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서 론현대의 사회는 다양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사회를 규정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이에 따른 대표적인 예로는 포스트모던 사회, 정보사회, 후기산업사회, 글로벌 사회(global society), 컴퓨터 사회, 네트워크 사회 등을 들수 있습니다. 이들 개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근저에 공통적인 요소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기술 혹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입니다.이처럼 현대 사회가 지식정보사회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21세기 인류가 낳은 인터넷 문명과 문화는 현대인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의 변화를 포함한 삶의 방식 전반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선교나 교화 방법상의 형태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종교계에서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그 대안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이버스페이스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 문명과 문화는 그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와 속성, 정보의 양과 질이 새로운 특성들을 가지고 현실적인 삶에서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에 종교계에서 지금까지 통용되어 왔던 기존의 교화 접근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구체적인 대안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지만 각 종교계에서는 이미 새로운 환경인 사이버상의 선교 ? 목회 ?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제 1 절 문제제기문제제기의 원인은 인터넷상의 자유스러운 정보의 공유, 자유분방한 의사개진과 자기표현, 열린 마음과 정보, 규제와 단속이 없는 네트워크를 통한 자유로운 정보흐름의 보장과 컴퓨터와 정보매체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이 용이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접속하여 이용할 수 있는 단속 없는 개방형 네트워크의 구축되어 전세계 어디서나 누구나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하여 원하는 정보를 창출하고 유통하며 획득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구축이 되어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 중심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시회체계의 통합과 유지에 공헌한다고 합니다(홍승직 외, 1989).1-2. 종교의 역기능종교의 역기능으로는 첫째, 종교는 부당하게 주어진 현실에 대한 항거를 억제하고 사회변동을 저지하기도 하는데 맑스는 종교를 아편으로 비유하면서 종교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지적하고, 이는 종교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정당화하며 피지배계급에게 내세의 유토피아를 제시함으로써 현상을 유지하고,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로부터 피지배계급의 관심을 돌려놓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종교적인 신념은 인간을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개인의 자주적인 능력 개발을 억제하기도 합니다. 셋째,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유발시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있고, 가깝게 로는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 민족 사이의 종교 갈등으로 빚어진 이들 전쟁의 결과는 실로 엄청났으며, 보스니아에서는 ‘인종청소’라는 참혹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넷째, 기존의 사회질서를 해체하거나 전복시키는 데에도 종교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는 이란의 호메이니는 회교원리주의를 내세우며 팔레비왕조를 축출하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종교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해체하거나 전복시키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종교의 역기능은 대체로 의도하지 않은 잠재적 기능으로 순기능이 특정의 경우에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종교의 사회적 기능은 불확실성이 나날이 커지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제공해 주고, 파편화 ? 원자화되어 가는 개인들에게 공동체의 울타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1-3. 인터넷의 순기능과 역기능제 2 절 종교의 기능 변화:과학기술의 발달과 사이버스페이스의 출현종교의 기능 변화는 위에서 살펴본 기능들이 사라지거나 새로운 것이 추가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가 실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종교의 기능이 약화 또는 강화되었느냐사이트가 존재하지만 결속력이 기존의 현실 세계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는 것입니다.또한 이용자들이 인터넷의 익명성과 개방성에 편승해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종교 사이트를 어지럽히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들이 공감하고 있듯이 사이버 공간은 선교의 신대륙이라고 합니다. 종교들은 선교의 불모지인 이 무한대의 땅에 복음을 심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지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록 벽돌 건물과 종탑은 없지만 다수의 종교인들이 종파별로 모여 살아가고, 인터넷 공간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종교의 인터넷 사이트에 비방과 욕설을 늘어놓고, 그로 인해 신앙 공동체에 불신을 조장하는 행동은 종교 간의 화합과 발전을 훼손하는 것밖에 될 수 없으며 그 같은 행동은 극소수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으나 정보의 접근성과 전파력이 다른 매체보다 뛰어난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감안하면 가볍게 보아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종교들의 인터넷 사이트, 그 중에서도 쌍방향 정보흐름의 공간인 게시판이 비방과 인신공격, 그리고 소모적 이념논쟁에 멍드는 실태는 인터넷 윤리교육 부재, 교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해부족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종교들은 현재의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의 종교들의 기능을 연구하고 그 특성을 파악하여 점점 종교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세속화 현상을 최소화 하도록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제 3 장 인터넷상에서 종교의 형성 배경 및 종교생활이 글은 인터넷상에서 종교가 형성되게 된 배경과 종교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인터넷과 사이버 공동체의 기본적인 특성들을 검토하고, 그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종교생활의 변화상 및 인터넷이 가지는 종교적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겠다.제 1 절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종교 형성배경최근 10년 사이에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omputer Mediated Communic 가고 있다.1) 이런 변화상은 인터넷을 대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청한다. 이제 인터넷은 단순한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인터넷 이용자들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개개인의 일상생활이 영위되는 생활 세계의 일부분이다.이처럼 대부분의 일이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처리되고, 사회의 주요 이슈와 여론 또한 인터넷이 만들어낸 가상공간에서 생산 유통되고 있는 현실에 사이버스페이스의 비중과 중요성 은 더욱 커졌으며 종교도 무관심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리스도교는 사이버스페이스의 가능성에 가장 빨리 눈을 돌려왔고, 현재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가운데 개신교는 정보통신혁명을 구텐베르크 혁명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하면서, 정보통신혁명의 결과 탄생하게 된 사이버스페이스를 '새로운 선교의 장'으로 활용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그 밖에 종교 단체가 가장 먼저 사이버스페이스에 참여한 방식은 컴퓨터 통신을 통해서였다. 월드 와이드 웹(WWW) 환경 (1989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CERN의 Tim Bernars-Lee가 제안한 것)이 일반화되기 이전까지 동호회 형태로 운영된 것은 천리안, 하이텔, 유니텔 등 주요 ISP(Information Service Provider)들을 통해서였다. (국내에서는 한국 통신이 1994년 6월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상용 서비스를 시작하여 최초의 인터넷 정보 제공자(ISP)가 되었다.) 그러다 웹(Web)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각 종교의 단체나 개인들의 URL개설이 활발하게 이어지며 포털(Portal)에 가까운 URL들이 등장했으며, 오늘날 사이버스페이스 상에 많은 수의 종교 사이트 들이 활동 하고 있다.제 2 절 인터넷과 사이버 공동체의 특성인터넷은 상호 작용성 · 쌍방향성 · 탈시공간성 · 익명성 · 탈맥락성을 기본적 특성으로 하고 있다. 사이버 공동체는 인터넷의 기본적 특성들을 토대로 현실의 공동체와는 다른 특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사이버 공동체는 공간적 구속이 없는 공동체이다. 을 거치면서 ‘보이지 않는 교회’나 ‘신영성운동’ 등의 개념을 만들어내리 만큼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되어 가고 있다.사찰이나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듣고 직접 의식에 참가함으로써 집단적인 종교생활을 영위하기보다는 개인적인 기도나 경전의 이해를 통해 종교생활을 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는데, ‘사이버 교회’나 ‘종교동호회’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인터넷이 신앙심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멀리 떨어져 고립되어 있는 신도들을 묶는 사이버 공동체를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직업상 혹은 다른 이유로 정기적인 예배 참석이 곤란한 사람들에게 사이버 교회는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리고 국내의 인터넷 종교동호회의 사례를 검토해 보면 종교가 네티즌들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이며, 인터넷이 이들의 종교적 욕구 해소나 종교문제에 대한 상호 의사교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이처럼 인터넷은 이용 주체의 의도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용된다. 포교의 수단으로, 종교 활동의 공간으로, 또는 새로운 종교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종교 사이트의 개설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교리나 사상, 혹은 주요 행사에 대한 정보를 게시함으로써 인터넷을 포교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한편 종교 사이트의 이용자들은 제공되는 정보를 활용해 개인의 종교 활동을 영위하게 된다. 멀티미디어를 이용해서 설교를 듣거나, 신앙생활에 대한 상담을 하고, 보다 풍성한 종교생활을 위한 자료를 찾을 수도 있다.쌍방향적 매체라는 인터넷의 기본 속성을 고려하면 동호회의 형성과 같이 사이버 공동체를 통한 집단적인 종교 활동도 가능하다.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익명성과 다양성, 현실의 사회적 제약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탈맥락성은 사회적 주류로부터 소외된 소수의 목소리를 배제시키지 않는다. 인터넷의 이같은 특성을 놓치지 않은 신흥종교들은 교단을 형성하는 데까지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이들에게 인터넷은 더 이상 단순한 포교나 종교 활동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
1. 자연 과정이 비가역적(irreversible)이라고 이해될 때 자연속의 實在가 우연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과학은 연속선상에 있고 신앙은 불연속에 있다. 이는 자연과정이 되돌릴 수 없는 유일무이한 상황으로 이해 가능할 때,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가역적이라는 것은 말 속에 이미 과거 현상이 미래레 똑같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 되고 우연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2. 과학적 방법의 성공이 우리의 사고에 어떤 양향을 미치나?인간복제 등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자연의 영역까지 침범함으로써 종교와 신앙은 검증 불가능하다고 함으로써 과학만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사고에는 자연에 대한 관점을 가져왔고, 신앙을 위한 새로운 연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화 시대에 맞는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왔고, 과학적 물질주의와 기계론적인 사고 방식을 유발시켰다.3. 사물에 대한 종교의 질문와 과학의 질문은? 즉, 관찰방법은?과학은 사물에 HOW라는 현상론적 물음에서 출발하고 사물을 논리적이고 객관적, 추론 가능한 실험을 통하여 경험될 수 있다고 하는 반면에 종교는 사물에 대해 Why라는 본질적인 물음에서 출발하여 개인적 체험과 상징적이고 유비적인 언어를 통하여 사물을 관찰 하였다.4. 과학과 신학은 서로의 관계를 보조적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과학에 믿음이 있어야 가설들을 믿고 탐구할 수 있고 신앙에 과학이 완전히 배제되면 그것은 사이비 종교이므로 과학과 신앙은 서로 보조적이고 상호관계 속에서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Word made flesh와 같이 과학과 신앙은 어떤 의미에서 통합이 가능하며 과학과 신앙은 모두 그 나름대로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서로 반대적인 것으로 보여 독립시켰으나 대화를 통하여 상호 보완적 및 관계를 보조해 주고 있다.5. Biblical Literalism과 진화론?성서적 문자주의는 성서에는 오류가 없다고 말한다. 무류성을 가지고 있으며 믿음을 근거로 하여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Augustine는 과학적 지식과 성서의 문자적 내용이 서로 상반될 때, 성서를 은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고, 갈릴레오도 인간 중심의 언어관으로 성서가 쓰여졌을 뿐이라고 하면서 성서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였다. 다윈은 모든 것이 진화로부터 온다고 주장하여 처음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위협을 미쳤으나 성서 자체가 진화론 적이라고 주장하며 역사적, 문화적 진보에 대하여 설명하였다.6. Jacques Monod의 Reductionism?자연은 목적이 없다. 그냥 우연적으로 태어난다. 우연만이 모든 창조의 기원이 된다. 자연에는 목적이 없으며 사람도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모두 우연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우연만이 모든 창조의 기본이고, 인간은 결국 흙으로부터 왔으므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상처럼 모든 것을 환원주의로 생각했다. 그의 환원주의는 우연론적 생명 발생설로 이어졌고,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환원론적 접근은 생명에 있어 작은 세포들이 모여 생명이 구성되었다고 해석한 것이다.7. Logical Positivism의 진리관이 어떻게 Scientific Materialism을 옹호하는가?진리란 사실과 1:1 대응이다. 즉, 추상적인 관계는 없다. 의미 있는 진술은 검증 가능한 경험적 명제들이다. 그런데 윤리나 종교적 진술은 true or false가 다가 아니다. 그리고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검증할 수 없으므로 가짜 명제들이다. 와같이 모든 것은 다 물질주의에서 온다고 주장함으로써 Scientific Materialism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창시자는 비트겐 슈타인이며 나중에는 바뀌어서 영혼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였다.8. Edward O. Wilson에게 있어서 종교행위의 의미는?자기 행위들은 유전인자와 깊은 관계가 있다. 모든 인간의 사회적 행위는 그 유전인자의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 정신은 뇌의 신경조직의 부수현상으로 설명된다. 종교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메커니즘이다. 결국 종교도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과학적 물질주의에 의해 대체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걱정 없는 사람, 잘 나가는 사람은 종교를 믿지 않고 시련이 많은 사람이 종교를 믿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9. Scientific Materialism의 문제점들?과학적 개념의 그 한계를 넘어서 사용되고 있다. 개념과 이론이 실재 전체를 완전히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 즉, 개념과 이론은 실재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지, 하나의 실재 자체는 아니다. 추상적이고 선택적인 과학적 성격이 무시 되었다. 과학도 선택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과학적 data도 사실은 추상적이다. 과학의 보편적인 법칙들이 결국에는 보편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과학이 가지고 있는 data가 정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모두 정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10. 진화론에 대한 신학자들의 주장은?진보주의적 종교학자들은 진화론 역시 창조의 전과정에서 내포되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성서자체도 역사적, 문화적 진보가 있어 왔음을 받아 들였다.11. Natural Theology와 Theology of Nature의 차이점Natural Theology는 자연에서 신학을 관찰하였고,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제 1의 원인은 하느님이다. 우주의 신비는 완벽한 환경에서 하느님의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 보았고 Theology of Nature는 과학의 측면에서 믿음을 전제함으로써 믿음이 올바른가를 과학이 판단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이 진화하여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바뀌며 자연은 현재도 발전하기 때문에 통합과 화해를 가능하다고 봄으로써 그 차이를 보인다.12.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Karl Barth의 견해는?그리스도 중심론의 입장이며 하느님은 초월자이므로 자연속에 있지 않고 Self-disclosed 즉 스스로 열려 계신 분이다. 종교적 믿음은 신에게 달려있으므로 신의 활동 영역은 과학이 증명할 수 없고, 역사 속에 있다. 따라서 과학은 인간적인 관찰일 뿐이라는 것이다.13. 과학과 종교가 서로 완전히 독립일 수 없는 이유는?과학과 종교가 완전히 독립하면 건설적이지 못하므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 우주의 혼돈을 이해하는데 신앙이 필요하고 신앙 속에 과학이 있다. 과학의 이론이 경험적 data를 해석하고 그것과 상관관계를 맺듯이 종교도 믿음을 해석하고 상관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는 완전히 독립될 수 없다.14.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Karl Rahner의 견해는?과학과 신앙의 내용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상관관계가 있다. 모든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그 안에서는 무한한 존재를 감지케 해준다. 사물은 matter+form 으로서 이러한 물질은 영원으로 진화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교회도 역사의 경험에 따라 변화할 수 있으며 믿음이 과학과 어긋난다면 그 믿음을 다시 생성해야 한다고 주장.15. 과학은 객관적이고, 종교는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Data는 이론에 포함되고 가정도 이론에 맞게 선택적이다. 하지만 선택이라는 것에는 개인의 주관적 의지가 포함되므로 과학이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이론에 쓰이는 모형은 우리가 체험 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므로 이미 인간에는 주관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관과 객관은 강조의 의미가 다를 뿐, 분리되어 지는 것은 아니다.16. 과학의 이론과 종교의 믿음을 형성하는 4 가지 범주는?(1)agreement with data : data와 항상 일치해야 한다. 이론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하다. 진위는 이야기 하지 않고 data와의 일치 여부만 고려함(2)coherence : 이해 가능하고 일리가 있어야 한다(3)scope : 다른 이론에 적용해서도 적합해야 한다. 즉 일반성을 갖어야 한다(4)fertility : 열매(결과)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17. 과학과 종교에 있어서 paradigm?모든 가정들은 paradigm에 독립적일 수 없다. 모든 data는 paradigm에 의존한다. paradigm에는 선택의 규칙이 없다. 주관적으로 선택 가능하다. 즉, 개인적인 취향에 달려 있다. 오류가 없다. 임시 가정으로 paradigm을 보좌한다. 약간의 수정이 가능하며 항상 바꿔나갈 수 있다. 즉, 주관적이다.18. Newtonian Physics에 관한 3 가지 가정?(1) Realistic : 뉴턴의 인식론은 사실적이다. 모든 이론은 관찰자와 무관이다. 질량 ? 속도는 실제 세계의 객관적인 특징이다. 시 ? 공간은 절대적이고 모든 사건은 그 안에서 존재한다. (2) Deterministic : 결정론적이다. 현재의 사실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원자에서부터 우주는 한 법칙에서부터 다루어진다.(3) Reductionism : 환원적이다. 가장 작은 분자의 행위는 전체의 행위를 결정한다. 변화는 부분들의 재정돈으로 부분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자연은 법을 안고 사는 큰 기계이다.19. 시간의 팽창(dilation)은 가능한가? 어떤 방법으로?아이슈타인은 시간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관찰자와 관찰되는 대상 사이의 운동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물체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관찰자가 보는 물체의 시간은 증가하게 되고 이 것을 시간의 팽창이라고 한다. 즉, 물체가 매우 빠른 속도로 운동하게 되면 물체의 시간은 팽창하는 것이다.20. Classical Realism? (고전적 사실주의)자연과 이론은 1:1 대응한다. 뉴턴을 비롯 19C 모든 과학자는 이론이 자연에 대한 모든 묘사라고 설명하였다. 즉 자연 그대로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개념적 모형은 세계에 대한 복사로 세계를 관찰할 수 있는 구조이다. 따라서 개념을 통해 실제 세계를 그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원자 구조의 분명한 묘사는 객관적이고 완전하게 묘사되는 고전적 시공간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책에 대한 개요이 책에서는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또는 공동체에 소속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공동체의 시작에서부터 나아갈 방향,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예절과 규칙 그리고 각자의 공동체 마다 추구하는 목표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고 있다. 또한 공동체가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숙된 공동체가 성장이 된 후의 공동체의 모습 등을 이야기 해줌으로써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수많은 방향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이 책에서는 공동체가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정생활이 중요하다는 것도 함께 말하면서 가정과 공동체가 긴밀한 관계로 얽혀져 있음을 말해준다. 공동체 생활의 본질적인 요소이면서 개인간의 관계와 소속감, 그리고 공동목표와 공동 증거를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가정에서부터 공동체로 같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이룬 공동체로 완성이 되어 간다는 것을 적용해 준다.이 책의 저자는 라르슈라는 자신이 경험한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공동체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는 점에서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책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이 공동체 생활에의 투신을 통하여 얼마나 깊이 성장하는지 그리고 공동체의 위기와 긴장 등을 거치면서 성장하기 위해 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엄격한 조건이 구비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조건을 규명해 주고 설명하는 이 책은 공동체를 살아가기 위한 많은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줌으로써 공동체 안에서 성숙된 인간으로 더 나아가는 나를 위한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위한 내가 되는 것이 중요함을 잘 설명하고 표현해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을 하고 나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동체에 대한 언급이 그리스도교적 공동체에만 국한 시키지 말고 사회 전반에 펼쳐진 다른 공동체들까지도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을 했으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편하게 에 있을 뿐 그 목표에 도달한 공동체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에 약한 곳과 강한 곳이 있듯이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약점과 어려움을 간직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동체의 삶이란 참된 사랑을 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지고 서로의 약점과 결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한 몸 안에 여러 기관들, 약한 부분과 강한 부분, 서로 다른 여러가지 기관들이 서로서로 연관되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공동체는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며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용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서로 우정을 나누는 자리인 것이다.그런데, 공동체는 때로는 끔찍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공동체는 개인의 한계와 이기심을 자각하게 만들고 사랑의 능력이 절대 부족함을 확인하게 한다. 공동체에 들어와서 생활하면서 공동체 밖에서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많은 결점, 인간적 한계를 알게 되고, 많이 사랑하고자 했으나 살아가면서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사랑의 부족과 이기심이 하나 둘씩 발견되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서로가 약점이 있고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너의 모습이 또한 나의 모습임을 기억하며 살아갈 때야 비로소 사랑하게 되고 평화롭고 화합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공동체를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 라는 큰 몸의 세포를 이루고 있어 개개인이 건강하게 잘 살아갈 때 공동체도 건강하고 좋은 공동체가 된다. 개개인이 겸손할 때 공동체가 일치되고, 이기심을 극복하려는 개인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든다. 나의 하루하루가 열정을 가지고 투신하는 충실한 삶으로 채워질 때, 개인의 삶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공동체에서도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충실하는 것이 매일매일 하느님이 주시는 기적에 충실하는 것이며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공동체는 그 구성을 이루는 개인들의 삶에 따라 그 모습이 정해지므로 개개인의 삶 자체도 중요하고 또한 공동체 전체로써 목표에 대한 구성원의 관심과 열의 그리고 개개인 서로간의 삶이 서로 어떻게첫째로 갖은 것을 모두 내어 놓고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공동체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투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롯이 그분의 응답에 “네”하고 대답할 수 있고 자신 안에 있는 욕구들을 절제해 가며 공동체 생활을 철저히 수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를 투신하며 기도를 자기 생활에 중심으로 삼을 때 온전한 계약체결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성찰과 도움이 되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공동체와 계약체결이라는 것이 일정 종교에 국한되어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배우고 성찰할 점은 무궁히 많다. 저자가 말하듯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을 투신하고 가진 것들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고 구성원들 모두를 나의 형제와 자매로 생각하고 그들과 나눔을 실천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공동체만이 모두 옳다고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종교 ? 지역 ? 대학 공동체, 이익단체(회사) 등. 너무도 많은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중 어떤 공동체는 희생과 봉사, 나눔을 미덕으로 삼으며 구성원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사는 곳도 있겠지만, 또 다른 곳은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공동의 이익을 통해 파생된 이익의 일부를 헌신하는 공동체도 있다. 이밖에 수많은 공동체들이 그들 나름대로 공동의 목표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공동체만의 집착과 이기주의에 빠져있다든지, 소속 공동체만을 위하여 다른 공동체와 그 밖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곤경에 빠지게 한다면 그건 최악의 공동체일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등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공동체마다 그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내가 생각하는 참된 공동체는 구성원들 간에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나아가 공동의 목표 하에서 공동체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고, 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자신을 투신할 수 있는 즉 선의의 올바른 수 없다. 공동체가 곧 구성원들의 삶이고, 삶이 곧 공동체가 성장하도록 투신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는 더 이상의 혼돈과 환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이 되었을 때, 공동체와 그의 구성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절대로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최초의 공동체의 목표를 망각하고 안일함과 안주에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공동체가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직접 함께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해보고 그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에게 자신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때그때 느끼는 자신의 감정과 느낌 그리고 생각 등을 말할 수 있어야 자신도 편하고 상대방에게도 불편함을 주지 않게 된다. 다음으로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책임을 미루거나 회피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들이 결국에는 파멸을 초래하는 것을 봐왔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한일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질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공동의 작업을 행복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공동체의 핵심이 공동생활과도 결부가 되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공동으로 하는 어떠한 일이 싫든지 좋든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그 공동체는 하나 된 공동체로 성장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낮은 자리에서 늘 섬기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이제껏 대접받고 인정받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하면서 살아왔다면 그와 같은 마음가짐은 휘날리는 바람에 모두 날려 버려야 할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힘든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순종하고 자신을 스스로 낮출 수 있어야 진정으로 공동체 안에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동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역경과 시련의 과정이 없으면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학년 때, 한 달간 소록도에 봉사활동을 간적이 있었다. 그곳에 막 도착했을 때는 얼굴도 몸도 망가져 있는 나병환자들을 보며 불쌍한 마음, 측은한 마음과 동시에 머무르는 동안 미력한 힘이나마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나의 내면에서는 그들과 먹고 마시고 함께 생활을 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그들로부터 나도 병에 걸리지 않을까하고 불안하고 초조했던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작은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투정을 부렸으나 그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현재의 상황에 감사하며 공동체 안에서 매일매일 삶에서 은총의 순간을 반갑게 맞이하고 또 촉발시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였고 또한 경이로운 체험을 공감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떤 경험보다도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내겐 지금까지 살아오는 크나 큰 자양분이 되었음을 깨닫는다.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나 이야기 속에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배워나간다. 공동체 역시도 외부의 다른 공동체로부터 수많은 장점들을 배움으로써 공동체가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자신의 세계에서만 살아가다보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 공동체 역시도 다른 형태의 공동체들과 희망과 안목 그리고 말씀을 나누고 공유할 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개개인이나 공동체는 성장하는데 휴식과 이완 그리고 사랑과 부드러움으로 대화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나 공부 등을 쉬지 않고 계속 한다면 결코 그것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수 없다. 나중에는 피로에 지쳐 그것들 자체가 지겨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개인이나 공동체는 휴식과 긴장을 해소함으로써 영적 자양분을 쌓아가야 한다. 인간이라는 자체가 감정에 치우치는 존재이므로 불만과 분노, 걱정과 무능, 슬픔과 냉담 등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친구에게 내 속에 있는 .
Ⅰ. 성격이란 무엇인가?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대개의 사람들은 성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수상학, 관상학, 골상학 등이 발달한 것이 이를 통해 사람의 운명과 성격을 파악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혈액형에 따라, 체형에 따라, 좋아하는 색깔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려고 한다.우리가 이처럼 성격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 관해 예측이 가능해지고, 따라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1. 성격의 정의성격(personality)이란 일상생활에서 가장 빈번히 쓰이고 있는 말이며, 학술적인 용어도 다양하고 정의도 학자마다 조금씩 그 견해를 달리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은 선천적인 면이 있는 동시에 환경요인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는 데는 반론이 없다.'personality'는 라틴어 per(통하여, through)와 sonare(말한다, 소리낸다, speak . sound)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persona는 그리스의 극장에서 배우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메가폰이 달린 자기의 배역을 나타내는 가면을 뜻하였다. 그런데, 가면은 그것에 달린 메가폰과 아울러 배우들이 자기의 존재를 청중들에게 똑똑하게 인식시키는 효과가 있었다.이렇게 가면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성격은 일반적으로 말해 개인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이라 할 수 있다. 성격에는 다른 사람들고 같은 점도 있지만 몇 사람에게만 있는 공통점과 자기만의 가지고 있는 특성도 있다. 즉 성격이란 개인이 행동을 규정하는 일반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어느 한 개인의 행동은 그 개인의 독특함을 나타내는 것이다.학자들은 성격에 대하여 매우 다양한 정의를 한다. 성격이란 모든 경험의 중심이 되는 자아, 즉 조직화되고 영구적이고 주관적으로 지각된 실체(로저스, Rogers), 한 개인의 내부에 있는 어떤 행동과 생각을 결정해 주는 정신, 신체적 체제의 역동적 조직(올포트, All 않는 내적으로 조직화된 반응체계이다.Ⅱ. 성격 형성과 발달신생아는 어떤 잠재력을 갖고 태어난다. 신체의 특징들(눈 색깔, 머리 색깔, 체격 등)은 본래 수정의 순간에 결정된다. 지능과 특수한 능력(음악과 미술 등에 대한 재능) 또한 유전에 의해 어느 정도 결정된다. 그리고 정서적 반응에서의 차이도 선천적일지 모른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즉 기질(temperament)상의 차이들은 선천적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란성 쌍생아들은 이란성 쌍생아들보다 정서반응, 활동수준, 사회성에 있어서 서로 매우 유사하다.출생 직후부터 신생아들은 활동수준, 주의 집중의 폭,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 기분 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많은 어린이들의 경우 이러한 기질상의 차이는 오래 지속되어 성격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부모들은 유아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데 특히 기질에 관련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신생아의 타고난 기질에 따른 후천적 경험이 상호 작용하여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따라서 성격형성 요인은 선천적이며 기질적 요소인 생물학적 요인과, 후천적이고 경험적 요소인 사회 환경적 요인으로 대별할 수 있으나, 이 두 요인은 각기 독립적으로 성격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Ⅲ. 성격이론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비롯한 타인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꽤나 심각하게 다른 사람들의 성격을 평가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격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면 심리학에서는 ‘성격’을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1. 유형론성격을 유형별로 구별하고자 하는 이론(1) Physique theory- E. Kretchmer 체격론 : 정신의학자인 Kretchmer는 체격을 세장형(asthenic), 비만형(phyknic), 그리고 근육형(athletic)으로 나누었다. 몸이 마르고 키가 큰 세장형은 꼼꼼하고 사람으로 항상 침착하고 조용하며 인내심이 강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또한 담즙질 형은 황담즙이 더 우세한 사람으로 쉽게 분노하며 성미가 급한 특징을, 그리고 흡담즙질형은 흑담즙이 더 우세한 사람으로 쉽게 우울해지며 항상 조용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했다.(3) Functional typology - C. G. Jung의 기능적 유형론내향성(introvert)과 외향성(extrovert)이라는 성격의 일반적인 태도유형을 제안하였다. 이는 심리적인 범주로 분리한 유형론이다. 외향성의 사람은 외부세계에 관심이 많고, 진취적이며 다른 사람과 사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이에 비해 내향성의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 더 관심이 많으며 비사교적이고 타인과의 교제에서 신뢰감이 부족한 경향을 보여준다.2. 특질론다양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기본적인 성격 특성들을 확인하려는 이론(1) G. Allport특질은 개인으로 하여금 여러 다른 자극 또는 상황에 대해 유사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이끄는 준비된 상태로서 개인의 생각, 행동 및 감정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격구조이다. 따라서 특질은 성격의 개인차의 기초가 된다.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서는 기본성향, 중심성향, 그리고 2차적 성향을 구분하였다. 기본성향은 한 개인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는 마치 정렬과 같은 것으로 행동을 통해 명백히 드러나 있다. 중심성향은 기본 성향보다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만 비교적 보편적이고 일관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우리가 보통 한 개인을 기술할 때 사용하는 특성들이다. 2차적 성향은 중심 특질보다도 덜 일관성 있고 덜 보편화되어 있는 것으로 제한된 상황에서만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다.(2) R. Cattel특질은 한 개인으로 하여금 여러 상황과 시간에서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는 성향을 부여하는 정신적 구조이다. 그러나 Allport와는 달리 특질을 성격의 구조로 보기보다는 성격구조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보았다. 개인의 특징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소하는 대부분의 문제점들이 어떤 기질적인 질병에 의해 유발된 것이 아니고,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갈등에서 기인함을 알게 되었다.성격이 원초아, 자아 및 초자아의 상호 관련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 셋은 실제로 통합된 전체의 한 부분들이다. 원초아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흥분, 긴장, 에너지를 방출시켜 긴장을 감소시키고 만족을 얻음으로써 쾌락만이 좋은 것이고 다른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쾌락원칙에만 순종한다. 자아는 모든 사고와 추론활동을 통제한다. 완전한 성인의 행동은 현실뿐 아니라 도덕성에 의해서도 지배된다. 이 도덕적 감시자가 초자아이다. 초자아는 부모 및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되는 도덕적 표준이나 사회적 이상이다. 초자아는 작용과 완벽한 자아 이상을 비교해 보고 나서 상벌을 가한다. 초자아의 과업은 용납될 수 없는 원초아충동을 차단하고 효율성 보다는 도덕성 쪽으로 가도록 자아에게 압력을 넣어 완전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초아는 성격의 생리적 요소, 자아는 심리적 요소, 그리고 초자아는 사회적 요소라 생각할 수 있다.한 개인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성격 요소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가정하였다.(2) C. G. Jung성격의 구조를 집단무의식(collective nconsciousness), 개인적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ness) 및 자아(ego)로 나누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촉진시켜 통합하는 자기(self)에 의해 성격이 형성된다고 한다. 오랜 종족적 경험의 결과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것을 집단무의식이라 하고 그 내용을 원형(archtype)이라 한다. 개인적 무의식은 한번 의식되었지만 억압이나 망각된 경험 또는 의식적인 인상을 주기에는 너무나 약한 경험들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자아와 빈번한 상호교류를 한다. 성격은 또한 이러한 무의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되어지는 부분이 있다. 이것을 자아라 하는데 자아는 의식적인 지각, 기억, 사고, 감정으로 구조 - K. LewinLewin은 성격의 구조를 전체로서의 역동적 체계로 보고 성격을 하나의 역동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한 개인의 성격은 그가 독자적으로 갖는 어떤 독특성이라기보다는 어떤 순간에서 그 개인이 처해있는 상황전체의 관련성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한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전체를 ‘장’이라고 했다. 개인이 처해 있는 장은 개인, 그 개인을 둘러싼 심리적 환경 또 심리적 환경을 둘러싼 외적세계의 삼중구조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는 투과적인 성질의 것으로 외부세계와 심리적 환경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개인과 심리적 환경 사이에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개인은 외부세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장의 이 세부분에서 생활공간을 이루는 개인과 심리적 환경의 구조가 성격을 설명하는 부분이다.환경이라 함은 인간행동을 규정하고 있는 사실의 총체가 되고 있는 생활공간을 말하며, 그 안에서 각 개인이 다원적인 자극에 대하여 여러 반응을 나타내며 생활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성격이 형성된다고 했다.6.학습심리학의 성격론행동이 이루어지는 상황 또는 자극조건을 중시하여 개인간의 성격차이도 각 개인이 경험한 환경조건의 차이에서 비롯한 행동 및 사고 양식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론(1) Skinner강화에 의해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Skinner 및 기타의 학습심리학자들은 행동에 뒤따라 주어지는 강화가 행동을 결정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즉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한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은 그가 과거에 현재 상황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황에서 취했던 행동들 가운데 어떤 행동이 강화를 받았는가에 따른다. 현재의 그의 특징적인 행동양식이나 사고양식 즉, 그의 성격은 그가 강화를 받았던 경험, 즉 강화역사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그의 성격은 강화에 의해 길들여진 습관적인 행동양식 및 사고양식일 뿐이다.(2) MischelMischel은 행동을 야기하는 자극조건을 혹은 상황을 중시하지만 또한 상황에 대한 개인의 지각 및 평가 등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