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역사적으로 훌륭한 철학자로 이름이 내려 전해지고 또한 그의 철학이 학습되어지기까지 하는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서서 한 변명에 대해 자신의 올곧은 신념을 위해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준엄한 열변을 하는 용기를 보여준 것이라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흔해 빠진 말을 할 것을 요구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 견해를 논리적으로 펼칠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또 나는, 내가 일부러 훌륭했던 그의 변론에서 일부러 결점을 찾아내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소크라테스의 유창하고 대체로 논리적인 변론을 읽으며 그 안에서만 미루어 짐작할만한 그의 지난 행적들과 그의 생각들을 발견했고 그의 대체적으로 훌륭하다고 알려진 성품이나 행적들의 결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나 역시 죽음 앞에서 보인 그의 용기와 그는 부인했지만 그의 세 차례에 걸친 길고도 유창한 그의 언변은 놀랍고도 존경받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신념을 위해 죽음으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보였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 휩쓸리는 경향이 있는 어리석은 대중들에게 그의 신념을 강요하는 방법이나 대중 앞에서 말하는 태도가 전부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처음에 그는 자신의 물질에 대한 결백함을 증거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수업료를 요구하는 것은 소피스트들이라고 했다. 그는 변론을 자신에 대한 변호로만 그치고 말았어야지 그 당시 자신의 학파와 대립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이번 고발건과는 상관없는 다른 학자들의 허물까지 들춰낼 필요는 없었다.그의 많은 말 가운데는 그가 처음에 진실하지 못한 고발자를 비난하면서 자신은 진실만을 말할 것을 언급했던 것과는 다른 진실하지 못한 구석들이 있다. 그는 반론 중 자신이 고발당한 이유에 대해 자신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그것이 사람들 사이의 말일뿐이며 자기 자신은 부인하는 바라고 여러 번 얘기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부인과 함께 그 부인의 대상인 대중의 평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 듣는 사람에게 자신에게 지혜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꼴이 된다. 그의 말은 자신이 지혜롭다는 걸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최소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강하게 의식 하고 있었다.그는 자신에게 평범한 지혜만이 있을 뿐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다른 사람을 지혜롭다고 인정한 일도 없다. 그는 지혜롭다고 인정받은 다른 누군가를 찾아가지만 항상 얻는 결론은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은 신탁에 의해 그들에게 당신들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오만하지는 않았지만 겸손하지도 않았고 자신 역시 지혜롭지 못하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자신의 말처럼 신이 지워주었다는 자신의 의무를 다한답시고 한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면 조금도 완곡하게 말하는 법 없이 말했다. 그는 멜레토스의 고소를 건방지고 주제넘는 소행이라고 비난하지만 가정을 돌보지도 못하며 자기 앞가림 역시 제대로 못하던 그가 사람들에게 원치도 않는 깨우침을 준다며 충고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태도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충분히 거부감과 미움을 불러 일으킬만한 것이었다.그가 그 말마따나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의무를 실제로 그에게 지워준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니다. 그의 말대로 꿈에서 신의 뜻을 받고 어려서부터 신의 음성을 들어왔다는 것은 결국엔 소크라테스 자신만의 생각이고 자신이 의무라고 생각하여 즐겁게 행했던 일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자신이 좋아서 한 일들이었다.물론 긍정적인 면도 쉽게 덮어질 수 없는 무게가 있다. 자기 신념을 죽으면서까지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려 했던 소크라테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칭찬 받을 만하다. 또한 자신을 변호하는 그의 대담함 역시 분명 인정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의 생각만이 절대적이라는 편협하고 유연성 없는 태도를 보이지는 말았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기 때문에 어떤 지혜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융통성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미움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랬다면 충분히 좀 더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孟子와 筍子의 人性論 比較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도덕이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고등학교에 이르러서는 윤리라는 과목을 접하게 된다. 정상적인 고등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맹자나 순자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라면 아마도 생각나는 것이 단순히 맹자는 성선설과 순자는 성악설을 제창한 사람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대학에 와서 윤리가 아닌 철학이라는 과목으로 맹자와 순자를 새롭게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지금 이 글의 목적이 될 수 있는, 맹자와 순자를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단순히 인성론을 다르게 본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사상들이 나오게 되었고 그것들의 차이점등 여러 가지를 서로 비교해가며 짚어보기로 하겠다.우선, 간단히 맹자를 살펴보겠다. 맹자는 학문을 성취한 후에 정치에 뜻을 두어 仁義王道의 정치세계를 구현하려 하였으나 당시 정권자 들은 그의 주장을 空論이라 하여 받아주지 않았다. 이에 맹자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詩書를 평론하고 『孟子』7권을 지어서 그의 뜻을 후세에 전하였다.성선설은 맹자 철학의 근본이 되는 학설이다. 문자 그대로 사람의 性은 善하다는 것이다. 자세히 풀어본다면,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미덕을 좋아하여 正常의 道를 지킨다는 뜻으로서, 인간의 본성이 본래 선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또한, 맹자는 성선의 사실을 인간의 심리작용을 들어서 설명하였다. 어떤 어린아이가 우물가로 기어들고 있다고 하자. 이 때에 그 광경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것이다. 그것은 아주 순수한 인간 본성의 마음일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을 맹자는 惻隱之心이라 하고, 측은지심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나를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羞惡之心, 남으로부터 사양과 양보를 할 줄 아는 마음을 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것이 是非之心이라 하여 이것들이 없는 사람은 역시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측은지심은 仁의 端이요, 수오지심은 義의 端이요, 사양지심은 禮의 端이요, 시비지심은 智의 端이라는 맹자의 성선설을 뒷받침 해주는 중요한 四端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맹자는 이 사단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善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이처럼 사단을 모든 사람이 다 가졌다면, 사람은 누구나 다 善할텐데, 不善한 사람이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맹자는 그 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善端은 마치 불씨 나 샘줄기 와 같아서 그것을 잘 키우면 거대한 불길도 되고, 긴 강과 큰 하천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씨는 꺼져버리기 쉽고, 샘줄기는 말라버리기 쉽다는 것이다.이것을 보면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道德性에 대해 말한 것이지 인간의 生理的 본성을 말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맹자는 이상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사람의 본성은 원래 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惡을 행하게 되는 것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善端을 잘 보존, 확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善端을 보존, 확충하는 방법으로 「存心養性」의 修養工夫를 들고 있다. 수양방법의 첫째 중요한 것은 善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이 정신이 먼저 확립되어야 사람은 스스로의 人格修養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맹자는 역설했다.맹자의 政治思想은 성선설의 바탕 위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는 사람의 본성은 仁한 것이므로 爲政者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반드시 仁義로써 해야된다는 王道政治論을 제창하였다. 그것은 다수의 농민들을 위한 井田制의 실시 주장으로 나타났다. 간단히, 정전제란, 농민들이 토지를 받아서 공동 경작하고 그 수확을 균등 분배할 뿐만 아니라 서로 협동생활을 하며 조세 문제도 해결되는 토지제도이다.맹자의 정치사상을 최종적으로 정리한다면, 왕도정치의 근본입장은 民本主義의 있고, 정치의 최고 책임자는 반드시 민중의 신망을 받는 有德 有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겠다.우리는 이상으로 맹자의 사상을 대충 살펴보았고, 이제 그에 상응하는 성악설의 제창자인 순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순자는 맹자보다 후세 사람으로 사회가 더 혼란한 시기에 학설을 설파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순자가 생존하였던 전국시대 말기는 윤리가 땅에 떨어진 世紀末的인 시대였던 것이다. 사회가 더욱 혼란한 시기에 이르자 순자는 맹자의 인간은 본래 善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반대되는 성악설을 주장하게 된다. 인간의 본성이 善하다면 그렇게 사회가 혼란해질 수 없다는 간단한 논리인 것이다. 그렇게 종래의 성선설에 입장을 달리했기에 순자의 학설은 그 당시 정치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았었지만, 순자는 이와 같은 당시의 世道人心을 바로 잡을 것을 염원하여 性惡說을 그의 모든 학설의 기초로 삼았던 것이다.성악설, 즉 인간의 본성은 본래부터 악하여 서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싸워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학설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 있다.맹자의 성선 사상은「天」을 善의 근원으로 보았으나, 순자는 善·惡을 「天」이나 自然의 속성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인 산물로 보았다. 결국 사회혼란 문제는 인간에게 직결되는 책임이라는 것이다.순자는 성악설에서 말하기를, 만약 사람의 행동을 본성에 맡겨둔다면 惡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하였다. 즉 순자는 본성을 변화시키는 인위의 노력을 善의 來源으로 보는 「化性起僞」의 필연성을 제창했던 것이다. 이렇듯 순자는 사람은 文化·道德狀態로 끌어올림을 역설하여, 사람은 문화·도덕상태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善을 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결국 善은 배워서 얻는 것이지 先天的으로 타고 나는 것은 아니라는 명제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이와 같이 인간을 자연상태로부터 문화상태로 「化導」시킴에 있어서는 學習的 노력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순자의 사상체계에 있어서 「學」과「習」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데, 이 학습의 노력을 그는 「積」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렇게 진실로 학습을 쌓는다면 누구든지 마침내 聖人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또 하나, 天에대한 순자의 관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순자의 天에 대한 사상은 그 당시 유행하던 모든 사상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다. 그 동안의 天에 대한 관념은 모두 天을 인간의 吉凶禍福을 결정짓는 절대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순자는 이러한 天의 관념을 모두 부인한다. 따라서 순자의 天에 대한 견해는 중국고대의 天觀 과는 크게 다르다. 그것은 언제나 일정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자연의 흐름에 대해 거역 없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天은 단순한 자연의 天으로서, 거기에는 도덕적인 理念같은 것도 있을 리가 없다. 즉 정리하자면, 善惡이니 禍福이니 義理니 하는 것은 인간에 속하는 일이지 天에 속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