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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환경농업
    친환경농업의 과제와 해결책서론친환경농업은 기존에 시행되던 관행 농업이 자연 생태계를 급격히 파괴한다는 우려에서 시작되었다. 농업인의 입장에서는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여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현하는 취지에서 등장한 친환경농업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의 입장과 맞물려서 더욱 성장하였다.우리나라 정부에서는 1998년을 친환경 농업 원년으로 선포하고, 1999년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를 도입)하는 등 친환경농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고 여기에 꾸준한 예산을 투입함으로써 친환경농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뒤늦게 친환경농업을 시작)한 만큼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업에는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많이 있다. 친환경농업을 시행하는 농업인의 소득 보장과 유지에의 문제, 친환경농산물의 유통 구조의 문제, 친환경농사물의 품질 관리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본론에서는 각각의 문제점들을 상세히 살펴보고, 그 해결책을 생각해 볼 것이다.본론1. 친환경농업인의 소득 보장과 유지친환경농업인의 소득 보장과 유지에는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우선 소득 보장을 살펴보면,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몇 가지 과제가 남아있다.첫째, 환경농업의 유형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직접지불제가 실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농업은 크게 유기농업과 저 투입 농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기농업은 화학비료나 농약 등의 화학물질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자연 유기물만 이용하는 농법이다. 저 투입 농업은 화학물질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농법으로 농약사용을 최소화하거나 토양과 작물의 양분상태에 따라 적정량의 시비를 하는 농법이다.)위와 같이 유기농업과 저 투입 농업은 그 특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는 일률적으로 ha당 524000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유기농업과 저 투입 농업은 농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경영비나 수익에 있어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따라서 각각의 특성에 맞도록 직접지불제가 실행되어야 한다.둘째, 직접지불제의 대상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친환경 농업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그 대상 범위를 점차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셋째, 친환경농업에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농업인에 대한 지원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2002년 에 따르면 3년 이상 안정기에 진입하면 평균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지만, 친환경농업 초기에는 소득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관행농업을 행하는 농업인을 친환경농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따라서 초기의 친환경농업인을 위한 여러 가지 혜택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소득 보장제도에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친환경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먼저 친환경농산물의 가공부문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가공품은 소비자의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부가가치가 큰 분야이다. 또 친환경농업 체험관련 서비스산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친환경농업은 우리에게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농촌자연환경도 제공한다. 이를 적극 이용하여 생태관광을 장려한다면 농업인의 소등증대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국제생태관광협회는 생태관광이 매년 20%씩 성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2. 친환경농산물의 유통구조 개선2002년 에 따르면, 친환경농업인들은 유통시장의 불확실성을 친환경 농업 발전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안정적인 유통체계가 확립시키는 것이 친환경농업이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생산자-소비자 위주의 직거래 방식, 소비자의 인식 부족, 일반 농산물과의 차별화 전략 부족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첫째, 친환경농산물의 유통은 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에 의존하기 때문에 경직성을 보인다. 따라서 농산물의 가격결정도 당사자간의 독자적인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친환경농산물 전문판매점을 설치할 수 있다. 또 직거래 방식이긴 하지만 소비자단체, 아파트부녀회 등과 협조하여 친환경농산물의 판매로를 확대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친환경농산물의 도매판로를 대비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은 소량으로 다품종 생산되기 때문에 직거래 방식의 유통체계가 적합한 면이 있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인이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친환경농산물의 출하량 역시 증가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대비하여 지금부터 도매기능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둘째,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부족하다. 1997년 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 80%가 소비자의 의식개혁 없이는 유기농산물의 저변확대가 어렵다는 응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홍보를 해 나가야 한다. 또한 소비자가 친환경농업 현지를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은 안전성이 높다는 면에서 일반 농산물과 차별화 된다. 농산물만을 육안으로 보는 것 보다 농산물의 생산과정을 직접 볼 때 이러한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은 극대화 될 것이다.셋째, 일반 농산물과의 차별화 전략이 부족하다. 친환경농산물로서 품질인증을 받은 경우에도 이를 포장에 표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소비자의 눈에 띄어 구매에까지 연결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환경농산물의 신선도, 안정도, 환경친화도 등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브랜드를 개발하거나, 포장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국제기구 지침에 따라 생산된 농산물에는 그린마크를 부여하고 있고, 덴마크는 주가 관리하는 환경관련 마크를 부여하고 있다.)3. 친환경농산물의 품질 유지친환경농산물의 품질 유지와 관련된 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품질에 직결되는 기술 개발에의 문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정책 시행에의 문제, 품질 관리를 위한 전문 인력 확보에의 문제가 그것이다.첫째, 친환경농업의 기술개발에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 친환경농업과 같은 공공재산업에의 기술개발 투자는 공공이 담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을 만들거나, 대학 혹은 민간 연구소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는 방안이 있다.둘째, 국내의 친환경농업의 요건들이 여전히 국제기준에 비추어 볼 때 미흡하다.) 이 경우에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친환경농산물이 수입될 경우에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산물은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 기준에 가까운 지역을 선정하여 친환경농업을 집중 육성해야 할 것이다.셋째, 품질관리를 위한 전문 인력의 확보가 시급하다. 그동안의 친환경농산물의 품질인증 업무는 농산물 검사소에서 담당해왔다.) 친환경농산물의 출하량이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품질인증을 위한 전문 인력을 보충하여야 한다. 또한 공인연구소나 대학 등에 품질 인증이나 품질 검사를 위임하는 방안도 있다. 마지막으로 민간인증기관을 활성화 하는 방안도 있다.
    농/수산학| 2008.05.08| 4페이지| 1,500원| 조회(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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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업의 유통구조
    농산물 유통구조의 당면과제와 극복방안1. 머리말농산물 유통의 의의본문2. 농산물 유통의 당면과제3. 농산물 유통의 극복방안4. 맺는말1. 머리말요즘은 진정 농산물 유통의 중요성이 실감되는 시기이다. 어느 시절이라고 농산물 유통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었겠는가 하겠지 만은 WTO의 출범으로 세계가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이루게 되면서 그 중요성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부각되고 있다. 농산물 유통은 왜 중요할까?농업 생산은 농업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차 증가되고 있다. 그러나 대량생상은 대량 소비가 전제되는 것이며, 이는 대량 판매를 통해서만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들어와서 생활수준의 향상과 식생활 관습의 변화, 슈퍼마켓과 체인 스토어와 같은 대량 소매 기관이 발달함에 따라 농산물 유통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과거의 우리나라 농업은 자급자족적인 형태였기 때문에 생산자가 곧바로 소비하게 되는 직접 유통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대부분의 농가가 판매를 목적으로 영농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판매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농업을 상업농이라 한다. 상업농은 생산 활동이 잘 되어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물을 어떻게 잘 처리해야 수익을 높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또한 기본적으로 농산물 유통의 중요성은 개별농가에게 뿐만 아니라 제조 가공업자, 소비자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중요하다. 개별농가에게는 농산물 유통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주기 때문에 중요하고 제조 가공업자에게는 기업가로써의 경영관리 차원에서 중요하고 소비자에게는 가계비 차원에서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의 차원에서 중요하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농산물 유통을 숙지하는 대중에게 더 낮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하면서 지출에 비해 더 높은 산출물, 더 좋은 질의 생산물을 만들어 주는 수혜를 준다.)이런 기본적인 이유 말고도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산업을 둘러싼 여건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환경은 1988년 토지, 기후 등 자연적인 조건과 생산기술, 생산방법 등의 인문적인 조건에 의하여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다음의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경우 어느 나라의 경우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이므로 극복방안은 제시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계절적 편재성대부분의 농산물은 생산, 수확시기가 일정하다. 따라서 생산자재의 공급, 인력공급의 편재, 시장출하의 계절성이 일어나고 더불어 수확물량의 일시출하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시장에서 판매조건이 불리해진다.생산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시기가 연장되거나 품질개선, 온실재배 등에 의하여 생산, 수확시기를 상당히 조절 할 수 있게 되었다. 계절적 편재성을 극복하기 위해 농산물 수확기에 홍수출하를 억제하여 가격하락을 막고 가공, 저장기술의 개발로 비 수확기 때의 수요와 가격상승에 대응하여야 하는 것이다.부피와 중량농산물은 그 가치에 비해 부피가 크고 무겁다. 따라서 수송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고 저장, 보관하는 데에도 많은 면적과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운송이나 저장시설이 부족하고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절에는 더욱 그러했지만 현대와 같이 이러한 시설들이 발달한 시기에도 그러한 영향은 크게 받게 된다.이의 극복방안으로는 농산물의 부피와 중량을 가능한 한 감소시켜 표준화, 등급화 된 제품수송과 저장보관을 수행하는 것 등이 있다. 산지유통의 개선으로 부피와 중량을 감소시켜 각종 비용을 절감시켜야 한다. 산지유통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농산물의 유통이 개선되어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등급화 된 제품이 규격제품으로 포장되어 자기의 브랜드 네임을 가지고 신용 있는 거래를 수행하게 되면 산지에서 필요한 제품만 출하하게 되어 사회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게 된다.산지에서 제품이 포장되어 출품되면 농장에서는 그 부속품들이 비료로 쓰일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수송량을 크게 감소시켜 수송량과 수송비용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바로 농가소득의 증대와 직결된다. 한편 소비지에서는 쓰레기처리비용을 줄이고 등급화 포장비용을 줄 주곡과 과일, 채소 등의 식물성 식품과 가축, 낙농제품 등의 동물성 식품, 버섯 복분자 등의 임산 식품 등 그 대종은 식품이다. 그 외에도 면화하든지 목재 등 의복과 주택의 원료로 농 임산물은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농산물은 용도가 매우 다양하다. 같은 농산물이라도 공업원료로 쓰이기도 하고 식품의 원료로 쓰이기도 하며 가공식품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대체 이용 가능성이 높고 시기와 장소에 따라, 대체이용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 대체용도가 개발되고 용도가 변경되고 그러한 대체성이 크기 때문에 당해 작목의 수요나 거래량을 예측하기 어렵고 시장가격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농산물의 유통이 어려워진다.수요와 공급의 비 탄력성농산물은 타 산물에 비하여 수요와 공급이 비 탄력적이다. 다시 말하면 농산물은 가격의 변화에 비해 수요나 공급의 변화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는 수요와 공급 측 요인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가 있다.먼저 공급 측 요인을 보면 농산물은 기후 및 자연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생산이 유기적이어서 생산을 시작하여 수확하기까지에는 일정한 시차가 존재한다. 더불어 농산물의 생산자들은 농산물의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을 줄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늘리려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공급 감소의 반응도가 낮다.수요 측 요인으로는 소비자들이 농산물 즉 식품의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더라도 구입량을 별로 증감시키지 않는다. 또한 소비자의 소득이 증가하면 할수록 농산물의 수요가 줄어지기 때문에 가격의 변화에 수요량이 민감하지 않다. 농산물의 수요 공급을 예측하고 과잉 공급이나 공급 부족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농산물 유통의 과제이기도 하다.2)국내 농산물 유통의 당면과제농산물 산지유통의 낙후성농산물 산지유통은 농산물 유통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산지유통의 효율성이 전 유통과정의 효율성을 직접적으로 규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가소득의 수준과 안정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산지에서 선별, 포장, 가공, 저장활동 등 제반 유통기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불필요한 유통비용이 추가되고 있다.산지에서의 농산물 가공은 농산물의 가장 특수한 상품적 특성인 부패성을 완화할 수 있어 생산의 계절성에 따른 가격진폭을 축소할 수 있고, 또 무게를 줄여 농산물 수송비를 절감할 수 있어 유통비용을 감축시키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산지가공활동은 농가의 부가가치 획득과 농외소득을 증가시켜 농민복지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식품가공산업은 대기업위주로 발전하여 왔고, 특히 국내 농업과 연계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원료를 수입농산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항구 또는 소비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산지의 가공시설 비중이 매우 낮은 실정이다. 최근 정부의 지원에 의해 농협을 중심으로 김치가공공장 미곡종합처리장 등 산지가공활동이 일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규모가 영세하고, 원료 확보의 어려움, 원료농산물의 계절성, 관로개척의 어려움 등으로 가동율이 극히 저위에 머물러 있다. eh한 식품가공산업에 대한 행정업무가 보건사회부에 의해 관장되고 있어 국내농산물생산과 가공산업이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체계가 미비하다.또한 청과물 선도유지에 필수적인 예냉시설 등은 절대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기존 시설은 대부분이 노후화 또는 낙후되어 있고, 규모가 영세하여, 입지가 부적절한 경우가 많고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저온저장고 등은 대부분 생산자 조직보다는 민간저장업체에 의해 소유 및 운영되고 있어, 본래의 저장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공동판매)의 위축국내 농업생산은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상인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량거래를 통한 규모의 경제와 거래 교섭력의 강화가 필수적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농산물 공동 또는 협동출하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청과물, 축산물 등 전 농산물에 걸쳐 공동 및 협동출하의 비중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감귤, 딸기 등이 비교적 협동출하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공동출하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계통 정부나 농협이 공동출하조직에 지원하는 융자금의 규모가 거래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적고, 넷째, 공동출하를 용이하게 하는 생산의 집단화 내지 주산지조성이 미흡하고, 농민들의 공동출하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농산물 도매시장의 관리, 운영상의 비효율성농수산물 도매시장의 관리운영체계는 관리주체로서 관리공사, 운영주체로서 지정도매법인을 두고 있다.) 그러나 도매시장의 성격상 관리 및 운영주체의 분리가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분, 담당함으로써 업무 중복문제, 이에 따른 과다한 유통비용 발생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정도매법인은 엄청난 특혜를 누리면서 오히려 농산물 유통의 비효율을 조장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물량확보를 위한 자금을 지원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할에 치중하기 보다는 출하자에게 하역 수수료를 부담시킬 뿐만 아니라 기록상장제 등으로 상장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또 도매시장법인은 상장수수료의 일부를 출하자 및 중도매인 장려금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나 지급대상이 불확실하고 사용과정이 불투명하여 제대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수입농산물의 유통문제수입농산물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수입업체로서 종합상사 등 재벌기업의 참여는 수입농산물의 유통과정상 계열화를 추진시키게 되고, 이에 따라 가격조작의 가능성이 증대될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국내농산물의 유통을 위축시키게 된다. 또한 계열화를 통해 절감되는 유통비용이 기업의 수익으로 내부화됨으로써 소비자의 후생증대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수입농산물의 검사는 육류와 곡류의 경우 농림부 산하의 동물검역소와 식물검역소에서, 그 밖의 수입농산물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립검역소 등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농산물에 대한 안전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고, 또 검사소의 인원 및 시설부족으로 인해 형식적인 검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셋째, 원산지표시제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가공원료에 대한 원산지 표시제는 실시되지도 못하고 있다. 넷째, 수입행정업무이다.)
    농/수산학| 2007.11.01| 11페이지| 1,500원| 조회(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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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와 링컨의 리더십 비교, 분석.
    (1) Abraham Lincoln (해외의 리더)아브라함 링컨을 택한 이유는 아브라함 링컨이 성공한 리더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어떠한 리더였는지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링컨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그는 화해적이고 포용력 있는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자세하게 그의 리더십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물사전으로 본 아브라함 링컨.미국의 정치가?대통령.켄터키 주 호젠빌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여, 1847년에 하원 의원으로서 정치 생활을 시작하기까지 혼자 힘으로 공부하면서 점원?창고지기?뱃사공?변호사 등의 폭넓은 인생 경험을 쌓았다."Rail-Splitter(링컨의 별명, 울타리를 만드는 사람)"로서 아브라함 링컨의 운명적인 흔적은 천박한 시골에서부터 시작된다. 켄터키州에 있는 Knob Creek농장에서 그는, 빈곤한 생활이었던 5년간의 소년기를 견뎌냈다. 그가 기본으로 하던 자유는 그를 서서히 부각시켜 주었다. 그가 주장한 "진보"는"평등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들의 질서"였다.1860년 노예제도를 반대하던 그가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 때까지 노예 제도를 없애는 것에 반대하던 남부의 7개 주가 연방을 이탈하여 북부에 도전함으로써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이에 그는 연방을 지키기 위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 동원하여 맞서 싸웠다. 4년 동안의 전쟁 끝에 북군이 승리하여 노예 해방 선언이 열매를 맺게 되었다. 1864년 또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한 달 만에 워싱턴 시의 포드 극장에서 남부 출신인 부스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설립 기념식 연설에서 그가 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는 말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이념을 정의하는 대표적인 말로 유명하다.이는 인물사전에 제시되어 있는 링컨의 소개이다. 미국인들 중 링컨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인들 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링컨의 이름은 언제나 존경과 좋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그의 좌절과 실패는 리더십교육의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2.어머니의 사랑과 교육.그는 어렸을 적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어려서의 교육은 성인이 되었을 때의 성품의 밑거름이 되는 법인데 말이다. 그러나 링컨의 성품은 적까지 용서하고 사랑할 정도였다. 그는 포용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가 이러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인은 가정에서 어머니의 교육과 어머님으로 인한 독실한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한다.옥토와 같이 순수한 어린 아들의 마음 밭에 그를 지극히 사랑해 주고, 인정해 준 그의 생모 낸시와 계모 사라가 사랑과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고 꾸준한 기도와 노력으로 지성껏 가꾸어 주었다. 링컨은 단 한 분의 어머니와 단 한 권의 교과서인 성경, 단 한 가지 교육 내용으로 사랑을 배웠다. 생모인 낸시는 시골에서 보기 드문 미인이었으며, 온순하면서도 현명하고 신앙이 깊었으며 머리가 좋고 씩씩하고 정직한 아들 링컨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공부를 시키고 싶어 했다. 개척자의 아내로서 무수한 고난과 빈곤과 싸우면서 살았으나, 약한 몸이 풍도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다.생모 낸시가 세상을 떠난 후 링컨에게는 새 어미니 사라가 들어왔다. 계모 사라는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세 자녀들을 데리고 링컨의 집에 들어왔다. 계모 사라는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링컨의 옆에서 책 읽는 것을 지켜보아 주었으며 항상 사랑하는 아들과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아들에게 키스를 하고 잠자리에 들게 했다. 링컨은 이러한 깊은 애정과 관대한 마음을 가진 어머니를 보고 그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랐으며 그 때문에 위대한 정신이 고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량하고 씩씩하면서도 겸손한 정신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어머니의 이러한 흡족한 사랑의 양식이 있었기 때문이며 어머니의 인정과 주목을 충분히 받고 자랄 수 있었다. 그리고 낸시는 링컨에게 겸손에 대해서 강조를 했다. 겸손은 그의 리더십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나님에 의해 쓰여진 도구에 불과하다고 겸손히 고백하였다. 그의 이러한 겸손함이 훗날에도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3. 독실한 신앙링컨은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링컨의 유일한 교과서는 성경”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의 노예제 폐지와 남북전쟁 등에서 그가 발휘한 리더십이 바로 신앙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일화를 예로 들겠다.대통령이 된 링컨에겐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노예제도폐지와 남북전쟁이라는 문제였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좋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 링컨은 많은 희생이 따를 줄 알면서도 남북전쟁을 경험하게 되었다. 많은 우려 속에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북군은 초반부터 고전하기 시작했다. 승전보는 들려오지 않고 매일같이 패전 소식만이 들려왔다. 링컨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옛날 그가 실패했을 때와 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는지 드디어 북군이 승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링컨은 남북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 같은 명장이 없었음은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만큼 링컨은 기독교에 의지하며 살았다. 링컨은 늘 하나님 곁에서 기도로 힘을 얻었다. 그는 불평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겸손과 자비를 가지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링컨은 무슨 일이 있든 기도를 빼먹지 않았다.개인적으로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로서도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만약 링컨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은혜를 구하지 않았다면 남북전쟁을 통해 미국이 둘로 갈라질 수 있었고, 이 세계의 역사는 엄청나게 틀려질 수도 있었겠구측 지도자의 처형을 바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만 할 수 있다면 그들 전원을 도망치게 하려고 했다. 북군의 셔먼 장군은 링컨에게 남부의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를 체포할지 도망치게 할지 의향을 물은 일이 있다. 그때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나는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는 이상 제퍼슨 데이비스의 도망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소. 하지만 만일 당신이 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데이비스를 달아나게 할 수 있다면 나에게 그다지 해가 되지 않을 거요.” 결국 셔먼 장군은 제퍼슨 데이비스를 체포하지 않았고 데이비스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생을 살 수 있었다.링컨은 남부 사람들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급진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남부재건계획’을 발표하여 남부와 북부가 손을 맞잡고 힘을 모아 미합중국을 다시 건설해야 한다고 설득했다.“우리 모두는 남부의 주들이 탈퇴했다 돌아온 것을 형제들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도와주며 절대 죄를 물어서는 안됩니다.”링컨은 남부 주들의 선거민 10%의 찬성만으로도 다시 연방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과 같은 관대한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결국 링컨의 남부 재건 계획은 닫혀있던 남부인들의 마음을 열었고 미연방이 화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4년 1개월이라는 재임 기간 동안 통일을 위해 애썼다. 그가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노예들을 해방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연방을 유지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국민의 나뉘어진 마음을 하나로 묶었으며, 넓은 마음으로 남부와 북부, 백인과 흑인을 사심 없이 포용해서 진정한 연합을 이룬 ‘통일대통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참고문헌K.C 훼어 [에이브라함 링컨] 삼성문화재단이춘택 [링컨 대통령] 을지 문화사프레드 그린슈타인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 위즈덤 하우스전 광,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생명의 말씀사김병규, [링컨의 일생], 대원사김준봉, [이야기 남북 전쟁 1,2], 동북아공동체연구 육사 8기들과 긴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소령으로 복귀해 1950년 6월 30일 정보국 제1과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9사단 참모장이 되어 육영수 여사와 결혼했다. 그후 육본작전교육국 차장 재직시인 1952년 5월 부산정치파동이 발생하자 그는 육군훈령 제217호를 기안해 군의 정사간여 금지를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서 상부의 육본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자 원용덕의 계엄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2개 대대 파병안을 제의했으나 결국 육본참모회의에서 부결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정치적 개입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그후 그는 준장으로 승진해 2군단 포병사령관, 3군단 포병사령관, 육군포병학교장, 6군단 부군단장, 7사단장을 역임하고 소장으로 승진, 1군참모장, 6관구사령관을 역임한 다음 군수기지사령관 재직시에 4?19혁명이 일어났다. 4?19혁명 직후인 1960년 5월초 그는 송요찬 참모총장에게 3?15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총장직을 사퇴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정권운동에 불을 붙였다. 이에 궁지에 몰린 송총장이 계엄병력 증파 면목으로 해병사단을 부산에 진주시켜 박소장을 제거하려 했으나, 허정 과도정부의 이종찬 국방부장관과 맥그루더 유엔 군사령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5월 20일 총장직을 사임했다. 송장군에 이어 참모총장이 된 최영희 장군이 6월 8일 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하고 통수계통의 확립을 강조하자, 그는 군의 부패상을 언급한 뒤 “근본적인 해결책은 4?19정신에 입각하여 소장급 이상은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정권운동을 더욱 부추겼다. 이로 인해 그는 7월 30일 광주의 1관구사령관으로 좌천되었으나, 장면정권 출범 후 참모총장이 최경록 장군으로 교체되자, 그는 9월 11일 육본 작전참모부장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9월 12일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들이 쿠테타를 단행키로 충무장 결의를 한 가운데 미국의 군사원호국장 파마 대장이 최영희 연참의장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정군반대를 표명하자, 이를 내정간섭이라고 분개한 정군파의 사주.
    사회과학| 2007.06.11| 10페이지| 1,500원| 조회(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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