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 ]수호지를 읽고나서...수호지라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머리속은 엉망이다. 늘 느끼곤 했던 성취감도 없다. 날씨도 비가 오고 추운 것이 꼭 내머리속 같다. 책을 일고 글로 흔적을 남겨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 었을까... 책이란 물흐르듯이 눈이 가는데로 술술 읽혀내려가야 제 맛이거늘 활자 하나하나를 머리속에 남기려 한 구절을 읽다가도 다시 앞의 구절을 확인하고 또 앞의 구절을 확인하고 그러다 보니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머리속엔 글자 낱개 낱개가 그냥 둥둥 떠 다니는 아주 안좋은 꼴이 되었다. 그런데도 머리속에선 어떻게 한번 멋진 수필 감상문을 만들어 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지 결국 멋있는 감상문이 나오긴 틀렸다.수호지는 중국 송나라 휘종때 송강등의 36인의 도적들을 중심으로 한 108명의 인물들이 모이기 까지의 과정과 또 그들이 양산박이라는 곳에 모여서 관등을 상대로 도적질을 하는 내용이 주다. 소설속에서는 그러한 도적질을 영웅시 하고 있는데 몇 년전 한참 즐겨보던 홍길동이나 임꺽정과 같은 드라마의 내용이 떠올랐다. 수호지를 이루는 많은 인물들은 책의 스케일에 맞에 매우 많으나 그들이 겪는 일들에 대한 사건전개의 패턴은 대개 비슷비슷 한점이 많아 읽으면서 나중엔 지겹기도 했고 햇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민중들 사이에서 떠돌던 이야기 이야기를 모아서 이토록 방대한 분량으로 엮은 작가의 정성을 생각한다면 그런말을 할 수없다. 그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짝을 이루고 양산박에서 모일 수 있었던 것많해도 대단한 일이다. 한 시대를 살았던 108명의 건장한 장정들이 비슷한게 저마다 권력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불의를 못참고 나서다 일이 꼬여 자의반 타의반 해서 있던 곳을 떠나 길을 떠나게 된다. 108명이 함께 걷는 길을 아주 굽이진 오르만 산길 처럼 험난하고 기구하다. 그리고 그 길은 그들을 양산박이라는 그들만의 아지트로 데려다 준다. 길을 동기를 부여하는 저마다의 사정을 보면 누가 누군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이구, 하고 탄식이 나오며 안타까운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노달의 경우와 같이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기세에 허어, 하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까 말한것과 같이 수호지의 사건 사건은 좀 지루하게 ‘억울함을 당해 양산박으로 간다’ 식의 몇 개의 패턴으로 이어져 있지만 인물들은 낮은 신분에 정의만 찾는 그래서 곤혹을 겪는 이라든지 임충이나 송강등과 같이 지주출신이나 봉건정권을 잡고 있으면서 올바른 길을 걷고자 했던 신념이 강한 이와 가튼 상반대 인물들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만한 것으로 그시대에선 단연 돋보이는 수호지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요즈음 농민들이나 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자신의 고향에 핵 패기물 폐기장이 유치되기를 반대하는 사람들 등이 이곳저곳에서 하나로 똘똘 뭉쳐 시위를 하는 모습들을 텔레비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라크에선 이라크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야욕에 반대하는 알카에다라는 세력의 여러 테러소식들을 접할 수있다. 그들은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희생을 낳고 있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잘못했다고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양산박의 도적들에게 그 송나라시대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오히려 모든 농민들이 모든 노동자들이 모든 이라크 국민들은 그들의 행보를 은근히 격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의 생각 속에만 있다. 더 많은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을 더 비판하고 나선다. 마치 중국 송나라 시절 모든 민중들의 입과 입에서 영웅담으로 오가던 이야기들이 통치자들에게 반항으로 매수되어 금서로 평가되기도 했으니까... 역사의 반복은 문학속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 하다.양산박의 이야기를 해보면 양산박은 108호걸들이 길을 걸어나가 도착한 끝지점이다.그곳에서 호걸들은 자신들 만의 세계를 만들고 철저히 다른 세계가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거부 한다. 그리고 다른 세계 또한 그들의 양산박 처럼 되길 바란다. 양산박에서 그들은 많은 전투를 한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도망쳐 왔지만 양산박에선 도망치지 않는다. 양산박의 두 번째 두령인 송강이 항복하기 전까지 그들은 양산박에서 끝까지 맞서 싸운다. 자신을 분을 다스리지 못해 양산박으로 흘러들어 왔던 이들이 그곳에서 한번 성숙해 지는 것이다. 양산박은 아마도 그런 의미인 것 같았다.
범죄와 인권[불법체류자-외국인노동자문제]지난 11일 오후 7시 28분쯤 스리랑카인 치란 다라카(31)씨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8호선 단대오거리역 승강장에서 전동차에 뛰어들어 목과 팔뚝이 잘린 채 숨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한국에서 7년 째 불법 체류중인 다라카씨가 오는 16일 이후 3년 이상 불법 체류 외국인에 대한 강제 출국이 강력하게 시행되는 것에 따른 불안감에 못이겨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조사중이다.스리랑카 칠라우 출신의 다라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5년 정도 크리켓 선수생활을 하다가 지난 1996년 산업 연수생 신분으로 입국했다. 다라카씨는 6개월만에 첫 근무지를 이탈한 뒤 불법체류 상태로 경기도 일대의 공장들을 전전하다 지난 1999년부터 경기도 광주시의 H산업에 정착해 4년 째 천막과 텐트 만드는 일을 해왔다.다라카씨의 영정 사진이 놓인 선반 위에는 자주 집에 전화를 했다는 다라카씨의 손때 묻은 국제전화카드 120여장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또 A4지 앞 뒤로 빽빽하게 적힌 어머니 부터로 온 편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 15살이었던 막내 동생이 7년 동안 커진 자신의 발을 종이에 대고 따라 그려서 보낸 그림, 크리켓 선수였던 다라카씨가 쓰던 라켓과 공, 크리켓 대회 우승 트로피, 사장을 비롯한 공장 동료들과 찍은 단체 사진, 그리고 기본급 80여만원에 수당 30만원 가량이 적힌 월급 명세서 봉투 10장이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다라카의 희생을 마지막으로! 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오후 6시쯤 다라카씨의 빈소를 찾은 스리랑카인 20여명이 둘러 앉아 다라카씨의 사진을 돌려 보고 있었다. 이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사진 속의 참혹한 친구의 모습을 한참씩 바라봤다. 5년 전부터 다라카씨와 친목 크리켓 팀에서 운동을 같이 했다는 압둘라(28)씨는 다라카는 어머님이 당뇨병으로 고생을 하고 하반신 마비로 거동을 못하시기 때문에 치료비를 보내야 한다, 돈이 쪼들린다 는 이야기를 했었다 고 말했다. 그는 다라카는 매달 70안 되고 생계가 어려워지면 자해(自害)를 저지르거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 며 숨어 지내는 생활이 1~2주라면 버틸 수 있겠지만 장기화된다면 일탈행동 등 사회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고 말했다.(안석배기자 sbahn@chosun.com )이러한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우리사회의 오랜 병폐처럼 오랜시간 동안 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곪아 오다가 최근 정부가 그 방안으로 내놓은 외국인 공용허가제의 시행이후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외국인 고용허가제란?외국인 공용허가제란 입국 4년 안된 외국인만 합법적 취업을 허용하는것이다.내년 8월 17일부터 정식 시행될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그간 불법이었던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합법화 틀 속에 끌어안기 위해 마련됐다. 외국인력과 연관된 법적?제도적 체계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다.이 제도에 따르면, 2003년 3월 31일을 기준으로 국내 입국한 지 3년 미만인 사람은 합법화 절차(노동부의 취업확인, 법무부의 체류자격부여 절차)를 거친 뒤 최장 2년간 취업허용을 받는다. 3년 이상 4년 미만인 사람은 합법화 절차를 거쳐 일단 출국한 뒤, 재입국하는 조건으로 5년에서 국내 체류 기간을 뺀 기간만큼 고용허가를 받는다. 문제는 4년 이상 불법체류 노동자들. 정부가 설정한 오는 15일까지의 자진출국기간이 지나면 단속을 통해 강제출국 조치를 당하게 된다.노동부 관계자는 보통 3년 이상 노동자들이 체류하게 되면 결혼도 하고 자녀도 생길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처리가 곤란하다 며 크게 보면 내국인의 고용환경이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에 기준을 잡았다 고 말하고 있다.하지만 외국인노동자 인권 단체에서는 정부의 강제추방정책이 현실성이 없다 며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기존의 불법체류자들을 체류기간에 상관없이 끌어안는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고용허가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들의 불법체류 경력을 탕감하는 등 불법체류자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고말한다.지금까지의 외국인 노동자에수 있다. 결국 위 연수계약은 형식에 불과하고 그 실질적인 법적 성질은 근로계약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④ 연수생들은 사업기술의 연수를 받을 목적으로 연수업체에 취업하고 있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보면 산업기술연수는 전혀 없고, 연수업체의 지휘 종속하에 노무를 제공하고 있다.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이 국내 노동시장에서 지니는 실제적 지위가 훈련생(trainee)이 아닌 근로자(employee)임은 노동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노동부 외국인력정책연구반 "단순기능 외국노동력의 국내취업에 관한 정책대안",1994.12., p.12). 노동부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설치된 산업기술연수협력단에서 작성한 연수업체의 선정기준이 "제조업중 인력부족율이 5% 이상인 업종(단, 음식료품제조업, 담배제조업, 출판업, 기록매체 복제업은 제외)" 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산업연수의 불가피한 사유가 국내 중소제조업체에서의 인력부족임을 확인시켜 주고, 특히 우선 선정대상업체로서 1993년 12월 1~15일 기간중 신고한 불법체류 외국인 자진신고자의 고용업체로 규정하고 있어 산업기술연수의 목적이 훈련이 아니라 고용임을 분명히 알 수 있고, 또 위 선정기준은 연수업체의 자격요건을 상시 종업원 10~300명이하의 업체로 한정하고 있는데 현재 중소규모 사업체에서는 국내 노동력에 대한 직업훈련의무 실시 비율조차도 대상 사업체의 10%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므로 이들 중소규모 사업체가 훈련목적으로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을 모집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다.⑤ 연수생들은 연수계약서에 의해 노무를 제공한대가로 연수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 명칭이 비록 '연수수당'이라고 하더라도 노무를 제공한 것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므로 그 법적 성질은 임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⑥ 노동부는 위의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스스로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들의 법적 지위가 근로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기술, 기능 또는 지식의 습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근로기준이 이행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국제노동기준으로서의 국제조약은 우리나라가 비준하여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지만,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은 조약의 경우에도 입법 방향이나 법률의 해석 적용에 있어 중요한 판단기준은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2.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유형과 대책가. 출입국관리와 관련한 인권침해(1) 강제퇴거 및 체류허가의 취소1)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입국하고자 할 때에는 유효한 여권과 법무부장관이 발급한 사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출입국관리법 제7조 제1항), 소정의 체류자격을 가져야 하며(제10조), 체류자격과 체류기간 의 범위 내에서 체류할 수 있고(제17조), 취업하고자 할 때에는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이 있어야 한다(제18조). 출입국관리사무소장등은 체류기간을 초과하였거나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없이 취업활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나라 밖으로 강제퇴거시킬 수 있다(법제46 재1호, 제7호). 한편 출입국관리법 제22조는 "법무부장관은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하여 거소 또는 활동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기타 필요한 준수사항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46조 제8호가 위 규정에 위반한 경우 강제퇴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2) 출입국관리공무원은 외국인이 강제퇴거사유에 해당된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는 경우 출입국관리사무소장등의 보호명령서를 발부받아 그 외국인을 보호할 수 있다(제51조). 현재 외국인수용소는 서울 휘경동에 있는데, 이는 사실상 구금시설로서 그 실태는열악하기 그지 없다. 수용기간은 10일로 하되 10일 이내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제52조). 보호명령을 받은 외국인은 법무부장관에게 이에 대한 이의 신청을 할 수 있고(제55조),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은 명령서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법무부장관에게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제60조). 한편 더구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실상 정부가 필요에 의하여 묵인하에 3D업종에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출국을 하려고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비인도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3) 한편 ILO 권고 제151호는 외국인 노동자를 국외 추방 할때에는 비용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부담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위와 같이 불법체류자에 대해 강제퇴거를 시킴과 동시에 벌금을 부과 하는 것은 ILO 권고에도 어긋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3) 공무원의 통보의무1) 그리고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하였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한 때에는 누구든지 이를 출입국관리공무원에게 신고할 수 있고(제83조), 특히 공무원이 강제퇴거 대상자 또는 출입국관리법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는 자를 발견한 때에는 그 사실을 지체없이 출입국관리사무소장등에게 통보하여야 한다(제84조).2) 출입국관리법의 위 규정은 일본의 법(출입국관리 및 난민 인정법 제 62조 제2항)에도 동일하게 규정되어 있는데, 일본법의 규정은 2차대전 이후 대륙과 일본 사이의 왕래가 빈번하던 당시에 만들어진 규정이라고 한다. 일봄에서는 출입국관리법의 위 규정으로 말미암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노동행정에 종사하는 공무원으로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할 의무는 노동기준법 위반이 해소될 때까지는 정지된다고 해석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제출국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는 외국인에 대한 단기체류비자의 발급, 강제퇴거명령 집행의 유예, 가석방제도의 유연한 운용 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3) 우리나라에서 노동을 하다가 산재를 당하거나 임금 등을 지급 받지 못하여 그 해결을 위해 국가기관에 구제신청을 했다가 그 해결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강제퇴거당한다는 것은 당해 외국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신을 실추시키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적어도 당해 노동자가 요청한 구제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강제퇴거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4) 단속의 강화정부는 1
팜므파탈 다시 만들다0.들어가며2004년 11월 19일 한국에서는 "팜므파탈"이란 영화가 관심을 모으며 개봉을 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 영화를 기초로 팜므파탈 이란 개념이 본격적인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팜므파탈이 무엇이기에 영화의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걸까?팜므파탈(Femme fatale)이란 악녀, 요부, 치명적인 여인, 운명의 여인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학이나 연극, 영화 등에서 주인공 남성을 파멸로 몰고 가는 여인으로, 특히 느와르 영화에서 이러한 캐릭터의 전형을 많이 볼 수 있다.일반적인 갱스터 영화보다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 느와르 영화에서 그녀는 남성 주인공을 유혹하고, 사건을 혼돈 속에 빠뜨리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여성들은 거부할 수 없는 성적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타락한 악녀로 묘사되고 결국 남성에게 편입되거나 그들에게 제거되는 운명을 갖게 된다. 주로 이러한 역할은 주인공과 불륜의 관계를 맺으면서 이루어지며, 결론적으로 여성을 타락한 존재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 계열의 평론가들에게 종종 공격받기도 한다. 그러나 팜므파탈의 의미를 '악녀'로 이해하는 건 약간의 오해다.여기서 악녀로 묘사되는 것은 여성이 본래 가진 능력보다는 여성의 성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팜므파탈이 대중문화의 모티브로 자리잡으면서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여성의 성적인 매력만을 부각시키고있다는 문제점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즉, 팜므파탈이 대중의 모티브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결합되면서 여성의 성적인 모습만을 대중문화에 표현하였고 본래의 여성의 이미지를 왜곡시켜 전달하고있는 것이다.이런 대중매체의 일방적인 전달은 사회적으로 여성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여성자체의 모습이 왜곡되면서 여성은 예쁘고 섹시한 성적매력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정체성의 모순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우리는 이번에 대중문화가 사성을 지배하려 들었다.남성은 물론, 종래의 여성상과는 다른 이러한 신여성들을 두려워하였으나, 그 동안 경험해 볼 수 없었던 '피지배' 라는 쾌락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팜므파탈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1990년 때 한국 사회는 여자는 조신하고 말을 아끼며 남자를 위해 일평생을 헌신해서 살아야 한다는 유교사상에 의해 구속받고 있었다. 그러한 여성의 가치관에 대한 사회적 구속력은 팜므파탈이라는 매력적인 소재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우위에 있음을 그려냄으로써 이제는 여성이 단순히 남성에게 구속받고 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였다.비록 여성의 유혹적인 매력을 통해서 그 모습을 그려내고 있지만 팜므파탈이 여성이 남성 우월 주의 사회에서 만들어낸 해방구라는 것은 상당히 논리적으로 해석된다.팜므파탈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지위가 높아지고 권리가 신장되자 여성의 능력을 억압하기 위한 남성이 만들어낸 억압기제로써의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여기서 팜므파탈이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 창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역사적 맥락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역사적으로 창녀의 형상을 한 팜므파탈의 이미지는 사적 영역을 여성의 공간으로, 공적영역을 남성의 공간으로 구획해 온 근대 자본주의적 공간 관에 근거한다. 성 차에 근거하여 공사영역을 구분하는 관념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구분해 온 공적 영역, 거리를 배회할 수 있는 여성은 창녀뿐이었다. 매춘부들을 거리의 여자라 부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며 대개 정숙한 여성의 활동공간의 가정, 즉 사적인 공간으로만 제한되어 왔다. 위협적인 섹슈리얼리티를 지닌 팜므파탈은 전통적인 남성 고유의 영역, 혹은 남근 권력을 향해 다가선 여성에 대한 삐딱한 재현 전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녀의 몸에 거리의 창부 이미지, 과잉성애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남성들과 어울려서 공적영역에 다가서는 여성들을 창녀의 모습으로 이미지를 씌워버렸지만 그렇에 놓인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금전적 능력과 니콜라스의 관음적 본능을 이용해 과거로부터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자 노력하는데 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자신의 전공 분야인 전통 스릴러에 자극적인 에로틱 코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었다.매혹적인 악녀 '팜므파탈'로 변신한 레베카 로민 스타모스는 비밀스런 요부 '로라'를 한층 매혹적인 모습으로 소화해낸다. 대본에도 없는 스트립 쇼 장면을 생각하고 즉석에서 완벽한 스트립 쇼를 연출해 '로라'의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등 보통의 여배우와는 다르게 작품을 좀더 다이나믹하게 보여주기 위해 자청하여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녀는 의 샤론 스톤, 의 니콜 키드먼, 의 캐서린 제타 존슨과 같이 이 한 장면으로 기품 있고 요염한 자태를 뽐냈다. 야하지만 천하지 않은 스트립 쇼는 관객들에게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자극한다.성적 매력만을 극대화시켜 부각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전형이라 볼 수 있겠다.팜므파탈을 모티브로한 영화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오래되었고 더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사회와 외국사회에서 나타나거나 받아들여지는 팜므파탈의 이미지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한국영화에서 나타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한국영화에서의 팜므파탈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정형화된 팜므파탈의 아이콘은 아니지만 한국영화에서도 요부형 여성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최초의 한국영화를 1919년의 로 잡지만 영화의 산업화가 본격화되고 대중문화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 1950년대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본격적인 팜므파탈의 역사를 50년대 후반 이후의 영화들로 한정지어 살펴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2) 자유부인 1950년대 후반 최대의 화제작인 (1956)은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인 팜므파탈의 등장을 알린 작품이다. 여성의 몸이 당대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모순이 집약된 전쟁터였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명망 있는 교수 부인의 외도를 소재로 해 당시 주더니, 급기야에서는 당당히 싱글맘을 선택하는 여성을 제시하기에 이른다.외도를 하고도 어떠한 죄의식이나 처벌에 시달리지 않는 여성 (바람난가족의 문소리)의 모습은 더이상 쇼킹할 것 없는 자연스런 모습이다.과거의 순종적이고 남자의 불륜의 모습에 한없이 눈물 흘리면 인생의 나날을 보내는 여자들의 캐릭터에 비하면 자기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여성들이 늘어가는 것은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의 획기적인 변화다.한국의 영화에서 앞에서 살펴본 팜므파탈류의 영화들은 대부분 제일 처음 소개했던 서구의 섹슈얼리틱한 모습이 부각된 예였다면 지금 살펴볼 것들은 그와는 조금 다른 유형의 모습들이다. 먼저 가장 팜므파탈 이미지를 가진 여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칭찬받는 영화 ‘텔미썸딩’부터 살펴보자.99년 말에 개봉된,국내 최초의 하드고어 스릴러물인 "텔미썸딩"에서 그녀가 맡은 인물인 "채수연"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성적학대를 당한 것이 원인이 되어서 남자들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이상적인 남자에 대한 동경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남자들을 토막 살인해서 원하는 부위만을 조립하게 되는데, 그 살인 사건을 두고 일어나는 내용을 다룬 영화가 바로 "텔미썸딩"이다. 싸늘하고 창백한 표정으로 관객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마력을 보여준 것이다.영화의 주인공 심은하는 이 영화에서 무척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말 그대로 "팜므파탈"적인 이미지인 것이다. "원초적 본능"과 "세븐"을 결합시켰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던 영화지만 여기서 심은하는 "원초적 본능"의 "샤론스톤"같은 섹슈얼함 대신에 동양적인 신비로운 매력을 뿜어낸다.독을 삼키고 싶을 만큼의 섬뜩한 아름다움"이란 평을 받기도 했는데 서양의 "팜므파탈"과는 다른 의미에서 무척이나 뇌쇄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일단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스크린을 쫓아갈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고전극에서도 팜므파탈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을 확인케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진행된다.이때 이들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주인공 서인경(염정아). 그녀는 김선생의 동거녀이다. 김선생은 서인경의 아름다움에 그녀를 믿지만 그녀는 김선생과는 다른 계획을 남몰래 세운다. 그리고 남자주인공인 박신양과 그의 형을 각각 유혹하며 자신의 계획에 끌어드리게된다. 그녀의 섹시한 매력과 함께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접근한다. 결국 그녀는 김선생을 파멸로 이끄는데 이때 팜므파탈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서구의 표현 방법과는 사뭇다르다. 그녀는 그녀의 성적 매력을 보이기위해 노출을 하기보다는 그 위에 정서적 매력을 얹혀 동정심을 갖게끔 하는 묘한 마력으로 자신의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다.이러한 영화들은 뒤에 문제점으로 제시할 성적매력에만 팜므파탈을 묶어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좀더 여성의 마력요인을 다양하고 그 여성이 마력을 부릴 수 밖에 없는 요인도 진부하지만 잘 짜놓았다는 점에서 팜므파탈을 더 재미있게 영화속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팜므파탈은 이렇게 영화 이외에도 다양한 대중문화 장르에 이용된다. 그예로 먼저 책을 살펴보았다. 제목 자체가 ‘팜므파탈’인 이 책에대해 알아보겠다.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흔히 요부(妖婦)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팜므파탈(femme fatale)에 대해 대대적인 복권을 시도하고 있는 듯 하다. 책「팜므파탈,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에서 이 관장은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잔혹?신비?섹시?탐미 등 넷으로 분류해 여러 요부에 대한 풀이를 역사적으로 전개해 나간다.살로메?메데이아?메두사는 잔혹한 팜므파탈, 이브?모나리자?판도라?사이렌은 신비한 팜므파탈, 데릴라?마릴린먼로?나나는 음탕한 팜므파탈, 헬레네?비너스는 매혹적인 팜므파탈로 각각 그리고 있는 것이다.예컨대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살로메. 이 관장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악명 높은 요부`로 지목하는 인물이다. 헤로데 왕을 유혹해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자르도록 충동질했던 여인. 미소 띤 얼굴로 목 잘린 요한의 머리를 들
레니 리펜슈탈1. 그녀의 일대기1902년 - 8월 22일 베를린에서 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남.1923년 - 10월 23일 뮌헨에서 솔로로 무용공연 (1923년~1925까지 유럽순회공연계획)1925년 - 유럽순회공연중 프라하에서 공연 중 무릎부상 , 무용가로서의 인생은 끝이남기차역에서 우연히 영화 ‘운명의 산’을 보고 영화계로 뛰어 듬1926년 - 12월 14일 레니가 ‘미완성곡’을 춤으로 표현한 영화의 시사회1927년 - 영화 ‘위대한 도약’ 에도 출연1928년 - 영화 ‘ 합스부르크가의 운명-황제국의 비극’에서 루돌프 황태자와 함께 죽은 마 리 베트제라를 연기했으나 흥행에 참패한 뒤 ‘피츠 팔리의 하얀 지옥’이라는 영 화로 산악영화계에 컴백하게 됨1930년 - 발성교습을 받은 레니는 영화 ‘몽블랑의 폭풍’에 출연했다.1931년 - 레니 리펜슈탈 영화사를 세움. 그리고 ‘푸른 빛-돌로미텐의 전설-blaue Licht, Das’에서 레니는 시골처녀 유타를 연기하면서 동시에 감독의 지휘 봉을 잡았다.1932년 - 첫 지휘봉을 잡은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메달을 수상1933년 - 히틀러의 의뢰로 단편영화 를 제작1934년 - 나치당을 옹호한 영화 를 제작1935년 - 독일군대를 주제로 나치당이 제작한 단편영화 ‘자유의 날’을 이틀 만에 완성1938년 - 4월 20일 히틀러의 생일날 가 상영됨1939년 -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리펜슈탈에게 금메달을 수여1944년 - 3월 21일 42세로 결혼.1954년 - 2월 전쟁 때문에 제작을 중단한 ‘저지대’를 완성함.1973년 - 그녀의 아프리카 사진집 가 출간, 최고의 걸작으로 선정1995년 - 밀라노에서 그녀의 회고전이 마련2002년 - 8월 22일 해저생태를 그린 극장용 기록영화 ‘수중의 인상’을 발표2003년 - 9월 8일 ‘내 인생의 가장 큰 잘못은 히틀러를 만난 것’ 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 을 떠남2. 무용가로서의 리펜슈탈그녀는 베를린의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아름답고 다구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라는 영화의 포스터였다.그녀는 마치 사로잡힌 듯 곧장 영화관으로 갔고, 일주일 내내 저녁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18개월 후에는 그 영화의 감독 아르놀트 팡크가 만든 새 영화에 출연했다.대자연의 산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영화들에서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산을 타는 용감하고모험적인 여성으로 등장하곤 했다. 순수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라는 캐릭터로, 1930년대 초에는 독일뿐 아니라 전유럽을 대표하는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더욱이, 그녀는 연기뿐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1932년에는 자신이 출연하고 감독, 제작한 첫번째 영화 을 발표했다. 그녀의 주된 관심은 영화의 형식과 내용 간의 일치로, 이 방면에서 그녀는 촬영과 편집의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하여 영상의 표현력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대자연 속의 순수한 인간들과 문명 사회에 사는 인간들의 탐욕을 대비시킨 이 영화는 팡크의 산 영화들에 비해 좀더 극적이고 설득력 있는 플롯에 낭만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로 주목을 받았다.1933년 그녀는 뜻밖에도 수상 아돌프 히틀러와 공보장관 괴벨스(독일 나치시절 선전과 선동의 귀재, 그의 선전-선동 수법은 20세기 독재 정권의 교본이다)에게 불려가게 되었다.뉘렘베르크에서 열릴 전당대회의 기록 영화를 찍어달라는 것이었다.그녀는 한 번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본 일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으나,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예술적 차원의 기록 영화였다.그렇게 그녀는 나치정당을 위한 첫 번째 기록영화 를 만들게 되고 나치당의 모습을 미화시켜 선전영화의 표본을 제시하여 히틀러의 총애를 받는 기록영화 감독이 되었다. 다음해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제작한 는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담은 기록영화로서 영화사뿐만 아니라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대표적 인용자료로 이용될 정도로 가장 유명하고 마침내 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영화인으로서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나치 동조의 전력을 가지고서도 재기와 변신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그녀만이 생매장 당했다.그녀의 나치 동조 혐의에 관해서는 설이 엇갈린다. "천재성이 그녀의 비극이었다" 즉 그녀는 기록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워낙 예술적으로 잘 만들었으므로 선전 효과가 나고 말았다는 식의 소박한 반론은 물론 통하지 않는다.뉘른베르크 전당대회는 사실상 영화를 찍기 위해 연출된 행사였고, 그녀처럼 영상의 표현력에 대해 잘 아는 제작자가 선전 효과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그러나 그녀 자신의 말대로, "정치적으로 너무 단순무지했기" 때문에 나치즘에 대한 충분한 비판의식 없이 그저 주문 받은 대로의 영화를 만든 것이라면, 그녀의 개전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실제로 은 독재적 권위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영화라는 해석도 가능한것이다.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나치 동조 여부가 아니다. 전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그녀의 혐의를 씻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녀의 혐의는 단순히 "나치 동조자"가 아니라 "히틀러의 여자"라는함축이 깔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코 히틀러의 애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군대의 핀업 걸(벽에 걸만한 당대의 대표적 미인)"로, "히틀러의 정신적인 애인"으로 백안시 당했다. 1993년 지의 기사에 따르면 그녀가 징계를 당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가 너무 잘 된 영화였다는 것 - 둘째, 그녀의 장려한 스타일이 비평가들의 구미에는 썩 맞지 않았다는 것 - 그리고 셋째, 그녀가 여성, 특히 아름다운 여성이었다는 것". 이다.5. 사진작가로서의 리펜슈탈나치의 협력자라는 과거의 행적으로 더 이상 영화작업을 하기 힘들었던 리펜슈탈은 이제 감독의 길을 접고 60세의 나이로 레니는 사진작가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조국을 떠나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과 생활하면서 미지의 종족인 수의 중심인물인 히틀러가 있어야 했고 대규모의 대회모습을 보여주어 강함과 거대함을 느끼게 해야 했다. 리펜슈탈의 감독으로서의 재능은 이 뻔한 장면을 특이하게 연출하는 데 발휘가 됐으며 비록 선전영화였지만 형식의 새로움으로 가득 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다.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히틀러의 모습과 그를 맞이하는 군중의 환호를 시작으로 영화는 히틀러를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신의 모습으로 상징화하면서 그의 위대함을 묘사한다. 영화의 중심에는 늘 히틀러가 서 있고 히틀러가 내려다보는 광장에는 엄청난 규모의 군사와 군중이 정렬하여 환호를 보낸다. 감동과 존경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충성을 맹세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정렬하여 행진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화면을 채우고 히틀러의 연설모습과 사열하는 장면은 강하고 위대하게 보이는 데 빛을 발한다. 이런 역동적이고 박진감 있고 웅장한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리펜슈탈은 대형 나치깃발이 펄럭이는 깃대에 카메라맨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광장 위에 직접 도로를 건설하고 소방차나 사다리차를 이용하고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각도로 대상을 잡을 수 있었다. 또한 히틀러의 모습과 그를 우러러보는 군중의 모습을 교차편집 하여 마치 성스러운 종교의식을 보여주는 것처럼 연출하고 나치표시, 깃발 그리고 독수리 모습 같은 대표상징물들을 조명과 음악효과를 통해 강조하여 나치당을 신비스럽게 보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영화 이후로 히틀러에 대한 영화는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질 필요성도 없었던 것은 그가 보여지길 원했던 모습은 여기서 다 보여졌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이 영화는 선전영화로서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작품이었다.1945년 이후 이 영화는 당시의 살아 있는 기록으로 각종 영화나 TV에서 인용되었고 히틀러의 신격화로 보여졌던 장면은 정반대로 악마적인 존재로서의 히틀러를 묘사하는 데 이용되어 지금까지 나치즘의 일반적 모습으로 각인되었다는 2편의 장편영화로 이루어지는데 1부는 (F찍어낸 것도 레니 리펜슈탈이었다.그리고 이 영화는 나치당의 공식선전영화라고 하기에는 힘든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인간육체의 미적 가치에 매혹당한 뤼펜쉬탈은 국제올림픽위원회와의 직접 교섭을 통해 촬영허가를 받아내는 데 몇개월을 소진해야 했고, 자신과 애증관계에 있었던 선전상 괴벨스의 방해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파시즘의 도도한 흐름을 전파할 절호의 기회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에도 불 구하고 영화는 나치당에게 그리 매력적인 매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것은 너무도 '느린' 매체였으며, 선전의 효율성에서 보자면 영화보다는 라디오가 확실한 투자 대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오락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 우민화의 도구로 정의되었다. 기념비적인 행사에 걸맞는 예술작품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하던 히틀러의 독단이 없었다면, 뤼펜쉬탈은 엄청난 제작비를 끌어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개회식 장면을 성대하게 묘사하기 위해 비행선에까지 카메라가 장치되고, 다이빙 장면을 연속적으로 찍기 위해 촬영기사들은 몇개월 동안 수중촬영 훈련에 몰두해야 했다.그런 치밀한 사전준비 결과 2주간의 운동경기는 2백25분의 서사시로 새롭게 탄생했 다. 바그너풍의 음악을 배경으로 안개에 싸인 고대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가 독일로 전해지고, 히틀러는 천상의 신전에서 이를 내려다본다. 프로파간다의 기조가 깔려 있지만, 이것만은 아니다. 나레이션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인간육체와 음악을 절묘하게 조 화시킴으로써 뤼펜쉬탈은 전혀 새로운 예술적 성과를 창조해냈다. 게다가 가장 역동적인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육상경기들을 미국의 흑인선수들이 휩쓸어버리는 바람에 영화는 애당초 선 전의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어졌고, 이러한 장면을 삭제하라는 나치관료들의 요구를 뤼펜쉬탈은 단호하게 거부했다.그러나 정치적 구호의 거세도 프로파간다로부터의 탈출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육체가 시종일관 찬양되고, 준군사적이며 독특한 양식으로 패턴화된 시각적 모티브들이 반복해색했다.
Ⅰ. 제 1차 세계대전1. 전쟁배경가. 간접적인 원인(1) 보불전쟁의 결과로 독일은 구주대륙의 최강대국으로 등장했으며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의 발달로 시장과 원료공급원으로서 식민지획득이 필요하게 되어 강력한 해군력을 건설(2) 독일에 우호적이었던 영국은 독일의 함대건설로 해군력을 생명으로 알고있던 영국입장에서 심각한 위기의식으로 불편한 관계로 돌변(3) 독일의 비스마르크 재상은 프랑스 고립을 위하여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결속하여 삼제동맹 비밀조약을 체결(4) 1890년 독일의 젊은 황제 빌헤름 2세는 비스마르크를 해임시키고 1887년에 체결한 독일?러시아 재 보장조약을 파기(5) 식민직 획들을 위해 취해진 영국의 3C 동진정책 (Capetown-Cairo-Calcutta)과 독일의 3B 남진정책(Berlin-Byzantium-Baghdad)의 대립나. 직접적인 원인(1)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당시 50세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위계승자 프란쯔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와 43세의 소피크테크부인이 세르비아의 한 청년에 의해 암살(2)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를 기화로 동맹국 독일황제 빌헤름 2세에게 지원을 약속받고 7월 23일 48시간의 기한으로 10개조로 된 최후통첩을 세르비아에게 오스트리아?헝가리 10개조 요구사항을 수락할 것을 촉구하나 암살사건의 재판장에 세르비아 대표를 참석시킬 것을 요구하는 제 6항은 주권침해라 규정하여 세르비아는 이를 전면 거부2. 전후 독일과 주변국가는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새 민족 국가들의 탄생(1) 파리 평화 회의 (1919)① 원칙 : 미국 대통령 윌슨의 14개조 원칙② 내용 : 전후 처리 - 연합국의 이해 관계에 따라 좌우(2) 베르사유 조약 :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 개별적으로 체결- 독일의 식민지, 영토 일부 상실, 배상금 지불 → 독일의 불만(3) 신생국 탄생 : 민족 자결 원칙-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헝가리나. 국제 연맹(1)창설 : 윌슨의 주장 - 제네바에서 창설(2)목적 :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군비 축소(3)한계점 : 미국 불참, 군사적 강제력 미비 - 경제 제제 부과 → 실효성 의문Ⅱ. 제 2차 세계대전1.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정세가. 베르사유 조약(1) 1919년 6월 28일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베르사유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독일에게 제1차 대전 책임을 전가(2) 알사쓰?로렌지방을 프랑스에 양도(3) 짜르(Saar) 탄광지대를 15년간 프랑스에 양도 후에 주민의 투표로 귀속권 결정(4) 폴란드 회랑 설정 및 동프러시아(Prussia) 분리(5) 단찌히(Danzig)시의 자유도시화(폴란드가 장악)(6) 멤멜(Memmel), 리투아니아(Lithuania)에 양도※ 독일 영토의 1/6 상실, 독일식민지 영국81%, 프랑스 17%, 벨기에 2%나. 강요된 평화(1) 베르사이유 조약은 독일에게 강요된 평화를 요구한 격이 되어 다시 전쟁의 가능성을 시사(2) 포쉬 장군은 회의 석상에서 “ 이런 평화가 어디있느냐. 이것은 단순히 20년간의 휴전 조약이 체결된 것 뿐이다.”라고 했으며 실제로 베르사유조약체결이후 20년후에 제2차 세계대전(1939년) 발발다. 영국과 독일 지원과 미국의 동조(1) 제 1차 세계대전 종식 후 영국은 독일과 친선 관계를 유지(2) 전통적으로 영국은 구주내의 세력균형을 갈망하여 어느 나라든 압도적인 강국출현을 원치않는다는 노선견지, 프랑스가 전후 구주대륙에서 강대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독일을 보호하는 정책을 표방(3) 또한 미국도 영국의 정책에 동조하여 독일을 지원, 독일의 부흥은 자연스러운 결과 초래라. 로카르노 조약과 마지노선 구축(1) 독일의 비밀재군비가 연합국의 감시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자 독일은 연합국의 감시 소홀을 유도하기 위해 외교공세를 펴 1925년 10월 스위스의 로카르노에서 5개국 상호보장 조약을 체결(영?프?독?이태리??벨기에)(2) 프랑스는 이 조약에 의해 독일의 도발에 대한 공포로부터 안도감을 갖게 되지만 1927년 이후 독일과의 국경지대에 “마지노”선을 구축마. 연합국 감시단 철수(1) 독일은 로카르노 조약 다음해인 1926년에 국제연맹에 가입, 평화무드를 조성함에 따라 독일의 재군비를 감시하던 연합국의 군사관리위원이 1927년 1월 철수(2) 로카르노 조약 이후 구주의 평화는 절정에 달 한 것처럼 보이나 이때 독일은 급속도록 부흥을 이룩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3) 독일은 1933년 10월 군축회의와 국제연맹에세 탈퇴하고 1936년 3월 16일 재군비 선언을 공식화2. 히틀러 등장과 전쟁 준비가. 히틀러 등장(1)1933년 1월 30일 히틀러는 수상의 자리에 취임. 1934년 8월 2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사망으로 일인독재의 정권을 장악(3) 히틀러의 철학의 핵심은“지구상에는 인력이 작용하는 중심적 지역이 있는데, 이곳을 장악하는 종족이 지구상의 지배권을 장악”나. 히틀러의 전쟁준비(1) 1934년 1월 폴란드와 불사침 조약을 체결, 독일 봉쇄선의 일익인 폴란드를 프랑스에게서 박탈, 러시아에 대비, 동부 국경방위에 전력(2) 베르사유조약의 군축조항 폐기 및 재군비 공식선언(3) 전격전 이론의 태동(가) 1차 세계대전시 기동력, 화력, 수송력 부족으로 적 공격 실패(나) 신속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계화전이론인 전격전이 태동다. 히틀러의 유럽 팽창 정책(1) 라인란트 지방의 진주(가) 라인란트는 연합국 진영과 독일간에 가장 중요한 서부국경지역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 비무장중립이 결정되어 국제연맹의 감시하에 있던 지역.(나) 이 지역에 대해 히틀러는 또다시 연합국간의 결속을 시험해 보기 위해 1936년 3월 7일, 프랑스가 소련과의 상호 원조조약을 했다는 구실로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진주(다) 독일군이 라인란트 침입시 프랑스는 단독으로 대항조치를 못하고 영국에게 독일에 대한 조치를 의뢰, 허울좋은 연합국의 결속을 히틀러에게 재확인(2) 3국동맹의 결성(가) 1936년 10월, 11월에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의 사이에 삼국동맹을 결성(나)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체코 침공시 이탈리아의 중립보장※ 일본은 동부전선에서 러시아 견제(3) 오스트리아?헝가리 합병(가) 1938년 3월, 독일군은 경고 없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침공, 비인을 점령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무혈합병(나) 이 때에 프랑스는 내각위기의 혼란속에 있었으며 영국의 손을 쓰지 못했고 미국은 무관심. 이로써 독일은 커다란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4)쉬테텐 합병(가) 1938년 9월, 독일과 체코 국경에 연한 쉬데텐 지방에 대해 거주 독일인을 해방시킨다는 명목하에 합병(나) 합병시 독일 공군은 심리적으로 위협을 주는 작전을 수행(5) 체코 강점과 독?소 불가침 조약(가) 1938년 9월 29일, 영국?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4국은 뮌헨협정을 체결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체코에 최후통첩을 한 상태에서 전쟁의 와중에 휩쓸려 들지않기 위해 독일에게 사실상 체코를 양도하는 조치를 취함(나) 파멸 당한 체코는 양도하는 조치를 취함(다) 체코내의 40개 사단과 병기공장을 인수하는 대수확을 거둔 히틀러는 1939년 8월 23일, 소련과의 사이에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3. 젝트의 비밀 재군비가. 내용(1) 엘리트 집단의 정예군 양성(가) 귀족자제, 구군벌자제 우대, 상위직 임무 수행 가능토록 교육(나) 나치즘의 탄생 유발(2) 일반 참모본부 기능 유지 : 참모본부의 모든 기능, 정부 각 부처에 이관 민간인 자격으로 정부 각 부처에 근무※1935년 히틀러의 재군비 선언 때까지 성공적으로 유지(3) 동원체제 및 예비군 제도 유지(가) 동원계획 수립 : 연금국에서 조직, 편성(나) 경찰(보안대) : 장교에 의한 훈련(다) 노동군(흑색 방위군) : 군에 고용된 민간인으로 군인과 같은 내무생활(4) 고도의 전기연마(가) 조정사는 민간 항공사에서 비행훈련(나) 베를린 공대에 장교위탁 교육 -> 과학기술의 적용 가능성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