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낙태에 관한 도덕성 문제는 "태아를 과연 하나의 인격체로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압축된다. 만약 인격에 관한 사회적 인정이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한다면 어린 아이, 노인, 정신박약아는 완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태어나지 않은 태아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생명체가 언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생명체의 사회적 인정에 관해서는 두가지의 상반된 입장이 존재한다. 생명우선론은 수정된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은 실존의 권리를 가진다고 전제하면서 종에 대한 귀속성은 인간의 생명권을 정당화하는데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고자 하는 선택우선론은 의식을 가지고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비로소 인격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다시 말해 '호모 사피엔스'(Home sapiens)라는 종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생명보호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역사성낙태는 인류의 역사와 같이 있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유산은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위험성이 있는 절차이므로 옛날에는 낙태랑 그리 쉽게 할 수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낙태를 가지고 사회문제로(그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로 인하여 제기된 것이었다.) 간주한 것은 - 14세기에 접어들면서, 수정된 후 상당한 기간이 흘러야 영혼이 주입된다는 주장이 신학자들간에 퍼졌다. - 16세기에 가장 권위 있던 교회법 학자이고 세 교황 밑에서 윤리문제의 고문으로 있던 마르틴?아즈쁠리꾸에따(Martin Azpilcueta)는 40일 이상 된 태아에는 영혼이 주입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40일이 못된 태아에는 영혼이 없고 그 경우의 낙태는 살인이 아니란 것이다. 이러한 학자들이 초기 태아 살해도 죄악이라고 보았으나 살인은 아니라고 간주하였으므로 어려운 경우에 낙태를 용인한 것이다. 초기 태아의 절대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다른 큰 가치의 보호제완화 또는 인공유산의 자유화를 실시하게 되었다. 인공유산이 한 해 동안 얼마나 실시되고 있는가에 관해서는 통계자료가 믿을 수 있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국제 가족계획연맹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5,500만 건의 인공유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1980년도에 150만 건이 넘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다른 표현을 빈다면 모든 임심의 약 30%가 인공유산으로 처리된다고도 할 수 있다.낙태시술방법낙태 시술은 임신기간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추출 , 약물에 의한 추출 , 위로부터의 추출 .(1) 아래로부터의 추출① Menstrual Extraction 임신 8주 이전의 초기 낙태의 형태로 흡입방법으로 양수막 전체를 흡입 추출한다.② Suction Aspiration임신 8주에서 12주의 경우 시행되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시술되고 있다. 자궁 경부가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스페큘럼이라고 부르는 기구를 임산부의 질에 삽입해서 질을 넓혀 놓는다. 자궁 경부가 보이면 테너큘럼이라고 부르는 집게로 자구 경부를 단단히 붙잡아 둔다. 그리고 확장기 세트를 사용하여 썩션 팁(흡입구)을 삽입할 수 있을 정도까지 강제로 자궁 경부를 벌린다. 적당히 벌려지면 흡입구를 삽입해 양수막을 터뜨리고 진공청소기의 30배 정도의 흡입력을 가진 모터를 작동시켜 자궁 내 태아를 분 해해 추출한다.③ Dilitation & Curettage (D&C) 흡입방법으로 낙태하기에는 태아의 크기가 너무 큰 경우 자궁 경부를 벌리고 원형의 가위 큐렛으로 태아를 적절히 절단한 후 추출해내는 방법이다.④ Dilitation & Evacuation (D&E)태아의 뼈가 칼슘 성분을 많이 가지게 되어 꽤 딱딱해진 경우 D&C로 낙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좀더 완력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집게를 삽입해 태아의 각 부분을 힘으로 절단한 후 추출해 내는 방법이다. 출혈이 가장 심 한 시술이고 산모에게도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예레미야 20장 17절~18절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5. 누가복음 1장 41절~44절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누가복음 1장 19절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6. 갈라디아서 1장 15절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나. 낙태는 살인이다.- 창세기 9장 6절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제 6계명살인하지 말라상황윤리2. 인공유산의 갈등 상황갈등상황이란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생기는 각각의 상황들을 의미한다. 각각의 상황에서 성경에 있거나 실제로 삶에서 구현되어져야 할 원리들이 적용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갈등상황이 발생한다. 바르트는 비록 태아의 존엄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낙태가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의 궁극적 해결책이라고 간주되는 상태에서는 상호의 자궁에서 태아를 죽이는 일이 인정되거나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틸리케도 부패한 세상을 보호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때로는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그러나 만약에 기독교 윤리학이 판단의 원리를 성경으로부터 찾아 엄격히 그 원리를 적용시킴으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소위 갈등상황이라는 것에 대한 성경의 원리를 바꾸거나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성경의 원리들을 적용시킴으로써 갈등상황을 생명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생명을 만들 수 없다. 생명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비록 기형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며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형아도 그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의 완전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슻 ks들은 예측유산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거부행위이고 인간성의 거부인 것이다. 이런 불순종의 행위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 기인하는 것이다.둘째로, 우리는 예측유산의 결과에 대해 숙고하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기형으로 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태아를 낙태시킨다면 기형으로 인해 고통하는 자, 식물인간의 상태에 있는 자, 또는 장성했지만 정신적인 결합이 있는자는 죽일 수도 있다는 윤리적인 정당성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측유산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을 죽이는데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가장 소중한 점을 태어나는 순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음을 아게 된다. 생명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생명은 지속되며, 이런 생명의 지속성 때문에 어떤 순간에 인간이 된다고 우리는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사회에서 보호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기형이 될 가능성이 있는 태아도 보호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예측유산은 윤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2) 사회적 유산사회적유산은 개인적인 또는 사회적인 결과가 비참해질 것을 예상하고 그것을 미리 막는 유산이다. 1938년 영국 법정에서는 강간당해 임신한 14세 소녀에게 인공유산을 허용하였다.게이슬러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의 유산을 동의하는데 그 이유는 만약 성관계가 합법적이려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종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강간이나 근친상상적인 성관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3) 치료적 유산치료적유산은 임신상태가 지속됨으로 인해 산모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위협받는 것을 막기 위한 유산이다. 치료의 차원에서 유산을 허용한다는 이 견해는 태아는 어머니의 생명 같이 완전한 생명이 아니며, 태아보다는 산모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이다. 또한 치료적유산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태아는 산모의 건강을 위협하는 불법적인 공격자이고, 방어의 논리를 따라서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아가 산모의 건강을 마치 불법적인 공격자처럼 위협할 때는, 산모의 건강을 위해 치료학상의 의미에서 유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태아의 생명은 어머니의 생명보다 덜 가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할 수 있겠다.그러나 우리는 치료적 유산의 기저에 깔려져 있는 몇가지 점을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산모의 건강이 진정 태아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성경적 견해에 따르면,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사역이다. 산모의 생명이나 태아의 생명이 다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 또한 산모의 생명과 같이 가치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생명이란 생명으로 변하는 특정한 순간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생명과 태아의 생명을 차별하는 권리는 있을 수 없고, 이 구별로 인해 태아의 생명을 죽일 권리는 없는 것이다.둘째로, 치료적유산에서 산모의 건강에 대한 한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The Moral Penal Code에서는 단순히 “임신의 지속됨이 산모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면”이라고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고 The Act of England는 “임신중인 상태가 낙태된 때의 상태보다 더욱 큰 위험이 있다면”이라고 되어 있다. 유산을 허용할만한 산모의 건강에 대한 명확한 한계점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 위험의 한계점에 대해 명확히 기술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이 한계점이 매우 다양
일본 아니메에 노출된 청소년들에 대한 칼빈주의적 교육- 칼빈주의와 문화 -목 차서론칼빈주의와 문화(대중문화)문화의 정의청소년 문화와 삶칼빈주의의 문화관, 칼빈주의의 대중문화관일본의 문화, 아니메아니메‘신세기 에반겔리온’‘신세기 에반겔리온’에 대한 기독교적 비판교회의 역할어깨펴고 들어올 일본 문화교회의 일본문화 지도결론서론“너희들 학창시절 교회의 문화가 뭐가 있었는지 말해 봐봐.” 어느 교수님께서 강의시간에 우리들에게 던지신 질문이다. 정말 무엇이 있을까? 음악과 스포츠…… 이게 전부 인 것 같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흥미를 느끼고 욕구를 느낄만한 문화는 없다. 세상의 문화라며 교회에서는 사탄으로 취급하여 비하시키고 그것을 추구하는 청소년을 정죄하였다. 세상의 문화가 왜 정죄의 대상인지 알지도 못한 채 청소년들은 어쩔 수 없는 두 얼굴의 생활을 해야 했다. 친구와의 관계, 청소년 문화 속에 속하려면 세상의 문화 즉 대중문화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대중문화가 훨씬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다.현대 대중문화 사이에서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전자오락의 영향력은 놀랄만큼 급증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여가 시간을 즐기는데 있어서 이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이 일본문화들의 뉴에이지적 사상과 그 속에 녹아있는 반 기독교적 요소들이다. 끊임없는 상술의 연구로 일본의 문화창조자가 택한 방법 중 하나는 우리가 언뜻 알고 있는 먼 나라 서양의 신화적 요소(성경적 요소)들을 재창조하여 에니메이션이나 게임의 설정자료, 첨가자료로 삽입하는 것이다. 이로써 소비자, 청소년들은 알게 모르게 기독교적 유신론의 개념이 왜곡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대중문화를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ima@ge(주식회사 아이네트의 사이버 문화비평지)의 조사결과 총 1085명의 응답주 가운데 88%가 일본만화를 접하였다고 응답하였고, 이들 중 43%가 일본만화의 부정적 측면을 인정하였다. 또한 30%가 일본만화의 첨단 그래픽 구현, 의 현실을 실제의 현실과 혼돈 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리셋 증후군 또한 청소년들의 문화적 연약성을 대변하고 있다. 이렇듯 ‘연약한’ 청소년들의 삶 속에 너무나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일본의 아니메는 청소년들의 가치관에 단순한 악영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마저 왜곡시키고 뒤틀어버리고 있다.기독교적, 칼빈주의적 대중문화관칼빈은 문화를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서 보았던 문화신학자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주재하신다는 점, 즉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참새까지 보존하시며 먹이시고 주관하신다고 말했다. 이렇듯 그의 문화신학은 일반은총과 밀접하다. 그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계시와 일반은총으로 죄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선과 참된 것이 다 일반은총으로부터 유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개혁자들은 죄악의 심각성과 죄인들에게 주신 모든 선한 것 및 아름다운 선물을 동시에 인정하여 개혁정신의 바른 방향을 제시했다.칼빈은 기독교 강요 2권 2장 17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비치는 해와 동일하게 내리는 비, 모든인간에게 본성적으로 고유한 이성을 주신 것을 일반은총이라고 했다.일반은총이한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주신 은사들이 인류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어 역사하시는 은혜이다. 따라서 일반은총은 하나님께서 죄 있는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시는 호의라고 해야 마땅하다. 일반계시도 처음 창조와 함께 주셨고 일반은총도 처음 창조시에 함께 주신 것이지만, 일반은총은 죄에도 불구하고 창조와 인류의 생존이 가능하게 하는 일반적인 호의이다.칼빈은 일반은총의 가치를 논하면서, 그것의 한계를 명확하게 선 그었다. 칼빈은 일반은총의 가치를 세 가지로 보았다. 첫째, 일반은총은 창조와 삶을 보전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으로 선고집행이 유예되었고, 죄가 억제되었으며, 종말의 때까지 인간의 삶을 보존하신다고 말한다. 둘째, 일반은총은 삶을 보존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선물이기d Impact)를 하리라'고 쓰여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사도는 인간(제레)에 의해 행해질 Third Impact를 막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다.대학교수인 휴유츠키는 자신의 제자 유이의 남편, 겐도우에 의해 Second Impact의 진실을 알게 되고 사도를 막아낼 아담의 복제품 에반게리온을 만들어 낼 조직'네르브(Nerv)'의 창립멤버가 된다. 겐도우는 컴퓨터 공학자 아카기 박사를 이용하기 위해 그녀와 내연의 관계를 맺는다. 아카기 박사는 네르브를 운영할 인공지능 컴퓨터 '마기'를 만들어 낸다.네르브는 아담의 복제품에 장갑을 씌우고 인간 정신이 아담의 정신과 일치되어 조정하는 시스템인 에반게리온의 시험호를 완성. 그러나 최초 가동시험도중 조종사인 겐도우의 아내 유이는 오히려 4살의 아들 신지와 겐도우가 보는 앞에서 에바(에반게리온)에 의해 흡수된다. 이후 겐도우는 에바의 거부를 최소화 하기 위해 에바의 조종사로 또 다른 아담의 복제품이자 아내의 복제인간인 레이를 만든다.그러나 아내의 정신을 지닌 레이는 아키기 박사를 질투, 겐도우에게 이용당한 그녀를 비웃고 이를 견디지 못한 아카기는 자살한다. 이후 두번째로 만들어진 레이는 겐도우를 향한 맹목적애정을 제외한 그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는다. 사도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는 성장한 미사토와 아카기 박사의 딸 리츠코가 네르브에 참여한다. 겐도우와 휴유츠키에게는 제레와는 또 다른 인류보완계획이 있는 듯 하다.2015년, 아담이 옮겨져 갇혀 있는 네르브의 기지, 지오프론트를 항해 사도들이 차례로 습격해 오기 시작한다. 아담과 사도들이 만나는 순간 인류는 멸망하고 이를 막기 위해(그리고 인류보완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레이가 탄 에반게리온이 출동한다. 그리고 그 지오트론트를 지하에 감추고 있는 제3동경시로 어머니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 할머니에 의해 길러지던 14세의 이까리 신지가 아버지 겐도우의 호출로 불려온다. 시리즈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영문도 모른채 불려온 신지는 냉정한 겐도우에 의해 에바를 타라는드 임팩트의 설정주님께서는 노아의 홍수이후로 다시는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연약을 세우셨다. 그러나 에바에서 세컨드 임팩트는 남극에서의 암담의 폭발로 인해 빙산이 모두 녹아 지구의 대부분이 물에 잠긴다는 설정이다.Neon Genesis Evangelion 이란 제목 자체독일어로 Evangelion이라는 단어는 복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또한 [절대적인 진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즉,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구약성서에 기재된 창세기 이후의 새로운 창세기를 전파하기 위 한 복음이며 진리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생각해 본다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제목에는 -[에반게리온]이라는 로보트가 펼치는 신세기-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신세기의 복음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Evangelion이라는 단어는 Ev a + Angel + Lion의 세 단어를 합하여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기쁨의 전조(조짐)]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Evangelion인데, 즉 이 에반게리온이라는 이름에는 Eva와 천사(사도)가 합쳐져 기쁨의 조짐인 [복음] 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 셈이 된다. 실제 아니메메이션 상에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이름(정식 명칭은 [대사도전용범용인 형결전병기]-[에반게리온])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EVA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 EVA가 지칭하는 것은, 바로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아내 이브를 일컫는 것.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브는 뱀의 유혹에 의해 아담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게 하여 이상향인 에덴을 떠나게 하는 존재라고 하는 점이다. 이것은 또한 에반게리온은 인류에 있어서 부정적인 존재임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 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적으로 등장하는 거대생명체 [사도]가 [Angel] 로 표기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에반게리온 역시 적인 사도와 같은 성질 혹은습일지도 모른다. 일단 아니메에서는 폭주를 통해 에바는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 악마라는 것을 계속 암시한다.오타쿠여기서 일본의 오타쿠 문화에 대해서 조금 집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오타쿠란 쉽게말해 팬, 매니아의 수준을 넘어선 어떤 분야의 전문가적 소비자를 말한다. 이들은 단순이 대상을 즐기는것이아니라 그것을 연구하고 비평까지하는 집단이다. 요즘 많이 쓰이는 XX폐인 이란 표현이 가장 적당할 듯 한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 일본의 아니메와 게임등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 한다. 안노 감독은 이 오타쿠 문화에 대해서 완전 오타쿠가 될 정도로 연구했던 사람이다. 이들을 공략하는 것이 최고의 상업적 전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복잡한 스토리 전개, 철학적 접근, 성적 요소, 변태적 요소, 폭력적 요소, 곳곳에 심어 놓은 미스터리라 불리우는 수수께끼, 서양 신화(성경)의 도입등의 요소들을 통해 오타쿠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당대 최고의 아니메메이션이란 성과를 올렸다. 일본은 제외하고 한국의 오타쿠들은 에바의 결말 이후의 시나리오를 소설로 쓰고 평가하고 돌려가며 읽고 잘된 작품의 아니메메이선 작업까지 직접 하는 열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업적 전략 가운데 역사한 사탄의 공격은 이미 거의 모든 우리또래의 학생들이 이름 정도는 모르지 않을 정도의 아니메로 전세계적으로 펴졌다.인류보안계획인류보안계획은 에반겔리온 시나리오의 절정이자 기독교에 대한 공격의 절정이다. 설정에는 세가지의 인류보안계획이 존재한다. 먼저 신의 시나리오인 ‘신의 영역에 벌을 내리기 위해 사도를 아담과 만나게 하여 서드 임팩트를 일으켜 인류를 멸망 시키는 것’. 제레의 시나리오인 ‘서드임팩트를 일으키러오는 사도들을 모두 제거한 뒤 네르프가 가지고 있는 아담의 복제품(초호기)과 릴리스를 뺏어 인위적인 서드 임팩트를 일으키고 그것을 이용하여 인류를 하나의 완벽한 개체로 만드는 인류 보안계획을 실행시키는 것’ 네르프의 총사령관이자 신지의 아버지인 겐도우의 ‘릴리스의 분신인 레이와의 관계를 통해 제레와 같은GE 2
구약윤리 십계명의 제 5계명십계명이란.십계명에 제 5계명에 대해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포괄적으로 십계명이란 무엇인가부터 알아보자.구약의 주된 율법, 물론 특별히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보면 설화 부분 전체에 걸쳐 따로 떨어진 율법들, 선례들, 판결들이 흩어져 있다. 하지만 모세 오경에 있는 대다수의 율법들은 십계명 자체 이외에도, 세 개의 주요부 또는 주요 집단에 포함되어 있다.십계명이라는 말은 열 개의 명령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을 문자적으로 헬라어로 번역한 말에서 온 것이다. 열 개의 명령이라는 말은 출애굽기 34:28 ; 신명기 4:13 ; 10:14에 나온다. 출애굽기 19~20장에 나오는(그리고 신명기 5장에서 반복되는) 시내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비록 모세는 중재자이긴 했지만 - 나머지 율법들이 그의 작품으로 여겨지므로 - 십계명에 관한 한 그의 역할은 극히 작은 것이었다. 그 말들은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셨고, 돌에 새기셨다고 되어있다. 그것들은 필요한 것이 모두 구비된 최종적인 것이었다. 신명기에서는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신 5:22) 그 말과, 시내산에서 그것을 공포할 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땅이 흔들린 현상으로 인해, 그것들은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언약 관계의 본질적 규정들에 대한 이 간략하지만 포괄적인 요약은 언약 백성에게 알맞은 ‘한계선’ 곧 나머지 상세한 법규들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 ‘정책 진술’을 제공한다.십계명의 중요성으로 인해, 학자들은 그것에 대해 엄청난 양의 조사연구와 토론을 해 왔는데, 금세기에 들어서 논쟁은 저작권 문제와 기원의 연대 문제에서 십계명이 어떤 종류의 율법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인들의 삶과 예배에서 어떤 작용을 했는가 하는 문제로 방향을 바꾸었다. 십계명이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어떤 것도 합의되지 않은 채 여전히 논쟁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선지서(호4:1 이하, 렘7증해준다.율법을 통해 본 구약에서의 가정지금까지 십계명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알아보았다, 그럼 먼저 이러한 십계명뿐만 아니라 구약에 나오는 율법들을 통해서 구약에서의 가정의 역할을 알아보는 것이 십계명의 제 5계명을 접근하는데 있어서 유용할 것이다.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주요한 언약 관계가 잇엇고 하나님은 땅의 궁극적 소유자였으며, 땅은 유업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가정은 이 각 측면들의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단위이다. 첫째로 그것은 중요한 군사적 사법적 기능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의 사회적, 친족 구조의 기본 단위였다. 둘째로 그것은 이스라엘의 토지 소유권의 기본적 경제 단위였다. 셋째로 그것은 언약 관계를 체험하는 데 중추적으로 중요했다. 그런 가정에 탄생하거나 아니면(종이나 함께 거주하는 이방인의 경우에서처럼) 그 안에 거주함으로 그 가정에 속함으로써, 한 개인은 자신이 언약 백성의 일원임을 주장할 수 있었다. 가르침 - 부모에게 의무로 부과되어 있었던 - 에 의해(신 6:6-9 ; 20:25 ; 11:18~21 참고) 언약과 그것이 부여하는 의무에 대한 지식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보존될 것이다. 그리고 할례, 유월절, 장자의 구속과 같은 주요 의식 행위도 가정 안에서 거행되었다.(출 12,13장)그러므로 사회적, 경제적, 신학적 세 영역 모두 그 초점은 가정이었다. 그러므로 국가의 사회 경제적 구조를 깨뜨리려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건 그로 인해 하나님과 그 민족의 언약관계를 위태롭게 하리라는 것을 즉시 판단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뿌리와 토양, 곧 자쥬징ㄴ으로 땅을 소유하고 있는 가정들을 침식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구약에서 이미 친족 문화의 일부였던 관습들을 신학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승인하고, 또 특정한 보호 법령을 만듦으로써 가정을 보호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이러한 보호는 내적이며 또한 외적인 것이었다. 내적으로 가정은 가정 내의 권위 구조가 붕괴되지 않도록 법적 보호를 받았다 성적 정결함이 붕괴되지 않도록 보호를 받았다. 간음과 다른 불법적 간통은 엄하게 금지되었다. 외적으로 율법은 가정이 가진 물질적 재산이 그리고 그로 인해서 가정의 경제적 생활력과 사회적 지위가 줄어들거나 완전히 없어져 버리지 않도록 보호하려 애를 썼다.이것은 십계명에 나오는 사회적 계명들의 중요성에 훨씬 더 날카롭게 초점을 맞추게 한다. 우리가 그것들을 이 같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사회적 배경에서 볼 때, 우리는 다섯 번째와 일곱 번째 계명(부모를 공경할 것을 명하고 간음을 금하는)을 가정의 내적 보호와 그리고 여덟 번째와 열 번째 계명을 그 외적 보호와 관련시킬 수 있다. 이런 도덕적 요구 사항들 중 어느 것도 본래 이스라엘에게만 독특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그 당시의 다른 사회들에게서도 있었음이 충분히 입증되며 단지 하나의 인간 사회의 이스라엘에서 발견 되었을 것이다. 성경 윤리의 전반적 견해에 비추어, 우리는 그런 도덕적 요구 사항이 하나님께서 인간 사회 전체에 명하신 방식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가족 중심적 사회 경제 제도에 근거하여 그 관계를 체험하고 또 지속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계명들은 춸씬 더 강력한 신학적 근거를 지니고 있었다. 보다 명확하게 종교적인 처음 네 계명과 함께 이 사회적 계명들은 언약 관계를 사회적으로 표현함으로 그 관계의 방패 역할을 한다. 이것은 그것들이 십계명 - 곧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을 인친 것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언약의 요약 - 에 포함되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그렇다면 이 계명들 가각의 중요성은 그것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율법, 권고, 자극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약속이 붙은 첫째 계명’(엡 6:2)인 다섯 번째 계명은 그렇게 하는 동기를 땅에서의 삶과 의미심장하게 관계가 있는 약속과 결합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율법과, 이스라엘과 하나님째 계명 역시 구체적인 법령들로 옯겨졌다. 흥미롭게도 지혜의 전승에서 간음에 대한 반론은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경제적 영향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간음이 협오스럽고 파괴적인 것이라는 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것을 신학적으로 간음에 비유한 것에 의해 강조 된다.여덟 번째 계명은 모든 종류의 재산죄와 관련이 있는 많은 율법들을 포함한다. 다른 곳에서 도둑질은 언약에 충실하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비난하고 있으며(시 50: 16-18), 스가랴는 도적질하는 자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말한다. 마치 미가가 탐심을 당시의 경제적 억압 배후에 있는 죄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2:1 이하). 또한 경계표를 옮기지 말도록 금함으로써 재산을 보호한 보호령도 여기 포함시킬 수 잇을 것이다.(신 19:14 ; 27: 17)이는 가난하게 된 근족의 땅을 속하는 것이나, 희년제도, 그리고 자식이 없이 죽은 남자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수혼(신 25:5~10)과 같은 구제 제도였다.따라서 이런 모든 방식으로 이스라엘 자신의 역사적 구속적 신학에 근거하여 가정의 사회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중요성이 확증되었으며, 그 본능적 보호는 확대되고 주요한 윤리적 명령으로 바뀌어졌다.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관련된 성경구절출애굽기 21 : 15절 -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찌니라출애굽기 21 : 17절 -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찌니라신명기 21 : 18~21절 -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라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라고 방탕하여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 찌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명기 27 : 16절 -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잠 30 : 17절 -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구약에서의 제 5계명의 모습구약에서의 성경 구정을 통해서 가정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십계명의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의미를 돌아보자.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 극단적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의 크신 구속의 경륜속에서 결국에는 아브라함을 택하사 한 민족을 이루어 그 씨앗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계획하셨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서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백성의 힘을 기르시기 위해 애굽을 모판삼으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모세를 통해 그 백성을 구원하사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지배 하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탈출시키셨다. 그렇게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그렇게 구원하실 만큼이나 사랑하신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후 시내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 극단적이었다. 특히 우리는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율법적인 면에서 본다면 너무나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인간은 타락했기에 그 명령을 지킬 수 없다. 타락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혔으며 그렇게 인간과 인간의 관계 또한 서로 싸우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모님과 자식들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의 공경할 수 없다.여기에서는 여러 가지로 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 먼저 구속사적 측면에서 이 계명을 보자면 하나님의 율법이기에 꼭 지켜야 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계속적으로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에는 수천마리의 양이나 대속물을 통해서 제사를 드림으로 그 죄를 사함받게 되는데 여기서 인간들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며, 하나님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바로 샬이다.
근대교회사 소논문독일 경건주의자들의 교육사상과 교회의 청소년 양육 - 경건 안에서의 공부 방법 제안학과:? 목 차 ?서 론- ‘중고등학교’ 라고 하는 직장 - 모두가 인정하는 이상한 교육제도- 물질 만능주의, 신분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청년, 청소년복음의 선교지수준화- 독일의 경건주의- 세상의 빛으로의 양육, 교회가 공부와 경건을 교육본 론- 대표적인 경건주의자들의 생애와 신학, 그리고 교육사상- Philipp Jacob Spener- August Herman Francke- 진젠도르프와 형제단 교회- 경건주의자들의 교육적 공헌- 청소년을 교회에서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교회가 할 수 있는 기독교적 공부지도방법 제안결 론참 고 문 헌서 론‘중고등학교’ 라고 하는 직장 - 모두가 인정하는 이상한 교육제도한 직장이 있다. 이 직장은 주7일 근무제이고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저녁 10시쯤 퇴근한다. 그 중에 많은 직원들이 매일 새벽 2시가 다되도록 야간근무를 하곤 한다. 이 직장 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가야 하며, 적어도 6년은 이러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직장의 이름은 바로 중고등학교이다.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우리는 너무나도 이것에 잘 적응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회는 중고등학생들에게 단 한 가지를 요구한다. 바로 대학이다. 학생들은 이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다. 부모님이 잠시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면, 그들은 다른 무엇으로 시작해도 결국은 ‘공부해라’ 로 이야기가 끝마쳐질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물질 만능주의, 신분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청년, 청소년복음의 선교지수준화물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좋다. 그리고 성공하여 높은 위치로 올라가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중요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예전부터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러나 지금 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중고등부가 어른 성도들의 1/10만 되도 건강한 교회라고 여겨진다. 수 년 전부터 ‘이대로라면 및 정의, 특징들은 생략하고 대표적인 경건주의자들 스패터와 프랑케의 교육사상, 신학, 특징을 제시하고 그것들이 교육적 사역에 어떻게 적용 될 수 있는지 서술한다.대표적인 경건주의자들의 생애와 신학, 그리고 교육사상Philipp Jacob Spener (1635-1705)그의 생애와 신학1635년 1월 13일 알자스의 라폴츠바일러(Rappoltsweiler)에서 신앙심이 깊은 부모아래 태어났다. 그는 30년 전쟁이 발발한 후, 17년이 경과된 해에 태어났으며, 그는 30년 전쟁이 끝나가던 당시 1648년 독일은 300개 이상의 지방, 혹은 주(州)로 나뉘어 있었기에, 이들 지방들은 각기 영주, 또는 다른 통치자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30년 전쟁의 탈도덕화의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독일에서 도덕적 열정주의의 르네상스를 고대하게 되었다. 루터파 목사들은 점점 정신이 해이해지기 시작하였다. 경건의 태도는 하나도 없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진리를 주장하는 세태였기에 슈패너는 이를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교회 내 마술이 유행하고. 음주, 방종이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펼쳐있었다. 설교 중 잡담과 농담이 다반사였다. 이러한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 정도였다. 그당시 신학에는 라틴어가 사용되었으며 성경 방법론에는 스콜라주의만 사용되었다.1647년 슈패너가 어릴 때 만난 궁정설교가 요아힘 스톨(1615-1678)는 그의 실제적인 스승이 되었고 그는 아버지처럼 그를 따랐다. 그 지도하에 13살에 스트라스브르크 철학부 학생으로 등록하였다. 그 후 1653년 자기 고향에서 토마스 홉스에 반대하는 인간의 하나님에의 귀속성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그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인본주의자 마티아스 베르네거(1582-1640)의 제자인 젊은 하인리히 뵈클러(1611-1672)가 가르쳤던 역사학이었다. 그는 윤리와 역사 이외에도 희랍어와 히브리어를 익히고 한 유대인에게서 탈무드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신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반된 믿음이다. 진실한 믿음은 교의와 신조에 대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적인 행위 즉 행위로 증명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기독교는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실증되어야하며, 이와 같은 믿음과 행위의 관계가 경건주의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넷째, 반교권주의 사상이다. 다섯째, 성직의 완전 개혁과 성직자의 사명감 회복이다. 슈패너는 목사들 이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교구 내에 있는 젊은 이틀에게 교리문답을 교육시키 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학교를 세울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신학 교육이 현실적으로 개혁되어 신학과 실천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여섯째, 마음을 감동시키고, 회개케 하며, 신앙의 불을 붙이고, 신령한 예배 로 인도하는 생명력 있는 설교를 재발견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설교가 목사혼자의 독백이어서는 안되고 듣는 자의 응답이 있는 대화여야 하고, 수사적인 설교가 아니라 신앙을 길러주는 설교라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원리 위에 세워진 경건 운동은 슈패너가 살던 독일뿐만 아니 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교회의 개학과 갱생 및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슈패너의 교육적 공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들이 있다. 그의 사상에 대한 비판들이 일기도 하였으나 그는 1684년에 세워진 할레(Halle) 대학교의 창설교수로서 인재 양성에 주력하였다. 그는 교육자라기 보다 목회자로서의 임무에 충실하였고, 당시의 개신교의 기독교교육이 카툴릭 스콜라철학의 고전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이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였다. 그가 보기에 개신교 교육은 생생한 기독교 생활과 경건의 도야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세속적인 과거와 현재의 지식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는 라틴어 학습에 는 과도하게 시간이 배당되는 반면에 성경주석을 수행할 수 있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충분치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슈페너의 이러한 이상은 그의 수제자인 프랑케와 대자인 진젠도르프에 의해서 꽃피워졌다. )August Herman Francke(1663-1727)그의 생애와 신학슈패너보다 약 30서 생생한 그리스도의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그는 훌륭한 학생은 모두 이것들을 배워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성별의 교리는 할레에서는 본질적인 것이었는데 “춤, 카드놀이 그리고 극 장”과 같은 세상적 행위로부터의 분리와 거룩한 삶에 대한 강조 때문이었다.성별은 국가제도로부터의 교육적 이탈을 포함하고 따라서 경건주의는 교회 론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구분 없이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에 대한 종파적 반동이 되었다. 마티(Martin E. Marty)는 교회와 국가의 문제는 “경건주의자틀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거나 무관한 것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 했다. 회심의 필요성을 최초로 인정한 프랑케는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정보는 학생들을 중생의 순간으로 이끌 수 있으며 그 후에야 그들이 기독교 신앙을 확립할 수 있다는 개념을 통해서 자신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그는 「피에타스 할렌시스J(Pietas Hellensis)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우리가 목표로하는 목적(End)과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단(Means)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린이에게 계속 가르쳐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신앙은 교육의 기초가 되며 또 양심적인 행동이 동반되는 경건함(Godliness)의 의미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초점으로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의 진실한 노력이 부단히 교정되어야만 한다."그는 「기독교 교육론 요약」에서 교육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동은 흘륭한 표본과 일상적인 경험을 통한 생생한 그리스도의 지식을 통해서 교육되며 이 진리는 빈부에 관계없이 가정과 학교에서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케는 기독교교육의 접근 에 있어서 가정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본 인간의 모든 타락과 불행은 가정에서의 기독교적 훈련의 비극적인 태만이라고 보았다.)교사론교사론은 프랑케의 교육시장의 핵심이었다. 그는 교사의 모범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교사는 학프는 실제로 거의 2천여 곡에 달하는 찬송을 작곡했다. 성경의 권위와 교육과정에 완전히 헌신한 진젠도르프는 학교에서 1일 예배와 학습을 발전시키는 좌우명으로 매년 3657H의 성경구절을 발췌해서 매일 암송 시켰다. 진젠도르프는 결혼과 가정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지만 나이든 사람이 어 린이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할 권리는 전혀 없으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동이 ‘그리스도와 통행하는 것을 배우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진젠도르프는 이렇게 종교적 환경 안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자발적 행위 는 최상의 기독교교육 형태라고 보았다. 나이든 사람에 의해서 독단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아동에게서 개발되는 아동고유의 것은 모든 진정한 기독교교육의 기초라고 보았다.기독교교육에 대한 경건주의자의 공헌은 너무나 크다. 예를 들면 공동체 예배, 성가대, 정년문제에 대한 관심, 학생에 대한 사랑 등이다. 이비(Eavey) 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경건주의는 삶과 기독교교육학에 대한 중요한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 경건주의는 영적 경험의 실제를 새롭게 보여주었고 기독교적인 생활을 위한 실제적인 성경연구의 가치를 드러내었다. 경건주의는 또한 자선과 선교사역에 강력한 새로운 관심을 낳았고 실제 생활을 위한 현실적인 훈련을 하도록 기독교 교육을 새롭게 강조했다. 경건주의는 또한 그러한 기독교교육을 위해서 모든 아동들의 필요에 주의하도록 이끌었고 하나님께서 모든 교육의 중심에 자리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경건주의자들의 교육적 공헌경건주의자들은 기독교교육사나 서구사상사에 괄목할만한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영향으로 대학교육의 확산을 들 수 있다. 1684년에 세워진 할레(Halle) 대학은 기독교 교육사에 중요한 핵이다. 슈패너에 의하여 주도된 할레대학은 경건주의의 운동의 센터이며 인재 양성의 보고였다. 슈패너는 개선교의 기독교교육이 카톨릭의 스콜라철학과 고전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이것을 바로 잡으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슈패너는 할레대학겠다.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 있어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의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만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하나님과 문화는 미국의 삶과 사상에서, 그리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기독교계가 참담하게 파괴도고 손상되는 과정에서 성경과 성경적 복음의 수위성을 재확립하려고 노력한 몇 안 되는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인 칼 헨리(Carl F. H. Henry)의 기념 논문집으로 출판된 책이다.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도 니버가 제시한 ‘기독교가 문화에 대응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방식들’의 틀에서 논의 되고 있다. 그 중에서 문화를 변혁시키는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우리는 각 영역에 있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반틸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노력들은 절대적으로 성경이라는 텍스트 위에서 작업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니버가 제시한 다섯 가지 유형은 우리가 문화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과연 성경적인가에 대한 고찰이 다시 한번 필요함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1. 세계는 과연 무대로서 적합한가? 신학, 문화 그리고 해석학 - Kevin J. Vanhoozer이 글에서 필자는 문화와 해석학의 의미를 정의하고 문화가 적합한 해석의 대상임을 증명하며 역사가들, 사회학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이 문화를 해석해 온 방법들의 검토를 통해 문화와 신학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며 문화의 해석에 있어서의 신학의 역할과, 우리 시대의 해석의 문화에서 신학이 갖는 역할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신학이 이 시대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있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먼저 필자는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가 과연 무대로서 적합한지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해석가이자 비평가로서 가 가능해지고 다른 유형의 존재라면 불가능해진다. 이는 결국 어떤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거나 하나님에 대해 더 잘 말해주고 있다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됐을 때에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일어날 수 있는데(대부분이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한 오해로써 다원주의의 원 의미를 벗어난다.), 이는 잘못된 신관과 더불어 잘못된 세계관을 갖게 한다. 또한 다원주의를 논함에 있어 계시의 문제가 빠질 수 없다. 다원주의를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상대주의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강조하는 기독교와의 대립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원주의자들은 다원주의를 최고선으로 채택하여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에 기초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기독교의 신관도 마찬가지이다. 전제가 어떠한가에 따라 계시를 해석하는 방법이나 해석된 내용이 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표출되는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계시를(혹은 하나님을) 평가하고 해석하는데 있어 우리의 본 성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이는 타락한 이성으로서 계시를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이다.해석학에 있어서 계시와 진리에 관한 질문들은 꺼려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이 다원주의의 도전에 대응하기 어려운 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기독교에서 계시와 진리로서 인정하고 있는 성경이 결코 역사와 배경과는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다원주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성경의 전체 맥락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부터 진행되어야 한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전체적 맥락 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말씀 자체가 상반되어 보이는 부분들도 많고, 현 시대와는 다른 상황(배경)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어서 별 상관없어 보이는 부분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죄는 상대주의적 윤리관에 비추어 볼 때 문화에 따라 죄가 될 수 있는 것이 있고 죄가 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죄의 문제를 지적하고 회개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눈에 오만한 행위로 비쳐지는 것이다.절대적 윤리관의 당위성과 상대적 윤리관의 오점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굳이 자세히 다룰 문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전제하에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논문에서 저자의 의도는 굳이 그들이 죄로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말하기 보다는 그들이 죄로서 생각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 윤리관이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얼마 전에 읽었던 책 중에 이러한 문제와 관련되어 기독교인들이 선교를 하는데 있어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있었다. 나침반 사에서 나온 파인애플 스토리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에서 한 선교사가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 선교사가 가지고 있던 문화관과 원주민들의 문화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어 졌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그들을 묶으려 할 때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더불어 시간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5. 종말론 지향적 심리학: 심리학과 기독교의 통합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Warren J. Heard, Jr카터(J. D. Carter)와 내러모어(Narramore)는 심리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의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에서의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無로부터의 창조를 말한다. 다시 말해 無에서 시간과 공간도 창조되어졌고 그 안에서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시간과 공간의 無라고 말 할 때에 여기에서 말하는 “無”를 형이상학적인 하나의 존재로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이 의도하고 있는 無는 시간과 공간의 無뿐만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존재로도 표현 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하나님까지도 역사의 일부로 넣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은 순환론적인 역사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순환론적인 역사관은 결국 인간의 모든 행동들은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성경이 말하고 있는 역사관은 창조, 타락, 구속적 관점에서의 역사관이다. 다시 말해 창조로부터 시작해 종말이라는 에스카톤을 가지고 있는 역사관이다. 따라서 순환론적인 역사관이 아니라 직선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중요한 역사의 일부는 창조와 더불어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들, 그리고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에 있다. 여기에서 창조와 타락 후에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상의 죽음, 부활, 승천이 말하는 바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미’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아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적 역사관은 단지 과거에 대한 생각과 접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비전도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이전의 역사가 지금 현재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가 미래를 위해 어떻게 적용 할 것인가의 문제까지도 다룰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8. 하나님과 경제 - Ian Smith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경제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말씀이기 때문에, 개인과 개인,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의 관계에서 생기는 경제적인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정부나 정치에 대해 기독교와 상반되는 입장이나 동일시하는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칼빈이 말한 것처럼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정의가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정부의 목표는 각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Peacemaker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 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한편 정부가 그 중재자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는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간들의 죄성으로 인해 그 자체만으로는 제 기능을 발휘 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 있어 정부의 중재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정부는 고아들과 과부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구약에서의 도덕법이나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약자를 위한 신자들의 어떠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 있어 국가의 역할은 크다 할 수 있다.세속적 인본주의적 정치에서는 각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책의 다른 논문들에서 다른 각도로 많이 비춰주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 하는 것이 잘 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배경에 있어 인간의 자율성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중요시 하다보니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있어 힘을 잃게 된다. 결국은 자유가 자유를 속박하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세속적 인본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권리만을 주장할 뿐 의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예를 들어 자유의 사회적인 정의를 따르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법 안에서의 자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는 의미는 그냥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안에서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소극적 의미에서 자신의 자율적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것을 자유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적극적 의미에서는 자신의 자율적인 행동이 법을 위배한다면(여기에서는 도덕법을 말하는 것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