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판타지 소설 제목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 주인공은 항상 약자의 입장에서 살아오다 마법을 접하고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면서 내적 외적으로 강해지게 되고 심지어 다른 이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보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신과 같아 보이는, 혹은 자신보다 못했던 주인공이 각성을 하면서 초능력을 가지는 것을 보는 것은 확실히 마음의 위로를 준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는 판타지 소설을 읽음으로써 대리만족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독일작가 프로이슬러의 대표작품 역시 이런 판타지 소설의 면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거지소년 크라바트가 마법을 접하고, 동료들의 죽음과 역경 등을 극복해가면서 내적 외적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강건하게 성장해 가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뿌듯함을 안겨준다.크라바트는 고아이며 거지이다. 정월 초하루와 예수 탄생을 맞는 축제에 크라바트는 동냥을 하며 떠돌고 있었다. 그때 크라바트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열한 마리의 까마귀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고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자신에게 슈바르츠콜름의 방앗간으로 오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게 되는 크라바트는 드디어 그 방앗간으로 찾아가게 되고 방앗간의 직공이 된다. 방앗간의 직공이 된 크라바트는 직공장인 톤다, 미할, 유로, 간교한 뤼슈코, 메르텐, 한초, 슈타스코, 안드루슈, 페타르, 키토, 쿠보들과 만나게 된다.크라바트와 이 열 한명의 직공들은 방앗간에서 마술을 배운다. 까마귀로 변신하기도 하고 말로도 변신하기도 하면서 보통 사람들을 골려 주기도 한다. 마술을 배운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는 특별한 능력을 얻는 것이었지만 마술을 배우면서 그들이 빼앗기는 것은 자유다. 주인에게 무조건 굴복해야 하며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우정과 사랑과 자유를 선택하는 것은 주인에게 반항하는 것이 된다. 그들은 도망칠 수 없고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인보다 더 큰 힘을 가지거나 주인의 권력의 힘을 누를 수 있는 숭고한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방앗간 생활이 1년이 지나고 크라바트에게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던 직공장 톤다가 죽는다. 크라바트는 방앗간의 규정에 따라 견습공에서 정식 직공으로 임명된다. 두 번째 해에 미할이 죽을 때 크라바트는 방앗간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한 해가 끝나는 그믐날 밤 열 두 명의 직공 중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과 그 직공들은 하나같이 주인 몰래 힘을 키워 왔으며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한 직공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크라바트는 방앗간 주인과 대항하기 위해 힘을 기를 것을 결심한다. 처음에 크라바트가 방앗간 직공이 되었을 때 일은 힘들긴 했지만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해했다. 그래서 크라바트는 자유와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안정돼있는 듯이 보이는 생활에 만족했다. 하지만 톤다와 미할의 죽음과 칸토르카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주체를 깨닫게 되며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유와 사랑을 얻기 위해 톤다와 미할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크라바트는 일부러 주인에게 자신의 힘을 숨기고 있는 유로를 통해 주인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이 찾아와 일정한 시험에 통과하면 모두가 자유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그렇게 되면 주인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소녀가 누구인지 방앗간 주인이 알 수 없게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방앗간 주인이 크라바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수많은 함정을 파 놓지만 크라바트는 신중하게 행동하여 위기를 넘긴다.마침내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방앗간 주인은 크라바트에게 다른 동료를 배신하고 권력을 나누어 갖자는 달콤한 유혹을 한다. 하지만 크라바트는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드디어 방앗간에 크라바트가 사랑하는 여인 칸토르카가 찾아와 주인의 시험을 보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주인의 시험은 마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험은 칸토르카의 눈을 가리고 크라바트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불가능 할 것만 같은 것이다. 크라바트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을 느낀다. 사랑하는 그녀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인 것이다. 기적적으로 칸토르카는 크라바트를 찾아내고 그로인해 지금까지 익힌 마법의 능력을 잃게 되지만 사랑과 자유를 얻게 된다. 믿을 수 없는 기적에 놀라하는 크라바트에게 칸토르카는 말한다.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당신이 나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져 당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이 소설은 마법이란 소재를 이용해 다른 판타지 소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여느 판타지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앞서 말한바와 같이 판타지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일으켜 자칫 현실도피적인 경향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기피하는 독자들도 많이 있지만 이 소설은 화려한 마법보다는 주인공의 내면적인 성장의 측면에 중심을 기울이고 있다. 화려한 마법과 전투장면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 그렇다.방앗간 직공들이 사랑 또는 우정, 자유를 포기한 채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이 마법이란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은 주인의 능력을 두려워하면서도, 남들과는 특별한, 그 절대적인 능력을 배운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주체성 없이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소설 중반에 방앗간 직공들과 직위 높은 군사들이 충동하는 에피소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왕의 군사들을 조롱하며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마법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신들에게 오만한 자신감마저 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 이 절대적인 힘은 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절대적인 권력과도 연결지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 방앗간 주인과 타협하지 않은 크라바트에게 내려지는 벌도 이 달콤한 능력을 빼앗는 것이었다.하지만 최후,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이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껏 갈고 닦아온 절대적 마법의 능력이 아니라 두려움, 즉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극히 인간적인 감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주인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 크라바트 역시 힘을 길러오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지막 주인공이 주인의 시험에 봉착한 장면은 소설의 내용 중 가장 극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킴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마법을 이용한 과장된 영웅적 묘사를 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주 장치로 사용되었던 마법의 가치는 아무 의미 없이 허무하게 존재를 감추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