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문화적 특징과 정신에 대해서보고서를 작성하시오.? 참고자료- 독일 문화의 이해 - 이관우,독일 정신의 원류탐구 - 이영일독일 문화의 이해 - 이유선REPORT‘성실의 나라’ 독일 속으로많은 나라들 중에서도 독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젤 좋아하는 작가는 헤르만 헤세인데 헤르만 헤세는 독일 출생으로 주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은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독일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던 나는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몇 번 격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해하지 못했던 책의 내용을 한 번 더 이해할 겸 독일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다.먼저 독일의 문화적 특징과 정신을 알아보기에 앞서 그 나라의 대표적인 정신이 담겨있는 국기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독일의 국기에 담겨있는 독일인들의 정신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았다. 옆에 그림을 보면 독일의 국기는 위에서 부터 검정·빨강·노랑(금색)인 3 색기이다. 공식 명칭은 ‘연방기’라는 뜻의 ‘Bundesflagge' 이며, 독일어로 3색을 뜻하는 ’schwarz, Rot, Gold’라고도 부르나 독일인들은 일반적으로 간단히 독일 국기라는 뜻으로 ‘Deutschlandfahne’라고 부른다. 검정은 인권 억압에 대한 비참과 분노를,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노랑은 진리를 상징한다.그럼 이제부터 독일의 문화적 특징과 정신을 독일의 초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문화적 발전과정과 함께 그 안에 깃들어져 있는 정신으로 살펴보도록 하자.서양의 문화가 그러하듯이 독일 문화 역시 고대정신, 그리스도교 정신, 게르만 정신을 토대로 형성 발전되었다. 그 중에서도 게르만 정신의 중심으로부터 점차 독일 정신이 형성되었다. 게르만 인들은 문화적으로 서로 상이한 수많은 혈족들과 종족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독일의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종족은 게르만의 거대종족들인 고텐, 랑고바르덴, 부르군더가 아니라 정착하여 머무르거나 서서히 남쪽으로 진출해 간 서게르만 종족들이었다. 서 게르만적 필수적인 모든 것을 그곳으로 한데 모았으며, 교단을 가르치면서 주변에 영향을 주고자 했다. 그 예로 그들은 땅의 개간과 지속적인 농사를 위한 새로운 방법들의 고안, 예배와 인간적 삶을 위한 건물들의 건립, 광범위한 수공업, 힘겨운 필사를 토한 도서관을 설립하였다. 또한 육체적인 삶의 필요물들 외에 문학 학문, 찬송가, 예배의식 등 정신적인 영역의 보호에도 관심을 쏟았다. 그리하여 중세에서의 독일 문화사의 첫 장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역량에 의해 이끌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독일 중보에 있는 풀다(Fulda)의 수도원이 지배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는데 9세기에 덕망 있는 ‘흐라바누스 마우루스 수도원장’ 아래에서 문화적이며 영적인 전성기를 누렷다. 얼마 후에는 성갈렌, 라이혜나우, 베네딕트보이른 수도원이 문하적인 선도역을 했다. 이와 같이 이 당시의 독일은 그 문화의 토대에 있어서 베네딕트 교단 승려들의 견실하고 알찬 노동에 크게 힘입었던 것 같다.이후 작센황제들의 시대에 독일 문화는 새로운 변화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때 당시 독일의 지배권은 한 혈족으로부터 다른 혈족들에게로 넘어 갔는데 작센가로브터 프랑켄가로, 다시 슈바벤족에 속한 슈타우펜가로 지배권이 넘어갔다. 이러한 지배가문들의 교체와 함께 독일의 문화는 중세절정기의 문화로 서서히 발전되어 갔는데,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면에서의 독일 황제권의 총체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독일 혈족들의 나름대로의 문화적 고유성은 유지되어 갔다. 하나의 통일적인 독일민족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며, 방언들에 의해 언어상으로 서로 구별되는 개개 독일 혈족들의 고유성들만이 병존했다. 또한 첫 작센 황제들 지배 아래에서 카알대제 통치 아래의 제국의 중심지인 아헨에 있는 황제 집정지를 하르쯔 주변의 지역에 옮김으로 문화적 중심지는 바뀌게 되었다. 하인리히 2세는 독자적인 관할구로서 칼롤링어 시대의 풀다와 비슷한 밤베르크 교구를 설립하여 이곳을 문화적 중심지로 만들기에 이르렀다.이후 잘리어 시대에 문화적 체계는 프랑켄족의 지배가세계에 속한다는 기본적인 생각과 함께 신학에 상당히 근접한 또 다른 종류의 역사해석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거대한 세계제국이 분할되어 신의 제국으로 완성된다는 관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으로 부터 중세독일의 제국은 그것의 역사적 근원, 미래, 종교적인 위상을 확인 받았다. 잘리어와 슈타우펜 황제시대의 연대기작가들은 문학적 측면에서 이에 대한 분명한 실례들을 나타내 보였다. 이 때 당시 독일에서 스콜라학파의 전성기에 논문을 통해서 논쟁을 일으킨 사람은 무엇보다도 도미니크교단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였는데 유럽의 정신사에 대한 그의 해석은 무엇보다도 아랍인들에 의해 전해진 아리스토텔레스학파가 그리스도교를 위해 풍요롭게 번성했고 그로부터 독자적인 유형의 철학이 발달될 수 있었다는 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같이 중세의 독일은 독자적이면서도 신학과 철학이 함께 어우러진 방향으로 문화적 삶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제 종교문학과 궁정문학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는 언어와 많은 관계가 있는데 이 당시 중세에는 황실의 공고들, 신학, 철학, 역사 기록 등 중세의 거의 모든 정신적 삶이 라틴어에 의해 규정되는 동안 민족의 언어가 대두하게 된다. 라틴어와 함께 중세 독일의 정신적 삶은 전체 서양세계 속으로 빠져드는데, 반면에 독일어는 본래부터 게르만적인 원초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도이취”라는 어휘는 “민족”을 의미하는 게르만의 어휘 “theot"에서 비롯된다. 독일어는 따라서 우선은 라틴어로 된 교회언어에 대립되는 민족 언어를 보편적으로 의미하며, 또한 카롤링어제국의 동쪽지역 사람들의 방언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역사기술가 니타르트는 카롤링어제국의 분할을 조인한 ”슈트라스부르크 맹약“ 속의 루트비히의 말을 민족적 언어로 칭한다. 지리적으로는 독일어는 ‘저지 독일어’ 와 ‘고지 독일어’ 로 나누어지고 언어사적 측면에서는 8세기부터 11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고고 독일어로부터 12세기에 펼쳐진 초기 중고독일어를 거쳐 위대한 서사작가들과 민네작가들의 언어로서의 중고 독일어다. 이 사이에는 제국이 통일된 하나의 문화적 이념 속에서 공존했던 시기를 회상시키고 있다.중세후기의 문화적 삶은 도시들의 번성과 그들의 자립적인 교역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리하여 독일민족에 의해 형성된 중부유럽의 문화권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외에 뵈멘, 엘사스 , 플란더른 지역과 나아가 독일의 도시들이 형성된 발트연안에 까지 이르는 북동부 지역이 포함된다. 이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국가로 제한되지 않은. 공속적인 문화가 존재하였다. 그리하여 가장 중요한 문화촉진자로서의 도시들은 그 성립이나 급속한 성장에 있어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변화에 힘입었다. EH 미신 및 주술과 같은 그릇된 관습들도 공공연하게 존재했는데 그로 인하여 인간이 제물로 희생될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공동적 삶이 어두운 불신 속에 빠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사계급이 정신적 및 사회성 중요성을 많이 상실하여 중세후기에는 시민계층이 문화의 주도자가 되었다. 중세 초기와 중기의 문화수준을 학문적으로 대표하는 스콜라학파의 철학과 신학은 중세후기에 들어 활력을 잃게 되고 이것은 하나의 본질상실을 의미한다. 그 대신 철학에서는 정밀철학이 새로 나타났다. 그리고 철학-신학적 학문과 함께 중세에서는 독일어권에서 신비론이 확산되었다. 중세말의 문학은 이 시기의 문화의 보편적 특징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정신적 질의 추락과 많은 것들에 의한 동화이다. 작가적 개성도, 이전 시대와 같은 일회성과 웅장함을 띤 작품들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 대신 문학적 산물들은 국민성을 띠게 되어 사실적이며 해학적인 특성을 낳는다. 한마디로 국민문학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또 중요한 요소는 당시 매운 선호된 ‘국민극’ 이라고 한다. 예술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이어 고딕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고딕양식은 특별히 유럽의 모든 국가들에 있어 대표적이 되었는데 독일에서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사이의 과도기 양식이 존재했다. 로마네스크식으로 착수되어 마지막 부분에서 고딕식으로 완성되었거나 나중에 고딕식 부가물들을 지니게 되는 것이 일부 교회에 나타났 개인적 사고와 문화적 기능의 높은 가치는 휴머니즘의 소득으로 간주되었다. 본질상 휴머니즘은 문학전인 것이고 그러한 것으로서 휴머니즘은 고대를 발견했고 그것의 문학과 철학으로부터 배웠다. 휴머니즘의 고대와의 관계는 중세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들은 고대와의 단절되지 않은 전통관계 속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이 깨어나는 역사적 감각을 바탕으로 고대적 세계관에 관여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휴머니즘은 고대의 재탄생으로서 이해되어 예술의 영역에서 휴머니즘은 “르네상스” 라는 이름을 이끌었다. 휴머니즘적 정신과 고대의 정신 사이에는 근본적인차이가 있는데 휴머니즘에서의 창조적인 것에 대한 기쁨은 바로 그리스도교를 통해 가능해진 고대적 우울성의 극복이다. 자각된 삶의 형상화에 대한 그 같은 의지는 전형적으로 근대적인 것이다. 고대는 그것의 도움으로 휴머니즘으로 하여금 중세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삶의 감각을 일으키게 한 적절한 문화기였다. 세련된 언어가 요구되었고, 교양을 대표하는 라틴어가 확고한 지위를 확립했다. 중세에 언제나 높이 존중받았으나 실질적 가치를 거의 상실했었던 그리스어와 헤브라이어가 다시 가치를 얻었다. 휴머니즘의 문학은 철저히 학문적 - 문학적 특성을 띠었다. 사람들은 문학적 활동을 명예로서 여겼기에 많은 작가들이 영주들이나 황제로부터 명예로운 작가자격을 월계관과 함께 수여받았다. 이 시기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가 있다. 이 작품에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건전한 세계질서에의 요구라는 자각적 태도로서의 근대적인 사고와 신은 운명의 지배자이며 인간은 신의 의지에 복종해야 한다는 중세로부터 전수 되어 온 이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그렇다면 이제 독일문화사에서 중대한 영향을 초래한 종교적 개벽으로서의 종교개혁에 대해서 알아보자. 종교개혁은 휴머니즘과 마찬가지로 교양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국민 속으로 밀려들었다. 종교 개혁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성과들 중의 한 가지는 마르틴 루터의 성서번역이다. 그것은 종교적 중요성을 띨 뿐
“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은 농부들이지 귀족이 아니다 - 영화 ‘에버에프터’ 중 ” 영화 ‘에버에프터’ 에서 주인공 여자가 ‘유토피아’책의 내용을 사용해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 말 중 하나이다. 이처럼 ‘유토피아’는 이 영화를 보고나서 꼭 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마침 글쓰기 책 목록에 있어서 읽게 되었다. 먼저 ‘유토피아’ 책의 소개와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유토피아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유토피아 개념의 역사적 기원은 모어에서 비롯된 것이나 <u-topia〉라는 말의 원어는 그리스의no-where와 good-place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없는 곳〉,〈비현실적〉이고〈실현 불가능한 것〉,〈환상적이고 공상적인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유토피아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포부를 표현해 준다.〈더 좋은 사회〉와〈더 좋은 세계〉에 대한 꿈과 동경, 그것의 가능성에 대한 사색, 그러한 이상이 실현되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그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간단하게 유토피아 책이 어떤 내용과 구성으로 되어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나의 생각과 느낌을 함께 넣어 유토피아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간행한 작품으로 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든 악, 즉 종교적 ․ 사회적 ․ 정치적 악에 대한 치료방법을 철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와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한 상상력이 풍부한 여행자인 라파엘 히들로데우스 사이의 대화형식으로, 히들로데우스가 신세계에서 보고 들은 여러 나라들. 특히 유토피아에 관해서 피터 가일즈와 모어가 이야기 하는 내용을 쓴 것이다. 제 1권은 당시의 유럽사회를 비판한 핍박받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토마스 모어의 사랑이 사회적 불합리와 관직자들에 대한 모어의 공격에 의해 여러 형태로 조명되고 있고, 제 2권은 이상적인 사회 유토피아를 묘사한 것을 사랑과 희망이 코믹한 문체로 그려지고 있다. 즉 여기서 토머스 모어는 상상 속의 섬인 <유토피아> 즉 이상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