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 REPORT]- 지방행정 : 주민소환제에 대한 고찰바야흐로 지방자치의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중간에 중단된 시기가 길었고 그 의미가 퇴색되는 반쪽짜리 지방자치가 실시되었기 때문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 역사는 10여년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제도적으로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의식도 발전된 지방자치의 수준에 많이 뒤떨어지고 있다. 인프라 구축이 미흡하다는 점과 의식의 수준미달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의 지방자치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문제로 재정자립도문제, 또 이와는 전혀 반대 성격의 예산낭비문제, 각종 비리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보다 발전된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진화된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토대로 그 외형을 형성해가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여기서는 지방자치제도 중 현재 가장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주민소환제에 관해 언급해보려고 한다.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에 있었던 역사적 한계 때문인지 법체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분야에 걸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받고 있다. 물론 일본의 선진화된 제도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분야 역시 여기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많은 부분에서 일본과의 비교를 시도하거나 답습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그렇다면 지금 살펴보려는 미국의 영향, 미시적으로 미국의 행정이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주민소환제는 이미 미국의 개혁운동가에 의해 제시된 제도이며 그 역사가 100여년에 이르기 때문에 우리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지방자치 그 자체는 정치의 민주화를 보장하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 미국 및 영국을 위시한 오랜 지방자치의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도 비민주적인 행위와 관행은 과거는 물론 가까운 과거에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여전히 목격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방자치의 역사가실을 감안할 때 내년부터 실행하기로 한 주민소환제는 진정한 필요에 의한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단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지금부터는 주민소환제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미국의 지방자치의 개요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주민소환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미국은 알다시피 영국에서 이주한 식민국가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지방제도 역시 17,18세기의 영국의 지방제도를 모방하고 있었지만 1776년 독립 후의 지방자치제도는 민주적으로 재편성되어 차츰 독자적인 체제를 갖추어 가기 시작한다. 즉, 3권분립, 각 기관의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지배적이 되었고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확장되었다. 이런 개혁을 통해 19C 중엽까지 미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식민지 시대에 모방했던 영국의 제도로부터 탈피하여 독자적인 지방자치제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시대에 선거권이 대폭 확장되어 주민의 정치참여가 강화되었고 시의 중요한 행정공무원들은 시민이 직접 선거하는 제도가 생겨 시민과 시정부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게 되었다. 또 시의회가 집행기관과 의결기관으로 분리됨으로써 영국적인 식민통합형의 구체제에서 탈피하게 되었다. 1865년 종결된 미국의 남북전쟁은 미국 사회를 전반적으로 재편하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남북전쟁이 종결되면서 미국의 정치, 행정, 사회, 경제적으로 새로운 체제의 정비와 질서의 확립이 이루어졌고 지방정부는 주정부 우위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딜런의 원칙에 의해 주정부의 강력한 통제에 놓여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1920년대 대공황의 시기에 이르러 행정 수요가 증대하기 시작했고 연방정부의 주정부에 대한 간섭이 강화되었다. 행정책임의 명확화와 행정집행의 효율화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집행부의 권한이 강화되어 강시장형 또는 의회-지배인형 등의 유형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채택하게 되었다. 책임의 명확화가 중요해지면서 이런 흐름들이 각 주정부가 주민소환제를 도입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지방자치에 대한 개요는 여기까지 살펴보고 본직자의 신분을 규제하고 업무수행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제도의 운용에 있어서 각별한 신중을 요하고 제도 채택에 있어서 종합적인 고려를 요하고 있다.주민소환제의 장?단점을 살펴보면 공직자의 윤리 확보에 용이하고 평상시 행정에서의 민의반영이 충실히 될 수 있으며 주민의 공공문제에 대한 관심이 촉진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반면에 주민소환제로 인한 공직자의 위축 문제, 감정적인 운동에 대한 우려, 제도의 남용으로 인한 지방자치의 파행화 등의 약점 또한 가지고 있다. 이 주민 소환제는 미국의 대다수 도시를 비롯해 일본,대만 등에서 채택되고 있는데 심리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이 일반적이며 지금까지 실제로 행사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하지만 실제 행사되는 경우에는 큰 파장을 일으켜 여론이 분분했다. 그 예로 일본에 있어서 1957년의 현지사 해직청구와 1965년의 동경부의회 해산청구사건을 들 수 있다. 현지사 해직청구는 큰 현의 규모에서 대규모의 서명운동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서명수집의 곤란성, 중앙 정치권으로부터의 압력, 찬성과 반대파 간의 갈등 등 복잡한 양상을 낳았고 동경부의회 해산청구건 역시 사태가 복잡해져서 결국 의회해산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되고야 말았다. 도입부에서 제기했지만 일본은 우리 나라에 특히나 의미를 가지는 국가이기에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는데 중요한 참고사례가 될 것이다.다음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주민소환제도에 대해 살펴보겠다.미국의 주민소환제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는데 먼저 주민소환제를 채택한 것이 주 수준이었다. 그것은 1903년에 캘리포니아 주, 1908년 오리건 주에서 채택했었고, 8개 주에서는 재판관도 소환하며, 캔자스 주에서는 임명직 공무원도 소환하고 있는데 다소 강한 의미의 소환제를 채택하고 할 수 있다.미국 워싱턴 D.C.의 경우 주민은 D.C.에 등록된 선거권자의 10% 이상을 받아 D.C.정부의 모든 선거직 공무원을 그 임기만료전에 소환하는 소환청구서를 D.C선거?윤리위원회에을 1900년에 개편하려는 시도가 세 차례 있었으나 실패하였으며 개편 압력은 계속되었다. 시의회는 1900년 7월 17일 새로운 헌장을 기초하기 위하여 유권자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요구하였다. 15인으로 구성된 그 위위회의 위원 중 한명이었던 Jone R.Haynes는 미국에서 새로운 소환제 조항을 처음으로 기초하였으며 이들 조항과 함께 승인될 것을 기대하면서 소환제 조항도 포함시킨다. 다른 여러 도시들이 이미 주민발의나 주민투표 조항을 채택했기 때문에 이 주민발의나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별로 반대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 소환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제도였다. 놀라운 것은 위원회에서 소환제에 대해 별로 반대를 하지 않았고 소수 언론들도 이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1902년 헌장개정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 위원회에서는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제의 채택을 권고하였다. 시의회는 이들과 관련된 조항을 1902년 12월 1일 유권자위원회의 결정에 회부하였다. 발의와 투표는 6대1 압도적인 승인이었고 소환제는 4대1로 승인했다. 주의회는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제를 승인하는 로스엔젤레스 헌장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3년 1월 22일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제를 채택하는 로스엔젤레스 시의 개정된 헌장은 승인되었다. 주민소환제는 보스 정치에 관련이 있다고 간주되는 시의원을 해임하는 데 즉각 사용되었다.현재의 미국 주민 소환제에 대해 살펴본다.오늘날 미국의 16개 주는 헌법으로서 전체 또는 특정 공직자를 해임하기 위하여 소환제를 채택할 수 있는 권한을 유권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20개의 주는 법률로써 소환제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소환제를 규정하는 헌법 조항이 없는 여러 주에서는 종합자치단체가 소환제 조항을 규정하거나 소환제를 추가하기 위하여 헌장을 개정할 수 있도록 헌법에 자치헌장 조항을 설치하고 있다. 코네티컷과 펜실베니아 주는 자치헌장에 소환제 조항을 두는 것을 금하고 있다. 도시에서 정치적 보스에 의한 지배와 부패를 제거하고 경 것이었다. 시기적으로 미국의 소환제는 그 성립이 20세기 초반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고 대부분 진보주의 운동 범위 내에 있는 행정이론들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듯 하다.다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민 소환제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그동안 시행되지 못하다가 올해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고 내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소환제가 성립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공백기 내에 있는 이론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이론들이 토대가 되어 계속적인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시행에 관한 논의를 끊임없이 했다고 보는 것이다.대표적으로 보는 것을 약 4가지 정도로 압축해서 제시해 볼까 한다.첫 번째로 1940년대에는 정통행정학에서 지배되던 능률과 절약은 약화되었고 민주적 가치와 행정과정의 연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와 관련된 이론이 인간관계론이다.인간관계론은 조직의 목표와 조직구성원들의 목표간의 균형유지를 위해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관리방식을 처방하는 성격의 조직이론이다. 과학적 관리론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인간관계론은 Mayo 등 하버드 대학의 경영대학교수들이 미국의 Western Electric 회사 호손공장에서 1927년부터 1932년까지 수행한 일련의 실험에 의해 이론적 틀이 마련되었다.인간관계론의 요지는 첫째, 조직구성원의 생산성은 생리적·경제적 유인으로만 자극받는 것 이 아니라 사회·심리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는 점과, 둘째, 이러한 비경제적 보상을 위해서는 대인관계·비공식적 자생집단 등을 통한 사회·심리적 욕구의 충족이 중요하며, 셋째, 이를 위 해서는 조직 내에서의 의사전달·참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에 행태과학, 사회?기술학파 등의 이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인간관계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개념을 지방행정에 대비시켜 살펴보면 설명이 되겠다. 조직은 자치단체로, 생산성은 지방자치의 발달 혹은 부패의 방지 등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두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신행정론이다.1960년대 정부이다.
삶과 철학 REPORT▶'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올림포스의 12신들』이 책을 읽어 보기 전에 신화는 우리에게 뭐랄까....아주 친근하다고나 할까뭐 하여튼 신화라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 조금은 접하기 쉽고 누구나 한번쯤은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이디를 살펴보면 네티즌들이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라든지 아프로디테같은 신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이 책을 선정해서 읽는 것 또한 신화라는 친숙한 개념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신화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신들의 이야기’ 또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허구의 이야기’ 라는 정도의 수준에서 밖에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의 백과사전에 들어가서 신화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기로 했다. 다음의 내용은 yahoo의 백과 사전에서 따온 것이다.신화의 개념을 yahoo 백과사전에서는 어떤 신격(神格)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전승적(傳承的) 설화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은 아래로 내려가서 다시 인용하기로 한다.앞에서 언급했듯이 신화는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접할 기회가 많았고 어느 정도의 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report를 쓰게 되면서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조그만한 부분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신화를 다시금 인식하고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신화의 내용 구성상의 특징인 인과적이고 체계적 관계, 이를 요소로 해서 나타나는 전개방식 같은 것은 눈여겨 볼만 하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신화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사람 사회와 같은 위계적인 사회관계, 사람과 동일한 신들의 모습, 사고방식 여타 사람의 문화를 내포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측면에서 신화를 살펴보고자 했다.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신화를 대입해 보고 현재 나를 비롯한 사회 모습을 돌아보는 것 하나. 또 하나는 이 신화라는 것이 그리스 시대에 생겨서 로마 시 읽고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처음에는 이 두가지 관점에서의 독서를 하려고 했으나 막상 책을 읽고 나니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게 책의 내용애만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여러 신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고 그래서 하나의 지식을 얻었다는 기쁨또한 독서의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서두에 들어가기에 앞서 신화의 정의에 대해 인터넷의 사전을 이용하여 전체 인용하기로 한다.인용 부분 ?《신화를 뜻하는 myth는 그리스어의 mythos에서 유래하는데, 논리적인 사고 내지 그 결과의 언어적 표현인 로고스(logos)의 상대어로서, 사실 그 자체에 관계하면서 그 뒤에 숨은 깊은 뜻을 포함하는 ?신성한 서술(敍述)?이라 할 수 있다. 신화에는 여러 종류와 갈래가 있고 그 구조와 성격도 복잡하여 간단히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각종 신화에 공통되는 일반적?기본적 성격을 든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기원에 관한 신성한 전승설화인데, 그것은 단순히 태고에 있었던 사실에 관한 서술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자연?문물?인간의 행동에 대해서까지도 규제력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신화는 여러 현실적 존재인 우주?인간?동식물, 특정의 인간 행위, 자연 현상?제도 등이 어떻게 하여 출현하였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서,‘창조‘에 관한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창조역사의 주역은 여러 초자연적 존재들이고, 그들은 태초에 맡은 역할로 알려져 현재의 모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요컨대, 신화는 초자연적 존재의 창조활동을 설명하고 그 활동의 성스러운 성격(초자연성)을 나타내며, 또한 성스러운 것의 현실에 대한 참여(參與)를 의미한다. 인간이 죽어야 할 존재이고 양성(兩性)으로 나뉘었으며, 서로 싸우는 등의 현상은 초자연적 존재의 간섭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화의 진실성은 실제로 존재하고 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물과 현상으로 증명된다. 이를테면, 우주창조 신화가 진실인 것은 세계가 현존함으로써 증명되며, 죽음의 기원신화간의 모든 중요 행동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뉴기니의 카이족(族)은 그들의 생활양식을 바꾸기를 거절하는데, 그 이유로서 신화상의 조상인 넴이 행동한 대로 그들도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나바호족(族) 제식(祭式)에서의 영창자(詠唱者)는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까지도 태초에 성스러운 조상들이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현실의 사물이나 행동을 신화로써 정당화하는 예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사실 이 것을 읽고 조금이나마 신화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약간은 추상적인 설명이 많아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특이하다고 느끼고 또 주목해야 했던 점은 책 서두 추천사에서 저자의 누이가 지적했듯이 신화가 다분히 가지고 있는 남성 중심의 시선을 탈피한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화세계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이 책의 ‘판도라에게 찬사를’이란 chapter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성을 타락과 불행의 근원으로 보고 남성의 앞을 가로막는 하나의 장애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chapter 제목을 통해서 신화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인식은 잘못되었으며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또 교수님이 강의하셨듯이 신화는 사람이 만들었고 신의 모습 또한 사람의 생활과 연관된 모습으로 묘사해 놓았기 때문에 신화 속에 그려지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아니 당연히 인간의 사고 방식, 생활 양식이 들어가게 된다. 고대부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여성은 그 역할이 줄어들게 되고 중요성 또한 떨어지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남성의 힘, 역할, 중요성은 그만큼 배가 되었고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신화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모습은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여성의 역할과 사회적 지위가 향상됨으로 인해서 그 중요성이 점찬 커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결코 신화에서 묘사되는 여성의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여성이 평가 절하될 필요성은 없는 것이다. 그럴만한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분명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여성의 모습은 재조명될 필요성이 있다. 하나 바라는 것은 신화를 아주 심도깊게 연구하고 신화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신화라는 것을 접하고 또한 그것을 통해서 배우는 한 학습자로서 여성의 관점이 보다 합리적인 비율로 첨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아니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신들은 이름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사랑과 미의 여신이라고 하는 아프로디테는 베누스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졌고 최고의 신으로 군림하는 제우스는 유피테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그리스?로마 신화가 성립된 것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한 의문은 책 제일 첫부분에 해당하는 저자의 ‘일러두기’ 코너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저자는 로마인들이 그리스 신화를 후대로 전승하면서 신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꾸었으며 그리스 신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신들을 새로 집어넣어 그리스?로마 신화가 된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놓고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되고 나 자신의 무지에 대해 조금의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알게 된 기쁨 또한 벅찬 자부심이 되었다.책에 소개된 신들 가운데 프로메테우스, 가이아, 아프로디테 등을 재미있게 잘 보았다.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게 보았다기 보다 이런 신에게 내가 배워야 할 덕목이랄까 뭐 그런 것을 마음 속에 품어볼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먼저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에서 가장 인상깊었고 본받아야 할 것은 바로 희생정신이다. 현대 사회에서 작게는 우리 학교 내에서도 좀처럼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정신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정신 또한 신화에 등장하는 한 개념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 하나라도 자기 몫으로 챙기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오자 문득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트로이 전쟁이 발발한 경위에 대한 이면의 이야기로 아프로디테와 아테나 그리고 헤라가 누가 더 아름답나하고 내기를 하다가 전쟁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해주신 것이 생각났다. 여기서 여성을 대변하고 있는 여신들의 이러한 모습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생활에서 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다. 아니 관심을 넘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미(美)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는 미라는 것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때로는 전쟁과 같은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리만치 사회의 인식이 왜곡된 것이 아닌가 느껴졌다.아프로디테로마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美)와 풍요(豊饒)의 여신.베누스라고도 한다. 원래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채소밭의 여신이었으나, 그 특성이 그리스신화의 아프로디테와 일치하므로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되었다. 이 여신은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특정의 민족신화의 틀을 벗어나, 여성의 원형으로 서양 문학과 미술에서 폭넓게 다루어졌다. 호메로스에서는 아프로디테가 천공(天空)의 주신(主神) 제우스와 바다의 정령(精靈) 디오네의 딸로 되어 있는데, 헤시오도스에서는 천공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아들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생긴 것으로 되어 있다. 즉,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의 음부 속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의 성기(性器)를 낫으로 잘라 바다에 던졌다. 이렇게 하여 바다를 떠다니는 성기 주위에 하얀 거품(아프로스)이 모이고, 그 거품 속에서 아름다운 처녀가 생겨났다.알몸의 처녀는 서쪽 바람의 신 제피로스에게 떠밀려 키테라섬에 표착(漂着)하였다가 다시 키프로스섬까지 흘러왔는데, 여기서 그녀를 발견한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아름답게 꾸민 다음, 여러 신들의 자리로 안내하였다고 한다. 르네상스기(期)의 화가 S.보티첼리의 명작 《비너스의 탄생》은 이 같은 탄생 과정을 그린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탄생담(誕生譚)이 남성 성기에서 비롯되어 키프로스와 관련을 갖고, 사랑과 열락(悅樂)의 여신으로서.
1. 1900년대1900년대 복식은 아르누보(Art Nouveau)의 영향을 받아 유연한 신체의 곡선을 강조하는 S-커브 실루엣으로 여성의 복식은 코르셋을 사용하여 가슴을 앞으로 나오게 하고, 힙 부분 을 뒤로 나오게 하였으며 후반기에는 경제적, 과학적 발전을 배경으로 신여성이 늘면서 남성 스타일의 수수한 슈트, 풀먹인 흰 칼라 셔츠와 유사한 셔츠 웨이스트와 스커트를 입기 시작하였다. 남성 복식은 19세기 기본형이 그대로 지속되면서 어깨에 패드를 넣은 품이 넉넉한 싱글 혹은 더블 형태의 색 슈트를 입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19세기 말에 등장한 자전거의 영향으로 여성복에 사이클링복과 수영복을 비롯한 스포츠 웨어와 캐주얼 웨어가 등장 했으며, 뒷머리를 틀어 올려서 빗에 의해 고정시키는 랫 머리 스타일과 모자가 유행했다.2. 1910년대1910년대는 곡선적이고 추상적인 아르누보로부터 기계적이고 기하학적 형태의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 새로운 아르데코(Art Deco)의 영향권에 포함되는 시기이다. 여성의 사회진출로 패션은 기능적인 성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여성복의 현대화가 이루어져 치마 길이는 짧아지고 실질적이면서 기능적인 로 웨이스트(row-waist)의 직선형 실루엣이 유행하였다.남성 복식은 패드를 넣은 각진 어깨에서 자연스러운 어깨형의 신사복으로 허리가 들어가고 허리선이 약간 높은 재킷으로 변하였으며, 커프스가 있는 좁은 바지를 발목뼈 위로 짧게 입어 양말과 구두가 드러나게 되었다.3. 1920년대1920년대는 전후(戰後) 물질적 번영을 배경으로 한 소비와 쾌락주의의 시기이다. 미국인들의 생활 양식이 전세계에 보급되었으며 대중 문화가 태동하게 되었다. 아르데코가 더욱 성숙 단계에 이르었으며 여기에 미국적 정취(Exoticism)가 유행하여다. 여성 복식은 진선형 실루 엣의 기능적이며 현대적인 형태로 스커트의 길이는 짧고 가슴은 납작하여 마치 소년같다는 의미의 보이쉬 스타일(boyish style) 또는 갸르송 스타일(garcon였다.5. 1940년대1940년대는 대량생산에 의한 대량소비의 경향이 표출되었으며, 헐리우드의 영화 배우들이 패션 모델로 등장하고 미국의 디자이너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중에는 실용적인 기능복 형태의 밀리터리룩이 유행을 하였으나, 전쟁 후에는 급격하게 실루엣이 변화하여 크리스챤 디오르의 여성스러운 뉴룩(new look)이 등장하였다. 이는 여성스러운 미를 나타낸 드롭 숄더(drop shoulder)의 둥근 어깨, 가는 허리와 둥근 힙, 밑단 쪽으로 길고 풍부하게 퍼지는 플레어 스커트의 뉴룩은 귀족적 취향의 부르조아적 패션의 재생인 동시에 현대 여성의 착장미(着裝美)가 정착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6. 1950년대1950년대는 젊은이들이 패션에 관심을 가질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영화 배우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소녀들은 먼로를, 소년들은 엘비스, 제임스 딘과 같은 반항아, 화난 젊은이, 방관자의 이미지를 선호하였으며 디오르는 수많은 라인(H, A, Y, F-Line)을 발표하였고 여성들의 바지 착용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1951년의 리바이스사(Levi's)사의 등장은 이러한 경향을 촉진시켰다. 발렌시아가는 편안한 의상을 만드는 데 주력하였으며 솔기를 적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남성 복식은 기본적으로 효율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로서 회색 플란넬이 널리 착용되었다.7. 1960년대1960년대는 영국이 패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3C 시대(Color TV, Car, Cooler) 가 되었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철학이 성행하였다. 패션에 있어서는 대량 일상 표현한 팝 아트, 색채면에서는 대담한 몬드리안룩(입생로랑) 형태와 구성면에서는 단순 한 최소 표현 기법인 미니멀리즘이 반영되었다. 1965년에는 영국의 메리퀀트가 스피드 시대의 추세에 부합하여 선보인 영 패션과 무릎 위 10~20cm의 초미니 스커트가 선풍적인 인기였으며, 이는 금속사 스타킹과 긴 부츠의 폭발적인 수요를 가져왔다. 여성들은 영국의 패션 모델 특유의 야윈 몸되었으며, 성공한 사람들을 표현해 주는 의상에 대해 관심과 수요의 증가는 디자이너 상표가 급성장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스포츠 웨어가 필수품으로 등장하면서 운동복과 상표 인지도가 높은 운동화가 인기가 높았다.10. 1990년대1990년대는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국제화 또는 세계화되는 새로운 21세기로 이행되는 시기인 동시에 세기말적 경향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1990년대는 특별히 어떤 양식이 정 해져 있지 않고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을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하는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더 이상 패션에 있어서 고정된 법칙이 적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의복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고 스트리트 패션은 여전히 유행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 세계 패션을 이끄는 디자이너를 한 사람으로 구체화 시키기 보다는 스타일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랄프 로렌(Ralph Lauren),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도나 카란(Donna Karan) 등은 단순하면서 캐주얼한 미국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으며, 조르지오 아르마니(Georgio Armani), 소니아 리키엘(Sonia Ryliel), 타이 앤 로지타 미소니(Tai & Rosita Misoni) 등의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은 편안하 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밖에도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헬무트 랑(Helmut Lang), 동화적 소재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스트리트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전위적인 경향을 강조한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돌체 가바나(Dolce & Gabbana) 등이 있다.자료출처; | firstviewkorea.com | fashionjob.co.kr |2.『 아르누보 』아르누보 Style은 '새로운(nouveau) 예술(art)'을 의미하며 1890년부터 1910년까지의 장식예술 및 조형예술의 지배적인 예술양식을 지칭한다. 산업주의와 제국품들은 조잡한 과잉장식의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미술 수공예 운동은 1800년 전후에 시작된 사명론적 예술관을 부정하였다. 이 시대 예술가들은 정신적 귀족주의로 대중을 무시하고 실용성을 경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시대의 진실된 생활의 참모습을 보이지 않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예술가를 위한 예술'만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으로부터 격리될 수밖에 없었다.3.『 아르데코 』20세기초는 아직까지 아르누보가 국제적인 예술 양식으로 예술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예술사조가 합리성과 단순성, 그리고 구조적 기능성을 요구하게 되면서 아르데코가 태동하게 된다. 아르누보가 '수공예적인 것에 의해 나타나는 연속적인 곡의 선율을 강조'하여 공업과의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반면에 '아르데코는 공업적 생산 방식을 미술과 결합'시킨 기능적이고 고전적인 직선미를 추구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르데코의 이상이 실현된 것은 1920년대로 1차 세계대전 이전인 1914년까지는 19세기 말부터 서구 사회에 나타난 '세기말'적 경향이 계속해서 지속됨으로써 동방적 이국주의나 화려한 장식이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데스틸(DeStijl)운동과 바우하우스(Bauhaus)운동이 성립되어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아르데코는 데 스틸 운동의 신 조형주의와 바우하우스 운동의 기능주의에 자극을 받아 기능성과 단순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가속화된다.4.『 팝아트 』팝아트는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인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한 사조로 예술성 자체의 의미라기 보다는 광고, 산업디자인, 사진술, 영화 등과 같은 대중 예술매개체의 유행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대해 언급된 명칭이다. 특히 도시문화의 단면으로 통속적인 문화나 상업적인 문화를 가리키는 통칭으로 이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현대사회를 평하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작품까지도 포함하여 확대 수용하게 된 것이다. 팝이 태동한 1950년대 후반과 전성기를 이룬 1960년대는 바로, 팝 아트(pop-art)고급스럽기만 하던 톱디자이너들의 명품이 돌연 팝아트적인 파격을 선보이면서, 전세계 트렌드도 즐거운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02년 스프링 컬렉션에서도 팝아트는 초강력 트랜드. 브랜드마다 팝아트적인 아이템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올 봄 팝아트를 미리보자. 1960년대 급속한 산업 발전과 대중적 소비문화의 파급은 당시에 주류를 이루었던 순수미술과 대중미술의 벽을 허물어 이른바 팝아트(pop-art)라는 새로운 미술을 등장시켰다. 팝아트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앤디 워홀. 그는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프린트 하거나 스마일 마크, 코카콜라 캔, 유명한 팝 가수 등의 프린트를 차용하고, 디테일과 컬러가 대담해지고 화려한 특징을 보인다. 02년 Spring 컬렉션에서도 각 브랜드마다 팝아트의 강세는 대단했다. 샤넬의 로고 장식은 캐쥬얼 스타일이든 클래식 스타일이든 빠지지 않았고, 존 갈리아노와 무한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앨비스 프레슬리 슈트와, 라스베거스풍의 현란하고 펑키한 프린트의 크리스찬 디올은 팝아트의 선봉에 섰다. 셀린느는 섬세한 프릴 장식과 귀여운 스타일의 톱, 그리고 3차원적인 그래픽 패턴을 중요한 테마로 삼았다.5.『 옵아트 』옵아트(Op Art)는 영어의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약칭으로 여기서 옵티컬은 단순히 본다는 의미의 비쥬얼(Visual) 보다는 넓은 의미로 인간의 시지각의 원리에 근거를 둔 추상적, 기계적인 형태의 반복과 연속 등을 통한 시각적 환영, 지각, 그리고 색채의 물리적 및 심리적 효과와 관련된 것이다. 즉 시각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생리적인 착각의 회화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특별한 심리적인 과정이 지각과정의 한 부분인 눈을 통해서 뇌에 전달되어 사고의 세계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단순히 망막적인 예술의 극한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망막의 예술(RetinalArt)',혹은'지각추상(Perceptual Abstraction)'이라고도 명칭 되어진다. 1964.
- 한복 & 기모노 -vs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야기 할 때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韓?日 양국은 정치, 경제, 최근에는 문화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가 되었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과거 식민 역사에 의한 적대감으로 인한 갈등 때문에 그 차이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두나라는 사상 최초로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나라이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韓?日 양국이 과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자세로 하루빨리 관계 개선에 힘쓴다면 서로에게 많은 이익을 주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이며 그 첫 번째로 문화를 주제로 삼았다. 더 구체적으로 의(依)문화에 대해 살펴보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자.리포트의 주제는 ‘한복과 기모노’이다. ‘한복과 기모노’를 주제로 한 것은 이들을 비교, 분석하고 기모노를 통해 조금이라도 일본의 문화를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한복과 기모노를 세부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Ⅰ. 한복과 기모노의 의의 및 역사(1) 한복【의의】한민족(韓民族)의 고유한 의복으로 중국의 관복제도를 받아들여 한국 고유의 복식과 조화시키면서 발전시킨 것으로, 조선옷이라고도 한다.【역사】고조선시대에 이미 초의생활(草衣生活)에서 벗어나 칡과 삼으로 짠 옷감을 사용 하고, 전잠(田蠶)과 직조의 기예가 늘어감에 따라 의류문화에 진전을 보여주었다. 그 후 삼국시대에는 대체로 유(저고리), 고(바지)와 상(치마), 포(袍)를 중심으로 한 복장이었으며, 여기에 관모(冠帽), 대(帶), 화(靴) 또는 이(履)가 첨부되었다. 이 는 한대성(寒帶性) 의복 곧 북방 호복(胡服) 계통의 의복을 나타낸다. 이에 있어 유(저고리)는 오늘날의 승복?동방‘과 비슷한 것이었다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복의 기본형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다. 다만 관복(官服)에 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眞德女王 2년) 중국 당(唐)나라의 제도를 받아들 여 습용함으로써 고려 ?조선시대까지 중국의 제도를 준용하였다.중국과 한국은 정치 ?문화 교류를 통하여 양국의 복식도 서로 영향을 끼쳤다. 고 려 때에는 제25대 충렬왕(忠烈王) 이후 원(元)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 되면서 복 식 풍습도 몽골풍(蒙古風)을 많이 따랐는데, 질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 니었으며, 제31대 공민왕(恭愍王) 때 원나라가 쇠망하고 한족(漢族)의 명(明)나라 가 다시 중국을 지배하게 되자 몽골풍은 사라졌다. 그러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 고 소매가 좁아진 것은 몽골 복식의 영향이며, 이로 말미암아 띠가 없어지고 대신 고름을 달게 되었다. 또 여자 화관(花冠)이 당나라에서 전해 온 것이라고 하면, 족 두리는 몽골인의 고고리(古古里:姑姑, 顧姑)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壬辰) ?병자 (丙子)의 두 국란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의 자각심이 일기 시작하여 민족 복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조선 말 개화기에는 양복 ?양장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한복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졌다.(2) 기모노【의의】 기모노는 '기루'(着る?입다)와 '모노'(物)의 합성어다. 애초에는 말뜻 그대로 의 복 일반을 가리켰으나 서양문물의 전래 이후 양복과의 대비에서 '와후쿠'(和服), 즉 일본 전통 의상을 가리켰다. 현재는 한결 의미가 좁혀져 속옷인 '유번', 겹쳐 입는 상의인 '하오리'(羽織), 두루마기 등을 뺀 남녀의 원피스형 기본 의상을 가 리킨다.【역사】현재의 기모노의 원형이 굳어진 것은 에도(江戶)시대 중기 겐로쿠(元祿)시대 이후 라 보여진다. 가마쿠라(鎌倉)?무로마치(室町)시대의 정착생활을 계기로 하여, 고소 데(小袖)라는 작은 소매의 속옷이 웃옷으로 발전하였고, 그 후 에도시대에 들어와 서민생활의 향상과 더불어 일반화 되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 이 서구세계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일본인은 점차 그들 고유의 옷차림에서 벗어나 서구화된 옷을 입기 시작, 오늘날에는 명절이나 결혼식, 졸업식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기모노를 입고 있다.Ⅱ. 한복과 기모노에 대한 ‘생각 뒤집기’(1) 한복【일반적인 생각】‘우리 나라 사람들은 한복을 얼마나 자주 입을까?’라는 질문에 많은 한국인들은 한복이 한국을 대표하는 옷이기에 자주 입을 것이라 생각 할 겁니다.【생각 뒤집기】『아름다운 우리옷』이라는 잡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1993년 12월) 1년에 한복을 한 번도 입지 않는 사람이 응답자의 약 절반을 차지합니다. 또 착용한다 하더라도 명절이나 모임, 특별한 행사 때 입는다는 대답이 주를 이루고 있어 우리 옷이 이미 예복으로 정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항상 즐겨 입는다는 대답은 전체 응답자의 3% 정도여서, 한복을 생활복으로 받아들이는 층이 그리 두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의 한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생활한복을 평상복이나 간단한 외출복으로 입는 비율이 조금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생활한복 붐을 어느 정도 감안해보면 그다지 두드러지게 변화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며, 여전히 예복으로서의 기능이 우선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죠.【이유】사람들은 개화기에 접한 서양문화를 우리 문화보다 합리적이고 편리한 것, 좋은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서양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은 곧바로 우리문화에 대한 비하와 연결되어 우리 옷을 입는 것은 곧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라는 인식을 낳는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농업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생활복으로서는 '부적격'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2) 기모노【일반적인 생각 1】‘기모노의 허리띠인 오비를 묶을 때 등뒤에 장식용으로 맺는 큼직한 매듭이 베개나 허리 받침용으로 고안됐다?’【생각 뒤집기】여성의 기모노 차림은 '오타이코'(お太鼓)라고 불리는 등뒤의 매듭이 중요한 특징을 이룬 다. 오비 묶기에서 가장 많은 품이 들어가는 이 매듭을 제대로 맺기 위해서는 형태를 고 정시키는 보조용 천인 '오비아게'(帶揚げ), 그 안에 두툼하게 넣는 '오비마쿠라'(帶枕)등의 보조 도구들이 필요하다. 장식성이 강하지만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어 베개나 허리받침으 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 오해는 '오비마쿠라'라는 용어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일반적인 생각 2】‘일본 여성의 기모노차림은 헤픈 성문화의 상징이다?’【생각 뒤집기】일본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을 때 속옷을 입지 않아 허리띠인 '오비'(帶)를 풀면 바로 알몸 이 드러난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오해는 '유카타'(浴衣)에서 비롯했 을 가능성이 크다. 유카타는 '유카타비라'가 변한 말이다. 뜨거운 물 전체, 또는 온천?목 욕물을 가리키는 '유'와 얇은 홑옷을 뜻하는 '가타비라'의 복합어로 목욕을 마친 후 물기 를 빨아 들이기위해 걸치는 옷이다. 헤이안시대 귀족들은 베로 만든 유카타를 목욕 가운 으로 즐겨 사용했다. 에도시대 들어 면과 대중 목욕탕인 '후로야'(風呂屋)의 활발한 보급 으로 서민사회에서도 목욕 가운겸 잠옷으로 널리 사용됐다. 그러니 속옷을 따로 입을 까 닭이 없다. 우리가 겨울에도 아파트안에서는 잠옷 차림으로 지내듯 에도시대의 일본 서민 들은 유카타를 가정용 일상복으로 입기도 했다. 그러다가 19세기말 하오리를 비롯한 겹쳐 입은 옷이 개발된 후 비로소 서민들의 여름철 외출복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외출용 유카 타는 목욕가운용과는 달리 속옷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북아의 이해』- 한?일 양국의 음식 문화 비교과목 :...............학과 :...............학번 :...............성명 :...............김치와 스시는 각각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면서도 서로 애용하는 음식이기도 하다.한국에서는 스시의 인기가 높고 일본 또한 ‘기무치’라고 하여 한국의 김치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고 들은 바 있다. 한국 사람에게 김치는 없어서는 안되는 음식이기 때문에 크게 언급할 필요성은 없을 듯 하다. 그래서 여기서는 일본의 스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고 한국의 음식과 비교해보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그럼, 본격적으로 김치와 스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Ⅰ. 스시 & 김치의 어원【스시】생선요리의 압권인 스시는 육류를 주식으로하는 서양인들도 즐겨먹을 만큼 세계적 인 음식으로 각광 받고 있다. 에도의 3대 식문화는 스시, 장어구이, 덴뿌라라고 한 다. 모두 서민생활과 꽤 밀착한 가운데 발전한 것들이다. 또한 에도시대 간다에 漁시장이 생겨 당시에 漁式文化가 발달 할 수 밖에 없는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준 다. 이 스시의 어원을 보면 `맛이 시다고 해서 酸し라고 한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 이다. 이러한 스시의 어원은 도꾸가와시대 중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시대의 유 명한 학자의 저서에 스시란 말이 보이는데 이것이 스시의 어원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정의이다. 그때까지 일본에서는 스시의 어원에 관해 기록된 문헌이 없었다고 한다. 그후 1719년에 『백과자서』란 책에 스시라는 말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풀이가 나온다. 이책은 `지`란 자를 표제로 하여 `스`란 초, 즉 `시다`란 뜻 이고 `시`란 어조사라고 풀이 하면서 생선을 저장할때 밥과 소금으로 신맛을 냈으 며 초밥의 맛이 시기 때문에 `스시?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지`란 `?魚 (생선을 저장한다)`를 의미하는것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 여러문헌에도 대 부분이 이설로 기록하고 있다.【김치】김치를 의미하는 옛말은 '디히'와 '지'인데 '지는'는 지금까지도 김치의 다른 표현 으로 불리고 있다. 상고시대에는 김치를 '저'라는 한자어로 표기하였다. 삼국유사 에서 김치. 젓갈무리인 '저해'가 기록되어 있으며 또 고려사, 고려사절요에서도 ' 저'자를 찾아볼수 있다. 이후 '지','염지','지염'','침채','침저','침지','엄채','함채등이 김치무리로 말하는 것이다. 19세기 초의 저서인 임원십육지에는 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많은 종류의 김치가 선보이고 있다. 김치란 말은 '침채'라는 한자어에서 비롯 되었다. 이 한자어는 한자와 본고장인 중국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만든 글자인 듯하다. 한편 김장의 어원은 '침장'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의 "장에 절인 순무장아찌는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는 겨우내 찬으로 쓰인다. 또한 삼봉집 권7기에서는 고려시대에 채소 가공품을 다 스리는 '요물고'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 태종조 9년의 기록을 볼 때 김장을 보관하던 곳이 따로 있었으며 김장이 '침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Ⅱ. 최초의 스시 & 김치【스시】일본에서 최초로 만들기 시작한 스시는 후나스시(붕어초밥)로 고노에(近江)지역이 천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초창기의 스시의 재료는 붕어나 은어가 주종을 이 루었으며 해안지방에서는 조개류, 멍게, 정어리등 색다른 종류를 사용했다. 그후 세월이 흐르면서 멍게등은 없어지고 야채류,죽순,가지등을 이용한 야채스시가 등 장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스시인 동경의 니기리스시(주먹초밥), 관서지방의 하꼬스 시(상자초밥)와 사바스시(고등어초밥)처럼 다네(재료)와 밥이 서로 맛의 조화를 이 룬 스시라야 전통있는 스시로 인정 받을 수 있다.【참고 : 후나스시 담그는 법】5월초순 경 알을 낳기위해 얕은물에 모여드는 붕어를 잡아서 만드는데,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1. 붕어의 모양이 손상되지 않게 입으로 내장을 꺼내고 잘 씻는다.2. 뱃속에 소금을 가득채워 눌림돌로 눌너 1개월 정도 절여 둔다.3. 소금을 제거하고 따스한 밥을 뱃속에 넣고 잘라서 먹는다.- 후나스시 담그는 법은 현재의 스시발전에 큰도움을 주고 있다. 후나스시의 영향을 받 아서 지금도 스시업계에서는 만든다고 하지않고 담근다고 하며, 조리주방을 `담그는 곳(쯔케바)`이라고 말하고 있다.【김치】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될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오 늘날의 김치 모양은 1600년대 고추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인류가 음 식을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해 발효시키는 식품 저장 방법이 나오면서 우리 조상들 도 소금을 이용해 음식을 절이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것이 김치의 시작이 된 것이 다.Ⅲ. 스시 & 김치의 종류【스시】스시는 크게 마레스시와 하야스시로 구분한다.(1) 마레스시 : 고기를 소금에 절여 자연발효시켜 산미가 생기게 한 것(2) 하야스시 : 밥에 식초를 섞어 만든 것으로 우리가 말하는 초밥 형태이다.종류로는 노리마끼(김초밥), 니기리스시(주먹초밥), 이나리스시(유부 초밥) 등이 있는데, 이중 노리마끼와 니기리스시는 대부분의 초밥이 관서지방에서 유래된 것에 비해 동경에서 발생한 것이 특징이다.1) 노리마끼 : 김밥의 역사는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노리마끼(김밥)는 우 리나라의 김밥과는 달리 그 종류가 상당히 많고 복잡하다. 물론 최 근에는 우리나라에도 보통의 단무지 김밥에서 벗어나 소고기김밥, 김치김밥, 오징어김밥, 누드김밥(밥이 바깥 쪽으로 나오게 만든 김 밥)등 재료와 모양에 따라 다양한 김밥이 소개되고 있지만 일시적인 유행김밥 일뿐이다.노리마끼는 식재료와 김을 마는 방법 등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분 할 수 있다.① 후또마끼 : 호소마끼의 반대말인 후또마끼(太券:오오마끼라고도 한다.)는 한 장의 김으로 굵게 만 김밥으로 김을 살짝 구워 사용하며 재료는 오이, 단무지, 달걀등 개인 기호에 따라 넣어 만든다.② 호소마끼 : (細?) 김 한장을 반으로 잘라 가늘게 만든 것으로 모양이 총 같이 생겼다고 해서 '대포마끼'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밥 속에 는 감뾰라고도 하는 박속이나 오이 등 한두 가지만을 넣는다.③ 우라마끼 : 밥이 바깥쪽으로 나오게 만든 김초밥이다.④ 데까마끼 : 데까마끼(?火券:생선말이김밥)는 에도지방에서 창안한 스시다. 속에 마구로(참치)가 들어간 노리마끼의 일종으로 에도시대말 경에서 메이지시대 초기사이에 동경의 한 스시야에서 고안 되 었다고 한다.- 유래 : 도박장에서 놀던 사람들이 색다른 마끼를 부탁하여 감뾰(박속) 대신에 마구로를 넣고 와사비를 첨가해 먹기 편하게 작게 싼데 서 비롯되었다. 데까마끼라는 이름도 도박장과 유사하다.⑤ 데마끼(손 말이 김밥) : 노리마끼는 관동과 관서 양쪽 지방에서 모두 만들 지만 김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 다. 관동지역에선 김을 바삭하게 구워 말기 때문에 향이 좋고 윤기가 흐르는 반면 김이 눅눅해지지 않 도록 빨리 조리해야 한다.2) 이나리스시 : 이나리스시(유부초밥)의 기원은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1853년 경 간행된 「수정만고」란 책을 보면 天保시대(1830~18450)말 경에 에도 지방에서 `유부의 한쪽을 잘라 봉지같은 것에 잘게 썬 버섯.박등을 밥과 섞어서 넣고 채워 만든 이나리스시를 팔 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이나리스시를 알수 있는 유일 한 기록이다. 또한 이나리스시의 발생지가 나고야란 설도 있는 데 이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후 이나리스시도 시대의 흐름 에 따라 급속히 발달하면서 시대의 유행식품이 되었다.【김치】김치의 종류에는 통배추김치.백김치.보쌈김치.총각김치.섞박지.깍두기.부추김치.오 이소박이.동치미.열무김치.나박김치.배추겉절이. 비닐김치.순무김치.무채김치. 무오 가지김치.해물깍두기.열무감자물김치. 장김치. 풋고추김치. 파김치. 갓김치. 고들빼 기김치.깻잎김치.씀바귀김치.죽순김치.오이지 등이 있다. 스시와 비교해도 젼혀 모 자람이 없을 만큼 그 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하겠다.Ⅳ. 스시 & 김치 속 재료【스시】스시 속의 재료로는 여러 가지 식품들(어패류, 알, 달걀, 야채등)이 이용 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생선이다. 날 것을 사용한다 해서 일 어로는 `나마`라고 총칭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니기리스시(주먹초밥)도 식초, 설탕 등으로 조미한 밥을 뭉친 위에 와사비와 생선회를 얹은 형식이다.(1) 생선류 : 스시의 재료로 사용되는 생선에는 고등어,광어,농어,도미,장어,방어, 연 어,전갱이,전어,참치,학꽁치 등이 있다. 국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 으로는 광어(넙치)와 연어, 참치를 꼽을 수 있다.(2) 알류 : 초밥 속에 들어가는 알로는 게, 대구, 섬게, 연어, 철갑상어, 청어의 것 이 이용되는데 국내에서는 동글동글한 연어알이 가장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