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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애] 바울과 동성애
    로마서 세미나정승우 교수님신약 석사 1이 영 진바울과 동성애들어가는 말왜 바울은 동성애와 같은 고강도 윤리를 다룰 때 조차도 율법처럼 좋은 툴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흔히 오늘 날의 교회가 실천 윤리 항목을 다룰 때 율법을 성문법전적으로 비교적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에 비하면 그의 자제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법전다운 지침 대신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이 바울의 ‘양심’은 단순하고 일반적인 도덕율적 용언 차원을 넘어서 사실상 율법의 실천적 직능과의 유비를 시도하는 대체-도구로서의 많은 여운을 흘리고 있음을 본다.본 소고의 주논구는 바울의 ‘양심’이 그의 실천 윤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와 또 그것이 궁극적으로 본문 12장에 와서 어떻게 투영되어 작동하는 지에 대해서 알아볼 텐데 이 작업을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에 걸친 배경적 이해, 즉 사회적 배경으로서 ‘동성애’를, 율법 대체 배경으로서 ‘양심’을, 성령 사역 배경으로서 ‘몸'에 관한 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만 연구 진행에 있어서 ‘동성애’라는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맞서고 있던 바울과 오늘 날 현대의 그것을 맞닥뜨리고 있는 우리의 시대적 상황에는 많은 유사점을 간과할 수 없기에 시대 상황적 레이어를 우리에게 겹쳐 봄으로써 과연 오늘 날의 교회는 어떤 윤리로써 시대를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한 청구로써 귀결짓고자 한다.사회적 배경우리가 궁극적으로 탐지해야 할 곳은 로마의 상황이지만 로마의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그네들의 성풍속과 관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리스의 그것을 우선 알아보는 것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고대 그리스의 동성애그리스 시대의 동성애는 사회 일반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들이 동성애에 관한 보편성을 갖기까지는 신화적인 관념 구조와 철학적 사상 구조 측면에 의해서도 지원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위는 그들의 사회적 구조가 그것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이다.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위가 낮고 천했던 가사 여성은 한낱 생산의 도구였던 까닭에 그리스만 한다”Plutarch(46A.D.-120A.D.)아테네의 사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애굽 여행도 하였고 또 로마에서 강연도 하였다는 헬라 전기작가였던 Plutarch는 그의 「Dialogue on Love」(사랑의 대화)라는 저서에 등장하는 한 화자의 대사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포함한다.“…만일 남성들과의 연합이 애인의 부드러움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남녀간의 사랑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합리적인 것이고 또 사랑에서 우정이 발전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남성들과의 결합은…(사랑과 생식을 관장하는 헬라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총애를 잃고 미움을 받을 것이다…”Dio Chrsostom(40A.D-112A.D)도미티안 황제 통치 초기에 로마로 추방 당했던 Dio는 그의 저서에서,“…비록 여성들이 많지만 이 남성들은 음탕함과 불법을 통하여 남성들로부터 만들어진 여성들을 갖기 원하여 남성들을 거세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행한 종(Breed)의 인간은 여성 보다도 더 연약하고 더 여성다웠다.”라고 전하면서 다른 곳에서 좀더 구체적이고 유명한 사례로써 67A.D.에 네로는 그의 두 번째 아내 Poppaea Sabina가 죽은 후에 그의 남자 애인 Sporus를 거세시켜서 그의 이름을 Sabina라고 고쳐서 그와 정식 결혼을 했다고 전한다.非 크리스천 도덕관 배경Seneca(4B.C.-65A.D.) 와 Plutarch(46A.D.-120A.D.)V.P. Furnish는 이상의 사료들을 인용하면서 Seneca는 동성애를 추악한 형태로써 하는 하나의 ‘착취’로 보았으며 Plutarch의 텍스트에서도 역시 “자연스럽지 않은 것”에 대한 전형적인 스토익적 반감이 반영되고 있음을 감지해내고 있다.Dio ChrsostomV.P. Furnish의 연이은 분석에 나타난 Dio의 동성애에 대한 도덕관은 좀더 상세하고 투철한 편이다. 근본적으로 Dio는 Seneca처럼 동성애의 본질을 ‘착취’라고 동일하게 정의했으나 우리가 다소 관심 있게 봐야 할 성윤리적 관점에서는 “sus and the Roman Christian Community에서 소개되는 2가지의 상황 설정에서도 로마서가 유대인을 결코 배제하고 쓴 책이 아님을 볼 때 바울이 언급하는 양심의 작용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도 그 대상에 넣고 있음은 물론 상당한 적극성을 띤 진술이라 할 수 있다.바울의 서술에 있어서 ‘양심’은 그만큼 중요한 지위를 획득하고 있지만 정작 양심이라는 단어는 히브리 어휘로의 번역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V.P Furnish는 바울이 말하는 양심은 전적으로 헬레니즘 세계 속에서 당시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개념의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바울의 인간학 곧, 몸에 대한 그의 인지 개념을 간과했기 때문에 안게 되는 오해로 보인다:희랍어의 양심(suneidhsi이란 단어가 히브리 어휘로써는 없다고 하지만 구약 성서에서 곧잘 인용되는 명시적 언급인 사무엘상 24:5의 ‘that David's heart smote him(Kjv, 마음을 친다)’와 시편 25:17 ‘The troubles of my heart(Kjv, 내 마음의 고통)’ 이라는 표현들 외에도 금번 연구에서 발견한 이들보다 훨씬 더 확실한 법전적 의미를 동반하는 예시로서 사르밧 과부의 진술 부분을 제시하는 바이다. 열왕기상 17:18에 나오는 이 “to call my sin to remembrance(내 죄를 생각나게 하시며)”라는 절을 통해서 우리는 그 자신의 내면 안에서 이미 법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롬2:15) ‘양심’의 구약적 개념을 뚜렷하게 청취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채택되고 있는 ‘양심’은 V.P Furnish의 주장처럼 헬라의 전유물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며, 더구나 동성애와 같은 강도 높은 시대적 변이를 상대로 맞서야 하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결코 소극적이지 않은, 대단히 적극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도구(Tools)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V.P. Furnish가 그 어휘 안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던 까닭은 히브리 개념의 육체에 대한추론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율법의 성문법전들이 담아내고 있는 현시적인 죄의 감각을, 자신 만의 보다 근원적인 대체-법전 도구인 바로 ‘양심’에 이처럼 고스란히 재구성하고 있다는 얘기이다.V.P. Furnish의 또 하나의 중대한 오판은 로마서의 용도가 이방인 수신전용이 아닌 “모든 사람”이라는 상황 전개를 들면서 바울의 동성애 관련 구절들을 명시적인 동성애 교도 목적구가 아닌 우상숭배에 관한 포괄적 목적구 곧, “동성애는 우상 숭배로 이끄는 악들 속에 포함된 성적 부도덕의 하나”쯤으로 논구를 흐려 놓고 있다는 점이다. New Perspective 관점에서의 로마서 수신자가 분명 “모든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대와 이방”이라는 1차적 교착지를 결코 초월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하는 “모든 사람”이란 자연법에 입각한 “모든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믿음으로 투쟁해서 완성해내는 “모든 사람”이기 때문이다.롬 1장에서 밝히고 있는 바울의 교도를 다시금 새겨 보면 “핑계치 못할” 그것을 인하여 더러움과(26) 부끄러움과(26) 상실한 마음대로(28) “내어 버려 둠(방치)”을 당하게 되고 그 내어 버려 둠의 결국에 맞이하게 되는 것이 바로 순리를 역리로 바꿔 쓰는 여성 동성애(26)와 남성 동성애(27)라는 최종 귀결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동성애이다.결코 자연학에 근거를 두었다거나 헬레니스틱 도덕관에 입각한 윤리가 아니라 전통적인 율법관에 입각한 매우 강도 높은 바울 만의 독특한 교도 방법이었던 것이다.동성애자들의 성서 이해 배경V.P. Furnish의 이러한 경향은 그가 의도했든 아니했든 현대 동성애자들 및 친동성애자들에게 큰 지지대로 작용하고 있다.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동성애를 금하는 가장 손쉬운 성경구절로서 강력한 형벌 내용을 담고 있는 레위기 18:22이나 20:13를 떠올리지만 정작 그네들은 레위기에 나타나는 금지법은 그것을 하나의 성결법이라는 큰 테두리로 이끌어 관한 소개를 담고 있는 것이다.산 제물과 지체성령이라는 특정 위격을 가현 예수와 혼돈하는 R.E. Brown과 같은 학자들의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문제이겠지만, 바울의 인간학적 용어인 몸과 지체에 관한 사용은 대단히 일관성이 수반된다.V.P. Furnish는 12:1-2을 1:16-17에서 강조된 바 있는 주제를 다시 확인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단순한 교리적 재확인이라기 보다는 성령의 보다 현상적인 구체적 사역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바울의 전 서신에 걸친 표현 양식 중의 하나인 ‘몸’이라는 주제어는 단순한 도덕적 협동을 수식하는 용어가 아니라 8장에서 언급한 성령의 구체적 사역의 방식에 대한 현상학적인 설명인 것이다.바울에게 있어서 “동성애”는 그리스인들의 관념처럼 선천적인 것도 아니고 사회학적인 병리 현상도 아니며 지극히 히브리적인 개념의 “몸”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신각적인 병리 현상이다. 인간의 “몸”은 양면성이 있어서 그 “양심”이 상실됨에 따라 (동성애 같은) 최종적인 죄를 향한 적극적인 병기가 되기도 하지만(롬 6:13), “몸”과 “성령”이 어떻게 구체적인 관계를 이루느냐에 따라서 “산 제사”를 겸한 “의의 병기”로 화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12:1)특히 바울은 이러한 거듭난 “몸들”을 하나로 보았다. 지극히 히브리적인 개념에서다. 해부학이나 자연 과학에 팽배한 헬라 사상에서의 몸은 자기를 남과 구별하는 경계적 개념이고 또 그것은 자기를 다른 자아와 또 다른 물체와 구별하는 경계였지만 히브리적 사고의 바울에게 있어서 몸의 개념을 한 개체를 다른 개체와 구별한다는 것보다 서로의 사귐에서 보았다. 개체는 하나님께 대한 전체적인 책임에서 존재하고(렘 31:29; 겔 18장 등) 따라서 인격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관계에서 다른 인격과 사귄다고 본 것이다.따라서 바울이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12장의 윤리는 바로 우리 “몸”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나가는 말바울이 율법대신 양심을 들고 나간 이유는 당시 사회를 상대하기에는S 9-
    사회과학| 2005.06.15| 9페이지| 3,000원| 조회(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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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서] 로마서 3장에 나타난 어떤 자는 누구인가
    Monday, April 25, 2005Jed J. Lee-로마서 3:3의 ‘어떤 자’들에 대한 소고-1_ 본문Rom 3:3개역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GNT ti, ga,rÈ eiv hvpi,sthsa,n tinej( mh. h` avpisti,a auvtw/n th.n pi,stin tou/ qeou/ katargh,seiÈKJV For what if some did not believe? shall their unbelief make the faith of God without effect?Rom 3:8개역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받는 것이 옳으니라”GNT kai. mh. kaqw.j blasfhmou,meqa kai. kaqw,j fasi,n tinej h`ma/j le,gein o[ti Poih,swmen ta. kaka,( i[na e;lqh| ta. avgaqa,È w-n to. kri,ma e;ndiko,n evstinÅKJV And not rather, (as we be slanderously reported, and as some affirm that we say,) Let us do evil, that good may come? whose damnation is just.2_ 바울의 대적자바울에게는 복음외적 이교도(행 19;26-29)나 정치적 권력자들 외에도 광적인 성령주의자들(고전 14:1-40; 고후 11:6) 또는 영의 부활만을 강조하는(고전 15:12) 등의 복음내적 대적자들도 있었으며, 신비 종교나 유대교를 혼합하여 복음을 흐려 놓는 이단자들도(골 2:8-25) 그의 주요 대적자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 및 철학과 견주는 궁극적인 대적자는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로마서는 순서 나열에 관계없이 이러한 논지를 직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3_ 문맥과 단어를 통한 탐색로마서 2장 중반부부터가 유대인과 율법을 향한 첫 번째 포구임을 감안하면 3장을 시작하는 접속사 ‘그런즉(then)’은 다음 문맥이 역시 유대인에 관한 디테일한 묘사임을 예고한다. 그런 관점에서 3장 3절에서 가급적 절제를 함유한 이 지칭어 ‘어떤 자(tij)’는 유대인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8절에서의 이 어떤 자에 대한 반복 진술 문장에서 좀더 확신을 가질 수 있는데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8) 할 때에 사용된 blasfhmou,meqa(be slanderously reported)는 이미 예수님과 유대인 간의 논쟁 속에서 11회에 걸쳐서 등장하는 예수의 유대적 죄명 곧 쌍방간의 ‘모독(blasphemy)’에 관한 표현 아류이다. 서로간의 불경스러움을(blasphemy)고소하고 있는 이러한 서술은 이들이 어느 정도 최소한의 사상적 공동 범주에 맞물려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유대교-유대인 또는 유대-크리스천일지언정 적어도 그 외적 대적자는 아닐 것이라는 논지이다. 이로써 ‘어떤 자’에 대한 범위는 유대교인 또는 유대-크리스천의 범위로 축소되었다면, 그렇다면 이 ‘어떤 자’는 둘 중 누구일까?그것은 본문인 3장 3절 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쩌하리요..”라는 말은 즉 그들이 ‘믿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무엇을 믿었을까? 유대교적 유일신을 ‘믿는다’, ‘안믿는다’라는 식의 표현은 성경에서 본 일이 없다. 따라서 믿고 안믿고의 이 축소된 범주는 같은 크리스천임을 밝혀주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이 ‘어떤 자’들이란 바울을 견제하는 ‘유대-크리스천’이었던 것이다.
    인문/어학| 2005.05.06| 1페이지| 1,000원| 조회(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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