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3
검색어 입력폼
  • 근대 미술 작가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23~1883.4.30]프랑스의 화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세련된 도시적 감각의 소유자로 주위의 활기 있는 현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필력에서는 유례 없는 화가였다. 종래의 어두운 화면에 밝음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중개역을 수행한 점에서 공적이 크다.파리 출생.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법관의 아들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화가 지망을 허락하지 않아서 17세 때 남아메리카 항로의 선원견습생이 되었다. 남아메리카를 항해한 1850년 겨우 쿠튀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카데믹한 역사화가인 스승에게 반발하여 자유연구로 나아가 루브르미술관 등에서 고전회화를 모사, F.할스나 벨라스케스 등 네덜란드나 에스파냐화파의 영향을 받았다.살롱에는 1861년 겨우 입선하여 수상한 바 있으나, 처음부터 이색적인 작품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낙선을 거듭하였다. 혁신적인 작품은 1863년 낙선전(落選展)에 전시된 《풀밭 위의 점심 Le D?jeuner sur l’herbe》, 1865년의 살롱 입선작《올랭피아 Olympia》로 일약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이 두 작품에 대한 비난은 지나쳤으나 도리어 그의 표현기법의 참신성과 밝음을 결정적으로 인상지어준 결과가 되었다. 이 사건 이래 화단과 문단 일부에서 열렬한 지지자를 얻었고, 자신을 경모(敬慕)하는 C.피사로, C.모네, A.시슬레 등 청년화가들 사이에서 그 후에 대두될 인상주의에의 길을 여는 기연(機緣)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네 자신은 아카데미즘의 공인을 기다려, 인상파그룹의 전람회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고, 그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대단히 꺼렸으나 한때는 인상파기법을 채용하여 제작한 적도 있다.만년에는 레지옹 도뇌르훈장을 받았으나, 류머티즘으로 고생하여 육체적 피로도가 비교적 적은 파스텔화(畵)를 그렸다. 그래도 《막시밀리안의 처형 L’Ex?cution de Maximilien》(1867),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Le Bar Folies-Berg?re》(1882) 등 유화의 걸작을 남기고 51세의 생애를 파리에서 마쳤다. 세련된 도시적 감각의 소유자로 주위의 활기 있는 현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필력에서는 유례 없는 화가였다. 종래의 어두운 화면에 밝음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중개역을 수행한 점에서 공적이 크다.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8.6~1987.2.22]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팝의 교황', '팝의 디바'로 불린다.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였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으며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통한다.1928년 8월 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1949년) 뉴욕에 정착하여 잡지 삽화와 광고 제작 등 상업미술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0년 기존의 상업미술 대신 순수미술로 전환해 배트맨, 딕 트레이시, 슈퍼맨 등 연재만화의 인물시리즈를 그렸다. 그러나 고상한 예술만을 중시하던 당시 뉴욕의 화상들로부터 외면당하였다.1962년 뉴욕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에서 열린 '새로운 사실주의자들 New Realists' 전시에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워홀은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 달러지폐, 유명인의 초상화 등을 실크스크린 판화기법으로 제작하였다. 그가 선택한 작품 주제는 대중잡지의 표지나 슈퍼마켓의 진열대 위에 있는 것으로 워홀은 그것을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The Factory)'에서 조수들과 함께 대량 생산하였다.워홀은 1963년 첫 영화 《잠 Sleep》을 촬영하였다. 1965년에는 영화 만드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회화와의 작별을 선언하였다. 그는 총 28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 1968년 팩토리 일원이자 그의 실험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던 발레리 솔라니스에 의해 저격당하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솔라니스는 후에 "그는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었다"라고 회고하였다.1970년대부터 사교계나 정치계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1972년 《마오 Mao》시리즈로 다시 회화 제작에 전념하였다. 1983년 장 미셸 바스키아와 친분을 맺고 함께 작업하였다. 1987년 2월 22일 담낭 수술과 페니실린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워홀은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던 그는 동시대 문화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를 시각화해내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워홀은 자신의 예술을 '세상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기계이기를 원했던 워홀은 기계와 같은 미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기계를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세계 속에서 그의 이미지도 그의 명성과 함께 증식을 거듭하고 있다.주요 작품은 《캠벨 수프 Campbell's soup》(1962), 《두 개의 마릴린 The two Marilyns》(1962),《재키 Jackie》(1964), 《마오 Mao》(1973), 《자화상 Self-Portrait》(1986) 등의 실크스크린과 영화 《잠 Sleep》(1963), 《엠파이어 Empire》(1964),《첼시의 소녀들 The Chelsea Girls》(1966) 등이 있다.바실리 칸딘스키 [1866.12.16~1944.12.13]현대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 청기사파의 일원이었고 추상미술이론가로도 활동했다. 선명한 색채로써 교향악적이고도 역동적인 추상표현을 관철한 뒤 점차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성적 양식으로 들어가서 독자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푸른 산》, 《즉흥 14》, 《검은 선들》 등이 있다.모스크바 출생. 1939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현대 추상미술을 창시한 한 사람이며 처음에는 법률과 경제학을 배웠으나, 1895년 인상파전을 보고 모네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이듬해인 1896년 뮌헨으로 옮겨 아즈베와 F.슈투크에게 사사하여 화가로 전향하고 1905년 살롱 도톤의 회원이 되었다. 그 전후에 이탈리아 ·튀니지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고, 1908년 이후 뮌헨 ·무르나우에 살면서, 1910년에 최초의 추상회화를 제작하였다.또한 표현파인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뮌헨에서 예술가집단인 ‘청기사(靑騎士)’를 조직하여(1911), 비구상 회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모스크바로 돌아가, 1918년 미술학교 교수가 되었으나 1921년 다시 베를린으로 가서 이듬해부터 1933년까지 바우하우스의 교수(처음 바이마르, 1925년부터 데사우)로서 후진지도와 신예술 개척에 힘썼다. 만년에는 1933년부터 프랑스에 정주하여, 여행 이외에는 파리 교외의 누이쉴센에 살았으며, 1937년 나치스가 퇴폐예술가라고 지적하여 작품이 몰수당한 적도 있다.그는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로서,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이탈, 선명한 색채로써 교향악적이고도 다이내믹한 추상표현을 관철한 후 점차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성적 양식으로 들어갔으나 P.C.몬드리안과는 또다른 독자적인 발전의 자취를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푸른 산》 《즉흥 14》 《검은 선들》 《가을》 《콤포지션 7》 등이 있으며, 또 추상미술 이론가로서도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 Über das Geistige inder Kunst》(1921) 《점 ·선 ·면 Punkt und Linie zu Fläche》(1926) 등의 저술도 남겼다.피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3.7~1944.2.1]네덜란드의 화가.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화의 선구자다. 자연주의와 포비슴을 거쳐 수평과 수직의 순수추상으로 향하였다. 이는 질서와 비율과 균형의 미다.아머르즈포르트 출생.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화의 선구자로 1894년 암스테르담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자연주의 화풍에 철저하였으며 쓸쓸한 겨울풍경과 정물 등을 그렸는데, 뭉크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면서도 어딘지 병적이었다. 그 후 신비주의 화가 얀 투로프를 알게 되어, 《나무》의 연작(連作)을 권유받아 차차 추상으로 바뀌었다. 칸딘스키의 우발적인 비대상(非對象)의 추상과 비교하면, 그의 경우는 문자 그대로 나무면 나무, 모래언덕이면 모래언덕의 핵의 추상으로서 추상화가 탄생한다.1910년 파리에서 포브의 감화를 받았으나, 1917년 도스부르크 등과 ‘데 스틸운동’을 일으켰으며, 끝내는 수평과 수직의 순수추상으로 향하였다. 이는 질서와 비율과 균형의 미이며, 자신도 고독과 청빈에 만족하며, 종교적인 엄격한 경지를 지녔다. 1938년 런던을 거쳐, 1940년 뉴욕으로 망명하였다. 주요작품에 《햇빛 속의 풍차 Windmill in Sunlight》《빨간 나무 The Red Tree》가 있다.
    예체능| 2015.10.22| 3페이지| 1,000원| 조회(229)
    미리보기
  • 삼국지를 통해 본 처세술
    처세술이라는 단어 자체에 상당한 매력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앞으로의 일을 걱정한다. 미래의 일을 알 수 없으며 그 무엇으로도 완전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다만, 과거의 일을 살펴 추측하고 행동을 예상함으로써 난관을 극복하길 기대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확실성에서 살아간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범위도 광대하여 농사지으며 살아가던 세대에 비해 배우는 것은 많지만 무지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넘쳐나는 지식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며, 중심이 서지 않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살아가다 쇠약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처세술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대부분의 처세술은 과거의 현인이나 역사를 통해 전해지는 교훈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처신하고 조심해야 할 것을 모아 놓은 것인데, 어쩜 현 시대에서 옛 말들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바보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만들어 가는 것은 사람들이고 그 들이 살아오면서 깨닫고 알리기 위해 만들어낸 교훈은 지금 사람들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분명 적용될 것이라 생각된다.처세술이란 수학의 공식과 같은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완전하고 완벽한 단 하나의 답이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누구를 상대하느냐에 따라 달리 해야 된다는 것이다.본인은 처세술에 대해 삼국지를 통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삼국지에는 난세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과 그 영웅들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펼치는 죽고 죽이는 지략이 담겨있다. 그 속에서 묻어나는 여러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자신을 지키고 세상에 대응할 처세술을 얻길 원한다. 그 중 몇 몇 일화를 통해 그의 삶을 통해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처세술을 좀 더 현대적인 시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자.조조는 사마의를 반골상이라 하여 쓰지 않았다. 반골이라 함은 몸을 돌리지 아니 하고 고개만을 돌려 뒤를 볼 수 있는 것을 일컫는 것인데, 대개 반골은 반역계해야 하는 위치도 아니거니와 잃을만한 것도 없다. 하지만 현 시대에서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처세술로 선택한 이유는 사람은 내가 눈으로 보는 것이랑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는 반골상이니 조심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겉모습은 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외모는 익숙해지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사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알 수 없다. 살아가면서 믿음을 줘도 나쁘지 않을 친구하나 얻기 힘들다는 어른들의 말이 실로 맘에 와 닿는다.경계란 ‘뜻밖의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여 단속함’과 ‘옳지 않은 일이나 잘못된 일들을 하지 않도록 타일러서 주의하게 함’이라는 뜻이 있다. 친구에게 믿음 주기가 두려워서라기보다는 그들이 나를 버리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나 자신을 단속해야 함을 느낀다. 또한 서로가 옳지 않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맹목적인 의심이 아니라 잘잘못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2. 지혜로운 자, 능력 있는 자를 얻기 위해 노력하자.조조와 같은 시대에 패권을 다투었던 원소나 원술과는 달리 조조는 신분이나 주위의 평판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사람을 고용했다. 그는 방문에 "품행이 단정치 못하거나 효하지 않아도 능력 있는 자는 오라"라고 써 붙였다. 하지만 조조의 이러한 자세는 그가 난세를 헤쳐 나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이는 자기 집안의 몇몇 형제와 조카들을 중심으로 4000명의 병력밖에 안됐던 그가 불과 몇 년 만에 모사가 구름을 이루고 장수가 숲을 이룬 방대한 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는 천자를 끼고 있었기 때문일 수 도 있지만 난세에 뜻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조조의 인재관도 남다르다 하겠다.조조는 특별히 인재를 중시했다. 야사에 따르면 순욱을 삼고초려로 조조가 맞이했다는 말도 있다. 그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뽑고 재질에 따라 벼슬을 맡겼다. 그리고 항상 인자한 자는 인자함을, 총명한 자는 총명함을 쓰게 하고 무신은 표햇다. 그는 자신에게 반대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중책을 맡기곤 했다. 예를 들어 진림은 한때 원소를 위해 조조 토벌의 격문을 기초하면서 조조의 갖가지 ‘죄악’을 들추고 그의 조상까지 헐뜯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원소를 격파하고 진림을 사로잡았을 때, 그의 재능이 아까워 그를 죽이지 않았을 뿐더러 중요한 자리에 기용했다. 조조는 성실한 태도로 인재를 흠모하고, 인재를 환영하고, 인재를 포용하고, 인재를 활용하고, 인재에게 관심을 쏟았다. 그래서 그 인재들이 결국 그가 천하의 한 부분을 제패하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개인적 소견으로 조조가 그립기도 하다. 분명 이용가치가 떨어지고 자기의 뜻과 부합되지 않은 사람은 잔인하게 죽였지만, 그는 인재를 보는 눈과 등용하는데 있어 대단한 사람이었다. 허명에 두지 않고 오직 그 사람의 능력을 보고 판단했다. 그래도 신분과 지역 차별적 등용이 아예 없었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의 인재경영은 탁월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를 바라보면 화도 나고 안쓰럽기도 하다. 중도실용주의를 내세운 정부는 그 정신을 망각한 체 자기 사람들도 줄 세우고 한 자리씩 주는 모습을 보면 사마의 가문에게서 권력을 지키려다 조씨 가문의 정권 다툼으로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자멸해 가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3. 술을 절제하자.술은 인간이 누리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모든지 그 정도를 지나치면 악이 되고 병들게 하며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 삼국지에서는 술로 망한 사람, 장비가 있다. 그는 술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그의 나라 촉의 국력 또한 약하게 만든 장본인이다.장비는 용맹하고 과격한 성격이고, 성격이 매우 급했으며 술을 좋아하고 싸움을 즐겼다. 장판교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는 계책으로 필마단기에 호통만으로 조조의 백만 대군을 도망가게 했다. 장비는 무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정사를 게을리 하는 방통을 꾸짖으러 갔다가 그의 뛰어남을 알아보고 방통을 유비에게 천거하기도 했고, 촉을 공략할 때 엄안의 충절 이성을 잃어버리고 죽음을 재촉했다 할 것이다.술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은 조조의 셋째 아들인 조식도 있다. 그는 본래 재주가 뛰어나고 학문에도 박식하여 조조가 총애했으며 여러 차례 태자로 삼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성질이 제멋대로여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으며 술도 절제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술을 끊지 않고 여러 번 실수를 했고 왕권은 첫째 아들인 조비에게 넘어갔다. 여포도 술 때문에 화를 재촉한 사람이다. 여포는 삼국지 중 제일의 무장이었다. 마중 적토 인중 여포란 말을 남길 정도로 그의 무예는 가장 뛰어난 영웅이었지만 여자로 인해 양부 동탁을 죽였고 금은보화에 흔들리는 등 재물에 눈도 어두운 사람이다. 여포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자기가 내린 금주령 때문이었다. 유비와 조조의 공격으로 패배하고 기각의계, 원술의 원군을 요청한 것이 모두 수포에 돌아가고 하비까지 몰린 여포는 하비는 천연요새라 성문을 걸어 잠그고 술만 마셨다. 그러다가 나중에 금주령을 내렸는데, 이 때 후성의 부하들이 말 도둑을 잡아오자 후성은 술잔치를 벌였고, 여포는 후성이 명을 어겨 죽이려고 하자 주변의 만류로 곤장을 때렸다. 이것에 앙심을 품은 후성이 송헌, 위속과 함께 여포가 자고 있는 사이 온몸을 묶고 조조에게 항복한다.이 외에도 삼국지에는 술과 관련된 화가 무척이나 많다. 삼국지에는 인간만사가 들어있다. 그래서 술도 삼국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술을 멀리 할 수가 없다. 인생에 즐거움과 슬픔, 아픔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고 한 부분을 찾지하고 앉았다. 아직까지는 술을 권하는 사회이고, 그 만큼 술은 사회 생활하는데 있어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 무기는 친화력을 돋우고 모임의 분위기를 좋게 해주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화를 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세대가 변하면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술은 여전히 사람들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다. 그 힘에 빠져 허우적 될 것인지 아니면 그 힘을 조절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지 관우를 오호대장의 하나로 임명하자, 관우는 마초가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오른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분이 나온다.그래서 관우는 관평을 보내어 서천에 들어와 마초와 무예의 높고 낮음을 가리려고 싶다고 전했지만 제갈량이 마초는 장비하고나 다투어 볼 수 있을 뿐 관우의 뛰어남에는 미치지 못하고, 형주를 지키는 책임이 매우 무거운 것이니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며 만류했다. 이에 관우는 제갈량의 글을 읽고, 공명이 자신의 마음을 안다며 뿌듯해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종강의 해석에서는 마초가 유비집단 내의 다른 장수들을 무시하고 거만하게 굴 것을 우려하여 일부러 관우가 나섰고 제갈량이 관우의 마음을 알아채고, 넌지시 관우의 용맹을 띄워주며 마초를 억눌렀다고 한다). 또 손권이 관우의 딸과 혼인을 제의 하였는데, 관우는 호랑이의 딸을 개의 아들에게 줄 수 없다 하면서 딱 잘라 거절했다. 이것이 손권으로 하여금 형주 침공을 결심케 했다. 대의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위신에 집착하다 목숨도 잃고 촉의 멸망을 앞당겼다고 생각된다.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요즘 시대에서는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력이며 능력이고, 그렇지 못하면 설 자리도 없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건방진 것은 용납하진 않는 분위기이다. 아무리 능력 있고 잘났다 해도 자신의 입으로 자랑하면 그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알아주고 높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잘난 것을 알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정도를 벗어나 해를 입게 된다. 자신감이 지나치면 생각이 좁아지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일인자일수도 없기 때문에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5. 상벌은 분명히.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추자.조조는 아무리 작은 공이라도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항상 부하의 공로를 칭찬해주며, 싸움에 이겼을 때에는 그 공로를 모두 자신의 수하들에게 돌렸다. 반대로 부하의 실수는 너그러이 용서했는데 자신의 명을 어겼을 경우에만 엄히 벌을 행하
    인문/어학| 2015.10.22| 6페이지| 1,000원| 조회(156)
    미리보기
  •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
    Ⅰ이야기의 핵심 단어를 정리해보자면 정직과 탐욕이다. 그리고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잠긴다. 이상과 감정이라는 충돌 속에서 나타나는 위장하는 인간과 발가벗겨진 인간을 보면서 어떠한 것이 정답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해들리버그는 그 부근에서 제일 정직하고 곧은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삼대에 걸쳐서 그 명성을 더럽히지 않고 지켜왔으며 그 명성을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은 그 명성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영원히 지속하고 싶은 나머지 요람에 있는 아기들에게도 정직성의 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들리버그 마을은 정직성이라는 상징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고 철저하게 그들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또는 사회를 건설할 때 구성원의 소속감을 견고히 하며 통치에 있어 용이하도록 새로운 이념이나 이상을 내세우게 된다. 또는 사회적 폐습, 문란한 문화를 교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육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지독하게 집요하거나 억압적일 때 그것은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올무가 되고 구성원 스스로 그 기준과 원칙에 있어 세뇌 당하게 되며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해들리버그 마을은 어떠한 계기로 정직성을 중요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과거에 큰 잘못이 있었거나 정착민들의 약속이었을 수도 있다. 하여튼 지나치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을 피곤하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인근 마을 사람들은 이 명예로운 우월성을 질투하였고 해들리버그가 우월성에 대해 갖는 자긍심을 비웃으며 그것을 허영심이라 칭했다. 이것은 해들리버그 스스로 울타리를 세우며 세상과 단절 또는 소통하지 않는 점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그 주변 역시 그리 평가하고 존중히 여겨야 하지만 정직성을 허영심으로 일컫는 것을 보니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살펴 볼 수 있겠다.그러던 어느 날, 해들리버그를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마을을 지나는 이방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만올리게 된다. 바클리 굿선은 해들리버그의 원주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선적인 정직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의문이 드는 것은 왜 굿선뿐이냐는 것이다. 해들리버그 사람들은 왜 이방인을 도울 수 없는 것인가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직한 행동과 생각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 시간이 흐르고 콕스와 리차드는 탐욕으로 정직을 눌러버리고 금화를 나눠가질 생각을 하고는 신문사 앞에서 다시 만난다. 하지만 이미 신문이 발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둘 다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갔다. 리차드 부인은 왜 편지를 신문에 실었냐며 다그치지만 리차드는 정직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앞뒤가 안 맞는 이 부부의 대화를 보면 이미 이성은 무너지고 탐욕의 유혹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갑자기 올바른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님 사죄의 말인지 모르겠지만 리차드 부인인 메리는 마을의 정직은 모두 인위적인 정직이라 말한다. 유혹 앞에서 무너지는 정직은 카드로 만든 집과 같다며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이내 굿선이 이방인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추측을 하게 되고 어떻게 금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궁리에 빠지게 된다. 전보국은 이 편지의 소식을 접하고는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미국의 전 지역에 해들리버그의 정직성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들이 금화자루와 또한 그 주인 될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정직을 최고로 삼았던 해들리버그 사람들이 금화자루를 눈앞에 두고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면 남들에게 내세우고 인정받기 위해서 마을의 명성을 지키는 위장된 정직성,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생각이 든다. 또한 이방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는데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정직만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 동네에서 위선적이고 거짓된 정직이 시험 속에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정직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과 시험 속에서 얻은 겸손이라는 미덕을 함께 배웠다면 이방인의 시험은 시작되지 시작했고 양심의 가책을 덜어버린다. 이제 그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그가 일생을 들여 배우고 노려한 정직은 이제 쓰레기가 된다. 물질 앞에서 삶의 이상은 한낱 무지개와도 같다. 물질 앞에서 들어나는 탐욕은 인간의 내면 밑바닥에 숨겨놓은 가장 추악스럽지만 순수한 본성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며칠을 자신이 굿선에게 무슨 호의를 베풀었을까 생각하다 오래전 굿선과 흑인 피가 섞인 여자의 결혼을 만류하고 굿선이 감사하다는 말을 한 것이 생각났다. 리차드는 이제 금화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행복한 생각을 하며 잠이 든다. 하지만 바로 그 토요일 저녁 우편배달부가 다른 유지들에게도 편지 한 통씩 배달했다. 모두 열아홉 통이 배달되었지만 들어 있는 편지의 내용은 모두 같았다. 열아홉 명의 유지들도 리차드처럼 자신들이 굿선에게 베푼 호의를 만들기 시작한다.이 모두가 이방인의 계획이다. 이제 그들은 이방인의 시험지를 받아들고 엉터리로 답을 쓰기 시작한다.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시험지에 무엇을 쓸까 궁리하며 저마다 하나씩 써내려 간다. 답이 없는 문제에 거짓으로 답을 만들며 쓰는 열아홉 명의 유지들을 보면 자신의 가장 진실한 영혼까지 파는 것 같아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에게 정직은 영혼과도 같기 때문이다. 영혼처럼 소중하고 자랑스러우며 깨끗한 정직이라 배웠고 또 그렇게 자랐기 때문이다. 거짓 호의를 생각한다는 것은 ‘저는 정직하지 않습니다. 거짓 삶을 살아왔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직이라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떳떳함을 갖는 것이다. 비겁하고 거짓된 뻔뻔함이 아닌 진실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다음날 열아홉 부부의 표정에는 한 달 전 보았던 행복한 표정들이 가득했다. 모두들 돈을 쓸 궁리를 하고 미리 계약을 하거나 외상을 하곤 했다. 몰래 건축가에게 집을 새로 지을 거라며 귀띔을 하고 외상을 하며 빚을 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방인의 기분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버게스 목사 또한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볼만작한다. 열아홉 쌍의 부부는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갖고 싶다는 그 유혹에 빠져 끝까지 거짓말하고 자신을 숨기는 모습에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청중 앞에서 발가벗겨졌다.정직이라는 옷을 벗겨냈을 때 나타나야 하는 것은 정직이라는 맨 몸이어야 하며 그것이 그대로 들어나야 한다. 그것이어야 말로 진정성이며 스스로의 삶에 대한 만족과 입증이고 명성이라 할 수 있다. 옷을 벗겨냈는데 부정직성, 위선과 비겁함이 들어난다면 정직이라는 단어만 아는 것이지 정직한 행동과 생각을 할 수 없으며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단지 글로 배워 정직이라는 옷을 자신의 겉에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라 발가벗겨진 자신의 삶에서 수많은 유혹에 맞서 찢어지며 넘어지고 깨진 상처에 정직이라는 약초로 치료해야만 정직이 자신의 옷이 아닌 살이 될 수 있다.리차드는 이방인의 계획을 눈치 채고 굴욕적이며 비참하고 자신의 삶을 무효라 인정해야 하는 이곳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청중에게 가로 막혔다. 곧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것이다. 리차드는 괴로워했고 사실을 말하고 싶어 했다. 자신도 유혹 앞에서 더럽혀졌으며 탐욕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원히 말하지 않아도 될 기회까지 얻었다. 다행히 버게스 목사가 봉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드워드 리차드는 해들리버그 전통의 유일한 수호자와 상징이 된다.버게스 목사는 이방인이 적어놓은 종이를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추신 내용은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으며 사실은 해들리버그의 허영심에 대해 복수하고 새로운 명성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이제 마을은 더 이상 정직이라는 명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누군가 훔쳐가거나 훼손한 것이 아니었다. 해들리버그 마을 사람이 스스로 명성을 버렸으며 직접 자신의 손으로 부숴버렸다. 어쩌면 이방인을 욕할 수 있다. 죄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당한 수모에 대한 복수이며 그 마을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돈을 얻기 위해서 버린 명예와 명성은 돈으로는 다시 얻을 수 없다. 왜냐면 돈을 얻기 위해 버린 것은 명예와 명성이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정직은 옷이 아닌 살이며 자기 몸과 같은 것이다.이방인 편지에 이어 또 다른 편지가 전달되었다. 그 편지는 버게스 목사에게서 온 것이었다. 예전 버게스 목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구해준 것을 대가로 어제 밤 공회당에서 리차드를 호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리차드 부부는 구사일생으로 남에게 의도치 않았지만 목숨을 구걸하게 된 것이다. 리차드는 정직이라는 이름 아래에 행하던 위선과 거짓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을 고백하지는 못한다. 사실을 말하고 나면 다가올 짐을 감당치 못할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스스로 더욱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죄책감이라 생각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의 유무 판단과 그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은 신성하리만큼 올바른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기준 또는 사회, 공동체의 양식에 비추어 판단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죄라 판단이 되면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죄를 낱낱이 밝혀 스스로 짐을 놓으면 되는 것이다.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종교에 의지할 수 있고, 사회적 형벌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죄책감을 갖게 되면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더욱 끔찍하고 잔인한 고통에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리차드 부부 역시 쇠약해질 정도로 주변의 반응에 민감해진다. 설교를 들을 때면 치명적인 죄를 감추고 있는 자신을 겨냥하며 비난하는 듯하다. 언제나 모호하고 그늘진 불명확한 공포에 둘러싸여 살게 된다. 버게스 목사를 의심하게 된다. 예전 그가 무죄임을 밝혀 어려운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복수하는 다.
    독후감/창작| 2015.07.07| 7페이지| 1,000원| 조회(214)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17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0:39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