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사고수동적 관찰이란 관찰자의 관찰행위가 관찰대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 관찰이다. 예를 들어 태양은 우리의 관찰과 상관없이 항상 뜬다. 16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수동적 관찰이 중시되던 풍조에서 벗어나 능동적 관찰자들이 자연을 열성적으로 탐구하고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탐구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오, 데카르트 등 소수의 분석적인 과학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어 400년간 지속되었다. 이들의 노력은 뉴턴의 과학적 사고의 기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뉴턴은 '만일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이 시대에 '기계적 우주'라고 하는 새로운 믿음이 탄생했다. 패러데이는 자기를 전기로 바꾸는 방법을 발견하였고, 맥스웰은 빛을 역학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런 식의 과학적 분석은 새로운 흐름이었다. 그 분석의 목적은 냉철한 논리로 사물을 분석하는 것이었다.그러나 과학자들은 주위환경의 간섭을 받지 않는 기계장치들을 만들어 왔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연은 우리가 소극적으로 숙고만 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고, 과학은 세심한 실험 능력을 요구하는 능동적인 학문이 되었다. 이 시대의 과학자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극미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학적 분석을 통하여 가장 작은 물질의 운동까지도 정확히 묘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근대 분석적 과학자들은 연속적으로 겹쳐지는 정지화면들로써 운동을 이해하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뉴턴과 라이프니쯔는 미적분학을 발전시키기까지 했다. 뉴턴은 관찰된 운동을 묘사하기 위하여 자신의 운동법칙 속에 이 연속성의 수학을 사용하였다. 연속성의 관점에서 보면 line이란 무수히 많은 점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그리스 인들이 알고 있던 '전체'란 '부분의 합' 이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역학의 시대에 이르러 그 생각은 바뀌어 '전체'란 '부분의 합'과 같은 것이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기계론적 세계상의 본질이 되었다. 이 세계상그 법칙에는 관찰자는 '저 밖'에 있는 것을 관찰할 뿐이지 그것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가정이 있었다.뉴턴의 운동법칙은 물질세계를 거대한 시계 장치로 보고 있는 셈이다. 시계 장치는 여러 부분으로 분해될 수 있으며 다시 짜 맞출 수 있고 재조립된 시계는 전과 같이 작동한다. 또한 시계는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과거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대칭성이 대두되었다. 뉴턴의 법칙에 의하면, 미래는 이미 완전하게 결정된 것이며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운동법칙에 따라 현재를 알고 과거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추정은 뉴턴의 운동 방정식에 있는 '시간 대칭성'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인간의 기억에 의한 추정은 아니었다. 과거는 현재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래 또한 현재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었으며, '기계주의 시대'는 확실성을 신봉하던 시대였다.그러나 19세기 말 새롭지만 고전적인 자연관이 출현했다. 그것은 두 가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빛이 매질 없이도 전파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빛에 대한 역학적 모형의 결함이 드러난 사건이었으며, 두 번째는, 뜨겁게 달구어진 물질에서 방출되는 빛의 색깔에 관한 문제였다. 방출된 빛의 색깔은 물질의 기계적, 역학적 운동이나 진동에 의해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빛과 열에 관한 이 불가사의한 현상이 발견된 이후로, 끊임없는 분석을 통해 양자역학이 발견되면서 '확실성의 시대'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확실성을 신봉하던 물리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양자역학은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뉴턴이 말한 '거인들'이라는 소집단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뉴턴의 거인들뉴턴이 말한 '거인들의 시대', 즉 이성의 시대를 최초로 연 사람은 코페르니쿠스였다. 16세기경에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말하는 것은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각의 맥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구가 돌고 있다고 한다면 내가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많은 것들이 진실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세 번째 거인은 케플러였다.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입증해 가는 가운데 천체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을 발견했다. 이 법칙은 뉴턴의 운동법칙의 토대가 되었으며,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 데 기여했다. 더 나아가서 이 세 법칙은 새로운 우주관을 낳기도 하였다. 케플러는 자신의 관찰결과를 공식화하기 위하여 수학을 사용했다. 이러한 수학적 해석방식은 그리스 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네 번째 거인은 데카르트였다. 그는 그때까지 알고 이해한 모든 것에 관하여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그는 종교교리와 권위의 상징들을 물리쳤다. 그 결과 그는 오직 한 가지만을 확신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다시 고대 그리스인들의 관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존재 대 변화'의 논쟁이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그 논의를 한걸음 더 발전시켰다.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추론해냈다. 즉 자신이 존재한다는 자각이아말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존재와 변화가 상호 보완적인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만도 변화하는 것만도 아니라고 믿었다.'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존재를 의미하며 '나는 생각한다'는 말은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존재는 변화의 토대이다. 또한 변화는 존재를 자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뉴턴에게 '논리적 사고'라는 확고한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모든 만물에는 틀림없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므로, 행성이 태양을 돌고 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데카르트는 '존재와 변화의 요소'만 갖고 우주에 관한 완전한 이론을 만들려고 했다. 그 요소란 바로 물질과 운동이다. 또한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결합해 있었는데 상대편 배가 자신의 배를 향해 움직여 왔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코페르니쿠스, 브루노, 케플러, 데카르트 이들 네 명의 분석적 과학자에 의해 운동에 관한 새로운 견해가 태동하였다.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절대적 움직임'이라는 운동에 관한 견해는 '사물이 왜 운동하는가?'하는 의문을 해결해주지 못하였으며, 이제는 수학적인 해석방식과 분석방법이 과학의 도구가 되었다. 게다가 다섯 번째 거인은 존재와 운동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뉴턴에게 주었다. 그는 자연을 능동적으로 조작한 최초의 실험 물리학자 갈릴레이이다.갈릴레이갈릴레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관찰, 묘사 및 분석에 관한 거의 모든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는 수동적 관찰을 능동적 관찰로 변화시키는 데 공헌했다.갈릴레이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운동의 원인이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했던 것뿐이었다. 운동에 대한 실험적인 분석은 시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과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손목의 맥을 짚었고, 이를 통해 샹들리에게 흔들리는 주기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샹들리에가 이처럼 일정한 진폭으로 흔들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흔들리는 주기는 항상 똑같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샹들리에를 바라보다가 진자시게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진자의 운동은 시간측정의 근거가 되었다.모든 운동을 측정하는 데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1년이라는 기간은 행성의 운동을 측정하는 시간이며 1초는 물체의 운동을 측정하는 시간 단위이다. 뉴턴의 거인들과 달리 갈릴레이는 관찰을 매우 철저하게 하였다. 그는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실험 장치를 만들어 새로운 과학의 장을 열었다.갈릴레이는 메디치 가 앞에서 널빤지를 기울여 놓고 여러 가지 물체를 아래로 굴렸다. 이 실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물체들이 일 이러한 실험 결과를 믿지 않았으나 갈릴레이는 자신의 실험이 운동의 참된 본성을 보여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분석을 통하여 외부 영향력을 통찰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현대 실험물리학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역학의 연속성‘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나는 해변 가에서 아름다운 조개껍질과 조약돌을 주우면서 놀고 있는 소년에 불과하다. 위대한 진리의 바다는 내 앞에 미지의 상태로 펼쳐져 있다.’ 라고 뉴턴은 말하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거인이었다. 그리고 훗날 또 다른 과학자들이 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먼 곳을 보았다.뉴턴은 수동적 관찰과 능동적 관찰을 조화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관점에서 능동적 관찰이란 수동적 관찰의 확장일 뿐, 이 두 가지 관찰방식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기계장치는 어떤 현상을 인지할 뿐이지, 관찰되는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능동적 관찰에 대한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통하여, 17~18세기 과학자들은 진리의 바다를 발견할 수 있었다.뉴턴과 갈릴레이의 영향으로 수학과 훌륭한 실험 장치로 인해 과학자들이 우주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 수학과 실험방법의 결합은 통찰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기계장치들은 단순히 인간의 감각만을 확장시켜 주었을 뿐이다. 데카르트의 가르침에 의하면, 마음은 물질과는 다른 것이므로 관찰자 역시 관찰대상과는 다른 것이다.1687년 뉴턴은 라는 책을 발표했다. 에드먼드 핼리는 뉴턴이 책을 쓰도록 설득했으며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했다. 1686년 책의 1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왕립 학회에 발표하게 한 것도 그였다. 이 기념비적인 책은 뉴턴의 세 가지 법칙 즉 ‘관성의 법칙’, ‘운동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만유인력, 천체의 운동에 관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걸작으로 칭송 받았다.뉴턴은 그의 저서에서 조리 있는 논리를 통해 우주의 모든 운동에 관한 사색의 시대를 열었다. 뉴턴에게 연속성의 개념은 매우 중않았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의 사상BC 5세기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역설로 유명하다. 제논은 나눌 수 없는 실재의 존재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을 장려하기 위해 구별할 수 있는 성질들과 운동할 수 있는 사물들의 존재를 믿는 상식적 견해를 논박하려고 애썼다. 그의 역설은 논리학과 수학의 엄밀성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연속과 무한이라는 개념이 발전하고서야 해결될 수 있었다. 제논의 논증들 가운데 특히 유명한 역설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서 따온 이름으로 불린다. 아킬레스와 거북의 역설, 이분법의 역설, 화살의 역설, 경기장의 역설 등이 그렇다.제논의 첫 번째 패러독스제논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운동이란 일어날 수 없다. 예를 들어 달리기 선수가 골인 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작점과 골인점 사이의 중간지점에 도착해야 한다.' 우리는 이에 동의할 수 있다. 제논은 또 이야기한다. '바로 여기에 패러독스가 있다. 달리기 선수가 그 중간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작점과 중간점 사이의 또 다른 중간점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러나 제논은 우리의 의표를 찌르며 말한다.'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달리기 경주에서 지금까지 말한 과정을 적용해 보면, 달리기 선수는 그 1/4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1/8지점에 도달해야 하며, 또 그 전에 1/16지점에 도달해야 하며, 1/16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바로 그것이다. 무한히 많은 중간점이 존재하는데 달리기 선수는 그 중 한 점에서 그 옆의 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유한한 구간을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뛸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첫 번째 중간점을 지나야 하고, 또 그 다음 점에 도달해야 하고... 이를 무한히 반복해야 골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달리기 선수는 출발점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달리기 선수는 달릴 수 있으며 제논 또한 이를 알고 있다. 그러나 제논의 달리기 선수는 결코 출발점을 떠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전에 제논의 두 번째 패러독스를 살펴보자.제논의 두 번째 패러독스제논은 비록 느린 거북이가 아킬레스의 바로 앞에 있을지라도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잡기 위해서는 거북이가 출발한 그 지점에 먼저 도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첫 번째 패러독스와 같이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중간점이 있고, 또한 분명한 것은 아킬레스와 거북이간의 거리가 아무리 짧아도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있던 곳에 다다르면 그 거북이는 이미 다른 지점에 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패러독스는 매우 유사하다. 제논의 논증은 거북이가 있던 지점에 아킬레스가 도착할 때마다 거북이는 조금 더 나아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의거하고 있다.제논의 세 번째 패러독스는 이것과 관점이 다르다. 그것은 물체의 운동을 일련의 정지된 순간들로 보고 있는 우리들의 개념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날아가는 화살을 찍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좋다.제논의 세 번째 패러독스'화살은 결코 날아갈 수 없다. 모든 물체는 일관된 방식으로 행동한다. 즉 계속 움직이거나 혹은 계속 정지해 있을 뿐이다. 그러한 이유로 화살은 날아갈 수 없다. 어떤 경로를 그리면서 날아가고 있는 화살을 상상해 보자. 그 화살은 매순간 한 장소를 점유하고 있다. 화살이 한 장소를 점유하고 있다면 화살은 그곳에 정지해 있어야 한다.'당신은 한 장소를 점유하고 있는 물체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도 있다고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물체는 일관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제논의 주장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물체는 한결같이 행동해야 한다. 따라서 물체가 한 장소를 점유하고 있다면, 그 물체는 그 장소에 정지해 있게 된다. 영화 제작자들이 영화를 만들 때 그들은 제논의 일관성의 개념을 사용한다. 그들은 사진의 흔들림이나 비균일성을 극소화시키면서 정지 사진들을 찍는다. 이 영화 제작자들은 필름의 각 장면 속에 있는 물체들이 그 화면 속에 정지해 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제논의 패러독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결책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한편으로는 제논의 주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제논이 죽은 지 100년쯤 지난 후 저술된 그의 책에서 그는 제논의 패러독스와 그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논이 살아 있었다면 이들의 논쟁은 매우 격렬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패러독스를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여 해결하였다. 그것의 핵심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물체가 점유하게 되는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 개념이었다.'무한이라는 수에는 그것을 분할하거나 합하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 의미가 존재한다. 즉 아주 작은 시간이나 공간의 조각을 아무리 많이 더해도 무한대에 이를 수 없지만, 유한한 공간이나 시간의 조각을 무한히 분할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달리기 선수는 어려움 없이 골인 점에 도달할 수 있다. 그가 달리는 거리는 유한하고, 우리는 그것을 가능한 한 작게 무한한 조각으로 나눌 수 있다. 달리는 시간 역시 유한하며 무한히 분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의 총합계는 유한한 것이 되며, 따라서 달리는 운동은 가능한 것이 된다. 비록 달리는 거리와 시간이 무한하게 나누어져 있다고 해도 그 합계는 역시 유한한 것이다. 똑같은 원리를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에 적용하면,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잡을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유한하므로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는 시간 또한 유한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첫 번째와 두 번째 패러독스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제논의 세 번째 패러독스에서 제기된 화살은 의심의 여지없이 날아갈 수 있다. 고속 촬영에서 사용되는 필름의 경우처럼 더 많은-무한히 많은-화살의 화면들을 첨가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두 화면 간의 시간 간격은 너무 짧아 제로에 가깝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한 장의 화살 화면과 다음 장의 화살 화면이 연속적으로 거의 일치되게 겹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알파파의 위력과 알파파를 내는 방법인간의 뇌는 처음에는 뇌간 부분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신경 제어계의 중추이며,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능을 작용시키는 뇌이다. 이 경우 파충류의 뇌에 상당한다. 태아가 성장해 6개월 정도 되면 파충류의 뇌에 보다 진화된 포유류의 뇌가 싸여진다. 이는 뇌분비 제어의 중추이다. 6개월이 지나면 영장류의 뇌가 만들어진다. 이는 생각하며 느끼는 사고를 담당한다.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신선하고 굉장한 발상을 하는 사람, 직감과 육감이 날카로운 사람은 뇌를 사용하는 방법이 일반인과 다르다. 이들은 하드웨어인 뇌세포의 사용법,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가 발달한 사람이며, 알파파를 뇌에서 언제나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창조적인 행위란, 논리라든가 이상과는 관계없다. 훌륭한 발견을 이룩한 과학자들과 수학자들도 머리에 떠오르는 인스퍼레이션이 그 때 하던 일과 관계 없는 경우가 많다. 인스퍼레이션은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떠오르는 법이다.창조적인 사고의 프로세스는 의지의 힘으로 불러일으킬 수 없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고 해서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정신이 릴렉스한 상태에 있으며 상상력이 자유롭게 움직일 때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알파파란 뇌파의 일종이다. 뇌파란 무엇인가? 인간의 뇌 속에는 많은 신경 세포가 활동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전기적으로 변동하고 있다. 즉, 전기적인 흔들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흔들림을 파악해 보면 파도처럼 보인다. 이 전기적인 진동을 뇌파라 한다. 뇌파란 뇌세포가 내고 있는 생체 에너지, 아니면 활동의 리듬이라고 해도 된다. 뇌의 활동은 뇌파에 나타난다.뇌파가 정확하게 측정된 것은 30년 정도 되었지만, 뇌파의 존재 자체는 그 이전에 발견되었다. 19세기 말 한스 버거는 전기뱀장어가 전기를 발생시키는 점으로 미루어 인간에게도 같은 현상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전기적인 진동을 발견했다. 그 후 뇌파를 그래프화 함으로써 몇 가지 진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의식 활동과 어느 파파가 잘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 몫의 알파파는 낮에 내야 한다. 낮에 나오는 알파파라면 대부분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지만 이 경우는 다소 다르다. 집중되었을 때의 알파파와는 달리 오히려 졸음이 오는 상태의 알파파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수면제를 많이 사용하면 정신 불안정이 될 우려가 있다.집중에도 단계가 있고 그에 따라 알파파의 주파수도 달라진다. 우리가 잠들기 전 멍청해졌을 때 알파파가 잘 나온다. 또한 좌선하면서 명상에 잠겨 있을 때도 알파파가 나온다. 그러나 좌선에서의 명상과 잠들기 전의 몽롱한 상태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같은 알파파라도 그 질적인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알파 상태를 세 가지 종류로 나우어 생각할 수 있다.명상 상태에서 나오는 알파파는 9~11헤르츠이다. 이 주파수에서는 머리가 매우 맑다. 한편, 잠들기 전 멍청할 때의 주파수는 7~8헤르츠로 비교적 낮다. 즉 잠들거나 휴식하는 방향으로 뇌가 집중하고 있기는 하지만, 의식이 분명하고 머리가 맑은 상태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를 뇌파의 진동이 완만하다는 의미에서 '슬로우 알파'라 부르기도 한다. 반대로 극도로 긴장하여 무엇인가를 열심히 바라보며 근육이 굳어져 있을 때도 알파파가 강하게 나온다. 그 주파수는 12헤르츠 이상으로 높아진다. 그래서 진동이 빠르다는 의미에서 '패스트 알파'라 부르기도 한다.한 가지 일에 극도로 집중되어 있을 때 뇌는 반복 활동을 계속한다. 요컨대, 보통사람에게 15곱하기 12와 같은 암산을 하게 하면 패스트 알파 상태가 된다. 그 일에 집중하는 나머지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대부분의 인간은 몇 가지를 병행하여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패스트 알파일 때는 불가능하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들리지 않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뇌는 글자를 따라 읽는 매우 반복적인 활동을 계속하면서 극도의 패스트 알파 상태에 있기 때문에 다른 신호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다.슬로우 알파와 패스트 알파의 중간,다. 이 역시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일반인도 명상을 흉내내 일단 알파파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일단 의식이 방해를 받으면 알파파는 사라지고, 좀처럼 복귀되지 않는다. 한 번 뇌가 혼란을 일으키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알파파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알파파는 뇌 안쪽에서 나온다. 뇌간의 일부에는 망상체 부활계가 있다. 여기에 자극이 가해지면 망상체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활동 신호가 발사되어 대뇌의 각 부분으로 전달된다. 그 자극에 의해 신피질이 활동한다. 반대로 부활계가 휴식하고 있을 때에는 신피질의 자극이 발사되지 않고 두뇌 활동을 휴식으로 들어간다.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의 리듬의 차이는 거기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이들 활동 리듬을 컨트롤하는 '몸 안 시계'가 있으며 거기에서 낮 동안에는 각성 신호가 발사되고 부활계가 활성이 된다. 이 때 발사되는 자극의 기본 신호가 대체로 7~10헤르츠이며 알파파에 가깝다. 신피질까지 전달되어 온 신호는 거기에서 반사하여 다시 되돌아간다. 그리하여 부활계를 보다 활성화시킨다. 신피질의 활동이 집중되어 조화된 리듬을 타게 되면 알파파가 지속된다. 그러나 의식이 분산되어 조화, 리듬이 무너지면 신피질은 베타파가 된다. 다만 이는 하나의 추론으로, 많은 연구자가 반드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대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뉘어 있으며 의식뇌는 좌반구의 전두엽에 상당하는데, 흔히 의식 중추라 불리는 부분이다. 잠재뇌는 주로 우반구와 좌반구의 일부에 해당된다.의식 중추에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 한 우리는 의식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무의식적인 활동은 영위된다. 통상적으로는 양자 사이에 뚜껑이 있어 정보 교환이 두절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상기하려 하면 언제든 해면 아래 부분에서 정보를 끌어내 의식화할 수있다.즉 정보의 출입구로 사용되는 뚜껑을 여닫는 스위치 같은 것이 있어, 뇌파가 알파파로 되면 스위치가 켜져 뚜껑이 열리지만 베타파가 되면 스위치가 닫히고 만다.따라서 머리 좋은 레스 등 심리적인 쇼크에 의해서도 무너진다. 즉 백혈구의 활동이 둔화되어 암세포를 증식시키고 이윽고 발병한다. 따라서 스트레스 상태를 해소하면 암 세포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칼 사이몬튼은 이에 착안해 독자적인 암 치료법을 개발했다. 사이몬튼은 방사선 의학 전문가로서 암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를 하였다. 그는 많은 암환자와 접촉하면서 이들이 발병 전에 커다란 심리적인 쇼크를 받은 환자가 많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환자를 스트레스 상태에서 해방시키면 암 치료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암 환자의 최대 스트레스는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환자가 '나는 좋아지고 있다. 이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환자에게 적용시켰다. 그럼으로써 백혈구가 암 세포를 파괴하기를 기대한 것이다.알파파 상태가 되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또한 '나는 낫는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 상태를 지속시킴으로써 자연 치유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알파 상태의 효과를 찾아볼 수 있다. 소망이 없는 기도는 없다. 암 환자가 낫는다라고 간절하게 소망할 때 잡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즉 좌선에서의 명상 상태와 같이 깨끗한 알파파가 나오게 된다. 그 실천을 철저히 할수록 스트레스의 영향은 제로에 가까워진다.인간의 몸의 수많은 세포는 그 하나하나가 독립되어 있으나 동시에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전체에 대한 콘트롤 기관이 뇌이다. 뇌가 지령을 내릴 때 홀몬이 메신저 역할을 한다. 이 경우 다른 동물에는 없는 사고 제어의 뇌가 큰 의미를 갖게 된다.여기에서 '만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의 신호가 발신되면 그것이 내분비 제어의 뇌를 움직여 홀몬을 방출함으로써 혈액과 함께 온몸을 돌게 한다. 이때의 홀몬은 만족감, 안심, 건설적, 전진적인 기분으로 만드는 작용을 한다. 또한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만족을 느끼면 만족의 홀몬이 나오는 것이다.홀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유명한 것으로, 기쁨이 크고 감동했을 또한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릴렉스하여 다음 스텝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릴렉스한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뇌까지 릴렉스해 버리고 만다.의식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그 나름대로의 설정이 있어야 하며, 노력과 긴장이 수반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흥미와 관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턱대고 노력과 긴장을 거듭하면 효과는 반감된다.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불필요한 긴장이 없고 잠재 뇌 쪽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있어 뇌 또한 자유롭게 활동한다. 깡통을 깡통따개로 열어야 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언제나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인간은 고성능 대뇌 컴퓨터를 가졌으나 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프로그램)의 성능이 나빠 컴퓨터를 완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알파 상태이다.뇌에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은 잠재 뇌 속에 규범이라든가 기준을 새겨 넣는 것을 말한다. 우리 뇌의 활동은 피드백 시스템에 의하고 있다. 피드백 시스템이란 현재 상태와 기준을 비교하여 그 차이가 제로가 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준이 새겨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며, 그것이 없으면 피드백 시스템은 움직이지 못한다.또한 자신의 목표라든가 소망이 달성된다는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리는 것은 잠재 뇌에 기준을 새겨놓는 것이 된다. 선명하게 새겨놓기만 하면, 현실과의 차이를 검출하고 어떻게 하면 그 차이를 0으로 할 수 있는지를 잠재 뇌의 예지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의욕이 솟게 된다.1. 기억력이 증대된다기억에는 의식뇌로 외우는 기억(단기 기억)과 잠재뇌로 외우는 기억(장기 기억)이 있다. 사람이 보거나 듣거나 해서 얻은 정보는 우선 후두엽이나 측두엽에서 포착되어 의식에 남는다. 즉 의식 뇌에서의 기억이다. 그런데 측두엽 일부에는 기억 중추가 있으며 정착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정보가 이 기억 중추로 보내져야 한다. 이것이 잠재 뇌에서의 장기 기억이다.그러면 어떤 상태일 때 정보가 기억 중추로 보내지는가. 그것은 의식과 잠
우뇌 강화 및 우뇌 활용 방법우뇌를 강화하려면 생각을 그림으로 떠올려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희곡을 읽으면서 무대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희곡을 읽으면서 무대 장치, 인물의 대사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 때 우뇌의 작용을 의심하면 안 된다.또한 무대 장치라든가 등장인물의 동작에 대한 이미지를 좌뇌가 무대 감독이나 연출가가 된 셈이므로 바라보며 비판, 수정하면 더 좋다. 즉 의식적으로 우뇌와 좌뇌가 대화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은 자칫 좌뇌로 편중되기 쉬운 사람에게 우뇌를 활성화하게 한다.우리들의 운동 신경은 오른쪽과 왼쪽에 따라 각기 뇌의 분담이 다르다. 왼손이나 왼발 등의 왼쪽 반신은 우뇌의 관할이고, 오른쪽 반신은 좌뇌의 관할이다. 즉 우뇌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왼손이나 왼발을 쓰면 된다. 그러나 왼손을 사용하면 직관력이 뛰어난 우뇌 사고력에 즉각 변화가 생기는가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다만 우뇌에 자극을 줌으로써 우뇌 활성화의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전철, 버스에서 의식적으로 왼손을 사용하면 그것으로 이미 우뇌를 자극하게 된다. 또한 오른손잡이는 가방을 왼손으로 들고 다니는 것도 효과적이다. 팽이 돌리기를 왼손으로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그러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우뇌에 자극을 줄 수 있다.우뇌의 활성화라는 점에서 볼 때 양손 모두 사용하는 사람이, 즉 양손잡이가 뇌졸증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아 뇌장애 환자의 리히빌리테이션에서는 양 손을 사용하는 사람이 빨리 회복된다. 이는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참고로, 왼손잡이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좌뇌에 언어 중추를 가지고 있다. 좌뇌와 우뇌의 관계는 오른손잡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왼손잡이의 경우에는 우뇌에 대한 자극이 충분하므로 반대로 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프로 야구의 왼손잡이 투수나 좌타자는 거의 골프를 오른손으로 한다고 한다.운동신경과 마찬가지로 왼쪽 반신의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거나 그림 제목이 물고기라 되어 있을 경우 진짜 물고기와 비슷한가를 생각하기만 해도 우뇌는 움직임을 멈춘다.장기든 바둑이든 프로는 필요에 따라 그 국면을 머리속에 떠올릴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둑판을 돌려놓은 식으로, 즉 상대방 쪽에서 보는 그림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아마추어가 생각하기에는 장기판이(바둑판이) 머리속에 사진처럼 뚜렷하게 보이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전체적으로 어렴풋하다고 한다.바둑과 장기의 효용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점에서도 상당히 효과적이다. 아마추어라도 책에서 장기특집을 볼 때면 열심히 머리속으로 장기판을 그린다. 즉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바둑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지를 떠올리는 능력은 훈련하지 않으면 쇠퇴한다. 쉬운 예가 트럼프의 '신경 쇠약'이다. 이 게임을 아이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아이들은 한번 앞이 되었던 카드를 우뇌로 이미지로서 파악하여 새겨둔다. 즉 머리속에서 그 카드가 앞쪽을 보이고 있는 셈이므로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을 수 있다. 반대로 어른은 좌뇌의 계산 기능에 의지한다. 여기서 양쪽 뇌의 용량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다. 좌뇌로 논리를 이어가며 기억하려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런 종류의 게임에서 우뇌를 활성화시키려 한다면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미지를 떠올려야 한다.희곡은 소설과 달리 인물, 상황, 배경 등 상세한 묘사가 없다. 간단한 묘사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무대를 떠올려야 한다. 이는 자유롭게 무대를 그려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대 장치까지 자신이 만들어 그 정경을 설정하면 된다. 그것들을 모두 이미지 속에서 진행시키는 것이다.연출가는 우뇌형 인간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처음 희곡을 읽을 때 완전하게 무대 이미지가 만들어지니 말이다. 독자도 연출가가 된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 이미 읽은 희곡의 무대를 볼 때도 자신이 연출가가 되어 보면 확실하게 우뇌가 활성화된다. 미리 연출 플랜을 짜두었다가 실제 무대의 동작과 비교해을 좌뇌가, 그리고 왼쪽 귀, 왼쪽 시야가 파악한 것은 우뇌가 관장한다. 촉각도 왼쪽 반신에서 느낀 것은 우뇌로 들어가는데, 이는 좀처럼 관장하기 힘들다.촉각, 즉 피부감각은 들어오는 정보량이 많다. 갖가지 느낌이 섞여 있다. 이를 모두 종합하여 흐느적거린다는 하나의 감각으로 종합하는 것이 우뇌의 역할이다. 촉각 정보의 우뇌에 의한 패턴화이다.오감에서 얻을 수 있는 감각과 우뇌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오감을 더 연마하면 우뇌가 활성화된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미각과 우뇌의 연결로 볼 때 이것은 그대로 우뇌를 자극시킨다. 맛을 모르는 사람이란 우뇌의 작용이 둔한 사람이다. 또한 먹어 본 적 없는 요리를 먹으면 우뇌는 그것이 맛있는지 없는지 판단해야 하므로 더 자극받는다. 그러니까 우뇌형 인간이 되려면 일류 요리를 맛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식도락에 빠지면 따지는 것만 많아진다. 요리의 내력, 재료 선택에 대한 비판은 좌뇌의 논리 기능에 따른 것이다. 아무튼 여행할 때 그 고장의 요리를 맛보는 것이 바람직하다.운동 신경이나 반사 신경의 경우 왼쪽 반신에 대해서는 우뇌가 지배한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왼손, 왼발을 사용하면 당연히 우뇌가 자극받는다. 그러나 왼쪽만 사용하는 것은 힘들므로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전신 운동을 하게 되면 뇌 전체가 활성화된다.어린이는 어른보다 반사 신경이 뛰어나다. 어려서 스케이트든 수영이든 시작하면 이내 숙달된다. 비밀은 우뇌에 있다. 나이가 들면 스포츠에 대해서도 좌뇌의 논리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억제하기 때문에 몸의 동작도 둔해진다. 어른이 스포츠를 할 때에도 우뇌를 사용하면 숙달이 빠르다. 반대로 말하면 방법을 연구함에 따라 우뇌를 보다 훈련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스키를 배울 때에도 배운 것을 이치로 따지면 곤란하다. 이치나 논리는 좌뇌가 하는 일이므로 우뇌의 작용을 방해하고, 긴장을 만들어 숙달도 늦어진다. 따라서 머리속에서 어떻게 하면 잘 탈 수 있을지, 자신이 스키를 타고 있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이 때 우뇌가 움직인다. 좌뇌가 할 수 없는 이미지 능력이 완전히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머리속에 전체적인 모습이 종합되고, 그에 따른 구상이 형성될 것이다. 그것만 되면 시작해도 좋다. 머리속에 일에 대한 정확한 이미지만 있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상세한 수단이나 준비는 좌뇌가 제시해줄 것이다. 이렇게 우뇌가 자유롭게 좌뇌와 함께 회전하면 능률도 오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견될 수도 있다.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방법에 따라 우뇌를 자극하여 창조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모두 문자로 남기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록을 남겼다고 안심하기 때문에 중요한 점을 빼먹게 하기도 하고, 중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힘들게 되기도 한다. 또한 우뇌를 움직일 시간이 없게 된다.회사 내 서류는 되도록 줄이고 도형이나 그림, 만화를 사용한다. 그렇게 되면 서류를 보는 사람의 우뇌를 자극하게 된다. 우뇌에는 도형을 인식하고, 그림을 인식하는 기능이 있다. 그 서류를 보는 사람은 언어를 좌뇌로 이해하는 한편, 우뇌를 사용하여 보다 깊고 창조적으로 그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다.계획을 도표화하는 것은 우뇌의 역할을 살리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우뇌에는 도형을 인식하는 기능이 있는데 어떤 일에 대한 준비 사항을 차례로 도표화하면 그것이 우뇌를 작용시킨다. 다만 필요한 사항을 글자로 기입하면 언어 기능을 가진 좌뇌만 작용한다. 도표에 의해 우뇌를 자극하면 양쪽 뇌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우뇌는 풍부한 이미지를 그려 작업 전체를 종합적으로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한다. 당연히 문제점 파악도 쉬워진다.기계적이고 번잡한 잡무는 논리적인 작업이며, 좌뇌와 관련된다. 잡무에 시달리다 보면 우뇌를 완전히 사용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이는 우리가 좌뇌형 인간이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따라서 하루 30분 내지 1시간 정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 시간이야말로 우뇌를 완전히 가동시키는 시간이다. 그 날 해야 할 업무를 머보트로 충분하며, 우뇌를 가진 인간은 필요 없다. 하지만 새로운 발상은 나오지 않는다. 반복 작업도 우뇌를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접수 업무는 단순 반복 작업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한 번 왔던 내방객을 기억하고 응대하면 그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접수 담당자는 한 번 만난 내방객을 기억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 때 상대방이 어떤 인물인지를 파악하는 좌뇌적 디지탈 정보 없이 상대방의 분위기로 미루어 내방 목적과 그 중요성의 정도를 판단하는 이미지력, 상상력이 큰 역할을 한다. 이는 우뇌의 아날로그적 능력으로 사람은 할 수 있지만 로보트는 할 수 없다.동양인의 뇌 특성에 대해 설명한 한 주장에 따르면 '우뇌의 직관력, 반짝 떠오르는 사고를 크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좌뇌를 철저히 훈련시켜 두어야 한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한 달에 하나씩이라도 자신의 일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 해결책을 생각해 보면 된다.멀티 인간을 연구한 한 심리학 박사는 모든 정보에 대해 '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 즉 에센스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일에 대해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가지라는 것이다. 한 달에 하나씩이라도 자신이 생각해야 할 문제를 자신에게 부과하면 반드시 우뇌가 움직이게 되고, 이는 종합적 능력 향상으로 이어진다.일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려면 우선 우뇌가 그 일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야 한다. 그 이미지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제의식으로서 굳혀지지 않는다. 좌뇌가 그러한 우뇌의 이미지를 감시하여 말로 고쳐 주어야 한다. 이렇게 문제점의 중심부가 언어화되면 거기에 대해 다시 우뇌가 주위의 이미지를 넓혀간다. 언어화된 문제점에 부수하여 그 몇 가지 주의점 등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고, 다시 그것을 좌뇌가 언어화한다.이렇게 주의점이 나오면 문제점의 전체적인 모습이 뚜렷해지며, 해결의 실마리가 그 안에 있는 때가 많다.문제점합된다.
심리적인 유연성의 중요성심리적 유연성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특성이 두드러지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성격은 여러 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유연한 마음이 현대인의 덕목이다. 좋고 싫음이 너무 분명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인관계에 문제가 많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흔히 발생하는 갈등도 서로 자기 틀을 고집할 때 생긴다. ‘당연히 ~ 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기 틀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틀이 너무 강하면 다른 사람과 마찰하기 쉽고, 정신적인 에너지 손실이 클 밖에 없다.두뇌가 유연하면 마음이 열려 있어 다른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런 사람들은 환경이 변해도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펼칠 수 있다. 반대로 두뇌의 유연성이 부족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색하게 대한다. 또한 상황이 변했는데도 기존의 사고방식을 고집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유연성이 부족한 사람은 완벽주의, 강한 고정관념, 단정적인 말버릇이 다른 사람보다 두드러진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유연성이 부족하면 빠른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리타분한 생각만 하게 된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잡념이 많아지고 자기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 반면 마음이 이완되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또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쉽게 떠오르며 피로도 줄어든다.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다. 마음이 굳어지면 몸도 굳게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체가 앞으로 굽으면서 어깨나 목이 굳고, 표정도 굳고, 호흡이 얕고 불규칙해진다. 또한 흉식 호흡을 하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완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습관이 되면 항상 유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카오스 이론에 복잡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체의 모든 것은 복잡성이 높을수록 건강하다. 복잡성이 가장 높은 것은 자연이다. 복잡성이 가장 낮은 것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환경에 따라 뇌의 복잡성도 달라진다. 마음의 유연성에는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도시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라야 한다. 도시보다 자연에서 자란 아이가 뇌의 복잡성이 높아져 창의성과 상황 대처 능력이 높아진다.뇌가 단선적으로 발달하면 자기 틀에서 벗어난 생각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옳고 그름,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그러면 자꾸 부딪치고 갈등을 하게 되며, 각박해지고 충동적으로 변한다. 다차원의 사고를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므로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창의적인 대안을 잘 찾는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낡은 유조선을 이용하여 바닷물을 막아 공사비를 절감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창의적인 해결 방안은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대표적인 강박 관념인 완벽주의완벽주의는 무엇이든 실수 없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완벽주의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자기 생각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는 얼굴 표정에도 나타난다. 항상 근엄하고 웃음이 없으며, 양 미간을 약간 찌푸린 상태다. 자신에게 언제나 무리한 기준을 요구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 꼼꼼한 사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 부정적인 결과를 미리 걱정하는 데 탁월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늘 완벽을 요구하면 자신이 직접 하지 않는 일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래서 남에게 일을 못 맡긴다.지나친 완벽주의는 삶을 감옥으로 만든다. 늘 애쓰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행복한 완벽주의자는 없다. 완벽에 빠져서 사람을 잃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진도가 안 나간다. 병적인 완벽주의자는 다른 사람에게도 완벽을 요구하므로 대인 관계가 엉망이 된다. 세상 일이 모두 마음대로 될 수는 없는데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니 결국 외롭고 지치게 된다. 주위에 믿을 사람이 없고, 자기가 직접 챙겨야 할 일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결국 자신이 꿈꾸던 완벽한 상황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지나친 완벽주의자는 겁쟁이다. 못하면 어쩌나, 남에게 흠 잡히면 어쩌나 라는 두려움이 클수록 완벽함에 집착한다. 지나친 완벽주의는 지나친 열등감이다. 남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이다. 이런 성격은 나이가 들수록 남의 말을 안 듣는다. 오히려 화를 낸다.‘~ 해야 한다.’ 라는 답변이 많으면 당위적인 사고에 굳어져 있는 것이다. 평소 말버릇에 ‘반드시, 절대로, ~ 해야 한다.’ 라는 표현이 많은 것도 그렇다. 대화를 녹음해서 들어보라. 단정적인 표현이 많은지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