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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國語科目 敎育科程
    國語科目 敎育課程Ⅰ. 국어과 교육과정의 변천1. 제 1차 교육과정1955년 8월 1일 국어 교육과정이 공포 되었다. 교과과정 으로 공포된 이 1차 교육과정은 교수요목 과 기본방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교수요목 에 비해 학습자의 경험과 생활을 더욱 중시하였고, 기본적인 언어습관과 언어수행기능을 올바르게 기르는 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짓기와 쓰기를 합하여 말하기 · 듣기 · 읽기 · 쓰기 의 4대 영역을 확정하였는데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국어Ⅱ 에 한자 및 한문 을 두어 국어교육과 한문교육을 병행하도록 하였다.2. 제 2차 교육과정1963년 2월 15일에 공포되었다. 기본방향은 역시 1차교육과정과 유사하며, 생활중심, 경험중심의 진보주의 교육사조를 실천면에서 수용, 적용한 특징을 보인다. 또한 교육과정의 체재를 목표-학년목표-지도내용-지도상의 유의점 으로 체계화하였는데, 지도내용 및 지도상의 유의점 항목을 명료화한 것은 이전에 비하여 한단계 발전한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 국어Ⅱ 에 고전 과정 을 신설하여 우리 고전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였다.3. 제 3차 교육과정1973년 2월 14일에 초등학교, 8월 30일에 중학교, 이듬해 12월 31일에 고등학교의 순서로 공포되었다. 3차 교육과정의 기본방향은 학문중심 교육원리의 도입과 가치관 교육의 강화로 요약된다. 그에 따라 국어교육의 일반목표도 언어생활, 개인생활, 사고와 정서, 국어문화의 네 차원에서 건실한 국민 으로 수렴되었다. 또한 국어교과의 영역을 말하기 · 듣기 · 읽기 · 쓰기로 4분하는 방법은 유지하되, 쓰기 를 다시 글짓기 와 글씨쓰기 로 나누어 서사교육을 강화하였다. 고등학교에서는 선택과목으로 있던 한문 을 한문과로 독립시키고, 대신 국어Ⅱ 에 고전 과 작문 을 두었다. 이 시기에 지도상의 유의점 아래 제재선정의 기준 항목을 신설하여 교재구성 방향을 제시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4. 제 4차 교육과정1981년 12월 31에 공포되었다. 3차 교육과정이 표방한 가치관 중심교육 그에 따라 국어교육과정은 언어기능의 신장강화, 문학교육 강화, 언어(지식)교육의 강화, 쓰기교육의 강화, 가치관 교육의 내면화를 염두에 두고 구성되었다. 특히 국어교육의 목표를 표현·이해(말하기 · 듣기 · 읽기 · 쓰기), 언어, 문학 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진술하고 배경학문으로 수사학, 언어학, 문학을 설정함으로써, 언어교과로서 국어과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지도상의 유의점 을 지도 및 평가상의 유의점 으로 개선하고 학년목표 를 학년별 내용 과 연계하여 체재를 더욱 정교화하였다. 고등학교에서는 국어Ⅱ 에 고전문학 , 현대문학 , 작문 , 문법 과목을 설정하여 선택의 폭을 넓혔다.5. 제 5차 교육과정1987년 3월 31일에 중학교, 6월 30일에 초등학교, 이듬해 3월 31일에 고등학교의 순서로 공포되었다. 이 교육과정은 국어교과의 일반원리로 학생중심, 과정중심의 국어교육관을 도입하고, 교수·학습상황의 주체를 학습자로 보며, 언어수행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였다. 국어사용 능력, 스키마, 문식성 등의 개념은 이때 정착된 것이다. 또 4차 교육과정에서 표현·이해 로 묶었던 말하기·듣기·읽기·쓰기를 다시 세분하여 언어수행기능을 강조하였고 그에 따라 초등학교 교과서를 말하기·듣기 , 읽기 , 쓰기 로 분책하여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고등학교에서도 현대문학 과 고전문학 을 합하여 문학 과목을 새로 설정하고 국어Ⅱ 의 개념을 없애, 국어 , 문학 , 작문 , 문법 의 4과목 체제가 완성되었다.6. 제 6차 교육과정1922년 6월 30일에 중학교, 9월 30일에 초등학교, 10월 30일에 고등학교의 순서로 공포되었다. 기본방향은 국어교과를 통한 전인교육과 민주시민 교육, 창조적 사고력과 정보처리 능력배양, 정서교육의 강화, 내용체계 구성에서의 시대적 타당성 강화, 내용요소의 합리적 조정, 지도방법 및 평가방법의 인간화와 다양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어교과의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1.성격 항목을 신설하고, 3.내용 항목에 가. 내용체계 를 신설하여교의 선택과목에도 화법 , 독서 과목을 설정하여 국어교과의 여섯영역과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언어, 문학) 다섯 선택과목 (화법, 독서, 작문, 문법, 문학)이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7. 제 7차 교육과정7차 교육과정은 1997년 12월 30일에 공포되었다. 21세기를 위한 교육개혁의 요구를 반영한 7차 교육과정은, 이전까지 초 · 중 · 고 교육과정으로 분리되었던 것을 통합하여 1학년에서 10학년에 이르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을 설정하였다. 또 말하기·듣기·읽기·쓰기·언어·문학으로 되어 있던 국어과의 하위영역을 듣기·말하기·읽기· 쓰기·국어지식·문학으로 재구조화하고, 교수·학습과 평가 방법을 더욱 상세히 제시하였다. 특히 심화·보충형의 수준별 교육과정을 지향하는 동시에 고등학교 단계에서의 학생선택중심 교육과정을 강화하여, 학습자 특성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고등학교에서는 과목간의 관계를 분명히하여, 기초 과목으로 국어 와 국어생활 을 두고 심화선택과목으로 화법 , 독서 , 작문 , 문법 , 문학 이 정립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정보사회에 대비하여 창의성과 정보능력을 배양하는데 초점을 두었고, 열린 교육과 수행평가를 강조하여 실제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의도하였다. 그 밖에 교육의 질 관리체제 확립, 학습량과 수준의 적정화, 언어활동에서의 인지 · 정의 · 사회적 요인의 조화, 국어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 수용, 학교교육과 일상 언어생활의 통합 등이 7차 교육과정을 특징짓는 요인들이다.Ⅱ. 국어 교육과정의 문제점현행 교육 과정에는 국어과의 교육 목표가 학교급별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고등 학교 교육 과정의 경우에는 학교급별 목표 이외에 공통 필수 과목으로서의 국어 과목 목표, 과정별필수 과목으로서의 화법 , 독서 , 작문 , 문법 , 문학 과목의 목표를 함께 제시하는 구조이나, 그 체계가 가지런하지가 않다. 이러한 제시 방식은 초ㆍ중학교의 경우는 국어 교육을 위한 교과명과 과목명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볼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등 학교에서 국어 교육을 받은 학습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기를 기대하는 성취하기를 기대하는 기준(또는 수준)이 무엇인지를 현행 교육 과정의 학교급별 목표를 통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둘째, 국어과 교육 목표 제시 구조의 문제이다. 현행 초ㆍ중학교의 국어과 교육 과정과 고등학교 국어 과목의 교육 목표는 전문+하위 목표 의 구조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과정별 필수 과목의 목표는 목표 만 제시되어 있다. 셋째, 학교급별 목표와 고등학교의 경우 선택 과목의 하위 목표의 제시 방식과 내용 구조의 문제이다. 초ㆍ중ㆍ고등 학교 국어 교과의 목표는 1 언어 기능에 대한 목표, 2 언어에 대한 목표, 3 문학에 대한 목표의 세 가지가 제시되어 있는데, 모두 인지적 특성과 관련된 목표이다. 한편, 고등 학교 과정별 필수 과목의 경우는 인지적 특성에 대한 목표와 정의적 특성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기는 하나 목표 설정 기준이 불분명하다.{)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에는 각 과목의 목표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다. 화법, 독서, 문법, 문학과목은 지식 습득, 능력 신장, 태도 형성에 관한 목표가, 작문 과목은 지식과 표현력 신장에 관한 목표가 제시되어 있다.(교육부, 고등학교 교육과정(1), 1992 : 42-45쪽 참조교과 목표 설정 및 제시 구조와 관련된 이러한 문제는 국어 교육 목표의 체계화를 위해서는 말할것도 없고, 제7차 교육 과정을 수준별 교육 과정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된다.(1) 국어 교육의 내용 선정 준거와 기준 문제국어 교육의 내용은 교육 목적 내지 이념, 즉 철학적 기반을 고려하고 이에서 도출한 국어과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합한 것들을 선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교육 과정에 제시된 교육 내용 제시 방식은 활동만 제시한 것, 자료와 내용을 혼합 제시한 것, 방법과 자료와 내용을 함께 제시한 것 등으로 다양하다. 이는 제5차 교육 과정을 개정할 때 제기되었던 문제, 예를 들어, 언어 사용 기혼합된 진술 방식을 개선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내용 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된다.(2) 교육 내용의 중복 제시와 수준과 범위 문제학년별 교육 내용을 중복ㆍ제시하는 이유로는 교육 내용의 중요성, 국어 사용 능력 신장을 위한 반복ㆍ심화 학습의 필요성 등을 들고 있다. 또, 표현과 이해가 언어 매체의 차이일 뿐 교육 내용만에서 유사하다는 점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물론, 국어과의 교육 내용에 이러한 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교육 내용을 정선하고, 이를 일정한 원리에 따라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해소해 나가야 한다. 교육 과정에 동일한 교육 내용을 반복 제시하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학습할 수준과 범위가 불명료하다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 문제가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제기되었던 기초 연구의 부족, 학습자의 성 취 수준 설정의 어려움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느 학년에서 어떤 교육 내용을 학습하게 하여 어떤 행동의 변화를 의도하고자 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는 교육 내용(학습요소)의 수준과 범위를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이다.(3) 방법 항에 제시한 지침의 실제적 유용성 문제방법 항에 제시하는 지침은 교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가능한 한 구체화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수준별 교육 과정을 운영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교수ㆍ학습 자료의 구성에 관한 지침, 특히 수준별 학습을 위한 보충ㆍ심화 학습 자료의 구성과 활용에 관한 지침을 구체화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4) 평가 항에 제시한 지침의 실제적 유용성 문제평가 항에 제시하는 지침은 교사가 평가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현행 교육 과정의 평가 항에는 제5차 교육 과정보다는 구체화ㆍ상세화한 지침이 제시되어 있으나, 이보다 상세화하고 구체화하여 실제적인 유용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수준별 교육 과정의 성패가 국어 교육의 본질에 적합한 평가 활동에 달려 있다는 점, 평가있다.
    교육학| 2005.12.30| 7페이지| 2,000원| 조회(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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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김소월 시에 나타난 공간의식
    Ⅰ. 서론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은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시인이다. 그의 시들을 통관해 보면, 거기에는, 1920년대의 시인 및 지식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면이 분명히 드러난다.하지만 그의 시는 고립무원한 존재로서의 막연한 슬픔과 그리움, 체념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슬픔이라든가 그리움, 체념 등은 주권회복이라는 민족사적 원망을 담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정스런 현실을 「수용하고」「기피하는」두 면을 지닌다. 이 글에서는 그의 생애와 작품들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하는 의(意)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소월이 가진 공간의식의 배경1. 1920년대 시의 특징1920년대의 시의 특징은 1910년대의 대표적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주요한이나 김억 등에 비할 때 개인적 서정의 중대성을 더한층 깊게 일깨워준 공로에도 불구하고, 백조파 시인들의 현실부정은 우리 근대 서정시의 발전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막중한 문학사적 임무는 그 뒷시기 시인들에게 이월되었으니, 일제 강점하 조선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면서 밝은 시적 전망을 열어 보이는 새로운 시형식을 찾아내는 힘겨운 과제가 짐지워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 서정시의 핵심적 내포를 새삼 확인할 필요를 느낀다. 한국시에 있어서 근대성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형태적으로는 기성의 율격적 구속을 거부하고 시대적 호흡에 맞는 새로운 율동을 창출해내는 것이며, 내용적으로는 감성의 자유로운 발로를 억압하는 규범적 관습과 제도를 타파하면서 아울러 역사적 추이에 대한 균형적인 시적 인식을 담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1920년대 시인들에 있어서 이러한 시적 근대성의 확보는, 전통적인 율격의 창조적 변용과 국어의 운율적 가능성에 대한 깊이있는 탐색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 식민지시대 삶의 구체적 세부를 역사적 지평과 결합시킬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서정 이란 것도 주관적 정서의 평면적 표출이 아닌, 사물의 본질과 당대적 삶의 구체성을 파고드는 다양한 감각적 경험이지 않으면 질서의 급속한 붕괴와 함께 격심한 감정의 해방을 경험한 이 시대 시인들에 있어 사랑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런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 그리움의 노래야말로 신문화의 자유연애와 낭만적 사랑의 이념을 처음 접한 이들 개명한 조혼세대 시인들의 우울한 자기발견과 자기해방에의 충동의 다름아니라는 사회학적 해석이다. 둘째는, 조국의 상실에서 비롯된 불행과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님을 설정하고 그와의 관계 회복을 염원한 노래라고 보는 정치적 관점이다. 이들은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도 식민지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면모는 당대의 가장 절실한 현안이었던 국내외 유이민(流移民) 문제를 수준 높게 형상한 김소월의 「나무리벌 노래」(1924)나 「옷과 밥과 자유(自由)」(1925), 한용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1926,5),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6)등을 통해 확인된다. 1920년대는 문화정치라는 근사한 외형적 표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과 질에 있어서 1910년대와는 아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일제의 정치적 외압이 한층 가중되었을 뿐 아니라, 전통적 가치질서가 급속히 와해되고 서구 문화가 물밀 듯 유입되는 문화적 대전환기였던 까닭에, 당대의 지식인들이 겪게 되는 삶의 딜레마는 엄청난 것이었다.{) 민족문학사연구소 엮음, 『민족문학사 강좌』, 창작과비평사, 1986, pp.79~81면 참조.2. 生涯1902 平北 定州郡 郭山面 南山理에서 金性熹와 장경숙의 맏아들로 음력 8월 6일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金性熹는 素月이 난 지 얼마뒤 정신이상이 되었다. 그 래서 素月은 맏손자로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할아버지 金相疇는 유교를 숭상하였으며 광산에 손대어 한때 벼락부자라는 소문을 들 을 정도였으나 素月의 성장기에는 몰락하여 학비조차 제대로 대기 어려웠다.1907 獨書堂에서 한문 수학하다.1909 南山學校 2학년에 편입하다.1915 五山學校에 들어가다.平北 定州 龜城의 17세 난 洪尙과 결혼(뒤에 었다. 어렇게 산과 들, 바다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곳이 소월의 고향마을이었다. 소월은 1902년 8월 6일(음) 새벽녘에 모친의 친정인 구성에서 고고의 울음을 터뜨렸다. 소월이 민족시인으로서 주옥같은 민요조 서정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자연환경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소월에게는 두 명의 숙부와 세명의 고모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소월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큰 고모부 김시참, 둘째 숙부 김인도, 그리고 첫째 숙모 계희영이었다. 그녀는 평북 선천군 농연에서 태어난 지방토족의 딸로서 소월의 숙부 김학도(金學燾)에게 시집을 왔다. 김학도는 배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주로 외지를 떠돌며 생활을 하였다. 또한 신의주에서 신여성과 동거하는 등 아내 계희영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다. 그러나 계희영은 이를 감수하고 15년이나 고생하며 기다렸으나 남편은 끝내 요절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 남편을 둔 계희영은 마음 붙일 곳이 없어 소월에게 애정을 쏟았던 것이다. 그녀의 친정은 부유했고 또 신학문에도 일찍 눈을 뜬 집안이었다. 그녀가 언문을 익혀 많은 고대소설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러한 숙모의 문학 지식이 결국 소월의 문학적 감수성에 큰 자양분으로 활용됐던 것이다. 그녀는 소월이 4살 되던 해 김씨 가문으로 시집을 왔는데(16세)시집온 첫날부터 소월은 작은 엄마라고 부르며 그녀의 치마저고리를 붙잡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잠자리까지 따라다녀 소월이 잠든 후에 다시 방을 옮겨 놓을 정도였다. 특히 소월은 작은 엄마에게 옛날 이야기 듣기를 좋아해 그녀를 보기만 하면 졸라댔는데 그때 주로 얻어들은 고대소설이 「장화홍련전」, 「춘향전」, 「심청전」, 「옥루몽」, 「삼국지」등이었다. 동화 한 권 구해보기 힘든 당시였고보면 숙모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소월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충족시켜 주고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시켜 주었다. 더구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감수성이 예민한 소월이었던 만큼 숙모에게 들은 이야기는 큰 자극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이내속을 둘 곳 없어서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풀따기」){ ) 앞의 책, p.38.남산학교를 졸업한 소월은 1915년 13세 되던 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오산중학에 진학하였다. 오산중학으로의 진학은 소월로 하여금 고향 마을의 좁은 공간의식에서 민족이나 국가라고 하는 폭넓은 역사의식으로 전환케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오산에서의 안서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가름하는 운명의 만남이었다. 그때 소월이 안서선생을 감동시킨 작품은 「가는 길」, 「못잊어」,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꽃」, 「접동새」, 「엄마야 누나야」등이었다.소월은 부인과 비교적 원만한 것이었지만 조부의 강제에 의한 결혼이었고 또 마음속에 둔 연인이 있었기에 그에 못지않은 내적 갈등도 겪어야 했다. 남산학교 시절 옥녀봉 냉천터에서 밀회를 나누던 오순이를 소월은 잊을수가 없었다. 오순에 대한 소월의 애틋한 정은 「못잊어」, 「그리움」, 「꿈자리」같은 시편들을 낳았고 소월의 첫 연인이었던 오순과의 이별은 오히려 소월로 하여금 주옥같은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한 계기가 되었다.자나깨나 앉으나 서나그림자 같은 벗 하나가 내게 있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였겠습니까!오늘도 또 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그려허수한 맘, 둘 곳 없는 心事에 쓰라린 가슴은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 앞의 책, p.70.이 시에서처럼 소월에게 있어 오순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연인이었던 것이다. { ) 김영철, 『김소월』, 건국대학출판부, 1994, pp.15~30면 참조.Ⅱ. 소월시에 나타나는 공간의식1. 떠남 과 돌아옴 의 의미山에는 꽃피네꽃이 피네갈봄 여름없이꽃이 피네山에山에피는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山에서 사는작은 새여꽃이 좋아山에서 사노라네山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봄 여름없이꽃이 지네「山有花」이 행의 외연(外라고 말한 그것은 무엇일까? 일단 즉자(卽自)와 대자(對自)와의 존재양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더풀어서 말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꽃은 인간과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저만치)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는 관계없이(인간의 입장으로 보면 아주 고독하게 혼자서)피어 있다. 그것은 영원히 메꿀 수 없는 거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은 그가 짊어진 자유 때문에-그것의 고통 때문에 오히려 차원(次元)이 다른 즉자적 존재(卽自的 存在:이 시에서는 꽃)에 대한 동경이 있다. 차라리 돌이되고 싶고 꽃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자기의 일을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처리해야 하는 자유라는 것의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차라리 죽고 싶어진다. 자살이란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사건이다. 소월이 「山有花」에서 꽃을 두고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라고 했을 때 이미 말한 것처럼 그는 꽃(즉자적 존재)에 대한 동경을 말한 것이 된다. 즉 차라리 꽃이 되고 싶다. 또는 인간의 존재의 차원을 떠나고 싶으나 떠날 수가 없다는 어떤 체념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다.2. 머뭄 의 의미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寧邊에 藥山진달래꽃아름 따라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진달래꽃」소월의 시 중에서도 이 시는 특이하다. 그 특이성은 이 시의 내용에 있다. 즉 사랑의 양상(樣相)에 있다. 이 시에서의 사랑은 소월의 다른 시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사랑일 뿐 아니라, 일찍 소월 이전의 한국의 시가(詩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랑이다. 대체로 한국의 고전시가(古典詩歌)에 등장하는 사랑의 모습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타산적(打算的)이기까지 하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불만과 아쉬움이 한(恨)이 도기도 하고, 현실의 중압(重壓)의 도피(逃避)로서 관능적(官能的) 사랑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기를 내던지고 있는 사랑-끝없이
    인문/어학| 2005.12.30| 15페이지| 5,000원| 조회(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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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이제현에 대해서
    Ⅰ. 李齊賢 약전李齊賢(1287~1367)은 기울어져 가는 高麗王朝를 글과, 끈질긴 위국의 정열 그리고 군주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지켰던 문장가요, 성리학자요, 유능한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의 자는 仲思, 호는 益齋로서 그 선대가 모두 文章世家이다. 忠烈王 13년에 경주에서 정승인 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 다섯의 어린 나이로 登科했으니 그가 얼마나 영특한 천재인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등과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경전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하여 당시로서는 신학문인 성리학을 공부했다. 22세에 비로소 藝文春秋 에 발탁되어 문명이 세상에 알려졌고, 동료들도 그의 문덕을 숭상하게 되었다. 28세에 충선왕의 무름을 받아 원나라의 서울인 燕京으로 가게 되었다. 원나라의 내란을 평정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忠宣王은 원나라 머물러 있으며 고려의 왕위는 아들 忠肅에게 넘겨 주었다. 그리고 연경의 萬卷堂에서 학문과 예술을 전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만권당에는 천하의 선비가 모두 모였을 뿐만 아니라 姚 , 趙孟 등 당대의 일류 문사들도 있어서, 충선왕은 자기 밑에는 이런 문사들과 시문을 겨룰 만한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여 결국 이제현을 연경으로 불러들인 것이다.어느 날 왕이 만권당에서 대륙의 쟁쟁한 시인 문사들과 시회를 열었다. 이 때 왕의 시에 닭소리는 흡사 문전의 버들 같고나 라는 시귀가 있었다. 만좌한 시인들이 그 출처를 물었다. 왕은 창졸간에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아 당황한 빛을 보였다. 이 때 왕을 모시고 있던 익재가, 우리 東人 시에 屋頭初逸日金鷄唱, 怡似垂楊 長 이라는 시귀가 있는데, 이는 닭울음소리의 가늘고 긴 것을 버들가지에 비유한 것입니다. 韓退之의 시에도 이런 시귀가 있지요 하여 뭇사람들을 감탄케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하고 있다. 2년 후에 왕명을 받을어 西都지역을 여행했고, 33세 때에 왕을 모시고 江南을 周遊했고, 35세에 왕이 참소를 입어 토향으로 유배되었는데, 이때에 익재는 친히 왕을 뵙기 위해 1만 5천 리의 장거리 여행도 감행했다. 이와같이 대륙의 奧地를 누비면서 고생도 했고, 또 시도 짓고 기행문도 남기고 하여, 이 여행으로 그의 문학은 풍성한 결실을 가져오게 되었다.공민왕이 즉위했을 때에 익재의 나이는 이미 65세가 되었다. 이 때 정승이 되어 관계에 나아갔다. 기우는 조국과 약화된 왕권을 바로잡고 보좌하기 위해 온 정력을 다했다. 그러다가 팔순의 고령으로 한 생애를 마쳤다. 그야말로 난세에 태어나 붓으로 몸으로 충의를 나타낸 위국의 선비요, 충직한 관료의 한평생이었다. 그의 저술로서는 [小樂府], [ 翁稗說], [益齋亂藁]가있다. {) 장덕순, 『한국수필문학사』, 새문사, 1985, pp. 77~78면 참조.Ⅱ. 翁稗說[역옹패설]은 전집 1,2와, 후집 1,2로 구성되어있고, 전집 1엔 서문을 빼고 16화, 전집 2에 43화, 후집 1에 28화, 후집2에 25화, 총 112화가 수록되어 있어서 그 내용도 다양하다.[고려사] 에 의하면, 백이정이 원나라에 있으면서 程朱學을 배워 오자 李齊賢과 朴忠佐가 제일 먼저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고 하고, 이와 관련하여 익재는 [역옹패설]에서 백이정이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10년동안 元都에 머물면서 程朱性理書를 많이 구하여 돌아옴으로써 학자들이 또 도학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그의 업적을 稱賞하고 있다.{) 김건곤, 『이제현의 삶과 문학』, 이회, 1996, p.28.한편 익재는 학문에 있어서 명경 이외에 사서의 공부를 통한 博古를 중요시 하였다.대덕 말년에 문성공 安珦이 재상이 되어 국학과 상서를 수리하고 이성, 추적, 최원충 등을 기용하여 한 경전에 두 교수를 두어서 금학, 내시, 오군, 삼관의 7품 이하로부터 내외 생원에 이르기까지 다 따라 익히게 하였다. 안향은 또 중이 되어 사주에 사는 古 낭중 兪或의 아들이 『史記』와 『漢書』를 잘 읽는다는 말을 듣고 驛傳으로 불러 서울로 오게 한 뒤에 윤신걸, 김승인, 서인, 김원식, 박이 등을 그에게 보내어 강설을 듣게 하였다. 이에 선비의 무리가 많이들 경서에 능통하고 옛일을 널리 아는 것을 일삼았다.위의 사실이 안향과 관계된 것이지만, 익재가 [역옹패설]에 取錄 것은 안향의 사업이 유가로서 지극히 올바른 일이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 위의 책, p.55.< 翁稗說前集書>와 는 55세 때 管路에서 잠시 물러나 집에 칩거하면서 무료하고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잡록 『역옹패설』을 저술한 바, 그 저술경위와 책의 이름에 대해서 해명한 것이다. 에서, 처마의 낙숫물을 받아 벼룻물을 삼고, 친구들 사이에 오고 간 편지들을 이어 붙여 그 뒷면에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고 한 저술경위에는 『역옹패설』의 수필문학적 성격이 나타나 있다. 또 나무가 재목감이 되어 베어지는 것을 피하는 뜻에서 역옹이라 자호했다는 데에서는 謙辭이긴 하지만 그의 소극적인 처세관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인문/어학| 2005.12.30| 3페이지| 1,000원| 조회(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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