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나 홀로 여행을 읽고21세기 나 홀로 여행이라는 책은 나에게 그전에 살아온 과거와 지금 나태하게 하루를 눈만 깜박이며 무의미 하게 흘려보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곳이 어디이든 발길이 닫는 곳이면 무작정 배낭 하나를 메고 떠나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지금 내 나이는 24살.. 대학생활에서 늦각이로 불리기도 하고 때론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선배들과 같이 있으면 어중간한 나이이기도 하다.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이 언니 벌써 24이구나 하며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한다. 처음엔 장난처럼 받아들였지만 결국엔 나 스스로 내가 벌써 24이구나 난 시간이 얼마 없구나 하며 시간에 얽매여 살아가기를 자청하기 시작하였다. 난 시간이 없고 따라서 여행을 다니는 것은 나에게 사치야 라고 생각하며 살아 온 것이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지금 2년이란 시간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짧은 순간에 속하는 시간이지만 지금 뒤돌아 봤을 때 그때의 시간은 나에게 무의미한 추억의 백지처럼 남아있다. 이것은 마음만 급해서 시간에 얽매이고 시간의 노예로만 지내온 시간들이었다. 당장 시간이 없다고 나 스스로를 탐구해보고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2년이란 시간을 공부에 전념한 것도 아니고 어떠한 성과를 이루어 낸 것도 아니다. 여행이라는 휴식 없이 나는 방안에서의 휴식을 당연스럽게 여겼고 그 안에서의 휴식을 일상화하였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에 대한 성숙은 방 크기만큼도 자라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달라진 내 모습을 다시 찾아보고자 일본 여행을 신청하였지만 많은 약속들과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시간에서 나는 그 약속들을 택해야만 했다. 이러한 내 모습을 후회하기도 잠시 나는 그 일상에 맞추어 살아갔고 우연찮게 21세기 나 홀로 여행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을 때 다시 나를 찾아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21세기 나 홀로 여행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나 자신의 색깔을 찾아보자. 그게 결코 어디든 구에 받지 말고 내가 가고 싶고 나 자신의 색깔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곳이라면 무작정 떠나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때의 일정을 생각해 보았다. 계절학기로 빽빽하게 채워진 나날들 그리고 아르바이트.. 그것은 결코 나를 대변해 주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은 일본여행을 혼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수업 중에 일정에 맞추어 다니기 보다는 짧게는 10일에서 길게는 보름정도 정말 나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항상 여행을 다니면 두 명 세 명 네 명이서 다니곤 하였는데 혼자 갈 것을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마음은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다. 오히려 학과 공부도 더욱 의욕이 생긴다. 그동안 학과 공부에 얽매이면서 나 자신까지 옭아맸던 내가 참 미련스러워 진다. 경제적 여유만 허락된다면 앞으로의 나를 다짐하고 더욱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자 나 자신을 위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더 나은 나의 미래를 위하여 좋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가서 잘 할 것이다 잘 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될 많은 것들이 나에게 더욱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만 같아 무척이나 흥분된 상태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또한 대학교 교양에서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교훈들을 느낄 수 있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내가 21살 때 읽고 많은 영감을 받았던 책이다.
신념의 마력을 읽고내 나이는 24살, 인생이 4계절과 같다고 한다면 나는 이제 막 봄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념의 마력을 읽고 나는 과연 지난 봄과 초 여름을 맞는 현재의 순간까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미스테리나 영적인 이야기들은 허황되고 허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사람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이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운명론자였던 내 자신역시 나의 욕구에 열정을 불어넣고 그것을 신념으로 굳혀 성공을 이룬 경우가 많았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성공의 원인임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운명 안 에서 성공을 거둔 것 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나의 소극적인 생각 자체가 그동안 쌓여온 잠재의식속의 다양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전과를 하겠다는 일념아래 미래의 사서교사가 되어 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그려가며 나 자신은 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 했던 모습을 생각해보자. 사서교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나 자신은 할 수 있다는 반복적 암시가 나의 잠재의식 속에 신념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신념의 마력이 전해주는 마음가짐들과 기존의 나의 마음가짐을 견주어 보고 이를 반성의 거울로 삼아 앞으로 남은 3계절을 찬란하게 보내기위한 나만의 실천계획을 세워보아야 하겠다.1. 기적을 가져다주는 신념가끔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서 불치병에 걸려도 살아남는 사람들을 접하곤 한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살 사람은 다 사나보다’ 라고 막연히 생각해 버리곤 하였지 이것이 신념이 가져다 준 기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병에 걸렸어도 나는 꼭 완치될 것이다 라는 마음가짐과 병이 낫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가짐은 남극과 북극과도 같은 것이다. 나 역시 이것을 알면서도 알레르기를 앓을 때 이때 되면 또 알레르기가 나겠구나 하고 생각해 버렸다. 내가 진작 나의 알레르기가 나을 것이라고 자기 암시를 하고 이를 낫기 위한 행동을 실천에 옮겼다면 지금까지 알레르기로 고생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가짐이 사람의 몸을 좌우하고 사고를 좌우하고 결국엔 인생전반을 좌우하게 되는 것 같다. 본문 중 “가진다고 믿을지니 그리하면 가질 것 이다” 라는 라틴어 격어에서 보더라도 이는 신념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힘을 만들어주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만큼 잠재의식에 담겨있는 신념의 힘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며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따라서 스스로 지레 겁을 먹어 공포를 형성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를 포장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믿고 내 안의 잠재의식의 힘을 믿고 나만의 신념을 만들어 나간다면 나의 꿈은 성공을 향해 지름길로 달려 나가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2. 긍정적 창의적 사고는 황금향의 주인.가끔 방에 우두커니 앉아있을 때 방안을 둘러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 저 물건은 누구의 손을 거쳐 나에게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망상이라고 여겨 금방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러나 그 속에 내가 깨우치지 못한 엄청난 진리가 담겨져 있었다. 사물 하나하나에는 물건을 창안하고 만들어낼 수 있던 사고의 힘이 작용했던 것이다. 하나의 망상일지라도 한 사람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사고는 그 사람을 지배한다.내가 망상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부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해왔다. 사고하는 자체를 망상이 아닌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이다 라고 믿는 마음가짐 자체의 전환이 필요한 듯하다.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러한 사소한 생각을 지나치지 않고 실천에 옮김으로써 창의적이고 훌륭한 발명품이 탄생하게 된다는 자명한 진리를 나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나 자신을 비하했던 것임이 아닌지 또는 ‘내가 하는 사고가 나에겐 너무 과분한 것이다’ 혹은 ‘내가 이런 생각을 실천할 수 나 있겠어?’ 라고 생각 했던 것들이 내 자신의 가능성을 막아 왔던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풍부하고 힘찬 상상력은 무엇이든지 완성된 형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신념의 힘에 의해 그 상상은 자극되고 완성된다고 한다. 지금껏 풍부한 상상력과 사고의 힘으로 신념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실천하여 황금향에 주인이 되었던 많은 위인들을 본보기 삼아 나 역시 나의 사고를 믿을 것이며 그것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도록 해야겠다. 하루하루를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서 당장의 것밖에 보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며 살고 있던 내 자신이 한스러웠던 것을 이제와 후회해 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현재가 중요하고 앞으로가 중요하기 때문에 신념의 마력에서 듣고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해야겠다.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나의 잠재의식에 사념의 재료를 주고 욕구를 붙여 생활한다면 나도 어느새 황금향의 주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3.현재의식에서 잠재의식으로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이 서로 협력해 조화를 이루면 최대의 성공이 달성 된다고 한다. 이것은 성공하고자 하는 현재의식의 욕구가 잠재의식 깊숙이 내재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재의식이 이성과 논리, 형식, 비판, 계산, 자각, 도덕심 등 이성을 작용케 하여 사고의 원천을 끌어내면 이를 잠재의식과 연결시켜 행동하는 원동력을 일으켜 주게 되는 것이다. 이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많다. 세상은 논리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잠재의식을 통해 해결과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느끼고 보는 것들을 현재 의식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을 통하여 마음으로 느끼고 본다면 내 안에 막연한 모든 문제점들이 해결될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4. 반복암시를 하자.‘나는 할 수 있다’와 ‘나는 할 수 없다’라는 것은 자석의 N극과 S극과 같아서 그것이 불러오는 행동의 결과는 매우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만큼 자기암시 혹은 자기최면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자기에게 주술을 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할 것이다. 나 역시 암시가 중요하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간혹 내 자신에게 나는 할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마음 안 에서 불쑥 튀어 오르는 불안감과 의혹감은 자신감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늘 이렇게 암시와 좌절을 반복하던 탓에 자기암시를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려고도 하였다. 하지만 신념의 마력에서는 자기암시를 위해선 반복적으로 주문을 걸으라고 말한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등 내가 소망하는 모든 것에 반복적 주문을 걸면 그것은 어느새 내 안에 신념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나는 암시 후 ‘과연 이것이 나에게 가능한 것일까’ 라는 의문점을 제기해 좌절을 맛본 후에는 또 다시 암시를 하지 않으려 하였던 것이다. 공부를 할 때 머리 속에 깊이 새기기 위해 반복학습은 중요하다. 자기암시 역시 외워지지 않으면 거듭 외우는 반복학습처럼 거듭 반복 한다면 내 안에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5.영상을 그리자.나 자신은 자주 마음속에 사서교사가 되어 도서관 실무를 보는 영상을 그리곤 한다. 이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내가 미래에 이러한 모습이면 좋겠다’ 라는 막연한 이상향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향을 그릴지라도 어쩌면 나는 사서교사라는 그 영상의 모습을 실행하기 위해 많은 길을 돌아왔는지 모른다. 이처럼 마음속에 영상을 그리는 일이 은연중 나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아 내가 원하는 길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골프를 칠 때 골프공이 이렇게 날아갈 것이다 라는 영상을 그리고 치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훨씬 더 정확한 방향으로 공이 날아간다는 것이다. 처음에 의심이되 돌을 하나 주어 가로수에를 목표로 돌을 던져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가 돌을 던질 때의 방향과 던져졌을 때 돌이 날아가 가로수에 맞는 영상을 그렸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결과는 너무 확연히 달랐다. 운동신경은 늘 빵점이라고 생각해 왔던 나인데 놀랍게도 영상을 그리고 돌을 던지니 가로수에 명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체험을 하고 돌아섰을 때 나는 이미 신념의 마력에 대해 확실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제주 여행기제주야 반가워김동리 선생의 역마살이라는 책의 내용처럼 나에게도 마치 역마살이 끼인 듯하다. 그만큼 나는 운동화만 주어진다면 어디든지 떠나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성격 탓에 방학마다 유럽과 중국 그리고 자전거나 도보로 전국순회를 다니곤 하였다. 내가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고 여자로써 무모하다고 할 만큼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라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아니며 군중 속에서는 더더욱 찾을 수 없다. 진정한 나는 내가 사는 이유를 알려주며 삶의 고귀한 가치를 일깨워 준다. 또한 무료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여기서 언급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여행의 매력들이 나를 어느 곳이든 이끌어 준다. 이번 일본 배낭여행 역시 벅찬 설레임으로 시작 하였지만 오빠의 결혼식으로 인하여 참여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많은 상심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역마살이 낀 사람처럼 일본 배낭여행을 위해 비워둔 몇 일의 시간을 다른 곳으로 다녀오자고 결정하였고 그 행선지는 바로 제주도였다.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곤 하였지만 유독 가보지 못하였던 곳, 나에게 유채꽃의 향기로 가득 찬 신비로운 곳으로 인식되었던 곳, 이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무작정 배낭을 메고 나는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받은 처음에 느낌은 관광지는 관광지 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신혼여행을 온 모습들 가족여행을 온 모습들 참 정겨운 모습 들이었다. 너무나 행복해 하는 모습들 속에 나에게도 그 커다란 행복이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차가 없고 시간이 짧기 때문에 내가 일정에 정해 놓은 곳은 가능한 한 제주의 숨어있는 기념물과 제주자연과 관련된 체험을 하고 돌아오자는 취지하에 소인국 테마파크와 오설록 전시관 초코렛 전시관 도자기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장과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나비들을 모아놓은 분교까지, 이렇게 일정을 짜놓았다. 먼저 들른 소인국 테마파크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포근하게 날이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맑게 게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것은 현무암의 돌의 특성상 구멍에 의해 물이 잘 빠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같으면 물을 퍼낸다고 난리를 쳤을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많은 비에도 여유로운 그들의 모습과 사뭇 대조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터졌다.다음은 소인국 테마파크에서 나와 오설록 전시관으로 향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차를 무척 좋아한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겐 행복 그 이상이다. 녹차 한잔이 가져다주는 그 여유로움과 은은한 향은 나에겐 천국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다. 그만큼 나는 차를 좋아하고 즐겨 마시기 때문에 제주도의 오설록 전시관은 나의 여행코스에서 빼놓지 못할 코스였다. 보성의 녹차 밭도 유명하지만 제주도의 차야말로 청정한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차의 생산지로서 최적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전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신이 났다. 오설록 전시관에 도착했을 때 천연잔디로 깔아 놓은 듯 넓게 펼쳐진 녹차의 세계는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이렇듯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 정말 좋다. 남들은 나에게 감수성이 지나치게 풍부해서 자연과도 이야기를 한다면서 사차원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나만히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면 나는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그것이 내가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좋은 장점을 가져다 준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은은한 녹차 향과 나와의 만남은 아름다움 그 자체 였으며 눈 감으면 보이는 오렌지 빛의 따뜻한 세계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녹차박물관은 남 제주군 안덕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내부에 들어서면 차의 역사와 공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시설을 만날 수 있었고 설록차 제품과 녹차를 활용한 여러 가지 제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인 공간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자연친화적인 휴식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였다고 은은한 녹차향과 바람 내음이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고 온몸을 감싸도는 바람이 우리의 촉각을 자극하며 동시에 녹차의 그 신선한 맛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한다. 이렇듯 오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곳에 와서 차를 마신다면 힘든 생활에 찌들었던 우리의 정신을 맑게 씻겨줄 것이다. 나 역시 박물관을 둘러 본 후 다점에 앉아서 녹차 한잔을 마셨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는 것은 녹차 한잔이 주는 행복감에서 오는 듯 싶다. 오설록을 나와서 대략 1시간 정도를 걸어서 근처의 초콜릿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이번 초콜릿 박물관은 코스에 정한 것은 아니었으나 도자기를 만드는 곳을 거쳐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여서 재미삼아 둘러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단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예쁜 초콜릿을 보면 손이 저절로 가곤 한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서 오른편에 보이는 트롤리 버스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만화 속에나 나올 듯 한 장난감 같은 이 차는 모형으로만 전시 되는게 아니고 중문관 광단지 사이를 실제로 오간다고 하니 재미를 조금 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때 운영이 되고 있지 않아서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박물관의 외관은 초콜릿을 녹여 칠한 듯 한 모습이었다. 영화 찰리의 초콜릿 공장처럼 그 안에 맛있는 초콜릿들이 가득 차있을 것만 같았다. 박물관 안에는 각국의 초콜릿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영상실과 직접 수집한 전 세계 패키지 디자인 샘플을 구경 할 수 있었다. 삭막한 기계가 돌아가는 제조라인이 아닌 인간의 숨결과 손결이 살아있는 수제품 초콜릿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과 같이 해온 초콜릿 이라는 수식어가 생각났다. 그만큼 초콜릿은 피로한 우리의 감정을 콘트롤 하는 큰 마력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것을 간과한 채 무심코 초콜릿을 집어 든다. 이런 것을 보았을 때 결코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영리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콜릿을 먹으면서 기분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경험적 결과에서 우리는 초콜릿을 먹는다.일 것이다. 제주도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제주도는 자연적인 특성에 맞추어 기념품을 고르기가 무척 쉬었다. 이렇듯 우리나라 역시 특성화에 맞추어 관광 상품 역시 그 지역에서만 팔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행에서 느끼게 되는 즐거움 중 하나가 쇼핑인데 그러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는 건 여행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 보았다. 이곳에서 제주도 산 초콜릿으로 입을 즐겁게 한 후 도자기 제조하는 산경도예로 향하였다. 초콜릿 박물관을 나와서 북서방향으로 1시간정도 걸어서 도착한 산경도예는 제주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해안도로변에 폐교된 학교를 작업공간으로 바꾼 곳이었다. 흙으로 만나는 사람들 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운영 중인 이곳은 3500여 평의 넓은 부지에 교육장 전시장 작업실 전통 가마 들의 시설들이 있었다.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규모로는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고 한다. 입장과 전시물 감상을 무료였다. 넓은 운동장과 단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빈 교실이 있어서 배낭여행객들에겐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 전 예약만 하면 누구든지 전통 가마나 석유 가마를 이용하여 도자기 테라코타 토우 들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러한 체험관광은 여행을 더욱 실속 있고 뜻 깊게 해준다. 기초지식이 전혀 없어도 전문 강사님의 도움으로 간단한 교육을 거치면 바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의 작품은 건물의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전시장에 전시가 되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도자기가 있으면 구입도 가능 하였다. 가격은 시중에 나와 있는 것 보다 다소 비싼 편이지만 하나하나 정성을 드린 작품이라 생각하면 전혀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약을 하지 않아 직접 만들어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중 전시관을 둘러보며 나비 모양이 그려진 도자기를 구입 하였다. 나는 곤충 중에 나비를 유난히 좋아하는데 나비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한 모습이 잘 그려진 작은 사람의 삶의 색깔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지금의 우리가 나비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결코 누군가가 봤을 때 아름다운 나비라 불릴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으며 날개짓 조차 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애벌레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노력하고 있고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며 날개 짓을 하기까지 현재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떠한 색깔을 가진 나비가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비가 되지 못 할 지도 모른다. 애벌레에 멈추어 그대로 살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비가 되고 싶고 너무 화려한 색깔의 나비로 남들의 시선을 끌기보다 적당히 아름다우며 고고한 색을 띄는 나비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까지는 무한한 노력이 필요한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나비가 되기를 노력한다. 이렇듯 나비는 나에게 좌우명과 같으며 내 인생의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나비를 실컷 볼 수 있다는 것 하나에 나비박물관을 나의 여행코스로 정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이 곳 나비 박물관의 정식명칭은 나비레로 세계 희귀 나비 곤충 생태전시관이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폐교가 된 학교에 여러 나비와 곤충을 전시해 놓았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어린이들이 었다. 그만큼 나비나 곤충은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나비는 이미 잊혀진 존재인 것만 같았다. 이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이곳 나비 박물관에 와서 소리를 지르면 관람했던 그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까..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얽매여서 동심은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어른들도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건 어쩌면 자연의 이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라면 나는 그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이는 어린이 답게 어른은 어른스럽게 그러한 경계도 자연의 섭리라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동심이 살아있는 어른들이 많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활기찰까 하는 생각
김정희 추사고택 답사 보고서많은 답사지 중 어딜 갈까 선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주 한옥마을을 다녀올까 생각도 하였고 수업 중 알게 된 민속마을 중 한 곳을 다녀올까 생각을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정한 곳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굼리에 위치한 김정희 추사 고택이었다. 선택의 이유는 역사적 견문이 짧아서 인지 내가 그나마 잘 알고 있는 분의 집을 방문한 다면 더 쉽게 와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적 금전적 여유와 문화재급이상을 선택하려고 할 때 가장 부합되는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결정의 번복 없이 추사고택 답사에 오르게 되었다.답사를 많이 다녀보지 않아서 인지 사진을 많이 찍어보지 않아서 인지 쉽게만 생각했던 사진 찍기는 생각했던 것 보다 어려웠다. 더욱이 그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탓 에 어디를 찍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고택 안 에 있는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사진을 찍기보다는 하나의 풍경을 담는 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는 커다란 대저택은 아니었지만 그 집에서 품어 나오는 간소한 매력과 자연과의 어우러짐이 하나의 그림과도 같았다. 처음 가 보는 낯선 공간속에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추사고택은 아름다웠고 느껴보지 못한 익숙함이었다. 내부가 많이 수리되어 옛것의 흔적을 전부 느낄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그 공간 안에 추사 김정희의 힘이 미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배운 김정희에 대한 기억은 추사체라는 서예를 통하여 조선후기에 예술의 발달에 한껏 기여한 위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5년이 다 되어가고 그만큼 역사에 손을 뗀지도 5년이 다되어 가지만 김정희 만큼은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나에게 공경의 대상이었다. 그는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는 나에겐 연구의 대상이며 그의 문학사랑과 서예에 대한 깊은 조예는 같은 문화인으로써 동감의 대상이다. 그의 문학적 향기가 뭍어나는 고택의 그 곳을 사진으로 나마 다시 느껴보는 시간이라 무척 설레인다.추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 용의 머리가 삽교천의 물로 들어가려는 모습을 띈다고 표현하였다. 따라서 길게 누운 용이 머리를 물에 대고 막 입수하려는 지점이 용궁리라는 것이다. 산에 올라보지 못하여 그러한 형세 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풍수학적으로 해석하는 조상들의 사상이 참 참신하고 재미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월성위는 많은 돈을 주고 그 곳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그만큼 좋은 지리적 요건 때문에 자신의 부친에 묘이자 추사 김정희의 고주부인 김흥경의 묘도 그곳에 안치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53칸이나 되는 집을 짓고 살았을 월성위가의 명망을 현재는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추사 김정희가 그 명맥을 이어받아 살았을 그 곳에 추사 김정희의 기품이 느껴지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하였고 그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보게 되니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알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추사고택은 현재 1976년 1월 9일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제 43호로 지정되어있다. 현재내가 가본 곳은 새로 지은 건물 이라고 하였다. 화재로 인하여 그 전의 53칸의 방은 불에 타버렸고 그 이유 때문에 필적과 유물도 많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는 인간문화재인 이광규옹이 부분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하였다. 불에 타기전의 모습은 볼 수 없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문학을 좋아하고 추사 김정희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장소임은 분명하다.추사고택은 솟을대문과 ㄱ자형 사랑채 ㅁ자형 안채 그리고 그 뒤로 사당으로 구성되어있다.사대부가답게 솟을대문을 지었고 사랑채는 손님을 받을 수 있게 개방적인 형태와 안채는다른 한옥보다 많이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다. 집적 가서 보니 안채에 유난히 창이 많은 것을 개방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폐쇄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치 그 것도 참 재미있다. 지금부터 추사고택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곳을 다시 살펴보겠다.추사고택 입장권 판매소의 모습.추사고택의 왼쪽편주고 있다.사랑채의 모습사랑채의 지붕모습지붕의 모습은 팔작지붕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근엄하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지형에 따라서 기단이 생긴 곳에는 맞배지붕으로 연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사랑채 지붕전통한국건축의 이해시간에 망와라고 배운 부분이라 그곳을 확대해서 찍어보았다. 나는 한옥지붕을 보면서 그 시절 어떻게 저렇게 세심하게 하나하나 쌓고 또 그위에 조각을 올릴생각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 선조들의 세심함과 자연스러움이 문뜩 묻어나는 모습이 정겹다. 사나운 표정의 조각은 악귀를 쫒아내기 위한 미신적인 존재가 아니었을까.사랑채 지붕이곳이 교수님이 말한 박공이라는 곳일까. 지붕의 구조에 대해서 많이 알아간다고는 하였지만 막상 가서 구분하려니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한옥을 비교해봐야 어느정도 이해력이 생기는 것일까. 다음엔 다른 곳에 답사를 가게 되면 비교 가능한 경험이 생긴 것 같다.사랑채 지붕사랑채 지붕사랑채 지붕 안 쪽의 모습. 이곳이 평고대라는 것 일까.사랑채 지붕 안쪽사랑채 지붕 안 쪽이 기단에 따라 한 쪽이 높고 낮아서 이렇게 맞배 지붕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을 보면 기단에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지형의 형태에 맞추어 그대로 집을 지었다는 것에 조금은 놀라웠다. 현재의 우리라면 평평한 지형을 만들기 위하여 굴삭기로 밀고 심지어 산까지 밀어버리는 데 말이다. 그만큼 자연에 순응하는 조상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사랑채 지붕사랑채 섬돌 밑반가운 사람이 오면 버선발로 뛰어내려온다고 말씀 하셨던 그 섬돌 밑이다.이 곳 사랑채에 얼마나 많은 반가운 사람이 다녀 갔을까. 월성위는 누구를 반기었을까.섬돌의 모양이 잘 다듬어져 있다.사랑채 대청추사고택에서 눈여 결 볼 곳 중 한 곳이 바로 대청마루라고 한다. 내가 키가 작아서 인지대청의 높이가 꾀나 높았다. 이정도로 높고 큰 대청은 서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이러한 대청집을 육간대청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사랑채 초석기단위에 초석을 이렇게 높집의 경조사를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니 넓은 것이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지금의 우리라면 거실에 해당하는 곳인데 월성위가의 세력에 비추어 볼 때 많은 사건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공간이었을 것 같다.화단 앞의 석년해시계 구실을 하였다는 추사 김정희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돌기둥이 만드는 그림자에 따라서 시간을 짐작하였다고 하니 태엽을 감을 필요도 시계 약을 갈아 끼울 필요도 없는 자연시계이다.안채 중문사랑채를 넘어서 안채로 이동 하였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이는 한 편 안채는 중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그만큼 부녀자들이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보안에 신경을 쓴 듯이 보인다. 중문의 옆에도 추사의 글씨들이 곳곳이 달려 있다.중문으로 들어서서 뒤로 돌아보았을 때 사랑채의 벽부분이 보인다.안채 구조안채의 구조는 여섯 칸 대청 두 칸의 안방과 화순옹주가 거주했을 두 칸의 건너방그리고 2개의 부엌을 갖춘 ㅁ자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 ㅁ자형이라 그런지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경향이 없진 않았지만 짜임새 있는 경제적인 구조가소박해 보인다.안채의 섬돌잘 다듬어진 기단의 높이가 높아서 그런지 계단을 놓았다. 사랑채처럼 섬돌이잘 다듬어져 있다.안채의 구조중문 왼쪽 편에 붙은 행랑채중문 옆에 자리 잡은 농상실이라는 팻말에 행랑채가 있다. 이 농상실은 충청남도 지정 문화제 44호로 농사짓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원래 경기도 과천에 있던 농막에 걸어놓았던 것을 고택정화사업때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월성위가의 부와 연관지어 볼 때많은 양의 곡식이 차곡 쌓여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집안 곳곳이 이러한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불을 지피우는 구멍인지아니면 배수구인지 알 수 가 없었다. 분명히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곳임이 분명할 텐데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행랑채의 지붕의 모습이다. 복원되어서 그런지 옛 한옥의 정취를 많이 느낄 수 없었지만좋은 목재를 사용하여 튼튼하게 잘 복원 된 것 같아 보였다. 지붕을 만들때 목재가 그대로 들어나게 만드는 이유 쪽의 부엌의 모습이다.잘 보이지 않아 플래쉬를 켜서 찍었는데 색깔이 그대로 나오지 않아 아쉽다.부엌 한 켠에 놓여진 철로 만들어진 통이다. 이 곳에 무엇을 담아 놨을지 궁금하다.부엌으로 통하는 문인데 이 쪽으로 나가면 사랑채의 마당과 이어 져 있다. 밥을 지어 이 문을 통해 사랑채에 맛있는 밥을 대접 했을 것 같다. 이문을 판장문이라고 한다.안채의 들쇠에 걸어 놓은 문안채에 문을 이런 식으로 매달아 놓았다. 이렇게 문을 들쇠에 걸어 올려 놓아서 개방과 폐쇄를 확연히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와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문을 통하여 안채 내부의 대청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문을 들쇠에 걸어 올려 놓으면 대청은 열린공간으로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 되며 겨울에는 이 문을 닫아 추위를 막고 대청공간만의 아늑한 공간을 연출 했을 것으로 생각 된다.안채의 문모든 분이 원형이 아닌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형으로 이루어진 문을 힘들어서 격자무늬로 만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그런 것을 떠나서 한옥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모양이 이러한 사각형구조의 문이어서가 아닐 듯 싶다.안채의 대청 옆에 건너방이 있다.건너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대청 옆의 건넌방의 모습이다 .채광을 고려한 창과 다락의 모습이 눈에 띈다.안채의 대청안채에 있는 것을 안대청이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대청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현명한 선택인 듯 보인다. 또한 앞 쪽의 문과 뒤쪽의 문이 트여서 완전한 실내라고 보기는 여려울 듯 보였다.탁 트인 대청의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건넛방 뒤 쪽으로 이런 통로가 있고 벽 옆에 창호지 창이 아닌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나무 문을 달았다. 이것은 보안에 신경을 쓴 것 처럼 보인다. 사랑채와 안채가 마당 쪽으로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보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안채라면 더욱이 그러 하였을 것이다.건넛방에 서 본 뒤쪽 복도의 모습이다.보안을 강조한 문의 모습이다. 이러한 문의 형태를 판장이라고 한다.방안 쪽에 배치된 고가구들의 모습이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