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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성론에서 바라본 천군전 연구 평가A+최고예요
    8 --目 次-Ⅰ.序論??????2Ⅱ.本論1.심성론의 해석???????22.천군소설의 심성론적 의미???????23.천군전의 줄거리???????34.천군전의 발생배경???????45.천군전의 의미56.작품에 존재하는 심성론의 두 층위6Ⅲ.結論??????7Ⅳ.參考文獻??????8Ⅰ. 序論조선유학에 있어서 심성론은 우리나라 고전문학의 키워드라 불릴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다. 심성론이라 함은 인간은 심성적 존재, 즉 느낌과 마음이 있는 존재로서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마음은 심장에서 나온 말이며 곧 생명을 중심과 생명의 감각으로도 얘기할 수 있다. 이러한 심성론은 바탕으로 천군소설이라는 장르로 문학사에 모두 8편이 등장하여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였다가 사라졌다. 이러한 심성론을 바탕으로 한 천군소설중에 그 시작을 끊었다고 할 수 있는 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할 예정이다. 먼저 앞서 간략히 언급하였었는데 본론에서는 그 심성론이 어떠한 논리에서 비롯된 주장인지를 살펴보고, 천군소설에 있어서 그 심성론적 의미가 어떻게 녹아들어갔는지 알아보겠다. 또 좀 더 나아가 천군전의 줄거리 및 발생배경, 이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천군전에서의 심성론적 의미를 살펴보겠다.Ⅱ. 本論1. 심성론의 해석사람의 심성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일반 용어에서 심성이란 마음씨ㆍ천성ㆍ성품 따위로 쓰고 있으나 송나라의 성리학 이후 전문적인 학술용어로 쓰기 시작하였으며, 일원론(一元論)이냐 이원론(二元論)이냐 하는 철학적 입장에 따라 심성(心性)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느냐 아니면 심과 성을 두 개의 개념으로 보느냐 하는 차이가 있다.이 말이 경전에 처음 보인 것은 맹자의 “마음을 다하는 자는 성품을 볼 수 있고 성품을 알면 하늘을 안다”라는 「진심(盡心)」장이다. 이는 심(心)ㆍ성(性)ㆍ천(天)을 깊이의 단계로 구분한 말이다. 심은 형이하학으로, 성은 형이상학으로 설명하여, 이른바 심은 기요[心卽氣] 성은 이[性卽理]라는 이원론적 설명이냐, 심과 성이 모두 기라는 기일원론(氣一元論)적 입장이냐 있다. 천군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김우옹의 천군전,천군기, 의승기, 천군본기, 수성지 등 8편이 알려져 있다. 이들 천군소설은 모두 작자가 뚜렷이 알려져 있고, 이에 따라 저작시기도 비교적 확연하며, 많은 작품들이 문집에 당당히 실려 있어 우리 소설사에서 특별한 위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천군소설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독특한 문학유형이며, 한국인의 이념적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심성의인 이라는 점에서 천군소설의 사상적 배경이 심성론에 있음은 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지적되어 왔다. 그래서 천군소설이, 첫째는, 사건 면에서 심통성정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 둘째는, 인물형상면에서 충신형 인물과 간신형 인물을 성과 정에 비유하고 이 둘의 대립갈등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정을 배제하고 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심통성정의 주제 의식을 반영한다는 점, 셋째는 천군소설인 수성지의 사건전개가 원형-타락-회복의 과정을 밟는다는 점들이 거론된 바 있다.심통성정은 인간 내면의 성이 외물과 만나 정으로 발현되는 과정에서 그 조건을 결정하고 방식을 유도하는 정신신체적인 구조이다. 이때 정은 성이 발현된 것이고, 정은 성의 발현태이므로 성과 정이 대립적인 양상을 띠는 것이 아니다. 이에 따라 천군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주된 갈등은 성에 속하는 인물군과 정에 속하는 인물군의 갈등이 아니라, 성이 정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마음의 건강에 해를 주는 인물군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인물군 사이의 갈등이 문제가 된다.그리고 사건 전개과정에서도 마음이 병을 얻는 방식과 심성이 치료되는 방식이 중요했다. 마음이 병을 얻은 과정은 인간의 내면미발의 성이 외면기발의 정으로 나타날 때 과불급의 양태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치료되는 과정은 인간 내면미발의 성을 곧게 함양하는 경의 활동에서부터 시작되어 외면기발의 정이 절도에 맞게 표현될 때 의가 서용되는 것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군소설 전반을 볼 때, 의보다는 경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 사람들이 그를 天君이라 부르는데 첫 이름은 理이고 다른 이름으로는 心이라고 하며 흉해에 도읍을 정한다.원년에 천군이 신명전에서 조회를 받고 중문을 활짝 열도록 명하고 태재에게는 강자 속에 살면서 궁부를 엄숙하고 밝게 하라고 하고 백규의에게는 총재와 협력하여 모든 직무에 순응하도록 하여 모든 뜻을 밝게 하라고 명한다.이에 두 제상이 마음을 같이 하여 정사를 하고 일을 화합하게 하니 모든 관리가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엄숙하게 하여 감히 관직을 황폐하게 하는 이가 없다.재상이 충성하고 구신들이 크게 화합하니 국내가 잘 다스려지고 만국이 유인씨의 소식이되어 국가가 강성해진다.천군이 미행을 좋아하여 드나듦이 때가 없어 향방이 묘연해지자 태재가 간한다.말년에는 요망한 신하 공자 해와 공손 오 등이 태제 경을 내쫓자 백규의도 떠나버린다.혼란을 틈타 요적 화독이 난을 일으키고 적이 흉해를 습격하여 칼날에 피도 묻히지 않고 성에 들어온다.영대 밑에서 장군 강이 전사하고 적의 괴수 유척은 스스로 임금이 되어 방촌대에 들어가 산다.천군이 나라를 잃자 유신 가운데 따르는 자가 없으나 공자 양만이 남아 시로써 천군을 깨우친다.천군이 추연히 깨달아 고삐를 돌리도록 명하고 군사를 모으니 태제 경이 돌아와 위를 되찾고 백성들도 모여든다.천군이 궁궐로 돌아오니 대장군 극기는 선봉에 서고 공자 지는 원수가 되어 적의 무리를크게 무찌른다.천군이 신명전 위를 바로 잡으니 백규 의가 와서 돕고 적의 잔당도 무리하지 않고평정한다.삼궁이 청안하고 주위가 편안하여 천군은 평화롭게 정치를 한다.태제는 천군의 덕을 보필하고 만화의 근본을 밝게 하고 백규는 만사의 변화에 응하여 한 근본의 쓰임을 베풀어 각자가 공경하여 나라가 무사태평해진다.천군은 제위 백 년 만에 육룡 타고 건원제의 조정에 올라가 배알하고 되돌아오지 않는다.4. 천군전의 발생배경천군전은 김우옹이 그의 스승인 조식의 부탁을 받고 나이 27세 때에 지은 작품이다.천군전의 저자인 김우옹은 스승으로부터 심성론의 요지를 수용하였지만 이런 곳에만 머이며 작자와 사회가 만나 생성해내는 의미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정확하게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것은 작자의 차원이고 어떤 것은 사회의 차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두 가지는 섞여있거나 상호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단지 이것 가운데 어느 쪽에 더욱 무게 중심을 둔 것이라는 기우려져 있을 가능성은 있다.김우옹은 스승의 학문적 요체를 제대로 파악해 내고 이를 실천하려는 자세를 시종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학문 체제를 준수하는데 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만의 독자적인 관점으로 바꾸어 나가는데 에도 적극적인 편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천군전은 그의 사상적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작품은 스승의 학문을 이어받아 그것을 자신만의 독자적인 한문 체제로 삼아 나가는데 기초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발전적인 방향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천군전은 작자의 철학적이거나 이론적인 입장만을 보여주는데 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현실적인 대응의 자세까지도 확인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의의를 지닌다 하겠다.그는 올바른 학문적 입장을 수립하는 기본적인 출발점을 마련하고 기초를 닦는 데에는 마음을 올바로 수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음의 수련과 학문적 수련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은 정치적 활동과도 연결되어 있다고도 했다. 이런 생각은 그가 평소에 지니고 있었던 기본적인 인식의 얼개였으며 세계관읜 기초였는데 천군전에는 이런 작자의 기본적인 생각을 잘 수용하여 표현되어 있다.작품에서 그는 마음의 자세를 올바로 수립하는 것을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연결하여 다루고 있다. 그가 마음의 핵심적인 요소인 경과 의를 현실에서 관리의 직책으로 쓰였던 총재와 백규라는 용어를 끌어와서 대응시켜 사용한 것도 이런 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작품에서는 마음을 바로잡아 학문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다른 것이 아니라 동질적인 의미를 지닌 김우옹의 스승인 조식의 명령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의 스승 조식은 제자이자 외손서인 김우옹에게 이 작품을 지을 것을 명하는 말을 하여 작품을 창작하는 데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한다. 이 명령에는 문자 그대로의 작품 하나를 창작한다는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명령에는 스승이 학문적 요체를 제자에게 전달하고 제자는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의미가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작자는 스승의 명을 받고 이에 따라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스승의 학문을 이어받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작자의 심성론이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에 앞서, 스승인 조식의 심성론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으면 작품의 이해에는 온전하게 도달할 수 없고 작자의 심성론이 가진 특성도 온전하게 파악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작품의 기본적인 출발점을 확인하고 작품만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조식의 심성론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한 이후에 작자의 심성론에서 특히 두드러진 특성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1) 조식의 심성론남명과 조식의 관계는 개인적으로도 밀접했고 학문적으로 긴밀했다. 두 가지는 구분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뒤섞여 작용하면서 서로를 견인하고 상승하게 하는 작용을 했다. 즉 개인적인 관계는 학문적 관계를 견인했고 그것은 역으로도 기능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개인적인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관계에서도 절친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식과 김우옹의 사이에는 어느 스승과 제자 사이와는 다른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관계의 정체를 보여주는 일이 스승이 신명사도와 신명사명을 창작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제자에게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라고 명한 일로 나타났다. 이런 의미에서 천군전의 창작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을 창작한다는 차원에서 머무른 것이 아 심성론
    인문/어학| 2009.11.17| 8페이지| 1,500원| 조회(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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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속의 패러디 세상
    6-- 目 次 -Ⅰ.序論????????2Ⅱ.本論1.정의 및 성립조건??????????22.정치 패러디의 유형??????????33.정치 패러디의 문제점??????????44.건전한 패러디 문화의 정착??????????5Ⅲ.結論????????6Ⅳ.參考文獻????????6Ⅰ. 序論어린아이들이 펜보다 마우스를 먼저 잡는 시대, 클릭 하나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요즘시대에 인터넷은 그야말로 생필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인터넷은 인간의 의사를 상호 전달하는 과정을 신속하고도 편리하게 함으로서 표현의 자유에 더욱 활력소를 불어넣어주었다. 이런 의사는 곧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그리 긍정적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건전한 시민의식 속에서의 표현’이라는 전제가 깔리지 않는다면 이는 곧 상대방의 헐뜯기, 흑백논리 등의 장이 될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4. 29 재보궐선거가 약 2주정도 남은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인터넷은 뜨거워지고 있다.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글을 게시하는 경우에만 '실명인증'방법으로 실명확인을 받도록 해서인지, 정치패러디의 풍자적 특성상 많은 글이 올라오지 못하고 올라오더라도 이내 삭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에는 늘 그래왔듯이 그 결과에 따른 타인의 비판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이러한 게시물들을 보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소위 공격당한다고 하면 다시금 댓글에 원색적인 비난의 글들이 올라와 패러디 문화의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평소라고 해서 조용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민들의 의사표현이 활발하고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참여가 쉬워지면서 정부정책 및 사회이슈에 대한 모진소리가 여기저기서 퍼져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미디어법, 박연차 게이트 등은 이러한 네티즌들에게 아주 좋은 패러디의 소재거리이다.Ⅱ. 本論1. 패러디의 정의 및 성립조패러디는 사전적 의미로 ‘엄숙한 작품의 장중한 스타일을 기교로서 모방하면서 그것을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작품으로 꾸며 야유·풍자한 것으로 문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저작권적인 관점에서는 ‘익살 혹은 풍자적 효과를 위하여 행하는 문학, 음악 혹은 작곡 등 중요 작품의 모방’ 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논의를 제하고라도 패러디는 논자에 따라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를 ‘조롱하거나 희화화’ 시킨다는 좁은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텍스트와 텍스트간의 ‘반복과 다름’ 이라는 넓은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전자의 개념이 미학적, 수사적 기법을 이용한 과거 문학작품에 대한 조롱이나 경멸을 위해 쓰여 졌던 시적장치로서 오랜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면, 후자의 개념은 과거의 문학작품이나 관습에 되비추어봄으로써 문학형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보다 폭넓은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2) 패러디의 성립조건첫 번째로 패러디화된 원저작물이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원저작물에는 언어저작물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의 저작물도 포함된다.두 번째로 특정한 원저작물을 이용해야 한다. 이때는 첫 번째의 조건이 이미 성립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2) 패러디의 성립조건(계속)세 번째로 그 이용방법이 원저작물을 풍자적으로 비꼬아서 익살스럽게 또는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바꿔야 한다. 이 경우 패러디의 목표는 원저작물이 표상하고 있는 사상, 감정 등을 풍자적으로 비판, 야유하는 것이지, 원저작자의 작품, 문체, 사상 일반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네 번째로 그 대상이 되는 원저작물이 공표되어 있고, 가급적 널리 알려져 있어야 한다. 패러디 저작물의 독자, 시청자인 대중은 패러디저작물을 대하게 될 때 원저작물을 상기하게 되고 원저작물과 패러디저작물과의 상이점을 깨닫게 됨으로써 비로소 감상상의 만족을 느끼게 된다.마지막으로 패러디는 원저작물에 의거하고 있기는 하나 원저작물이 갖는 창작성과는 다른 창작성을 갖추어야 한다.위의 다섯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패러디라사이트 패러디웹 사이트 패러디란 정치인, 대기업 관련 홈페이지를 모방하여 홈페이지를 제작한 후, 이를 주로 안티 성향의 매개체로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의견이나 비판적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는 美 백악관 사이트를 패러디한 백악관 패러디 사이트가 대표적이며), 우리의 경우 특정 언론사 홈페이지나 언론사의 기사, 사설 등을 모방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적 성향을 나타내는 딴지일보나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같은 웹 사이트가 유명하다. 이러한 웹 사이트 유형의 패러디는 지난 2000년 고용승계의 문제로 제작된 안티 포스코 사이트)가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관심을 받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특정 이슈에 따라 일시적으로 만들어 지고 사라지는 특성을 보이고 있어 그 활용도는 비교적 미약하다고 하겠다.2) 이미지 패러디Photoshop이라는 그래픽 편집 소프트웨어의 편의성으로 인하여 기존에 전문기술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사진편집 기술이 대중화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치적 인물이나 상황과 결합된 많은 패러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이라크 파병과 노무현 대통력에 대한 탄핵소추 가결로 인해 정치 패러디가 크게 양산되면서 인터넷 정치 문화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최근에는 박연차 게이트를 풍자한 패러디가 유행이다.이러한 이미지 패러디에서는 영화포스터에 유명 정치인의 사진을 합성하는 정치 패러디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기존 영화의 이미지를 가져와 대중의 흥미를 이끌어 내는데 효과적이고 영화의 내용이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우회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 정치인의 사진을 합성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의미를 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3) 동영상 패러디Window Movie Maker, Micromedia Flash와 같은 동영상 제작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업그레이드됨에 따라 사용자가 보다 쉽게 동영상을 제작, 편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동영상 UCC(User Created Contents)의 이용현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동영상 기반의 러디에 있어서는 장문의 내용을 음성을 통해 전달하면서 동시에 만화 등 친숙한 영상을 패러디하여 시작적인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만큼 정치적 입장을 쉽게 주입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실제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아펙기동대’의 경우 만화 형식을 빌려 편향된 시각의 반미 정서를 표출함으로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4) 텍스트 패러디텍스트 형식의 패러디는 누구든지 시간적 구애 없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표현 형식이다. 이는 대형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세태를 반영하는 또 다른 표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기존 질서나 권위에 대한 불신의 한 표현으로서 사용되는 블랙 유머의 일종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예전 ‘바다이야기’와 관련해서 이를 횟집으로 알았다는 모 인사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도미노피자가 완구점인 줄 알았다’, ‘파크랜드가 부동산인 줄 알았다’ 등의 댓글이 인터넷 공간에서 회자되기도 하였다.)5) 음악 패러디음악 패러디는 인기 가요나 동요의 가사를 재밌게 개사하여 대중에게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특히 선거 기간 중 인기가요를 패러디하여 지지를 호소하는 패러디송이 선거운동의 수단으로 활용되곤 한다. 또한 예전 서울시의 버스노선 전면개편당시 서울 구경을 패러디한 ‘안티 버스송’이 인터넷 공간에서 전파되어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이와 같은 음악 패러디의 유형들은 단순한 개사만으로도 대중에게 정치적 견해를 충분히 피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3. 정치 패러디의 문제점1) 인격권 침해의 문제앞서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건전한 시민의식 속에서의 표현’이란 전제가 깔리지 않은 패러디는 질적으로 상당히 떨어진다. 이는 곧 패러디의 본래 목적인 풍자와 비판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본다. 따라서 핵심적인 비판의 주제는 없고 단지 조롱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국엔 기존 순수한 비판의도와는 다른 방향1) 인격권 침해의 문제(계속)으로 해석이 되어 이는 곧 표현의 자유라는 성격과 부딪치게 된다. 이에 대해 공직자의 도덕성·청렴성이나 그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감시와 비판기능의 수단으로서 패러디와 같은 풍자적 성격의 정치적 표현의 경우에는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2) 정치 패러디 쓰임의 문제정치 패러디를 꼭 네티즌들이 정치적 관심으로 인해 제작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정당에서 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패러디는 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상대 정당과 정치지도자를 대상으로한 패러디 공모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불리한 내용의 패러디에는 법적 대응 등 단호한 입장을 보여 왔다.3) 미성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패러디를 수용하는 입장에서 살펴보자. 인터넷이 접근성이 용이한 편이라 어느 누구라도 이런 정치 패러디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문제는 어린 아이들이다. 가치관 확립이 덜된 상태의 어린아이들이 이런 패러디들을 보고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문제이다. 솔직히 말해 배울게 없다.(물론 건전적 성격의 패러디는 때에 따라 제외됨) 자신의 편은 감싸기에 급급하고 상대방 쪽에는 무한대로의 공격을 퍼붓는 양상의 영양가 없는 문화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4. 건전한 패러디 문화의 정착1) 법적 제제의 강화정치 패러디에 대한 명예훼손 또는 인격권 침해의 주장은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어휘를 선택하여야 하고, 아무리 비판을 받아야 할 사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멸적인 표현으로 모욕을 가하는 경우에는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는 것으로 간주, 좀 더 엄격한 법적 제제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법의 강화는 곧 정부의 힘을 의미하며 그만큼 자유라는 부분이 줄어듦을 의미한다. 따라서 패러디는 인터넷이라는 드넓은 사상의 자유 시
    인문/어학| 2009.11.17| 6페이지| 1,500원| 조회(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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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방곡 분석
    靖東方曲-鄭道傳-1.序論?????????????????????22.本論1)작자와 배경?????????????????????22)원문과 해석?????????????????????33)정동방곡의 형식?????????????????????54)정동방곡의 쓰임?????????????????????53.結論?????????????????????64.參考文獻?????????????????????61. 序論정동방곡은 조선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이 지은 악장이다.내용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을 칭송한 작품이고, 4편으로 된 한문계 악장이다. 〈정동방곡〉은 문소전(文昭殿)의 종헌악(終獻樂)과 독제(纛祭)의 철악(撤樂)으로 사용되었고, 악장에 속하는 작품으로《악학궤범(樂學軌範)》,《악장가사(樂章歌詞)》,《삼봉집(三峰集)》에 실려 전한다. 본론에서는 작자와 배경, 원문과 해석, 형식 및 특징, 쓰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2. 本論1) 작자와 배경(1) 작자 정도전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문신 겸 학자이다. 이성계의 조선 건립의 1등공신으로서 유학의 대가이다.개국 후 군사·외교·행정·역사·성리학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고, 척불숭유를 국시로 삼게 하여 유학의 발전에 공헌했다.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저서에《삼봉집》,《경제육전》, 《경제문감》등이 있고, 작품으로는 〈납씨가(納氏歌)〉, 〈정동방곡(靖東方曲)〉, 〈문덕곡〉, 〈신도가(新都歌)〉 등이 있다.본관 봉화(奉化). 자 종지(宗之). 호 삼봉(三峰). 1362년(공민왕 11) 진사, 이듬해 충주사록(忠州司錄)을 거쳐 전교시주부(典敎寺主簿)·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를 지내고 부모상으로 사직하였다. 1370년 성균박사가 되고 이어 태상박사(太常博士)를 거쳐 예조정랑 겸 성균태상박사(禮曹正郞兼成均太常博士)가 되어 전선(銓選)을 관장하였다. 1375년(우왕 1) 성균사예(成均司藝)·지제교(知製敎) 등을 역임하였고 이해 권신 이인임(李仁任)·경복흥(慶復興) 등의 친원배명(親元排明) 후진교육에 종사하며, 특히 주자학적 입장에서 불교배척론을 체계화하였다. 1383년 동북면도지휘사(都指揮使) 이성계(李成桂)의 막료가 되었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 정몽주(鄭夢周)의 서장관이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385년 성균제주(成均祭酒),이듬해 남양부사(南陽府使)로 있다가 1388년 이성계의 천거로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에 승진하였다.이성계의 우익으로서 조준(趙浚)과 함께 전제개혁론을 주장, 1389년(창왕 1)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승진하였고 창왕(昌王)을 폐위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옹립하는데 적극 가담하여 봉화현충의군(奉化縣忠義君)에 책록되었다. 1390년(공양왕 2) 경연지사(經延知事)로 성절사 겸 변무사(聖節使兼辨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동판도평의사사사 겸 성균대사성(同判都評議使司事兼成均大司成)·삼사부사(三司副使) 등을 역임하였다.그 해 조민수(曺敏修) 등 구세력을 몰아내고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하게 함으로써 조선 개국의 정치·경제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듬해 이성계가 군사권을 장악하여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치하자 우군총제사(右軍摠制使)가 되고 이어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재직 중, 구세력의 역습으로 탄핵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하고 봉화로 유배되었다. 1392년 한때 풀렸으나 정몽주의 탄핵으로 투옥되었고 정몽주가 살해된 뒤 풀려나와 조준·남은(南誾) 등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그 공으로 분의좌명개국공신(奮義佐命開國功臣) 1등에 녹훈되고,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예문춘추관사(藝文春秋館事)에 임명되어 사은 겸 정조사(謝恩兼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4년(태조 3) 한양천도 때는 궁궐과 종묘의 위치 및 도성의 기지를 결정하고 궁·문의 모든 칭호를 정했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찬진하여 법제의 기본을 이룩하게 하고 1395년 정총(鄭摠) 등과 《고려국사(高麗國史) 》 37권을 찬진했으며, 1397년 동북면도선무순찰사(都宣撫巡察使)가 되어 성을 수축하고 역참(驛站)을고려의 외교는 친명(親明)에서 친원(親元)으로 바뀌어, 고려·명나라 관계가 악화되었다. 1388년 3월 명나라가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관하지역을 영유하기 위해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고하자, 고려에서 최영(崔瑩)이 중심이 되어 명의 대(對)고려 전진기지인 요동정벌론이 제기되었다. 이에 우왕은 최영을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로 삼아 평양에 나아가 독전하게 하고 조민수(曺敏修)를 좌군도통사, 이성계를 우군도통사로 삼아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하게 하였다. 처음부터 요동정벌론에 반대한 이성계는 정벌군이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 이르자 진군을 멈추고,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상의하여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내세우며 명을 치는 것을 반대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를 수 없다.(以小逆大 一不可)둘째, 여름에는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夏月發兵 二不可)셋째, 모든 군사가 싸우러 나간 틈을 타서 왜구가 공격해 올 것이다.(擧國遠征 倭乘其虛 三不可)넷째, 지금은 덥고 비가 오는 때라서 활을 붙인 풀이 떨어지고 군사들이 모두 병에 걸릴 것이다.(時方署雨 弩弓解膠 大軍疾疫 四不可)그는 이러한 이유를 들며 요동정벌은 불가능하다고 상서(上書)로써 회군을 청하였다. 그러나 평양에 있던 최영과 우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이성계는 5월 20일 회군을 결행하여 군대를 국내로 돌이켰다. 돌연한 사태 변화에 최영은 개경으로 돌아와 회군해오는 정벌군과 싸우려 하였으나, 얼마 뒤 최영은 이성계에게 붙잡혀 고봉현(高峰縣:高陽)으로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고, 우왕도 강화도로 쫓겨났다. 이를 계기로 이성계는 정치적·군사적 권력을 한손에 잡아 조선창업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2) 원문과 해석(1) 원문?東方阻海?(예동방조해수)披狡童竊天機(피교동절천기)爲東王德盛多里利(위동왕덕성다이리)肆狂謀興戎師(사광모흥융사)禍之極靖者誰(화지극정자수)爲東王德盛多里利(위동왕덕성다이리)天相德回義旗(천상덕회의기)罪其黜逆其夷(죄기출역기이)爲東王德盛多里利(위동왕덕성다이리)皇乃?覃天施(황내역담천시)軍기)爲東王德盛多里利(위동왕덕성다이리)금수동방 동떨어진 바닷가 나라저 교동이 천기를 도둑질하다니동왕 되시어 덕이 거룩하시리라.부질없는 꾀 부려 군사를 일으키니극에 달한 이 화를 막을 사람 누구인가동왕 되시어 덕이 거룩하시리라.하늘은 덕을 숭상 의기를 돌리면서죄진 사람 몰아내고 역적은 멸족했네동왕 되시어 덕이 거룩하시리라.황제님 기뻐하여 큰 은혜 베푸셔서군대로써 나라 세워 우리 님께 맡기셨네동왕 되시어 덕이 거룩하시리라.아름답도다! 백성과 사직이 돌아갈 곳 있으니천세 만세 끝없이 전해가리동왕 되시어 덕이 거룩하시리라.《삼봉집(三峰集)》?東方 阻海?(예동방 조해수)披狡童 竊天機(피교동 절천기)?니이다爲東王德盛(위동왕덕성)肆狂謀 興戎師(사광모 흥융사)禍之極 靖者誰(화지극 정자수)어니오爲東王德盛(위동왕덕성)天相德 回義旗(천상덕 회의기)罪其黜 逆其夷(죄기출 역기이)?샷다爲東王德盛(위동왕덕성)皇乃? 覃天施(황내역 담천시)軍以國 ?我知(군이국 비아지)?샷다爲東王德盛(위동왕덕성)於民社 有攸歸(어민사 유유귀)千萬歲 傳無期(천만세 전무기)?쇼셔爲東王德盛(위동왕덕성)동방은 바다 모퉁이에 있는데저 신우(辛禑)가 임금의 자리를 절취하였도다아! 동방에 왕덕(王德)이 성함이여방자하고 경솔한 꾀로 군사를 일으켜화가 극도에 달하였으니 평정할 사람 누구인가아! 동방에 왕덕이 성함이여하늘이 덕 있는 사람을 도와 의로운 깃발을 돌려죄지은 자는 내쫓고 반역한 자는 멸하시었네아! 동방에 왕덕이 성함이여황제가 이에 기뻐하여 멀리 은혜를 베푸시어군대로써 나라를 세우시어 우리에게 알게하셨네아! 동방에 왕덕이 성함이여아! 백성과 사직이 돌아갈 바 있으니천만대토록 끝없이 전하소서아! 동방에 왕덕이 성함이여《악장가사(樂章歌詞), 악학궤범(樂學軌範)》(2) 해석정동방곡은 혼란하던 고려를 넘어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업적을 찬양한 노래이다. 이 정동방곡에서 핵심이 되는 當理의 주체는 하늘(天)이다. 즉 하늘이 덕을 숭상하고 의기(義旗)를 돌려 죄 지은 자를 다 내쫓고 역적을 멸하였다는 것이다. ‘회의기(回議旗) 역성혁명은 ‘하늘’이 시킨 현실적 행위로, 하늘에 의해 초월적 절대성을 보장받는다. 이 작품에서 화(禍)의 근원은 교동이 천기를 훔치고 미친 꾀를 부려 큰 군사를 일으킨 행위이다. 여기에서 교동은 우왕을 지칭하는데,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군을 일으킨 역사적 사건을 함축적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위(偉)에 대하여정동방곡에 대한 기록 중 《악학궤범》, 《악장가사》를 보면 셋째 행에 위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려가요 〈가시리〉의 ‘위증즐가 태평성대’와 서경별곡의 ‘위 두어렁셩 다링디리’와 같이 마지막 셋째 행에 놓여서 마무리 역할을 하고 있다.▶‘-샷다’에 대하여한시현토체인 정동방곡의 ‘-샷다’형의 어구는 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중국 한시를 모방한 〈문덕곡〉과 더불어 정동방곡 역시 한시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고려가요인 〈동동〉에서 4번, 〈처용가〉에서 2번 사용되는 빈도수에 비해 조선의 악장은 대부분 ‘-샷다’형의 노래들이다. 즉 ‘-샷다’가 많이 쓰인 이유는 정동방곡이 태조를 찬송한 것이므로 왕에 대한 적극적인 높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동방곡과 서경별곡장사훈은 《대악후보》소재 〈정동방곡〉악보가 같은 책의 〈서경별곡〉과 부합한다는 사실을 들고 조선조의 궁중음악이 고려시대의 향악을 습용한 증거로 제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악곡에 한정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가사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다.?東方 阻海?披狡童 竊天機 ?니이다爲東王德盛西京이 아즐가西京이 셔울이 마르는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위의 표를 보면 3언 4구로 된 〈정동방곡〉은 〈서경별곡〉의 가락에 얹혔기 때문에, 〈서경별곡〉에 맞추기 위하여 〈정동방곡〉제 4구에 현토함으로써 부족한 자수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즉〈정동방곡〉의 둘째구에도 현토하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넷째 구에만 현토한 것은 바로 〈서경별곡〉의 가락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현토된 〈정동방곡〉은 《악학궤범》과 《악장가사》에만 등장할 뿐 그 이전의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있다.
    인문/어학| 2009.11.17| 4페이지| 1,500원| 조회(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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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작가론] 황순원론
    - 目 次 -1. 序 論2. 本 論Ⅰ. 황순원의 생애와 연보Ⅱ. 황순원의 문학세계(1) 초기소설(2) 6.25 이후Ⅲ. 황순원의 작품연구(1) 「 목넘이마을의 개 」(2) 『 별과 같이 살다 』(3) 「 독 짓는 늙은이 」(4) 「 소나기 」(5) 「 학 」(6) 『 카인의 후예 』(7) 『 나무들 비탈에 서다 』(8) 「 너와 나만의 시간」Ⅳ. 황순원의 문학적 특성3. 結 論1. 序 論황순원은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소설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한 소설가로, 그는 자신의 주요 작품 「목넘이 마을의 개」,『카인의 후예』등을 통해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을 하였다.그는 1915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고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1년 『동광』에 시 ,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34년 『삼사문학』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소설 작품도 함께 창작하기 시작했으며, 1940년 단편집 『늪』을 간행한 이후, 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아시아 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 문학상, 인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경희대학교 국문과에 23여 년 동안 교수로 지내면서 많은 문인들을 배출해냈으며, 2000년 9월14일 86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 「별」,「목넘이 마을의 개」,「그늘」,「기러기」, 「독 짓는 늙은이」, 「소나기」, 장편 『카인의 후예』,『나무들 비탈에 서다』,『일월』 등이 있고, 12권이 간행되어 있다.이하 본론에서는 일제강점기하에서도 민족을 위한 빛나는 여러 작품을 남긴 황순원의 생애, 그의 문학세계와 작품에 대해 연구하여 보며, 그의 문학적 특성에 대해 살펴 작가 황순원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2. 本 論Ⅰ. 황순원의 생애와 연보황순원이 시를 쓰기 시작한 후, 첫 발표는 1931년 7월『東光』을 통해서인데, [나의 꿈]이라는 시가 그 등단작이다. 이후 중학교 시절 거듭 시를 발표하다가 1934년 졸업과 함께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와세다 제2고등원에 입학한다.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발표한 것이 지금 알려진 작품이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게 된다. 일제의 간섭을 피해 1943년부터 고향 빙장리에 머물러 있던 황순원은 해방되고 9월에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곧 공산 치하에서 지주 계급으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이듬해 가족들과 월남한다. 그해 9월에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취임한다. 그때까지 가끔 시도 쓰고, 주로는 단편소설도 써왔는데, 처음으로 장편 구조를 가진 『별과 같이 살다』를 부분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곰녀'라는 한 여성의 육체적 신분적 수난을 중심으로 일제 말기에서 해방전후의 열악한 시대상황을 부각시키고 있는 이 작품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은 1952년의 일이다.Ⅱ. 황순원의 문학세계그는 1930년대 말부터 소설에 전념하였고 동인이었다. 그의 소설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경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1) 초기 소설 : 환상적인 수법으로 동화 같은 작품이 많으며 한 편의 시와도 같은 소설, 즉 서정성이 담겨 있는 소설들이 대부분임. 『늪』,『별』,『소나기』 등의 경우 유년기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세계가 현실에 의해서 좌절되어 가는 과정을 시적으로 그리고 있음.(2) 6.25 이후 : 전란과 이데올로기 속에서 인간의 순수한 본질과 인간애를 부각시킨 『학』, 북한에서의 토지 개혁을 중심으로 공산 치하의 비인간성을 폭로한 『카인의 후예』,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입은 상처와 방황을 그린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 세계에 대한 지향성과 휴머니즘의 세계를 그려냈고, 『움직이는 성』에서는 사랑과 종교의 광장을 조명하여 삶의 의미와 그 지향성을 보이고 있다. 『학』(1956), 『잃어버린 사람들』(1958)은 황순원이 초기부터 가졌던 개인의 내면 세계 추구라는 문학적 성향과 6·25가 남긴 전쟁의 비극적인 상처가 결합된 작품들이다. 이 소설들은 토속적인, 순수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전통적인 삶과 서정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게 만든 전쟁의 비인간성과 거기서 빚어진 상처가 섬세하게 묘벗어나 전쟁 등 숙명으로 주어진 절대상황에서 인간의 구원문제를 다루는 장편소설로 이행해 가는 예비단계에 놓인 작품이다.이 작품은 네 개의 서사 단락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그 단락은 각각 중요한 역사적 국면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 단락은 대구 근처 샘마을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곰이가 일본에 건너가 광산 노무자로 일하다가 죽는다는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서사 단락은 일본 자본의 수탈을 중심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두 번째 단락은 곰이의 딸 곰녀가 지주 김상만의 집에 들어가서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김상만과 한명인의 갈등은 토지의 집중이 일어나는 당대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 번째의 단락은 서울과 평양의 유곽을 무대로 진행된다. 재산도 없고 능력도 없는 여자들이 자신의 신체를 파멸로 몰아가는 과정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이 대목은 중일전쟁의 병참기지로 조성된 이북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군수 공장에 징용된 청소년들의 황폐화된 심정과 행동은 바로 식민지 전체의 왜곡된 풍속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의 단락은 광복과 함께 청루에서 해방된 곰녀가 만주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구호하는 호민단으로 들어가 일하려고 결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선택을 계기로 삼아 곰녀가 체현하고 있는 본능적 인고는 의식적 인고로, 수동적 순종은 능동적 반성의 차원으로 변화한다. 작가는 곰녀의 일생이 보여주는 이러한 변화를 그려냄으로써 우리 민족에게 내재하는 강인한 생명력에 기반한 새로운 출발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3) 「독 짓는 늙은이」1950년에 [문예]에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소설로 사라져 가는 것을 일으켜 세우려는 한 노인의 집념과 좌절과 현대 사회에서 파괴되어 가는 한국의 전통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주인공인 송영감은 독 짓는 늙은이로서, 독 짓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 가난하게 살아왔는데, 지금은 병든 몸이다. 그런데 송영감의 아내는 병든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조수와 함께 달아나 버렸다. 돌조각 위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는다.이 소설은 구성 단계상 결말에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고 있으며, 비극적 결말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암시와 여운의 결말이다. 는 외래문명의 무절제한 유입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가치 체계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에 대항하려는 한 노인의 집념과 좌절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격변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4) 「소나기」1953년, 5월 4집에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년 소녀의 순수하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이 한 편의 깔끔한 서정시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부적절할 만큼 순진하고 미숙한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조약돌', '호두알', '흙물 든 스웨터'라는, 그들 둘만이 알고 있고 그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구체적인 사물들이며,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 '두근거림'이라는 아직은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초보적인 감정이다. 그 사물과 감정에, 그리고 소년 소녀의 어린애다운 놀이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순수함이나 아름다움이라는 수식을 덧붙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일일 따름이다. 소녀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애잔한 느낌 또한 독자의 몫일 뿐 소년은 아직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도 않다.황순원 특유의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와 군더더기 없는 구성, 시적인 감동의 여운이 돋보인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소년 소녀의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을 수채화처럼 맑은 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결코 그 순수함을 강조하거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한 애석함을 표현하는 법이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독자는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되고, 결말의 여운을 더욱 오래도록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5) 「학」1953년, 에 발표된 단편소설. 한 마을에서 단짝동무로 지냈던 성삼이와 덕재는 6·25가 나면서 이념을 달리하는 적대 관계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체포되어 온 덕재를 성삼이가 호송하게 되는데, 호송 도중, 성삼이는 유년 시절 때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내적 갈등을 느낀다. 농민 동맹 맞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이 바로 이 오작녀와 같은 인물의 무한한 모성적 사랑 속에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황순원이 오작녀와 같은 인물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몰두한 나머지 작품의 사회적 역사적 차원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7) 『나무들 비탈에 서다 』1960년, 에 실린 장편소설로,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제1부에서는 동호, 현태, 윤구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전우들이다. 동호는 자신의 순수성과 꿈을 상실케 한 후유증(後遺症)으로 방황하다가 현태, 윤구의 충동질로 작부(酌婦)인 옥주에게 동정을 바친다. 강박성과 결벽성, 그리고 옥주에 대한 동료 의식으로 그녀에게 몰입하던 동호는 옥주가 단지 육체의 쾌락만을 위해 매음(賣淫)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와 정부(情夫)를 살해하고 자신도 동맥을 끊어 자살한다.제2부에서는 부친의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던 현태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전쟁터에서 무고하게 죽인 여인과 비슷한 행색의 모녀를 발견, 혼란에 빠진다. 죄의식에 시달려온 현태는 드나들던 술집 작부가 자살하는 것을 고의로 방조(傍助)한 죄로 무기 징역을 언도받는다. 한편 현실주의자 윤구는 전쟁에서 체득한 비정함으로 현실생활을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가정교사로 있던 주인집 딸을 임신시켰으나 무리한 중절을 하다 그녀가 죽게 되고 윤구는 혼자만의 살 길을 모색한다. 동호의 순결한 옛 애인 '숙이'는 동호의 죽음을 추적하다 현태에게 겁탈당하고 아이를 가진다. 현태가 구속되자 아기를 낳을 때 까지만이라도 윤구에게 의지하려 하나 윤구는 이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이 소설은 6.25의 참상과 의미를 묻고자 한 본격 장편이 부재했던 상황에서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킨 첫 작품으로, 비탈에 선 나무처럼 시련과 위기에 처한 젊은이들의 삶을, 전쟁의 후유증으로 어떤 고통을 당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그린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겪는 공포, 고독, 삶에의 본능, 상처 등을 상당한 수준의 리얼리즘적 성취를 통
    인문/어학| 2008.03.31| 10페이지| 1,500원| 조회(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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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동규론
    - 目 次 -Ⅰ. 序 論Ⅱ. 황동규의 생애와 연구1. 생애2. 작가연보3. 시세계(1) 청년의 감성으로 다뤄진 사랑과 우수(2) 사회비판의식의 고조(3) 죽음과의 맞대결(4) 시인의 정체성에 대한 되돌아온 관심4. 황동규 시의 특성Ⅲ. 結 論* 참고문헌Ⅰ. 序 論황동규는 1958년 「시월」「동백나무」「즐거운 편지」등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니, 그 햇수가 내년엔 꼭 50년이 된다. 시작(詩作) 50년이란 짧은 성상(星霜)이라 할 수 없지만, 그 시력만이 금강(金剛)의 빛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는 50년 동안 외길로 시를 썼다. 그는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시의 불빛을 따라 그 길만을 걸었다.황동규는 반역의 시인이고, 변화의 시인이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앞서서 반역했고, 앞서서 변화했다. 엘리엇식으로 말하면 반역은 새로운 전통이 되며, 그 전통은 자신에 의해 부단히 갱신되어야 한다. 황동규가 변화를 통한 거듭남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한 시의 방향성에는 늘 황동규 특유의 감수성과 지성이 함께 숨쉬고 있다.그의 최고의 기쁨은 시 쓰기이다. 또한 그는 여행의 시인이라고도 한다.황동규에게 그 여행은 일상의 이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작(詩作)의 방법론적인 긴장이다. 그 긴장이 우리 시사(詩史)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14년 동안의 70편의 연작『풍장』을 낳기도 했다.본고에서는 시인 황동규의 생애와 작가 연보, 그리고 4기로 나누어 본 시 세계의 변모양상에 대해 살펴보며, 세련된 감수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서정의 세계를 노래해 문학엘리트와 대중 모두에게 사랑 받는 중견시인 황동규에 대해 연구해보려 한다.Ⅱ. 황동규의 생애와 연구1. 생애1938년 평안남도 숙천(肅川)에서 소설가 황순원(黃順元)의 맏아들로 태어난 황동규의 본관은 제안(濟安)이다.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성장했다. 1957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와기》 《전봉준》 《허균》 등의 시를 비롯한 이 시기 이후의 시에서는 연가풍의 애상적인 분위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모순을 역사적·고전적 제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로 이어져 모더니즘으로 자리 잡았으며,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에서 더욱 확실히 나타난다.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노래한 《계엄령 속의 눈》 등의 사회비판시는 예각적인 상황의식을 표출하기보다는 암시와 간접화의 표현법을 사용함으로써 사회문제를 한차원 높게 작품화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이어 나온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에서는 작가의 독특한 시법인 극서정시의 실험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1995년 《현대문학》에 연작시 《풍장 70》을 발표함으로써, 1982년 《풍장 1》을 시작으로 14년에 걸쳐 죽음이라는 주제를 계속적으로 발표해 문단의 화제가 된 연작시를 마감했으며, 이 연작시는 시집 《풍장(風葬)》(1995)으로 발행되었다. 시인의 죽음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시집은 독일어판으로도 출간되었다.새로운 변화를 시적 생명력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시인은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개성적인 극서정시와 장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해 문단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현대문학상(1968), 한국문학상(1980), 연암문학상(1988), 김종삼문학상(1991), 이산문학상(1991), 대산문학상(1995), 미당문학상(2002) 등을 수상했다.저서에 시집 《열하일기》(1972), 《삼남에 내리는 눈》(1975),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1988),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외계인》(1997), 《버클리풍의 사랑노래》(2000) 등이 있다. 이밖에 시론집 《사랑의 뿌리》(1976)와 산문집 《겨울노래》(1979), 《나의 시의 빛과 그늘》(1994), 《시가 태어나는 자리》(2001),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2001) 등이 있다.3. 시세계(1) 제 1기 - 청년의 감성으로 다뤄진 사의 눈에, '눈'이 새로운 매개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황량하던 거리가, 어느 날 눈이 한번 내리니까 완전히 아름다운 나라로 바뀌게 되었고, 그 후 시인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매체로 눈을 좋아하게 된다.또한 1기의 다른 특징은 젊은 날 황동규의 우울한 내면 기록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인간의 절대를 향한 비극적인 자세(김병익)', '꿈과 사실 사이의 불균형에서 오는 낭만적 우울(유종호)' 등의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방황하는 청춘의 우수가 그 중요한 테마이다. 이 시기 작품들은 겨울과 눈이 소재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추상적인 공간 속으로 스며드는 어두운 시어들이 비장미를 북돋운다.목마름 속에 캄캄히아아 손가락 발가락과 발목그 마디들을 하나하나 놓아버리고빌려 쓰던 말도 한마디씩 돌려보내고빈 공간만큼 아무데고 누워물 없는 웅덩이처럼 있고 싶을 뿐아아 아무것도 스며 있지 않은 삶, 혹은 죽음.- 「비가 제 2가」마지막 연목마름 속에서 육체와 언어조차 놓아버리고 쓰러지는 텅 빈 삶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무한 절망의 표현이다. 「즐거운 편지」등에서 보이던 대상에 대한 기다림의 자세는 사라지고, 텅 빈 들판에서 울부짖는 햄릿형의 청년이 『비가』를 이끌고 있다. 젊은 황동규가 왜 이토록 절망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실연의 상처, 친구의 죽음, 약속 없는 미래, 4.19 학생혁명의 실패 등에서 복합적으로 온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 시기 젊은 청년이면 일반적으로 겪어야 했을 통과제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가』는 젊은 시인의 통과제의적 절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비가』는 상징과 묵시록적인 분위기와 두시언해 투의 의고미의 도움을 받아 여성적인 톤이 우세했던 우리 20세기 전반기 한국시의 풍토와 전혀 다른 남성시의 한 전형을 창조했기 때문이다.『비가』는 절망적인 운명과 맞대결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그 의지를 시의 추진력으로 밀어붙인 황동규의 젊은 힘으로 말미암아 젊은 날의 우수가 빠지기 쉬운 센티멘탈리즘에서 벗법론 자체가 하나의 문학적 저항이 된다.나는 요새 무서워져요. 모든 것의 안만 보여요. 풀잎 뜬 강(江)에는 살 없는 고기들이 놀고 있고 강물 위에 피었다가 스러지는 구름에선 문득 암호(暗號)만 비쳐요. 읽어봐야 소용없어요. 혀 잘린 꽃들이 모두 고개 들고, 불행(不幸)한 살들이 겁 없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있어요. 달아난들 추울 뿐이에요. 곳곳에 쳐 있는 세(細)그물을 보세요. 황홀하게 무서워요. 미치는 것도 미치지 않고 잔 구름처럼 떠 있는 것도 두렵잖아요.-「초가(楚歌)」전문달아나봐야 읽어봐야 아무 소용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유신 시절의 암울한 정치 상황은 '혀 잘린 꽃'과 '불행한 살'들을 양산했고, 그들은 '곳곳에 쳐 있는' 가는'그물'에 사로잡힌다. 미칠 수도 미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황홀하게 무섭다는 것은 무서움의 강조이다. 전체주의의 억압에 의한 개인 내면의 굴절을 다룬 시편들은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에서 절정을 이룬다. 만약 황동규가 이 지점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그는 알레고리라는 문학의 일면만을 더듬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세속적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기고 있다는 점. 그 나이라면 문학적으로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기도 할 것이다.또한 죽음을 서서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나이이기도 하다. 이것이 『풍장』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간 첫째 이유이다. 둘째는 80년 이후 정국은 새로운 군부집단의 더욱 파괴적인 억압적 체계로 변해 버렸다. 몇몇 문학잡지가 폐간되고 언론이 통폐합된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인 부딪침이 불가능하다면 오히려 더 근원적인 인간의 보편성 문제를 천착하는 것이 문학의 한 방향성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음직하다. 셋째는 『비가』시절 남겨놓은 숙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비가』는 절망적 운명에 대한 맞대결이었다. 그 절대적 운명을 주재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 신(神)욱 중요한 것은 『풍장』에서 집요하게 다루어진 죽음과 삶의 관계다. 죽음은 삶을 공포스럽게 한다. 그 공포에 노출되기 시작하면 인간의 삶은 위축되고 초라해진다. 그러나 죽음이란 것도 결국은 현실적 체험이 아닌, 추상적인 관념이다. 그 추상적 관념을 선취해서 인간은 삶을 죽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하여 『풍장』시편들은 죽음을 길들이러, 혹은 삶을 길들이러 여행을 떠난다.바람을 이불처럼 덮고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마지막으로 몸의 피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다오.- 「풍장1」마지막 연ㅡ 이 시체를 끌고 가라.- 「풍장45」에서이 큰소리침도 그러한 정신의 가벼움의 결과인 것이다. 십여 년의 작업 끝에 황동규는 중후반기 『풍장』(「풍장52」)에 이르면 자유자재한 정신(주관)의 가벼움을 얻는다. 그것은 존재의 가벼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3기 황동규 시의 핵심은 극서정 양식의 완성, 시와 삶과 여행의 일치, 죽음의 긍정(순환적 시간관)에 의해 얻어진 존재의 가벼움 등일 것이다.(4) 제 4기 - 시인의 정체성에 대한 되돌아온 관심『풍장』(1996) 후반부 작품과 『외계인』(1997) 이후 현재까지가 제 4기에 속한다.황동규 시의 제 4기는 『미시령 큰바람』이후이다. 이 시기는 아직 진행형이며 황동규 시의 기교적 형식적 측면이 완성된 이후여서, 형식적으로 1, 2, 3기처럼 그 시기적 특징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중력 상태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자유로움, 어린아이(외계인)와도 같은 사물에 대한 호기심, 극한적 정신의 추구 등이 제 3기와 구별되는 점이다.우선 무중력의 상태를 노래하고 있는 시편들을 살펴보자.잠시 무중력이 되었다가/ 무심히 한 방울 부연 물로! ㅡ 「풍장53」에서아무런 부피도 무게도 자리 뜬/ 한줌의 느낌. ㅡ 「풍장59」에서겅중겅중 뛴다/ 무중력 상태!/ 지구가 굴러온다. ㅡ 「외계인2」에서무중력이란 무게의 전혀 없음이다. 왜 황동규는 정신의 가벼움을 거쳐 가벼움의 극한인 무중력으로 가버못 찾은
    인문/어학| 2008.03.31| 9페이지| 1,500원| 조회(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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