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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 치는 여자 (엘프리데 옐리네크) 분석
    먼저 이 책의 작가에 대해 소개하자면,Elfriede Jelinek (1942~)는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주 출생인 그녀는 빈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독일인이었다.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아버지는 정신질환을 앓았으며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엄마의 압력으로 음악을 공부했다.하지만 음악을 포기하고 독문학과 연극학을 공부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1967년 시 작품집 ‘리자의 그림자’로 데뷔한 그녀는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여 독일어 권에서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작가로 성장하였고오스트리아에서도 가장 유명하면서도 미움을 많이 받는 작가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초기 소설에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신분상승적, 권력 지향적인 성향을통렬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에서는 문학성을 인정받는 반면 정작 모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배반자라는 비판에 휩싸였다.1983년 출간된 소설 『 피아노 치는 여자 』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작품 활동 및 정치 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의 작품이자,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작품이다. 옐리네크는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강도 높은 페미니즘 메시지를 작품마다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그녀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70년대부터 체제에 대한 특유의 독설은 거침이 없었다. 게다가 날카롭게 자르는 듯한 언어와 노골적인 성 묘사까지스스럼없이 구사하는 그녀는 1983년『 피아노 치는 여자 』와 1989년『 욕망 』으로 독일어권 문학 평론계에서 주목을 끌었는데,두 작품에서 시도되고 있는 남녀 간의 성에 관련된 대담하고 노골적인 묘사나 표현은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고적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혐오감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격찬과 비난이 함께 따라 다녔고, 지금도 끊임없이 그녀의 작품은전문가들의 분석의 도마 위에 올려지고 있다.▶ 대표작 ,,▶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여성들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희생물이라는 생각보단, 여성의 우매함과 천박함이 오히려 그런 사회의 지속적인 존립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 옐리네크의 언어해체 글쓰기 : 그녀는 기존 언어 속에 녹아있는 가부장 적인 요소를 파괴하고 고전에 나오는 명문들의 원래 의미를 해체하여 언어 유희적 기법으로 단어의 의미를 전도 시켰다. 그녀의 작품이 읽기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도된 원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하기 때문이다.피아노 치는 여자의 주제는 산업화 이후의 인간 소외와 억압의 문제 (모녀관계를 통해 보여줌)이며특징으로는 첫 째, 정신병자였던 아버지와, 그리고 엄마의 강압으로 스파르타식 음악 공부를 했던 옐리네크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있고둘 째, 노골적인 성애 묘사나 표현은 성적 자극을 위한 것이 아닌 비판하기 위한 것이며셋 째, 엄마와 딸의 관계는 마치 부부 관계처럼 묘사, 모녀관계에서도 비정상적인 지배와 종속이 지배함을 보여주고 있다.여기서 음악(=예술)이라는 존재는 엄마의 억압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에리카는 작가의 체험이 투영된 주인공으로서 삼십대 후반의 노처녀, 피아노 선생이다. 엄마의 철저한 외부세계로부터의 과잉보호와 예술을 통한 엄마의 대리만족 충족을 위한 도구로 희생되어 정신적인 사회활동과 평범한 이성과의 사랑행위를 거부하는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된다. 그녀의 정신적 방황은, 피아노에 대한 심취와 가학적 행위, 자해행위, 관음하는 행동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클레머는 유일한 그녀의 구원자의 존재로 보였으나, 그 사랑마저도 실패하고 상처만 입은 채 엄마에게로 돌아간다.엄마는 정신질환을 앓던 남편과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지 못한 엄마는 여생을 딸과 함께 보낸다. 딸 에리카의 성공을 통해 만족을 얻고자 에리카의 모든 일상, 생각을 조종하고 통제하며 이성과의 만남도 뿌리 채 뽑아놓는다. 오직 자신만이 딸을 행복하게, 안전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발터 클레머는 공대생인 그는 스포츠와 예술에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피아노 선생 에리카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와 성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녀에게서 오히려 이상한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는 에리카가 자신을 때리고 학대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클레머는 남자로서의 수치심을 느끼고 에리카를 경멸하게 된다.줄거리:에리카는 서른 중반의 미혼 여성. 피아니스트가 되려 했으나 결국은 피아노 강사로서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정신질환을 앓다가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시고 엄마와 같이 살고 있다. 엄마는 그녀를 숨 막히게 하고 그녀를 자꾸만 폐쇄적으로 만든다. 서른 중반에 가까운 딸의 옷 입는 스타일이며 귀가시간까지 간섭하니 말이다. 하지만 대판 싸워도 엄마와 화해하고 늘 그렇듯 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그녀는 극도로 폐쇄적인 마음과 대인기피증 때문에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애도 못했다. 이런 그녀를 유일하게 위로할 방법은 ㅡ 성적으로도 삐뚤어진 남자들로만 가득한 유흥가에 가서 나체의 여인을 관찰하는 것이다. 관음증적인 그녀의 생활은 늦은 밤 수풀에서 성관계를 맺고 있는 연인들을 몰래 숨어서 관찰하는데서 확실해 진다. 그런 그녀에게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랑이란 너무 나도 어려운 문제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어느 날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에리카를 찾아온 공대생 클레머. 그들은 인연을 맺게 된다. 알 수 없는 껍질들로 포장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클레머는 그녀의 피아노 연주 모습에서 더 깊은 감정을 느낀다. 그런 젊은이에게 에리카도 조금씩 마음을 주게 되고, 어느 날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여자화장실에서 첫 관계를 맺을 뻔 한다. 에리카는 자기 몸 속에 클레머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의 성적 쾌락과 흥분을 만족시켜 주기위해 그저 만져주는 것에 그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영원히 사랑하려면 자신이 건네주는 편지에 써 있는대로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린다.며칠 후 클레머가 그 편지를 받았을 때, 그는 에리카의 집으로 가 그녀 앞에서 그 편지를 소리내어 읽는다. 그 내용인 즉슨, 정말 비정상적인 성적 요구들이었는데 - 나를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세게 쇠사슬로 묶어 달라, 그리고 내가 저항하면 세게 때려 달라 - 등의 마조히즘적 성관계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넘기던 클레머도 나중에는 그게 진심임을 알고 온갖 욕설과 모독의 말을 퍼붓고 사라진다. 그러고 난 후, 여전히 침대 위 엄마 옆에서 누어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잠을 청한다.그녀는 편지 쓴 것을 후회하며 클레머를 찾아가 다시 구애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떠났기에 그녀를 차갑게 버린다. 그리고 며칠 후 클레머는 갑자기 에리카의 집에 들어와 그녀와 엄마를 폭행하고 방에 가둔 후, 그녀가 편지에 적은대로 때리며 폭행한다. 그녀는 슬픈 눈물을 흘리지만, 클레머는 웃으며 가버린다.에리카는 이제 증오심을 품고 가방에 식칼을 숨겨 그의 학교로 찾아간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웃고 얘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시 뒤돌아선다. 그리고는 가방 속 식칼을 꺼내 자신의 왼쪽 어깨에 꽂는다. 그녀는 피로 얼룩져 가는 왼쪽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다시 그녀의 정신적, 육체적 주인인 엄마에게로 돌아간다."강하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오게 하는 작품이다. 두 번째 읽는 거지만, 그래도 새롭다. 한마디로 에리카는 정말 불쌍한 “여자”이다. 여자이지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랑’을 그녀는 할 수가 없다. 클레머를 만나 다행인 듯 싶지마는, 이상한 행동을 요구했던 편지 때문에 그 사랑은 한순간에 종이 짝처럼 구겨져버렸다. 아마도 그 동안 엄마에게 억압당해 왔던 에리카는 클레머 앞에선 “지배자”로서 나타나고 싶어 했었나보다. 편지 내용은 자신을 때려달라고 마치 그에게 “명령”을 하는 듯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다른 작품에서라면 아름다웠을, 엄마한테로 가는 장면의 에리카는 불쌍하고 한없이 가엾게 보인다.성공을 바라던 엄마를 위해, 그녀는 여성적인 자아를 버렸고, 언제나 어두운 그늘, 외톨이로 살아갔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엄마는 에리카를 조정하고 그녀는 그저 따라갈 뿐이다. 클레머를 만나면서 진정 여자로서의 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에리카에게 아마도 클레머는 그녀의 최초이자 마지막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편지에는 이상한 행동을 해달라고 적었지만 속으로는 제발 클레머가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랐던 에리카였다. 비록 클레머는 떠났지만, 에리카는 진정 그를 사랑했기에 자신의 어깨에 칼을 꽂으며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다시 엄마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는 에리카의 모습, 한 여자의 나약한 뒷모습이 머릿속에 다분히 그려진다.
    인문/어학| 2017.11.05| 4페이지| 1,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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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분석
    줄거리1948년 트반 마을의 경찰관인 알폰스 클레닌은 랑부잉 행 도로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메르체데스 차 속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는 쉽게 그 시체가 베른 시경 경위 울리히 슈미트임을 알 수 있었다. 비일 시(市)에선 수사가 개시되는 한편, 베른에서는 슈미트의 상관이었던 베르라하 경감에게 이 사건이 맡겨졌다. 바로 그 날 아침 중으로 그는 슈미트가 세 들어 살던 쉔러 씨 집으로 가 이것저것 살펴봤다.베르라하는 오래전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루쯔 박사(베르라하의 상관)에게 대리인을 부탁했고, 그에 챤쯔가 위임됐다. 챤쯔는 수사면에서 정상에 오르려고 애쓰는 젊은이었다. 그 날 오후 베르라하는 클레닌과 트반 마을 길가로 갔고, 그 곳에서 총알을 발견했다. 늦은 저녁 쯤 챤쯔가 베르라하의 사무실로 왔고, 그들은 슈미트가 예복 차림이었고, 가스트만이 여는 사교모임에 참석했음을 단서로 포착한다. 가스트만의 집 앞에 도착한 둘은 집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고, 잠시 뒤 어마어마한 개가 베르라하를 덮쳤을 때 챤쯔는 권총으로 개를 쏘아 죽였다. 총소리를 들은 예복 차림의 신사들이 그 모습을 보며 불쾌감을 호소했다. 그 때 뚱뚱하니 부푼 얼굴의 폰 슈벤디가 나와 자신은 가스트만의 변호사이자 육군 대령이라며, 지금은 가스트만을 만날 수 없다했다. 그는 가스트만을, 돈 많은 신사이며 철학자라고 소개했다. 늦은 밤 베르라하는 집에 도착했고 그의 팔뚝엔 여려 겹의 수건이 동여매져 있었다.어느 날, 베르라하가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집에는 슈미트의 서류철을 뒤적거리고 있는 가스트만이 있었다. 사실 그 둘은 40년 전에 만났고,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하여 내기를 해서 가스트만은 범죄자가, 베르라하는 수사관이 된 것이다. 하지만 베르라하는 가스트만의 모든 범죄를 입증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가스트만은 베르라하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며칠 후 베르라하는 그의 친구 훙거토벨 박사의 병원을 찾아가 화요일 아침에 수술을 하기로 한다. 열정에 사로 잡혀 걸음을 재촉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가스트만의 집이었다. 가스트만의 옆엔 하인 셋이 버티고 있었고, 그 중 하나가 권총을 들어 쏴 챤쯔의 왼쪽 어깨를 맞혔고 챤쯔도 가스트만을 향해 3발을 발사했다. 가스트만의 시체 앞에서 베르라하가 혼자 남겨졌을 때, 그는 이제야 두 사람의 생이 끝까지 유희되었음을 느꼈다.그 날 중으로 베르라하는 챤쯔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의 집 식탁에는 엄청난 음식이 쌓여 있었고 죽을 병에 걸린 환자가 벌이는 무시무시한 연극을 본 챤쯔는 그가 여태껏 위장해 왔음을 알아차렸다. 그렇다. 베르라하는 이미 챤쯔가 슈미트의 살해자임을 알고 있었다. 챤쯔는 슈미트의 성공, 지위, 차, 여자를 질투했고, 슈미트가 맡은 가스트만 사건을 자신이 위임하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베를라하는 챤쯔를 무기로 이용하여 가스트만을 죽이도록 한 것이었다. 즉 베를라하는 사건을 재판하는 사람이었고, 챤쯔는 그 사건의 범죄자를 집행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슈미트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지만, 베를라하는 그의 죄를 폭로하지 않는 대신 이 곳을 떠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했다. 다음 날 루쯔가 베를라하에게 챤쯔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했을 때 그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고, 가까스로 친구 훙거토벨한테 전화를 걸어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곤 루쯔는 ‘앞으로 1년이 남았다’는 한 노인의 음성을 들었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연구 (차경아中)탐정소설의 기본 요소 및 구조에 관해서는, 그 세부 면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이되,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요인이 지적된다.● 첫째, 이 소설류에서는 수수께끼로 대두되는 범죄가 사건의 발단을 이룬다. 이 범죄는 흔히 살인이다. 이 같은 극단적 범죄를 내걺으로써 앞으로 전개해야 할 수사 과정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둘째,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는 보통 범행 동기가 설명되며, 따라서 범행 이전에 있었던 역사가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셋째, 사건의 합리적 해결이다. 해결을 도맡은 주인공은 물론 유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알 수 없게도 수사관은 사건 해결에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다만 한 살인 용의자를 점찍어 놓고(그가 살인자였음을 독자는 책을 독파한 연후에나 알게 된다) 그를 자신의 조수로 기용한 뒤, 용의자의 거동을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요컨대 그는 행동하는 민완수사관은 결코 아니다. 이 부하 직원의 이름은 챤쯔, 그는 실상 베르라하가 원래 염두에 두고 있는 다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잡은 하나의 찬스, 또는 도구였음이 마지막에 밝혀진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는 두 갈래의 사건 이전의 갈등이 있는 셈이다. 즉,a. 살인으로 표출된 슈미트 vs. 챤쯔의 질시관계b. 베르라하와 가스트만의 40년 묵은 적수관계이같은 두 갈래의 별개 사건이 줄거리를 구성하는데, 작가 측의 초점은 a 경우보다 b 경우로 맞춰진다. b의 갈등의 발단은 40년 전 우연히 맺어진 하나의 내기.책의 중심부(11장)에서 재현되는 이 내기 장면에서 베르라하와 가스트만은 각기 자신들의 명제를 내세운다. 베르라하의 명제인즉, 우연의 개입 때문에 완전범죄란 불가능하다는 것이요, 가스트만의 주장인즉, 바로 우연에 맡겨진 세계 형태가 발각되지 않는 범죄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가스트만은 베르라하의 코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죄로 풀려난 뒤, 40년 동안 자신의 명제를 성공적으로 관철시켜 온다. 이제 베르라하는 적수의 범죄를 입증시킬 마지막 찬스를 잡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하나의 내기로 매듭지어진 두 적수의 관계에서 궁극적 승자는 과연 누가 되느냐 - 이를 판가름하는 것이 결국 이 소설의 중심 사건을 구성하며, a의 살인 사건은 이 본원적 매듭에 우연히 걸린 부대적 사건이 된다. 이 적수관계는 두 사람의 희생자를 낳는 것으로 끝난다. 가스트만은 챤쯔와의 총격전에서 죽음을 당하며, 챤쯔 자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로써 얼핏 보아 사건은 모두 사필귀정으로 결말지어진 것 같다. 그러나 결말은 결코 합리적 해결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스트만도 챤쯔도 공적 법기자신의 완고한 계획에 이용하는 독단을 범하는지? 이 모든 의문들은 다른 설명이 첨가되어야 해답이 찾아질 것이다. 어쨌든 베르라하는 자기 식으로나마 사건 해결을 요리하는 비교적 유능한 위치에 있었다. 하긴 엄밀히 말해 그는 수사를 편 것은 아니지만(그로 보면 살인 사건은 이미 초두에 해결되었으니까), 자신의 계획을 투철히 밀고 가는 재판관역을 유희할 수 있었다.# 뒤렌마트의 세계1.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뒤렌마트는 탐정소설이란 반드시 발전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하는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철저한 의혹을 제기한다. 세계는 계획보다는 우연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우연이란, 세계를 지배하는 원칙인 동시의 창작의 원칙이다. 따라서 탐정소설의 경우 우연은 도처에서 사건 진행에 박차를 가하거나 사건을 전환시키는 변수로 작용한다. 이 우연의 법칙에는 수사관 베르라하 역시 종속되어 있다. 슈미트의 살해 현장에서 해결의단서가 된 총알을 집어든 베르라하는,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는 무관한 우연일 뿐임을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가스트만과 더불어 그는, 내기 명제를 변해하기 위해 우연을 끌어들인다. 양 숙적의 관계에서 보면 슈미트 사건이야말로 우연이며, 챤쯔의 개입도 마찬가지이다.2. 개인의 가능성뒤렌마트의 모든 작품에는, 이처럼 결함투성이인 세계 전시와 아울러, 그 세계에 맞서 싸우는 개인이 반드시 등장한다. 자기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인공에 대해 썩은 세계 앞에서 절망하지 않는 것, 요컨대 니힐리스트로 주저앉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버텨 나가는 것 - 이것이 뒤렌마트가 그의 주인공에 부여하는 최소한의 기대치이다.베르라하는 이런 의미의 뒤렌마트의 주인공이다. 그는 수사관으로서도 명실공히 외로운 단독자이다. 사건 수사에 보조를 맞추는 조력자가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전형적 추리소설에는 흔히 셜록 홈즈의 친구 왓슨 같은 조력자가 등장하여 수사관과 듀엣을 이룬다. 이 조력자는 수사 과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동시에 수사관을 영웅처럼 돋보 그는 합법적 수단으로 체포할 수 없는 적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부하 직원을 개인적 계획에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도덕적 법률적 비행자가 되는 모순에 빠진다. 이와 같은 수사관의 결함은 왜 뒤렌마트의 탐정소설이 전통적 도식에 맞지 않는가에 대한 두 번째 중요한 근거가 된다. 전통적 탐정소설의 수사관은 부조리한 세계의 외곽에 서는 유일한 권능자로서, 합리적 세계를 불러 오는 역할을 담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베르라하는 바로 부조리한 세계 속에 빠져 허우적대며 그 일부를 이룬다. 그는 세계 자체에 감염된 모습을 구현하는 패러독시컬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암으로 조건 지어진 그의 무력은, 바로 암균으로 부식한 세계의 투영인 셈이다. 이토록 무기력한 수사관에게 작가는 어떤 용기를 부여하는가? 그것은 무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맞서겠다는 약자의 결단이다.작품 은,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그 내용 속엔 이미 우연에 의해 지배 되어온 두 가지 사건이 얽혀있다. 앞서 알 수 있듯이 뒤렌마트는 기존의 추리소설에 반기를 들고, 우연적인 요소를 개입했다. 베르라하와 가스트만의 만남, 그리고 슈미트와 가스트만, 그리고 챤쯔까지. 이 작품에서 뒤렌마트가 베르라하와 가스트만의 적대관계에 더 중점을 두어서 인지, 후반부에서 나타난 챤쯔의 비합법적인 행동이 묻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그 행동이 베르라하의 40년 묵은 갈등을 해소해주는 해결책이 된 것과 더불어 챤쯔가 슈미트에게 가졌던 질투가 동정심으로 바뀌었고 나중에 그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기 보단,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나중에 작품 해설을 읽어서 알았지만, 챤쯔라는 인물의 이름이 영어의‘chance’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사실, 재판하는 사람으로서의 베르라하는, 가스트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를 이기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함이 든다.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 몸이 약해졌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아마 그 자신이 그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있어 가스트만보다다.
    인문/어학| 2017.11.05| 4페이지| 1,000원| 조회(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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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분석
    줄거리:18세기 프랑스 파리에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도시에 만연해 있었다. 그 곳엔 가장 혐오스러운 천재, 바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부패 냄새가 가득한 생선 좌판 뒤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아기를 버렸다는 이유로 참수되었고, 아기는 수도원에 보내져 잔느 뷔시라는 유모에게 맡겨졌다. 하지만 잔느 뷔시는 아기 냄새가 나지 않는 이 아기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다시 수도원의 테리에 신부에게 돌려줬다. 교양 있는 테리에도 그 작은 아기가 자신의 깊은 곳의 냄새까지 맡자 구역질을 느끼고 후각과 인간적 감정을 상실한 가이아르 부인에게 맡겼다. 그 아기는 진드기처럼 살아남았고, 냄새를 맡으면서 단어를 배워나갔으며 냄새로 모든 것을 인식했다. 그는 점점 외부 세계에 대해 폐쇄적으로 되어갔고 어린아이라면 느낄 어둠에 대한 공포도 없었다. 그런 아이에게 가이아르 부인도 두려움을 느꼈고 그르누이가 8살 되었을 때 수도원에서 보내오던 양육비가 끊어지자 그 이유로 그 부인은 그리말이라는 무두장이에게 보내버렸다.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순종하며 열심히 일한 그르누이는 점점 미세한 냄새를 분석하고 분류할 수도 있었다. 1753년에 파리에선 왕위 계승일을 기리는 불꽃놀이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그는 어떤 부드러운 향기를 맡았고 그 향기를 좆으니 그것은 마레거리 어느 마당에 있는 소녀의 향기였다. 그르누이는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해 그녀의 목을 졸라 죽였고 그 시체의 냄새를 다 훑고 빨아들였다. 그 시절 파리에 있던 13명의 향수 제조인 중 한 사람인 주세페 발디니는 베르아몽 백작이 주문한 모피에 뿌릴 향수를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다. 당시 펠리시에라는 젊은 사람이 만든 이라는 향수가 굉장히 인기 있었는데 발디니는 이 향기를 분석하려고 시도했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일이 하고 싶지 않았고 집과 가게를 처분할 생각을 했다. 그 때 그르누이가 발디니에게 백작의 모피 재료인 염소 가죽을 가지고 왔고, 갑자기하면서 땅에서 멀어지려고 한다는 이론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 노쇠 같은 그르누이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 줄 확실한 근거라고 생각했다. 몽펠리에에서 그는 상당수의 돈을 그르누이에게 지불해 이론의 근거로써 그의 입지를 넓혔다. 어느 날 그르누이는 땅 속에서 나온 제비꽃 뿌리로 만든 제비꽃 향수가 가득한 냄새 때문에 현기증이 난다는 이유로 그 냄새를 몰아낼 수 있는 향수를 만들 기회를 제공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작은 자신과 거래 관계에 있는 뤼넬을 소개시켜주었고, 뤼넬의 작업실에서 그르누이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인간의 냄새를 지닌 향수였다. 상당한 유명인사가 된 그르누이지만 결국 그는 어느 날 몰래 그 곳을 떠났다.그는 방향제와 향수, 향료제품의 최대 도시인 그라스로 온 것이다. 오후 내내 그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트루아트 거리 초입 성문을 통과했을 때 그는 오색찬란한 귀한 향기가 밀려옴을 느꼈다. 향기를 따라 가니 그것은 어느 정원에서 흘러나오는, 막 싹트기 시작한 소녀의 향기였다. 그는 이 향기를 갖고 싶었지만, 정말 자기 것의 향기로 만들고 싶었기에 2년 동안 좀 더 향기를 추출하는 법을 배우고자했다. 루르 거리에서 그는 아르뉠피 부인이 도제 한명인 드뤼오와 함께 꾸려나가는 상점에서 일을 하게 됐고, 이불과 오두막의 열쇠를 건네받았다. 그는 침지 작업이며 돼지기름을 젖는 일이며 모든 일이 도맡아 했고 그러면서도 향기를 추출하는 변화 과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 여겨 보았다. 결국 아르뉠피 부인과 도제는 모든 일을 척척 알아서 하는 그르누이에게 모든 일을 맡겼고,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을 틈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향수와 동정심을 유발하는 향수, 그리고 반드시 혼자 있어야 하거나 사람을 피하고 싶을 때 바르는 향수,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냄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생명이 없는 사물로부터 향을 추출해 내는 일에도 몰두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는 조심스러운 향기 사냥이라는 그의 목적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그 해 5월 정원의 그 소녀 리쉬는 죽어있는 딸을 보게 되었고, 그 소식은 그라스 전역에 삽시간에 퍼졌다. 시 당국은 당시 목격자인 성문의 경비대원의 진술을 토대로 곧 그르누이를 체포했다. 모든 증거가 그의 오두막에서 나왔고 1766년 그는 십자가에 묶어 쇠몽둥이로 12대를 내리친 후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리는 선고를 받았다. 사형 집행 날, 많은 구경꾼들이 이른 아침부터 몰려와 자리를 잡았다. 기마병의 호송을 받으면서 마차에서 그르누이가 내렸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 주변에 모여 있던 만여 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그 작은 남자가 ‘살인마’일 리가 없다는 확고한 믿음에 사로잡힌 것이다. 주교, 장사꾼, 후작부인, 처형을 맡은 파퐁까지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건 그 작은 살인마에 대한 사랑이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에게 손을 뻗었고 여인네들은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리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사랑을 나눴다. 그르누이는 사람들의 사랑을 획득할 수 있는 향수를 바르고 마차에서 내려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지만, 정작 그는 어떤 만족감도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처형시켜주길 바랬다. 이 때 그르누이는 또 다시 끔찍스런 자신의 냄새의 안개로 정신을 잃었고 날이 밝아 올 무렵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서쪽을 향해 가로질러 갔다. 그라스 사람들은 만취 상태에서 잠이 깼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이 일은 끔찍한 체험으로 남게 됐고, 더 이상의 어떤 말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 사건 기록도 보관하지 않기로 하고 새로운 수사를 시작했다. 그리도 다음날 살인범으로 드뤼오가 체포됐고, 그는 교수형을 당했으며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 되었다.그르누이는 퐁뇌프 다리를 건너 어느 납골당에 도착했다. 자정이 지난 납골당에는 도둑, 살인자, 창녀 등 온갖 천민들이 모여 있었다. 지극히 예민한 감각을 가진 그들은 갑자기 푸른 옷을 입은 작은 남자가 나타나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병마개를 열고 내용물을 흩뿌리의 마음에 ‘포기’라는 단어를 안겨주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5년의 시간동안 고집을 부린 건 작가만이 아니라 판권을 요구하는 번드 아이킨거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자신의 작품으로만 대중들과 호흡하고 싶어 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입에서 끝내는 영화를 허락한다는 말을 얻어낸 것이다.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톰 튀크베어 감독은 600억 원의 제작비와 대규모 인력 동원으로 원작의 방대한 스케일을 전혀 훼손시키지 않은 채 스크린에 옮기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 2007년 3월 22일에 개봉하여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였고 그 포스터 역시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포스터로 선정되기도 하는 영광을 안았다.#『향수』의 다중부호화된 구조: 의 논문 중에서-무엇보다 『향수』가 독자들의 눈을 끈 것은 다중부호화의 측면들이다. 즉 『향수』는 다양한 독자들에게 동시에 말을 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선 『향수』의 선정적 살인 사건이 일단의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 이 일단의 살인 사건은 이들 독자들에게 하나의 탐정소설을 상기시키게 한다. 또 일단의 독자들은 18세기 파리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 매료되었다. 이들 독자에게는 『향수』는 마치 한편의 역사소설을 읽는 느낌을 갖게 한다. 더욱이 향수와 냄새를 통해 18세기 파리의 과거를 복원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 역사학의 문화사를 기대하게 한다. 이미 향수를 모티브로 그려진 사적생활과 그리고 사적영역에 대한 일련의 사회사적 묘사가 이 부류의 독자의 흥미를 자극했을 것이다. 또 일단의 독자는 왜곡과 폭력행위 그리고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주인공 상에 의해 매료되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 소설 전체를 샅샅이 거치면서 이들 주제를 추적하거나 심지어 많은 주제들을 함께 엮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 책의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향수』에 대해 독자들이 나타내는 관심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고 또 이점에서 『향수』의 다중코드화가 쉽게 인식된다. 그리고 소설에 설정된 다중 부호 가운데, 독자가 어느 코드를 해독하느냐에 양철북 Der Blechtrommel』과 유사한 모티브도 발견된다. 또한 괴테와 아이헨도르프, 클라디우스, 보들레르, 랭보 그리고 릴케와 같은 시인들의 시에 대한 암시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암시는 문학의 범주에만 국한되지 않아서, 카스파르의 그림들과 바그너의 오페라의 흔적도 나타난다. 또한 프로메테우스 신화, 샤미소의 『Schlemihl-Gestalt』, 개구리 왕자 동화, 하만의 『Aesthetich in nuce』, 니체의 이념 등에 대한 암시도 발견된다.『향수』에 나타난 이러한 많은 선배작가들의 작품과의 상호텍스트성은, 만약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이 아니라면 이해가 힘든 부분이다. 특히 문학에서 무엇보다 형식상의 혁신과 표현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독일의 모더니즘 문학의 전통을 놓고 볼 때, 이러한 점이 작품의 긍정적 수용에 장애물로 작용했다. 그래서 그르누이가 "죽은 피부 tote Häute"를 약탈하듯이 쥐스킨트가 "죽은 시인 tote Dichter"을 "약탈한다 plündere"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며, 한 절충주의자의 작품이란 평가도 가능한 것이다. 실제 『향수』의 문체는 독자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속일 수 있다. 『향수』가 가진 이중부호를 통한 문학적 암시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 독자라면, 그는 이 소설의 표면상의 고상한 문체를 오히려 창작의 독창성의 표시로 보았을 것이다. 『향수』는 소설 속에 채택된 다른 텍스트들의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로 동질화하여 그 출전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만약에 이 소설을 전통적인 의미에서 문학적 걸작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작가의 동질화 기법에 속은 것이다. 이와 달리 『향수』의 표현이 이미 대가들의 작품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했으나, 이것을 작가의 의도적인 서술전략으로, 즉 혼성모방이나 패러디 등을 독자적인 문체상의 특징으로 인식하지 못한 독자들은 이 소설을 아류적이거나 절충적 문체라고 폄하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번역을 통해서 보지 않은 독일어권의 독자들은, 이 소설이 가진 상호텍스다!
    인문/어학| 2017.11.05| 6페이지| 1,000원| 조회(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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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통일 (동독과 서독)
    독일 통일- 목 차 -1. 개요2. 분단3. 우리나라와의 공통점과 차이점4. 통일과정5. 통일 후의 모습6. 동서독의 통일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7. 통일 독일의 문제점과 후유증8. 독일 통일의 의의1. 개요1990년 10월 3일,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체제 아래서 연합국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일.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소련군이 진주한 동독과 서방 연합군이 진주한 서독으로 나뉘어 분할 통치되었다. 그러다가 냉전체제가 굳어지면서 1949년부터는 동서 양쪽에 독립된 정부가 들어서 분단이 공식화하였다. 1950년대 초에는 한때 중립 통일안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무산되고, 60년대부터는 국제적 냉전 기류에 편승한 서독의 이른바 할슈타인원칙에 따라 대결 국면이 조성되어 동독은 베를린에 장벽을 둘러싸기도 하였다.이러한 대결 국면이 전환기를 맞은 것은 1969년, W.브란트 총리가 동방정책을 추진하여 할슈타인원칙을 포기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972년대부터 1987년까지 약 15년간 34차례의 협상을 통해 과학 기술, 문화, 환경 등에 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동서독간 민간인의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1982년 H.슈미트 서독 총리의 동독 방문에 이어 1987년에는 E.호네커 동독 공산당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함으로써 통일에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도 동독측은 1민족 2국가라는 통일 이념을 자본주의적 민족과 사회주의적 민족이라는 2민족론으로 바꾸어 통일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서독은 1국가 2체제론을 내세워 독일 민족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강조하였다.독일의 통일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M.고르바초프에 의해 추진된 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이다. 그 영향으로 동구권 국가들이 소련의 눈치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추진하게 되었고, 동독도 같은 행보를 걷게 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첫 자유 선거가 실시되어 L.데 메지에르 정권이 탄생하는 등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었다. 이를 틈타 서독이 막강한 경2일 전독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H.콜 총리가 이끄는 통일 정부 구성을 끝냈지만, 통일 전 파산 지경에 이르렀던 동독 경제의 회복과 동서독 주민간의 경제적 격차 해소, 사회주의 체제에서 빚어졌던 재산권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되어 있다.2. 분단-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소련군이 들어온 동독과 미국. 영국 등의 연합군이 들어온 서독으로 나뉘어 다스려졌다.- 1949년부터 동서 양쪽에 각각 정부가 들어서 완전히 분단된 상태가 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아래에서 동독은 1961년 베를린에 장벽을 쌓기도 하였다.3. 우리나라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분단되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서독은 민주주의국가로, 동독은 공산주의 국가로 나뉘어졌다- 통일 전 독일과 달리 남북한 간에서 인적 교류가 거의 없다. 독일의 경우 통신과 접촉 상황이 매우 달랐다. 거의 모든 동독인들이 서독 TV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었고 수백 만 명의 서독인들이 동독을 방문하였고, 나중에는 수백만 명의 동독인들이 서독을 여행할 수 있게 됐다.4. 통일과정1) 서독의 브란트 총리가 1869년에 동방정책을 펴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서독과 동독이 협력을 하기 시작하였다.2)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약 15년간 34차례의 협상을 하여 과학기술, 문화, 환경 등에 관한 협력을 하였으며, 특히 경제적인 교류가 활발하였다.3) 1987년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하였고, 그 후로 통일을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되었다.4) 통일을 위해 주변 의 여러 나라에 독일 통일이 유럽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꾸준히 이해시켰다.5) 1990년 초부터 서독과 동독,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회담이 열려 8월말에는 통일 조약이 이루어졌고, 10월 3일에 통일이 이루어져 분단 41년 만에 통일을 하게 되었다.5. 통일 후의 모습통일 뒤의 독일문제는 국제문제임과 동시에 국내문제가 됐는데, 정확히 말하면 독일 사회사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통일비용이라는 말에회시장경제 구축을 목표로 1990~2000년 사이에 동독으로 약 1 조 달러의 재정이전을 했다.아직도 양 지역 간의 격차는 크다. 1인당 국내총생산 기준에서 보면 동독은 서독의 3분의 2에 불과하고, 동독의 실업률은 노동인구의 20%에 이른다. 따라서 동독에 대한 재정이전은 앞으로 10년간은 더 계속되리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10년의 종합평가는 긍정적이다. 90년대 중반부터 동독 주들의 경제성장률이 현저히 상승해 유럽에서 가장 활력 있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드레스덴 지역은 유럽 반도체기술의 한 중심이 되고 있다.문화적 통합에서도 진전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동독사람들 중에는 이른바 '머릿속의 벽'이라는 심리적 장애, 또는 2등 국민 의식에 시달린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차차 통일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하고 원한과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수도가 베를린으로 복귀돼 동독사람들의 정부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준 것이 여기에 기여했다 한다.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은 어떤가? 90년 통일의 가능성이 보이자 독일 국내 일부에서는 유럽연합 이탈론이 나왔다. 즉, 공산권에서 벗어난 동유럽 국가들을 규합해 독일의 독자적인 영향권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불안을 느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늦게나마 동독붕괴를 막아보려고 동독을 방문했고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미테랑에게 영국과 프랑스의 접근을 제안했다. 그러나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독일의 운명은 통일유럽에 융합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변함이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동요를 막고 오해를 풀었다. 이 일화는 유럽의 인접 국가들이 얼마나 독일의 정책방향에 민감한가를 보여준다.역사적으로 독일의 민족주의, 팽창주의에 관해 지정학적 숙명론에 입각한 여러 가지 이론, 선입견, 신화들이 유럽 여러 나라 국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더구나 야만적인 나치의 2차 대전 때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독일은 전후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추방당할 신세에 처해 있었다. 이런 독일이 또 다시 유럽 국가들의협력을 위해 사용하고자 한다는 것에 기인한다.6. 동서독의 통일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첫째, 동서독의 통일은 우리에게 평화 공존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주었다. 동서독의 공존 상황은 독일 분단이 ‘국제형’ 성격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분단 고착과 실리 추구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즉, 동서독의 공존 상황은 헬싱키 체제에 의한 분단 고착화의 강요라는 측면과 함께 독일인 스스로가 당장 실현되지 않는 통일에 집착하기보다는 분단으로 인한 두 독일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가면서 삶의 질을 높이려는 독일인의 실리 추구 측면에 의해 조성되었다. 그 결과 동서독의 평화 공존은 분단의 장기화와 고착화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존을 기초로 한 계속적인 접근을 통해 오늘의 통일을 이끌어 낸 것이다.이처럼 독일인들은 통일 문제는 거론도 하지 않으면서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며 민족 동질성을 찾으려 했던 반면에, 한민족은 통일의 어려운 현실은 외면한 채 당위성만 강조하며 통일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북한은 통일 우선 정책을 취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평화 우선 정책을 취함으로써 북한은 교류,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의 통일 방안을 분단 고착화를 위한 책동이라고 비난해 왔으며, 또한 한국은 북한의 통일 방안을 적화 통일을 위한 전략이라고 비판해 왔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에는 통일 논의만 무성하고 실효는 하나도 없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 해결은 대립과 반목과 갈등을 해소시키는 가운데 신뢰를 회복하는 공존의 논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독일의 통일은 우리에게 남북한 사이에 평화를 제도화시키고 그 바탕 위에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시키는 가운데 궁극적인 평화 통일의 기반을 쌓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둘째, 동서독 통일은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경과해야 될 것 이라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평화적 이 힘을 바탕으로 주변 국제적 환경을 독일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독일 통일을 달성하였던 것이다.반면에 한민족은 맹목적으로 통일만을 외쳐 왔었다. 게다가 북한은 남한을 미국에 예속된 괴뢰로, 남한은 북한을 테러 분자로 각각 상정하면서 상대방 때문에 통일이 되지 않는다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여 왔다. 즉, 이제까지의 남북한 통일 정책은 상호 신뢰 회복과 민족 화합 차원에서 공동 이익을 조성하고 민족 결합을 위한 기여와 구도를 준비하여 왔던 것이 아니라, 정치, 심리적 차원의 통일 주장이나 정권 유지적인 발상과 결부된 선전 도구로 이용되었다. 이에 따라2세에 대한 통일 교육은 체제 경쟁적이고 적대감과 대결 의식만을 양성하여 왔던 것이다. 이 결과, 남북한 주민들은 통일이란 불가능한 것인 줄만 알고, 심지어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란 무용한 것으로 은연중에 치부해 버린 채, 통일이란 우리의 노력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라 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따라서 독일의 통일은 우리에게 맹목적인 통일 지상론이나 패배적 분단 고정론에서 벗어나 실존적 현실과 규범적 이상의 균형 있는 자각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셋째, 동서독의 통일은 남북한이 이제부터라도 상대방을 잘 아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사실, 동서독 통일은 그 동안 인적·물적 교류는 물론 서로 상대방측 TV까지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음으로써, 동서독인들이 공동 문화권, 공동 생활권을 향유할 수 있음으로 인하여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독일인들로 하여금 동서독 관계의 변화를 큰 충격 없이 받아들인 힘이 되었고, 더 나아가 통일의 구상과 실천의 바탕이 되었다.반면에 남북한은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상대방을 보기 때문에 자신의 실체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대방을 보게 된 것이다. 이 결과 우리는 만일 한반도가 당장 통일이 된다면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모든 분야에서의 기본 정책뿐만 아니라 생활양식과 의식 구조의 차이에서 생기는 많.
    인문/어학| 2012.01.12| 7페이지| 1,000원| 조회(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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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교육제도
    독일의 교육제도- 목 차 -0. 개요1. 기초과정1) 유치원(Kindergarten)2) 기초학교(Grundschule)2. 중등과정1)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2) 레알슐레(Realschule)3) 김나지움(Gymnasium)3. 주요학교(Hauptschule)1) 실업학교(Realschule)2) 김나지움(Gymnasium)3) 종합학교(Gesamtschule)4) 직업학교(Berufsschule)5. 고등과정1) 종합대학(Universitat)2) 전문대학(Fachhochschule)6. 종합 및 정리0. 개요- 6-18세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무상 의무교육을 받는다.- 교육행정은 각 주의 주요 권한에 속한다.- 교과과정·필수과목·학습수준 등의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16개 주가 참여하는 상설 공동협의기구를 두고 있지만, 무엇을 우선 순위로 삼는가는 각 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과서와 부교재는 일반적으로 무료로 제공되며,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대해서는 재정 지원 등 여러 가지 지원이 이루어진다.-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이 유치원을 일컫는 보편적인 용어로 정착할 만큼 현대 유아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취학 전 교육은 3세부터 가능하다. 6-10세 어린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초등학교인 그룬트슐레(Grundschule)에 다닌다. 그룬트슐레를 마친 뒤에는 전통적으로 3개 과정으로 각자의 진로가 갈라진다.1. 기초과정1) 유치원(Kindergarten)독일이 처음으로 실시한 제도. 18-19세기에 아동교육기관은 원래 기본적인 성경공부를 시키거나 초기 산업화의 역효과로 나타난 궁핍한 어린이들의 복지를 위하여 설립. 유치원 교육의 핵심은 언어능력촉진, 인성신장, 사회성교육과 놀이활동이다. 일반적으로 유치원에서는 문자나 수를 가르치지 않는다. 유치원 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부모의 의사에 달려 있다. 놀이 중심의 사회성 함양을 목표로 하는 유치원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유상 교육을 실시한다. 대부분 아이들은 오전에만 유치원에서 지내며 오후에는 가정에서 보낸다. 그러나 종일제 유치원도 있으며 병설기관으로 탁아소도 운영하고 있다. 오늘날 3세부터 6세 사이의 아이들 중 약 80%가 유치원에 다닌다.2) 기초학교(Grundschule)의무교육 단계로서 당해 연도 6월 30일까지 만 6세가 되는 아동이 입학 대상.능력에 따라 5-7세부터도 가능하며 신학기는 9월 1일에 시작한다. 기초학교과정은 일반적으로 4년간의 교육과정이지만 브레멘, 베를린, 함부르크에서는 6년간으로 되어 있다. 어떤 주들은 5-6학년 기간에 학교계통간에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한 특별 규정을 두고 있다. 오늘날은 많은 학생들이 어떤 학교를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 더 생각해 보고 또 바꿀 수도 있는 상황 파악반(5학년과 6학년 과정)을 우선 택한다.2. 중등과정1)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로 진학해 약 15-16세까지 계속 기초교육을 계속 받은 다음 직업학교인 베루프스슐레(Berufsschule)에서 시간제로 견습공 등 직업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합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이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은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절반 미만에 이른다.2) 실업학교인 레알슐레(Realschule)에 진학해 상업·사무 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중급 수준의 기업·행정·사무 능력을 쌓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전문 직업학교인 파흐슐레(Fachschule)에 입학하는 자격을 취득하는 이 과정에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1/3 미만이 진학한다.3) 김나지움(Gymnasium)에서 9년 동안 고전·현대언어·수학·자연과학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대학으로 진학하는 과정인데,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약 1/4이 이 과정에 선발된다. 한편, 이처럼 어린이들의 진로를 너무 일찍 결정짓고 한번 선택한 진로를 도중에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와 같은 전통적인 과정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 주마다 영국의 종합 중학교에 해당하는 소수의 게잠트슐레(Gesamtschule)를 운영하고 있다. 게잠트슐레에 다니는 학생들은 보다 자유롭게 자신에게 알맞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3. 주요학교(Hauptschule)기초학교 졸업생의 약 30%정도가 사회적 위신과 학업수준이 낮은 주요학교에 진학하여 5학년부터 9학년까지 5년제 학교. 보통 교육을 실시하는 주요학교에서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고 학교로 졸업 후 직업생활에 기초가 되는 내용을 교육하며, 직업교육을 받을 때 도움이 되도록 한 가지의 외국어(대개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졸업 시험은 없으며, 이후 직업 전문 학교에서의 입학이 가능하다. 근래에 이 주요학교는 점차 인기가 떨어져 쇠락의 상태에 있다. 더욱이 주요학교는 학업 성적이 아주 낮은 학생이나 이민 온 아동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현재 개혁이냐 폐쇄냐 하는 논쟁중이다.1) 실업학교(Realschule)초등학교 졸업생 중 20%정도가 진학하는 실업학교는 주요학교와 김나지움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 수준.이 학교는 대학진학과는 직접 관계없이 중등학교 형태로 현재 약 1/3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적어도 한 개의 외국어는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하며, 보통 제 2외국어도 가르친다. 현재 이 학교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연결되는 경로로서의 기능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2) 김나지움(Gymnasium)독일에서는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은 김나지움에 입학.김나지움을 이수한 학생은 독일 모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모든 자격을 취득하는 아비투어(Abitur)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5학년부터 13학년까지의 9년과정이며 독일의 전통적인 인문계 고등학교로 학생들에게 대학진학을 준비시킨다. 5-10학년은 중등1단계, 11-13학년은 중등2단계로 구분되며 교육과정은 학교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3) 종합학교(Gesamtschule)주요학교,실업학교,김나지움,세 학교 형태들을 혼합한 종합학교.기초학교 졸업 후 주요학교,실업학교,김나지움 등의 3단계식 학교제도는 호환성이 결여되어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즉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게 하고, 또 후에 잘못 내려진 결정을 수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보완책으로 1970년대 초에 사민당의 주도로 생겨난 것이 종합학교이다.오랜역사를 자랑하고 특히 19-20세기 초에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독일의 대학은 오늘날 학생수가 폭증하고 사회적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전통적인 대학 구조의 변화라는 힘겨운 요구에 직면해 있다. 대학에서 원하는 기간 동안 학업을 계속하거나 원하는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독일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꾸준히 대학을 증설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학과 동등한 수준의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인문대학을 세우는 한편, 공학?교육?예술 분야 단과대학과 학교들을 종합대학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계공학?건축?디자인?예술?농학?경영학 등 어느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파고는 고등기술학교인 파흐호흐슐레(Fachhochscule)와 새로운 전문학교를 만들었다.4) 직업학교(Berufsschule)직업학교는 학교 교육, 현장 교육의 2원 교육 제도로 이루어진다.직업교육을 마친 다음에는 도제, 보조 공, 기능공으로 그에 상응하는 급료를 받으며 직업인의 길을 걷는다. 그에 따른 다년간의 직업 생활과 시험을 거쳐 장인(Meister)이 될 수 있다. 훈련생들은 산업체에서의 실습과 함께 3년 동안 1주일에 하루나 이틀을 직업학교에 다녀야 한다. 직업학교에서는 일반 교양과목 외에 기업체의 현장 실습에서보다는 학교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는 전문 이론 지식을 가르친다. 이 과정을 마치면 졸업시험을 통해 수료 증서를 받게 된다. 직업학교는 다른 학교에 다니지 않는 18세 이하의 모든 젊은이들이 의무적으로 다니도록 되어 있다. 독일 에는 약 400개의 공인된 직업교육기관들이 있어서 훈련생은 선호분야를 택할 수 있다. 남자들의 선호 직종은 자동차기술자, 전자 기술자, 사업가, 무역업자, 화가나 목공 기술자 등이고, 여자들이 선호하는 직종은 미용사, 판매원, 간호사나 치과 보조사, 사무원 등이다.실습 교육과 직업학교 외에 직업을 배우기 위한 교육 과정은 상당히 많다. 직업전문학교(Berufs-fachschule)는 전일제 학교로 1년 내지 3년 과정이며 직업 활동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한다. 특히 상업, 가정경제, 사회후생, 사무직의 경우이다. 기간은 최소 1년이고 그 이상일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실습교육 기간에 가산되거나 이를 완전히 대체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직업교육체제는 실업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전문고등학교(Fachober schule)이다. 이 학교의 교육과정은 2년(도제과정을 마친 경우에는 1년)이다. 1년은학교의 작업장에서, 또 기업체에서 실습생으로 전공에 필요한 실질 교육을 받고, 다음 해에는 학술적 이론적인 수업만을 받는다. 수료하면 공과대학의 일종인 전문대학(Fachhochschule)으로의 진학자격이 주어진다.5. 고등과정1) 종합대학(Universitat)종합대학은 학생들에게 많은 선택권을 허용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떠한 필수과목도 없다. 그리고 학부교육과 대학원 교육의 구분도 분명하지 않다. 4-6년 동안의 공부가 끝나면 첫 번째 졸업장을 수여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도 탈락률이 상당히 높은 편으로 수업 연한은 평균 7년이 넘는다. 대학에는 교수와 연구의 통일원칙이 통용된다. 전문대학과 달리 이들 대학수업은 학문과 이론 중심이다. 수학기간은 평균 8- 12학기이다. 대학교에서는 전공의 심화와 집중적 연구의 가능성을 제공 하고 학과간의 협력 전공도 가능하다. 이들 대학에서는 디플롬(Diplom), 마기스터(Magister), 국가자격 시험 과정으로 수료과정이 나누어진다. 수료 후에는 박사학위과정을 계속하여 이수할 수 있다. 일부 과정 들은 마기스터나 박사과정만으로 되어 있다.
    인문/어학| 2012.01.12| 6페이지| 1,0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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