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1MUSICAL FILM2005.03.31..PAGE:2Contents뮤지컬 영화란 무엇인가뮤지컬 영화의 역사장르로서의 뮤지컬 영화뮤지컬 영화의 분류뮤지컬 영화 맛보기..PAGE:3뮤지컬 영화란 무엇인가노래와 춤을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영화의 유성화로 음악이 중요한 표현수단이 되어 뮤지컬분야로의 개척오락영화의 가장 중요한 위치 차지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예술적인 새 표현법 마련..PAGE:4뮤지컬 영화의 역사1927-1930초기의 무성영화 : Vandevill(음악을 곁들인 짧은 희가곡)형식워너브라더스사의 비타폰 실험 음악적인 부분에만 전적으로 초점 맞춤최초의 유성영화 : Al jolson 브로드웨이의 작곡가들 영화사 영입 , 보드빌스타들의 영화배우로서 캐스팅..PAGE:5뮤지컬 영화의 역사1930-1940초기 영화감독 어니스트 루비크 : 영화,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1930년대말 디즈니사 만화영화들에서 뮤지컬형식시도...PAGE:6뮤지컬 영화의 역사1940-1950MGM사 뮤지컬팀 아서프리드 : 소설 를 뮤지컬화40년대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여로 유머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뮤지컬 영화들이 대거 제작뮤지컬 영화의 정점 : 주디 갈런드와 진 켈리의 MGM사 뮤지컬이 쏟아져 나옴...PAGE:7뮤지컬 영화의 역사1950-1960텔레비전의 보급으로 뮤지컬 영화의 커다란 타격한국에 상당수의 뮤지컬 영화 개봉 : , , 월트디즈니사의 , 제작50년대 MGM사 대표작 : , , , ..PAGE:8뮤지컬 영화의 역사1960-1970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영화로 다시 제작 : , , , 줄리 앤드류스 : 사운드오브뮤직, 매리포핀스..PAGE:9뮤지컬 영화의 역사1970-198070년대 초반 : , 제작상업성이 떨어지던 뮤지컬 영화의 쇠퇴화 : 컬트문화의 구심점, 뮤지컬음악에 다른장르의 음악도입..PAGE:10뮤지컬 영화의 역사1980-1990(뮤지컬영화의 침체기)..PAGE:11뮤지컬 영화의 역사1990-2000매우 적은 수의 뮤지컬 영화 제작 : , 디즈니사의 제작으로 과거의 명성 회복,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팀 버튼 : ..PAGE:12뮤지컬 영화의 역사2000년이후..PAGE:13장르로서의 뮤지컬 영화구 분질서의 장르(웨스터, 갱스터, 필름느와르)통합의 장르(뮤지컬, 코미디, 멜로드라마주인공개인 (남성 지배적)커플/집단(여성 지배적)배 경경쟁적 공간(이데올로기적으로 불안정)문명화된 공간(이데올로기적으로 안정)갈 등외향적 폭력적내향적 외향적결 말제거(죽음)화해(사랑)주 제중재 회복, 남성적 규율고립된 자속, 약속으로서의 유토피아통합 순치,모성적 가족주의적 규율공동체적 협력, 실재로서의 유토피아..PAGE:14뮤지컬 영화의 분류전통 뮤지컬 형식을따른 영화뮤지컬 형식 자체를깊이 탐구한 영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서론)가을이 한창 무르익고 모든 생명체가 성숙하고 단풍잎이 붉은 손 수줍게 흔들면서 땅으로 하직인사 하며 떠난 10월의 햇살 따사로운 어느 날...... 겨울로 들어서는 준비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즈음해서 나는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으로 인해 마음 깊게 열정적이고 다분히 의지적인 따뜻한 11월을 맞게 될 수 있었다.사실 처음의 내 생각은 어서 아무 책이나 읽고 과제로 내주신 레포트나 얼른 쓰고 대학교 1학년 처음으로 맞는 가을을 만끽하자는 심산이었다. 내 어깨를 짓누르던 지긋지긋했던 시험도 끝났고 새로운 계절의 다가옴이 느껴졌고, 곧 있을 학교 축제의 설레임도 과제는 대충해버리자는 오만한 마음을 갖게 한 주동자들이었다.하지만 얇고, 작고, 표지마저도 너무나 단순했던 그 책은 나의 눈과 머리와 마음을 붙잡고는 도통 놓아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어떤 책 이길래, 하는 생각이 들더니 이내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아픔 비슷한 무언가가 속에서 솟아올랐다. 아마도 이런 복잡한 심정이 내가 한 번도 쉬지 않고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해준 것 같다.그럼, 지금부터 나의 이성과 감성 모두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에 대한 생각과 느낌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본론)내가 아직은 어리고 철없던 시절, 인간의 삶과 일반 사회에 대해 잘 모르던 때에 S모 방송사의 “그것이 알고 싶다” 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주제는 우리나라의 학대받는 여성들에 대한 재조명 이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당시에 본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무엇에 그렇게 이성을 잃었는지 모르는 잔뜩 흥분한 남자가 아내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몽둥이를 세차게 휘두르면서 땅바닥에 넘어진 아내의 머리를 피가 줄줄 흐르고 사방으로 피 튀기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때리는 것이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발로 밟고 걷어차고 짓누르는, 무차별적으로 때리는 행위도 보여주었다. 이 남편들은 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아내가 큰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저 자신이 이것저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멋대로 마음대로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다는 이유로 소중한 아내이자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이자 자기 자식들의 어머니인 여성을 학대하고 무시하고 폭력을 가했던 것이다.하지만 이런 남자들은(이 책에서는 “폭력 남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회에서 어찌할 도리 없이 그저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리우는 대한민국 경찰들은 손을 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경찰들 또한 남성들로 구성되는 공적 기관으로써 남의 “집안일”에 간섭하는 것을 못마땅하고 숨겨야 할 것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논리인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가족을 법으로부터 보호 한다”는 얘기는 곧 “남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없다”, “남편의 폭력 행위를 보호 하겠다”라는 뜻이다. 이렇듯 폭력 남편에게 가정은 일종의 치외 법권 지대이다. 치외 집권 지대는 남의 영역이므로 남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남들이 보기에 사소하다. 자기 집에 불을 질러도 형사 처벌을 받는데, “내 마누라” 를 때리는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 경찰이 범죄자를 잡으러 사무실에 출동한 경우에는 불개입 논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폭력 발생 시 경찰이 가정에 들어오는 것을 사생활 침해라고 보는 것은 가정이 한 남성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내를 자신만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남성들의 사고가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위에 언급한 내용들을 보면 사람들은 흔히 “아내 폭력”은 극소수 일탈적인 사람들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달려가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두들겨 맞고 수모를 당하고 주변사람들 앞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고 말이다. “아내폭력”, “여성폭력”은 사태가 워낙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그 원인이 가부장제라는 우리의 일상적 삶의 구조에 있기도 하지만, 가정에서 폭력당하는 아내의 심리는 모든 피억압자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아주 쉽게 인간을 노예 상태로 몰고 가지만,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는 피해자의 수치심과 두려움이 동반한다. 그러나 “여성 폭력”은 문화와 미풍양속으로, 전통으로, 가족주의나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미화되기 까지 한다. 때문에 가해자는 피해 의식을, 피해자는 죄의식을 갖게 만든다.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일인가!!!이 책에서 여러 가지 나를 놀라게 한 글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발췌해본다.“나는 남자의 권위가 조금 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가장의 권위는 설 수 있는 거예요. 세상이 평등해져서 권위가 없어지면 안 돼요. 어린애가 잘못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건 말이 안 되죠. 집안이 서려면 주춧돌이 있고 그래야 기둥이 서죠. 그 집안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집을 대표하는 대표자, 대변자가 있어야지, 배에도 선장이 있고 차도 운전을 해야 가잖아요.”- (48세, 대졸, 무직 폭력 남편)같은 남자이지만 참으로 부끄럽고 무지하고 창피한 말이다. 위 남성의 말대로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평등한 성원들의 수평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성과 연령에 따른 역할이 있고, 그에 따라 가족 구성원들 간에 위계가 정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수평적이지 않고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갖고 있는 잘못된 공동체에서 벗어나서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이해하면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지, 지금껏 전해내려 온 역할에 대한 권위와 옳지 못하게 부여된 힘을 과시하고 표출함으로써 오히려 우리 사회는 퇴행하고 있고, 잘못된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또한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란 책에서는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세태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사례를 들어보자면,“3-4년 전에도 이혼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아직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나이고 솔직히 누가 인혼한 집 자식들하고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아이들 장래를 생각해서 참았지요” - (43세, 고졸, 주부, 여성)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을 “병신”만드는 것, 이혼한 집의 자녀는 “장애인”과 같다는 것...... 이 책에서는 우리 사회의 이혼한 집 자녀에 대한 인식을 이렇듯 신랄하게 적어놓았다. 즉,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과 생존 문제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여성의 현재 모습을 예를 통해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아내 폭력”을 일삼고 여성을 무시하고 핍박하는 이 사회의 남성 뿐 만이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고 강제적으로 참고 평생을 눈물을 흘리며 살게 만드는 사회 구조 내에 이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결론)현재의 사람들은 남녀의 지위가 평등하다 못해 이제는 여자가 우위를 차지하게 만들려고 하는 “역차별의 시대가 왔다” 라고 우기던 사람까지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시대는 바뀌고 있다. 하지만 세대의 인식이 변해가고 있음에도 구세대들의 고정되어진 의식들이 가정폭력의 근절을 막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시대를 거스르는 일인 것이고, 필히 가정이란 개념에 대해 재교육, 재인식이 요구되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AMERICAN HISTORY X-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본 토니케이 감독의 American History X-서 론‘자유와 평등을 표방하는 나라 미국은 과연 누구에게 나 자유롭고 평등한가?’,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의 날개아래 품어지는 “미국인”이라는 실질적인 범주 안에는 유색인종들까지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하나의 사례를 제시해주는 영화 중의 하나로 American History X 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토니케이의 감독으로 1999년에 발표된 American History X 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주연배우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이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으로 널리 알려지고, 많은 비평가 및 관객들의 지지를 받아온 영화이다. 이 영화는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인종주의자 집단에 가담해왔던 한 형제의 단편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 증오, 폭력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그렇다면 고정관념과 편견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한 형제의 삶을 이토록 망가뜨릴 수 있단 말인가! 지금부터 수업시간에 배운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차별 등의심리학 관점으로 이야기해 보겠다.본 론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정관념(stereotype)이란? 사람들이 어떤 사회집단에 대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인상을 말하고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이러저러한 특성, 태도, 성격을 지녔다고 믿는 내용을 뜻한다.편견 (prejudice)이란? 어떤 사회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토대로 그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 혹은 느낌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차별이란? 편견을 토대로 어떤 집단에 대해 불이익을 주거나 그 집단을 회피하는 행동평범한 미국의 가정이었던 데릭의 가족은 소방수인 아버지가 화재진압 중 흑인에 의해 살해되면서 평범했던 가정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장남인 데릭은 아버지의 사망이후(사망 이전에 잠깐 동안이지만 가족식사를 하면서 데릭이 아버단지 형에 대한 맹목적 동경뿐이었던 데니는 데릭의 설득으로 인종주의자 집단에서 나오기로 결심하지만, 새로운 삶을 다짐한 바로 직후 예전에 갈등을 겪었던 흑인 동급생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이 영화에서 두 형제의 삶에 깔려있는 바탕은 바로 인종주의의 함정이다. 인종주의(Racism)란 유전되는 신체적 특징과 성격 ? 지능 ? 문화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이론 또는 사상으로 이 사상에는 어떤 인종은 선천적으로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고정관념이 깔려있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역사적으로 독일이 그 민족을 지배하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한 나치 선전술 가운데 하나로 이용되었으며 폭력성과 적의를 낳는 식민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로 이용되어지곤 했다. 이러한 편협하고 구시대의 유물인 인종주위, 인종주의적 사관이 어떻게 현재까지 답습되어지고 개인의 삶 깊숙한 곳에 침투하는지를 영화는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 보이고 있다.위에서 중간중간 심리이론에 접근하여 설명하였지만, 다시한번 부분을 확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 해 보겠다.- 증오의 분출구로서의 이데올로기 (좌절을 전위시킬 대리인을 찾게 됨)이 영화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데릭의 경우를 살펴보면 표면상으로 그는 아버지를 살해한 유색인종에 대한 분노가 인종주의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됨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아버지가 살해된 직후 뉴스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데릭은 ‘사회를 위해 헌신해 일하는 아버지가 좀벌레 같은 유색인종들에게 살해되었다.’라는 말을 한다. 이 대사를 통해 그는 살해의 가해자를 어느 개인이 아닌 전체의 유색인종들에게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DEREKWell...look at our country. It's ahaven for criminals. Black...brown...yellow...whatever.REPORTERSo you're saying the murder of yourfather is "race" related?DEREKEvery problem in this country is"race" 가담이 그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닌 단순한 증오를 폭발시키기 위한 공간의 필요에서였음을 알 수 있다.영화에서 한국인 상점을 습격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의 데릭의 짧은 연설은 현세대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피해의식의 일종이다. 백인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힘과 경제적인 면에서 우위를 지녀왔다 그들은 항상 침략의 주체였지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점차 유색인종의 사회적 역량이 확대되고 그들의 발언권이 비중을 높이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에 그들은 기존의 기득권을 놓칠까 조바심을 낸다.DEREK(to the group)We're here tonight cause we gotimmigration problems spiralling out ofcontrol. We got Asians up the ass...taking over our land with theirfucking Yen. Mexicans...flocking intothis place like some giant fuckingPinata was shattered.The group busts up. Cammeron watches Derek and smiles.DEREKDon't laugh. It's tragic. On theStatue of Liberty it says "Give meyour tired, your hungry, your poor,your huddled masses...yearning to befree." It does not say give me yourshiftless, your greedy, your indolent,your criminals, looking for a freeticket.The group agrees.DEREKWe're here tonight to show thegovernment how we feel aboutminorities taking over our country.ke"African", Derek? Where'd you learnthat shit? Johannesberg?Dennis laughs and Derek eventually smiles. Danny looksat them, not really understanding. Doris stares downDennis.DORISHoney? Please don't speak that way.They don't--DENNISHow am I speaking, Doris!? Hunh?!I'm speakin' fineP(quickly to Derek)Hey. Don't let that him confuse youover there, Derek. Look at me. Thisshit he's pulling is a load of crap.Hey. Look at me, Derek. I mean it.If we keep givin' niggers everything,there'll be nothing left for us.Derek and Danny stare at their father, not knowing how toreact.DORISYou can be a stupid son of a bitchsometimes.DENNISAnd then we have naive fools like her.DORISI really hate you with a passion sometimes.An upset Doris exits the room past YOUNG DAVINA. Dennislooks to Derek.DENNISYou know what I mean though, right?DEREK(nodding)Yeah.아버지는 미국의 평범한 대부분의 기성세대를 상징한다. 게다가 아버지의 직업이 사회에 대한 봉사와 희생으로 상징되는 소방관이었다는 설정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 강조되는 보수주의의 모습을 나타낸 것 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반드시 얼굴에 복면을 쓰고 스킨헤드를 한 채 파이프를 휘두르는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려는 경향이 젊은 세대의 두드러지는 모습이 아닌가를 생각해보면 데니의 반사회적인 모습 또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데니에게 있어 데릭의 모습은 유약한 자신과 다른 확신에 찬 모습이다. 그리고 아무 비판의 여지없이 형의 길을 답습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별다른 고민과 비판없이 반체제 집단의 유혹에 빠지는 모습은 현세대의 젊은이들에게 흔히 나타내어지는 모습이다.출감한 데릭에게 조직의 지도자는 태연히 이렇게 말을 한다. ‘우리의 조직은 훨씬 거대해지고 조직화되었다. 인터넷덕분에 조직의 회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 말에서 관객은 수많은 갈 곳 없는 나방들이 그저 불을 보고 뛰어드는 장면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의 역전과 타자화의 극복을 통한 반성이 영화는 그러나 희망과 극복의 모습들도 풀어내고 있다. 데릭이 교도소 안에서 그의 편협한 생각(편견)을 깨는 과정과 데릭에 의해 인종주의에서 벗어나게 되는 데릭의 모습이 그것이다. 교도소안에서도 그의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있던 데릭은 그 교도소안의 같은 인종주의자 그룹에 속하려한다. 그것이 그의 신념에 따른 것임은 어느 정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흑인동료가 말했듯이 교도소 안에서만큼은 백인이 소수이기에 같은 백인들이 서로 보호함으로 유색인종으로부터 몸을 사리려는 의도도 적지 않다. 여기서 데릭은 상황의 역전을 경험하게 된다.LAMONTI got your back. Righteous whiteCracker with attitude. Just like theJudge who sentenced me, man.Lamont laughs but then becomes serious.LAMONTIf your smart though you'll rememberone thing. You're the nigger in here.Not me.또한 그는 백인 간부들의 무자비함, 교도소내의 백인 동료들이 사리를 위해 유색인종들과 타협하는 모습, 흑인에 대한 부당한 법적용등에 충격 있다.
이청준의「병신과 머저리」-시대(사회)의 변동과 개인(내면)의 불안의식 및 성찰-?서론교수님께서 처음 “병신과 머저리”라는 소설의 제목을 말씀하셨을 때, 나는 욕을 하신 줄 알고 어찌나 놀랐던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명한 소설 제목조차 몰랐던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 도대체 “병신과 머저리”라는 강한 단어로 제목을 붙인 이청준이라는 작가는 누구인가! 나의 관심을 덜컥 끌어버린 “병신과 머저리”, 그리고 이청준...... 과연 어떤 작품이고, 작가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작품을 집필하였는지 지금부터 이야기해보겠다.?본론1.작가 이청준!이청준은 1965년 사상계 신인 응모에 작품 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60년대 세대로서 자신들 세대의 새로움을 밝히고,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가이다. 작가가 생존하며 현재에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동안 이청준의 작품 세계는 본격적인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이청준을 대상으로 한 학위 논문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부분적 측면의 해명으로 머무르고 있다.이청준에 대한 기존의 연구 경향은 대략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작품의 독자적 의미를 중시하여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연구한 것이다. 작품의 내용 면에 있어서는 유년 시절 성장기에 생긴 정신적 상흔을 많이 언급한다. 김치수는 주인공들은 공포와 폭력의 세계에서 진술 욕구를 좌절당한 정신적 갈등을 갖고 있다)고 하였고, 김현은 정신적 상흔이라는 원체험과 현실 원칙이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개인의 다양한 욕망을 드러내고 반성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하였다.또한 작품 속 주인공의 장인 정신을 주로 다룬 연구도 있는데 이보영은 「병신과 머저리」를 기본적으로 예도의 소설로 파악하고, 절대적 리얼리티 즉 시원의 미에 집착하는낭만적인 예술가로서 동생을 파악)했고, 이상우 또한 같은 작품에서 동생의 고통을 예술가로서의 고통)으로 다루었다. 작품의 형식면에 관한 으로 인해 계몽 과정 자체를 완성하고 계속 진행시키는 믿음 자체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4.19 혁명 이후의 역사적 전개는 그런 의미에서의 계몽 과정의 좌절로 받아들여진다. 그로 인해 좌절의 기표와 결합된 4.19 혁명의 기억은 근대적 주체로서 갖게 될 법한 계몽의 태도를 굴절, 내면화시킨다.이때 간과해서 안 될 것은 그와 함께 작용하는 6.25의 중요성이다. 유년기의 체험이 성인이 된 후에도 근원적인 정서 혹은 사유법을 이루고 있으며) 그때 받은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더 깊은 병으로 작용하고(개인의 불안의식) 오히려 전쟁의 기억은 4.19 혁명의 승리와 5.16 군사 쿠데타의 좌절 경험과 결합하여 독특한 ‘이중적 의식구조’)를 만들어내었다. 나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시대의 내면화가 형과 동생으로써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소설 에서는 형과 아우의 세대를 대비시켜 그 각각의 정신적 상흔과 삶의 태도를 보여 줌으로써 작가 자신의 세대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있다.)형은 의사의 전적인 책임이라고 할 수 없는 소녀의 죽음을 계기로 일상의 삶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의 일환으로 소설을 쓰는 데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신적 상흔을 찾는다. 형은 자신의 정신적 상흔의 근원을 알고 그것을 통해서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형의 소설은 단지, 형의 정신적 상흔의 탐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생의 정신적 상흔을 보여 준다. 동생은 형의 소설이 시작되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형과 동생 세대의 대비 과정은 또 다른 방식으로 보인다. 형이 아내를 맞이하는 과정과 그리고 동생이 혜인을 보내는 과정이다. 형은 지금의 아내를 맞이하기 전에 아내를 둘러싼 삼각관계에서 승리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그에 반해 동생은 한 때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혜인에게 아무런 자기주장과 책임을 갖지 못한다. 혜인이 결국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그것이 동생의 내면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뭔가 싸워 왔어요.… 그것은 결국 선생님 자신의 힘으로 밖에 치료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혜인의 편지에는 형과 동생이 세대론적으로 비교되고 있다. 두 세대의 차이는 환부의 유무이다. 형은 전상이라는 환부가 있으며 그 환부가 있음으로 인해 ‘자기 주장’과 ‘자기 책임’을 보인다. 그런 형에 비해 동생은 환부가 없으며 그 환부가 없음으로 인해 ‘책임질 능력이 없으며’ 언제나 ‘자기 안으로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두 세대의 차이는 전쟁 세대와 60년대 젊은 세대에 대한 비교라고 할 수 있다.형의 세대가 갖고 있는 ‘전상’이라는 환부는 ‘삶의 조건이 생존 논리와 선택의 상황’이었음을 보여 준다. 생존 논리와 선택이라는 상황은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황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엄격한 책임과 투철한 의지를 갖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이 소설을 집필한 이유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 생각할 수 있다.형에 비한다면 동생은 또 다른 질서에 놓인다. 동생은 환부가 없으나 그 통증은 있다. 통증이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과 갈등을 겪고 있음을 말한다. 전쟁 세대의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기존의 가치 질서를 전면 부정한다. 동생의 세대는 그들이 따를 가치 질서가 없으므로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가치관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들이 ‘자기’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비롯된다. 동생의 방황은 새로운 가치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방황을 대변한다.) 동생은 인간의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개인’을 세우고자 하는 그 과정에 서 있다. 그래서 동생의 정신적인 방황은 형의 세대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형과 동생, 두 인물의 설정은 이 소설을 쓴 60년대의 상황과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 소설을 쓴 이청준은 유년기에 6.25를 체험하였고 지식인으로서 4.19와 5.16를 경험한 사람이다. 이 소설 역시 그러한 작가의 영향을 받아 시대상이 작품 속에 내면화된사냥꾼, 형이 등장하는 ‘내화1’, 오관모, 김일병, 형이 등장하는 ‘내화2’가 그것이다.이청준의 소설 대부분은 이렇게 외화와 내화를 사용하는 액자소설 형식을 사용하는데 이 때 보통 외화에는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의혹을 품고 그것을 추적하는 시선이 있고, 내화 안에서는 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외화에 등장하는 ‘나’ 의 시선은 내화 속 인물의 행적과 사건에 대해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그러한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 또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그 시선은 내화의 이야기와 자기 자신을 오가며 내화의 이야기를 자기참조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화에 대해 품는 ‘나’ 의 의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 될 수 있으며, 이는 “나” 라는 대리인을 통해 작가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의문과 질문을 하는 자기 성찰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작가의 자기 성찰은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로서의 존재 방식에 대한 탐구로써, ‘이런 상황에서 소설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소설의 미학과 의무에 대한 자의식을 성찰하는 것이다.작품 내용을 통해 이러한 작가의 성찰의식을 보도록 하자.“나는 멍하니 드러누워 생각을 모으려고 애를 썼다.나의 아픔은 어디서 온 것인가. 혜인의 말처럼 형은 6.25의 전상자이지만, 아픔만이 있고 그 아픔이 오는 곳이 없는 나의 환부는 어디인가. 혜인은 아픔이 오는 곳이 없으면 아픔도 없어야 할 것처럼 말했지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인가.나의 일은, 그 나의 화폭은 깨어진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것을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망설이며 허비해야 할는지도 모른다.어쩌면 그것은 나의 힘으로는 영영 찾아내지 못하고 말 얼굴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의 아픔 가운데에는 형에게서처럼 명료한 얼굴이 없었다.”“나” 가 처한 문제는 아픔만 있고 그 아픔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 에게는 그릴유를 통해 객관적 시선의 확립을 돕는 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의아한 부분이 꽤 있었다.① 형은 왜 소설 속에서 오관모를 죽였을까?“ 형은 언젠가 자기가 동료를 죽였다고 말했지만, 형의 약한 신경은 관모의 행위에 대한 방관을 자기의 살인 행위로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형은 가엾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미웠다. 언제나 망설이기만 하고 한 번도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의 행동의 결과나 주워 모아다 자기 고민거리로 삼는 기막힌 인텔리였다. 자기의 실수만도 아닌 소녀의 사건을 자기 것으로 고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양심을 확인하려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확인하고 새로운 삶의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형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수술 중 소녀가 사망하는 사고를 겪으면서였다. 성공률이 채 50%가 되지 않는 수술에 실패한 것은 비단 형의 실수만이 아닌데도 형은 소녀의 몸에 자신의 칼날이 닿았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이는 6.25 때, 누군가를 죽이고 혼자 도망쳐왔다는 내면 속 죄의식의 발현을 유도한다. 그래서 형은 소설 쓰기라는 행위를 통하여 고백을 함으로써 자기 구원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증거를 굳이 찾자면, 형이 소설 속에서 죽인 오관모가 살아있음을알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소설을 불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 이는 더 이상 허구의 세계에 갇혀 지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즉, 죄의식에 사로잡혀 구원을 바라는 입장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관모의 출현이 주는 현실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보게 됨으로써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 관념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형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② 동생은 왜 소설 속에서 김일병을 죽였을까?“ ‘도대체 형이란 자는...’으로부터 시작해서 생각해낼 수 있는 욕설을 모조리 쏟아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꼭 형을 두고 하는 생각만은 아니었다. 그저 욕을 하고 싶다는 것, 욕할 생각이라도 한다.
한국의 현대문학(↑시인 김지하) (↑시인 고정희)현실인식과 역사의식“저항에서 생명으로”김지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나는 그의 시가 때로 소름이 끼친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며 대표적인 존재로 꼽히는 그의 파란 만장 영화같은 인생을 알고 나면 더욱 그러하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의 삶은 그의 시속에 모두 녹아있다. 김지하 시인만큼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역사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드물다.김지하 시인의 시를 통한 고행은 1969년 『詩人』지에 「황톳길」등, 5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그 막이 열린다. 1970년 『사상계』에 발표되었던 당시 「오적」으로 인하여 반공법 위반혐의로 체포 되었다가 100일 만에 석방 이후 희곡 『나폴레옹 꼬냑』을 상연하고, 그 해 12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바친 첫 시집 『황토』를 간행했다. 이후 제 3세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터스 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체포, 투옥, 석방의 악순환 속에서도 우리의 전통적 양식을 되살려 혁명적 파격성과 실천적 운동성을 담은 시들을 발표해 왔으며 시집 『애린』 이후 최근에는 내성 의 시로의 변모를 보여주면서 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정신사와 문학사에 사라지지 않는 빛과 향기를 던져주고 있다. 시집으로는 『황토』 (1970) , 『타는 목마름으로』(1982) , 『대설남』(1982) , 『애린』(1985) , 『검은 산 하얀 방』(1986) , 『별밭을 우러르며』(1989) 등이 있다 .------------------------------------------------------푸른 옷새라면 생시라면그것이 지금이라면그것이 끝끝내 끝끝내가리워지지만 않는다면.시인의 첫 시집『황토』에 수록된 작품으로, 푸른 옷과 붉은 표지가 암시하는 억압과 고통의 상태에서 새, 물 혹은 바람이면 좋겠다는 소망을 노래한다. 꿈이 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는 말은 그의 소망이 얼마나 간절한지 표현한다. 그러나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 소망의 영역에 갇혀있다. 금제의 표시가 1 연과 2 연에서는 푸른 옷, 3연에서는 붉은 표지로 나타나 시의 전반부를 형성한다. 시의 4연을 보면 앞에서의 “나는 좋겠네” 와는 다르게 “기다리던 눈들에 흘러넘치는 맑은 눈물들에”라를 구절을 볼 수 있다. 왜 갑자기 나의 바람에서 여러 명의 소망으로 바뀌게 된 것일까? 이것은 전반부의 개인적 소망의 형태가 집단적 소망의 모습으로 변화함을 보여주면서 이 시가 개인적 서정의 차원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우리 민족 모두의 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전반부에서는 해방의 이미지가 새, 물, 바람 등의 다소 단순한 자연물에 비유되어 있지만 후반부에서는 먹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푸른 하늘과 햇살이라는 상징으로 대체되는 것을 보며 더 이상 이 염원이 그만의 소망이 아닌 민족적인 염원으로 발전됨을 느낄 수 있게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자유와 해방과 광복을 기다리는 사람은 화자 개인만이 아니다. 캄캄한 밤에 그토록/ 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 기다리던 눈들 과 거기에 흘러넘치는 맑은 눈물들’. 이 모두가 염원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소망의 노래인 것이다.그런데 한 가지 전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김지하 시인이 광복이 된 후에 왜 해방을 그토록 원하고 있는 이 시를 썼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해방이란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아니면 억압된 자유에서의 해방인가......--------------------------------------------------------타는 목마름으로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 시는, “가수 고 김광석”의 노래로 자주 듣고 있다. 어눌하면서도 힘있는 김광석의 목소리와 김지하 시인의 분노와 비통함이 너무나 자연스레 혼합되어 듣고 있노라면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 당시 김지하는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10개월 만에 석방된 적이 있다. 그러나 곧 인혁당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이 문제가 되어 다시 재수감 되는 비운을 겪는다. 이 때 정부는 김지하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하였고 김지하는 「양심선언」으로 맞섰는데,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김지하의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절규, 그리고 자유를 원하는 신앙적 기다림이 잘 표출되어 있는 작품이다.70년대를 온통 수형 생활로 보낸 한 시인이 그야말로 타는 목마름으로 부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절규를 담은 작품이다. 처음 구절을 보면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라고 되어있는데, 왜 하필이면 뒷골목일까? 혹시 가슴속에 목마른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이른 새벽 뒷골목에서 남 몰래 써야 한다는 것을 시적 상황 속에 당시의 현실을 선명하게 집약시켜 놓은 것은 아닐까? 또한 2연에서 보여지는 여러 소리의 중첩은 왜 시도한 것일까? 나는 이 부분을 음미할 때마다 당시의 공포와 고통이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런 상황을 분노와 비통함으로 흐느끼는 화자가 숨죽이며 남몰래 쓸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이는 어떠한 산문적 서술보다도 뚜렷하게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면서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비장한 결의를 드러내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짧게 함축한 시가 글로 풀어 쓰는 것보다도 더욱 강하고, 생생하게 느껴지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차마 입 밖으로 그 소리를 내 지를 수는 없는 화자의 고뇌와 그 시대의 사실적 묘사는 한편으로 처절하기까지 하다.?이상으로 김지하 시인의 고찰을 마치려고 한다. 한 시대의 상징이자 영웅이었던 김지하. 그 는 요즘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을 지내면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자유, 사랑, 정의 실천의 정신으로 대학생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고정희는 시쓰기란 “그것은 일종의 멍에이며 고통이며 눈물겨운 황홀이다.”라고 첫 시집의 후기롤 통해 고백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을 실현하는 장이며, 내가 보는 것을 밝히는 방이며, 내가 바라는 것을 일구는 땅이다.’ 라는 그녀에게 쓰기는 다름 아닌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그녀는 1980년대 초부터 여자와 남자가,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인 에 동인으로 참가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 나갔다. 그는 한편으로는 당시의 민족민주 운동의 물결을 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새롭게 일기 시작한 여성해방 문학의 물결을 일으키며, 그 시대 누구보다도 격렬한 삶을 ‘글 쓰는 노동자’의 전형처럼 살다가 갔다. 운동가의 강인함과 시인의 열정 및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고정희는 한국에서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고 그 뛰어난 실천적 전범을 보였던 작가였다. 한국 문학사에서 고정희 이전에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역사성' 그리고 '여성과 사회가 맺는 관계방식'을 특별한 문학적 가치로 강조하고 이론화한 작가는 아무도 없었다. 고정희가 없었다면 한국문학사에 페미니즘이라는 중요한 인식의 장은 훨씬 더 늦게 열렸을 것이다. 시인 고정희는 1975년 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래 15년간 , , , , , 등 모두 10권의 시집을 발표한다. 특히 는 여성해방운동이라는 전제하에서 쓴 최초의 시집으로 기록된다.나는 그녀의 다양한 시세계 중에서도 그녀의 시에 나타난 모성성에 대해 살피고자 하는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모성성이라는 말이 가지는 모호함에 대해서 이다. 모성이라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한없이 보수적일 수도, 혹은 진보적일 수도 있으며 여성을 억압하는 의미로, 혹은 여성을 해방하는 의미로도 다가오기 때문이다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고정희의 「어머니」는 '외로움', '더운 피', '불행' 등의 삶의 암울하고 괴로운 (-)적 요소들 다음에 '동트는 아침', '새벽'. '손잡는' 등의 새로운 희망과 연대의 (+)적 요소를 나타내면서 어머니를 등장시키고 있다. 왜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 사이에 어머니를 부르는 것일까? 그것은 어머니의 매개적 역할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지만 1연의 마지막에서 '달빛처럼 무심한 어머니'라는 표현을 왜 하였을까? 앞에서는 부정적 요소를 없애기 위해 어머니를 불렀는데, 이제와서 무심한 어머니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무심함이란 감싸주는 행위 동안에 이를 드러내지 않고 초연한 어머니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달빛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의지가 되는 빛이지만 태양처럼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내지 않고 초연한 태도로 그 자리를 지키지 않는가. 2연에서 북쪽 창문, 아카시아, 이승의 마지막 깃발 등을 통해 어머니가 이 세계 사람이 아닌 저승의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가 고정희 시인의 어머니 죽음 이후에 쓰여진 것을 감안할 때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서 등장한 저쪽 세계의 어머니와의 만남은 '동트는 아침에 손을 잡는 행위'를 통해 조우된다. 어머니는 죽음 이후에도 영향을 끼치는 막강한 존재로서 괴로움에 빠져 있는 나를 어둠에서 건져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인도해주는 인물로 나타난다. 즉 어머니를 대모신으로서 승격시킴으로써 모성이 단순한 출산과 양육의 역할을 넘어서 폭 넓은 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