사회에 변화가 올 것은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 생각 할 수 있다.)넷째, 하나님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야 한다. 한 논문)의 조사에 의하면 부모중심의 양육태도가 높을수록 유아의 자극추구성향과 위험 회피 성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유아의 기질은 부모의 양육태도에 관련이 있으며, 부모의 만족도는 유아중심의 양육태도를 맞췄을 때 높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마음이 평안하고 유아에게 양육태도를 맞추면 부모의 만족도는 높아지고 그로인한 유아의 성향이 자연스럽게 하나님,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할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 가정을 장으로 하는 교육에 대한 생각과 방향많은 서적이나 학자, 논문들에서의 가정교육에 관한 결론은 눈에 띄는 몇 안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이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결론의 내용은 우리가 본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이 달라
    인문/어학| 2011.03.16| 6페이지| 1,5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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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혁주의 신학]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과 방법론 평가B괜찮아요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과 방법론』의 저자 강인한 교수는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과 기독교윤리학을, 남아공대학교(UNISA)에서 기독교 윤리학을 전공했다. 학생신앙운동(SFC) 간사와 극동방송의 프로그램 진행자, 담임목사 등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현재는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의 교수 및 사회복지학부의 담임목사로 재직하면서 , , 등을 가르치고 있다.저서로는 『기독교윤리 다이제스트』(기독교연합출판사, 2002), 『하나님이 심으신 나무』(킹&킹덤, 2004)가 있고, 역서로는『기독교윤리학 입문』(윌리암틸만, 쿰란출판사, 2000)이 있다. 그리고 에밀 브루너(Emil Brunner)의 정의론 (『기독교윤리와 사회정의』신원하 편저, 한들출판사, 2000)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또 이 서평의 대상이된『개혁주의 신학의 특징과 방법론』(킹&킹덤, 2004)도 있다.『개혁주의 신학의 특징과 방법론』은 조직신학을 공부하며 연구한 저자가 연구한 내용들을 다시 다듬어 개혁주의 신학을 배우려는 신학도들을 위해 그들을 생각하며 책을 만들었다.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개혁주의 신학의 방법과 수단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었다. 개혁주의 신학이 뭔지도 몰라 둘러대야 했던 내게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 알게 했으며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을 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 그리고 더 깊게는 신학이 도대체 무엇이고 우리가 신학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또한 알수있게 되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의 방법과 수단을 읽으면서 모든 것에 동의를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신학의 방법과 다른 부분도 있었으며 밀라드 J. 에릭슨의 신학에 대한 평가 또한 나와 달랐다. 제 1 장과 제 3 장은 설명에 대한 것으로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 각각의 신학적 중심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본다.이 책의 구성을 보면 총 4장으로 나뉘며 제 1 장 캘빈과 투레틴과 어거스틴의 신학, 제 2 장 개혁주의 신학의 방법과 수단, 제 3 장 신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소고, 제 4 컸다. 그의 저서를 통하여 그와 영적으로 나눈 교감과 지식적 교류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캘빈이 루터의 영향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사상을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캘빈은 성찬관 때문에 루터와 손을 끊었다가 그 후 차이점이 계속 커지고 심해져서 성경의 정경성 문제, 예정, 교회, 그리스도, 성례관 등에서 현저한 불일치점도 나타났다. 그러나 루터가 캘빈에게 많은 영향을 준것만은 확실하다. 멜란히톤의 영향은 책으로 나타났는데 멜란히톤의 Loci Communes는 멜란히톤의 유명한 교의학서로, 여기서 그는 율법, 신앙, 소망, 사랑, 회개, 그리스도인의 자유 등을 다루고 있다. 이책에서 멜란히톤의 기독론과 캘빈의 기독론의 접촉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캘빈은 이것에 확실히 적극 찬성하였다. 그러나 자유의지와 예정교리에 있어서는 차이를 두고있었다. 쯔윙글리의 영향을 들여다보면 캘빈과 유사점이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쯔윙글리의 신론에는 좀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캘빈은 를 잘알고 있었고, 여러 가지 차용하였다.그외에 부처의 영향을 보면 루터와 달리 캘빈이 그의 초청으로 직접 스트라스부르크에 가서 목회 사역을 하면서 교류를 가졌기 때문에, 상당한 일치점을 보여주었는데, 캘빈에 대한 부처의 영향력은 두 가지 요소 즉 상호존중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속에서 살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과 관계가 있다고 할수 있다. 특히 캘빈이 부처에게 인상 깊게 받은 영향은 교회론적 측면이라 할 것이다.캘빈의 기독론을 속성교류이론을 중심으로 루터와 비교연구를 해보기전에 일단 속성교류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라는 두 속성의 상호교환이라는 교리이다. 캘빈은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위격을 말할 때마다 동시에 양성의 단일 위격과 양성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캘빈은 그리스도의 위격이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양성 중 각자는 모두 손상 없이 그의 고유성을 소유한다는 주장이다. 그에게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중간적 존재는 생각할 수도 할 수 있다. … 평신도는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이것도 될 수 있고 혹은 저것도 될 수 있다. 하지만, 평신도들은 반드시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건 이다.…1. 신학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다.… 신학자는 하나님에 관해 아는 사람이다. 평신도 신학자는 비기술적, 비학문적, 비전문적 용어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다. 사실 이러한 사람이 진정한 신학자이다. 따라서 왜 평신도가 신학자가 되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그 이유는 그가 평신도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 신학자가 하나님을 아는 자라면, 거꾸로 신학자가 아닌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평신도로서 그가 목수의 일이나 배관, 의학, 법률, 가르치는일, 주부의 일을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가장 부끄러운 일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하나님을 모르는 일은 크게 부끄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문제이기도 하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하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생을 보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그러나 당신을 모르는 것을 믿어 본 적이 있는가?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고 믿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러므로 비록 이 구절이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을 표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것에 관한 암시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갖지 않으면 수치를 당할 뿐만아니라, …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영생이 없고 영원한 죽음뿐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다. 이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참지식과 거짓 지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성경이 말하는 지식을 구원하는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인용하지 않은 다른 성경구절을 보면 지식에는 구원하는 지식과기 때문이다. 이말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을 표한다. 왜냐하면 대상이라는 의미 자체가 우주내에 있는 어떠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같은 연약한 존재가 크나크신 무한적인 하나님을 알려고 대상으로 삼을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분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실재로 그들의 개인적인 주관성밖에 계신다.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객관적이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가지신 조건을 따라서만 그에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알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직 그가 만일 우리와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려졌을 때, 오직 그 사람이 가진 조건하에서만 알 수 있게 되는 것과 어느 정도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젠 그 학문이 그 대상에 적절한 연구 수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인격자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그를 알고자 추구해야 한다.(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이런의미로 해석이 될 수도 있는것일까 생각해본다) 사물의 연구를 위해 관찰하고, 측정하고, 계산하는 활동들이 있을 수 있다. 인격은 오직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에 알 수 있다. 첫째는, 인격은 일반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 의사소통 할 수 있다. 둘째는, 의사소통을 나누는 사람은 충분한 신뢰로 응답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비록 우리대용품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신뢰는 인격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적절한 수단이다. 신뢰 없이는 어떤 친밀한 방법으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알 수 없다. 신학적으로 그와 동등한 의미로 우리는 보통 신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신앙 없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내 생각을 보태자면 하나님은 앞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을 알고싶어 하는 사람에게만 일부를 보여주신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을 대상삼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신한다.2) 성경계시 중심의 생활을 한다.성경외의 전통, 꿈, 영음 등 일체를 배격한다. 오직 성경 중심의 사상이다.3) 성령을 받아야 한다.칼빈은 말씀과 성령을 중시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마쳐야한다. 신본주의로 시작하다가 인본주의로 마칠 수는 없다.4) 성경과 말씀과의 관계도 오해해서는 안된다.좌우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은 데 성경과 더불어 역사 한다.5) 개혁주의자는 너그럽다.칼로 베는 것 같으나 실상은 관대하다. 또 오래 참는다.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개혁주의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참고문헌:『개혁주의 신학』저자: 이 원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것이다"라고 답하기 때문이다.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고, 하나님은 전부의 전부가 되심을 개혁주의자는 믿는다.제 3 장 신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소고 에서는 에밀 브루너의 인격주의 신학을 다루는데 현대신학에 대한 브루너의 기여는 그 나름대로의 긍정적이며 독창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계시를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나-너의 만남 과 동일시했던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브루너의 인격주의적 계시 이해를 보면 계시의 진리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를 전개할 때, 브루너는 페르디난드 에브너와 마틴 부버와 같은 20세기의 실존주의 사상가들의 사상을 많이 차용했다. 1931년에 죽은 에브너에 대하여 브루너는 괴벽스러운천재 라고 일컫는 한편, 20세기의 획시적으로 중요한 인물인 만큼 그에게 사상적인 빚을 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으로서의 진리라는 성경적 개념을 발견하는데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유태인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마틴부버였다.브루너는 부버의 사상을 따라, 신적 계시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진리와 지식의 두 가지 종류, 즉 그것의 진라 와 너의 진리 사이의 차이를 먼저 식
    인문/어학| 2005.05.16| 22페이지| 1,000원| 조회(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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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일반 총론 (김철)
    성경 일반 총론 (N. 가이슬러 & 닉스)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접하고 공부하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과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어떻게 전해지게 되었는지 성경이 어떠한 방법으로 기록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이다 라는 것을 믿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경을 완성하셨지? 라는 생각을 늘 하고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생각 의문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획하시고 완성하시니까 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곤 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계획, 완성 하시는건 당연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번 레포트를 쓰는 과정에서 더욱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고 알수있게 되었다. 성경일반총론은 성경의 영감, 정경화 그리고 전승의 주로 세 가지 분야를 주제로 연구한다. 낱권의 저자, 시기, 주제는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로의 성경의 전달 과정, 하나님이 성경에 영감을 주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록하고 후대로 전해지는 것을 다룬다. 내가 여기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영감과 전승이며 정경성, 정경화라는 말은 말뜻조차 몰랐다. (정경성이란 어떤 글이 믿을 만한 올바른 근거를 가진다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 성경을 사람에게 주셨다는 의미이다). 이책을 쓴 가이슬러와 닉스는 이책을 통해서 고대에서부터 현재에까지 성경의 전승에 대한 것들을 말하며 오늘날 사용되고있는 성경이 처음 저자들의 원문을 전수해 주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성경의 영감, 성경의 정경화, 성경의 전승 이라는 제목으로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본론에서 차례대로 요점을 다루려고 한다.제1부는 성경의 영감이라는 주제로 성경의 구성과 분류, 영감의 정의, 영감과 계시에 관한 몇가지 이론들, 영감에 관한 성경의 일반론, 개별적인 주장 등등 세부적인 소주제들이 있다.성경의 구성과 분류에서는 성경과 신구약의 정의, 성경 5가지로 첫번째로 성경의 영감은 축자적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증거로는 다음 몇 가지 구절로 간단히 설명할수있다.a. 디모데후서 3:16은 영감의 주장에 관한 고전적 본문이다.b. 바울은 "성령의~가르친 말로"(고전2:13) 복음을 증거하였다고 강조한다.c. "기록된 바"라는 공식적 문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증거이다.d.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전체에 기록된 것은 모두 예수자신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e. 신약성경은 항상 구약성경의 기록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 한다.f. 예수는 히브리단어나 문자의 가장 미세한 부분도 침해 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셨다.g. 신약성경은 글로 씌어진 기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급하고 있다.h. 때때로 성경기자들은 " 한 말씀도 감하지 말라" 명령을 듣기도 했으며 요한사도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더하거나 제하는 자들에게 내려질 재앙까지 선포하고 있다.i.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발언하였던 그 말씀들은 신약성경의 기자들에 의해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었다.두번째 영감에 관한 고유한 특징은 성경의 영감은 폐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셋째로는 영감된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경에서는"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형제들아 성령이 미리 말씀하셨던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라고 하고있다.네번째로 영감된 성경은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데 예수께서는 시험하는 자를 물리치실때 결정적으로 구약성경을 인용하셨다. 그는 또 부활의 문제에 관하여 바리새인 들에게 단호하게 답하실 때와, 성전을 깨끗케 하실 권세를 옹호하면서 구약성경을 인용하셨다.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축자적 무오류성에 기 그사람들이다. 종교개혁기에는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는 교부들과 그 당시까지의 교회박사들의 전통을 따라 성경의 영감을 확증하였다. 실제로 종교개혁의 시기는 루터이전에 이미 시작되엇는데, 이는 위클리프를 "종교개혁의 여명"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잇다. 종교개혁기에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발다사 후프마이어, 마르틴 루터, 올드리히 쯔빙글리, 마르틴 부처, 윌리암 틴데일, 요한 칼빈, 요한 낙스등이며 신, 구교의 입장을 살펴보기위한 중요사건은 트렌트 종교회의, 도르트의 종교회의 등이잇다. 근대교회에서 이시기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영감에 관한 정통적 교리로부터의 일탈의 주요한 조짐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경건주의, 이신론이 나타났으며 프랑스의 회의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있고 독일의 합리주의 또한 지금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있다. 여기서 회의론에 답하고 반박하려는 목적으로 성경에 접근한 몇몇 탁월한 인물들이 있는데 요한 제믈러, 요한 아이크혼, 하인리히 파울루스, 빌헬름 드 베테, 데이빗 쉬트라우스, 칼 그라프, 율리어스 벨하우젠이 그사람들이다.요약하고 결론을 맺자면 구약성경의 영감에 관한 주장을 신약성경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의 영감에 관한 주장은 교부들의 저술속에서 뒷받침되고 잇다. 교회 초기에 신약성경의 영감이 일찍, 널려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교회의 확립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중세기와 종교개혁기에 걸쳐서 로마의 캐톨릭과 프로테스탄트들은 모두 영감에 관한 전통적인 교리를 그대로 따랐다. 경건주의가 등장하면서 성경의 비중은 내부적으로 약화되엇고, 동시에 외부의 공박에 직면하게 됐다. 경건주의와 동시대에 나타난 것이 영국의 어신론으로서 그 대표자인 볼테르는 프랑스로 귀국하여 공개적으로 기독교를 반박했다 한편 프랑스의 회의론은 독일의 합리주의로 이어졌고, 역설적이게도 합리주의는 성경을 옹호하려 하엿던 고등비평학의 발단이 되었다. 벨하우젠의 진화론적 성경관은 그 후의 학문에 영향을 미쳤으나, 그 이전의 사조와 마찬가지로, 사실상은 장애물이 되엇다.일의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정경은 신약의 마지막 책이 기록되었을 때 사실상 완성된 것임을 기억해야한다 이런 정경 승인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사도적 교부들이 기록된지 1세기가 지나지 않은 신약의 모든 책들을 인용했다는 것을 들수 있다. 개인들, 번역본들, 정경들은 극소수의 책들을 제외한 모든 책들이 2세기가 마감되기 전에 정경으로 보편적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다음 두 세기동안에, 이 안티레고메나 책들에 대한 논쟁은 점차 모든 의심들을 제거했으며 범 교회에 의해 27권의 책 모두 최종적이고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신약의 외경과 위경에서 신약 정경성에 관련된 책들은 네 계급으로 구분될 수있다. 호모로구메나 그리고 안티레고 그리고 위경과 외경이다. 차례되로 모든사람들에게 승인된 책, 논박된책, 가짜책, 터무니없고 불경한 이단 책으로 분류되었는데 처음부터 하나하나 짚어 내려간다.호모로구메나의 성경 호모로구메나는 처음부터 보편적으로 정경으로서 기꺼이 인정받은 책들이다. 사실상 모든 고대본과 정통 정경 목록에 나타났으며 성경으로 널리 인용되었다. 이 책들 중 정통 집단 내에 유포되었던 정경에서 고의적으로 삭제되었거나 어느 저명한 교부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은 전혀없다. 호모로구메나의 수를 보면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신약 27권중 20권은 이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마태복음부터 빌레몬서까지 모든 책들과 베드로전서, 요한 1서가 포함된다. 일부 사람들이 후자 3권 까지도 논박되었던 책들 속에 포함 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들은 논박된 책들로 말해지기보다는 누락된 책들로 언급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논박된 책들이 7개에서 10개로 확장된다면, 재미있게도 그들은 여전히 신약 순서의 마지막 책들 가운데 있게된다.안티레고메나의 성경은 어떤 책들이 안티레고메나로 분류된 이유가 이 책들이 초대교회에서 한결같이 인정 받지도 못하고 보편적으로 인정 받지도 못한 사실에 있다는 것은 이미 암시되었다. 그것들은 정경 논쟁의 주제가 되었으며 있는가? 명백히 성경의 천저성과 권위는, 만약에 현재의 복사본들이 완전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정 되지 않는다면, 구축될 수가 없는 것 이다. 본문의 신실성을 옹호하여, 압도적인 고대 서들이 제시될 수도 있다.2세기의 고대 역본들과 사본 단편들로 시작하여, 교부들의 풍부한 인용으로 계속되고, 그때부터 현대의 성경 역본들 까지의 수펀의 사본 복사본들의 신역 성경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끊어지지 않은 증거가 있다. 더 나아가, 성경의 완전성을 지원하는 무수한 사본들이 있을뿐만 아니라.(사해사본 발견이후에 구약성경을 포함하여,) 성경사보노 복사본들의 준비 절차와 보존의 연구는 전승 과정 그 자체의 신뢰성을 보여준다.사실, 고대로부터의 어떠한 주요한 문서도 성경이 가지고 있는 것만큼의 완전성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결론적으로 할수 있는 말이다.신약성경 사본들에서 예비적인 고찰을 해볼 때 신약 성경 본문의 신빙성은 현존하는 사본들의 다양성에 있다. 구약성경이 고대 랍비의 본문 작업의 결과로써 양질의 좋은 소수의 완전한 사본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하여, 신약성경은 비록 질은 낮지만 많은 복사본들을 가지고 있어서 본문 비평가에게 진정한 사본을 확립할 수 있게 한다. 필사본의 정의를 짚어보자면 팔사본이란 인쇄된 복사본과는 대조적으로 손으로 작성한 문학 저작을 뜻한다. 2-3세기에는 파피루스에 필사본들을 기록하였으며 4-9세기는 고급피지와 양피지에 대문자사본들을 기록하였다. 4-9세기에 쓰여진 사본은 바티칸 사본, 시내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 에브라임 사본, 베자사본, 클라로몬타누스 사본, 바실리엔시스 사본, 라우디아누스 사본, 산저마넨시스 사본, 보리니아누스 사본, 아우기엔시스 사본, 울피사본, 보에르네리아누스 사본, 무티넨시스사본, 코이스리니아누스 사본, 와싱톤 사본, 키푸리우스 사본, 모스쿠엔시스 사본, 레기우스 사본, 앙겔리쿠스사본, 팜피아누스 사본, 퓨퓨레우스 사본, 시노펜시스 사본, 포피리아누스 사본, 니트리엔시스 사본, 바티칸 354
    인문/어학| 2005.05.16| 30페이지| 2,000원| 조회(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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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쇼몽 독후감
    라쇼몽(영화감상문)영화속의 철학 시간의 두 번째 리포트 이다. 이번 리포트의 주제는 라쇼몽의 영화 줄거리와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네가지 측면의 입장 중 어느 입장이 진실에 가까운가?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 인가(상대주의로 바라보지 않는 것), 아니면 질문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인가(상대주의로 바라볼 때)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기술하는 것이다. 먼저 다른것에 앞서 줄거리를 기재한다.어떤 산적이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를 상대로 저지른 강간과 도둑질 살인이라는 사건들을 추리극의 형식으로 50년대 일본 지도층의 가치 판단의 불확실성을 윤리적 측면에서 그리고 있다. 이 사건들은 라쇼몽이라고 적혀있는 문 앞에서 폭우를 피하던 나무꾼과 승려가 우연히 만나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영화의 배경은 8세기 무렵으로 도적들이 들끓던 난세이다. 겁탈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숲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증언으로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된다. 결국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모르는 속에서 신고자인 나무꾼이 여인의 아기를 안고 멀리 라쇼몽의 현판을 뒤로한 채 사라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줄거리나 스토리에 있어서의 가치보다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본 지도층의 가치 판단의 불확실성을 윤리적 측면에서 그린점과 영화가 끝난 뒤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철학적 사고에 가치를 두고싶다. 그 사건에 관여했던 각 인물들의 다양한 시각들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1) 산적의 시각이 진술은 관가에 끌려 간 산적이 바로 관객을 향하여, 즉 관료의 입장에서 관객은 그 진술을 듣게 한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아내의 진술이나, 무당을 통해서 말하는 무사나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산적은 그 무사를 죽인 이유는 아내를 범한 후 정당한 대결을 통해서 라고 한다. 자신이 무사의 아내를 범하려고 했을 때, 거세게 반항하던 그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고, 따라갈 터이니 그 대신 남편인 무사를 죽여 달라고 부탁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산적은 묶었던 무사를 풀어주었고 정당한 결투로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 아내는 도망가 버렸다고 주장한다.(2) 아내의 시각그녀는 산적이 자신을 범한 후 같이 살자고 애원하는 것을 뿌리치고 남편을 단도로 풀어 주었더니, 그 대응은 바로 자신에 대한 차가운 증오였고, 결국 자신을 버린 무사와 산적은 자존심의 문제로 보기 민망한 결투를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참혹한 모습에 그 자리를 정신없이 벗어나 버렸다고 한다. 결국 자신을 불쌍하고 나약한 여인으로 묘사하는 모습을 보인다.(3) 무당을 통한 무사의 시각죽은 무사는 무당이 혼령을 불러들여 진술을 한다. 무사는 산적에게 당한 아내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죄책감과 아내의 간사함에 스스로 자결했고 무사도 정신이 투철한 사무라이 임을 강조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그 추행장면을 보고 분노와 수치감으로, 아내가 풀어준 단도를 가지고 바로 자결을 하였다는 것이다.(4) 나뭇꾼의 시각위 진술들을 모두 무시하며 세 사람은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진술한다. 그러나 나무꾼은 단검을 훔친 용의자로써 그의 진술의 신빙성은 희박하다.이로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끝이 났다.다음으로는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네가지 측면의 입장 중 어느 입장이 진실에 가까운가? 라는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어려운 질문이라 한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짓기 위해 생각을 하고있는 시간이 상당히 길었음을 뜻하고 아직도 진실에 가까운 정도는 알지 못했다. 먼저 말해둘 것은 난 상대주의의 관점으로 영화를 보았고 그렇기 때문이 처음부터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네 가지 측면의 입장 중 어느 입장이 진실에 가까운가? 라는 질문은 나에게는 정당하지 못하고 성립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이유는 나중에 밝히도록 한다)그래도 네 가지 측면의 입장 중 어느 입장이 진실인가를 따져 보았을 때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의 의도 중 하나에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 할 때면 언제나 윤색하다. 라는 것을 넣었기 때문이다.(감독의 의도는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이렇게 느꼈다.) 이 영화는 인간,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그럼 이쯤해서 왜 내가 이것에 대한 질문의 답이 나올 수 없는지, 이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 했는 지의 이유를 기재하겠다.
    독후감/창작| 2005.05.16| 3페이지| 1,000원| 조회(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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