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찰나의 예술Prologue‘카메라폰’ ‘소형 디카’ 등의 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들이 카메라를 휴대하거나 접하는데 더 유리해졌다. 요즘 우리는 지하철, 버스, 심지어는 걸어가면서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이런 매체의 공헌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이렇게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일까.’ ‘그들에게 있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특성에 기인한 것이다.)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어떠한 발자취, 즉 역사를 남기기를 갈망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옛날과 같이 매체가 발달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이미지보다는 글을 더 많이 사용했던 시절에는 이런 형태로써 일기가 주로 이용되었다. 그 시절에 사람들은 하루하루 자기들의 역사를 일기로 기록하였고, 그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간직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매체들이 발달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성향도 글보다는 이미지쪽으로 많이 기울면서 이렇게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곤한다.그러나 이렇게 각종 이미지와 사진들이 넘쳐 나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찍은 사진인지, 그 사진에 어떤 모습을 담고 싶었는지 알 수 없는 그러한 사진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이런 사진들이 넘쳐나면서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사진들에 익숙해 지면서 어떤 것들이 예술 사진인지 그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해졌다. 어느 사람들은 단지 사진 찍는 기술만을 보고 예술 작품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사진 속에 작가의 의도가 담긴 작품이 진짜 예술 작품이라 하기도 하는 등 사진에 있어서 그러한 기준이 모호해 지게 된 것이다.지금의 이런 상황에서 사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예술 작품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과 각종 사진들을 평가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유명한 사진작가들의 사진 작품을 던지게 되었다.) 화려한 기법을 사용하였다고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찍는 기술이 좋다고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일까. 나는 이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의도하였던 분위기, 모습들 그리고 작가의 내면세계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작가 내적인 요소와 외부의 외적인 요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을때, 그것들이 서로 공명하여 어떠한 느낌을 연출할 때, 그 사진이 주는 느낌들은 색다를 것이다. 나는 이런것들이 바로 예술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진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그가 사진을 찍었는지 그 사진의 분위기 모습들을 통해서 보여주며, 그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동들을 전해주고, 사진 찍던 모습들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옆의 사진은 바닷가에서 물결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남은 흔적을 포착하여 찍은 사진다. 이 사진에서는파도가 지나가고 바닷가에 남긴 흔적이 반복적으로나타나고 있으며 그러한 반복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그리고 이러한 반복적이고 끝없이 펼쳐진 흔적의 모습은 사진을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에게 이런 큰흔적을 남긴 대상에 대한 계속적이고 끝없는 기다림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느낌은 아무것도 없이 흔적만 남은 모습과 연관되어 대상에 대한 어떠한 상실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옆의 사진은 고요한바닷가의 흔적들을 통하여 이러한 느낌을 전달하고있다. 사진에 대한 해석은 보는 사람들 마다 약간씩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이 사진에서 받은 느낌은 위와 같았다. 이렇게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사진이야 말로 진정한 예[사진1]흔적 : 출처 싸이월드 사진동호회 술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에서는 유명 작가의 사포토구라퍼 Specialist 사진들 중에서 의미에 대해 알아 보겠다.2. 앙리 까르띠에-브레송 (찰나의 거장)자연스러움의 미학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은 영상의 사유화와 개인적, 주관적 시각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자기 세계의 사진을 추구하였다. 그는 완성한 포즈를 취하지 않는 비연대한 인식을 다루며 사진에 있어서 구성은 눈에 띈 요소들의 동시적 결합과 유기적인 결합의 결과이다.” “사진에는 촬영 대상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적인 윤곽의 생성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조화속에서 작업을 하지만, 하나의 움직임 속에는 동작의 과정에서 각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한 순간이 있는데, 사진이란 바로 이 순간을 포착하여 고정시키는 것이다.”)위의 내용에서는 사진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사진을 보면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다. 건물이나 길거리 나무나 바위 등 포착되는 대상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사람과 같이 움직이는 동적인 것들도 포함된다. 사진이란 이러한 요소들의 결합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움직이는 대상들은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바꾸거나, 변화 시킬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많은 변화들 속에서 그것들이 주변의 정적인 것들과 그리고 움직이는 대상들끼리 조화를 이루게 되는 한 순간이 반드시 생기게 되는데, 그는 이런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바로 사진이라고 말한다. 그는 바로 여기서 순간의 미학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것이다.내면적 공감그는 “나에게 있어 사진이란 어떤 사건에 적절한 표현을 부여하는 형태와 구성에 대한 순간적인 인식인 동시에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한 순간적인 인식이다. 나는 삶의 행위를 통하여, 자아의 발견은 우리를 정형화하고, 또 우리에 의해 영향을 받는 주변 세계의 발견과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하나는 우리의 내면세계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들 밖에 있는 외부세계라는 두 세계 사이에는 어떤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끊임없는 상호과정의 결과로서 이들 두 세계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소통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세계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진의 내용만을 소중히 한다. 나에게 있어서 사진의 내용은 형식과 분리될 수가 없다. 형태에 의해서 표면, 선 , 명암의 상호작용의 엄격한 구성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개념과 정서가 굳어지고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사람과 그 밑에 물에 비쳐 나타나그 사람의 모습이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 사람의 모습을 뒤에 붙어 있는 포스터의모습과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그는 움직이는 물체를 통하여 그것들이 어떠한 조화를이루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이러한 기하학적인 조화를 통하여 그는 그것들이 이루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하고자 했던것 같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순간의 모습에서나오는 미학인 것이다.앙리 까르띠에-브레송 작 : 프랑스 파리. 생-라자르 역 후문옆의 그림에서는 뛰어가는 사람의 역동적인 모습과 그 주변의 조형물 사이의 관계 즉 조화속에서 어떠한 미학을보여준다. 그는 주로 이런 주변의 일상적인 모습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는데 이것도 그런 연장선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림에서 보면 역동적인 모습의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그가 가려는길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그러나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은 보이지 않는[앙리 까르띠에-브레송 : 그리스 시프노스, 전형적인 전통가옥 지역부분까지도 주변의 조형물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바로 사람 바로 위에 보이는 계단 모양의 조형물이 그것이다. 이 조형물은 뛰어가는 역동적인 사람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 모습에서 어떠한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렇듯 모든 순간순간에는 어떠한 흐름들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한 흐름들은 서로 뒤엉켜서 어떤때는 조화를 이루다가도 그 순간이 지난후에는 부조화를 이루는 등 계속적으로 변화 한다.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은 이런수많은 움직임들 중에서 움직임과 움직임, 그리고 움직임과 어떤 고정된 조형물들의 모습에서 조화를 찾았으며 그 조화가 이루어지는 찰나를 찍음으로써 균형과 조화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던 것이다.옆의 그림은 사람의 모습과 테이블의 모습의 조화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을 수가 있다. 즐기하게 늘어선 테이블, 테이블의 다리 모습은 사뭇 사람들의 다리 모습을 연상 시킨다. 모든 테이블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모습과 같고, 여러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재하며 그는 어둠으로부터 벗어난 존재 그리고 그 존재의 움직임은 어떤생명의 존재를 더욱 부각 시키는 듯 하다. 이렇듯 한순간에 생겨나는 빛, 그리고 그 빛은 어둠 사이에서더욱 부각 되고 있으며, 그 빛 안의 역동적인 모습을통하여 그는 조화를 찾았다고 보인다.그는 이런 모든 시간과 공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찰나를 포착하였던 것이다.앙리 까르띠에-브레송 : 이탈리아 로마.작품을 통하여 본 내면적 공감그는 사진에 나타나는 기하학적 모습 등 형태로써 그의 내면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을그는 직관에 의하여 알 수 있으며 직관에 의한 이러한 모습들이야 말로 자신의 내면을 투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옆의사진도 아마 작가 자신의 내면의 투영이라고 보인다. 곧은 하나의 길, 그리고 그 길 옆으로는가로수들이 즐비하게 끊없이 길을 따라 놓여져 있다. 이것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가. 하나의 길을 따라서 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 듯 하다. 하나의 길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자아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 인 듯 싶다. 그리고 곧게 자란 나무들의 모습들 그 모습들이 기게 줄지어 있는 모습은 그 길이 아마도 길고 고단한 길일 것임을 보여 주는 듯 싶다. 이러한 길, 나무,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고 있는 어떠한 기학적인 형상들 그것을통하여 그는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여 비친 듯 싶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모습들과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 일치되는 그 순간을 직관으로 판단하여 멋지게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사진은 여러 가지 모습을 띈다 그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변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내면이 강하게 투여된 사진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비슷하게 해석될 것이다. 이렇듯 사진은 자신의 자아를 발견해 주게 하고 내면의 세계를 외부의 세계와 서로 연결 시켜주는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위의 사진에서 정말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이 정확히 무엇을 느꼈고 그것을 찍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