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은 자제된 행동형 인간】"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인간의 음모와 모순성을 토로하는 한편, 순결한 영혼을 가진 인물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부딪혀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무너져 가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널리 공연될 정도로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이 작품이 복수와 사랑이라는 흔히 쓰이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구성과 성격 묘사의 탁월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궁의 타락한 욕망 등을 통해서 위기에 놓인 중세적 질서, 봉건제의 와해 상태를 표현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햄릿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죽음의 파국을 맞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성격적 결함이라는 설과 인생을 비관한 탓이라는 설, 개인적 복수보다는 위기에 놓인 왕국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부왕에 대한 질투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 등이 있다.이 작품에 나와 있는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독백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햄릿형 인간'을 창조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이 말은 중요한 문제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킬 때 흔히들 인용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 햄릿을 사색형 인간형으로 단정하기에 걸맞은 말이기도 하다.그러나, 흔히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으로 햄릿을 드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그가 갖고 있는 다양한 성격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예로 들면, 그는 상냥하고 잔인하며, 자애로우며 복수심이 있고, 때로는 매우 사색적이며 내성적이고, 충동적이며 감정적으로 성급하게 행동하기도하며, 도덕적이고 대단히 용기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성격은 그가 열린 마음의 소유자임을 암시하는 것이며, 인간 정신의 가변성을 입증하는 것이다.이 작품의 초반에는 비교적 낙관주의적인 사색형 인간관이 제시되고 있다. 연인이었던 오필리어의 말에 의하면 작품 초기의 햄릿은 고귀하며 재치 있고, 현명하며, 훌륭한 교육을 받은 모범적인 젊은이다."아, 그토록 고귀하신 분이 어찌 저 꼴이 되었단 말인가!/ 궁중의 안목, 무사의 기상, 학자의 대변;/국민의 기대요, 나라의 희망,/풍속의 거울, 예절의 본보기이던/만인이 우러러보던 왕자님이."(O, what a noble mind is here o'er-thrown!/ The courtiers, soldier's, scholar's, eye, tongue, sword;/ Th'expectancy and rose of the fair state,The glass of fashion and the mould of form, /The observed of all observers.(『햄릿』3 말 1장 152-156)이 대사를 보면 알수 있는 부분이다.햄릿은 정치, 군사, 학문의 모든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햄릿이 선왕의 혼령의 명령에 따라 복수를 잘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행동한 데 있으나, 오필리어는 그 까닭을 모르게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햄릿은 자신의 행동형 인간으로 보여지는 것을 숨기려고 사색형 인간으로서 꾸며진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에게 비친 햄릿은 당대의 이상적 젊은이의 모습이었다고 짐작된다. 이러한 인간관은 창조설에 근거한 당대의 기독교적 인간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햄릿은 어린 시절의 친구 로젠크렌츠와 길덴스턴이 자신의 광기를 떠보려 왔을 때 자기의 인간관을 냉소적으로 이렇게 말한다."인간이야말로 참 천지조화의 묘로 생겨난 물건 아니냐? 이 숭고한 이성! 그 무한한 능력! 그 단정한 자태! 이 감탄할 운동! 행동은 천사같고 이해력은 신과 같아서 세사의 꽃이며, 만물의 영장이로다. 그렇지만 이러한 먼지의 정수는 내게 어떻게 보이느냐 말이다. (What piece of work is a man, how noble in reason, how infinite n faculties, in form and moving how express and admirable, in action how like an angel, in apprehension how like a god: the beauty of the world, the paragon of animals--and yet, to me, what is this quintessence of dust?") ( 『햄릿』 2막2장, 304-308)이러한 르네상스 초기의 인간관은 인간을 '신의 걸작품, 숭고한 이성, 무한한 능력, 아름다운 자태, 만물의 영장, 세상의 꽃'으로 묘사함으로써, 타락 이전의 매우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이 얼마나 훌륭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가'에 대한 가능성을 극대화한 기독교 적 인간관이 반영된 것이다. 동시에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천한 존재('먼지의 정수')라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이상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안내를 따르지 않고 열정의 노예가 되어 인간다운 품의를 잃고 "짐승처럼"(윤리적 감각이 없는 존재로서) 행동하는 인간의 현재 상태를 암시한 것이다(Badawi 1981, 57)."자네만은 이 세상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인양, 운명의 고 락을 똑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네. 정열과 의지가 그렇게도 화합해서, 운 명의 손가락이 노는 대로 딴 소리를 내는 퉁소가 되지 않는 사람은 참 이 세상에 타고난 사 람일세. 정열의 노예가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마치 자네와 같이 내 마음 깊 은 곳에 차고 다니려 하네. (for thou hast been/ As one, in suff'ring all, that suffers nothing,/ A man that Fortune's buffets and rewards/ Hast ta'en with equal thanks; and blessed are those/Whose blood and judgement are so well commeddled/ They are not a pipe for Fortune's finger/ To sound what stop she please.) (『햄릿』3막 2장, 65-71)여기에는 극도의 '인내심(endurance)'을 지니고, 자신과 주위의 자극에 대하여 철저한 '객관적인 태도로 자신을 볼 줄 아는 이성(logos)'을 지닌 인간관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고난을 받으면서 흔들리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은 자제력과 용기가 없으면 얻기 불가능한 삶의 태도이며 미덕이다. 이렇듯 햄림은 행동형 인간이 갖추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볼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빅터 프랭클 그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 신경정신의학부 교수로써 실존 분석적 정신요법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 의미요법)를 창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뒤이어 빈의 정신의학 전통을 계승한 유럽의 대표적인 정신의학자이다.그러나 그의 이러한 화려한 경력과 명성보다는 그의 너무나 깊은, 남다른 체험에 주목해볼만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찌 강제 수용소에 3년 동안 수감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된다. 빅터프랭클은 나치하에서 핍박당한 유태인 중 한명이었다. 그는 이곳저곳 수용소로 옮겨다니며 아우슈비츠에 가지 않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생존해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직업, 정신신경학 의사라는 점을 이용해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각 상황별로 생존하기 위한 행동 유형을 구성한다.잔인한 죽음의 강제 수용소에서 보낸 긴 죄수 생활로 그는 그 자신의 벌거벗은 몸뚱아리의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그리고 아내 등이 강제 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했거나 가스 처형실로 보내졌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누이만 제외하고 그의 온 가족은 강제 수용소에서 몰살을 당하고 만 셈이었다. 모든 소유를 빼앗기고, 모든 가치를 파멸 당한 채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흉폭한 핍박 속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몸을 떨어야 할 고통을 그가 어떻게 견뎌냈으며, 어떻게 보람찬 삶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었는가를, 그래서 그의 체험을 어떻게 로고테라피(의미요법)의 발견으로 이끌어 갔는가를 이 책은 설명해 가고 있다.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끔찍한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적 수기이고, 2부는 로고테라피(의미요법)의 기본개념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충분한 사례들을 들어가며 설명한 부분이며, 3부는 무의식적인 신(The Unconcious God)" 으로, 인간에게는 심령적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종교관을 들추어내어 초월적 종교의식을 다루고 있다.2부, 3부의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부분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만 무엇보다도 1부의 그의 수용소체험은 그 나머지 책의 내용을 모두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된다.우스꽝스럽게도 벌거숭이가 된 몸뚱아리밖에는 아무 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차갑고도 초연해진 호기심을 가지게 됨으로 구원되는 과정을 그린다. 인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절대 긍정이 가능하다고 했던가?작가는 살아 남을 가능성이 적은데도 남아있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작전을 묘사하는데, 굶주림과 수모, 공포와 불의에 대한 깊은 분노가 가까이 지켜보고 있는 듯한 사랑하는 이의 영상, 종교, 음침한 유머 감각,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의 아픔을 아물게 해주는 나무나 노을 등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순간적인 주시에 의해 극복되는 광경을 묘사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얻어지는 위로는 그들의 고통이 분명히 뜻 없다는 생각에서 헤어나 보다 더 큰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한 살아야겠다 는 죄수의 의지를 굳건히 세울 수 있도록 하지는 못한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며, 살아 남기 위해서는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삶에 어떠한 목적이라도 있다면 겪는 고통과 죽어 가는 마당에서도 반드시 목적이 있게 마련이라고 작가는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그러나 누구도 다른 사람에 의해 목적이 강요될 수 없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대신 이야기하고 선택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각자가 그 스스로를 찾아내야 할 것이며, 그 대답을 전제로 하는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가 그 목적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면, 그는 온갖 모독과 고통에도 성장을 계속 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니체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 낼 수 있다강제 수용소의 상황들은 죄수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상실하도록 만들어지고 꾸며진다. 삶에 있어서의 모든 친숙한 목표들은 강탈당한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마지막 인간의 자유 로서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의 태도를 선택 하는 능력 이였다.예를 들자면 가스 처형실로 가게 된 죄수를 상상해 보라! 그는 아무런 선택의 자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의연히 죽느냐, 아니면 그 죽음을 거부하며 버둥거릴 것이냐의 선택.인간의 몸은 가둘 수 있어도 정신과 영혼을 온전히 가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여기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을 닮은 속성, 자유의지 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작가는 3부에서 심령적 무의식을 설명하면서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깔려있는 종교성에 대해 통찰력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단지 인간이 그 종교성을 표현하느냐, 숨기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종교관을 의식하느냐, 아니면 억압하여 무의식으로 돌렸느냐, 하는데 달려 있는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때때로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던 사람들의 꿈속에 서 단편적이나마 종교적인 동기를 발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못된다.그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억압된 신앙심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 있어서도 종교적인 느낌과 신앙심의 발현을 중요시 여겼다.다음은 심한 내면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아주 취약한 사람의 경우에서 이런 종교적 느낌이 느닷없이 뚫고 나온 실례를 작가가 인용한 것이다.“나는 정신병원에서 우리에 들어 있는 맹수처럼 갇혀 있었습니다. 내가 화장실에 데려가 달라고 아무리 소리쳐 애원하여도 달려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끝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저주스럽게도 나는 매일같이 충격치료와 인슐린 (insulin)충격을 받아야 했으며, 너무나 많은 양의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 덕택에 나는 다음 몇 주간을 혼미 속에 보내야 했습니다.그러나 어둠 속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하여야 할 특이한 임무에 대한 인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그때도 나는 어떤 이유에서 내가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이유에 불과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그 일을 한다는 것이 진실로 중요한 어떤 일이었습니다.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던 순간, 우리에 갇힌 야수처럼 버려진 채 누워 있었으며, 전기충격치료로 야기된 망각의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분을 소리내어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구덩이 의 인간들이 나를 버린, 외진 어둠 속에서 그 분은 거기 계셨습니다. 내가 아직 그분의 이름을 모를 때 그 분은 거기 계셨습니다. 신은 거기에 계셨습니다.”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하나님을 만난 상한 영혼을 우린 이 실례에서 볼 수 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 타락하고 죄악에 빠진 우리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특성은 우리에게 남아 있어 하나님을 찾도록 하셨다. 이 것을 작가는 종교성, 신앙심으로 표현하고 있다.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우리의 심령 안에, 그 깊은 무의식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들을 수 있다면 그 것 만큼 인생에 있어서 참 의미를 찾는 일이 또 어디 있으랴!작가는 극한 상황에서의 그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인간의 존재의 특성과 존엄성을 진지하고 호소력 있게 설명하면서, 인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와 종교성-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신 특성-을 근거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장기수로 수감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한계 상황을 겪어낸 작가는 삶의 의미치료라는 '로고데라피 이론'을 창시하고, 그 근거로 개인의 실제 수용소 경험을 들려준다. 수용소를 거쳐간 수많은 이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1부는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싣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긍정적인 삶의 동기를 찾을 것을 제안한다.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의미찾기의 방식은 2부에서 다양한 사례들(욕구불만, 정신적 신경증, 삶의 의미, 공허, 존재감, 로고드라마 등등)을 토대로 제시한다.3부에서는 미국에서 로고데라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 여사에게 바치는 것으로, '비극적 낙관론' 의 사례를 담았다. 비극의 3요소인 고통, 죄악, 죽음과 같은 문제 앞에서 삶에 '예스'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 저자는 삶의 잠재적인 의미들을 찾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의지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최악의 생존 조건에서 사랑과 희생, 삶의 의미와 같은 인간적 가치들은 어떻게 될까 무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많은 유대인들이 빵 부스러기를 먹으며 중노동과 추위와 병마와 구타 속에 ‘가스실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이미 도살장에 던져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세상에 냉소적인 인간들은 이러한 상황을 예로 들며 “봐라. 인간은 오로지 빵과 힘이라는 생존본능만이 지배할 뿐이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