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로마사]팍스 로마나의 마지막 왕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 주제 선정의 이유“만일 세계사에서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또 번영했던 시기는 어느 시기였는가를 질문 받는다면, 사람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아마 도미티아누수 황제의 사망(96 년)부터 코모두스 황제 즉 위(180 년)까지의 시기를 들 것이다(네르바 황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이르는 이른바 5 현제(賢帝) 시대이다). 이때는 광대한 로마제국의 전 영토가 덕과 지혜로써 지도된 절 대권력 밑에 통치되고 있었다."[로마제국의 쇠망사, 1 권, p 123. 에드워드 기번]“로마에 견줄 나라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 다” 그리스출신의 로마 역사가인 폴리비우스는 이렇게 말했 다. 로마는 역사적으로 가장 넓은 영토-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있듯이-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1천년 혹은 그 이상 지중해세계만이 아니라 유럽을 지배하면서 찬란한 문화를 창조했다. 로마는 역사상 어느 민족보다 관대한 영토, 강력한 국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서양세계의 ‘영원한 도시’가 되었고 명실공히 세계를 제패한 국가로 남았다. 이 유구한 역사 중 단연 번영의 절정기는 트라야누스(98~117), 하드리아누스(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 그리고 앞으로 언급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의 5현제시대라고 하며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라고도 부른다. 이 시대의 제위는 세습되지 않았고 원로원 의원 가운데 가장 유능한 인물이 황제로 지명되었다. 5현제 시대의 로마는 제국의 최전성기였다.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로마인도 그리스인도 모두 그 100년을 ‘황금시대(saeculum aureum)’라고 불렀다.이 중 앞으로 다룰 황제는 5현제의 마지막 왕으로, 로마 번영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쇠락과도 맞닿아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이다. 왜 하필이면 이 왕을 주제로 삼을 생각을 했을까? 역시 쇠락 직전의 마지막 왕이기 때문일까? 거기다 쇠락 직전이면서도 평가가 무지 높아서렵 거의 결실을 맺고 있었다."영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코모두스는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계속 전쟁을 하고 있었으며, 그를 완전한 후임자로 임명한 후에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것이다.177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15세의 코모두스를 공동 통치의 파트너로 선언하였고 황제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중에서 전통적으로 한 사람만이 맡던 '최고 제사장'의 직위를 제외하고는, '최고 통수권', '호민관 특권', '병사들에게 임페라토르라고 불리 울 수 있는 특권' 등이 주어졌다.또한 제위 계승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다른 경쟁자(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재위 기간동안에 여러 자녀들을 두었지만 성인이 될 때 까지 무사히 자라난 것은 코모두스 왕자1명과 공주5명 정도였다.)도 없었기 때문에 코모두스의 자리는 매우 탄탄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실제 후대의 역사서에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죽음이 타살이었다는 이야기는 언급되어있지 않다. 유일한 예외라면 디오 카시우스의 저술이지만 이 경우에도 황제의 시의가 코모두스의 총애를 받으려고 황제를 독살한 것 같다는 소문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 이러한 픽션들을 첨가한 것이다.그래서 잠자리에서 아버지의 입과 코를 눌러 질식사시키는 아들은 아주 극적이기는 했지만 반면에 실제 사실과는 너무 달라 역사물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예술로서의 영화가 과거를 재해석 할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새롭게 뒤바꾸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어린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Marcus Annius Verus)마르쿠스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의 영향은 더 컸을 것이다. 마르쿠스는 그의 ‘명상록’에서 어머니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어머니에게서는 겸허와 인덕을 배웠으며, 나쁜 일에 손을 대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부자들의 습관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생활방식을 배웠다.”그의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아들의 양육을 여자 노예들에게 맡기고 사교 생활에만 보인다. 또한 황제가 된 뒤 로마의 전통을 중시한 것도 소년 시절의 교육과 체험이 낳은 열매인지 모른다.12세의 마르쿠스는 그 당시 이미 그리스 철학에 푹 빠져있었나 보다. 그 당시 그는 대화 기법을 배우면서 그보다는 오히려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활방식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할 때는 일부러 거친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밤에 잠을 잘 때도 그 차림으로 맨 바닥에 누웠다. 이를 보다 못한 어머니의 간청으로 이 고행은 며칠 만에 끝난 모양이지만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철학에 대한 그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마르쿠스를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단순히 중신의 손자로서가 아닌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래서 황제는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마르쿠스의 성(姓)인 ‘베루스’의 최상급 표현인 ‘베리시무스(Verissimus)’를 소년 마르쿠스에게 별명으로 붙여주었다.15살이 되면 로마에서는 라틴어로 ‘토가 비릴리스(toga virilis)’라고 부르는 성년식을 치르고, 소년 시절의 투니카 대신 토가를 입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을 축하해준다. 마르쿠스가 이례적으로 상당히 어린 나이에 이런 저런 직책을 가졌었지만 성년식마저 앞당길 수는 없었나보다. 대신 성년식이 끝나자마자 마르쿠스의 약혼이 결정되었다. 약혼녀는 차기 황제의 딸이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마르쿠스에게 차기 황제와 차차기 황제의 통치를 옆에서 도와주고 협력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남을 밀어내면서까지 위로 올라가는 짓은 죽어도 못하는 성품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성년식을 마쳤지만 아직 15세, 공부가 끝나기는커녕 이때부터 마르쿠스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더욱 충실해졌다. 선생님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지시에 따라 선발되었다고 한다. 이는 황제의 마음속에서 소년 마르쿠스의 자질에 대한 평가가 나날이 높아진 것을 보여준다. 이 시대에는 능력만 뛰어나다면 출신지 같은 것은 거의 상관없었던 것 같다. 마르쿠스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영토의 각지에서, 속주에서 조차 하나는 ‘내각’의 상임위원이 된 것이었다. 수도를 자주 비운 하드리아누스 황제와는 달리 안토니누스 시대에는 제국 통치의 실무를 책임지는 ‘내각’을 황제가 주관했다. 황제 이외에 두 명의 집정관, 그해에 재무관이 있으면 재무관도 내각의 일원이 된다. 나이가 어려도 차기 황제인 이상 정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안토니누스의 생각과 마르쿠스에 대한 대우는 원로원 의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권력을 독차지하지 않고 후계자 육성에 힘쓰는 현명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방식의 대상이 된 마르쿠스에게는 쉴 틈도 없는 날들이 시작된 것을 의미했다.로마인은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여하튼 그래서 원로원 회의 같은 것들도 오전에 열린다. 회의가 없는 날이면 마르쿠스는 개인교수들의 집으로 달려가 수업을 받는다. 하루를 ‘일’과 ‘여가’로 양문하는 로마인은 교사들도 오전에만 일했기 때문이다. 오후에도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경기장에 가서 체력을 단련할 시간이 없다. 권력을 독차지하지 않는다는 호평을 받은 안토니누스는 황제의 임무도 마르쿠스에게 넘기고 자신은 느긋하게 산책을 즐겼다. 그래서 마르쿠스가 정말로 좋아하는 학문인 철학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은 밤뿐이었다. 이런 생활이 건강에 좋을 리가 없었다. 이 무렵부터 이미 느꼈던 ‘속쓰림’은 죽을 때까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따라다니게 된다. 하지만 건강을 회목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마르쿠스는 철학을 너무나 좋아했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년 3월 6일,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질서있는 평온’이라고 평가받은 치세의 종막에 어울리는 평온한 죽음이었다. 유언으로 황제의 침실에 놓다두도록 되어 있는 ‘행운의 여신’ 황금상을 마르쿠스의 침실로 옮기라는 말을 남겼다. 마르쿠스에게 제위를 물려주겠다는 확실한 의사 표명이었다.황제 취임을 요청받는 날, 마르쿠스는 원로원의 의원들을 놀라게 한다. 황제 취임을 동생인 루키우스와 나 평화로워서 역사가들이 적을 것이 없다고 푸념할 정도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이유일까? 역사가들의 일관된 평가는,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성실하게 전력을 다하여 난제에 대처한 현명한 왕”이라는 것이다. 즉 마르쿠스 아우렐리우느의 치세는 불운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재지변 : 기근과 홍수맨 먼저 닥쳐온 것이 흉작이었다. 161년, 예전같으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여름에 자주 비가 내렸다. 당연히 농작물 수확에 영향을 주었고, 밀은 전멸하고 과일이나 채소같은 농작물도 큰 타격을 받았다. 기근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수도 로마까지 몰려와 갓 황제가 된 두 사람은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엎친데 덮친다고 하던가. 가을로 접어들자마자 테베레 강이 범람했다. 원래 지형 상 아무리 테베레 강의 강둑을 정비하는 담당관을 두어도 제국의 수도 로마는 홍수와 인연을 끊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특히 마르쿠스 황제의 치세 첫해에 일어난 홍수는 정도가 심했던 모양이다. 공공 건조물이 붕괴되지는 않았지만, 물이 다 빠질 때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렸다.엎친데 덮치고 또 한번 덮쳐서, 그 문제도 아직 해결되기 전에 오리엔트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동방의 전운 : 파르티아 전쟁로마와 유프라테스 강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파르티아. 파르티아 왕은 로마 황제의 교체기를 로마로 쳐들어갈 좋은 기회로 생각했을 것이다. 마르쿠스와 루키우스는 긴급 대책을 세울 필요에 쫓겼지만, 둘 다 군사 경험이 전혀 없었다. 선제 안토니누스는 마르쿠스에게 중앙 정치만은 충분히 경험시켰지만, 그 체험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충분했다. 이것이 마르쿠스에게 결정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왜 안토니누스는 17세부터 40세까지의 한창 나이의 마르쿠스를 곁에만 붙잡아둔 채 제국의 속주를 체험시키지 않았을까?트라야누스 황제의 동방 원정 이후 반세기 동안이나 로마는 ‘황제 출정’으로 까지 몰고 가는 본격적인 전쟁사태와 무관하게 지내왔다. 하드리아누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 .
    인문/어학| 2005.10.07| 10페이지| 1,500원| 조회(1,069)
    미리보기
  • [일본문화]일본연구 - 오타쿠
    1. 오타쿠의 정의오타쿠는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하여 집착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광기(狂氣)가 있다는 뜻으로 낚시광 바둑광 골프광 등을 사용하였는데, 그들보다 더욱 깊이 빠져들어 있는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부른다. 특정 분야에만 관심을 가져, 일반적 상식을 결여한 사람으로 보는 부정적 이미지도 지니고 있다.그러나 무언가를 좋아하는 팬이나 마니아보다 훨씬 더 많이 좋아하여 득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키는 오타쿠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전문가를 뛰어넘어 비평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진다.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독특한 대중문화 창조집단인 오타쿠는 폐쇄적이고 전문적인 일본적 집단이기도 하다. 일본 대중문화 속에서 오타쿠적 요소가 담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인기를 얻자 하위문화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오타쿠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2. 오타쿠의 탄생오타쿠란 특정한 고유명사나 일반명사로부터 유래된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를 만든 스튜디오 뉴에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실로 오타쿠들이 동경하는 대상이었고, 그들이 일본 SF대회에 몰린 팬들 앞에서 서로를 오타쿠 라고 불렀는데, 이미 이들의 광신도였던 다른 팬들이 이를 흉내내게 되었다. 정보 교환의 필요성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은 오타쿠들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가벼운 경칭이기도 한 오타쿠 란 단어가 무처거 편리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도 서로를 오타쿠 라고 부르게 했다. 하지만 1982년 여름부터 SF 팬들끼리 서로를 오타쿠라 부르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로 돌아선다. 오타쿠 라는 말은 이미 이들 속에서 차별적인 용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오타쿠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게 된 것은 88~89년 도쿄(東京)와 사이타마(埼玉)현에서 일어난 연속 소녀 납치, 살해 사건을 통해서 였다. 이 사건을 통해 오타쿠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살해한 소녀의 유골을 부모에게 우송하는 등 엽기적 사건의 범인인 미야자키 쓰토무(宮崎勤ㆍ당시 26세)의 방은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로 가득 차 있었다. 언론은 이를 오타쿠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였고, 이 때부터 일반인의 머리 속에 오타쿠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3. 오타쿠 문화의 저력대중문화는 일명 대량 판매, 대량소비이며 일방적인 문화이기도 한다. 문화를 만들어내고 일방적으로 대중은 그를 주입받기만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쌍방향으로 문화가 전파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수준은 미약한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오타쿠 라는 존재는 눈여겨볼 만 하다.앞서 말했다시피 오타쿠는 단순히 매니아가 아니다. 어떤 분야를 좋아하고 그에 따라 수집을 하다가 급기야는 연구를 시작한다. 단순히 수집을 하기 보다 분야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그 분야에서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없는 자리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평의 수준을 뛰어넘은 사람들이 안노 히데야키나 이타노 이치로 등이다. 이들은 본인들 스스로가 오타쿠였음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으며, 오타쿠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일례로 이타노 이치로의 경우 오토바이에서 로켓이 발사되는 것을 보고, 그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고 실험을 한 결과 이타노 서커스 라고 일컫는 카메라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안노 히데야키의 에반 게리온 은 가히 오타쿠 문화의 정점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맨 처음 방영되었을 때에는 애니메이션 광인 일본인들도 이해 못할 만한 스토리에 그 시청률은 5~6%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으나, 에바 종영이후 새로운 것, 궁금한 것에 목말라 하던 오타쿠들의 표적이 되어 연구, 분석되고 현재까지도 90년대 애니메이션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이다.평준화된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탈출구로 삼은 만화, 애니메이션을 평생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오타쿠 들의 공통적인 특징일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른 직업을 하게 된 후에도 일명 컬렉션 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은 크리에이터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일본의 서브 컬쳐라 일컬어지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된다. 1996년 2월 25일자 일본 경제 신문 칼럼 미디어 앵글 에서 평론가인 사카야타 이이치가 긍지넘치는 문화로 획일화의 벽에서 바람을 이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본이 가진 저력은 바로 오타쿠들에게서 나온다고 역설하는 사카야타 이이치의 말은 오타쿠의 저력을 말해주고 있다.일본인은 세계가 일본을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좋게 평가한 전통 풍속화만을 가지고 일본 문화라 여겨 왔는데 과연 그럴까? 만화야말로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문화인 것이다. 바야흐로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면 일본 내에 만화와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재미있는 회사들이 속속 생겨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제 세계로 퍼지는 일본 만화가 관리 교육과 관료 문화로 꽉 막힌 일본의 획일화된 벽에 바람구멍을 뚫어 주기 바란다.4. 오타쿠 문화의 한계일본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시장의 규모가 크며,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세 가지 각 산업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공존하는 것도 배워야 할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시적인 결과일 뿐이며, 속을 들여다 보면 조금 다르다. 만화를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지만, 그 층이 나뉘어 있어 일정한 수위에 도달하면 그 이상은 시장이 커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에반게리온 의 경우 TV시리즈가 끝나 후 OVA로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타쿠 시장에 한계지워져있어 대중적 인기를 끈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등의 판매 수입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실정인 것이다. 한 번 오타쿠의 관심을 끌게 되면 장수를 하게 되어 언제까지나 상품이 팔릴지도 모르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이 바로 오타쿠 문화가 가진 비극이라 할 수있겠다.또한 현대 일본에서는 오타쿠가 설 자리가 있는 지 의심스럽다. 오타쿠들은 개인의 취미로 만족하기도 하지만, 상당한 수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가라오케 등의 산업으로 진출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그들은 대부분 크리에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다. 창작을 필요로 하는 산업에서 크리에이터란 가장 중요한 존재이며, 발전가능성을 쥐고 있는 것 또한 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데자키 오사무 의 영향인지 크리에이터들을 괄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싼 값에 납품을 하기 위해 크리에이터들의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일본의 만화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지만, 그 원동력인 크리에이터들은 찬밥 취급을 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크리에이터가 찬밥 취급을 받는 상태에서 아무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오타쿠 들이라 해도 그 산업에 발을 디딜 것인가는 의문이다. 혹 가이낙스 와 같이 오타쿠가 세운 회사라면 구미가 당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이낙스 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애니메이션을 살펴보면 그 것들은 오타쿠를 위한 오타쿠의 애니메이션일 뿐, 대중적인 취미를 만족시켜 주고 있지는 못하다. 결국 크리에이터를 무시하는 현 풍토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나 일본이 만화 강국으로 남을 수있을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5.10.07| 4페이지| 1,000원| 조회(373)
    미리보기
  • [미국시]로버트 프로스트와 Home Burial 평가A좋아요
    1.프로스트의 일생먼저 담장 고치기 를 발표한 조에서 프로스트의 일생을 자세히 설명하였기 때문에, 저희 조에서는 Home Burial과 관련된 일화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살피고 넘어가고자 하였습니다. 프로스트 본인이 말하길, Something in me refuses to take the risk angrily refuses to take the risk of seeming to use grief for literary purposes.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희는 이 말을 해석·토론해 본 결과, 내 안의 무언가가 문학적인 목적으로 슬픔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을 거부케 한다 라고 의역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찾아본 대부분의 정보 속에서 이 시를 프로스트 개인사와 결부시켰기 때문에, 프로스트의 일대기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로버트 프로스트는 1874년 3월 26일 서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고, 1885년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 동부로 이주한 후, 영국에 건너간 시기를 제외하고 계속 미국의 동부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1894년 뉴욕의 문학 일간지를 통해 처음 시를 발표하지만, 시집을 내고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것은 1913년 38살에 영국에서 소년의 의지-A Boy's Will'을 출간하면서 부터입니다. 저희가 발표할 Home Burial은 1년 후인 1914년에 발간된 보스톤의 북쪽 North of Boston'에 실린 시입니다.특히 Home Burial과 관련하여, 그의 개인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두 캐릭터(등장인물)가 있는데, 그들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프로스트는 1895년 엘리노어 화이트와 결혼하여 이후 여섯 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이 중, 첫째 아이 엘리오트는 1896년에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4살이 채 되기도 전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Home Burial은, 프로스트가 자신의 아이를 잃은 아픔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낸, 그리고 동시에 가장 슬픈 시라고 합니다. 마치 속에서, 자신의 성격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프로스트 시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프로스트는 시어에 일상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현대 시인들은 대부분 일상어를 시 속에 사용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적 시어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프로스트의 일상어를 사용한 시는 이러한 당대 모더니스트의 열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프로스트의 시어는 소박한 구어체로, 어려운 어휘가 없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Home Burial 역시 일상적인 대화에서처럼 쉬운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이러한 시어의 선택 등, 프로스트가 시를 쓰는 방법은 당시에 있어서 혁명이었습니다. 비평가 깁슨(Gibson)은 프로스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어휘를 시어로 승화시켰다. 다른 시인이라면 평범한 이야기로 취급하였을 단순한 사건을 의미심장한 시로 변화시켰다 고 평하였으며, 다른 비평가는 그의 시가 "정확한 지식, 명석한 관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실생활의 모든 면에서 발견해 내는 무한한 즐거움"의 소산이라고 말했고, 또한 운율이 자연스럽다는 점을 높이 칭찬하였습니다.3.Home Burial에 들어가기에 앞서이 Home Burial은 극적 독백이라는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쉬운 단어 선택 등 프로스트의 시가 일반적으로 지니는 기술 방식이 잘 드러난 시입니다. 거기에 프로스트의 사적인 비극과 결부된 시로, 제목인 Home Burial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자택 내의 무덤이라는 뜻과 가정생활이 무덤임을 추측케 합니다.저희는 번역과 자료를 구하던 중, 도서관에서 프로스트 시선(詩選) 번역집을 찾았습니다. 그 번역집에서 Home Burial의 번역 제목은 슬픔은 햇빛처럼 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조는 제목 번역을 두고 토론을 했습니다. 시 속에서 햇빛이 언급된 곳은 한 곳으로, 남편이 최초로 아이의 무덤을 두고 묘사하는 말 중에 있습니다. 그 표현에서 따온 것이며, 동시에 햇빛은 항상 곁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이 시의 슬픔을 전남편은 드디어 그 대상물을 보았다고 이야기 하면서 전에 왜 자신이 보지 못했는지 의아해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wont라는 단어를 썼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wont는, 정립된 습관, 평범함 또는 보통의 것으로 정의된다. 즉 이 표현을 통해 남자는 대상물(무덤)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 단지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4// So small the window frames the whole of it.Not so much larger than a bedroom, is it?남자는 계단을 오르며 아내의 감정 세계로 접근하려 하지만 아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는 계단을 올라 그녀에 다다름으로써, 그녀의 공감을 얻어내려 합니다. 너무 작아서 창문으로 다 보이는 것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26// There are three stones of slate and one of marble,Broad-shouldered little slabs there in the sunlightOn the sidehill. We haven't to mind those.But I understand: it is not the stones,But the child's mound ─"30// "Don't, don't, don't, don't," she cried.남편은 창문을 통한 광경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보여 지지만 무덤에 대한 세심한 묘사는 무감각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가족의 죽음들이 그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왔음을 암시합니다.이때 don't가 무려 네 번이나 반복되며, 메아리처럼 울립니다. 프로스트는 친구인 Sideny Cox에게 네 개의 don't는 그 속에 궁극의 것이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 행동은 결정적으로 괴로움을 표출합니다. 아내의 말의 시작을 확대함으로써 실제 그녀의 첫 번째 두려움 속의 숨막힘(그런 상태 속의 축소된 말)을 들을 수 있다. 이후 그녀의 말은 빠르고 반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좋지 못하다고 말을 합니다.56// She moved the latch a little. "Don't ─ don't go.Don't carry it to someone else this time.Tell me about it if it's something human.59// Let me into your grief. I'm not so muchSomething human'이라는 표현에서, 남편은 자신이 아이에 대한 슬픔을 얘기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독자에게는 남편이 아내의 슬픔의 원인이 되는 무엇인가를 했었다는 의심에 대한 단서를 줍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이 했을지 모르는 일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떠나려는 움직임을 보여줌으로, 그들의 상실감에 대해 남편이 말할 권리를 부정합니다.60// Unlike other folks as your standing thereApart would make me out. Give me my chance.집을 나가는 행위는 더 이상 감정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남편은 막으려 합니다.62// I do think, though, you overdo it a little.남편의 Overdo라는 표현에서, 남편이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63// What, was it brought you up to think it the thingTo take your mother-loss of a first childSo inconsolably ─ in the face of love.66// You'd think his memory might be satisfied─"남편은 그녀의 슬픔이 과도하다고 주장합니다. 아이의 죽음과 아내의 그치지 않는 슬픔 위로 남편의 마음 상태가 묘사됩니다. 남편이 그녀를 돕길 바란다 해도, 그녀의 감정 상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아내가 다른 사람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내가 첫 아이를 rst laugh I ever laughed.90// I'm cursed. God, if I don't believer I'm cursed."with the stains on your shoes/Of the fresh earth from your own baby's grave 남편은 일상적인 행동대로, 즉, 흙을 밟은 발로 집 안에 들어옵니다. 심지어 그 흙은, 아이의 무덤가에서 밟은 흙입니다. 소홀한, 넋을 놓은 행위는 완전히 아내를 괴롭혔음에 틀림없습니다. 신발에 오물을 묻히고 집으로 들어오는 행위는 과거 일상생활 속의 단순한 사실로 아내는 그가 묻히고 들어온 오물을 털어 내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묻은, 매장에 대한 행위와 겹쳐져 미래에는 고통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오물, 즉 흙을 털어 내는 것을 아이의 일부를 털어 내는 것 같이 생각한 것입니다.또한 남편은 이어, 일상사에 대한 얘기합니다. 이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는, 남편의 삶과 죽음의 과정에 대한 결합인 동시에 그의 고통을 간직하는 방법임을 보여줍니다.남편은 아이의 죽음과 그에 대한 아내의 외침에 대해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남편의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91// "I can repeat the very words you were saying'Three foggy mornings and one rainy dayWill rot the best birch fence a man can build.'Think of it, talk like that at such a time!What had how long it takes a birch to rotTo do with what was in the darkened parlor?97// You couldn't care! The nearest friends can go울타리를 생각하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이해를 보여줍니다.울타리처럼 확실하고 빠르게 부패할 운명에 놓여있다는 것으입니다.
    인문/어학| 2005.10.07| 12페이지| 1,500원| 조회(1,425)
    미리보기
  • [미국시]에밀리 디킨슨의 시 3편 집중분석 평가D별로예요
    영혼이란 제 머물 곳을영혼은 제 머물 곳을 선택한답니다그리고나선 - 문을 닫아버리지요-영혼의 그 거룩한 다수에게는-더 이상 선물 따위는 필요없답니다 -냉담하게 - 그녀의 낮은 문 앞에 와 서는 마차를바라볼 뿐이랍니다.냉담하게 - 비록 제왕이거적 위에 무릎을 꿇더라도 말이지요-나는 그녀를 알고 있습니다 - 그 광대한 나라에서단 하나 선택하곤 -그리고선 - 관심의 문을 닫아버리는 영혼을.-흡사 바위처럼 말이죠-1. Rhyme : abab cdcd efef 의 각운을 이룬다.2. 감상- 칩거하는 여인(아웃사이더): Emily가 1862년(본격적으로 은둔생활에 들어간 시기)에 쓴 시.- 죽음의 단호함3. Soul- 독일어의 Seele (여성명사)- Emily 자신을 상징. 분리된 자아(ex. 내용은 다르지만, 이상 거울 처럼 her과 I로 분리 되어서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영혼(기독교적 의미):기독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고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고, 악한 일을 하고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함. 에밀리가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음 에도 불구하고 30세가 되던 1960년부터 교회와 완전히 인연을 끊는 것으로 미루어 보 아, 자신의 사후세계는 신에 좌우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포함 된 것인지도...* One: 세속적인 삶을 보상해 줄수 있는 그래서 이후 신성한 다수 로 작용하게 될 뮤즈 일 가능성도 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에밀리에게는 고독속으로 움츠러드는 삶의 방식과 시에 대한 헌신과 연인의 이미지가 동시에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One을 대문자로 나타냄으로서 단절을 확고히 한다.4.시 속의 이야기- The Querulous Princess 설화 : 요란한 전차를 타고 높은 성문으로 들어오는 왕자들 을 젖히고, 낮은 문으로 들어와 머리숙여 배알을 간청하는 사나이가 공주를 차지한다는 이야기.- The King and the Beggar Maid 설화: 예언을 통해 거지여인이 배필임을 안 왕이 그 여인의 초라한 방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구혼한다는 이야기.5. etc.: 마지막 연의 단어와 음의 교묘한 배치- 폐쇄적 느낌 유발개방의 느낌을 주는 음은 ample 과 valve 의 모음 [ ] 뿐이며, nation, one, then, attention, stone 의 자음 [n]은 입 모양을 폐쇄시켜 시인이 선택한 고독을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것으로 느끼게 한다.Wild Night - Wild Night (밤, 거친 밤)밤, 거치른 밤그대와 함께라면거치른 밤이우리에겐 낙원이리!포근한 항구에 안긴 가슴에야바람이 무슨 상관이랴나침반은 무엇 하며해도는 무엇하랴에덴에서 노를 저을 수 있다면아, 바다!이 밤 당신한테 닻을 내릴 수 있다면!⊙ 대부분의 비평가는 erotic한 시,라고 판단함한편(connelly, faris)으로는 죽음과 절망을 노래한 시라고도 봄.-대부분의 비평가는 erotic한 시,라고 판단함-한편(connelly, faris)으로는 죽음과 절망을 노래한 시라고도 봄.1) 통계적으로 night, eden, sea 의 세단어가 들어간 시는 사랑시의 비율 적음.2) night 의 이미지를 사용한 150편 시 중 오직 3편에 해당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보기보다 30편 이상이 해당되는 절망의 상징으로 보는 편이 옳다, 라고 주장.-그 밖에 miller와 sewall은 영원한 행복이 있는 마음의 고향,을 그리는 시라고 해석했음.그러나 1980년까지의 30편이 넘는 관련 비평 가운데 7편을 제외하면 모두 에로틱한 시라는 데 의견을 같이함.그들 가운데 porter나 steger처럼 남녀간의 사랑 이외에 영혼의 불멸을 노래하는 것이 복합적인 주제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요는 이 시에서 i 가 그리워하는 thee"가 이성의 인간이냐 god이냐에 관계없이 묘사자체는 성애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시인은 여성이지만 시속의 'I'는 남성적.-흥미 있는 것은 시인은 여성인데도 시 속의 "i 는 남성적이다. 상대방은 항구이고 자신은 그 항구에 자신의 중심부(heart)를 맡기거나 노질을 하거나 닻을 깊숙이 내리기(moor)를 바라는 것으로 보아 i"가 남성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에로티시즘이 가정법을 빌려 나타난 것은 실제의 체험이 아님을 말해줌.1연 - Wild night의 세 번 반복, 갈망의 강도와 함께 가슴 깊은 곳의 절망 반영.-시가 시작되면서 힘주어 강세 네 마디소리를 외친다. 그것도 같은 말을 두 번 외친다.wild 참고 견디기 힘들다, 는 의미고 night는 파괴와 생산이 동시에 일어나는 시간이니 합하면 격렬한 파괴, 소모의 시간이면서 뜨거운 생산의 시간이다 그 둘은 사실상 동의어이다.독자들이 숨 가쁜 외침에 놀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초조하게 기다릴 때, 함께 있기를 갈구하는 공허한 절규 (were I thee)가 들리고, 둘이 함께 있어 뜨거운 사랑을 꾸미는 신방(wild night)이기만 하면 바깥이 거칠수록(wild night) 더욱 호적하리라는 (luxury)기도가 이어진다.2연 - 가정법 사용으로 현실이 아닌 환상임을 말해줌.-(done with the +명사)의 병렬구조는 애인과의 환상적 결합이 주는 기쁨의 톤을 수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를 지배하는 가정법은 현실이 아닌 환상임을 말해주고, 주어 혹은 동사 혹은 주어+동사 부분이 생략된 것은 steger가 말하는 격정의 표현에 어울리는 즉흥성. 간결성이라는 효과를 얻는 외에, 3연의 ----와 -----처럼 독립성의 효과를 얻는다.3연 - rowing in eden" "oh, the sea" image의 독립성 효과.심층적으로 보면 1행은 앞연에, 3.4행은 독립하여 하나의 기원문 이룸.-3연의 경우 표층구조는 나타낸대로 하나의 문장이지만 심층의 수사적 구조를 보면 1행과 3.4행은 별개의 문장이 되어 1행의 의미는 앞 연에 걸치게 되고 3.4 행은 독립하여 하나의 기원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2,3연 - I 는 항구를 찾는 배가되고 상대는 항구가 되어, 바람과 나침방과 해도를 이용해서 상대를 찾아 헤매는 시간으로 되어있음. 아득히 먼 그러나 포근한 고향항구 에덴만 찾으면 바람도 해도도 다 버리고 에덴만에서 멋대로(wild) 노를 저으리라고. 그리고 한탄인지 경탄인지도 모를 탄사 (ah, the sea)를 토하고,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니 또 많은 욕심도 내지 않을테니 오늘 하룻밤만이라도 당신 에게 정박 하게 해달라고 노골적인 표현을 한다.감탄부호가 많으면서 시행들이 짧은 것은 감정의 분출과 절제하는 이성을 동시에 조화시키고 있고, 서도에 막연한 복수 nights로 시작해서 마지막엔 눈앞의 특정의 단수 tonight로 끝난 것은, 한없이 여러 밤을 임과 함께 보내기를 바라다가 마침내 오늘밤만이라도 좋다는 애절한 갈망으로 바뀜을 보여준다.⊙ Rhythm - 표면상 불규칙하여 흥분한 톤을 반영.그러나 심층적으로 규칙성을 이룸.이보격 리듬의 짧은 행들로 구성된 것이 격정의 표현에 어울림은 앞에서 밝힌바 이지만 둘이란 숫자는 이 시에 있어서만은 다른 의미 즉 에로티시즘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아니다.5행부터 11행의 moor"까지의 리듬이 강약약강으로 서로 마주보게 꾸며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런 해석이 가능함.연마다 i"의 상대가 되어줄 thee" 또는 그것의 동의어 port"가 출현할 때마다 리듬패턴이 이웃 행과는 다르다는 것도 관심을 끈다. 1연의 were I with thee" 2연의 to a heart in port" 3연의 "tonight/ in thee"가 모두 그렇고 특히 마지막의 경우 리듬패턴도 다를 뿐더라 foot수에 있어서도 아예 하나를 앞 행에 빼앗기고 in thee"만 남아 짝이 없게 됐다. 이렇게 thee"를 포함한 행마다 리듬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thee"를 생각할 때의 시인의 정서반응의 변화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음절수의 면에서 연을 거듭할수록 정형이 파괴되어 가는 것은 임에 대한 갈망의 강도가 높아져간 것과 일치한다.⊙ Rhyme - 1,3연 : 각운행이 모두 thee-luxury-sea-thee. exact(정확한) vowel (모음)rhyme.(i)를 통한 exact vowel rhyme을 이룸. exact한 면은 결합이 주는 희열을, 그리고 vowel의 면은 결합이 환상인 이상 공허함을 반영한다.2연 : "port" "chart"로 자음 운.port"와 chart"로 자음 운을 밟는 것은 결합 후의 편안함을 상징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완전운(라임)이 되지 못해서 역시 이 결합의 만족은 실재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There's a certain Slant of light[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비친다]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비친다겨울오후에.그것은 성당의 선율의 무게와도 같이짓누른다.그것은 우리에게 거룩한 아픔을 주지만우리는 상처자국을 발견할 수 없다.하지만 내면에서는 다르다.그 안에 의미가 있다.아무도 그것을 가르칠 순 없다. 아무도.그것은 봉인된(낙인찍힌) 절망.하늘에서 우리에게 보내는장엄한(절대적) 고통.그 빛이 올 때, 풍경은 귀르 frnldnf이고그림자는 숨을 죽인다.그것이 가면, 죽음의 얼굴에 어리는거리와 같다.
    인문/어학| 2005.10.07| 6페이지| 1,000원| 조회(1,998)
    미리보기
  • [우리인삼의이해]천년 인삼종주국의 위기- 서양삼이 몰려온다 평가A좋아요
    충격보고천년인삼종주국의 위기서양蔘이 몰려온다.지난 6월(2002년) 세계는 한국을 주목했다한국의 축구대표선수들은 한국의 국가적 생의 묘약 인삼을 섭취했다 -르몽드지.한국팀 스테미나의 원천은 고려인삼이다. - 마이니치 신문우리 인삼의 위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 인삼에 대한 효능을 세계 주요 언론에서도 주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보니 정작 우리나라에서 고려인삼을 위하여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삼은 반도체와 LCD에 더불어 한국의 10대 주력 상품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인삼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인삼 종주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창고에는 수출 재고품이 쌓여있었다. 세계 인삼시장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인삼 최대 시장 홍콩에 대량으로 진열되어 있는 인삼은 온통 서양삼 뿐이었다. 한국의 고려인삼은 손이 닿지 않는 천장의 높은 곳이나 바닥의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무려 10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내가 놀라웠다. 강의 시간에 물론 선생님께 듣기는 했지만 막상 이렇게 실제 홍콩 시장에 가서 현장 인터뷰 한 것을 보니 충격의 강도가 더 강했다. 왜 제목을 충격보고 라는 식으로 정했는지 충분히 알 듯 했다.고려 인삼은 잘 안 팔리고 화기삼이 많이 팔린다. 90%가 화기삼이고 고려인삼은 10%정도이다. 난 고려인삼은 세계어디에서나 알아주는 최고의 고급 인삼으로 알아왔다. 진짜 인삼은 우리나라뿐이라고. 그것은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인삼시장에서의 풍경은 참으로 어이없는 풍경이었다.수확이 한창인 캐나다 삼 농장을 카메라가 비추어주었다. 기계를 이용해 손쉽게 삼을 캐낸다. 수확은 거의 모든 과정이 기계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거의 모든 과정의 기계화로 인하여 농번기 외에는 두 사람이 관리하기 때문에 많은 인건비를 아껴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다. 이렇게 캐나다의 삼 가격은 고려인삼보다 삼분의 일에서 육분의 일까지 낮추어 질 수 있었다. 기계화로 가격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수공업을 고집하고 있다. 삼이 손상된다는 이유로, 전통을 이유로 말이다. 나도 그러한 전통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통이 우리 고려 인삼산업에 마이너스가 된다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그 전통을 우리 고려인삼에 플러스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우리나라 인삼산업 담당자의 현재 실정도 잘 모르고 있는 듯한 말이었다. 화기삼이 인삼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더 나은 발전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는 중국 삼을 경계해야 하고 위협이 된다는 그 말... 정말 답답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인삼산업 실태를 뒤집어 이제는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홍보 를 해야 한다. 우리의 전통을 플러스로 바꾸기 위해서는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나라 삼이 세계인삼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삼이 홍콩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가격 때문만이 아니다. 가장 싼 중국삼도 점유율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팀은 서양삼의 인기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신청을 했지만 캐나다와 미국에서 잇달아 거부한다. 왜 그런 것일까? 자기네가 퍼뜨리고 있는 고려인삼에 비해 화기삼이 우월하다는 소문은 낭설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일개 인삼상인이 아닌 협회씩이나 되는 곳이기 때문에 고려인삼에 관한 논문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콩의 상인들은 잘못된 낭설로 이렇게 믿고 있었다.수입된 서양삼 영양가치가 높다고 본다. 고려인삼의 효능이 서양삼만큼 좋지 않다. 일반적으로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고려인삼이 맞지 않다. 그와 달리 화기삼은 누구나 다 복용할 수 있고 별로 제한이 없다. 고려인삼은 열을 올린다.아아... 모두 수업시간에 배운 낭설들 아닌가... 사실 마지막 말인 고려인삼은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다는 말은 나도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태열 , 즉 아토피 라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확실히 양약이든 한약이든 안 먹어 본 것이 없다. 그래서 이러한 정보에 더 친숙해왔다. 그리고 고려인삼은 몸에 열이 많은 아토피안들에게 독약이라는 소리를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홍삼은 그러한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복용해도 좋다는 소리도 들어왔다. 이러한 소문이 낭설이었다니. 한의사조차도 인삼에는 열이 많다는 소리를 하는 현실이니 우리인삼이 세계시장에 낭설에 시달려도 할말이 없다. 하지만 이 강의를 하고 계시는 교수님 분들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인삼연구자 분들이 화기삼에 비해 우리 인삼의 우수성에 관한 논문을 떡 하니 발표하여서 세계 시장을 덮치고 있는 화기삼의 콧대를 꺾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갑자기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강의하시는 교수님 분들의 열의에 우리 고려인삼의 추종자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요즘에는 엄마는 물론이고 만나는 친구들에게 까지 강의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인문/어학| 2005.10.06| 2페이지| 1,000원| 조회(1,13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6
6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
  • A좋아요
    2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1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5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2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