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책을 그리 빨리 읽는 편이 아니다. 신문이나 잡지는 빨리 읽곤 하지만 일반 책, 특히 어려운 내용을 다루는 인문 서적 같은 경우엔 그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정확히 5시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그것도 거의 자리를 뜨지 않고, 전혀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이 책은 지루한 경제학 책이라기 보다는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과 현상,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논리적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일상 생활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일반 경제학 이론 책과는 달리 괴리감을 느낄 수 없었고, 내 주변과 쉽게 비교 혹은 대조가 가능했었다. 때문에 나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리 큰 어려움을 들이지 않고 접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이 단순히 읽기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작가 스티븐 레빗은 자신 스스로도 밝혔듯이 복잡한 수학공식을 이용하여 경제학을 풀어내진 못 한다. 어찌보면 일반 경제학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고 함량 미달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간과했던 것이 있다. 복잡한 수학공식을 이용해 문제를 어렵게 푸는 것이 뛰어난 경제학자 자질을 지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려운 전문 용어를 이용해 이론을 설명하는 것은 단지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내세우는 허세에 지나지 않다. 또한 아무리 연구 성과가 대단하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연구라 할지라도 일상 생활과 큰 거리가 있고 응용되기 어렵다면 죽은 학문일 것이다.. 일반인들이 경제학이란 학문에 지레 겁부터 먹고, 다가서길 꺼려하는 데에는 이들의 공(?)이 가장 크지 않나 싶다. 레빗은 결국 학문의 대중성이란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충실한 것이다.레빗의 이론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그래서 범죄의 감소 원인을 낙태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진보와 보수 진영을 막론하고 도덕적으로 엄청난 질타를 받는다. 하지만 레빗의 시각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한 현상에 대해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파고들어 문제의 핵심을 과감하게 집어 냈을 뿐이다. 그가 내세우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자료와 데이터를 통해 내세우는 그 증거는 이를 확실히 반증해준다. 또한 기존의 학자들이 개인적 영달에 의해 자신의 이론을 확대 혹은 과장하는 현상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의 이론이 최대한 주관성을 배재하고 객관성을 갖추려고 노력했는지를 반증해준다. 그는 도덕적 이념에 얽매이기보다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사람들의 욕망 추구에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그의 이론은 성선설보다는 인간의 이기심에 초점을 맞추는 성악설에 가까워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떤 편향된 시각이나 도덕적 이념에 얽매여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쉬움이 남는 공포의 미학“아파트”를 보고난 ‘아파트’의 원작 만화를 그린 강풀 작가의 팬이다. 당연히 영화화 된다는 소리에 개봉 전부터 주목을 했다. 특히 ‘폰’을 연출한 안병기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기 때문에 더욱더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고소영의 3년만의 스크린 복귀 작품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봉 전부터 모든 포커스가 오세진역을 맡은 고소영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그에 대한 불만이 컸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원작이 훌륭했고 내 스스로 공포영화의 대가라고 일컫는 안병기 감독이 연출을 했기 때문이다.개봉과 동시에 CGV구로10으로 달려갔다. 개봉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동시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과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두 가지 악재로 인해 흥행은 부진하였다.영화와 만화의 차이점은 만화는 다양한 시점에서 표현이 가능하지만, 영화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역시 세진이라는 커리어 우먼의 시점으로 영화는 이루어져 있다. 영화는 커터 칼로 자해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작한다. 다소 충격적인 화면이지만 공포영화의 오프닝으로서는 괜찮았다. 자극적인 화면이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반부 유민의 등장과 이어진 뜬금없는 자살 부분부터 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 원작을 본 나로서는 원작의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는 달리 엉성한 전개가 벌써부터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유민의 역할은 무엇이고, 무엇을 암시하기 위해 나온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상영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사실 ‘아파트’는 공포영화라고 하기에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귀신의 출연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불을 끄고 죽을 때 하는 기괴한 행동, 다음날 죽은 시체를 촬영한 장면, 그리고 오로지 사운드로만 관객에게 공포감을 주려하고 있다. 요즘 관객들은 이런 영화에 놀라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무서움을 원한다. 즉, 소름이 돋거나 깜짝 놀라는 영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공포에 질려 죽는 씬을 볼 때마다 올해 공포영화 스타트를 끊은 ‘아랑’이 생각났다. ‘아랑’은 이런 면에 있어서는 충분히 만족한다. 당신은 죽을 것이란 메일을 통한 암시, 메일 클릭과 동시에 민정이의 홈페이지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 그리고 눈에서 피 흘리는 귀신의 갑작스런 등장 등. 이처럼 ‘아랑’은 공포영화의 규칙 아닌 규칙을 잘 따랐다고 생각한다. ‘아파트’는 그런 규칙을 너무 간과했다. 기존의 안병기 감독은 비쥬얼보다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스토리로 공포영화로서의 주된 무서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홈페이지에서 발췌하길 “만화에서는 독자가 상상하는 간접적 공포였다면 영화에서는 비쥬얼로 보여지는 직접적인 공포를 그려질 것이다”라고 되어 있지만 내 눈엔 사운드에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폭력에 대한 또 다른 성찰“비열한 거리”를 보고얼마전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를 시사회를 통해 보았다. 원래 다른 사람과는 달리 영화를 감독 위주로 보는 성향이 강하고 유하 감독의 작품은 이제껏 빼놓지 않고 감상했기에 당연히 이 작품에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배우의 연기력 수준 또한 매우 중요하지만 영화를 그림으로 비유해 볼 때 감독은 어떤 작품을 만들지 구상하고 스케치를 하는 화가이고, 배우는 그 그림에 녹아들어 있는 사물이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어떤 식으로 연출의도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고, 어떤 식으로 극의 결말을 구상할 지에 따라서 영화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고려해볼 때 분명 영화는 감독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열한 거리’를 보면서도 과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주력하면서 영화를 감상했다.이 영화는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간간이 나오는 액션 신에서도 처절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에 성공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완벽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런대로 작품에 녹아들었기에 보는 데 큰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다.유하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비열한 거리는 여타의 조폭영화와는 달리 결코 조폭을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안티 조폭영화이다.” 이 말이 곧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한국영화에서 나오는 조폭은 상당 수준 미화된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사회에서 그리 대접받지 못하고 음지에서 떠도는 존재였던 조폭이 영화상에서는 의리의 화신이자 남성성이 절정에 달한 영웅적인 존재로 그려진 것이 사실이다. 당연스럽게 그러한 작품들 대다수의 액션 신은 멋들어졌고 마치 무협영화에 나오는 고수들의 대결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비열한 거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 적은 결코 없었다. 특히 집단 터널 난투극 장면에서 느껴지는 잔인함과 고통의 강도는 대단했다. 살과 살이 맞부딪치고 칼에 찔리고 야구방망이에 맞아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폭력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가 생기게 된다.주인공으로 나온 조인성은 약간은 어색한 사투리로 강조하면서 말하곤 하다. “식구는 같이 먹는 입구멍이다”라고. 그리고 조폭인 자신에 대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먹고 살다보니 하게 된 일이라고” 유하 감독은 전작인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어 이번 작품을 폭력에 대한 3부작의 연장선상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말한다. 유신 시절 고교시절을 보낸 그가 당시에 느낀 폭력에 대한 감정은 매우 유별나 보인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유신시절 부정한 권위와 권력에 짓눌려진 학생들의 분노를 대변한다면, 비열한 거리는 못 배운 사회 빈민층이 냉정한 사회의 폭력성에 희생되는 것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유하 감독은 조폭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고 생각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그들이 그렇게 폭력을 휘두를 수 밖에 없게 만들어지는 사회의 부조리와 냉엄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조폭이란 존재자체에 대해서도 미화시키기는 커녕 사회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필요악같은 존재로 느껴지게 만든다.이 작품은 나름대로 영화 음악에도 상당한 신경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비열한 거리’의 음악은 애잔하면서도 가슴을 서글프고 외롭게 만든다.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 죽어가는 병두의 눈빛처럼 말이다. 병두가 영화 상에서 부르는 트로트 곡도 그의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웃음을 나게 만들지만 그런 어설픈 부조화가 마치 우리네 삶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법조계 인사와 사업가가 온통 구린 사생활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또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고민과 감정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써야하는 그들 조폭의 아이러니처럼 말이다.
WTO 미국 관련 분쟁 (총 172건)총 분쟁미국 관련 분쟁비율33817250.8%WTO 분쟁 중 미국 관련 분쟁은 172건으로 무려 50.8%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무역 분쟁의 절반 이상이 미국과 관련돼 일어날 정도로 미국의 무역규모와 경제규모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이 무역문제에 대해서는 분쟁을 일으켜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겠다는 의중을 엿 볼 수 있다.미국 관련 분쟁 중 제소와 피소 비율종류미국 제소미국 피소건 수8191비율47.1%52.9%의외로 미국이 제소를 한 비율보다는 피소를 당한 비율이 더 많았다. 일반적으로 미국이 강대국이란 위치를 이용해 제소를 더 많이 할 것이란 생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비록 그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었다.위 세 가지 그래프를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미국의 제소건수는 96년을 정점으로 해서 계속해서 하향세를 보여 왔다. 반면 미국을 제소하는 건수는 줄곧 상향세를 보이며 2002년 19건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연도별로 제소건수와 피소건수를 비교해 봐도 1998년까지 미국이 타국을 제소한 건수가 더 많았으나 1999년 이후 2005년까지는 타국이 미국을 제소한 건수가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2006년은 아직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관계로 제외) 전 세계적인 무역 분쟁 건수도 2002년을 기점으로 해선 점점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WTO란 체제가 미국의 주도로 이전에 포함되지 않았던 서비스와 농업 분야가 포함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WTO 출범을 목표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때문에 출범 이후 줄곧 타국을 제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낯선 WTO 규정에 다른 나라들도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수세의 입장에서 벗어나 공세적으로 미국을 제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이 수치는 초기 무역 분쟁이 미국의 공세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타국의 반격을 거쳐 현재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미국이 제소한 국가 및 미국을 제소한 국가와 건수미국이 제소한 국가건수미국을 제소한 국가건수EU16EU29대한민국6캐나다13일본6일본8멕시코6브라질8캐나다5대한민국7호주4멕시코7아르헨티나4인도6인도3태국3브라질3호주2아일랜드3뉴질랜드2필리핀3아르헨티나2벨기에3칠레2터키2파키스탄2그리스2베네수엘라1프랑스2코스타리카1헝가리1말레이시아1파키스탄1필리핀1포르투갈1콜롬비아1인도네시아1대만1영국1인도네시아1덴마크1중국1스웨덴1스위스1칠레1노르웨이1네덜라드1에콰도르1루마니아1안티카바부다1베네수엘라1이집트1중국1총 (합동으로 제소한 국가 12개국 포함)103총81미국이 제소하거나 미국을 제소한 국가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EU이다. EU가 미국을 제소한 경우가 29건, 미국이 EU를 제소한 경우가 16건으로 타국에 비해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과 EU가 무역 부문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그 대립의 각도 상당히 날카로움을 알 수 있다. 반면 미국과 EU의 무역이 그만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도 알 수 있다.눈여겨볼만한 것은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가 NAFTA를 통해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무역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근 미국과의 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대다수의 희망과는 달리 FTA 협정이 미국과의 모든 무역 분쟁을 종결시켜 주진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대비해나가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대한민국 관련 무역 분쟁 : 25건총 분쟁한국 관련 분쟁비율338257.4%대한민국 관련 무역 분쟁은 25건으로 미국에 비해선 적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볼 땐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세계 무역 규모 11위의 국가이니 만큼 그에 비례한 무역 분쟁의 숫자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대한민국 관련 분쟁 중 제소와 피소 비율종류한국 제소미국 피소건 수1213비율48%52%연도별 대한민국 제소 건수 및 피소 건수 변화연도제소 건수피소 건수제소 + 피소1995년0331996년0221997년2351998년0001999년1342000년3032001년0002002년0112003년3032004년2132005년0002006년 (현재까지)101합계121325초기 대한민국은 제소보다는 제소를 당하는 입장이었다. 그것도 주로 미국에 의해서 제소를 당했다. 특이한 사항은 미국이 가장 먼저 제소를 한 첫 번째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것이다. 일면 미국이 우리와의 무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2000년부터 우리나라의 제소 건수가 피소 건수를 앞지르고 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무역 분쟁에서 수세적인 입장이 아닌 공세적인 입장으로 전환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대한민국을 제소한 국가 및 대한민국이 제소한 국가대한민국을 제소한 국가건수대한민국이 제소한 국가건수미국6미국6EU4EU3캐나다1일본2호주1필리핀1인도네시아1총13총12역시나 대한민국을 제소하거나 대한민국이 제소한 국가는 미국과 EU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만큼 두 나라와의 무역규모가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EU와의 무역비중이 일본에 비해 훨씬 뒤쳐짐에도 불구하고 분쟁이 이어지는 것은 EU가 무역 분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 중국과의 무역 분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중국이 WTO에 가입하는 순간부터 무역 분쟁이 크게 늘어나리란 예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GCC (걸프 협력 회의) 국가 조사1. 국가 개관국가구분사우디 아라비아쿠웨이트인구 (2003년)2400만 8000명243만 9,000명수도리야드쿠웨이트정치 체제세습 군주제입헌 군주제공용어아랍어아랍어통화사우디 리얄쿠웨이트 디나르면적2,149,690㎞²17,818㎞²1인당 국민총생산 (2003년)7,230 달러18,270 달러인구밀도 (2003년)11.2명/㎞²136.9명/㎞²종교이슬람교이슬람교주요 민족아랍인 90%쿠웨이트인 50%, 아랍인 35%2. 국가 수립사우디 아라비아 - 리야드 출신 압둘 아지즈 왕이 메카 중심의 헤자즈 지방과 리야드 중심의 네지드 지방을 통일하면서 1927년 건국하였다. 아지즈 왕은 와하비즘으로 불리는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였으며, 반 오스만 투르크라는 기치를 내걸고 사우디 아라비아를 건국하였다. 1932년 9월 현재의 국명으로 바꾸게 된다.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국명은 사우드 왕가가 다스리는 아라비아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쿠웨이트 - 본래 투르크 제국의 종속국이었으나 페르시아 만에서의 열강 패권 다툼에 휘말려, 1899년 영국의 압력으로 영국-쿠웨이트 조약을 체결, 영국의 식민지 체제에 놓이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석유개발에 의한 자본주의적 발전에 따라 쿠웨이트에서도 민족주의의 풍조가 일기 시작하자 중동 최대의 석유 산지의 상실을 두려워한 영국은 쿠웨이트 왕족과 타협하여 1960년에는 우선 사법권과 통화 관리권을 쿠웨이트에 넘겨주고, 마침내 1961년 6월 ‘1899년 조약’을 폐기하였다. 이로써 쿠웨이트는 외교권을 포함한 독립주권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1962년 11월 신헌법을 공포하였다.3. 정치와 경제 발전 현황사우디 아라비아 - 정치체제는 정교혼합정체로서 국왕은 왕인 동시에 종교상의 수장이다. 왕과 왕족회의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특히 황태자의 발언권이 강하다. 성문헌법은 존재하지 않고 정당도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정치 발전이 더딘 상태이다. 사우디는 왕정의 유지와 석유 자원의 보호, 그리고 이슬람교 종주국으로서 이슬람교 문화를 수호한다는 국가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대내적으론 공포정치에 기반을 두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는 상태이다. 대외적으론 이란·시리아·리비아 등 아랍 급진 세력의 선동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경제는 석유의 생산과 수출이 산업의 중추역할을 담당한다. 농업은 불리한 자연조건 때문에 저조한 편이며, 식품의 약 70%를 수입에 의존한다. 공업은 GNP의 약 1/4을 차지하며, 1970년대 중반 석유개발과 함께 시작되었다. 따라서 주요 수입 품목은 공산품과 식료품 등이며, 수출 품목은 석유화학제품 및 원유 등이다. 사우디 경제의 가장 큰 목표는 OPEC을 통한 단일유가 책정과 중동 지역 내부의 화합이다. 이를 위해 중동 지역 경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이슬람교의 종주국으로서 성지순례 등을 통한 관광산업도 매우 발달하였다.쿠웨이트 - 쿠웨이트는 입헌군주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수장 일족을 정점으로 하는 봉건적 지배제도의 성격이 짙다. 수장은 국가원수가 되며 세습제로 입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에 이르는 막강한 권력이 수장에게 부여되어 있다. 쿠웨이트는 걸프 아랍국에서는 유일하게 명실상부한 의회를 보유하고 있다. 의회는 단원제이며, 의석 50석, 임기는 4년이다. 최근 의회 내에서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적으로는 타 아랍 국가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온건한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본래 외교에서 비동맹 중립외교를 표방했었지만 걸프전 이후 안전보장 및 대 테러를 최우선시하면서 친미노선으로 돌아섰다.쿠웨이트 경제는 석유산업에 의한 단일경제 국가이다. 국민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만 산업발달에 의한 것이 아닌 석유무역에 의한 수입이므로 빈부의 격차 또한 매우 크다. 쿠웨이트의 최근 경제 목표는 석유의존도를 낮추고, 공업화를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석유정제, 화학비료, 건설자재 공장 등이 들어서고 있다. 또한 금융입국을 위해 금융기관 정비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4. 정치 경제 발전의 성공여부 및 향후 비전사우디 아라비아 - 사우디의 정치발전은 현재 초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적인 세습적 왕정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억압하는 공포정치가 자행되고 있다. 또한 지배층 내부의 부패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견제할 만한 기구가 존재치 않아 더욱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나라 출신의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의 존재는 매우 위협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공공연히 부패한 사우디 왕정에 대한 전복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 이슬람 국가와의 관계 설정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사우디는 세습적 왕정체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석유를 무기로 한 왕정 체제가 미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지배층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향후 사우디의 정치 발전 전망은 매우 어둡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사우디의 경제는 고유가를 기반으로 한 호황국면이다. 그러나 석유산업을 제외한 공업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회간접자본 시설 또한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는 지금의 고유가를 통해 축적된 자본으로 서둘러 공업화를 진행시켜야 한다. 몇 십 년 후, 석유 자원이 고갈된다면 사우디의 경제는 악화일로로 치달을 것이 자명하다. 때문에 최근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부문의 집중적인 투자는 본받을 만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사우디 또한 특화시킬만한 산업을 선정하여 집중 육성, 고유가 시대 이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체적인 시도가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현재 단계는 초보이며, 향후 전망도 그리 밝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쿠웨이트 - 쿠웨이트의 정치발전은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쿠웨이트는 입헌 군주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실상은 사우디와 크게 다르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걸프 아랍국에서 유일하게 의회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희망적이다. 특히 걸프전 이후 기존의 왕정 인물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고 야당의 세력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향후 정치발전의 전망도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안보문제일 것이다. 워낙 작은 소국인데다가 안보의 상당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경우가 상당히 잦을 것이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실각하면서 위협이 감소하였지만, 불안정한 아랍의 현 상황을 지켜볼 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때문에 1994년부터 사우디와의 병합에 대해서 논해지고 있다.쿠웨이트의 경제 발전은 일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석유수출로 인한 막대한 수입을 도로, 항구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투자하여 잘 갖추어져 있으며, 국민을 위한 종합적인 사회보장제도도 발전돼있다. 일찍부터 무역, 투자의 대외개방을 추구해왔으며 최근엔 금융부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의 향후 전망 또한 밝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