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작품(시&단편&장편)시대사1906년(1살)*4월 20일 황해도 송화군 송화 출생.*2월 1일 통감부와 이사청 개청*3월 31일 윤효정, 장지연 등, 대한자강회 조직*7월 22일 이인직의 「혈의 누」,『만세보』에 연재1909년(4살)*부친 사망.1910년(5살)*어머니의 개가에 따라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으로 이주.*8월 29일 양위조서로 한일합방조약을 공포, 조선 총독부 설치*9월 30일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관제 공포*12월29일 회사령 공포 시행1913년(8살)*의붓아버지 최도감이 보다가 둔『춘향전』에서 한글을 깨쳐 ‘구소설’을 독파.*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도토리 소설쟁이’라는 별명을 지어 붙이고 다투어 데리고 가 과자를 사주며 소설을 읽힘.1915년(10살)*장연여자청년학교 거쳐 장연소학교 진학.*3월 유동열, 박은식, 신규식, 이상설 등, 상하이 영국 조계지에서 신한혁명당 조직1921년(16살)*형부의 도움으로 평양숭의여학교 입학.*5월 7일 황신덕 등, 동경에서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주직*6월 28일 러시아 적군 이만 시에 집결한 한국독립군을 공격, 독립군 270명 전사, 900여 명 포로가 됨1923년(18살)*봄, 장연 태생의 동경 유학생이던 양주동을 만남.*10월 동맹휴학과 관련하여 평양숭의여학교 퇴학.*1월 21일 조선물산장려회 창립*4월 25일 강상호 등, 진주에서 형평사 장립*7월 7일 홍명희, 윤덕병, 신한사상연구회 조직1924년(19살)*양주동을 따라 상경하여 서울 청진동의 금성사에서 동거.*동덕여학교 3학년 편입해 1년 간 공 부.*양주동이 주재하던 《금성》지에 독 자 투고 형식으로 시 발표.*9월 초, 양주동과 결별 후 장연으로 돌아와 언니가 경영하는 서선여관서 지내며 문학공부를 함.*《금성》지에 「책 한 권」발표.*단편「황혼의 설움」(발표되지 않음.)*5월 2일 경성제국대학 예과 개교1925년(20살)*12월, 《조선문단》에「가을」이란 시 를 발표함.*5월 8일 치안유지법 공포박영희, 김기진, 최학송 등,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 동맹 조직, 신경향파문학운동을 일으킴*11월 27일 제 1차 공산당사건, 박헌영, 김약수, 임원근 등 다수 검거1929년(24살)*겨울부터 중국 간도 용정 일대에서 2년 가까이 임시교원.*근우회 장연 지회 회원임을 명기.*습작 활동과 독자 투고.*10월3일~7일,《조선일보》에 독자투고 로 「염상섭씨의 논설 ‘명일의 길’을 읽고」를 발표.*1월 14일 원산의 부두노동자 등1,400여 명,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일어남1930년(25살)*집에서 습작 활동하며 독자 투고.*11월, 28~29일,《조선일보》에「조선 여성의 밟을 길」이란 시론을 부인 문 예란에 투고로 발표함.*3월 정지용, 박용철, 김영랑 등, 『시문학』창간*5월 30일 김근 등 간도의 공산당원 500여 명 반일폭동, 60여 명 피살1931년(26살)*6월경, 간도 지방에 가서 다음해 6월까지 방랑생활을 함.*간도 용정 일대에서 교육기관의 강사 노릇도 하고 무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냄.*1월27일~2월3일,《조선일보》부인 문 예란에 단편「파금」을 투고로 발표함.*2월11일, 《조선일보》에 강악설이란 필명으로「양주동 군의 신춘 평론- 반 박을 위한 반박」이라는 양주동 비판문 을 씀.*8월~ 1932년 12월, 《혜성》에 장편 소설『어머니와 딸』 연재.*12월, 《신여성》에 시「오빠의 편지회 답」발표.*5월 10일 신간회, 전국대회를 열고 해체 결의*6월 박영희, 김기진, 임화, 김남천 등의 카프 검거사건 발생, 70여명 피검*7월 2일 만보산사건 발생1932년(27살)*6월경, 일본군의 간도 토벌과 중이염으로 용정을 떠나 1933년 9월 이전까지 서울과 장연에서 머무름.*1월,《신여성》에 수필「커다란 문제 하나」발표.*9월,《삼천리》에 단편「그 여자」를 발표.*12월,《신동아》에 수필「꽃송이 같은 첫눈」과 시「참된 어머니가 되어 주소 서」 발표.*4월 29일 한인애국단원 윤봉길, 상하이 홍구공원의 일황생일경축식에 토탄, 시라카와 대장 등 10여 명 살상1933년(28살)*9월 이전까지 서울과 장연에서 머무름.*9월 경 다시 용정으로 감. 이 후 간도에서 거주하면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함.*2월,《신동아》에 콩트「월사금」을 발표.*3월,《제일선》에「부자」를 발표하는 외에도 이 해 수필을 매달 1편씩 발표.*4월, 연작소설「젊은 어머니」《신가 정》, 수필「간도의 봄」《동아일보》 에 발표.*5월, 《신동아》에 수필「나의 유년시절」과 시「숲 속의 농부」발표.*6월, 《신가정》에 수필「원고 첫 낭 독」과 「여름밤 농촌의 풍경 점검」발 표.*9월, 「채전」《신가정》*12월,「축구전」《신가정》수필「이역의 달밤」《신동아》수필「송년사」《신가정》*11월 4일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발표1934년(29살)*2월「유무」《신가정》*5월, 《조선 중앙일보》에 수필「간 도」 발표.*5월~10월,《신가정》「소금」발표.*6월, 《신가정》에 수필「표모의 마 음」발표.*7월, 《신동아》에 수필「두만강 예 찬」발표.*8월1일~12월22일, 《동아일보》에 장 편 『인간문제』 연재.*10월, 《청년조선》에 「동정」발표.*5월 11일 이병도, 김윤경, 이병기 등, 진단학회 창립1935년(30살)*간도 용정에서 안수길, 박영준과 함께 《북향》의 동인으로 가담했으나 건강이 나빠서 적극적 활동은 못함.*1월, 단편「모자」,《개벽》*2월,「원고료 이백원」,《신가정》
강경애론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전기적 고찰2. 기존 연구 검토 및 원전확립3. 작가의 사상적 태도1)체험문학2)여성에 대한인식3)사회주의리얼리즘4. 문학사적 의의와 한계Ⅲ. 결론Ⅰ. 서론1930대라는 국문학사상 특기할 만한 양상을 띠었던 시기에 강경애는 자신의 생활체험에 기초하여 식민지의 모순을 폭넓게 반영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러나 강경애는 여류라는 점과 활동무대가 간도였다는 이유로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과소평가 되어왔고 1970년대에 여성문학을 연구하면서 강경애를 주목하게 되었고 80년대에 이르러서야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본 요지서 에서는 강경애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토대로 그의 생애와 작품 속에 나타난 사상과 한계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Ⅱ. 본론1. 전기적 고찰3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한 성취로 평가되는 소설들을 쓴 강경애의 연보는 아직도 새로 기입하거나 확인되어야 할 칸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우선 그 생몰 연도에서조차 연구자들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데, 예컨대 국내 연구자들이 대개 1907년에 나서 1943년에 사망했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는 반면, 1987년 중국 연변 교육출판사에서 낸 《조선문학간사》는 그가 1906년 4월 20일에 태어나 1944년 4월 26일에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가 자손을 남기지 않았고, 작품 활동을 주로 간도지방에서 했으며 서울의 문단과 거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 때문에 그의 전기는 주로 그가 남긴 수필과 생전에 그와 교류를 가졌던 문인들의 회고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다.강경애는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민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지주집 머슴살이를 하였으며, 1909년 그가 네 살 되던 해 가을에 세상을 떠났다. 궁핍에 시달리던 그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두해 뒤 이웃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의 최도감에게 개가를 해 강경애는 이곳에서 그의 유년기를 보낸다. 의붓아버지에게는 강경애보다 열 살 가량 위인 아들과 한살 위인 딸이다. 《조선문단》역시 양주동이 주재하던 잡지였다.이 두 사람의 관계는 그러나 이 해 가을 파탄에 이른다.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양주동도 기록을 남기지 않아 정확히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강경애가 뒷날 어느 글에서 양주동의 문학적·문단적 태도를 격렬히 비판한 것으로 미루어 양주동의 복고적·중도론적 국민문학론에 대한 강경애의 불만이 두 사람을 갈라서게 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양주동과 결별하고 장연으로 돌아온 강경애는 언니가 경영하는 서선여관에서 지내며 부지런히 습작을 하는 한편 ‘홍풍야학교’를 열어 무산아동을 가르치기도 하고 근우회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다.그는 1929년 겨울부터 중국 간도 용정 일대에서 2년 가까이 임시교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방랑을 하기도 하다가 1931년에 귀국했다. 1931년 6월 경 수원농립학교를 졸업한 군청서기 장하일과 결혼 후 함께 간도 용정으로 이주했지만 간도 이주 직후 벌어진 만주사변과 일본군의 야만적인 토벌작전을 피해 1932년 6월 일시 장연으로 돌아와서 있다가 1933년 9월 경 다시 간도로 간다. 특히 1932년 봄에 간도에서 벌어진 토벌 작전에서 항일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강경애는 1932년 6월에 장연으로 돌아온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이때의 ‘간도의 봄’을 증언하는 것을 자기 문학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는다.강경애는 간도에서 창작 생활을 하면서 1935년부터는 안수길, 박영준 등과 함께 『북향』 동인으로 가담했으나 건강사정 때문에 적극적 활동은 하지 못했다. 그 후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악화된 상황 속에서 강경애는 심신이 병들어 갔다. 원래 몸이 약하기도 했지만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심지어는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쓰라고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강경애는 1938년 5월 이후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1939년 경 고향 장연으로 돌아온 강경애는 1940년에는 상경하여 제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원산의 삼방 약수터를 다니기도 했다. 이 시기 강경애 문제 삼고 여성해방론의 주요 논점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평가했다. 이는 여성문제를 처음으로 다루었다는 성과와 더불어 그동안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작품을 연구하던 한계를 극복하고 페미니즘적 접근을 최초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후 연구에 시사 하는 바가 많다.)3. 작가의 사상적 태도1) 체험문학강경애의 소설은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절대적인 가난과 궁핍한 삶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 삶의 모습은 자신의 궁핍하고 불우했던 체험이었다. 어린 시절의 극심한 가난과 간도에서의 생활은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시대의 민족현실과 여성현실의 표현으로 작품에 나타나며 또한 저항의지를 내포하여 독자를 각성시키는 힘을 갖기도 한다.(1) 빈궁체험그녀는 어려서부터 하루에 두 끼니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당시 아버지를 여읜 우리 모녀는 어느 산골에 사는 고모를 찾아갔고 고모네 집 옆방살이를 하게 되었으며 그만큼 우리는 곤궁히 지내므로 해서 하루의 두 끼니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였던가 싶다)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는 송화를 등지고 장연으로 개가를 하였다. 그러나 가난과 불우한 삶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궁핍한 생활은 자전적 소설 「원고료 이백원」에 잘 나타나 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학용품이 없어 친구의 것을 훔치다가 곤경에 처한 일이나, 원고료를 받고서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게 되는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형부한테서 학비로 오는 돈은 겨우 식비와 월사금 밖에는 못 물겠더구나. 어떤 때는 월사금도 홋물어서 머리를 들고 선생님을 바루 보지 못한 쩍이 많았으며 모르는 학과가 있어도 맘놓고 물어보지를 못했구나. 그러니 나는 자연히 기운이 죽고 바보같이 되더라. 따라서 친한 동무 한사람 가저보지 못하였다.-「원고료 이백원」 부분강경애의 소설에 묘사된 궁핍상은 “소설적 관습을 깨뜨린 것이며” “소설이 과연 이 지경에까지 이르러도 좋은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벼랑까지 몰고 간 것으로” 특히 ?지하촌?은 “식민지 한국의 궁핍국이 바뀌자 일제에 영합하면서 오히려 멀리하는 인심 속에 갈 곳이 없어 눈 속을 헤매는 이야기로 항일 운동가와 그 가족의 이야기가 드문 우리 문학에서 현장증언 적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번뇌」는 항일운동을 하다가 7년 동안 옥살이를 한 주인공이 동지의 집에서 지내다가 그의 아내를 사랑한 이야기이다. 「어둠」은 간도지방에 있었던 제 4차 간도공산당사건의 관련자 18명이 사형당한 실제사건을 소설화한 것이다.강경애의 여러 작품들은 간도를 배경으로 한 항일운동들을 작품화한 것으로 그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이민의 땅인 간도. 그곳은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그 땅에서 겪은 그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문학은 그녀의 문학을 간도문학이라 할 만한 이유일 것이다.2) 여성에 대한 인식강경애가 살았던 1930년대는 일제식민지 상황이었고, 가부장제라는 제도 하에 있었다. 강경애는 남성주의적 담론인 가부장제 속에서 조선여성들의 현실 문제를 깊이 인식했으며,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서도 전통적 여성의 삶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 여성들이 억압받는 현실들을 고발하고, 여성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좀 더 발전적인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그녀는 당시의 여성운동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판단되는데, 1929년에 근우회 장인지회 회원이었던 그녀는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전의 여성운동과는 달리 ‘통일적’이고 ‘목적의식적’이기를 지향하며 광주학생사건 및 여공들의 파업 등에 대한 조사와 지원을 하던 근우회의 활동을 통해, 식민지체제의 경제적 착취로 말미암은 여성 노동자들의 희생과 억눌림, 성적 침탈이 만연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녀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전통적인 여성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적 삶을 능동적으로 모색하는 근대적 여성으로서의 ‘거듭나기’였다고 생각된다.)강경애의 작품들이 옹호하는 것은 주체적인 인간형이다. 그녀의 작품들에서 부정되고 있는 인물들, 이를테면『어머니와 딸』의 봉준 사회에 대하여 관심치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에서 볼 수 있듯이, 가정의 일원으로 여성을 보기보다 사회에서의 한 주체로서 여성을 생각하고 사회적 자아로서의 의무를 요구한다. 이렇듯 강경애는 새 시대의 여성들이 하나의 개인으로서 능동적이고 주관적 사고를 가지며 현실에 대응하는 주체적 인간상의 모습을 보이기를 원한다. 즉, 가정과 사회를 개혁하는 주체가 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3) 사회주의 리얼리즘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만주국 수립에 이은 일제의 “병비소탕전” 속에서 저항하던 항일 공산주의 운동가들의 모습을 간도에서 체험한 강경애는 이후「파금」에서는 형철이 직접 항일 공산주의 운동가들에 투신하는 모습으로, 또 「소금」에서는 항일 공산주의 운동가들에 대한 대중 -봉염의 모로 대표되는-의 인식과 관계의 모습으로 그 체험을 드러낸다. 또한 1910년대부터 시작된 조혼과 자유결혼의 신구질서의 갈등이 20년대에 와서는 구여성과 결혼한 후 신여성과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지식인 남성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이르게 되고, 이를 강경애는『어머니와 딸』에서 다루게 된다. 식민지 시대 지주의 소작농에 대한 착취는 『인간문제』,「소금」을 비롯한 다수 작품에서 발견되고, 『인간문제』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공장의 모델인 ‘대동방적공장’은 1934년 인천에 세워진 ‘동양방적공장’을 실제 모델로 하고 있다. 이렇듯 강경애는 자신의 체험과 또한 그 시대의 현실모습과 문제점들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스트’ 라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리얼리스트’ 강경애는 현실사회의 문제점을 계급적 착취와 자본주의의 병폐에 있다고 보는 사회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강경애의 사회주의를 엿볼 수 있는 최초의 글은 「염상섭씨의 논설 ‘명일의 길’을 읽고」이다. 염상섭의 중도주의적 입장을 비판하며, 식민지 시대 민중의 제일 중요한 문제는 궁핍에 있고 과학과 예술을 발달시켜 무산계급도 혜택을 입어야 한다는 논지로 사회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이 후 『어머니와 딸』에선다.)
I. 품사1. 개념과 분류 기준(1) 개념 : 품사란 문법적 성질이 공통된 단어끼리 모아 놓은 단어의 갈래를 말한다.(2) 품사 분류의 기준단어가 모여 문장을 구성하는데 각각의 단어들은 고유한 문법적 직능이 있다. 어떤 단어는 문장의 주체가 되고, 또 어떤 단어는 서술어가 되고, 또 어떤 것은 수식어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단어가 문장 안에서 나타내는 문법적 성질의 공통성에 따라 몇 갈래로 묶어 놓은 것을 품사라 하는데 몇 갈래의 묶음으로 가르는 데에는 일정한 기준 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으로는 일반적으로 형태, 기능 그리고 의미를 든다.① 형태형태란 어형 변화와 관련되는 것을 지칭한다.단어에 따라 굴곡(어미 활용)을 하는 것이 있고 굴곡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읽다, 높다’ 등은 굴곡을 하는 단어이므로 그 점에서 공통성을 찾을 수 있고 하나로 묶일 수 있다. 여기에 대하여 ‘사람, 온갖’과 같은 단어들을 굴곡이 되지 않으므로 거기에 대립 해서 다른 묶음으로 묶일 수 있다.② 기능기능이란 구문상의 기능을 지칭한다.‘사람, 책’ 등과 같은 단어는 문장에서 주체가 되는 것이 주된 기능으로서 한 묶음으 로 묶일 수 있고, ‘가다, 푸르다’ 등은 체언에 대하여 서술어가 되는 것이 주된 기능이 라는 점에서 같은 부류로 묶일 수 있다.③ 의미의미란 단어 하나하나의 어휘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적 의미를 지칭한 다.‘나무, 사람, 풀’ 등은 ‘木, 水, 草’ 등으로 어휘적 의미는 다르나 사물의 이름을 나타 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한 묶음으로 분류가 가능하고, ‘하나, 둘, 셋’은 사물의 수효를 나타내고 있다는 공통성을 바탕으로 한 묶음으로 묶을 수 있 으며, ‘우리, 나, 그것, 저것’ 등은 다른 사물을 대신해서 나타낸다는 점에서 의미상 공 통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또 다른 하나의 묶음으로 분류할 수 있다.이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품사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형태적통사적의미적기능적불변어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주로 주어, 목적어, 보어수식언관형사, 부사주로 수식어독립언감탄사주로 독립어관계언조사성분 간의 관계 표시가변어용언동사, 형용사주로 서술어2. 품사 분류의 실제(가) ? 나는 아침에 늘 신문을 읽는다.? 나무가 크고 있다.(나) ? 과일은 대부분 맛이 달다.? 이 나무는 저 나무보다 크다.(가)(나)에 있는 밑줄 친 단어들은 다 주체를 서술하는 기능을 띠고 있으며, 모두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기능과 형태가 같아 보인다. 그러나 (가)의 ‘읽는다’, ‘크고’ 등은 사람의 움직임, 즉 동작과 자연의 움직임, 즉 작용을 나타내는 반면에 (나)의 ‘달다’, ‘크다’ 등은 문장의 주어가 되는 ‘과일’, ‘나무’의 성질이나 상태를 각각 나타낸다. 따라서 (가)는 ‘움직임’이라는 의미면의 기준을 충족시키므로 한 갈래로 묶을 수 있고, (나)는 ‘형용’이라는 의미면의 기준을 충족시키므로 다른 한 갈래로 묶을 수 있다.또한 (가)는 종결 어미가 ‘-는/-ㄴ다’, ‘-고 있다’, ‘~고 싶다’, ‘명령형’으로 끝날 수 있으나, (나)는 이렇게 끝날 수 없다는 점에서 형태상의 차이도 보여 준다.따라서 (가)의 ‘동사’와 (나)의 ‘형용사’는 의미와 형태에 의해서 갈린 것이라 할 수 있다.(2) 파생 명사와 용언의 명사형(가) ㉠얼음이 ㉡얼음은 날씨가 춥기 때문이다(나) 그 ㉠보기에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이라 쓰여 있었다.(가)와 (나)의 ㉠㉡에 나타난 단어들은 ‘얼다’와 ‘보다’라는 단어에 ‘-음/-기’가 결합되어 쓰인 것이며, 뒤에 조사가 붙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그러나 (가)의 경우 ㉠‘얼음’은 주어의 역할을 하는 반면에 ㉡‘얼음’은 서술어의 역할을 하여 기능이 다르고, ㉠‘얼음’은 불변어인 반면에 ㉡‘얼음’은 ‘어는 것’ 등으로 대체가 가능한 가변어라는 점에서 형태 역시 다르며, ㉠‘얼음’은 사물의 이름이라면 ㉡‘얼음’은 ‘어느 상태’를 뜻하여 의미 또한 다르다.
함세덕 ‘동승’의 자극적, 비극적, 마지막 긴장 계기이 작품은 오랫동안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일반에 공개되지 못했던 함세덕의 작품 중 최고로 솝꼽히는 작품이며 한국 근대희곡사상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동승’은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으며 현재도 많은 사람들에게 시대를 초월하며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렇듯 지금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이유를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구조의 탁월성에 그 근거가 있다고 보고 ‘동승’의 여러 가지 계기적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동승에서 자극적 계기를 찾자면, 그것은 서울에서 아들을 잃고 아들의 재를 지내러 온 미망인이 도념에게 양자로 자신과 함께 서울로 가 살자고 말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평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속세를 동경해왔던 도념은 미망인의 말에 동의하게 되고 미망인은 주지스님에게 도념을 양자로 데려갈 것을 부탁하지만 주지스님은 몇 번이나 거절한다. 도념을 들뜨게 한 이 사건이 극의 자극적 계기로 작용하면서 후에 양자로 가는 것이 좌절되면서 오는 비극적 계기를 더욱 극대화시키게 된다.비극적 계기는 도념이 토끼를 잡아 목도리를 만든 것을 불당에 두었다가 주지스님에게 발각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도념은 미망인의 양자가 되는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오히려 주지스님에게 살생을 하고 살이 뻗쳤다는 이유로 깊은 꾸중과 벌을 받게 된다. 도념 스스로는 살생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미망인과 같이 하얀 털목도리를 선물해드리고 싶어서였지만 그 뜻을 주지스님은 헤아려주지 않고 도념을 꾸짖는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창작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참 신선한 작품인 것 같다. 뮤지컬을 처음 접한 나는 보는 내내 극에서 빠져나오질 못할 정도였다. 이 작품은 요즘 흔히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넘쳐나는 가운데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전통의 종갓집을 소재로 하고 있다. 종갓집이라는 제재의 특성상 종갓집의 실상과 전통 장례식을 주로 다뤘기 때문에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 질 수 있는데 이런 점은 힙합 등의 다양한 현대적 장르의 음악을 입혀 관객이 작품에 좀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며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런 새 소재의 시도는 사랑이야기로 단편화 된 우리나라의 뮤지컬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이야기 속에도 석봉과 주봉이 한 여자를 놓고 갈등하는 모습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 점보다는 전통과 진보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을 해결하고 화합하는 모습에 더 주목하고 싶다.이 뮤지컬은 뼈대 있는 가문인 안동 이씨 종갓집을 무대로 시작된다. 문이 열린 무대의 가운데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오른편에는 종갓집을 상징하는 우물, 왼편에는 시골집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독대들이 있다. 무대 양 왼쪽 끝에는 배우들이 의상을 갈아입거나 대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한 문이 있고, 객석 사이로 난 통로도 극 중간중간에 무대로 쓰인다.안동 이씨 종갓집에는 아버지 이춘배와 두 아들 석봉이, 주봉이가 있다. 주식투자에 실패 해 집안의 재산을 탕진한 이춘배의 장남 이석봉은 극 중에서 백수에 노총각이다. 자신이 종갓집 종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부담감을 동시에 가지며 우유부단하고 유치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동생 주봉에 비해 명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서울대 출신이지만 자존심과 반골기질이 강해 데모를 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후 고시공부를 핑계로 시간만 때우고 있는 이춘배의 차남 이주봉은 냉정하고 차가우며 욱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차남 콤플렉스 때문에 항상 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극 중 아버지이자 이씨 11대 종손인 이춘배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인물이다. 아내가 죽고 귀신이 나온다고 소문난 집에서 3년간 혼자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법률사무소 직원으로 나오는 오로라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그녀는 극에서 내내 뭔가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석봉과 주봉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이 작품은 전통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현대 젊은이, 즉 아들과 전통을 중시하고 ‘종가’라는 전통을 중시하는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주고 다루고 있다. 그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의 의사소통이 단절되고 오해와 갈등의 골은 깊어간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은 지 3년, 아버지의 부고 때문에 두 형제는 고향집으로 내려오게 되고, 아버지와 인연을 끊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평소 아무런 지병을 앓지 않았고, 병원 진료 기록 하나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두 아들들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소홀히 여겨 어머니가 그렇게 되었다고 아버지를 원망한다. 거기에 종갓집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아버지와의 갈등에 큰 역할을 한다.이 갈등의 해소에는 로또라는 복선을 두어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분위기를 희화화시키고 음악과 안무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전 법률사무소에 로또의 존재를 알린다. 아버지가 죽은 후 비모의 여인 오로라로부터 그 사실을 알게 된 형제는 로또를 찾기 위해 온 집을 뒤지게 된다. 그런데 로또가 발견되지 않자 형제는 또 다투게 되고 다투던 중 우물에 빠지게 되면서 어머니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의 일기장에서 형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다. 종갓집 며느리는 남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고 배운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그렇게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함구한 것이 어머니가 원했다는 것을 게다가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엄하게 대하고 싫은 소리를 한 것은 종갓집의 짐은 아버지가 끝으로 아들들에겐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를 미워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아버지와의 모든 오해가 풀린 형제는 아버지에게 죄송함을 느끼지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난 후이다.이 작품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개인주의적 사고가 확산되는 요즘 늙으신 부모님을 해외에 놓고 오는 해외 고려장이나 존속살인 등의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부모님이 우리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배려를 우리에게 베풀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부장적인 요소도 사라지고 있는 지금 다시 예전을 돌아보고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우리가 전통에서 본받아야 할 점도 분명히 있고 그것을 현대에 맞게 이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극중에 짧게 언급되었지만 호남지역 며느리가 안동 이씨 종갓집의 며느리로 들어옴으로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얽혀 있는 지역 갈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려는 의지가 보이기도 했다.극의 구성을 관객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분석하자면 일단 의상은 전통시대와 현대의 공간을 교차적으로 오고가는 극적 구성에 따라 전통복장과 현대복장을 잘 입었고 의상자체에서 관객이 ‘ 아! 종갓집이구나!’, ‘집에 누가 돌아가셨구나.’ 라는 극의 이전 줄거리를 짐작 할 수 있도록 잘 이루어 진 것 같았다. 음악적인 부분은 극 자체가 뮤지컬이다 보니 극 중 인물이 노래로 대사를 이어가는 부분이 많아 극에 더 몰입하고 극을 보는 내내 흥이 날 수 있었고 극의 사이사이에 효과음이 많이 사용되어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주위집중을 시켜 주기는 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향이 너무 커서 배우의 노래 소리가 묻히는 경향이 있었다. 극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고 탄탄한 구성이었지만 극 중간에 장례식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객석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 부분은 극에 몰입했던 관객의 집중이 약간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일단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석 사이를 지나가다보니 무대위에서 집중하던 관객의 시선이 관객석으로 분산되어 관객이 순간 산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