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리고 일본.- 노 다니엘「우경화하는 神의 나라」-자민당의 강경계인 아소다로가 아베의 수상 직을 승계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이제부터 소개하려는 책, 노 다니엘의 「우경화하는 神의 나라」는 보다 의미 있게 다가온다. 물론,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자민당의 보수 세력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약진하고 있는 민주당의 도전이 위험한 수준을 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존재하며, 제거할 수 없는 일본을 움직이는 보수의 힘을 규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냉철한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보는 시도가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이러한 면에서 노 다니엘의 「우경화하는 神의 나라」는 한국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도무지 해결의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는 이상, 그것이 국익과 관계되었거나, 정치권력이라는 복잡 미묘한 성질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이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는 일본의 소리도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우리는 반일감정이라는 피해의식과도 같은 열등감을 감정적으로 분출해내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아마도 일본의 우경화를 이끄는 이들, 혹은 이들에 의해 움직이는 이들은 우리의 이러한 자세를 이용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주변에서 흔히 한국사회에서 "극일하려면, 지일 해야 한다. "라는 말을 들을 기회가 있다.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에서 극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화감은 어느 정도 수긍한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우리가 일본을 잠정적 적국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혹은 역사적 문제의 해결만 이루어진다면 언제라도 외면적뿐만 아닌 본질적인 협력적 관계로 개선 될 여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실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명확치 않은 사실인식문제는 결국 한일관계의 지속적인 저해, 혹은 거부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일 양 국가 간의 중요한 문제도 반일감정 혹은 일본의 혐한 등으로 인해 차질을 빚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이러한 문제의 기저엔 분명 지속적인 교육의 내용, 그리고 그 교육을 시행하였거나 그 교육을 통해 자라난 세대들의 인식 속에 있는 역사인식의 차이, 그리고 국가 서로간의 독특한 문화를 서로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극일을 위해서 지일은 마땅하다. 굳이 일본을 극복하는 문제로서가 아닌, 우리가 보다 나은 국제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 국가적 힘을 갖는 일본과의 관계가 이해의 차원을 통해 상보적 관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국익 증진적인 측면뿐만 아닌, 우리의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외교역량의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면에서 노 다니엘의 우경화하는 신의 나라는 지일의 아주 효과적인 '교과서'일 것이다. 물론 후에 기술할 것이지만 분명 이 책 단 한권만으로 일본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곳에서 나온 활동, 활동가가 일본의 전부는 아니다. 다만 일본의 주류를 형성하는 보수적 성향의 문화를 대표하는 우익집단들의 활동에 대해 보다 가감 없이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자, 역사문제의 논리적 반박을 위한 단초를 제공 할 수 있는 것이다.노 다니엘은 1954년 서울 출생의 인물로, 미국 유학 이후 일본에서의 활동으로 얻은 관찰 결과물을 한국의 시사월간지에 기고하는 이로서 이 책에서 그가 제시하는 상당한 분량의 우익 활동에 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일본의 정체성을 천황과 결부 시켰고, 따라서 책의 이름 또한 신의 나라, 천황을 중심으로 한 우경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책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우경화에 대해 규정하고, 이러한 우경화를 이끌어가는 우익이란 누구인지 대해 살펴보고 있다. 그는 이들이 전통적인 보수와는 다른 반격하는 보수, 새로운 보수 세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경화를 이끄는 이들이 급격하게 활동한 원인일 수 있는, 교과서 논쟁, 그리고 나까소네 수상의 전후 총결산, 이어서 호소까와나 무라야마 정권을 통한 자민당의 사회주의화에 대한 경계 심리로 인해 탄생한 새역모, 그리고 친 아시아파 자민당과 장쩌민의 무례에서 김대중의 일본 방문과 장쩌민의 무례를 다루었고, 강경 보수 세력이라 알려지던 자민당네 모리파벌의 고이즈미의 강력한 리더십에 관해서도 다루었다. 다음으로 신의 나라의 삼위일체 부분에서는 일본이라는 신의 나라라는 제목을 통해, 천황제 그리고 이를 찬미하는 이들에 대한 모습을 역사를 되집어 살펴보기도 했으며, 이를 통한 일본의 신국성, 혹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국가의 신에 대한 정의의 차이를 800만 신의 나라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그 다음 부분인 신의 나라의 마법사라는 제목, 즉 저자는 일본 내 우경화 주도의 인물들을 마법사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천황제의 보전과 이를 더욱 견고히 하고, 보강하려는 이들을 세 가지 분류, 즉 정계와 학계 그리고 출판계로 나누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며 설명하고 있다.마지막 부분인 신의 나라의 마법이라는 부분에서는, 이러한 일본 내 보수 우익단체들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그들의 주장 중 우리 혹은 중국과 많은 마찰을 빚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왜곡이나 완화시키지 않은 사실 그대로의 일본 우익의 소리를 담아내어 흥미를 고조시킨다. 식민통치와 태평양전쟁(대동아 전쟁) 그리고 이 부분에서 우리와 관계 깊은 종군위안부, 창씨개명, 그리고 이후 경제원조에 대한 민감 사항에 대한 우익의 발언의 채집을 통해 이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수상이 방문할 때마다 한국 사회의 비판, 비난과 마찰을 경험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사실대로 기술한다. 이는 역사인식에 대한 마법, 즉 일본 내 보수우익세력이 지향하는, 일본의 민족주의를 위한 역사인식에 대한 보다 보수적인 활동을 통해 일본 보수 세력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의도를 알려준다.그리고 우리는 이 책에서 심심찮게 한국인들의 이름을 찾게 된다. 김완섭, 이선화라는, 일본 내에서 평론가 등으로 활동하는 이 한국인들은 일본 우경화를 이끄는 전위대이기도 하며, 우경화를 이끄는 집단의 논리에 배경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을 활동을 보며, 대응 논리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들의 활동, 그리고 현재 일본의 정책과 관련지어볼때, 한국과 중국 국적의 유학생 유치를 증가하기 위해 자국어로 유학시험을 치르게하는 일련의 정책은, 친선증대라는 효과와 동시에, 일본의 소리를 내게 될 인재를 육성하려는 의도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우선 책의 전개과정을 살펴본 후 겪게 되는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의도한 바와 우리가 알고자 하는 바가 상호적인 관련성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저자는 천황을 그 배경으로 하며, 좌파세력의 도전에 반발하여 응집한 보수 우익세력의 일련의 움직임과, 그 기저에 흐르는 일본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찰하면서, 그들의 논리를 각종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는 일본의 특이성, 혹은 한국의 인식범위와 다른 일본의 인식구조, 혹은 문화에 대해 알게 하는 과정에서 그 중심으로 천황과, 그에 따른 신국. 그에 파생되는 수많은 논리구조를 독자들에게 설명코자 했다. 그러나 독자들, 특히 이 책을 접할 대부분의 한국인이 이 책을 통해 얻는 결과물은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다. 물론 상대성과 차이성에 대한 이해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독자들은 이러한 이해를 통한 그 다음의 "대응논리"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기대치가 전적으로 일치되는 책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다음으로, 사실상 이 책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증거자료"이다. 이러한 보수 세력들의 움직임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해석을 위해 저자는 책의 대부분을 우익의 활동에 대한 증거자료나, 언론매체의 보도 자료를 부분 발췌하는 방법을 통해 보다 현장감 있게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그러나 아쉬운 점도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제시된 증거자료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그가 해석하는 자료는 물론 그의 집필의도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자료들은 지나치게 우익을 강조하는 늬앙스를 풍기고 있다. 따라서 글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우익을 탐구하는데 보다 좋은 책이지만, 또한 일본 전체를 바라보기에 한계를 지닌 책이다. 그가 언급하는 주요 언론사인 후지 산께이는, 그가 강조하는 바와는 다르게, 중도 좌파적 언론매체라 일컫고 있는 아사히에 절반정도 수준의 지지도를 얻고 있다. 실제적으로 그것이 중요하다손 치더라도, 증거를 보다 집필의도와 부합하도록 강조하기 위해서 잘못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지나친 우익세력만의 조명으로 인해, 저자가 거론하는 인물들의 잦은 중복으로 인해, 읽는 이로 하여금, 일본 우익의 규모가 실제 보다 적은 것으로 느끼게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