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를 읽고 >처음에 빌려올 때는 학교 문제에 대한 비판 서적이라고 생각했는데,읽어보니, 학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세상은 온통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완전히 거꾸로된 학교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었다.그의 논조는 너무도 정확하고 신랄해서, 알맹이가 없을 것 처럼 보이기 쉽지만,같이 어울린 예화들은 정말 진실이기를 믿기 싫은 그것들이었다.세계는 온통 거짓 투성이이며, 가식으로 가득찬 것이다.서로 속고속이고, 가족간이 재산상속으로 싸우고 죽이고 세상에는 정의라는 미명아래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실, 행복, 노력, 발전의 세계관은 온통 허구로 가득한 것이며, 진실이라는 것은 실제 세계는 거짓, 불행, 세습, 퇴보의 세상이란 것이다.이 책은 정말 금서로 묶어두고 싶은 책이다.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까발려서 알고 나면, 세상 살 맛이 전혀 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나도 내일 당장 떨려나서 먹고 살기 어려운 노동자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세계화의 제국주의 질서라는 것을 알고 나면, 세계화라는 말이 입에서 쉽게 나오지 않을 성 싶다.햑교에서 배운것들을 한번 생각해 본다진실,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우리가 진실이라고 하는 것들이 정의이며 진리가 되는 것인가? 우리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는데 왜 시대가 흐름에 허구점이 발견이 되는가?우리가 이 시대에 당연시 하는 것을 다른이가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범죄자라 부른다. 그 잣대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한 현상을 한명한명 진실이라 따르고 믿고 우리또한 거기에 동화되어 당연시 생각할뿐 그것이 진실이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자는 거짓이라고 할수 있는가? 우리는 카테고리의 굴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노예가 되버린 것이다.행복,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건실한 직장에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행복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불행을 만들어 내는가? 결혼하기 위해 다른 경쟁자를 불행하게 만들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다른사람의 재화를 뺏어버리고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이타성을 배제시키는 지금 우리는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할수 있는가.노력, 노력한만큼 우리는 받을수 있는가?가난의 세습으로부터 많은 이는 벗어나지 못한다. 노력을 함에도 그 성과를 받을 수 없으며 가난은 또 다른 가난과 배움의 기회를 무산시킨다. 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항상 뒤쳐지며 세상에 대한 불신과 악행을 저지르고 만다.우리주위에는 자신보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자가 나보다 더 잘살고 있고 더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을 종종본다.이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단순한 운인가? 아니면 부의세습으로부터 받은 특권인가?자연원칙의 인과가 우리 사회속에서 100%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발전의 세계관, 누구나 세계관을 가지며 포용할수 있는가?파레토의 80/20 의 법칙이 경제학을 이끌어 가는 시대는 가고 이제 유비쿼터스 시대를 맞이하며 98/2의 법칙이 존재할 것이다. 극소수의 정보화 네트워크 집단이 전체를 이끌어 간다는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는 하나가 될것이고,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에서 벗어나 세계를 보는 눈이 경쟁속에 살아남는 발전의 길인 것이다.하지만,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평에게 가질수 있는 기회인가? 기아에 허덕이는 에디오피아, 소말리아 난민에게 세계관이 필요할것인가?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가정도 돌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세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그들에겐 빵과 음료가 세계의 전부일 것이다.자본주의만이 살아남을수 있는가?소위 많은 일반인들은 자본주의 = 민주주의 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이것이 진실인가 내면을 보자.1> 자본주의는 냉정하다.자본주의의 한정된 재화를 얻기 위해 ‘경쟁’을 한다. 이긴자는 얻을것이고 진자는 잃을 것이다. 이긴자는 행복을 느끼며 삶을 느끼지마 패자는 어두움에 괴로워하며 삶을 고뇌한다.2> 자본주의는 인간성이 상실된다.한 예로) 의료법에는 의사의 진료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가진자에게만 관대하다. 가난자는 자본의 부족으로 의무로 명시되어있는 행위를 당연시 못받고 있다.3> 자본주의는 정의롭지 못하다.‘유전무죄 무전유죄’ 권력을 돈으로 살수 있으며 법률의 법규창조력도 자본의 법규창조력으로 바꿀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각종 절차법이 시대에 따라 권력자에 의해, 소수 자본기득권층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자본주의이다.백인의 우월주의는 타당한가?신의 이름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얼마나 많은 인디언의 씨를 말렸는지 어찌 알겠으며, 얼마나 많은 흑인을 아프리카에서 납치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노예의 자식들이 광산과 농장에서 다시 노예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세습 노예제를 수립한 왕과 인디언 착취자, 흑인 노예 매매업자는 모두 백인이었다.이어지는 그 다음 여러 세기에도 천지 사방에 제국주의 권력을 무자비하게 심어 놓기 위해 문명이 저지른 무수한 야만행위의 장본인들도 모두 백인이었다.일본의 도움을 등에 업고, 20세기에 6,400만 명-대부분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두 번의 세계대전을 실행에 옮긴 국가원수들과 호전적 우두머리들도 백인이었다.나치 수용소에서 빨갱이와 집시, 동성애자를 포함한 유대인 대학살을 계획하고 이행한 자들도 백인이었다.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제국의 갈 길을 인도한 것은, 어떤 이들은 자유롭게 살기 위해 태어나고 다른 어떤 이들은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난다는 확신이었다.그러나 인종차별주의가 유럽의 배부름을 위해 도덕적 면죄 체계로 정립된 것은 르네상스 시기와 신대륙 정복 때부터였다.백인들은 식민지에 살던 다수의 사람들을 내쫓고, 소수자를 소외시켰다. 인종차별주의는 그때부터 세계를 지배했다. 식민지 시대에는 화약만큼이나 인종차별도 필요했다.로마에서는 신이 싹쓸이 약탈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라며 교황들이 줄줄이 신을 모욕했다.흑인들과 인디언들이 열등한 이유(76쪽)와, 가난해서 바보가 아니라 바보여서 가난하다고 가르치는 세상의 학교... 제3세계 인간들은 일회용 인간들에 불과한 것은 너무도 적나라해서 오히려 비참하다.최근에도 백인들의 우월함의 목소리는 강하며 그 예로1> 최근의 버지니아 텍 사건은 백인이 타 인종을 배척하고 자신만이 우월함에 열변을 토할수 있는 게기를 마련해준 사건이 되어버렸다2> 테러로 전세계적인 호소를 통해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여 백인을 세계의 평화자로 이끌어간다현실 정치의 역설적 비극(불의의 이름으로 정의가 바로 서고 있는가?)청나라의 아편전쟁으로 한나라가 망한사건, 그 선례를 바탕으로 마약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중국, 마약퇴치 전쟁으로 사망한 수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자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는 현실에서, 현실 정치의 역설적 비극을 밝힌다.정치가 상당성을 잃고 있으며 비례성의 잣대 속에서 공익을 빌미로 사익을 무참히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정치가는 이렇게 말해야 한단다. "여러분, 도둑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남을 잘 비꼬는 냉소적인 사람이라야 하는데,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배신자도 되어야 합니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노동은 멕시코에서 가격이 매달 하락하는 유일한 상품이다. 영악한 자는 바보 덕분에 살고, 바보는 자신이 일해서 산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실은, 일하는 자는 돈벌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