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이효석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에 배웠던 메밀 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과,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사랑하는 까닭에’ 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사랑의 달콤함과 그러나 쓸쓸한, 그 양면의 조화로우면서도 부조화스러운 그런 느낌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첫 장을 여는 순간 간결한 듯 하면서도 괴이한 문체와 잦은 등장에 시선을 흩트리는 한자어에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글을 쓰는 작가의 의도도 쉽게 짐작되지 않았다. 한낱 수학공식 풀이도 정독할 정도로 책을 꼼꼼히 읽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였다. 몇 번을 책을 폈다 덮었다를 반복하던 끝에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냥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읽어나간 지 반쯤 되었을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책의 후반부에 가면서 그가 느꼈을 외로움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었고 그가 자연을 표현한 방식을 읽어가게 되었다.나는 정신을 책에 맡기듯이 읽어내려가며 어렴풋하게 느끼게 되었던 것들을 이효석에 대해 알아보고 다시 읽어가면서 작가 이효석과 공감하며 느끼게 되었다. 그 느낌들을 중심으로 아래에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어 보고자 한다.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편도 아니고, 글을 쓰는 재주도 없을뿐더러 문학작품에 대해 비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그래서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낀것이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인지는 물론이고 작가의 생각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Ⅱ. ‘사랑하는 까닭에’.1. 자연 예찬론자이효석은 자연을 느끼기를 좋아했고 자연을 표현하기를 즐거워했다. 그의 작품에서 표현되어지는 자연은, 바다, 산, 고개, 늪, 벌판, 구름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 경지는 ‘처녀해변의 결혼’ 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자연과의 합일을 꾀하는 것에 까지 이른다.“ 몸에 실 한 바람 걸치지 않고 유유하고 자유롭게 모래 위를 거닐었다 바닷물에 잠겼다 하면서 긴 날을 결코 무료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무료하지 않음은 나의 결혼에서 왔던 것이다. 나는 원시적 자태로 처녀해변에서 날마다 결혼한 것이다-. 태양과 바다와. 태양은 전신을 빈틈없이 쪼여주고 바다 또한 전신을 속속들이로 안아준다. ”- 처녀해변의 결혼, 「여성」, 1936.9위 작품에서 그는 처녀해변에서 태양과 그리고 바다와 날마다 결혼한다고 표현하였다. 그가 자연을 충분히 느끼고 자연과 교감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다른 작품에서는 하늘을 거룩한 존재로 표현하며,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자 만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효석은 이처럼 자연을 인간과 동일시하며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꾀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자연을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 표현하여 자연에 대한 이상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자연을 너무나 사랑하여 꽃을 장식하고 싶지만 마당에 피어 있는 꽃을 꺾을 수가 없어 꽃집에서 꽃을 사왔다.그는 계절을 표현하는 데에도 능했다. 그의 글 속에는 계절이 녹아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느낄 수 있듯이, 마치 내가 그 글 속에서 이효석과 함께 자연과 계절을 느끼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처녀해변의 결혼’ 을 읽고 있자면 나 또한 눈 앞에 한적하지만 햇살에 빛이나는 바다에 있다. 마치 하얀 백사장 위에 챙이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비단 내용전체가 계절의 느낌을 주어야 하는 것에 한하지 않는다. 단 한 줄의 문장이 있더라도 계절의 느낌을 오롯이 느끼게 해준다. ‘청포도의 사상’ 이라는 작품은 계절을 이야기하는 글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중간에 나타나는 단 한줄 ‘누르게 물든 잔디 위에 배를 대고 누워 따뜻한 석양을 담뿍 받으며 끝물의 포도밭을 바라보며 … ’ 에서 여름이 저물어가고 해가 저물어가는 그 날, 그 하늘, 그 빛깔, 심지어는 그 향기까지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이처럼 이효석은 독자로 하여금 계절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게 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가 삶의 급박함과 또한 변화의 그 반복됨이 너무나 익숙하여 자연스럽게 지나게 되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 한계가 있는 부분을 잘 다독여 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가 계절을 느끼는 데 있어 가을이 단지 쓸쓸하고 사색적인 계절이 된다는 것을 들겠다. 가을은 계절의 색이 쓸쓸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더 많은 색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는, 가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색색의 꽃들이 그 얼굴을 내밀며 자신의 모습을 뽐내는 것이 봄이라면, 그 꽃들이 그 아름다움을 자신을 돋보이게 해준 잎들에게 전해주어 잎들이 꽃처럼 빨갛고 노랗게 물이 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인 느낌에 한정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을 지극히도 아름답게 받아들였던 이효석이 가을의 모습을 단지 쓸쓸함으로만 표현했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2. 자유 영혼의 예술가그의 영혼은 가히 자유로웠다. 그는 외로움을 즐길 줄 알았으며 사색을 동경할 줄 알았다. 그는 피곤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음악이라고 여겼으며, 마음이 지칠때는 자연과 함께 그러나 홀로 사색하기를 즐겨했다. 자신의 마음속의 동경의 대상, 주로 자연을 그리며 마음을 쉬게 하는 법이 많았다. 도시의 거리에 있음을 불편하게 생각하였고 숲, 들판, 때로는 자연을 찾아 홀로 떠나 사색하는 것을 행복이라 여겼다. 자연이라 하여도 사람들이 요란한 해수욕장을 즐겨찾지 않았다. 그것은 고요하고 적막하거나 혹은 사색적이기 못한 까닭이었다. 나는 가끔씩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이나 정신없이 반복적인 일상이 지겨워질 때가 있다. 가슴이 답답해옴을 느끼게 되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헤드셋을 끼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아무런 소리도 없는 조용한 방에서 혼자 가만히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가끔 그러한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다. 그 시간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도 해소 되고 세상의 반복됨에 다시 적응하는 것도 쉽다. 이효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색을 느끼고 외로움을 자처하고 있지만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외로움과 사색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청포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포도가 영글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청포도는 보라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보라색이 됨을 기다리는 환상이 없는 것이다. 그는 환상이 위대해야 생활이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환상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종의 망상으로 분류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환상을 일상과 연결 지어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미 몇 십년 전에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을 한 것이다.이효석은 생각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자유로웠다. ‘처녀해변의 결혼’ 이나 ‘고요한 동의밤’ 에서도 그의 자유로운 행동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자연을 느끼며 몸에 실 한 바람 걸치지 않고 유유하고 자유롭게 모래 위를 거니는가 하면 구역질이 날 듯 하면서도 커피한잔을 마시기 위해 힘들 길을 가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은 바로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온 것이고 곧 그것이 그의 문장이 되는 것이라고 해도 마땅하고 할 것이다.그러나 자칫 이효석의 자유로움은 어쩌면 개인주의와도 상통하여 현실을 우회적으로 회피하려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활과 화단’ 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효석은 남의 일보다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법을 잘 몰랐다. 신문기사 1면의 일보다도 자신이 써야 할 작품정리와 그보다 더 가까이, 자신의 화단을 가꾸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움을 왜곡된 현실에 짓눌리기보다 취미나 예술, 사랑으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도록 나타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있다. 이효석이 성을 다루는 글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바람둥이 기질도 다분했다. 그러한 그의 성(性)적인 습성과 자연을 다루고 계절을 다루는 것에 치중되어 있는 그의 글들에서는 그가 사회에 억눌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하기에는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좀 더 직시적이거나 공감적이 아닌, 회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3. 외도의 귀재이효석은 외도의 귀재였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외도는 흔히 통용되는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과 내통하는 외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자연을 사랑하는 이효석은 항상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 포도주보다는 직접 담은 머루주를, 평양의 냉면이나 노티 보다는 어죽이나 짠지밥을 좋아하는 소박함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사치한 스포츠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키를 배우려고 계획하기도 하였다. 분주한 도시를 싫어하고 외로움을 즐기는 그도 때로는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아래의 거리의 건물과 시끄러운 모습들을 아름답다 느끼기도 하였고 사람들과 어울려 한동안을 수다를 떠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모습이 별난 일이라 생각이 들지만 이러한 부조화 또한 이효석이기에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이효석은 사람은 평생에 한 사람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랑관을 가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받는 이도 없는 ‘사랑하는 까닭에 - …… 에게 보내는 글발’ 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효석은 결혼을 하고나서도 그러한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사랑의 판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효석은 부인을 두고 다른 여인을 숱하게 만나왔으며 그 중의 모두가 사랑은 아니었다지만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이효석은 부인의 지병으로 부인과 사별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효석은 후회와 탄식의 참회를 하기도 하고 다음과 같은 글로써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비탄에 잠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01. 영화속의 파리영화속의 파리는 언제나 누구나 자유로이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도시로 등장하고 그들이 갈망하는 동경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할 때도 그랬다. 어느 날 우연히 늦은 밤 TV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손이 멈췄다. 그곳에서는 영화 ‘사랑을 부르는 파리’ 를 ‘파리지엔의 일상들과 파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따뜻한 영화’ 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늦은 밤과 그에 맞는 감성에 어울렸던 영화여서 그랬을까, 짧은 소개였지만 과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봉일 전부터 주변 영화관을 탐문했지만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서울 몇 군데 영화관이 전부였다. 영화 한편 보기에는 조금 수고스러움을 견뎌야 했기에 과제는 다른 것으로 하면 되고, 영화는 다운받아 보면 된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 영화를 처음 접한 그 순간부터 꽉 찬 스크린으로 파리의 모습들을 담아보고 그들의 삶을 느껴보고 싶었다.언제부턴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파리에 대한 일종의 망상인지 동경인지 모를 그런 환상이 있었다. 화려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따뜻함과 자유로움이 모두 공존할 것 같은 프랑스. 이 영화는 몽마르트 언덕과 에펠탑같은 파리의 관광엽서의 한면 같은 그런 파리의 모습이 아니라 파리의 뒷골목과 파리의 소소한 일상들이 살아있는 사실 그대로의 파리의 모습을 담은 그러한 영화였다.02. 사랑을 부르는 파리이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이다. 딱히 주연도 없고 그렇지만 딱히 조연도 없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영화 속에 그대로 드러나있다. 이 영화는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죽어가는 그가 가장 힘들지 않고 행복을 느끼는 시간은 바로 발코니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러다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있는 래티시아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고, 또한 중년의 건축가인 롤랭과도 짧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한편 엘리즈는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는 장을 알게 되고 호감을 가지게 된다. 장의 친구 프랭키는 카페에서 일하는 캐롤린을 좋아하지만 장난스러운 태도로 상처만 준다. 이렇듯 이 영화는 다양한 사랑이 등장하고 있다. 파리를 갈망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밀항하는 카메룬의 청년들도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죽지만 엽서속의 파리를 찾아온 청년도 있다. 빵집아줌마도 등장하여 수없이 잔소리와 수다를 늘어놓지만 결국은 그 모습에서 파리사람들의 파리에 대한 응집력이나 자존감을 엿볼 수 있다.이 영화를 두고 일부에서는 ‘프랑스판 러브액츄얼리’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리고 사랑이 소개가 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점이 있었지만 이 영화의 사랑은 훨씬 더 묵직한 질문과 철학을 던지고 있었다. 늘 사랑영화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과정과 사랑의 완성뿐만이 아니라 사랑과 함께하는 아픔들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극히 소박하고, 지극히 따뜻하다. 때문에 지극히 평범하기까지 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관객들도 존재하였지만 그러기에 나에게는 더욱 매력이 있게 다가왔다.03. 그들의 사랑엘리즈는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남편과의 이혼 때문일까, 사랑으로 받은 상처로 인해 엘리즈는 사랑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직업을 ‘사회복지사’로 설정해 놓은 것은 그녀는 여전히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어떤 암묵적인 설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엘리즈는 야채장사 장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여자로서의 나이 마흔의 사랑을 두려워하는 여느 일상의 사람들과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랑에 성공하는 아주 일상적이지만 희망적인 사랑의 모습을 표현한다.매일 새벽 물건을 받아오고 하루종일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이지만 그들에게도 사랑은 다를 것이 없다. 프랭키도 캐롤린도,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사는 젊은 여성들이 하룻밤의 육체적인 사랑을 위해서 그들과 만나 때로는 일회성이지만 사랑을 나누거나 옛 사랑을 기억하는 일들은 누구에게나 같다.롤랭은 중년의 남성이다. 여지껏 뜨거운 사랑한번 나눠보지 못했지만 어느 날 강의중에 우연히 학생인 래티시아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머리가 희끗한 교수와 아직도 앳된 얼굴의 학생이 사랑에 빠지고 성관계를 가지게 되는 일은 한국인의 정서와는 사뭇 달라 여타의 관객들에게는 자칫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어쩌면 사랑을 시작할때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이야기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04. 결코 비극일 수 없는.프랑스영화는 비극적인 상황들을 비극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또한 그것들로 인한 철학적인 사고를 나타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인 피에르는 심장병에 걸려 살 수 있는 확률이 40%밖에 되지 않는 비극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아픔을 통해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표현되었다. 또한 극중 캐롤린은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죽음으로 끝이 아닌 죽음을 통해서 쉽게 사랑을 하려는 다른 이들에게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결혼, 일상과 삶-영화 ‘스토리 오브 어스’ 감상문-이번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현대의 결혼과 가족' 이라는 교과명과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영화를 찾는 것에 가장 비중을 두었다. 사실 주된 주제가 가족이 아니더라도 많은 영화에서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소재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영화계의 거장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박쥐’, 봉준호 감독의 ‘괴물’, ‘마더’ 등의 영화에서도 가족을 그 소재의 일부로 다루고 있고, 최근의 ‘아내가 결혼했다’, ‘과속스캔들’ 등의 새로운 형태의 가족 영화들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가족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많은 영화들을 실제로 감상했지만 레포트를 핑계 삼아서라도 영화를 보는 듯이 아닌 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싶어 이 영화를 택하게 되었다.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하여 제작되는 다른 많은 영화들에 비하면 이 영화는 ‘재미없다’ 는 소리를 연발할 정도로 어떤 흥미를 일으킬 만한 요소도 없다. 전개는 물론 결말까지 빤히 보이는 시작도 ‘재미없음’ 을 더해준다. 그렇지만 영화를 끄지 않고 계속 보게 한 것은 아마도 현실과 너무 같아서 우리네 일상의 한 조각을 보는 듯한 느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얼마 전 시청자들의 엄청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종영한 KBS의 ‘사랑과 전쟁’ 이 너무 뻔한 불륜이나 고부갈등, 성격차 등을 문제로 결국은 이혼을 한다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열렬히 시청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이 영화는 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벤과 케이티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점점 지쳐간다. 벤은 늘 완벽하리만큼 생활에 계획적인 아내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점점 지쳐가고 자신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처음 신혼살림을 시작한 집이 철거되는 과정에서 소중한 추억들도 잃는 듯한 느낌에 마음 아파하면서 아내에게 그러한 마음을 전달하지만 아내에게는 그것을 받아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끊임없는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벅차고 지쳐가는 것이다. 그도그럴것이, 그녀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계획되지 않은 키스나, 계획되지 않은 잠자리 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미리 계획 해 놓은 집안일이나 아이들을 챙기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녀에게 언제나 계획을 앞서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러한 계획이 그를 옭아매는 사슬처럼 느끼게 된다.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 세끼가 그렇고, 바닥 청소가 그렇고 이틀에 한번 꼴로 빨래도 그렇다. 좀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만나기 몇 시간 전부터 단장을 하고 몇 분 전까지도 계속 거울을 들여다보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 계속되었던 생활의 연속인 것이다. 다만 그 생활 속에는 이제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같이 한다는 것이다. 더욱 슬픈 것은, 다른 누군가는 내 모든 것들을 받아줄 수 있는 부모님이 아니라 나와 같이 부딪혀 가야할 또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었다.존과 케이티는 그러한 반복적인 일상을 지내며 자신들이 한때 열렬한 사랑을 했던 사이었음을 점차 잊어간다. 결국은 상대방에게 애정이 식었다고 느끼는 것에 이르게 되고 아이들이 여름캠프를 간 사이에 별거를 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못했다는 것을 슬퍼하고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다른 부부들과 다름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별거를 하게 된 그들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른 부부들도 결코 특별하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젊은 여비서를 보고 성적인 흥분을 느끼게 되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여성과 성적인 관계를 가지기도 하는 그들은 모두 아내가 있다. 남편과의 성관계는 계속 이어가면서도 키스는 하지 않는다. 이미 배우자는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저 흥분을 느꼈을 뿐이고, 실제로 성관계를 가진것이 아니라 키보드를 두들겼을 뿐이며, 성관계는 ‘사랑한다’ 는 표현일 뿐이고 키스는 정말 좋아해야 할 수 있다는 그 말들이 바로 그 안에 ‘사랑’ 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벤과 케이티가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다른 부부들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결혼관계를 계속해 나가는 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삶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내를 뒤로 하고 다른 여자들을 생각하는 남자들도, 남편과의 관계도 일상처럼 생각하게 되는 여자들도, 그것은 모두 사랑의 퇴색이나 감정의 응고가 아닌 그들의 사랑이 바로 일상이 되고 그것이 삶이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이다.한 유행가 가사처럼, 오래된 연인들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가끔씩 서로의 눈을 피해서 다른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사랑이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에 따라 나도 변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기 때문이다.세상의 수많은 중년의 부부들은 과연 어떠한 시간들을 지나 왔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래도록 드는 생각이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저희 남편을 이해하는데 10년 넘게 걸렸어요’ 라는 말이 원활한 수업진행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낙천적인 성격의 벤과 완벽한 성격의 케이티는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완전한 반대의 성격이지만 사랑에 빠진 그들은 그것이 오히려 좋아보이고 단점마저도 귀엽게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결혼 생활을 계속 할 수 없는 점으로 변해간다. 벤은 케이티의 완벽에 가까운 성격을 까다롭다 느끼게 되고 케이티는 벤을 무관심한 남자로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에게 애정이 식었다고 느끼게 되기에 이른다. 인생의 반 이상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온 각각의 두 남녀가 만나 같은 생활을 하게 되면서 서로 다른 방식에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는 그의 방식이 있고, 그녀에게는 그녀의 방식이 있다. 결혼생활은 그가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거나 그녀가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절대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결혼은 끝없는 인내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딸들 앞에서도 엄마에게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는 아빠를 보면서 나의 부모님은 평생을 저렇게 행복하게 살아오셨겠지, 하고 늘 생각해왔다. 늘 그러한 결혼생활을 이상으로 삼고 있던 나는 이번 영화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러움 반 질투 반, 엄마에게 그러한 마음을 표현해 봤더니 의외로 나의 부모님도 항상 달콤한 시간만을 지내온 것은 아니었다. 20여년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던 엄마와 아빠는, 결혼하고 초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에 많이 힘드셨다고 했다. 더 이상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진중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고 하셨다. 싸우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면서 나의 부모님께서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하는데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했다. 나의 부모님은 끝없는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시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셨던 것이다.
영화 ‘인사동 스캔들’ 은 그동안 시험과, 졸업논문 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나에게 일종의 휴식으로 보상해준 영화였다. 석가탄신일로부터 어린이날까지의 황금연휴 기간에도 각종 레포트와 논문으로 인해서 평소보다 더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어야만 했다. 그 일정이 너무 지쳤던 탓에 오랜만에의 휴식과 오랜만에의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그리고 오랜만에의 문화생활 정도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 한참 조명을 집중 받고 있는 ‘박쥐’ 와 처음 많이 고민을 했지만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싶은 생각에 ‘파격적인 노출신’, ‘남성의 성기노출’ 등으로 연일 화제를 일으키는 영화에 신비감을 넘어선 거부감마저 들어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던 ‘인사동 스캔들’ 을 택했다.학교에 남아서 엄청난 과제를 소화하느라 힘들어하는 나를 격려해주는 남자친구와 함께 CINUS, 프리머스, 롯데시네마 등과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이 없는 이곳 충주의 TTC라는 조그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다.나는 보통 영화를 선택할 때, ‘영화가 좋다’, ‘접속 무비월드’ 등과 같이 영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먼저 알고 나서, 인터넷을 통해 평점과 영화에 대한 평가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난 후에야 영화를 관람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포털사이트 메인 등에 이용자들의 동의도 없이 띄워져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그런 예고편조차도 보지 않았고 다른 어떠한 사전정보도 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스캔들’ 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정관념으로 생각했던 영화의 느낌을 단박에 깨버리게 되었고, 그 때문에 처음에는 ‘이게 뭐야’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이 영화는 미술계의 거물 배태진과, 완벽한 복원전문가 이강준이 그 주인공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배태진은 실제로는 예술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단지 그러한 예술품들을 이용해 명예와 부를 함께 얻으려는 악녀이다. 어느 날 배태진은 400년 전 사라진 그림인 ‘벽안도’ 를 손에 넣게 되었다. ‘몽유도원도’ 를 그린 안견이 안평대군을 흠모하며 그렸다는 ‘벽안도’ 는 복원이 이루어지면 일본의 거대컬렉션에서 수천억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데, 그러한 욕심에 배태진은 이강준을 스카웃하게 된다. 그로부터 ‘벽안도’ 의 복원은 시작되는데 배태진은 그것을 일본을 빼돌려 거액의 대가를 받으려는 목표를 세우고, 이강준은 그것을 막으려는 목표를 세운다. 결국 이강준은 ‘벽안도’ 를 성공적으로 복원하게 되고 그 예전 배태진에 의해 일본으로 빼돌려진 잃어버린 ‘강화병풍’ 도 되찾게 된다. 그리고 처음부터 예술작품을 하나의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해온 배태진의 악행도 ‘벽안도’ 를 빼돌리려는 속셈이 밝혀지면서 끝이 나게 된다. 의미는 ‘복원’ 이었지만 배태준에게도 이강준에게도 결국 ‘벽안도’는 ‘복제’ 가 되어버린 셈이다.미술, 그 중에서도 옛 그림을 본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사책에서 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 처음 ‘강화병풍’ 이니 ‘벽안도’ 니 하는 것은 흥미를 끌 만한 주제가 못 되었다. 예술이라면 음악이 전부인 나에게 미술은 너무 딱딱하고 공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작부터 등장하는 용어들은 복잡한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영화가 점점 진행되고 이강준과 한패의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면서부터 영화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영화의 내용 중에서 “서양화는 배끼는 것이 어렵고 동양화는 살리는 것이 어렵다” 는 대사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리 조상들의 소중한 예술품들을 ‘복원’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극중 안료전문가인 권마담에 의하여 우리의 예술품들을 복원하는 과정이 되짚어진다. 깨끗하고 차가운 물에 글자를 씻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배접이며 원접이며 하는 용어들까지 등장하면서 산골짜기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의 먼지까지 사용하는 등의 어렵고 까다로운 과정들을 거쳐야만 하나의 복원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에도 불구하고 옛 예술품들을 복원하려 하는 것은 그 역사적 작품의 현실적 가치에 대한 고찰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림과 예술품들을 통하여 우리 조상을 앎으로써 우리 민족의 삶을 이해하는 것에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술작품들이 본래로서의 가치에서 퇴색하여 단지 작품의 경제적인 가치에만 관심을 두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는 위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다 상세하게 그려주어 실제로 예술품을 ‘복원’ 하는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역사적 예술품들을 돈으로 등급을 매기기에만 급급한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잘 보여주는 듯 하였다. 그 뿐 아니라 배태진의 몰락을 통하여 이러한 현 세태에 대한 경고를 함께 나타낸 듯 하다.실제로 미술계에서 이런 논란은 계속 되어 왔다. 어느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 위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엄청난 고가로 평가된 한 화가의 그림이 위작이라는 설이 돌아 많은 예술가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하는 등의 이러한 위작으로서의 논란은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들게 하고 있다.예술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고급예술과 저급예술로 나누어서 분류하곤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작품의 의미를 찾기가 난해하거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예술작품에 대해서는 고급예술이라는 칭을 사용하면서 대중들에게 친숙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작품들에 대해서는 저급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예술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실한 의미의 예술은 고급과 저급을 분류짓는 것이 아니며, 접근성이 쉽다는 것은 그만큼 친숙하다는 의미만을 지닐 뿐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석하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예술작품 자체로의 의미를 저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상업성에 물든 예술의 모습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그 예술품의 의미 자체를 부각시켜야 하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상업성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그 예술성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상업성을 배제시킬 수는 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못하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상업성이 따라 붙더라도 그 본질적인 의미를 함께 각인시키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모나리자’ 라고 하면 눈썹이 없는 한 여인의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림을 떠올리는 대중들의 대부분은 그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 어떤 의미에서 그려졌는지도 알고 있다. 이것은 예술작품이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시작되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게 되었다. 이로 인한 위작도 많았고 상술이 성업하긴 했지만 그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본다.
Ⅰ. 序論국제법상 난민이란, 정치적 사상?인종?종교?국적 등을 이유로 국적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거나 박해받을 현저한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외국에 거주하며 국적국으로의 송환을 희망하지 않고 외국의 비호를 구하는 사람을 말한다.난민은 원칙적으로는 체류국의 보호를 받으며 2차적으로 UNHCR의 보호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난민은 외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거주 및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고 신분증명서가 발급된다. 난민은 국가 안보나 공공질서상의 이유가 아니면 추방되지 않으며, 또한 입국의 적법, 부적법에 관계없이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는 영역으로 추방당하거나 강제송환당하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 난민을 보호하는 것은 이러한 협약에 근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각 국가의 국내법에 따라 인정하는 편차가 다르다. 이러한 난민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에 관하여 협약에서 구체적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난민의 자격부여 여부는 개별국가의 재량사항인 것이다. 다만 난민조약상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이 난민판정에 개입하도록 하는데 이는 다시 말해 난민 조약상 당사국은 원칙적으로 UNHCR과 협력할 의무를 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협력의무에 불과한 것이므로 결국은 난민체류국의 입장이 최종적인 난민판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최근 탈북자의 중국내의 지위문제가 커다란 국제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식량난 등 경제적 사유에 따른 불법입국자로 보아 국제법상의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UNHCR의 개입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최근 유엔이 자연적 혹은 생태학적 재해, 또는 극빈곤을 이유로 떠날 수 밖에 없거나 귀환할 수 없는 자들과 같은 경제적, 환경적 난민의 개념을 인정하는 추세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탈북자의 경우는 인도주의적 관점 및 북한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수 있겠다.)3. 탈북자의 人權實態(1) 강제송환중국 공안이 탈북자를 대대적으로 체포, 강제송환 함으로써 탈북자들은 심리적 불안?공포를 겪고 있다. 강제송환으로 인한 인권침해는 강제송환 전과 강제송환 후의 침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북한이탈주민들은 강제송환을 당하지 않으려고 비인도적 대우에도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함으로 인해 노동력 착취나 인신매매를 당하기 쉽다. 극단적인 생존 본능에 따라 탈북자들 중에는 절도, 강도, 살인과 같은 사회일탈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탈북 후 새 가정을 꾸민 경우에도 중국 정부에 발각되면 강제송환이 이루어져 결국 새 가정이 붕괴됨으로 또 다른 형태의 이산가족을 양산하는 것이다. 둘째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후의 인권 침해이다.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조사와 심문과정에서 구타와 고문이 이루어지고 처벌에 대한 탈북자의 공포감도 매우 심하다. 구타와 고문, 처벌 등으로 인권을 침해당하는 사실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정치적 난민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로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강제송환은 국제법적 위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탈북자의 아동이거나 식량 및 경제적 이유로 처음 탈북 한 경우 가벼운 처벌 후 훈방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은 매우 제한적이다.(2) 노동착취와 강제노역중국 정부는 언론에 공개된 탈북자들의 경우, 제3국 추방을 통한 한국행을 인정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여전히 북한으로 강제송환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탈북자들은 불안한 신분으로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없이 착취당하거나 고발하겠다는 협박과 폭행 등 각종 부당한 인권침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들의 취약한 법적 지위를 악용하여 약속한 임금을 미지급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일부 탈북자 경우, 결혼이나 친척에 의탁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나머지 많은 탈북자들은 노동을 해서 생존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의 대가로 숙식만 제공받고 있을 뿐, 노동임금은 전혀 받지 못하정의는 또한 집행위원회, 미주기구 및 국제연합 총회에 의하여 지지되었다.2. 難民槪念의 변화(1) UNHCR의 보호대상자 개념의 변화)UNHCR의 보호대상자 개념은 1951년 규정상의 정의를 넘어서, 세계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오늘날 세계는 UNHCR 규정이 초안되었던 당시와는 달리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고 또한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하여 융통성 있게 개념을 확대하여 왔다.1) 집단적 난민1960년대 아프리카에서는 대규모 난민이주가 발생하였다.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 경우 개개인이 박해를 받을 위험에 관하여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지고 있는지 결정하기 위해 집단에 속하는 개개인을 심사하는 일은 불가능하였고 따라서 난민지위를 집단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 집단은 출신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비추어 난민집단으로 인정되었다.2) 조정)1950년대 말, UNHCR은 국제연합의 권한에 속하지 않는 난민에게 원조를 하기 위하여, ‘조정’ 역할을 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는 특히 두 개의 중국이 존재한다는 법적인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되지 못한, 홍콩에 있는 중국난민에게 적용되었다. 1960년대 채택된 일련의 국제연합 총회 결의문에서, UNHCR의 ‘조정’ 역할에 근거하여 그의 권한에 속하게 된 난민에게 원조를 제공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원을 받은 난민은 사실상 집단적 인정방법에 근거하여 UNHCR 규정상의 난민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실제로 UNHCR은 어떤 집단을 조정에 의한 난민으로서 지원하기로 결정함에 있어서, 박해의 우려가 있는 공포에만 한정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인도적 기준을 적용하였다.3) 실향민이 개념은 IRO) 헌장에는 있었으나, UNHCR 규정에는 있지 않다. 그러나 ‘UNHCR의 관심의 대상으로서의 실향민’ 이라는 개념은 1975년의 국제연합 총회결의에서부터 계속 등장한다. 이들 결의는 UNHCR에게, 출신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를 조건으로 할 수도 있다.(2) 국가들에 의한 난민지위의 결정)1951년 난민협약은 난민의 개념과 난민에게 부과되는 일정한 기준의 조치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난민협약은 난민지위의 결정절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규정하고 있지 않고 국내적인 차원에서 난민협약의 시행을 위한 수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들에게 남겨두고 있다. 난민의 개념적 특징들이 주어져 있으므로 난민지위의 신청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 및 객관적인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다만, 근본적으로 인도적인 목적을 가지는 특성상 난민지위의 결정을 위한 절차와 기준에 관한 UNHCR 지침서가 준비되었다.난민협약이 난민지위 절차문제에 관하여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사국들의 절차는 서로 상이할 수 있다. 국가들에 따라서 특별한 공식절차가 마련되는 경우도 있고, 비공식적인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유럽의 일부국가에서는 UNHCR과 미리 난민발생과 관련 있는 특별협정을 체결해 놓고 난민판정에 관한 권한을 자국이 행사하지 않고 UNHCR이 직접 난민지위를 결정하도록 위임하거나 또는 UNHCR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약정하고 있다. 또는 상호협의와 협력 하에 난민지위를 판정하고 구호활동을 공동으로 조직하는 등의 조치도 취하고 있다. 당사국들이 동일한 절차를 마련하거나 그렇지 못한 상황이 있음을 고려하여 1977년 10월 제 28차 회기에서 UNHCR 집행위원회는 난민 신청인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고 신청인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도록 일정한 기본요건을 충족시킬 것을 권고 하였다. 한편, 아직 관련절차를 마련하지 못한 당사국에 대하여 가까운 장래에 그러한 절차를 확립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과 절차과정에 적절한 형태로 UNHCR이 참가하는 것을 호의적으로 고려할 것을 권고하였다.Ⅳ. 탈북자에 관한 각국 政府의 處理政策1. 북한정부의 입장일반적으로 북한은 본국으로 송환된 탈북자에 대한 제재 외에는 대외적으로 공식적 표명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탈북자 문제가 대외적으로 북한 인권에 대경우에 광대한 영토에 퍼져있는 수많은 소수민족 정책과 국경관리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서 1966년에 중국과 북한 간에 맺은 ‘밀입국자 송환협정’ 과 1986년에 맺은 ‘국경지역 업무협정’ 을 적용하여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따라서 탈북자를 여전히 불법입국자로 간주하고 있다.(2) 한국정부의 태도정부는 외교적으로 미묘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탈북자가 제3국을 통하여 밀입국하거나 직접 탈출하여 오는 경우에는 이들을 수용하고 있으나 더 많은 탈북자가 중국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는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탈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던 1997년에 제정한 ‘탈북자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은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의사를 표시한 탈북자에게 적용된다) 는 것을 규정하고 있고, 1999년에도 식량난으로 인해 중국에 체류중인 탈북자들이 국제적 난민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UNHCR 및 관련국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고 하였던 ‘북한 탈북주민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결의안’ 을 실효적으로는 지키지 않는 것이다.(3) 미국의 입장2001년,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과 폐쇄체제 개방 등을 목표로 ‘미국 북한 인권위원회’ 가 생겨났다. 창립선언에서 이들은 북한의 인권 부정은 더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불의에 이르고 있으며 오랜 시간 북한 주민들은 그들의 상황에 관해 아무것도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폐쇄되고 엄격히 통제된 전체주의 체제에서 살아왔다고 하였다. 이들은 정치범수용소와 노동수용소 제도, 기아문제와 식량 및 필수품에 대한 내용,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들의 실태에 관하여 지적하였다.2004년 미 의회에서는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여, 탈북자에 대한 난민의 개념을 적용하였는데,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헌법에 따라 국민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므로, 미국 내에서 난민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중국정부가 UNCHR에 탈북자들에 대한 접근을 거부하면 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