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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비행 감상문
    ‘아름다운 비행’ 감상‘아름다운 + 비행’라는 제목에 ‘어떤 비행이 아름다운 비행일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냈다. 영화를 보기 전 교수님 던지신 ‘비행’(비행 청소년들을 일컬을 때 말하는 비행)을 들었을 땐, 정말로 하늘을 나는 ‘비행’보다는 일탈의 비행 내용을 다룬 청소년 영화인줄 알았다.영화가 시작되고 진행되는 동안 내가 예상한 내용과는 다른 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주인공 ‘에이미’가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3년전 헤어졌던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불도저가 파괴하로 온 숲 속에서 거위 알을 발견하고 ‘거위들’과 함께 살아가며, 철새인 거위들의 이동을 위해 함께 비행하는 내용의 이야기이다.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단연 주인공 에이미가 ‘거위들’과 함께 남쪽으로 ‘비행’을 하는 장면이다. ‘거위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고 그 결과로 함께 남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노력 끝에 노력의 결과를 얻는 장면으로 왠지 모를 희열과 영화 속으로 감정 이입의 나도 함께 비행하는 듯 한 즐거움을 주었다.또 한편으로는 주인공 ‘에이미’가 어머니와 결별한 후 ‘아버지’에 집으로 와서 함께 지내기는 하나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었지만, 거위들의 남쪽으로 이동과 함께 거위들을 지키고 그들을 위하는 과정, 무엇보다 그러한 모든 과정들의 끝에서 ‘에이미’와 ‘거위들’과 함께 비행하는 장면, 그렇게 ‘비행’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영화를 보면서 가족들이 함께 목표를 두고 하나 되어서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또, ‘에이미’가 거위들을 부모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생명의 위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그리고 ‘에이미’도 그러하고 주인공 아버지도 그러하고 자연을 아끼고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거위들의 남쪽으로 이동을 위해서 자신의 발명품도 처분하고 아낌없이 투자하고 또 어려움과 역경이 닥쳤을 때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흐믓하면 서도 좋았다.
    독후감/창작| 2013.06.13| 1페이지| 1,000원| 조회(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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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1권~10권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제 1권저자의 목적은 우리 주님의 시대로부터 기록 당시에 이르기까지 이어온 많은 중요한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서를 흠 없이 완벽하게 저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안내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도로 의지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정리해 나간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양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육체로 비유하자면 머리와 같은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하나는 육체로 말하자면 발과 같은 것으로서, 바로 이것에 의해 주님은 우리를 구언하기 위해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약한 본성을 취하셨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성부 하나님 외에는 설명할 자가 없고, 그의 선재조차도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부 하나님뿐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그분은 분명 창세전부터 존재하여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그분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경건한 선지자들은 예수라는 이름 그리스도라는 명사를 존중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한 복음은 결코 예기치 못했던 것이나 이상한 복음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전하였던 복음 그분이 죽으신 후에도 더 강해졌던 영향력 있는 복음이었다.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과 오랜 시간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하신 예언대로 유대인의 통치자가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인인 헤롯에게 주어진 때에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당시에 통치자였던 헤롯은 두 살 이하의 모든 아기를 살해하는 잔인한 박해를 하였고, 그 행위에 대한 벌로 육체의 질병을 얻어 고통 중에 사망하였다. 후에 에뎃사의 임금과 예수님이 편지를 주고받고 예수께서 그의 질병을 치유해주겠다는 언약과 구원에 대한 약속을 해주었고, 주님이 십자가 박혀 돌아가신 뒤 다대오가 찾아가 예수의 약속을 이행하고 에뎃사의 임금과 그앙을 갈고 닦아 갔다.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었으나 스스로 자신을 변론하여 무죄선언을 받았으나, 주님의 형제 야보고는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 후에 네로 때에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할 무렵 화를 자초하는 유대인들은 곳곳에서 폭동을 일으켜 모든 민족의 공적이 되어 비참한 학살 대상이 되어 끝없는 환난의 길에 진입하게 되었다.제 3권사도 및 주님은 제자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도마는 파르디아, 안드레는 시디아 요한은 아시아, 에베소 베드로 본도에서 로마,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렇게 복음은 널리 퍼져나갔다.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한 이후, 리누스가 최초로 로마 교회의 감독직을 맡았다. 이시기에는 베드로 전서와 같은 서신서 또한 써졌다.그리스도의 사망이후 사도들 또한 여러 가지 박해와 함께 살해 된 후에 살아남은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또 주어진 계시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 거룩한 이들이 예루살렘을 비웠을 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던 악인들에게 그들을 멸망시키는 심판이 임했다. 이 당시 큰 흉년이 들어 유대인을 어려움으로 몰아넣었다. 자식을 구워먹는 어미의 모습을 통해 끔찍했던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예언하였다. 야고보가 순교한 직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그 후 주님과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만장일치로 글로바의 아들 시므온을 적임자로 선출했다. 베스파시안은 다윗을 족속들을 모두 찾아내라고 명령하였다. 또한 도미티안은 많은 이들을 잔인하게 취급하였다. 도미티안의 때에 거룩한 말씀을 증거하였다는 이유로 사도요한은 밧모 섬에 갇히게 되었고, 또 도미티안은 다윗의 후손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도들은 자신에게 하사된 거룩하고 놀라운 힘을 의지하였으며 스승의 교리를 솜씨 좋고 세련된 문장으로 제출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태와 요한에 의해서 기록된 의견을 남겨주었다.시몬 마구의 후계자인 사기꾼 메난더와 에비온종파 . 결국 아드리안 18년 절정에 달했으며 그 결과로 유대민족은 예루살렘 주변의 지방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칙령을 받게 되었다.교회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인물, 시몬의 후계자인 메난다에게서 나온 사투르니누스와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라는 이단자들을 거짓교리로 미혹했다. 하드리안 황제는 정당한 재판을 거치지 않고서는 기독교인들을 처형하지 말라는 유대인들에게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은 입장을 보였다. 안토니우스 황제에게 저스틴은 기독교를 변증하였으며, 안토닌은 기독교 교리에 관해 아시아 의회에 서신서를 보내었다.이시기에 사도적 교부, 폴리캅이 있었는데 폴리캅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머나에서 순교하였다. 저스틴 역시 그리스도의 교리를 증거하며 순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헤게시푸스는 이 시기에 활동하였고, 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 크레테의 감독 피니투스, 필립, 아폴리나리스 멜리스도 이 시대에 활약한 인물들이다. 또 무산스, 무데스투스도 이 시대의 저술가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이레니우스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사도들의 전승으로부터 받은바 신앙에 관한 건전한 견해들을 자신의 저서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이단자 타티아누스가 이시에 활동하였다.제 5권고올 지방은 싸움의 무대였다. 이 고올 지방 사람들은 오로지 신앙을 위해서 이 싸움의 무대에서 고난을 받았다. 특히 이 지방에도 리용과 비엔나가 다른 도시들보다 뛰어났다. 이 두 도시 사이로 론 강이 흐르고 있어 종교의 흐름을 막고 있었으나 훌륭한 교회의 순교자들은 아시아와 브리기아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성도들이 당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고난과 그 안에서 고난에 대한 성도들의 올곧은 믿음과 신앙의 태도를 담아냈다. 그들은 가진 고난과 핍박에 의해서 심지어 시신조차도 땅에 묻지 못할 정도로 핍박을 받았다. 순교자들을 비롯한 수순한 신앙을 가진 자들은 배교자들에게 그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여 다른 순수한 신앙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며 또 이러한 신앙의 자세로 교회에 슬픔을 남기지 않고 형제들에게 불화를 가지 다른 견해가 있어서 논란이 되었고, 금식에 대하여는 말이 나왔는데, 유월절 금식을 유월절에 끝내야 하고 주님의 부활의 신비는 다른 날이나 주일날에 축하되어야 한다고 결정 하였다. 그러나 아시아 교회는 아무것도 덧붙이거나 감하지 않고 원래대로 지키는 것 즉 14일에 지킬 것을 고집하였다.제 6권세베루스 황제가 교회를 박해했을 때, 도처에 있는 모든 교회에서 신앙의 용사들은 훌륭한 증거들 나타냈다. 이들 중 한 사람인 에레오니데스는 오리겐의 아버지였다. 그는 어린 아들을 두고 참수 되었다. 오리겐은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대단히 젊었을 때부터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 오리겐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중에 플루타크, 세베루스, 헤라클리데스, 헤론, 여인 헤라이스, 포타미애나 등이 순교를 하였다. 이 시기까리 클레멘트는 판태누스는 뒤를 이어 초보자 교육을 맡아 수행하고 있었다. 또 역사가 유다가 다니엘서에 기록된 70주에 관해 논하였는데, 당시 박해가 심하여 영향력이 컸다. 또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초심자 교육을 맡아 행하며 신앙과 금욕의 증거를 강력히 나타내는 행위를 실천했다.나르시수스가 물을 기름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였다. 나르시수는 단호하고 한결같은 성품으로 이러한 성품을 견디지 못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서 나르시수스를 행하려 했으나 결국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다. 나르시수스의 은거로 인하여 디우스가 잠시 교회를 다스렸으며 게르마니오가 그 뒤를 그리고 그의 후임으로 고르디우스가 교회를 다스렸다.오리겐은 암브로스의 권유를 받아 성경 주해서를 저술하며 어떤 교회 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팔레스틴을 경유하여 그리스로 가게 되었다. 그는 팔레스틴의 가이사랴에서 그 지방 감독들에 의해 사제로 임명 되었다. 오리겐은 또 알렉산드리아에서 주석을 저술하고 성경에 대해 개관 하였다.알렉산더 황제가 13년간 제국을 통치한 후에 그의 후임으로 막시미누스가 황위에 올랐다. 그는 많은 신자들로 구성된 알렉산더의 가문에 대한에서 살펴온 오리겐이 70세로 사망했다. 디오니우스는 헤르마몬에게 보낸 서신에서 갈루스가 데시우스의 사악함을 깨닫지 못하여 자신도 데시우스의 전차를 밟고 있다고 표현했다, 갈루스는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위해 드린 기도까지도 박해하는 사악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이단에 빠졌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돌아오는 문제에 대해서 논쟁이 되었다. 칼타고교회의 감독이었던 키프리안은 한번 이단에 빠졌다 사람들은 세례를 받아 자신들의 오류로부터 정결케 되기 전에는 어떤 조건으로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교회 감독 스데반은 예부터 사용 되어온 전승과 어긋나게 되는 새로운 방법은 안 된다며 크게 분노하였다.디오니시스는 이제 박해가 진정 되었으므로, 박해 뒤에 평화를 찾았으니 모든 교회는 노바투스가 고안해낸 것들을 반대하고 서로의 평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 당시에 사벨리우스의 이단이 활동하였다. 디오니시우스는 이 사벨리우스 이단에 대하여 불경한 것,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 대한 모독, 불신으로 가득한 것으로 말하였다.노바투스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노바투스를 꺼리는 것은 지극히 당여한 일이다. 그들로 인해서 교회가 분열 되었으며, 혼란에 빠지게 하고 사악한 교리를 소개하였다고 말하였다. 또 이단자들에 의해서 행하여진 세례라고 해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임으로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발레리안 황제에 때에는 여전한 핍박이 이어졌다. 발레리안의 치하에서 지극히 격렬하게 박해가 번져가자 디오니시우스와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 때문에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하다 팔레스틴의 가이사랴에서 프리스쿠스, 말쿠스, 그리고 알렉산더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크게 빛을 발하여, 짐승들의 먹이가 되어 순교하였다.그 후에 발레리안이 물러나가 그의 아들 갈리에누스때에 와서 평화가 찾아왔다. 발레리안의 아들 갈리에누스는 비교적 기독교에 대한 핍박을 풀어주었다. 이처럼 모든 지역에였다.
    인문/어학| 2013.05.23| 8페이지| 1,000원| 조회(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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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맥스 루카도 `예수님 처럼` 감상문
    예수님처럼을 읽고'예수님처럼',평소에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여러가지 상황을 대면하게 되면 '만약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특히 리더를 하게 되면서 막막하거나 타계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만약,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더 많이 던지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 무엇보다 나의 한계를 바라보게 되고 나의 연약함을 보게 될때, 그렇게 직면하게 될때, '아...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 내가 어서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었다그렇게 문뜩 문뜩 난 일상속에서 '예수님처럼'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또 리더라는 자리는 나를 그렇게 소망하게끔 만드는 자리였다. 그랬던 내가 이 '예수님처럼'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웬지 모를 감탄속에 놓일수 있는 기회였다. 또 예수님이라는 분의 매력에 다시 빠질수 있었다.책에서는 '예수님의 마음'에대해서 말해주며 예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예수님의 경우를 보이며, '용서하는 것', 그리고 그 용서의 신비를 용서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문둥병자의 예를 들며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알려주시며, 그 손길을 보인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음악을 듣는 것' 그 음악을 듣는 법, 그 음악을 듣기 위해 귀를 여는 법에대해 알려준다. 또 다음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라는 파트에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 그래서 그분과 연합, 그분의 임재 안에서 충만히 누리며 사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다음으로는, '변화된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또 예배의 중요성을 통해서 얼굴이 바뀌는 모습에대해서 말하고 있다.이렇게 이책의 전반부는 이러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이책의 절반, 전반부의 내용은 이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져 있다.예수님처럼이라는 책을 앞부분만 읽었지만 책을 읽으며 예수님이라는 분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간이였다. 또 그분의 깊이를 새삼 보게 되고, 그분의 그 깊은 깊이에 빠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끊임없이 예수님처럼 예수님과 같이 예수님을 닮아라 권하고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귀 기울일수 있는 시간이였다. 그분의 모습을 닮고자하는 갈망함이 생기고, 이땅에서 그분이 하신것과 같은 삶을 살고자하는 마음이 생기는 시간이였다. 앞으로 남은 책을 읽고 또 읽은 내용을 묵상하며 반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예수님 한분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그분을 닮고자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생기는 시간이였다.후반부의 ‘예수님처럼’을 읽으며, 전반부와 동일하게 은혜와 묵상을 요하는 내용을 접할수 있었다.‘7-골프와 샐러리’‘8-오직 진리만을’‘9-마음의 온실’‘10-스레기더미에서 주은 금’‘11-하늘에서 잔치가 열릴 때’‘12-끝까지 강하게’를 비롯하여 ‘맺음말-예수를 바라보며’까지 읽었을 때, 막연히 ‘좋다.’라는 생각과 함께 ‘예수님과 같이 되고 싶다.’ ‘그분이 걸은 길을 보이신 길을 따라 걷고 싶다.’‘나도 그렇게...’라는 생각이 들었다.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먼저 책에서는 ‘초점이 분명한 마음’에 대해 말한다. ‘초점이 분명한 마음’은 분산되지 않고 올바른 과녁을 향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말한다. 이 것을 책에서는 곧 ‘PLAN,(Plan, Longings, Abilities, Now)’라는 표현으로 우리의 마음이 인생이 올바르게 초점을 두고 있는지 묻는다.다음으로는 ‘정직한 마음’에 대해 말하는데, 여기서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그리스도의 증인이고,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거짓할 수 없는 분이시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짓의 대가와 우리가 거짓되지 않기 위하여 책임에 직면하는 것에 대해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말하며 진실을 말하고 진실대로 말하며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고 권하고 있다.또 다음에서는 마음을 온실에 비유하며 ‘순결한 마음’을 말하고 있는데, 이 마음의 온실을 잘 가꾸기 위하여 올바르고 귀한 ‘씨앗’을 뿌리며, 이 마음을 지키고, 또 그를 위하여 마음의 ‘문간’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있고 순결하게 잘 보존되어져 있을 수 있도록 하라고 권하고 있다.다음으로 ‘희망의 찬 마음’에 대해 말하는데, 이 부분에서 쓰레기에서 금을 찾는 것에 비유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며 그분이 마치 비유속의 쓰레기와 같았던 상황 속에서 금을 찾을 수 있는 금을 볼 수 있는, 그 분이 바라본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다.또 ‘기뻐하는 마음’에 대한 내용을 말하며, 천국에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을 때, 가장 기뻐하며 잔치가 열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완전한 걸작품이 천국과는 다른 구원 받기 전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와 가장 기뻐하는 그 잔치, 파티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마음에 대하여 말한다.
    독후감/창작| 2013.01.01| 2페이지| 1,000원| 조회(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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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입은 치유자 독서감상문
    책을 읽기 전에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제목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삿9장, 11장에 나오는 아비멜렉과 입다를 생각해보며 똑같은 상황 첩의 소생으로 상처를 안고 쓴 뿌리가 되어 상처 입은 사람으로 살았던 아비멜렉과 상처를 치유 받고 상처 입은 치유자로 민족을 살리며 살았던 입다가 생각났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사역자로 부르심 받아 일할 때 자신의 마음으로 직접 경험한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이용되는 방법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사역은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이 책을 읽고 난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데 도움 되는 좋은 길이 되길 바람이었습니다.네 개의 열린 문들로첫 번째 문은 고통 받고 있는 세상의 상태(1장)두 번째 문은 고통 받고 있는 시대의 상태(2장)세 번째 문은 고통 받고 있는 개인의 상태(3장)네 번째 문은 고통 받고 있는 사역자의 상태(4장)으로 되어있습니다.1장에서핵인간이 당면한 곤경과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방법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으로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것이고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예수님만이 여전히 핵인간의 해방과 자유의 길이시면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의 주체하고 여깁니다.2장에서는내일의 크리스천 리더십은 내일의 세대가 공통적으로 갖는 적어도 3가지 특성 즉 내향성(inwardness) 아버지의 상실(fartherlessness) 그리고 강박성(convulsiveness)에 의해 결절될 것이라 보며,내향적 세대는개인적인 것에 절대 우위를 부여하는 세대이며 자아속으로 움츠러드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세대이며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세대이므로 개인주의, 반권위주의 적이고 반제도적, 자기중심적, 물질적 안락함 및 욕구와 욕망의 즉각적 만족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아버지의 상실 세대에서는 사람들의 가치는 아버지들로부터 받은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가르쳐왔기 때문에, 자신들의 눈앞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을 믿기보다는 그들 자신이 실패하는 것을 선호하며 아버지대신 또래가 기준이 됩니다.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간다.강박적 세대는그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마음속 깊은 곳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야하며 많은 젊은이 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으며 그들이 기존의 존재 양식을 따르는 것은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불안하고 신경과민에다 정신을 집중할 수 없고 점점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보게 됩니다. 다가올 세대는 자신을 헌신 할 수 있는 비전과 이상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내일의 지도자는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사역자, 긍휼의 사람으로서의 사역자 묵상하는 비평가로서의 지도자로 보고 있습니다. 내면에 계신 하나님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내면에 계신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적 생명의 원천일 뿐 아니라 태초의 혼돈처럼 엄청만 혼돈의 원인일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새로운 내적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때 직면할 수 있는 엄청난 혼란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표현이야 말로 미래의 영적 지도자가 지녀야 할 기본 자질이라고 보며 자신의 경험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확한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고 듣고 만져 본 것들을 먼저 말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실제적으로 도와주는 역할 감당. 가르침은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경험을 정확히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확고하게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긍휼의 사람으로서의 사역자.미래세대가 내향적 세대로서 정확한 표현을 요구하며 아버지를 상실한 세대로 새로운 종류의 권위를 찾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권위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권위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긍휼’이라는 말이 적합합니다. 긍휼은 권위의 핵심이자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지도자는 미래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 주었던, 그 긍휼의 마음을 사람들이 신뢰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긍휼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긍휼의 권위는 인간이 형제를 용서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아버지를 상실한 세대는 자신들의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줄 수 있고 자신들의 좁은 마음의 문을 열어 줄 수 있으면, 용서가 인류에게 주어진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형제들을 찾습니다.미래의 사역자는 전문적인 훈련과 조직의 필요성을 통감하며 사역에 있어서 전문성을 갈망한다는 것도 이해 살 수 있지만 긍휼이 없는 전문성은 용서와 하나님의 왕국을 진시되지 못한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가 묵상하는 비평가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고통 뒤에는 위대한 것 즉 우리가 그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일상의 일들 속에서 확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래의 기독교 지도자는 기도의 시간, 기도해야하는 사람, 항상 기도해야하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구체적 이유는. 그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혼란으로부터 빠져나와 그들도 명료하게 인식하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비판적인 묵상을 통해 이 세대의 강박적인 파괴성을 다가올 새 세상을 위한 창조적 사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3장의 고통 받고 있는 개인의 상태리더십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창조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두 사람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단순한 형태의 대화 속에서도 리더십은 삶과 죽음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존과 병원에 입원해 있는 헤리슨씨의 경우를 들어 대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헤리슨씨의 상태를 보면 존이 헤리슨씨를 도우려 했던 때는 비인격적인 환경 속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믿음과 소망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아무도 없고, 고된 일만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존은 비인간적 환경에 처한 헤리슨씨가 죽는 것과 사는 것 모두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헤리슨씨는 심리적 마비상태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헤리슨씨 같은 사람들을 마비상태에서 해방시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내일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헤리슨씨를 내일로 인도하는 방법에는 헤리슨씨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또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어떻게 헤리슨씨를 내일로 인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비인격적 환경가운데 놓여 있는 사람에게 인격적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헤리슨씨의 ‘아무것도, 아무도 없어요.’ 하는 말에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며, 진정한 관심의 표시로 그를 만져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중요한 의미를 소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존이 헤리슨씨의 회복의 욕망을 강화시키고 삶과 투쟁하고 있는 미약한 그의 힘을 보강해줄 수 있었다. 헤리슨씨의 그릇된 자아상에 대해 정면 공격을 가함으로써 삶에 용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었다. 존이 “저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내일도 모래도 여기에 있겠습니다. 당신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는 한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가 쇠약한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육체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존이 내일의 문턱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헤리슨씨는 다음날을 기대했을 것이고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에게 협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시간 정도로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로 기다림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맙시다. 사랑을 영원할 뿐 아니라 눈 깜짝할 사이에 생길 수 있습니다. 존은 헤리슨씨의 내일이 됨으로써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독후감/창작| 2012.04.25| 4페이지| 1,000원| 조회(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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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대교_묵시사상
    Ⅰ서론Ⅱ본론1.묵시사상의 의미2.묵시사상의 기원3.묵시문학의 의미4.묵시문학의 유형Ⅲ결론Ⅰ. 서론유대교 묵시사상(Apocalypticism)의 ‘묵시’라는 단어는 신약성서의 묵시서인 요한계시록의 첫 번째 말로서 나타나는데, 「드러내 보임」 또는 「개시」라는 의미이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 단어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계획의 성취를 가리키고 있다.묵시라는 용어는 요한계시록에 차용되어 BC200년에서 AD100년 사이에 보이는 모든 유대교의 문학양식들에 사용 되었다. 최초의 묵시서는 다니엘서이며 이후의 묵시서들은 다니엘서를 모방하여 쓰였다.또한 묵시적이란 용어는 두 개의 분명한 사실들, 즉 기록들의 묶음과 그것들이 담고 있는 종말론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고 있다. 묵시적이란 용어에 대한 이들 두 개의 사용들은 분명히 구별되어져야 한다.) 또한 성경의 묵시서로는 다니엘서 후반부 부분과 데살로니가 전후서, 대표적인 요한계시록 등을 들 수 있고 위경에 나오는 묵시서로는 베드로묵시록, 바오로묵시록, 야고보묵시록, 토마스묵시록, 스테파노계시록 등이 있다.유대교 묵시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유대교 묵시사상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문학, 즉 묵시 문학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이 묵시 문학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Ⅱ. 본론1.묵시사상의 의미묵시사상은 특별한 운동들이 만들어 낸 사상체계로서 구체적인 종말론적 관점을 바탕으로 수립되었는데, 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우주와는 반대가 되는 상징적 우주를 연상하고 있다. 이런 상징적인 우주는 반대되는 그룹들과 신들과 관련해서 특별한 공동체의 정체를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며, 또한 종교적 소망과 소회의 경험 간의 모순을 해결함에 있어서 궁극적 의미를 오로지, 곧 구원받게 될 우주적 영역에만 조화시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2. 묵시사상의 기원‘묵시시상’은 그 이름의 출처가 외경의 일괄적인 별명이고, 실상은 신구약 중간기의 가장 유행했던 문서의 종류,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문서의 성격을 의미한다. 주후 70년 유대인의 대 항거라는 전대미문의 대 홍역을 치르고 난 후, 유대인 당국자들에 의하여 경전에서 일괄 제거된 문서들로, 그 분량이 경전에 들어간 책보다 많았고, 유대 공동체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민족적인 사생결단의 항거, 참혹한 최후를 맞은 후, 사형선거를 받은 책들이다. 묵시문학을 제거하는 작업에서 유대교 당국자들은 계시의 시대를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에스라 이전 시대로 닫고 못 박았으며, AD 1세기의 유대인 사가 F.Josehus는 "아닥사스왕 시절, 즉 에스라 시절에서 우리들의 시대(AD 1세기)까지의 만사가 이미 기록되었으며, 예언자들의 정확한 승계가 끝났으므로, 그 책들은(외경+위경)그 이전 책들과 같이 취급받지 못하였다"고 하였고, 탈무드에도 "누구든지 이 경전외의 책들을 읽는 자는 내세에 분깃이 없는 자중 하나라"하였다.묵시사상에 대한 연구는 BC 2세기의 다니엘서를 묵시의 시작으로 보는 방법에 크게 좌우되었다. 이 방법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묵시사상은 BC 2세기경의 헬라화 현상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발과 고통, 탄식 및 가난 등의 사회-정치-경제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방법은 전반적으로 묵시가 예언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긍정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묵시와 예언 사이에 불연속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아울러 이 방법은 이스라엘의 묵시에 미친 외래 사상의 영향, 특히 이스라엘이 거의 2세기 동안이나 지배를 받는 동안에 알게 된 페르시아 종교의 이원론이나 헬레니즘의 영향을 강조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스라엘'의 묵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묵시가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 어떠한 배경 아래, 왜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한다면 이스라엘 묵시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묵시가 BC 2세기의 상황 속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한다. 오히려 묵시는 포로기 이전의 예언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오랜 발전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 것이다.)2. 묵시문학의 의미이 단어는 묵시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뜻을 전하기 위해 흔히 사용했던 단어, 수단 중의 하나인 문학적 장르를 나타낸다. 묵시문학은 극도로 묵시적인 문서들 가운데서도 볼 수 있는 배타적이거나 심지어 지배적인 장르는 결코 아니고, 다만 언약, 구원과 심판의 말씀, 그리고 비유 등을 포함한 다른 많은 장르들과 더불어 찾아볼 수 있는 장르이다. 그러므로 묵시사상의 사회적?종교적 현상을 무비판적으로 묵시문학이라는 문학적 형태와 똑같은 생각해서는 안 된다.)3.묵시 문학의 기복적인 유형1)이원론적 유형묵시 문한은 본질적으로는 이원론이다. 이것은 정신과 물질을 나누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이 아니라. 우주에 있는 두 개의 반대되는 인격화된 세력들 즉 선한 신과 악한 신으로 나눈 우주적인 이원론이다.) 고대 페르시아의 사상에서 볼 때 두 개의 상반되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은 동등한 것이었지만 빛과 어둠처럼 서로 다른 것이었다. 물론 유대교의 사상에서 볼 때 여호와는 선신이지만,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하는 사탄은 하나님의 적대자이며 인간의 억압자인 악한 신이였다. 유대교의 전통적인 유일신관 때문에 유대교의 이원론은 페르시아의 사상에서처럼 그렇게 뚜렷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보다 열등하였음이 분명하며 때로는 타락한 천사로 간주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관장하시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지배한다. 에스라 4서에서는 이원론이 약화되어 있다. 그러나 거의 동시대의 것인 「아브라함의 묵시서」에서는 그 이원론이 훨씬 더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탄은 하나님의 적대자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 동시에 우리를 유혹하는 자 억압하는 자로 크게 활개 치지만 결코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이다.) 이러한 사고 유형들을 우주적 이원론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2)종말론적 유형묵시 문학에 있어 종말론은 본질적인 것이지만 묵시문학과 종말론이 같은 말인 것을 아니다. 또한 묵시사상의 종말론적 유형에 있는 종말론적 요소는 이원론과 결합된다. 여기에 별개의 두 개로 부니ㅚ는 시대들이 있다. 둘째시대는 첫째시대 다음에 오는 파생된 시대가 아니라 새롭게 창조된 시대이다. 첫째시대, 즉 인간 역사의 이 현시대는 악한 세력의 지배하에 있다. 따라서 첫째 시대는 악하고 타락하였다. 또 첫째시대의 많은 사람들 또한 악하고 타락하여 많은 사람들이 악한 세력, 사단의 추종자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선한 자들은 같은 시대의 사탄의 추종자, 즉 악한 자들에게 박해당하고 괴롭힘 당하며 심지어는 죽기까지 할 것이다. 이런 시대의 선한 자들은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낙, 희망은 하나님이 곧 능력과 힘을 가지고 오셔서 이 세상에 미치는 이 사건 속에서 사탄과 싸우는 것이다.하나님께서 사탄과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오셔서 다스리시며, 하나님을 따르는 선한 자들에게 믿음과 충성의 보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 하에 영원한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그래서 묵시적인 문학은 죽음 후 적인 것이고 현제시대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며, 앞으로 올 시대에 대해서는 희망적이고 기대 적이다. 그래서 묵시사상은 현재시대에 확실한 악한 존재에 대해 설명해주며, 선한 자들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사탄을 멸망시키시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그 시대가 오는 것, 그 시대가 선하고 의로운 시대이다.)
    학위논문| 2012.04.25| 5페이지| 3,000원| 조회(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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