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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사회과 교사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에 관하여국가의 중요 정책적 현안이나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같이,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늘 논쟁문제에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지속적으로 다원화되어가는 추세로 인해, 기존의 당연시했던 문제들도 점차 논쟁의 장으로 끌어오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정한 민주시민이라면 이러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 깊이 있게 인식하고 토론하며 그에 대한 입장을 논리적 근거와 함께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러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사회과에서의 교사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제고할 필요가 있다.사회과 교사는 수업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토론할 기회를 부여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데 있어서 교사 자신에게 부담이 가해짐과 동시에 신중함을 기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수업 현장에서 학생들은 주로 교사에 의해 지식을 전달받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교사의 정치적 견해로 인한 영향이 학습자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는데 방해를 받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우선 법률적으로 봤을 때, 교육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하여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원의 정치활동에 대한 제한이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원의 편향적인 정치 영향력으로부터 미성숙자인 학생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위한 제한이어야 하고, 그 범위의 이탈이라는 것 역시 구체적 상황에 의거하여 판단될 필요성이 있다. 교원을 정치로부터 완전 격리시킬 정도의 기본권 제한은 오히려 역으로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정치에 피동적으로 종속된 교원을 만들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편향성으로부터 학습자에 대한 보호가 아닌, 진리 에 대한 학습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결국 교원의 정치활동에 대한 보장은 교원 스스로 건전한 정치소양을 갖추도록 하며, 이로 인하여 건전한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교육입법 및 교육행정 영역에 있어서 교육정책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정책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여줄 수 있다. 이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기본적인 사항을 보장하는 조건들이 될 것이다.교원의 정치활동의 자유의 보장은 교원 및 교원단체간의 정치적 입장 차이에 따라서 학생에게 정치적 편향성을 심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교원의 정치활동으로부터 교육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원에게 건전한 정치소양을 확보하게 하는 예방적인 조치와 함께, 구체적인 정치적 편향교육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결과적으로 법적 규제 외에도 교원의 윤리적 의식의 확립이 요청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11.08.10| 1페이지| 1,000원| 조회(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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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형제에 대한 단상
    무엇을 위한 사형인가?영화 ‘그린마일’이라는 작품이 있다. 보통은 ‘그린마일’이라 하면 밝고 화사하며 푸른 잔디밭을 떠올리거나 그와 같은 밝은 느낌의 청춘영화가 아닐까 예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형수가 사형집행장으로 가면서 걷게 되는 녹색의 복도 바닥을 의미한다. 스토리 또한 청춘영화도 아닌, 작은 생명도 소중히 할 줄 아는 착한 심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로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존 커피라는 한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이다.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러한 인간에 의해 내려지는 사법적 판단 또한 오류와 착오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형제도는 커다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영화를 통해 사형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사형제도가 갖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사형수에 대한 어떠한 교정 및 교화의 기회도 없이 ‘법’이라는 이름하에 사형이 집행되어 버린다면 이는 또 다른 이름의 ‘사법적 살인’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이러한 다소 ‘온정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사형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사형 대신 선고되는 징역형을 통해 소비되는 예산에 대한 문제와 사형제의 존재로 인한 범죄의 절감 효과를 들어 사형제를 옹호한다. 그러나 영상을 통해 보았듯이, 사형수들에게는 일반적인 죄수와는 달리 노동형이 부과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반적인 징역형을 받은 죄수처럼 노동을 통해 자신에게 사용되는 세금만큼 생산적인 활동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즉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인 것이지, 반드시 사형제의 필요성으로 귀결시킬 수만은 없는 부분인 것이다.또한 사형제도의 존재로 인해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범죄들까지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조사결과에서도 사형제 존재 유무와 실제 범죄발생의 빈도를 비교했을 때, 그 실효성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차이를 보일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강력 범죄들은 이른바 ‘사이코패스’로서 이성적인 판단력이 존재하지 않는 자들에 의해 벌어지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자신이 법에 의해 처벌받게 될 것을 이성적으로 고려해보는 것이 아닌, 단지 충동과 희열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신창원, 강호순 그리고 김길태와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를 이들을 보면서 국민적 정서는 이들을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다는 생각 쪽으로 기울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에서 사형제를 찬성한다면 자신과 사회의 모두에게 무수한 마음의 독을 남길 뿐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당장의 감정적인 판단에 이끌려 사형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 2011.08.10| 1페이지| 1,000원| 조회(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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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 통합에 관한 고찰
    사회과 교육에서 ‘통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당초 2009개정 교육과정을 비롯한 기타 수정고시 및 수능개편안,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이 도입이 예고됐을 때 교과부가 제시한 국어·영어·수학의 ‘기초과목’을 제외한 다른 과목들의 경우 실질적인 입지에 어느 정도의 타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에 대해 예·체능 분야는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들의 몫을 방어하는 움직임을 취했고, 과학 분야 역시 새로운 통합의 패러다임을 수용하여 발 빠르게 이 상황에 대처해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타 분야들의 움직임과는 달리, 사회과는 여기저기서 볼멘소리만을 낼 뿐 실질적인 대처가 이뤄지지 못하고 기존의 ‘밥그릇 싸움’에서 전혀 진일보한 의견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실제로 작년 수능개편안과 일련의 수정고시들이 예고되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분과와 사회과 내 시수확보를 주장했던 측은 ‘지리교사모임’을 비롯한 지리교육학회였다. 역사의 경우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대항하여 ‘국사’를 비롯한 역사교육 강화’라는 중요시 되고 있었고, 일반사회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라도 대통령의 코드대로 ‘경제’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교육계의 입장표명과는 관계없이 이미 입지가 줄어들은 사회과 안에서의 영역싸움은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것이었고, 작년의 교원임용 TO 발표를 통해 사회과의 현 주소를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는데 있다. 우선적으로 각 학계 모 학문의 마인드를 무시할 수가 없는데, 부지불식간에 때로는 매우 선명하게 인간과 사회, 국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다. 각자의 학문에 대한 오랜 연구 활동을 경험하면서 그 교과 나름의 고유하고 독특한 인식론적 전제와 학문 탐구의 대상이 형성되어 왔으며, 이는 각자의 신념 체계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사회과 내의 불편한 동거는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모 학문을 통해서 형성된 신념체계가 상호작용 하면서 끊임없는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지리’의 경우 사회과 통합으로 인한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피해를 중심으로, 활발한 조직활동을 통해 이에 대한 해결방안과 대안을 모색해왔다. 지리과를 사회과로부터 독립시킬 것, 역사·지리·일반사회 세 영역을 균등하게 배분할 것, 지리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지리’ 명칭을 살려낼 것 등을 주장하였다. 더불어 지리·역사·일반사회의 통합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일 뿐이며, 통합 사회과의 실험은 이미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해왔다.‘역사학계’는 주로 사회과 통합의 논리의 모순을 밝혀내고 지리, 일반사회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등의 이론적인 논의를 전개해왔다. 현재와 같은 미국학계 영향의 사회과 통합체제는 우리의 현실과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며, 사회과학이 아닌 인문학 분야에 속하는 역사가 사회과에 통합되려면 타 교과와 그 목적과 방법이 공유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학문체계와 사고체계가 같다는 것을 전제할 때만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일반사회학계’에서는 사회과 통합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주로 제시하는 반면, 실제 현장교사들의 경우 부정적인 의견 또한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과의 목표인 문제해결능력과 통합적 시각을 통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육성’하기 위해서, 사회과학의 성과들을 유기적·통합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개별 교과안에서 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지리, 역사, 일반사회를 또 다른 하나의 교과로 묶는 형식의 통합은 반대하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사실 지난 30여 년간 사회과 통합교육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일반사회조차도 영역 내의 통합교육을 완벽하게 성취해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과 각 학문 분야는 ‘과학과’와 달리, 통합에 적합한 소수의 주제를 제외하면 여러 학문 영역의 내용을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내기가 쉽지 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기존의 학문적 지식 기반을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통합 사회과 교육내용을 구성할만한 틀과 재료 또한 현재로서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더불어 현장 교사들을 비롯한 교사양성기관에서 분과 중심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사회과학| 2011.08.10| 2페이지| 1,000원| 조회(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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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과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우리가 가르쳐야 할 진리란 무엇일까? 마이클 센델 교수는 옳고 그름, 찬성과 반대, 혹은 그보다 사소한 선택의 순간에서도, 각각의 선택들이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해볼 것을 권유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뒤흔들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자문해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다 더 의미가 확고해지고, 단순히 일관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로운 관점을 이끌어내는 이러한 사유의 자세는 마이클 센델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현대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잠시 영상 속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5명과 1명의 목숨을 비교하는 비슷한 상황의 질문들 사이에서 학생들은 일관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각각의 질문에 대한 선택의 과정을 분석해 들어가 보면, 결과론적 도덕추론과 정언적 도덕추론이라는 두 가지의 도덕적 원칙이 등장하게 된다. 개개의 학생들은 이러한 두 가지 원칙사이에서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철학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시 하던 선택의 기준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구분될 수 있으며, 또한 어떠한 과정을 통해 사유의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마이클 센델 교수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맞설 수밖에 없다는 개인적 위험성과, 사회적으로는 더 나쁜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위험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회의주의와 회피주의로 빠져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결국 이러한 사고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해결책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철학을 해야’하는 이유는,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기 위해서다. 실천적 지성으로 알려진 위르겐 하버마스는 무오류성을 추구하는 철학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모든 지식의 최종 근거가 되는 철학으로서의 권위를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철학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비트겐슈타인처럼 자신이 철학적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했다고 자부했던 철학자들이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하버마스는 자신이 항상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이 반박의 여지가 없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다면, 그렇게 많은 이들의 주장을 세심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통해서 그는 과거와 당대의 모든 철학자들과 보다 더 열린 생각으로 대화할 수 있었고, 그런 방식의 철학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관점에 다가설 수 있었다.우리가 현장에 나가서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학습의 상황은 학습자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거나, 혹은 새로운 생각의 기준점을 제시해주는 방향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특히 ‘일반사회’는 ‘비판적 교육’이라는 하나의 큰 철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는 교과로서 오늘날의 현대 철학이 고민하고 있는 이러한 주제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교과라고 할 수 있다. 교사로서 단순히 교과지식의 전달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개개인의 생활과 관련한 것부터 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그러나 이 사고의 틀을 만들어 준다는 것도, 철학의 이름으로 철학을 ‘주입’하는 방식이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교사 역시 교육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함께 학생들, 동료교사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열린 사고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무조건적인 상대론적 인식을 요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각에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또한 맹목적이고 소비적인 비난이 아닌 건설적인 대안으로써의 ‘비판’을 가르치는 과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중매체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은 건전하고 건설적인 사고를 통한 비판을 하기보다는, 인신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는 ‘댓글놀이’에 익숙해져 있다. 이들을 골치 아픈 철학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게 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그 방식은 철학이라는 권위적인 형태가 아닌 ‘일반사회’라는 교과의 특성을 살려 개인적·사회적 삶 속에서 비판적 사고가 활용되도록 하며, 사이버 상에 갇혀버린 대화의 공간을 인격적인 면대면의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11.08.10| 2페이지| 1,000원| 조회(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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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사에 대한 단상
    죽음을 선택할 권리차가움, 어둠, 죽음. 인간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단어들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모두 무언가의 부재(不在)의 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차가움’은 그 자체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단지 열이 없는 상태를 나타낼 뿐이다. ‘어둠’은 덜 어두움과 더 어두움이 아닌 빛이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 가에 따라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생명의 부재를 나타낼 뿐, 생명과 별개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죽음은 생명의 연장선의 끝자락이라는 측면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지,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죽음만을 따로 논할 수 없는 사안인 것이다.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봤을 때, ‘그렇다면 죽음은 과연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 어떠한 생명체도 자기 스스로 생명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와 반대로, 이유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례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여러 생명체들을 통해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인류사회에서는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늘어나는 인구만큼 급속하게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 이 행위는 이제 인류의 의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측면을 맞이하고 있다.고령 사회로 접어든 여러 국가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왔고, 실제 안락사가 허용되는 네덜란드나 스위스의 경우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국가들의 대부분은 노인이나 환자에 대한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러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경제적 문제와 별개로 자신의 행복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안락사를 선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올해 초, 작년 한해 우리 사회에 ‘존엄사’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오게 한 주인공이었던 김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지 200여일 만에 숨을 거뒀다. 대법원으로부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품격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인정받은 지 6개월여 만이었다. 놀랍게도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상태에서도 오랜 시간 생존하여 연명치료에 대한 또 다른 논쟁거리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사건의 핵심은 우리 사회에서도 ‘존엄사’에 관한 시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이번 사건으로 제기된 일련의 논쟁들은 97년 살인방조죄로 처벌 받았던 ‘보라매병원 사건’이 있은 후로 10여년 만에 우리 사회가 존엄사 논의의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허용되고 있는 적극적인 안락사는 우리의 정서상 맞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함으로써 더 이상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들어가게끔 도와주는 ‘존엄사’가 아닐까 생각한다.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전에는 고칠 수 없던 질병들이 치유되고, 인간의 평균 수명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의학기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로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모든 수단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고통 속에서 최소한의 생명유지장치를 통해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분명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한 후에도 생명의 시계가 멈추려 한다면, 조심스레 그 시계가 멎어가는 과정이 편안할 수 있도록 환자를 돌봐주는 방향이 진정한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분명한 것은 이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회과학| 2011.08.10| 2페이지| 1,000원| 조회(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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