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메이 아줌마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 나무꾼 옮김미국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내가 여태까지 읽어왔던 동화와는 느낌부터 사뭇 달랐다. 다른 동화책들은 주인공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그리운 사람을 만나면서 끝을 맺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주인공과 오브 아저씨가 서로 마주보며 웃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또한 소재 자체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남겨진 가족들이 슬픔을 겪게 되는 것으로 동화치고는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드는 소재였다. 이런 것들이 이 책을 여러 가지로 특이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나는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인 서머에게 마음이 끌렸다. 고아가 되어 친척집을 전전긍긍하게 되었을 때도 서머는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지금 못 받는 사랑을 미리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떤 엄마들보다도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서머를 보면서 가슴이 시려왔다. 그 어린 아이가 얼마나 사랑에 목이 말라 했으면 자신 스스로가 그런 위안거리를 삼으면서 위로해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메이 아줌마가 죽고 난 후에도 물론 메이 아줌마를 그리워하면서 슬퍼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오브 아저씨가 그 충격으로 죽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한다. 책에서는 심지어 이런 구절도 나온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저씨가 돌아가실까 봐 걱정하면서 이미 마음속으로는 아저씨가 누울 관과 아저씨가 맬 마지막 넥타이까지 골라 놓았을 정도였다’라고 하는 부분이다. 이미 자신이 혼자되는 것을 경험한 서머이기에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싶었을 것이다. 혼자되는 것의 외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서머에게 할 수만 있다면 위로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또한 이 책에서는 클리터스라고 하는 조금은 신기한 아이가 등장한다.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이상한 행동도 곧잘 하는 그런 아이이다. 그렇지만 이 아이의 등장은 오브 아저씨와 서머에게 이상한 힘을 준다. 언제까지나 슬픔에 빠져있을 것 같은 오브 아저씨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고, 남을 이해하는데 조금 인색했던 서머에게는 남을 이해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그런 아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클린터스가 서머에게는 반가운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받는 클리터스를 서머가 좋아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머는 오브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못마땅했고, 집에 혹이라도 같이 있게 되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클리터스는 이런 사실들을 알면서도 서머에게 나무란다거나 탓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씩 서머에게 다가가면서 자신의 진심을 보여 준다. 결국 서머도 이런 클리터스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결국에는 영몽사를 찾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앞자리를 내어주는 것으로 화해를 청한다. 결코 어떤 말이나 특별한 행동을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클리터스를 친구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자신의 성격대로 보여준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메이 아줌마가 죽기 전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삶의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그 어떤 것보다도 많은 위안과 위로가 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족이 또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필리퍼 피어스 지음나는 이 책이 끝으로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결말이 궁금해졌다. 톰이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인지, 또 해티는 누구인지,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말이다. 이 책은 끝까지 읽어야만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까닭에 나는 책 중반을 조금 넘겼을 때는 아예 뒷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뒷부분에서 밝혀진 바솔로뮤 할머니의 정체를 알고 나서야 다시 앞으로 되돌아와 책을 읽을 수 있었다.책의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한창 호기심과 활동성이 왕성한 톰을 이모와 이모부는 방 안에만 가두어 두려고 해 톰이 무척이나 심심해한다. 결국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있던 톰은 거실에 있는 시계가 13번 울리는 것을 듣고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시계 가까이로 간다. 거기에서 신기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항상 잠겨있던 문은 열려 있으며 그 곳으로만 나가면 항상 새로운 풍경이나 날씨, 계절 등을 경험하게 된다. 또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해티라는 여자아이만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해티와 톰은 친구가 되어 화살을 만들어 쏘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해티가 입은 옷은 지금과는 달랐고 시간도 자기 멋대로 바뀐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톰은 해티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서랍장을 뒤지게 되고, 그곳에서 발견한 스케이트를 통해 바솔로뮤 할머니가 바로 해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이 책 역시 판타지 동화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 흔히 상상하는‘내가 미래에 간다면?’,‘내가 과거로 간다면?’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내가 과거에 간다면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했었는데, 어린 시절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된 톰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톰이 부러웠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톰이 가진 재치와 용기이다. 책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톰이 얼마나 똑똑한 아이인지를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우선은 이모나 이모부에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행동하는 방법이나 둘러대는 말솜씨를 들 수 있다. 보고 있는 나는 조마조마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이모나 이모부는 잘 속아 넘어갔다. 또한 해티를 만나러 갈 때에는 항상 한 쪽 슬리퍼를 정원으로 통하는 문에 끼워 놓는데 문이 닫혀 돌아오지 못하게 될까봐 그렇게 한 행동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상황에 적절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제법 의젓해 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 톰이 시끄럽게 울어 무섭기로 소문난 바솔로뮤 할머니의 부름을 받게 된다. 이모는 가지 말라고 잡지만 톰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으로 할머니에게 직접 가기로 한다. 그런 모습들이 톰을 똑똑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보이게 했다. 이 책을 읽게 될 어린 아이들도 나처럼 이런 톰의 모습을 부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세암정채봉 동화집, 이현미 그림나는 항상 책을 읽기 전에 꼭 작가의 말을 꼼꼼하게 살핀다. 이 버릇이 어느 때부터 생긴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문을 읽을 때보다도 오히려 더 세심하게 읽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책도 여느 때와 같이 작가의 말을 먼저 펼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작가의 말을 보고는 이 책이 어떠하겠다는 감이 왔다. 작가가 항시 글을 쓰기에 앞서 생각한다는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더불어 작가가 피천득 선생께서 “문학의 가장 위대한 기능은 우리네 삶을 위로해 주고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던 말을 신조로 삼는 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 책은 따뜻함이 묻어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 이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생각이 딱 들어맞았다.책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이야기 오세암은 어디에서인가 읽은 기억이 난다. 먹을 것도, 아무도 없는 암자에서 한달이 넘도록 갇혀 있는 꼬마 아이를 무척이나 걱정하면서 읽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길손이의 누나 감이와 마음 따뜻한 스님도 걱정이 되었다. 남겨진 이들이 겪을 아픔도 책을 읽는 나에게 전해져 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천진난만한 길손이가 스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길손이의 모습은 이 책과 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너무나 깨끗해서 책장 하나하나를 넘길 때마다 내 손에 묻은 때가 같이 묻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읽었는데, 길손이의 순수한 모습도 내가 읽는 동안 더럽혀지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다른 책들은 읽으면서도 옆에 나오는 그림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기 일쑤인데, 이 책은 신기하게도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수묵화만으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운치 있고, 따뜻한 그림들이어서 동화책 내용과 잘 맞아 그랬던 듯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 넣은 듯한 장면들이 내 맘에 꼭 들었다. 예쁜 단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산그리메라고 하는 단어가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 어떤 뜻을 지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자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훨씬 정감이 가고 예쁜 이름이었다. 또한 흰구름, 산, 하늘, 눈, 비 등의 자연을 형상하는 단어들도 많이 쓰였는데 이 책에서 함께 어울려 읽다 보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이런 말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그런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한데 묶여있는 이 책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이야기 제일 마지막에 쓰이는 문장들인데 조금 살펴보면 ‘하늘이 무척 푸른 오월에 일어난 일이었어’, ‘그저 풀꽃을 쳐다보며 씩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습니다’, ‘눈이 그치고 햇빛이 나자 눈 위에는 철책 밖으로 멀리 사라지니 개미의 맨발자국이 오롯이 나 있었습니다’ 등과 같은 것들이다. 어떠한 특별한 뜻을 지니지도, 끝을 맺는 그런 문장들도 아니지만 미소를 머금으며 결말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문장들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말이다. 이 책은 상상해서 지어냈을 법한, 즉 현실에서 일어나기에는 조금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작가가 세세하게 결론을 내려주는 것보다 읽는 사람들이 상상하여 나름대로 결론을 맺는 것이 오히려 더 진한 감동과 여운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바로 또 이러한 점이 이 책을 더욱더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금파리 한 조각린다 수 박 글, 이상희 옮김, 김세현 그림작가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미교포이다.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으나 한국에 대해 잘 몰랐던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서양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동양의 문화, 특히 한국의 문화에 대해 알리고 싶어서였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던 작가의 말이 거짓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한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이런 생각이 들게 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책에서 사용한 단어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사용한 단어들은 사금파리, 목이, 두루미 등으로 순우리말이 많이 사용된다. 그 중의 사기그릇의 깨어진 조각을 일컫는 순우리말을 사금파리라고 한다는데 뭔가 푸르고 청명한 느낌이 들어 듣는 순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또한 죽은 나무나 나무의 썩은 낙엽 속에서 저절로 자라는 ‘귀처럼 생긴 목이버섯’에서 따왔다고 하는 목이의 이름도 목이가 살아가는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단어였다. 아저씨 역시 학이 비상하기 전 한발로 서 있는 모습을 순우리말로 표현한 두루미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아저씨의 한 쪽 다리가 없는 모습을 빗댄 표현이다. 흔히 조금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흉한 말로 그 모습을 놀리고는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모습도 예쁜 말로 바꿔 불러 아이들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야기의 소재 역시 세계적으로 이름난 우리의 도자기로 삼았다. 작가가 이런 소재를 택했던 이유가 우리의 도자기에는 선조들의 삶의 모습이나 가치관, 특히 장인정신이라고 하는 고유한 예술혼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우리의 문화를 알리기에는 도자기가 제격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에도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세심하게 작업하는 민 영감의 모습이 더욱 더 자랑스러워 보였다. 사회적으로 자신이 어떤 신분을 가졌던지 간에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또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민 영감의 모습이 우리의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나는 책을 읽는 동안 목이가 그래도 복 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아이긴 하지만 목이를 끔찍이 아껴주는 두루미 아저씨가 있었고, 항상 세심한 신경을 써 주는 아줌마가 있었으며, 무뚝뚝하지만 목이를 지켜보는 민 영감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듯 목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살핌을 받게 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는 몸이 불편하신 두루미 아저씨를 항상 끔찍이도 위하고, 자신에게 잘 대해주시는 아줌마를 위해 일도 도와드리고는 하니 말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바보스러울 만치 성실하게 일하는데 어떻게 복이 달아날 수가 있겠는가? 사람이 복을 받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착하기만 한 목이가 두루미 아저씨의 죽음을 민 영감에게 듣게 될 때에는 나는 목이가 걱정되어 눈이 따가워졌다. 이제 조금 행복해 지려고 하는데 그 행복마저 목이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목이는 민 영감의 아들 ‘형태’가 되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던 도공이 된다. 두루미 아저씨가 말씀하셨던 대로 이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도공이 되어 멋진 도자기를 굽고 있을 목이를 생각하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이 책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읽었다. 읽는 동안 얼마나 후회를 많이 했는지 모른다. 흐르는 눈물을 참느라 무지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책 읽으면서 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눈물을 안 흘리자니 너무 슬픈 내용이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었다. 결국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중간쯤부터는 아예 책을 덮어버렸다. 나머지는 그냥 집에 가서 읽는 것이 오히려 맘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책을 꺼내들었고 마음껏 울면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이 책은 불행한 사람들만 나온다. 아니 남들이 보기에 불행하기만 할 것 같은 사람들만 나온다. 아빠를 잃은 숙자와 숙희, 엄마를 잃고 혼자된 영호, 아빠와 엄마가 가출해 버린 동준이와 동수, 아빠한테 맞은 것이 큰 상처로 남은 명환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저 사람들이 쟤는 잣대로 이 아이들을 불쌍하게 보았다. 또 자꾸만 불행한 일을 겪게 되는 아이들이 안타까워서 울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동안 나는 이 아이들이 너무나 씩씩하고 용기 있어서 그것이 감동스러워서 울었다. 서로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였음을 물론이다.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한 많은 반성을 했다. 누군가를 그저 내가 가진 잣대로만 평가하여 그 사람에 대한 결론까지 다 지어버리는 그런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동수가 본드를 마시고 동준이를 때리고 했을 때는 나는 나도 모르게 동수를 그렇고 그런 아이로 평가해 버렸다. 불쌍하기는 하지만 내가 감싸줘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말이다. 또 동수가 다시 원래의 자리를 되찾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또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이미 그 아이에 대한 벽을 세워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아이가 자신의 벽은 넘었다 하더라도 내가 세워 놓은 또 다른 벽 때문에 더욱 힘들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을 불쌍하게 여기기보다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싸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 말이다. 더욱이 내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감싸줄 수 있어야 할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는 더욱더 넓은 마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책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운동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착하기만 한 숙자는 무용 연습하는 것에서 빠지려고만 한다. 결국 선생님은 이런 숙자를 데리고 미래를 위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 일도 열심히 해야 된다면서 타이른다. 나 같아도 김명희 선생님과 같은 말을 똑같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타이르고 충고하기 보다는 그 아이가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또 아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에 대한 염려가 먼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숙자가 운동회에서 입을 한복이 없었고, 또 운동회 날 자신을 보러 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무용 연습에 빠진다는 것을 선생님이 알았다고 한다면 아마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자신이 그 학생에 대한 고정관념을 세우기보다는 그 벽을 아이가 왜 세우려고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아이들의 상황을 다 이해하고 또 괭이부리말에 들어와 살게 되는 김명희 선생님은 동수와 가까워지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동수가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열고 있는구나’하는 생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다 그렇겠지만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상대도 마음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나라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호나 명희 선생님처럼 말이다. 영호는 자신의 마음을 다 열어 아이들을 보듬어 준다. 자신의 삶이 힘들고 또 아이들로 인해 자신이 가진 돈조차 다 써버리는 일이 생겨도 말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아이들도 그런 영호를 믿고 따르게 되고 한 가족이 된다. 나라면 아마도 영호처럼은 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누군가를 떠맡아 그 누군가를 위해 고생할 수 있을 정도로 착한 심성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책에서 영호가 이런 말을 한다.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들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하는 영호를 보면서 다시 한번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은연중에 나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도와줄 수만 있는 존재로 생각했던 탓이기 때문이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고만 생각하다니 이런 생각을 한 내가 정말이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과 더불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새긴 것이 하나 있다. 김명희 선생님도 속으로 깊이 간직한 ‘나혼자 잘 살기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삶을 위해 살아야 겠다’라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