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구운몽에 나타난 두 가지 인간상을 중심으로-Ⅰ. 들어가기 - 기존의 연구17세기 후반 김만중에 의해 지어진 〈구운몽〉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삶의 문제를 현실과 꿈이라는 무대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소설에 비판적이던 조선시대 사대부에게도 폭 넓은 공감을 얻었으며{) 당시 사대부의 구운몽 수용태도는 유교적 혹은 불교적 이념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조선후기로 와서는 소설에 대해 계속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음에도 1 부귀공명의 허망함. 2 석가의 우언. 3 〈이소〉가 남긴 뜻. 등으로 해석하며 구운몽을 받아들였다., 일찍부터 국문학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70년대까지는 이본 및 사상에 관한 연구가 집중되었고, 정규복에 의해 주도된 공사상설이 주를 이루었다. 80년대 들어서는 조동일에 의해 공사상설에 체계적인 반격이 가해지며 공사상설과 반대파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시기였다{) 이원수, 『고전소설 작품 세계의 실상』, 구운몽의 구조와 그 중층적 의미 , 1996, 경남대 출판부, p.64.. 이러한 점 때문에 구운몽의 연구방향은 사상연구에 집중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논쟁은 사상 그 자체보다는 작품의 해석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논쟁의 가열은 곧 작품 분석의 정밀화를 가져왔으며 많은 국문학자들이 구운몽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통해 구운몽에는 유, 불, 도교적 성격이 짙은 사상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 주된 사상이고 무엇이 부가되는 것이냐를 놓고 아직도 논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 첨예하게 대립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구운몽의 사상연구는 크게 삼교사상설{) Elspet K. Robertson Scott, 구운몽「영문본」의 서문, (The Cloud Dream of the Nine) "Confucian, Buddhist, and Taoist idea are m 모든 환경 그것이 시대적 상황이든 개인적 삶이든 나 와 환경을 철저히 나누고서 나 가 아닌 모든 것이 바로 그러한 거대한 힘의 한 종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김만중의 사유를 지배하는 가장 거대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기존의 논의대로라면 그것은 아마 종교가 아니었을까한다. 유교든 불교든 도교든 그것의 선후관계 혹은 비중의 대소관계를 따지는 식으로 기존의 연구가 이루어져 오고 있음은 앞서 말한 바이다. 불교사상설과 공사상설을 크게 불교사상설로 묶고 보면 기존의 연구는 삼교사상설과 불교사상설로 압축할 수가 있다{) 금강경을 바탕으로 한 의 경우 불교의 한 모습으로서 나는 이것을 불교사상설의 하위개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상 나는 구운몽이 불교적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에는 동의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삼교사상설의 주장이 더 옳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두 가지 연구 방향중에서는 불교사상설보다 삼교사상설이 더 타당하게 여겨지는 것뿐이다.구운몽이 꿈과 현실이라는 무대를 통해 상반된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구운몽의 기본적인 구성은 현실→꿈→현실 의 서술구조(환몽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표면적인 환몽구조에 중점을 둬 봤을 때는 분명 이것은 불교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것이 꼭 불교적 관점에서만 읽혀져야 하느냐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나 라는 식의 제목을 붙여야 했음이 마땅할 것 같다. 현실에서의 주인공은 성진 이며 육관대사의 제자이다. 꿈에서의 주인공은 양소유 로서 성진이 꿈속에서 환생한 인물이다. 성진과 양소유의 삶을 차례로 살피며 각각의 인물이 가지는 특성과 그것을 통해 이러한 의문을 풀어보도록 하자.먼저 성진의 삶을 살펴보자. 양소유가 잠에서 깨어 다시 현실로 돌와왔을 때는 깨달음의 성진 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구운몽이 보이는 표면적 층위는 이렇게 선조적으로 이루어진다{) 입몽이전(현실 불만족의 성진) → 입몽(현실적 인물인 양소유) → 각몽(깨달음의 성진). 성달음의 본질은 양소유가 느낀 인생무상 이상의 것은 아니다. 이것을 굳이 불교적 허무주의와 으로 환원시켜야 하는가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양소유가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기 전 어떠한 자발적인 계기에 의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불교로의 귀의를 보였다면 그러한 식으로 해석하는데 별 무리가 없을 듯 하지만, 인간으로 환생한 성진은 양소유의 삶에 대단한 만족을 보였으며 자신이 과거의 성진이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세속적 삶의 전형으로 살아간다. 또한 자신을 인간세계에 보낸 스승과의 만남에서도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육관대사가 다시 성진의 모습으로 돌려놓은 이후에도 오랜 후에야 비로소 자기 몸이 연화 도량의 성진인 줄을 알 (270쪽)게 된다. 이런 정도의 무상에 대한 생각은 태어나서 한번은 꼭 죽어야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보편적인 심회{) 이러한 심회를 드러내는 작품은 여럿이 있는데 그 중 시조의 탄로가 계열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가 있다. 歎老歌는 말 그대로 늙음 을 탄식하는 노래로서 그 이전의 향가나 고려속요 등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주제였는데 고려말기의 우탁에 의해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주자학적 세계관이 한번도에 유입되면서 비롯되는데 원형 이전의 순환론적 시간관 안에서 삼라만상이 존재하며 인간 의 존재도 이에서 예외적일 수 없어 영원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늙음을 끝 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그 것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 손에 가시들고 또 한 싶에 막대 들고/늙는 길 가리소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랴터니/백발이 제 몬져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늙음에 대한 무상감(우탁의 시조)이러한 인간의 무상감은 비단 늙음에서만 연유되는 것이 아니다. 조선초기에는 고려왕조의 허망함을 통해 인간 역사의 무상함을 드 러낸 작품군도 보이며 유구한 자연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유한함을 노래한 작품 역시 많이 보인다.이며 이것은 불교에서뿐만 아니라 여타의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기독교 역시 현세의 삶은 일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구운몽 발표 당시의 조선 사회는 소설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시기{) 김현양, 『한국고전 문학 작가론』, 소설 시대를 열어간 중세 지성 - 서포 김만중 , 소명출판, 1998, p362.이며 만약 구운몽이 불교적 관점에 입각하여 쓰인 작품이라면 강력한 유교적 지배질서를 굳힌 조선시대에서 이단{) 1511년 윤회화복지설을 담은 이 금서로 규정되어 왕명으로 회수, 소각되고, 작자 채수는 삭탈관직을 당했다.으로 몰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구운몽은 당시의 사대부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리고 구운몽이 유교적 사상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몇 가지가 더 있을 수 있다. 먼저는 구운몽이 성진의 삶보다는 양소유의 삶을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고{) 실제 분량 중 성진이 등장하는 부분은 13%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모두 양소유의 삶을 그리고 있다.(을유문화사의 구운몽), 두 번째는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가족제도에 관한 것이다. 양소유는 두 명의 부인과 여섯 명의 첩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사회가 간직하고 있는 일부다처제{) 정확히 말하면 축첩제이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세 번째로 작품에 나타난 효 사상{) 이 작품은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머니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라는 창작동 기에서부터 이것은 효사상은 지극한 반영이라고 할 수있다. 이러한 그의 창작 동기는 『서포연보』의 정묘년 기록에도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것을 소개해 보겠다. 「부군이 이미 귀양지에 이르러 윤부인의 생신을 맞이했다. 시를 지어 이렇게 말했다. 멀리 어머님께 서 아들을 그리며 눈물 흘리실 것을 생각하니, 하나는 죽어 이별이요 하나는 생이별이로다. 또 글을 지어 부쳐서 [윤부인의] 소일 거리를 삼게 하였는데 그 글의 요지는 일채의 분귀영화가 모두 몽환이다 라는 것이었으니, 또한 (부군이 뜻을 넓히고 슬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히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세속적인 삶과 영달의 삶이라는 두 문제를 꿈과 현실이라는 구조를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을 세 글자로 요약하자면 바로 이 되는 것이다. 구운몽에서의 꿈과 현실은 둘로 정확히 갈라놓을 수 없는 현실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존재가 바로 육관대사인데 그는 꿈과 현실의 모습에서 항상 같은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그에게 있어 꿈과 현실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비로소 자신이 성진이었음을 알게 된 양소유에게 네 흥취를 따라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을 뿐이라. 내 무슨 관계함이 있으리오. 또 네 말하기를, 꿈과 세상을 나누어 둘이라 하니 이는 아직 꿈을 깨지 못함이로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나비가 장주 되니, 어느 쪽이 거짓이며 어느 쪽이 참인지 분명하지 못하도다. 성진과 소유 어느 것이 참이며 어느 것이 꿈이뇨? (271쪽)하는 물음에서 그러한 점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며 성진은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이러한 성진의 행동은 작가의 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작가는 이러한 식으로 세속적 인물인 양소유의 삶과 탈속적 인물인 성진의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현실에 집착을 하게 되면 이것은 구운몽은 불교적 입장을 강하게 나타내는 작품이 될 것이고 꿈의 문제에 집착을 하게 되면 이것은 유교적 입장을 강하게 나타내는 작품이 된다. 상반된 인간관을 꿈과 현실의 무대로 올려놓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독자들에게 던지며 작가 자신은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셈이다. 구운몽은 이처럼 상극적 인간관을 보여줌으로서 세속과 탈속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 최종적인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Ⅲ. 꿈과 현실의 순환 - 김만중의 삶{) 김현양, 『한국고전 문학 작가론』, 소설 시대를 열어간 중세 지성 - 서포 김만중 , 소명출판, 1998, pp363-367.과 작가의 사유를 지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