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은 서양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J.D.샐린저, 『프래니와 주이』헤르만 헤세, 『싯달타』T.S. 엘리엇, 「황무지」외(外)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일 :목 차1.들어가는 말2.텍스트 분석2.1 샐린저, 『프래니와 주이』2.2 헤르만 헤세, 『싯달타』2.3 T.S.엘리엇의 시(詩)3. 맺는말1. 들어가는 말그대의 마음을 위대한 신에게 맡기고 행동하되절대 그 성과에는 집착하지 마라.성공이나 실패 뒤에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마라.요가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이 평정에 있기 때문이다.결과를 걱정하면서 일을 하는 것은망아(忘我)의 고요함 속에서아무 걱정 없이 하는 일보다 훨씬 열등하다.우주의 근본 원리를 깨달을 안식처를 구하라.이기적인 결과를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딱한 것도 없다.- 바가바드 기타내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는 J.D. 샐린저였다. 특히 그의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그가 발표한 작품이 워낙 적어서 다른 작품은 구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겨울에 『목공들이여 대들보를 높여라』, 『아홉 가지 단편』, 『프래니와 주이』등을 구해서 읽었다. 이 작품들은 글래스Glass가(家)의 가족사를 다룬 작품들이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비교해 봤을 때 후기 작품들에서 작가의 동양적인 사상이 짙게 드러났다. 특히 『프래니와 주이』에서 강렬히 드러났다. 위에 인용한 의 잠언도 『프래니와 주이』에 나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과연 무엇이 이 작가로 하여금 동양사상에 심취하게 만들었는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것은 서구인들이 1차세계대전 이후 가졌던 이성과 합리성 중심의 서양철학에 대한 회의(懷疑)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초에 서구인들이 동양사상에 대해 가졌던 시각은 오리엔탈리즘 내지는 엑조시티즘의 한계를 극복해지 못했다. 즉 동양사상에 숨겨진 기독교적 세계관을 찾는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박 겉핥기식의 연구에서 벗어나 좀 더 심오한 성취를 이루게 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는 헤르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말다툼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있는 프래니를 걱정하고, 주이는 시모어와 버디 얘기만을 늘어놓는 집안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프래니가 병에 걸린 원인은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이라는 조그만 책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3장 는 이 책의 핵심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프래니와 주이의 대화이다. 주이는 욕실에서 나와 거실의 카우치에 누워 있는 프래니에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녀가 갖고 있는 에고에 대한 의식과 연극에 대한 태도, 기도하는 자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진다. 프래니는 주이의 꾸짖음에 괴로워한다. 주이는 집 밖으로 나간다. 4장 도 결국 프래니와 주이의 대화이다. 주이는 둘째 형 버디인 척 하며 프래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한다. 모든 사람이 예수라는 사실과 예수를 위한 유일한 일은 연극에 전념하는 것 뿐이라고 프래니에게 말한다. 프래니는 기뻐서 몸을 떨고, 전화를 끊은 후 달콤한 잠에 빠지며 끝난다.2.1.2 작품 속에 드러난 동양 사상샐린저라는 작가는 은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생사여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 그의 지인들로부터 모은 정보에 의하면 그는 동양사상, 특히 불교와 선(禪)에 심취했다고 한다. 『프래니와 주이』에서도 곳곳에 해박한 동양사상 관련 지식이 나온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어렴풋이 드러났던 그의 사상은 불교와 맞물려 더 확고해졌고, 버디와 주이를 통해 아주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프래니와 주이의 차이점은 주이는 그 사상을 확실히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프래니는 희미하게 느끼고만 있을 뿐 완벽히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뒤에 나오겠지만 이 작중인물들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비교하자면, 프래니는 뱃사공 바주데바와 강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의 싯다르타이고 주이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이다.그녀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에 대해 막연한 혐오감을 느낀다. 그녀는 그것을 에고 라고 치부한다.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내 마음이 이상하다는 것즉 생명체를 구제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피안(彼岸)에 도달하겠다는 맹세. 2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다함이 없는, 인간의 그 많은 번뇌를 끊겠다는 맹세. 3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광대무변한 불타의 가르침을 모두 배워 깨닫겠다는 맹세. 4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가장 존귀하고 그 이상 뛰어난 것이 없는 불도를 닦아 깨달음에 이르러 성불하겠다는 맹세이다.을 외우도록 시키기도 했다.하지만 동양에서는 달라요. 동양에서는 우리 몸에 차크라 라고 하는 일곱 군데의 미묘한 중심이 있다고 해요. 심장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아나하타 차크라라고 하는데 극히 민감하고 강력하다고 해요. 그것에 활력을 주면 이번에는 또 다른 중심인 양미간 사이에 있는 아즈나 차크라에 활력을 주게 돼요. 이것은 송과선(松科腺)이라고 하는 것인데,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송과선 주위에 있는 영기(靈氣)예요. 그렇게 되면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제 3의 눈 이 열리게 되는 거죠.{) 샐린저, 1)의 책 p.139불교와 더불어 인도사상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위에 인용한 문단은 인도사상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없이는 쓸 수 없는 것이다. 이 밖에 일일이 다 인용하지 못할 만큼 많은 부분에서 불교와 인도사상이 나온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렇게 동양사상을 끌어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주이의 말을 통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하지만 네가 종교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초연함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면 단 1인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거야. 초연함, 오직 초연함뿐이지. 그건 바로 모든 욕망으로부터의 단절, 즉 무욕(無慾)이야. {) 위의 책 p.246작가는 모든 욕망 앞에서 초연해지라고 말한다. 그와 더불어 타인에 대해 경멸적 사랑을 품지 말고 자신과 동등한 입장, 혹은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며 사랑하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을 예수처럼 여기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싯다르타』의 결론이 모든 것 안에 부처가 들어 있다는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 단지 이 리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사랑하는 법이라고 느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 수많은 종류의 사랑에 대해 고민해왔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러한 고민이 한 순간에 해소되었다. 사람이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이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든 후에도 꼭 다시 읽어보게 될 것 같은 작품이다.2.2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2.2.1 작품 줄거리처음에 이 작품은 싯다르타 의 실제 삶을 소설화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읽어갈 수록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이것은 싯다르타라는 한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모습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싯다르타라는 인물의 여러 가지 상황은 실제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그가 겪는 일들은 작가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창조물이다.싯다르타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사문이 되어 수련을 한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싯다르타는, 세존 고타마의 설법을 듣기 위해 고빈다와 함께 사문의 세계를 떠난다. 고타마를 만난 싯다르타는 그의 가르침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감각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 다시 떠난다. 한편, 고빈다는 고타마의 제자가 된다. 강을 건너 도시로 간 싯다르타는 카말라와 카마스와미로부터 현상적 세계의 쾌락을 배운다. 처음엔 그러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초연했던 싯다르타도 점점 속물이 되어버린다. 물질적인 만족과 정신적 피폐함 속에 살던 중 꿈 쏙에 새가 죽는 것을 보고 다시 강을 건너 오고 뱃사공 바주데바와 함께 살며 강이 알려주는 지혜를 느낀다. 그러던 중 고타마가 입적하고 카말라와 싯다르타의 아들이 고타마의 입적을 보기 위해 강을 지나가다가 싯다르타를 만난다. 그러나 카말라는 뱀에 물려 죽고 그의 아들만 남는다. 싯다르타는 아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지만 뱃사공 바주데바의 말대로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아들이 도망친 후 싯다르타는 한층 더 강이 해주는 말에 귀기울이고 마침내 깨닫는다. 우연히 고빈다를 만난 싯다르타는 자신이 얻은 깨달음에 대해 말해주고 작품은 끝이 난다.2.2.2 작품에 나타난 동양사상 이 부분은 싯다르타가 지혜는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을 막연히 깨닫고 하는 말이다. 이 작품이 단지 동양사상에 대한 찬미와 그 사상에 대한 지식의 열거로 이루어졌다면 동양에 대한 엑조티시즘적 관심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동양사상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결론은 인류 보편적인, 즉 사상에 관계없이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누군가 구도를 할 경우에는 그 사람의 눈은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을 보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결과가 생기기 쉽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은 오로지 항상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그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지요.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위의 책 pp.202-203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그는 동양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 영향이 정점에 이른 것이 『싯다르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동양사상 이나 인도사상 , 불교 등의 키워드에 구속되지 않았다. 위의 인용문은 동양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불교적이라는 느낌이 확연히 들지만, 그것에서 떠나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의 삶에 해당하는 아포리즘이라고 할 수도 있다.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은 타자(他者) 혹은 세계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은 샐린저의 작품과도 상통하는데 다음 부분에서 강렬히 드러난다.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위의 책 p.214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이것은 『프래니와 주이』에서 주이가 말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다 라는 것과 비슷한
죽음을 향하여 한걸음(오정희, 「別辭」 독서감상문)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일 :「別辭」를 읽기는 쉽지 않았다.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를 단 20분 만에 읽어버린데 반해, 오정희의 작품은 다 읽는데 반나절이 걸렸으니 매우 더디게 읽은 것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문체는 맑은 증류수 같은 느낌이었다. 요즘 소설처럼 속도감 있는 문장이나 자극적인 소재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것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줄거리는 크게 두 줄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머니를 따라 묘자리를 보러 가는, 정옥의 시점으로 처리된 이야기와 그(남편)가 죽음을 향해 여행을 가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요즘 유행하는 알레고리 소설과 다른 점은 모호함 에 있다. 알레고리 소설이 알레고리 자체로 독자를 유혹한다면 이 작품은 명확히 드러내 보이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알쏭달쏭하게 독자를 긴장시킨다.처음에 읽을 때는 정옥이 묘원을 찾아가는 상황과 남편이 죽기 위해 떠나는 상황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줄 알았다. 두 번 읽고 나서야 정확한 줄거리를 알 수 있었다. 플롯을 무시한 대략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정옥의 남편은 보름 전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분명치는 않으나 정옥은 이 사실은 친가에 알리지 않은 듯하다. 어머니 집에 잠깐 놀러 간 정옥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장묘가 들게 될 묘원에 찾아가자는 어머니를 따라 길을 나선다. 묘원으로 향하는 동안 정옥은 여러 가지 - 주로 남편에 대하여 - 를 회상한다. 정옥의 회상과 남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겹쳐져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어머니, 아이와 함께 묘원에서 관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내려오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주목해서 볼 것은 극도로 절제된 정옥의 심리상태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지만 그 어떤 문장에서도 과잉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절제된 감정은 주변 풍경이나 사물을 볼 때 언뜻 언뜻 드러난다. 작품 초반에 나오는 문둥이에 대한 묘사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읽는 사람은 검붉은 얼굴을 들이 밀며 오그라진 손 을 내미는 문둥이를 보며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느낀다.- 먼지, 먼지뿐이었다. (중략) 그 정경은 서릿발 같은 햇빛 아래 귀기를 띠며 음산하게 눈에 들어왔다.{) 오정희, 『유년의 뜰』문학과지성사(2005) 「別辭」p.199- 아, 휴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으면서 가슴을 에이게 했다.{) 위의 책 p.200- 일정한 보폭을 지키며 묵묵히 걸어가는, 죽은 녹빛의 행군을 보는 사이 가슴속에 드리운 불투명한 막이 점차 두꺼워지며 뭔가 질리는 느낌으로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위의 책 p.202- 그러자 비어 있는 P시의 집, 역시 텅 비어 있을 우편함과 두 개의 작은 열쇠가 떠올랐다.{) 위의 책 p.210- 명부전 현판이 붙은 어두운 불당에서는 끊임없이 징소리와 북소리가 들렸다.{) 위의 책 p.241마치 소월의 詩에서 역설과 반어로 슬픔을 강조하듯, 「別辭」의 정옥도 슬픔을 폭발시키기보다는 한층 더 정제된 감정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이렇게 고도로 절제되고 다듬어진 문장들을 읽으며 - 그 문장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별 의미가 없지만 - 행간에 숨어 있는 상실감과 허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이문열의 「금시조」와 기법 면에서 상반된다. 이문열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화자의 개입이다. 화자는 작중인물의 삶과 의식에 깊숙이 침투한다. 그 뿐만 아니라 「금시조」 결말 부분에서는 직접 나서서 동양과 서양의 예술론의 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 방법은 독자가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작가에 의해 작품이 갖는 의미가 제한된다는 단점도 있다.「別辭」는 분명 불친절한 소설이다. 작중 인물의 묘사도 뚜렷하게 되지 않고, 죽은 남편이 왜 쫓기고 있었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가 아닌 것 같다.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남편을 잃은 젊은 여자의 심정을 그려 보이기 위한 것이다.남편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서 정옥 은 특정 개인이라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았던 2~30대 기혼여성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나왔던 80년대 초반에는 여성의 지위가 낮았다. 대학을 나온 여성도 드물었고 직업을 가진 여성도 드물었다. 여자는 나이 들면 결혼하여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옛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권위적인 남편들은 집에만 있는 여성들을 무시했다. 이 작품에서 남편의 죽음 이 표상하고 있는 것은 당시 여성들이 남편들에게 느꼈던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던 감정 아닐까. 바깥에서의 일을 세세히 말해주지 않는 남편, 집에서 밥 먹고 잠만 자는 남편은 아내에게 있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정옥의 남편도 어디로 떠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낯선 이에게 전화가 와도 남편의 소재를 알려줄 수 없을 만큼, 정옥에게 남편은 미지의 존재이다. 정옥의 소박한 꿈, 당시 여성이 가정에서 이루고 싶었던 작은 꿈은 다음 인용문에서 잘 드러난다.
야만인을 사랑한 문명인(김훈,「화장」독서감상문)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일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 제2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훈,「화장」 p.25감상문의 서두를 인용문으로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화장」의 3장이 내게 주었던 충격 때문이다. 이 작품은 지난 겨울 방학 때 처음으로 읽었다. 최근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은 김훈이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대체 그의 문장이 어떻기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탄성 그 자체였다. 나는 김훈의 문장에 완전히 탄복하고 말았다. 화장품 회사 중역인 화자를 통해 보이는 각종 전문지식도 놀랍지만 그것보다는 중간 중간에 삽입된 추은주 를 바라보는 감성적인 문장들이 나를 더 놀랍게 했다.화장품 회사의 상무인 는 전립선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뇌종양으로 죽었다. 는 같은 회사 여직원인 추은주를 오래전부터 연모하고 있다.써놓고 보니 이 작품은 위의 단 세 문장으로 요약되고 말았다. 그러나 저 세 문장의 간극에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아니, 단순히 저 세 문장만 이어 놓음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한 메타포를 만들어 낸다. 총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화자가 추은주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토로하는 장은 3장과 5장, 두 장 뿐이다. 그런데 작품을 읽고 나면 추은주라는 존재가 거대하게 다가와 있다. 마치 작품 전체가 추은주를 향한 연가(戀歌)인 것처럼. 1,2,4,6장은 묘사보다는 설명 위주로 서술되고 있다. 아내의 죽음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냉정해보일 정도로 객관적이다. 그 어떤 감정의 분출도 보이지 않는다. 몇 십년을 함께 산 아내가, 세 번의 수술 끝에 결국 죽었는데도 화자는 무심하고 덤덤하게 병실과 장례식장에서의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역시 무심하게 서술되는 화자의 오줌 빼는 장면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이 1,2,4,6장에서 마련된 견고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3, 5장에서는 추은주에 대한 환상적인 묘사가 길게 나온다. 나머지 장들과의 확연한 대조로, 두 장에서 나타나는 묘사는 섬세함과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5년 전 여름 날 추은주가 입었던 옷과 빗장뼈, 시켜먹은 음식, 귀밑머리와 실핀, 입으로 들어가는 볶음밥의 낱알들을 기억하는 화자. 설사 그가 아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감정은 진실로 순수하게 느껴졌다. 제도와 사회, 도덕, 법규 그 모든 것을 초탈한 순수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감각의 울림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추은주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화자의 느낌은 지층 밑에 묻혀버린 먼 고대국가의 이름 이었다.추은주라는 캐릭터는 철저히 화자의 시선에 의해서만 보여지고 있으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화장품 회사의 중역으로 지내오면서 철저히 문명화된 화자는 문명 밖의 순수한 생명력을 희구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내마저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으니 그 염원은 더 강렬했으리라. 추은주는 유능한 직원은 아니었다. 그가 남편 때문에 퇴직할 때도 인사담당 이사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근무평점도 중하였다. 만약 화자가 여느 대기업의 CEO처럼 개인의 능력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이었다면 추은주를 매력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당신의 가슴의 융기가 시작되려는 그곳에서 당신의 빗장뼈는 당신의 가슴뼈에서 당신의 어깨뼈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빗장뼈 위로 드러난 당신의 푸른 정맥은 희미했고, 그리고 선명했습니다.-여자인 당신의 모든 생물학적 조건들 속에 깃드는 잠과 당신이 잠드는 동안 당신의 몸속에서 작동하고 있을 허파와 심장과 장기들을 생각했습니다.{) 위의 책 p.29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문열, 「금시조」독서감상문)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일 :이문열의 「금시조」는 예술가 지망생이라면 꼭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소설이다. 이 소설에의 주인공 고죽(古竹)은 서화를 하는 사람이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고민들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 이 작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마찬가지로 화자의 개입이 두드러진다.서사의 큰 줄기는 늙고 병든 고죽이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이다. 고죽의 숙부는 열 살 된 고죽을 지기(知己)인 석담선생에게 맡기고 떠난다. 그 때부터 고죽은 석담 밑에서 글씨와 서화를 배운다. 석담 선생은 고죽의 재능을 알아보지만 문자향(文字香) 과 서권기(書卷氣) 가 있을 리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고죽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어렵사리 고죽은 석담의 제자가 되지만 두 사람은 각각의 예술관의 차이로 끝없이 불화를 일으킨다. 스승에게 칭찬 한 번 들어 본 적 없던 고죽은 스물일곱의 나이로 석담의 집에서 나와 팔도를 유람하며 주색잡기에 빠진다. 떠돌이 생활을 계속할수록 스승을 미워하던 마음이 차차 자괴감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중 허참봉의 집에 식객으로 있을 때 스승의 지기인 운곡선생을 만나 꾸지람을 듣고 귀향을 결심한다. 그는 오대산의 어느 사찰에서 반 년간 머물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석담 선생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석담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 때부터 고죽은 석담 선생의 고가(古家)를 지키며 서체 연습에 몰두한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르고 늙은 고죽은 화방골목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작품을 모은다. 죽기 직전, 고죽은 모아놓은 작품을 불태우게 시키고 금시조의 환영을 보며 생을 마감한다.내가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석담과 고죽이 벌인 매죽(梅竹) 논쟁이다. 석담은 서화를 심화(心畵)로 여겼고 고죽은 물화(物畵)로 여겼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석담은 고전주의 예술관을 가졌고, 고죽은 낭만주의 내지는 모더니즘 경향의 예술관을 가진 것이다.- 서화는 심화(心畵)니라. 물(物)을 빌어 내 마음을 그리는 것인즉 반드시 물의 실상(實相)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중략) 만일 드높은 정신의 경지가 곁들여 있지 않다면 다만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다.위 인용문이 석담의 예술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한 인간이 가진 이데아를 더 중요시할 뿐, 실제로 종이에 그려지는 그림 그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재능보다는 문자향과 서권기를 중시했고 그것에 비해 재기가 승하는 고죽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반면 고죽은 석담의 생각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이데아 보다는 현상계에 나타나는 물질에 더 관심을 두었다. 문자향이나 서권기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 보조수단일 뿐 본질적인 요소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술은 예술로서만 파악되어야 한다고 보는 고죽의 입장에서 보면 추사의 예술관은 학문과 예술의 혼동으로만 보였다.석담이 죽고 나서 고죽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에 매료되지만 결국 자신의 예술관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품 중간에도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고죽의 예술관은 당시 사람들의 그것을 너무 앞질러 갔기 때문에 이해받지 못 했다.작품 결말에 가서 화자는 동양과 서양의 예술을 비교하며 고죽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의 주제와 상당히 비슷하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구도가 스승과 제자라는 것, 배경이 유럽이 아닌 우리나라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들이 가졌던 갈등은 본질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석담 선생이 살리에리처럼 사회적으로, 물질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은 아니지만 오로지 예술관이라는 시각으로만 본다면 기존의 예술관을 꿋꿋이 지킨다는 점에서 살리에리와 비슷하다. 반면 고죽은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구시대의 예술관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고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한다.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가 먼저 죽어버리지만 이 작품에서는 석담이 먼저 죽는다.살아 남은 고죽은 어떤 고뇌에 처했을까. 이것은 모차르트가 요절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가정해도 한 번쯤은 고민했을 문제이다. 그가 그토록 평생을 바쳐 이룩해온 예술이 그의 인생에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그가 예술을 이루려고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세월 동안 바깥 세상에서는 한일합방이 일어나고 6·25가 일어나지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처자식이 있었지만 오히려 귀찮게만 느껴지고 떠돌이생활 끝에 아내가 친정으로 돌아가 개가(改嫁)를 하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고죽은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들을 찾아 화방을 떠도는 것이다.
공동묘지에 피어난 꽃『무정』과 『만세전』에 나타난 근대 지식인상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일 :1. 들어가는 말오래전에 『무정』과 『만세전』을 읽었다. 두 작품을 연달아 본 것도 아니고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읽어야겠다는 생각 없이 읽은 것이라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과제를 하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두 작품이 어느 면에서는 상당히 비슷하고 또 어느 면에서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두 작가가 그려내는 사회상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염상섭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무덤 내지는 공동묘지 로 보았다면, 이광수는 묘지에 피어난 꽃에 시선을 두었다. 두 작가가 근대 지식인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다.2.『무정』의 줄거리몇 년 전 읽었을 때는 무척 따분하고 지루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생소한 단어가 많아 잘 안 읽혀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읽은 『무정』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형식이 영채와 선형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손에 땀을 쥐고 페이지를 넘겼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무정』은 주인공 이형식의 연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은 7년 전 헤어진 박진사의 딸 영채와 김장로의 딸 선형을 두고 갈팡질팡한다. 다소 소심한 성격의 형식은 행동은 과감하게 못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걱정만 한다.소설의 시작과 함께 형식은 김장로의 딸 선형의 가정교사가 되어 영어를 가르친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간 형식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영채를 만난다. 박진사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고, 영채만 살아남아 혈혈단신으로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결국 기생이 되었다. 형식은 아름답게 자란 영채의 모습에 새삼 기뻐하면서도, 영채의 정조가 이미 깨진 것인지 의심한다. 다음날 김현수와 배명식은 청량사로 영채를 데리고 가서 그녀를 범한다. 형식과 우선이 형사를 데리고 나타나서 영채를 구한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크게 상심한 영채는, 다음날 자살을 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평양으로 떠난다. 기생집 노파로부터 유서를 받아보고 부랴부랴 평양으로 향한 형식은 열심히 찾아보지도 않고 계향이와 묘지만 돌아다니다가 돌아온다. 평양에서 돌아온 형식은 선형과 약혼을 하고 함께 유학을 갈 꿈에 부풀어 오른다. 한편 자살하려던 영채는 기차에서 병욱을 만나 함께 지내며 음악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유학 준비를 한다. 형식과 선형이 약혼을 하고 유학을 가는 기차 안에서 병욱과 영채를 만난다. 형식은 영채로부터 그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기차가 삼랑진에 당도하여 홍수가 나서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병욱과 영채, 선형은 대합실에서 즉석으로 연주회를 열어 돈을 모아 서장에게 건네준다. 이들은 교육으로 조선을 개혁시켜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갖는다.3.『만세전』의 줄거리주인공 이인화는 고향으로부터 전보를 받고 조선으로 향한다.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인화는 서둘러 귀국하지 않고 카페 여급인 정자를 만나 선물을 주고 기차를 탄다. 기차를 오래 타서 지겨워진 인화는 신호(神戶)에 내려 을라를 만난다. 을라는 인화와 함께 조선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인화는 거부하고 배를 탄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그리고 배를 타서까지도 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를 쫓아 불안하게 한다. 배 안의 목욕탕에 들어간 인화는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을 요보 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조선인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있다가 형사가 불러서 나가게 된다. 부산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청주 형님 댁을 거쳐 서울로 올라간 인화는 병든 아내를 만나지만 아내는 곧 죽는다. 그는 별로 슬픈 기분도 들지 않아 울지도 않고, 공동묘지에 아내를 묻은 뒤 3일장으로 끝낸다.4. 두 작품 속 지식인상의 유사점과 차이점4.1 변화하는 인물, 변화 없는 인물『무정』과 『만세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과 차이점을 보인다. 형식과 인화는 직업은 서로 다르지만 당대의 지식인층이라는 점이 같다. 이들은 조선의 현실을 어둡게 보고 있다. 『만세전』의 이인화가 어둡게 보고 있는 데서 끝이라면, 『무정』의 형식을 비롯한 주인공들은 어두운 조선의 현실을 새롭게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의지가 투영된 것 같다. 작중인물만 두고 보더라도, 사유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이인화는 작품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변화가 없는 반면, 『무정』의 주인공들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물들이다.자기가 지금껏 옳다 그르다 슬프다 기쁘다 하여온 것은 결코 자기의 지(知)의 판단과 정(情)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온전히 전습(傳襲)을 따라, 사회의 관습을 따라 하여온 것이었다. …(중략)… 자기는 이제야 자기의 생명을 깨달았다, 자기가 있는 줄을 깨달았다.…(중략){) 이광수, 『무정』 문학과지성사(2005) pp.252-253대표적인 예로 위의 인용문을 들 수 있겠다. 영채를 찾으러 평양에 올라갔다가 찾지 못하고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형식이 하는 생각이다. 반면 『만세전』에 나타난 조선의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암울함이며, 주인공은 그 현실에 대한 개선의 의지를 나타내지 못한다.생각하면 조선 사람이란 무엇에 써먹을 인종인지 모르겠다. 아침에도 한잔, 낮에도 한잔, 저녁에도 한잔, 있는 놈은 있어 한잔, 없는 놈은 없어 한잔이다. …(중략)… 그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목표도 없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무덤으로 끌려간다고나 할까?…(중략)…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잊어버려라! - 이것만이 그들의 인생관인지 모르겠다.{) 염상섭, 『만세전』 문학사상사(2004) pp.142-1434.2 교육에 대한 태도이인화나 이형식 모두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무정』은 작중인물들의 목표 자체가 조선 사람들을 개화시키기 위해 교육자가 된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형식이 우선에게 말하는 다음 장면을 들 수 있다.물론 교육이라 하면 소학 교육과 중학 교육을 의미하는 것이지. 지금 조선은 정히 페스탈로치를 기다리는 땐 줄 아네. 조선 사람을 전혀 새 조선 사람을 만들려면 교육밖에 무엇으로 하겠나. …(중략)…자네도 문필에 종사하는 테니 아무쪼록 교육열을 고취해주게…(중략){) 『무정』 p.323『만세전』에서는 초점이 교육 에 맞추어져 있지 않고, 식민지 조선의 현실 자체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비록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이인화는 이형식과 마찬가지로 교육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문학을 공부하는 인화를, 배워도 써먹을 데가 없다며 나무라는 형님에 대해 인화가 생각하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교육이라는 것은 사람 을 만들자는 것이요 기계를 제조하는 것이 아니니까, 학문을 당장에 월급푼에 써먹자고 하는 것도 아니요, …(중략)…개성은 소중한 것이니까 제각기 개성에 따라서 교육을 하여야 한다는 문제를 들추어가지고 늘 변명을 하여 왔다. …(중략)…그것은 마치 무덤 속과 무덤 밖이 판연히 다른 딴 세상임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후부터는 부자나 형제로서 할 말 이외에는, 그리고 학비 이야기 이외에는 아무 말도 입을 벌리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다.{) 『만세전』p.93개성대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온 인화는 그로 인해 집안과 불화가 생기자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결심한다.4.3 비(非)지식인들을 바라보는 태도『무정』의 주인공들은 서민, 즉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작품 마지막에 가서 벌어지는 자선음악회가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 이상적으로 부풀려졌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반면에 『만세전』의 이인화는 매우 솔직한 감정을 토로한다. 이성적으로는 그들을 감싸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들을 가까이할 수 없다는 것이다.덕의적(德義的) 이론으로나 서적으로는 무산계급이라는 것처럼 우리 친구가 되고 우리 편이 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에 그들과 마주 딱 대하면 어쩐지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혹은 그들에게 대한 혐오가 심하여지면 심하여질수록 그 원인이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논법으로…(중략)…감정상으로 그들과 융합할 길이 없다는 것은 아마 엄연한 사실인 것 같다.{) 『만세전』p.72물론『무정』의 주인공들의 행위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것이지만, 솔직한 우리들의 심정은 『만세전』의 이인화쪽에 가깝지 않을까. 지하철에서 보는 장애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들 가지고 있지만,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많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4.4 주인공들의 여성관이형식과 이인화만 떼어놓고 비교해본다면 아무래도 미혼인 이형식 쪽이 여자에 대한 관심이 많고 생각도 많이 하는 편이다. 형식은 끊임없이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성에게 끌린다. 처음에는 선형에게 끌렸다가 다음으로 영채, 평양에서 계향에게 끌린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인 희경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지막에 가서는 병욱, 선형, 영채를 동시에 사랑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다.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화도 일본을 떠나 서울을 향하면서 많은 여자들을 만난다. 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은 외모도 외모지만, 무엇보다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형식은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지만, 7년간 고생하느라 학업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영채보다는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선형을 선택한다.선형과 나와 약혼 한다는 말은 말만 들어도 기뻤다. 영채가 마침 죽은 것이 다행이다 하는 생각까지 난다…(중략){) 『무정』p.293심지어 선형과 약혼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위의 인용과 같이 영채가 죽은 것을 다행으로까지 여긴다. 인화도 형식과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만세전』에 등장하는 여성 중 인화가 가장 끌리는 인물은 정자이다. 정자는 카페 웨이트리스이지만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인화에게 호감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