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위해 대본처럼 나와 있는 극 소설을 읽는 것이 처음인 나로서는 오이디푸스왕을 읽는 내내 무언가 어색하고 생소했다. 혹자는 오이디푸스왕이나 오레스테스와 같은 비극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가한 여름날 오후에 수박을 잘라놓고 물에 발을 담근 채 한번에 쭉 읽어 내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 책은 시간 날 때 틈틈이 펼쳐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통의 책을 읽을 때는 이동중인 지하철 안에서나 공강 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데, 오이디푸스왕을 그런 식으로 읽다가는 흐름이 끊겨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복잡한 인물구조와 그들 사이의 관계가 엄청 헷갈릴 것이다. 극을 위한 글인 만큼 연극을 보듯이 한번에 쫙 읽어 내려가는 것이 이해와 흐름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그만큼이나 이 책은 복잡하면서 헷갈리는 인물들과 황당한 수많은 사건들로 나열되어 있다. 마치 판타지소설 같기도 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가득하다. 그에 앞서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가장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복잡한 인물구조이다. 가뜩이나 긴 이름들과 복잡하게 얽혀진 혈연관계를 비롯하여 픽션이라는 전제를 하더라도 황당한 여러 사건들. 그 모든 것들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상당히 헷갈렸고, 결국에는 인물 구조도(가계도)를 그리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 했다.오이디푸스왕은 평소 심리학 시간이나 여타 다른 때에도 많이 거론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데, 템포가 급격히 낮춰졌다가 또 급격히 올라가는 식으로 상당히 역동적인 흐름을 띠고 있다.그리스 테베왕국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만큼 흐름의 바탕은 철저히 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신탁을 중심으로 모든 중요한 단서들이 주어지고 그에 따라 인물들은 행동하고 저항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신탁의 위대함을 알리는 결론이 내려진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길거리에는 사주를 보는 점집과 사주 카페가 많이 널려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를 점쳐보고 싶어 하고 앞날의 흥망성쇠를 미리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미 태어나면서 운명을 정해서 태어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수 만년간 우리를 지배해 온 듯 하다.라이오스가 애초에 태어난 아이를 신전에 물어보게 하여 가져다 버린 것,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어부 내외에게서 거둬온 오이디푸스에게 국왕을 죽이고 모후를 아내로 삼아서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을 관상이라는 점쟁이의 얘기를 듣고 그를 떠나게 만든 것. 또한 그렇게 떠난 왕자가 공교롭게도 생모의 나라로 흘러가서 다른 것도 아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서 왕이 되고, 가뭄이 들자 예상대로 역시나 신전에 물어보는 부분.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고서 두 눈을 멀게 하는 것까지. 어느 사건하나 신과 연관되지 않은 부분은 없다. 그리고 항상 모든 사건의 핵심 키는 신탁에 의해 밝혀진다. 그것이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고 이미 정해진 운명은 벗어날 수 없으며 그것을 거스르는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작가는 우리 상식과는 동떨어진 사건과 플롯 속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 또한 인간과 운명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연극의 이론적 체계를 완성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시학’에서 완벽한 비극으로 극찬한 바가 있다고 하는 오이디푸스왕 3부작.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운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운명이라도 그 운명을 이겨내고 최선과 노력을 다해서 자신의 운명을 바꿔야 된다.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인 오이디푸스왕의 경우는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고 장님이 되는 방법이 최선의 선택 이였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운명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나로서는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의지에 대한 자신감과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동서양의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부분은 서양의 소설에서는 동성애와 근친상간 등의 비정상적인 사랑이 이성간의 사랑처럼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3부작에서도 젊은 시절 라이오스가 펠롭스가의 왕국에서 금기시되는 왕자와의 동성애를 나누게 되고, 오이디푸스는 근친상간을 하게 되고 그것은 전부 비극으로 끝나지만 흐름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근친상간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이는 그리스의 태생적 폐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절된 갇혀있는 대륙에서 근친상간은 어쩌면 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또한 잔인한 묘사가 생생하게 되어 있는 부분도 있다. 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의 황금브로치로 눈을 찔러 실명시키는 부분은 너무나도 생생한 연출로 마치 극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듯한 착각을 받을 정도로 끔찍했다.테베로 돌아와 왕이 된 라이오스는 태어난 아들을 신의 저주 때문에 양 발꿈치를 못으로 뚫어 철사로 묶어 도망하지 못하도록 한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 버릴 수 없어 양치기에게 키타이론산에 갖다 버리라고 명령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영아 살인이라 생각한다. 소포클레스는 이러한 부분에서 도덕적인 측면은 가볍게 생각한 듯 하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아들의 희생도 감수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물음이 없었던 것은 동서양의 차이가 아닐까.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 앞에서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일과, 찾고 있던 패륜아가 바로 자신임을 알고 출생의 비밀까지 전부 안 다음 절규하는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추리소설을 읽다가 반전이 나타나고 범임이 밝혀지는 순간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처음과 마지막 부분의 절묘하게 떨어지는 구조가 앞에서 말한 기승전결을 갖춘 고전작품 같다는 뜻이다. 또한 대화체로 전개되는 글의 특성상 “아아, 이를 어찌한단 말이오.”, “대체 무슨 일인가요. 어서 말해보아요.”,“나는 도저히 얘기를 할 수가 없소.”와 같은 대목처럼 대화로써 계속 뜸을 들이며 궁금증과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구조가 새로운 매력이다.책을 읽는 중간 중간 오이디푸스 가문의 가계도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반복되는 비슷한 이름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소설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나는 줄곧 이 소설을 읽으며 당혹스러워 했고 이렇게 허구적이고 특이한 상상이 가득 찬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소설이 전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을 '재미'있다고 기꺼이 추천할 수 있다. 그것이 여타 고전과 다른 점이다. '재미있어야 한다' 는 것이 소설에 있어서의 첫 번째 대의명제라면 적어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점에 있어서는 충분히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흔한 그리스 신화를 비롯하여 이런 류의 이야기와 역사에 철저히 무지했던 나 같은 사람조차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작품을 접할 때 마다 즐거워진다. 내용도 물론이지만, 문학의 문체나 형식측면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일본문학을 보면 그 특유의 문체가 느껴지기 때문에 주로 일본문학을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3부작’은 나의 문학적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내용이 훌륭하고 시사점이 많아도‘재미’라는 요소가 없어 독자에게 읽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장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오이디푸스왕은 복잡한 구조이지만 손에 붙어 쭉쭉 읽어내려 갈 수 있는 판타지 소설 같은 흥미와 재미가 있다.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사건들 때문에 눈을 떼지 못하고 다음에는 어떠한 사건이 누구를 통해서 벌어질지 예측하게 된다. 항상 중간매개자와 사건을 부각시키는 숨겨진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 이를테면, 오이디푸스가 아버지의 마차를 공격할 때 살아서 도망간 단 한명의 사람이 바로 오이디푸스를 이웃 양치기에게 준 라이오스왕의 양치기라는 그런 부분이다. 그는 극의 후반부에 출생의 비밀을 밝히는 극적인 역할을 한다.
번호이동성 정책에서의정책참여자의 역할분석하나의 정책이 결정되기까지는 많은 정책 참여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정책참여자들이 사회에서 해결되기를 희망하는 문제에 대한 요구가 정책요구로서 그것을 정책문제로 전환하는 정책의제설정 단계를 거쳐 정책을 결정, 집행하기까지 참여자의 역할과 갈등은 정책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행된 정책의 투입-산출을 식별하고 정책효과를 따지는 정책평가에서도 참여자의 역할은 두드러지고 목표달성도에 따라 정책을 종결하거나 새로운 요구를 하여 정책변동을 제시하는 부분까지도 하나의 정책과정에 있어 참여자는 전반에 걸쳐있다.본 보고서에서는 통신정책 및 행정 분야에서 지난 2001년 처음 시행되어 많은 변동과 갈등을 겪으면서 2005년을 기점으로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된 ‘이동통신의 번호이동성 정책’에 관해 알아보고 그 과정에의 참여자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았다.본 정책은 시의가 지난 정책이지만, 그렇기에 보고서를 쓰기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정책과정이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고, 현재는 종결되어 정착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책과정의 흐름과 그에 따라 선행된 연구를 참고하여 참여자들의 역할과 흐름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1. 번호이동성제의 정의와 관련개념※ 번호이동성제 [番號移動性制, number portability]통신서비스 가입자가 사업자, 서비스 제공 위치, 서비스 종류를 변경하더라도 기존의 전화번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제도. )번호이동성제는 통신서비스 이용자가 전화번호에 구애받지 않고 사업자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함으로써 사업자 간의 경쟁 촉진을 꾀하고, 통신사업자 또는 거주지를 변경할 경우 전화번호까지 변경하는 데 따르는 이용자의 불편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도입하였다. 종류에는 시내전화(local) 번호이동성과 이동전화(mobile) 번호이동성 등이 있다. 이동전화(휴대폰) 번호이동성제는 기존의 전화번호를 유지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이동전화 가입자가 사업자를 바꾸더라도 기존의 전화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을 뿐, 서비스까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는 2004년 1월부터 시행되었는데, 예를 들어 011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가입자가 016으로 사업자를 변경하더라도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016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기존 회사에서 받던 서비스는 없어지고, 새로 가입한 회사의 서비스를 적용받는 것이다.※ 번호이동성제와 혼동하기 쉬운 010 번호통합◆ 010번호통합이란?011,017,016,018,019으로 분산된 이동통신번호를 향후 010으로 통합시키는 제도이다.2004년 1월부터 신규 가입자는 011,017,016,018,019 식별번호는 더 이상 부여받을 수 없으며 010번호만 사용 가능하다. 기존 가입자인 경우에는 이동통신회사 변경시에도 기존 번호 그대로 사용이 가능하다.◆기존 핸드폰가입자의 010 강제 변경 여부정부는 당초 2007년 까지는 기존 식별번호를 쓰다가 강제로 010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검토 됐으나 2007년까지 010으로 전환한 사람이 90%가 넘으면 강제 전환하고 그렇지 않으면 강제시행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선으로 발표하였다.※ 공공재로서의 번호번호의 경우는 국가의 통신산업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재이다. 번호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상태이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식별번호의 경우 통신 정책과 서비스 수요에 따라서 통신 서비스 사업자에게 배분을 하게 된다. 이러한 번호의 경우 공공재로서 비배타성과 비경합성이라는 기본적인 공공재의 특성을 가지지만 부분적으로는 배타성과 경합성을 가지게 된다. 시민은 번호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통신 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번호는 기업이 생산하는 사적 재화와 연결되어서 대가를 지불하는 시민에 한해서 소비할 수 있다. 그리고 번호는 각 번호당 이용자 수의 제약이 따르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다른 기업이나 시민이 부여 받은 번호는 이용할 수 없는 제약이 따라서 경합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각 개인이 통신 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부여 받는 번호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개인의 편익으로 간주하여야 하고 이 번호를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이용자의 편익과 시장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국가는 번호 자원을 활용하고 번호 이동성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번호이동성 정책 과정과 참여자의 개입◆ 정책요구 -이동전화 가입자와 기업의 자유의사 존중에 대한 요구이동통신 시장의 경우 지금까지 비약적인 성장을 해 오고 기술력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이동통신 3사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이동전화 가입자의 경우 한번 선택한 이동통신을 바꾸기가 싶지 않다는 점에서 경쟁이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동통신 사업자별로 다른 식별번호를 사용하고 있고 가입자가 이동전화 사업자를 변경할 경우 번호변경으로 인해 추가적인 전환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번호 변경의 어려움은 가입자의 통신 사업자 선택에 제약으로 작용 하고 있다. 이는 결국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려는 사업자에게 시장 확대의 어려움을 느끼게 하고 기존가입자의 경우 실질적으로 신규 사업자의 진입으로 인한 후생효과를 누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는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한하고 오랜 기간 SK Telecom의 단일 서비스로 인한 자연독점을 해소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결국 이동통신 기업들 간의 경쟁을 확산시키고 소비자가 자유의사에 따라서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번호이동성에 대한 요청이 나타나게 되었다.◆ 정책의제 설정-사업자와 소비자 양자의 이익을 위한 정책의제 설정번호 이동성은 이동전화 가입자가 이동전화 사업자 선택에 있어서 기존의 번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동전화 사업자의 변경이 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결국 이동전화 사업자간에 신규가입뿐만 아니라 기존 고객에 대한 경쟁이 확산되고 통화요금, 통화 품질 등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통해서 기존 가입자들의 후생이 증가할 가능성이 증가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존 고객들에게 전환 장벽을 크게 낮추어줌으로써 이동통신 3사간에 보다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동전화 번호 이동성의 정책전환이 필요.2001. 1 전기통신 사업법에 번호이동성 도입 관련 새로운 항목 추가.◆ 정책분석, 결정, 집행해외 국가를 살펴보면, 이미 싱가포르, 홍콩, 영국, 스웨덴 등의 국가에서는 번호이동성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 독일, 일본 등의 국가에서도 이동전화 번호이동성을 곧 도입할 계획이다. )1996년 2월부터 시행된 미국의 시내전화 번호이동성 정책을 모델로 하여 분석, 시행.2002. 1 국내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도입 정책 확정 및 발표2003. 2 번호관리 세칙 개정 및 2GMz IMT-2000 사업자 국번호 부여2003. 1 통신위원회, 번호통합제 및 번호이동성 시차제 승인2003. 5 2G 번호이동성 시스템 구축 개시2004. 1 2G 번호이동성 1차 시행 및 010 번호 부여(SK텔레콤에서 KTF나 LG텔레콤으로 이동◆ 정책평가 - 지역전화사업자들의 반발과 사업자간 불협조등의 문제 발생우선 시행결과, 비용분담의 문제점과 가입자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지역전화사업자들은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시행을 앞두고 반발해 왔으며, 시행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부당함을 언급해 오고 있다. 이들은 번호이동성 제도 시행은 소비자들의 혼란만을 불러일으킬 뿐 정부가 의도했던 목표를 이루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들은 이 제도의 시행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가뜩이나 이용자들의 이동전화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선사업자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일부 시장 전문가들도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제도가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통신사업자들이 번호이동성 제도 정착을 위해 순순히 협조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데 기인한다. 사업자들은 가입자가 사업자를 변경할 때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업자간 원활한 고객정보교환과 시스템 정비가 요구되며, 특히 요금 결제 시스템 하에서는 사업자간 신속한 정보 제공과 협조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상호 경쟁관계에 있는 통신사업자간에 이러한 정보교류가 이용자와 정부의 기대대로 원활히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까지 이러한 문제는 용이하게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 많이 발생 하고 있다.◆ 정책종결- 정책을 수정하여 정착시키고 종결1차 시행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정하여 2005년 1월까지 확대시행하며 정착시켜 종결되었다.2004. 2G 번호이동성 비용분담 및 회수방안 마련2004. 7 2G 번호이동성 2차 시행(KTF에서 SK텔레콤이나 LG텔레콤으로 이동)2005. 1 2G 번호이동성 최종시행(모든 이동통신사에서 번호이동)3. 번호이동성정책에서의 참여자◆ 번호이동성정책에서 참여자의 정의번호이동성정책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상임위원회의 속기록과 관련 연구보고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살펴보면 정보통신부, 의회, 정당, 언론, 학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통신산업자협회, 정보통신소비자권익찾기시민행동, 전국이동통신경영자협회, 이동통신사 등이다. 이것을 공식적 참여자와 비공식적 참여자로 구분하여 보면, 전자에는 정보통신부와 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상임위원회가 포함되며, 후자는 정당, 언론, 학자, 한국통신산업자협회, 정보통신소비자권익찾기시민행동이 포함된다. 다만 정당차원의 참여는 없었지만 야당의원들에 의해서만 질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당을 비공식적 참여자에 포함시킬 수 있다. )
고전의 이해의 첫 수업시간에 수업소개를 하며 백년의 고독이라는 소설책은 분량도 많고 만만치 않을 것 이라고 하셨던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혹자는 백년의 고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가한 여름날 오후에 수박을 잘라놓고 물에 발을 담근 채 한번에 쭉 읽어 내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 책은 시간 날 때 틈틈이 펼쳐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통의 책을 읽을 때는 이동중인 지하철 안에서나 공강 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데, 백년의 고독을 그런 식으로 읽다가는 정말 백년에 버금가는 시간이 걸려서야 책을 다 읽을지도 모른다. 그만큼이나 이 책은 복잡하면서 헷갈리는 인물들과 황당한 수많은 사건들로 나열되어 있다. 마치 판타지소설 같기도 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가득하다. 그에 앞서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가장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복잡한 인물구조이다. 가뜩이나 긴 이름들과 복잡하게 얽혀진 혈연관계와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짓는 풍습 탓에 동일한 인물의 이름. 그 모든 것들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상당히 헷갈렸고, 결국에는 인물 구조도(가계도)를 그리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 했다.백년의 고독은 작품의 반 이상이 백년의 활극처럼 역동적이며 나머지 끝부분에서 템포가 급격히 낮춰지며 마무리 되고 있다.마르케스가 작품의 마지막을 끝내는 방식은 마치 고전 작품의 기승전결의 구조를 생각나게 한다. 소설의 맨 처음부터 끝까지를 완전히 일소하는 깔끔한 끝내기를 볼 수 있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가 이 책에 관해 남긴 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적이다."소설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동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서가에 백년의 고독을 꽂아두고서 어떻게 소설의 종언이란 말을 할 수 있는가?"사촌끼리 결혼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부부는 근친 결혼으로 인해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난다는 저주를 피하기 위해 동침을 하지 않는다. 동네 놀림감이 된 남편은 자신을 모욕한 남자와 결투를 벌이다 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거대한 열대림 속 늪지대에 '마콘도'라는 마을을 새로 창건하지만 근친상간의 저주는 6대에 이르기까지 반복된다.6대 후손 아우렐리아노는 이모와 사랑을 나누고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고 마을이 소멸되는 비극을 맞는다.작가는 이러한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과 남미 현대사를 현실과 신화, 상징을 넘나드는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렸다.그때였다. 아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풀어오른 메마른 가죽 부대와 같은 작은 시체가 부지런한 개미떼들에 의해서 돌멩이 투성이의 뜰의 샛길로 운반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우렐리아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굉장한 순간에 멜키아데스가 남겨둔 마지막 열쇠가 분명해졌고, 인간이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꼭 끼여 있는 양피지의 글귀가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일족의 최초의 사람은 나무에 묶이고 최후의 사람은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다.’ (홍신문화사 450페이지)마콘도의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수수께끼 같은 양피지가 해독되며 모랫바람속에서 마을이 잠기는 가운데, 아우렐리아노가 폭풍 속에서 자기가문의 성쇠를 예언한 양피지를 붙들고 확인하며 숨을 거두어 간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추리소설을 읽다가 반전이 나타나고 범임이 밝혀지는 순간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처음과 마지막 부분의 절묘하게 떨어지는 구조가 앞에서 말한 기승전결을 갖춘 고전작품 같다는 뜻이다.또한 작품에서의 은근한 복선을 알아차리는 일 또한 흥미를 더해주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줘요. 오늘은 개미 구멍을 석회로 막는 날이란 걸 깜빡 잊고 있었지 뭐야.”(428페이지)이와 같이 독자에게 알 듯 말 듯 제공 하는 복선들이 황당한 또 다른 일이 터질것만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며 작품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인물에 대해 얘기하자면 독특한 인물들 중에서도 나의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작품에 있어 가장 동떨어져보이는 미녀 레메디오스 이다. 아직도 그녀가 미녀인지 마녀인지는 잘 모르겠다. 레메디오스 외에도 독특한 캐릭터의 여성들은 마치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인들을 연상케 했다. 그 고독감과 화려한 색채는 그녀들과 많이 닮아 있다.카드점을 치는 필라르는 모두와 한번씩 깊은 연관이 되어 있다. 흙과 석회를 먹고 손가락을 빠는 레베카나, 피에트로 크레스피를 차지하기 위해 독살을 결심할 정도로 레베카와 싸우다가 갑자기 그를 거절하고 그가 죽자 죄책감에 불에 팔을 집어넣는 아마란타에 대한 묘사는 섬뜩할 정도로 자세하고 세밀하다. 가문의 시작에 서 있었으며 후대에 태어나는 아이에게 (원하지 않았지만)이름을 물리게 된 우르술라 또한 나름의 독특한 캐릭터 이다.백년의 고독을 읽는 중간 중간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도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반복되는 비슷한 이름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소설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이승과 저승이라는 두 영역이 연결되어있는 듯 젊어서 죽은 이가 백발의 유령으로 나타나고, 마을에 전염되어 버린 불면증,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기존 관념을 아예 바꾸어버리는 4년 11개월 23일 간 내리는 비, 하늘로 승천하는 미녀 레미디오스 등이 그 예이다. 나는 줄곧 이 소설을 읽으며 당혹스러워 했고 이렇게 허구적이고 특이한 상상이 가득 찬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소설이 전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그럼에도 나는 다른사람에게 이 책을 '재미'있다고 기꺼이 추천할 수 있다. 그것이 여타 고전과 다른 점이다. '재미있어야 한다' 는 것이 소설에 있어서의 첫 번째 대의명제라면 적어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점에 있어서는 충분히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고난과 수탈, 정치적 실패와 투쟁으로 뒤얽히고 점철되어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철저히 무지했던 나 같은 사람조차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나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작품을 접할 때 마다 즐거워진다. 내용도 물론이지만, 문학의 문체나 형식측면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일본문학을 보면 그 특유의 문체가 느껴지기 때문에 주로 일본문학을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나의 문학적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내용이 훌륭하고 시사점이 많아도‘재미’라는 요소가 없어 독자에게 읽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장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백년의 고독은 분량이 많더라도 손에 붙어 쭉쭉 읽어내려 갈 수 있는 판타지 소설같은 흥미와 재미가 있다.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사건들 때문에 눈을 떼지 못하고 다음에는 어떠한 사건이 벌어질지 예측하게 된다. 또한 종래의 고전소설이 그러하듯이 무언가 끝에 교훈을 주거나 시사점을 주는 고정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노벨 문학상을 탄 작품은 지겹고 철학적이고 심오하며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백년의 고독'은 백년이라는 시간에 부엔디아 가문이 어떻게 생겨나고, 사라지는지 지루하기 보다는 우스꽝스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현실적 공간 그리고 신화적 공간인 마콘도에서 이 사람들이 정착하고 삶을 유지하는 것. 현실이 꿈이 되고, 마술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이 되며 죽은 이들이 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콘도의 이야기를 작가는 거침없이 풀어내린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똑같은 운명 속에 갇힌 이들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말하자면 꽤나 지루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량을 전혀 지루함 없이 읽은 것은 가브리엘의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때문일 것이다.꽃비는 조용한 폭풍이 엄습해 온 듯이 밤새도록 쏟아져 마을을 뒤덮고 지붕을 덮었으며,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수북이 쌓여 밖에서 자던 가축들이 질식해 죽었다. 너무나도 많은 꽃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기 때문에 아침이 되자 거리는 푹신푹신한 꽃방석을 깔아놓은 것 같았다. 장례행렬이 지나가기 위해서는 길에 깔린 꽃송이를 삽이나 갈퀴로 긁어내야만 했다. (p.167)
무 정무정은 고등학교 때부터 꼭 읽어야 할 소설로 분류되며 교과서에도 일부가 나와 있어서 내용이나 줄거리,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외우다시피했다. 하지만, 보고서를 쓰고 발표를 하기 위해 이렇게 다시 꼼꼼히 읽어보니 이전과는 다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지정도서들 보다는 아무래도 내용도 어느 정도 친숙하고 소설류이기 때문에 까다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러니한 부분도 많고 쉽게 넘길 수만은 없는 소설이 바로 무정이라고 생각한다.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근대 문명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전통 가치와 근대 가치의 충돌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형식과 영채, 선형의 삼각관계를 통하여 많은 독자를 획득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삼각관계는 단순한 애정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 가치와 근대 가치의 대립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본래 ‘무정’은 매일신보에 연재되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게 된 작품이며 근대 장편소설의 첫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또한 이전의 고소설들이 주로 이야기의 구성측면에 신경을 쓴 것에 비해 이광수의 ‘무정’은 묘사에 상당부분을 치중하였으며 문체에 있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적 용어를 그대로 반영한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여기에 당시대의 주요 사상을 시대 배경과 연관시켜 ‘계몽’이라는 주제로 드러내었기 때문에 신소설, 근대 장편소설의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할 수 있겠다.수업시간에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면서 ‘무정’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무정은 말 그대로 無情이다.작가는 이형식을 지식인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부여하여 계몽적 정신을 가진 인물로 설정하였다. 그런데 영채가 자결하러 평양에 갔을 때, 형식은 영채를 찾아갔으나 그냥 서울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무정한 성격을 반성하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형식은 오싹 소름이 끼치며 번쩍 눈을 떴다. 아아, 내가 잘못함이 아닌가. 내가 너무 무정함이 아닌가. 내가 좀더 오래 영채의 거처를 찾아야 옳을 것이 아닌가. 영채는 나를생각하고 몸을 죽였다. 그런데 나는 영채를 위하여 눈물도 흘리지 않아. 아아, 내가 무정하구나, 내가 사람이 아니로구나 하였다. (66장 218페이지)조금 더 적극적으로 영채의 행방을 찾지 않고 쉽게 포기한 형식은 후에 노파가 영채의 거처를 묻자 물에 빠져죽었다고 답하게 되고, 노파가 형식에게 무정하다고 말하자 깜짝놀라하며 반성하고 자신의 냉정함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또한 선형과 혼약하게 되며 형식의 심리는 더 자세히 나타난다. 영채에 대한 죄책감과 선형에 대한 기쁨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내용인데, 자신의 이기심에 부끄러워 하면서도 실 상황에서는 자신이 유리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또한 작가는 ‘무정’의 의미를 형식의 이기적 측면 뿐 아니라 동포애에 연관지어서도 설명하고 있다.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케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126장)소설의 끝머리에서 이와 같이 밝힘으로서 작가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무정(無情)에서 벗어나 유정(有情)으로 밝은 사회를 만들자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민족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며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동포애 정신을 말하고 있다.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개개의 인간군상을 대변하고 있다.주인공인 이형식은 젊은 영어교사로 봉건적 시대풍조를 비판하며 새 세대의 새로운 가치 인식의 출현을 중시한다. 즉, 개인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사회적 문제에 관해 주체적으로 대처하는 지식인으로 나타난다. 인생에 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형식에 대비되는 인물로는 형식의 친구인 신문기자 신우선이 있다. 그는 성격이 쾌활하고 낙관적이다.아버지가 생전에 형식과 혼인할 것이라는 말을 한 데 얽매여 이형식의 아내가 될 생각으로 정절을 지키는 박영채와 근대적 교양을 지닌 개화된 가문의 신여성인 김선형 또한 대비되는 성격이다. 그리고 이형식은 이 두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여기서 형식의 신중한 성격은 더 나아가 우유부단한 면을 보이게 된다.영채의 봉건적인 가치관을 바꾸는 신여성 병욱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병욱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영채와 만나게 되며 여러 가지 친절을 베푼다. 영채는 병욱에게 경성학교 교주의 아들인 김현수에 의해 순결을 빼앗기고 자결하러 평양에 간다는 얘기를 하게 되고 병욱은 영채의 봉건적이고 얽매인 관념과 삶의 자세를 바꾸게 된다.병욱과의 얘기에서 영채는 형식을 사랑한다기 보다는 의리로 절개를 지킨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순결을 잃었다고 자결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주체적 인간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과학이나 예술을 배워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해야 함을 알게 된다. 그리해서 결국 영채는 봉건적 의식에서 벗어나 근대적 가치관을 지니게 된다.봉건적 여성의 대표였던 영채가 신여성인 병욱을 만나며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켜 한 개인으로서 꿈을 실현하고 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여성도 자주적이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근대 서구문명의 수용에 관한 이형식의 자세를 살펴보자면, 그는 서양의 과학문명을 배워야만 가난도 극복할 수 있고 나라도 튼튼해진다고 믿고 있다. 유학을 위해 기차로 부산을 가던 중 홍수침해로 고생하는 삼랑진의 참상을 보고 구제해야 할 당위성을 발견하며, 유학의 목표도 바로 고통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위한 것임을 말한다.그리고 또한 그러한 과제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과학교육임을 밝힌다.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하여서 생활의 근거를 완전하게 하여 주어야 하겠다. ‘과학! 과학!’ 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앉아서 혼자 부르짖었다. (123장)무정의 주요 흐름은 형식과 영채, 선형의 연애 관계가 중심이 된다. 하지만 끝에 가서도 주제의식이 명확하게 밝혀지듯이 주된 내용은 봉건적 가치 인식에서 벗어나 새 문물을 수용하여 근대적 가치인식을 사회적으로 인식케 하려는 것이다. 끝부분의 수해현장을 보고 형식이 근대 과학교육의 역설과 개인주의 사상확립을 위한 비판정신, 인간주의적 사랑을 실천함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 해 준다.형식의 반성을 통해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철저한 자신만의 개인주의 의식 (그러나 남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는)과 사회에 문제를 끼치는 이기주의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개인의 생활과 사회 생활을 연관하여 인식할 수 있다.형식은 교사로서 학생들을 적극 지도해 왔다. 또한 병욱은 구도덕에 매어있는 영채를 새롭게 눈뜨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계몽주의로는 형식, 영채, 선형의 삼각관계가 해소되지 않는다. 이 갈등의 해소는 민족주의로써 가능했다. 즉, 수재민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계기로 민족 현실에 눈뜨게 되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고 합의함으로써 이 갈등을 극복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계몽적으로 변하는 이 부분은 다소 억지스러운 듯싶다. 나는 민족 계몽주의가 민족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당대 선각자라 할 이광수의 관념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구체성이 결여되고 현실적 실천방도의 제시가 없다. 단지 유학을 통한 신지식의 습득이라는 것으로 작품을 귀결시키는 것이 아쉽고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이러한 지나친 계몽성이 바로 무정의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첫 장면부터가 선형을 가르치러 가게 되는 이형식에 대한 묘사이며, 병욱과 영채 등 인물관계 모두가 사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삼랑진 수해 장면에서 우유부단하고 통일성 없던 형식의 성격이 교사로서의 자리가 마련되자 확신에 찬 선각자로 변하는 것은 무정이 강조하는 계몽성을 단적으로 나타내어 준다.하지만 이렇듯 ‘우리’ 만이 존재하고 ‘나’ 는 없는 무정의 억지스러운 공리성에도 불구하고, 세밀하고 섬세한 인물들의 내면 심리묘사와 생생하고 개성적인 인물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영채가 단지 기생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나타내며 달라지는 형식의 태도야말로 굉장히 불쾌했다.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형식이 영채와 선형사이에서 우유부단한 행동을 보이는 부분은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것을 단지 페미니즘적인 생각이라고 몰아갈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형식의 심리묘사에 있어서의 내면심리공간의 확장과 생생한 묘사가 읽는이로 하여금 더욱 소설에 빠질 수 있게 하는데 일조를 했기에 마치 나의 일처럼 답답해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꿈이나 무의식의 세계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이번 과제를 위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의문점과 얕고 편협했던 나만의 견해를 깰 수 있어서 즐거웠다.『꿈의 해석』의 첫 장을 넘겨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꿈에 관한 많은 학자들의 견해와 실제적인 사례들이 줄곧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나는 평소 꿈을 광범위한 주제로, 자주 꾸기 때문에 그 해석에 관한 것과 꿈에 대한 전반적인 궁금증이 많이 있었는데 그 방면으로 전문가들의 분석과 이론을 접하니 궁금했던 점과 해결이 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어느 정도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책을 읽어나가면서 대단한 선각자인 줄로만 알았던 프로이트의 책이 생각보다 쉽고 명쾌하다는 것에 놀랐다. 이는 아마도 이 책이 철학적 내용을 토대로 한 인문학적 서적 이라기보다는 정반합과 변증법 등 원인과 결과를 명백히 제시하고 있는, 수리적인 분석을 토대로 한 일종의 의학서적과 가깝다는 것이 이유가 되는 것 같다.무엇이든지 통제하고, 통제 당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인간'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인간의 내면은 아직 통제 밖에 있는 것은 아닐까.수많은 종교와 학문들이 인간에 대해 연구하고 통제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다할 결과는 없는 듯 하다. 얼마 전 복제인간이 미국에서 출연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지만, 그것이 인간을 통제하는 결과라고는 볼 수 없을 듯 하다. 영원히 나는 나니까.나는 나이기 위해 꿈을 꾼다. 즉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희망이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우리가 꿈을 통해 모든 소망을 충족한다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접하기 전까지는 꿈에 대해서 '미신'적으로 많이 이해했다. 티브이의 오락매체를 통해 흔히 우리는 꿈과 전생에 관한 것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전혀 그것과는 상관없는 세계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분석하고 해석하므로 인간의 현실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상처 입은 신경증 환자와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꿈과 현실은 아주 밀접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은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꿈은 그것을 꿈의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곧 우리의 잠재의식속(무의식)에 우리가 현실에서 체험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꿈은 그러한 현실에서 체험한 모든 것을 끄집어 내는 잠의 해방꾼이 아니다. 꿈은 잠을 보호한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꿈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들어있던 생각이 표출 되는 것으로 소망성취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기본전제를 가지고 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이 꾸는 꿈을 그 유형과 의미에 관해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나는 그러한 내용과 많은 실제 사례를 읽으면서 흥미롭기도 했지만, 마치 요즘 유행하고 있는 꿈 해몽을 해주는 ARS 전화 서비스나 인터넷 싸이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은 현실에 일어난 일, 갈망하는 것, 혹은 충격적인 것이나 자신이 경험한 것들 중에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이 꿈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즉 대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꿈은 미래를 예언한다는 인식보다는 꿈을 과거의 연장으로 본다. 과거 그 사람의 경험이나 그로 인해 생각하고 있는 일들의 반영을 꿈이라고 보는 것이다.같은 맥락으로 프로이트는 꿈의 정의를 ‘무의식의 배출구’라 했다.사람들이 꿈을 꾸는 이유는 무의식속의 욕망을 배출하기 위해서이고, 쾌락 원칙인 이드, 중립역할의 에고, 이성적, 도덕적 원칙인 슈퍼에고가 있다고 했다.프로이트는 보통 이드는 에고에 의해서 억압을 당한다고 말한다.그 말은 즉, 깨어 있을 때는 사람들의 욕망(이드)이 이성적, 도덕적으로 억압(에고)을 받기 때문에 사람들의 욕망은 제어를 받는다는 것이다.예를 들자면 길거리를 지나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을 때, 무턱대고 그 이성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에고에 의해 억압당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사실 '무의식의 세계' 같은 개념은 검증하기 곤란한 가설적인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신 분석은 양적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빈약하다. 정신 분석적 접근은 대개 환자 개인에 대한 관찰과 사례 연구를 통한 질적이고 주관적인 자료들이기 때문에 과학적 엄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또한 지나치게 무의식적 충동을 강조한다. 프로이트는 책에서 종종 모든 것을 너무 성적인 문제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잘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 이었다. 사실 인간은 성욕, 공격성 같은 무의식적 충동에 못지않게, 도덕 원리, 현실, 의식적인 차원의 합리성 등에 의해서도 지배된다.또한 나는 꿈의 해석을 읽기 전에 ‘도올’의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문제점을 읽었던 터라 도올의 비판항목이 나올 때마다 무척 흥미로웠고, 도올 선생의 해석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꿈은 자신의 욕망의 달성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이 꿈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꿈은 자신의 욕망을 왜곡해서 보여준다고 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를 사생아였던 레오나르도의 어머니를 향한 무의식적인 성적 욕구의 표출이라고 보고 있다. 유아기를 어머니하고만 보낸 레오나르도는 아버지를 통해 생겨나는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어머니를 향한 성적인 욕망이 억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어머니를 향한 성적욕망이 있다면 꿈에서는 어머니와의 성적관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꿈의 왜곡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이렇게도 맞고 저렇게도 맞다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코에 걸어도 되고 귀에 걸어도 된다는 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