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연구를 바탕으로 본목 차1. 머리말2. 8년 연구1) 8년 연구의 배경2) 교육과정3) 평가방법4) 연구결과3. 대학 입시제도1) 현행입시제도의 문제점2) 해결방안4. 대입 특별전형1) 대입 특별전형의 배경 및 문제점2) 해결방안5. 맺음말중등교육 정상화 및 대학입시방안1. 머리말고등학교 1학년생이 고교 4년과 대학 4년이라는 8년 동안 경험한 진보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전통적인 교육 프로그램간의 교육 효과를 비교하기 위한 연구로 1930년 10월 중등학교와 대학교의 협의회가 결성된 후, 중등교육의 개선을 위한 많은 제안 끝에, 학교와 대학간의 협의를 통해 연구를 시작했다. 대학의 협조 아래 이들 중등학교는 대학이 입학 조건으로 요구하는 특정 교과나 단위 이수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이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는 민주적인 행정이 이루어졌으며, 가정과 학교가 함께 연계된 교육이 강조되었다.이러한 8년 연구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안교육의 시작이라 할 수 있으며 60여년이 지난 연구지만, 전통적인 교육과 진보적인 교육의 효과 비교라는 문제는 오늘날 우리 교육의 맥락에서도 세밀한 연구와 분석이 요구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이 글에서는 8년 연구의 배경 및 그 과정과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제도의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에 대해 생각 해 보고자 한다.- -2. 8년 연구1) 8년 연구의 배경< 당시 학교가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는 영역들 >① 전국의 중등 교육에는 명확하고 핵심적인 목적이 없었다.② 학교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시민으로서 상속받은 전통을 진지하게 인식시켜주지 못했다.③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고 훌륭한 능력을 계발하는데 거의 기여하지 못함.④ 학교는 학생을 잘 파악하지 못했으며, 현명하게 지도하지도 못했다.⑤ 학교는 효과적인 학습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⑥ 학생들의 창조적 능력이 좀처럼 표출되지 않으며 길러지지도 않았다.⑦ 전통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실제 관심사와는 아주께 탐구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학생이 스스로 중요하다고 간주되는 과제를 자신의 힘으로 추진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학습에 대한 열정은 학교를 다니는 해가 거듭될수록 줄어들었다.그 결과, 학교-대학 관계 협의회는 전통적인 고등학교 학습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인식,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역 사회 속의 학생들에게 보다 유익할 수 있도록 각 학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학교에 필요한 모든 가능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들을 계획하였다. 이 절차는 철저하게 민주적이었으며, 본질적인 목표의 일관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조직과 절차를 바람직하게 이끌어냈다. 또한, 보다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대학에서의 만족스러운 성취에 필요한 기술, 이해, 지적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 다양한 학습과 경험 방식을 8년 동안 실험했다. 이렇게 8년 연구가 시작되었다.2) 교육 과정< 8년 연구를 시작하면서 중요하게 고려한 원리 >① 학교의 전반적인 생활이나 수업 방법이 인간이 학습하고 성장하는 방식에 부응해야 한다.② 연구 참여 학교들이 준수해야 하는 중요한 원리는 학교가 존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재발견해 내어야 한다.③ 실험과 탐색의 정신과 실천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중등학교의 특징이어야 한다.④ 교육과정의 근본적인 개정은 지역 사회에 대한 고등학교의 역할을 신중하게 협조적으로 재검토한 후에만 착 수해야 한다.⑤ 중등학교의 교육과정은 우리 문화유산을 구성하는 지식, 기술, 이해, 가치뿐만 아니라 학생의 현재 관심사도 다 루어야 한다.⑥ 연구에 참여하는 모든 학교들은 처음부터 교육과정의 통일성과 계속성을 더 확보하여야 한다.⑦ 개별 학생을 잘 파악하여 현명하게 지도해야 한다.⑧ 위원회와 학교들은 그들의 작업 결과를 측정하고 기록하며 보고해야 하는 책임을 처음부터 지각하여야 한다.⑨ 30개 학교와 대학들과의 관계가 보다 만족스럽게 되어야 한다.⑩ 교육을 이수 단위의 축적이 아닌, 의미를 위해 인내하며 탐구서 경험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려 노력해 봄으로써, 학생들은 전문적인 작품을 보다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고, 보다 훌륭하게 감상할 수 있다.그리고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학생과 교사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학생과 책임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토론을 통해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학습을 위한 자료들도 학교에서 계속 확보하였으며, 문제해결을 통한 반성적 사고의 습관과 기술을 계발할 수 있었다.3) 평가 방법학교는 항상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측정하였다. 학교의 기능이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는 데만 국한되어 있던 초기에도 이 능력들을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학교가 학생들의 많은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려 노력하는 당시, 평가는 상당히 어려웠다. 교육 측정은 점점 강조되고, 셀 수 없이 많은 검사들이 고안되고 출판되어 학교에서 사용되었지만, 8년 연구가 시작되던 당시에는 여러 교육 목적들에 대한 평가 도구가 없었다. 그 동안 학교에서 사용하던 대부분의 검사들은 주로 지식의 증가 정도나 특정한 기술의 숙달을 측정하도록 설계되었으며, 8년 연구가 시작됐을 당시에도 표준화된 검사들은 보통 전통적인 교과 내용에 근거하였다.그러나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학교가 그들의 새로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교육과정 조직 유형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곧 새롭고 보다 광범위한 평가 프로그램이 요구되었다. 이를 위해 평가진들은 7년간 약 200개의 검사들을 고안하여 실제로 사용해보고 다듬고 계속해서 다시 적용하였다.자료 해석도출된 자료를 활용하여 합리적으로 일반화하도록 요구일반 과학 원리의 적용다양한 과학적 현상을 설명하도록 요구사회문제자신의 행동 추이를 결정, 사회적 규범에 비추어 정당화하도록 요구원리의적용특정한 논리의 원리 적용결론이 전제와 논리적으로 일치하는지 확인 요구증명의 특성정의와 가정을 확인하고, 적절성 판단신뢰로운 정보원에의 친숙성다양한 교과 영역의 정.이러한 대학에서의 성공은 고등학교에서 특정한 교과를 특정한 기간 동안 공부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이 오히려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와 대학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3. 대학 입시제도1) 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현행 대학입학제도는 나름대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제도는 대학의 학생선발권 위축이나 학교생활기록부 운영의 문제 등과 같은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수능과 고등학교 성적인 내신, 면접, 논술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대부분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이러한 몇 가지의 자료만으로 대학에서 원하는 학생들을 선발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더욱이 이러한 기준들 중에서도 특히 수능이 학생선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요소로써 이를 중심으로 학생을 평가하기 때문에 입학생선발의 기준의 다양성 부족이라는 문제와 함께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능을 중심으로 한 입시제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들어나고 있다. 청소년 시기에 필요한 교우관계 및 공동체적 가치관의 무력화, 사교육비의 증가, 수능체제로 인한 문제점과 더불어 고등학교 내신성적에 관련된 문제, 수능과 내신성적 이외의 다양한 평가기준의 미비, 학생선발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성 부족,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빈번한 입시제도의 변화, 한번의 시험으로 전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시험제도 등이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만 해도 심각한 수준이다.2) 해결방안① 일정한 자격만 있으면 누구나 대학 갈 수 있도록 현행 입시 폐지, 대학입학자격고사 실시‘내신(학교단위 평가)-수능(전국단위 일제고사)-논술(대학별 본고사)’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2008학년도 입시안은 내신 상대평가제(등급제)로 인해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들과 치열한 경쟁을 3년 간 12번 치러야 하며, 수능 시험으로 인해 공교육이 입시 교육으로 왜곡되고 있으며, 논술 구술면접 등 대학별 본고사로 인해 사교육 제가 존재하는 한 어떠한 입시제도도 성공할 수 없다. 유일한 대안은 대학평준화라고 생각한다.대학평준화란 모든 대학의 교육여건을 균등하게 발전시키는 것, 원하는 학생이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것, 그리고 공동으로 학점을 이수하고 동일한 학위를 수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학평준화 체제는 ‘통합전형’, ‘통합이수’, ‘통합학위’를 근간으로 한다. 통합전형이란 전국의 대학을 계열별로 하나로 묶어서 공동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입생 선발 과정을 통해 대학 사이에 서열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대학입학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이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 및 계열 내 학과에 지원할 수 있다. 대학 입학 정원을 최대한 확충해 지원자를 모두 수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학력 학벌 차별 금지 조치 등이 정착된 이후에는 거주지 및 개인의 특성에 따른 지원이 정착될 것이다. 불가피하게 학생 선별의 과정이 필요하다면 거주지나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 학생 배정을 조정할 수 있다.대학평준화는 균등한 교육 여건 및 수준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어느 지역의 대학에 수학을 하든 동일한 교육을 이수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대학 사이의 학점 교류 및 일정한 자격 조건을 갖춘 학생에 대한 전학 및 전과를 최대한 허용하여 유연하고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보장해야 하며 모든 졸업생에게 동일한 학위를 수여해야 한다. 졸업장에는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가를 표기하지 않고 전공 및 성적만 표기하도록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벌에 따른 차별을 예방하도록 한다. 대신 졸업자격기준을 지금보다 엄격히 함으로써 학생들이 더욱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벌이 아닌 능력과 소양으로 인정받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도록 한다.4. 대입 특별전형1) 대입 특별전형의 배경 및 문제점① 배경 - 최근 대입제도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특별전형의 다양화 경향이며, 그 비율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특별전형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과 일본어 교육방법≫목 차1. 피아제 인지발달이론의 기본전제2.사고의 기본적 경향1) 조직화2) 순 응3) 평형화3. 인지발달 과정4. 인지발달의 4단계와 일본어 교육1) 감각 운동기(0-2세)2) 전조작기(2-7세)3) 구체적 조작기 (7세- 11세,12세)4) 형식적 조작기 (11세이후)5. 피아제 이론의 교육적 시사점피아제는 인간이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조직하며 세상에 대한 의미를 만들어 가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모델을 고안했다. 피아제의인지발달 이론은 유아기에서 성인기까지의 사고발달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1. 피아제 인지발달이론의 기본전제1) 인간은 환경과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다.① 인간은 사진기처럼 주위의 환경을 수동적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들어온 인상을 능동적으로 변형시켜 인지구조 속에 조직함으로써 환경을 재구성한다.② 인간은 환경의 재구성을 통해 능동적으로 인지구조를 발달시켜가는 존재이다.2) 인간이 환경과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적응’과 ‘조직’이다.① 적응은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인지구조에 기초하여 받아들이는 ‘동화’와 기존의 인지구조를 새로운 정보에 맞게 변형시키는 ‘조절’과 동화와 조절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평형’으로 구성되어 있다.② 조직이란 적응과정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기존의 인지구조에 결합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③ 적응과 조직은 생명체인 인간이 타고난 기본적인 기능이므로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3) 인지구조가 변화한다.① 인지구조 또는 도식(schema)이란 인간이 사물을 받아들이는데 사용하는 정신 체계로 스키마, 쉐마라고 불리기도 한다.② 인간은 태어날 때 반사신경 외에는 인지구조가 거의 없이 태어난다. 그러나 인지구조는 인간이 타고난 능력인 ‘적응’과 ‘조직’을 통해 변화해 간다.③ 이러한 인지구조의 변화가 바로 지적 성장이다.2. 사고의 기본적 경향피아제는 모든 종은 조직화와 순응의 기능을 가진다고 하였다. 조직화는 행상하거나 ‘생각해 보도록’하는 조직화된 행동 또는 사고의 체계이다.예> 젖꼭지를 빨 때 빨기 도식이나 꽃이나 식물을 인식하는 도식일 수도 있다. 또는 식물의 범주화 도식처럼 크고 일반적인 도식일 수도 있다.2) 순 응심리학적 구조를 조직하는데 있어서 인간은 환경에 ‘순응’하는 경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순응에는 두 개의 기본적 과정 동화와 조절이 있다.‘동화’(assimilation)는 인간이 세상의 사건들에 대한 의미를 만들기 위해 자신에게 존재하는 도식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맞춰서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예> 아동이 처음 스컹크를 보았을 때 그것을 스컹크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경험에 비추어 ‘새끼 고양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경험을 규정하기 위해 기존에 알고 있는(고양이)것과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조절’(accommodation)은 인간이 새로운 상황에 반응하기 위해 기존의 도식을 변화시켜야 할 때 일어난다. 만일 정보가 어떠한 기존 도식과 맞지 않는다면, 더 발달된 적절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 즉 우리의 사고에 정보를 적응시키는 대신 우리의 사고를 새로운 정보에 맞게 적응시키는 것이다.예> 스컹크라는 새로운 동물을 규명하는데 기존 동물 체계에 스컹크를 규명하는 새로운 도식을 첨가할 때 조절이 일어난다.인간은 이러한 도식이 작용할 때마다 기존 도식을 사용하고(동화), 또는 새로운 어떤 것이 필요할 때마다 그들의 도식을 수정하고 첨가함으로써(조절) 복잡해지는 환경에 적응한다.3) 평형화피아제에 의하면 조직화, 동화 그리고 조절은 복잡한 균형잡기 행동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인간은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고 과정의 적절성을 계속 검증한다고 가정했다. 만약 어떤 사건에 대하여 특정 도식을 사용하여 적용했다면 평형상태가 존재한다. 그러나 만약 도식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불평형 상태가 존재한다면 동화와 조절을 통해 평형상태를 유지하도록 동기화 됨에 따라 사고가 변지 방법으로 다루어보게 된다.④ 평형 -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새로운 도식을 만들어낸다.ex) 딸랑이를 흔들면 소리가 난다는 것을 발견하고 딸랑이를 흔들게 된다.⑤ 조직 - 새로운 정보가 인지구조와 결합되어 인지구조가 변화한다.ex) 딸랑이는 흔드는 물건이라는 새로운 도식이 기존의 인지구조에 결합된다.4. 인지발달의 4단계1) 감각 운동기(0-2세)인간은 몇 가지 반사적 도식만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만 사물을 다룰 수 있다. 단계의 후반부에는 ‘대상 영속성 개념의 획득’과 ‘목표 지향적 행동’이라는 두 가지 성취가 이루어진다.① 대성영속성 개념 - 대상영속성 개념이란 그가 직접 체험하고 있지 않아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들면 눈에 보이는 물체를 숨겼을 때 그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② 목표지향적 행동의 발달 - 목표지향적 행동이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행동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들면 뚜껑이 닫힌 플라스틱 통속에 장난감이 들어있을 경우 장난감을 꺼내기 위해 순차적 방식으로 장난감을 다룰 것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장난감 통속의 장난감에 대한 도식을 형성하며 점차 더 높은 수준의 도식으로 조직화 하며 목표지향적 행동을 하게 된다.2) 전조작기(2-7세)동작을 통해서만 사물을 다루던 단계에서 벗어나, 미숙하나마 생각으로 사물을 다룰 수 있는 정신적 조작능력이 발달하게 되는 시기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① 직관적, 일차원적 사고 - 이 시기는 정신적 조작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단계여서 사물이 나타나 있는 모양 그대로만을 파악하기 때문에 한 번에 한 차원만 사고할 수 있다.예> 단추를 색상별로 구별할 수는 있어도 색상별, 형태별 등 여러 차원에서는 분류하지 못한다.② 보존개념, 가역적 사고의 미발달- 사물의 형태가 바뀌면 내용물이 더해지거나 감해지지 않았는데도 사물의 수, 면적, 부피가 변했다고 생각한다. (보존개념 미발달)- 사물의 형태가 징을 한다.전조작기 아동의 교육방법과 일본어 교육1. 구체적 준비물과 시각적 보조물을 가능하면 언제나 사용한다.예1> 일본어의 오십음도(ひらがな,カタカナ)와 단어를 익히기 위한 색칠 공부 - 그림1예2> 일본어 그림카드를 이용한 오십음도(ひらがな,カタカナ)와 단어 익히기 - 그림2예3> 막대기, 돌 또는 색깔 있는 조각들을 가지고 일본어 숫자를 익히고 더하기 빼기 익히기 등2. 지시 사항들은 짧게 하되,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준다.- 어떤 지시사항을 전달할 때, 한 학생을 지적하여 그 절차를 시범적으로 보여주도록 한다.예1> 놀이를 통한 단어 습득 - ‘머리 어깨 무릎 발 ~’ 동요를 일어로 부르면서 직접 율동하기예2> 서로에게 인사하기, 자기소개하기를 하면서 필요한 단어 익히기예3> 직접 사물을 거리에 따라 가져다 놓은 후 ‘이것この(저것その,그것あの)은 무엇인가요?’를 통한 지시대명사 습득하기 등3. 개념과 언어 학습을 위한 기초를 세우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경험을 제공한다.- 동물원, 식물원, 극장, 콘서트 등 공연에 현장 학습을 한다.あ か あけ い いこい おえ う お 설명> 그림의 ‘あ’ 는 ?い(あおい-파란색)으로 색칠하세요.‘う’ 는 ? (みどり-초록색)으로 색칠하세요.3) 구체적 조작기 (7세- 11세,12세)사물을 생각으로 다룰 수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야 이러한 조작이 가능한 단계를 말한다.① 보존개념의 발달보존개념이란 양, 수, 면적 등에 무엇이 첨가되거나 감해지지 않으면, 그 형태가 변하거나 몇 개의 부분으로 나뉘더라도 양, 수, 면적 등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동일성’, ‘보상성’, ‘가역성’의 개념을 통해 발달한다.동일성 - 물체는 그것에 무엇이 더해지거나 감해지지 않으면 항상 같다.보상성 - 한 차원에서의 변화의 손실은 다른 차원의 변화에 의해 상쇄된다.예를들어 찰흙으로 공모양의 찰흙을 긴 막대기로 변형했을 때 두께의 손실이 길이 로 보상되기 때문에 형태가 변해도 물체는 동일하다.가역성 - 물체에자료들을 다룰 때 그렇게 한다.예1> 다수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일본어 회화 교육시 비디오 영상을 활용하기2. 학생들에게 물체를 조작하고 검증하는 기회를 계속해서 제공한다.예1> 컴퓨터와 게임을 활용한 오십음도(ひらがな,カタカナ)와 일본어 한자 익히기 - 그림3-1, 3-23. 발표와 읽기, 말하기가 간단하게 잘 조직화 되었는지 확인한다.예1> 일본의 오십음도와 단어를 활용한 빙고 게임을 통한 읽기, 쓰기, 말하기의 확인 - 표1예2> 문자전달게임 - 표24. 복잡한 개념들을 설명하려면 친숙한 예들을 사용한다.예1> 일본의 속담, 관용어구등을 배울 때에는 우리의 전래동화, 속담, 관용어구와 비교해본다.5. 점차적으로 복잡해지는 수준에서 물체와 개념을 분류하고 군집화할 기회를 준다.- 저자, 줄거리, 인물, 구성, 주제, 장소, 시간, 대화, 묘사, 행동 등에서 보듯 광범위한 것에서부터 특수한 것으로 분석한다.6. 논리적, 분석적 사고를 요하는 문제를 제시한다.- 복잡한 수수께끼들을 활용한다.예1> 끝말잇기, 스무고개게임, 퍼즐 등 - 그림4 일본의 오십음도와 단어를 활용한 빙고 게임의 예* 게임방법① 각각 5×5의 칸을 그린다.② 일본의 오십음도 중 학생 각각 자신이 쓰고 싶은 글자를 25개를 쓴다.③ 한명씩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자신이 쓴 오십음도를 하나 씩 부르면서 지운다.④ 다른 학생들은 부른 오십음도가 자신이 채운 빙고 칸에 있으면 하나씩 지운다.ちあくみまたけむられはおよめひやつかふないゆへるほ⑤ 위의 방법으로 한 칸씩 지워나가면서 5개씩 5줄을 먼저 만드는 학생이 승리하는 게임.いゆへるほちあくみまやつかふなたけむられはおよめひ학생1 학생2 낱말카드게임* 준비물 : 낱말카드* 게임방법① 단어를 먼저 보여주면서 각 의미를 이해시킨 후 반복해서 읽은 후 연습할 시간을 준다.② 연습이 끝난 후 몇 개의 조로 나눈 뒤 맨 뒷 사람에게 오늘 학습한 낱말 학습 카드를 보여준다.③ 조의 맨 뒷사람부터 시작하여 앞사람의 등에 히라가나를 손가락으로 쓴다.④ 문자 전달이 끝나면 다.
1. 자연적, 사회적 환경일본은 국토의 약 70%가 산간 지역이어서 평야가 적으며, 국토 전체가 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일년 내내 신선한 생선이 있다. 기후는 대적으로 온대몬순의 특징을 나타내고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가 열대에서 한대까지 남북간에 큰 차이가 있다.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동북지역의 기온이 매우 낮으며,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여 계절마다의 다양한 농산물을 음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12세기에서 14세기 중반에는 육식을 금하는 불교의 영향과 정치적 이유로 곡물과 채소로 만든 가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16세기말에 양이 적고 계절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가 확립되었다. 19세기 초에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육식을 먹기 시작했으며 그 전까지 일본은 채소, 버섯, 콩, 해조류, 생선을 위주로 식생활을 하였다.2. 음식문화의 일반적 특징(1) 음식문화의 일반적 특징① 시각적인 면을 중요시한다.일본 음식은 특히 시각적인 면을 중요시한다. 음식의 종류나 계절에 따라 도자기, 칠기, 죽 제품, 유리제품 등을 조화시킴으로써 음식의 공간적 아름다움을 살리고 있다. 또한 그릇과 음식의 균형에 유의하여 큰 그릇에 너무 조금 담거나 작은 그릇에 소복이 담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그릇끼리의 색채와 모양을 고려하여 빨강과 파랑, 흰색과 검은색 등을 배색한다.② 주식과 부식이 구분되어 있고, 주식으로 쌀밥을 먹는다.③ 콩(대두)제품인 두부, 유부, 미소, 간장, 낫또 등을 많이 활용한다.일본에서는 육식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대신 콩을 많이 소비하는 독특한 식생활 문화가 정착하였다.④ 계절적인 요리를 매우 중요시한다.⑤ 조미료를 진하게 쓰지 않는다.사(사또오 : 설탕), 시(시오: 소금), 스(스 : 식초), 세(사께 : 청주), 소(쇼우 : 간장)이밖에 일본음식 특유의 맛을 내기 위해 미소(일본된장). 미링(조미술), 멸치, 가츠오부시(가다랭이를 고열로 쪄서 말려 대패로 얇게 민 것), 다시마, 곤약, 와사비(고추냉이)- 도나베(질 그릇 냄비) : 냄비요리- 철기 : 샤브샤브나 스키야키- 죽제품 : 덴뿌라 등- 젓가락 : 젓가락과 젓가락 받침이 매우 다양함(2) 관동 지방과 관서 지방 음식의 특징1) 관동 지방음식관동 지방의 음식은 에도(지금의 도쿄)요리로 불린다. 설탕과 진한 간장을 써서 음식의 맛을 진하게 낸다. 따라서 관동 지방의 조림은 짭짤하고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고 국물이 거의 없다. 생선초밥, 덴뿌라, 민물장어, 메밀국수가 대표적인 음식이다.2) 관서지방 음식관서지방은 전통적인 일본 요리가 발달한 곳으로 교토의 담백한 채소나 건어물요리와 오사카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생선요리가 주종을 이룬다. 맛깔나는 음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도 음실을 꼽듯이 일본에서는 관서지방의 음식이 유명하다. 음식의 맛은 연하면서 국물이 많고, 재료의 색과 형태를 최대로 살리는 특징이 있다.3. 대표적인 일본음식(1) 스시 (?司-すし)일본의 대표적인 요리의 하나이다. 원래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생선 절임이었는데, 에도(江?)시대(1603∼1867)에 식초를 사용하게 되면서 밥을 함께 하여 먹게 되었다. 그러나 에도(지금의 도쿄)에서는 에도만(?)에서 잡은 신선한 생선회를 얹어 손으로 초밥을 만들었다. 이것이「에도식 생선초밥」으로, 현재 일본 스시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실 일본에는 여러 종류의 스시가 있고 그 지역의 음식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관서지방에서는「오시즈시(押しずし)」라고 하여,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 상자 속에 식초를 섞은 밥을 담고 생선회 등을 얹어 위에서 눌러 만든다.스시는 함께 쓰이는 재료에 따라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니기리즈시(생선초밥)① 후나즈시(붕어초밥)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스시이다. 붕어를 5월 초 순경에 잡아서 모양이 손상되지 않게 입으로 내장을 꺼내고 잘 씻어서 소금으로 절이고 눌림 돌로 1개월 정도 두었다가 밥과 함께 먹었던 것이다.② 마구로즈시일본 사람들은 생선 초밥 중에서도 붉은 색의 참치(다랑어)로 만든 마구 크기로 자른 김을 손바닥 위에 올려 그 위에 초밥과 여러 가지 속재료를 얹어 나팔 모양을 말아서 만든 것.(2) 돈부리 (?物-どんぶりもの)흰쌀밥 위에 각종 수조육류, 어패류, 채소류를 요리해서 얹고 진한 소스를 뿌려서 먹는 주식용 일품요리이다. 주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주재료 이름 뒤에 동을 부쳐서 부른다.- 규동 (쇠고기 덮밥)- 오야꼬동 (닭고기 계란덮밥)볶은 닭고기와 양파를 달걀로 엉기게 하여 밥 위에 얹고 양념소스(다시국물, 맛술, 청주, 설탕, 간장)를 끼얹은 것- 텐동 (덴뿌라 덮밥)튀김을 밥 위에 올려 튀김간장(진간장, 가츠오부시 국물, 맛술 생강)을 끼얹은 것- 카츠동 (돈까스덮밥)양념소스에 양파와 길게 썬 돈까스, 달걀 푼 것을 섞어 밥 위에 얹은 것(3) 우동 (うどん)우동은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먹는 음식으로 가츠오부시나 멸치로 우려낸 국물로 만든 국수종류이다.- 싯포쿠 우동 : 국수에 송이버섯, 표고버섯, 생선묵, 채소 따위를 넣어서 끓인 우동- 가츠네 우동 : 유부를 달게 조려서 넣은 우동(4) 소바 (そば)차게 만들어서 먹어야 하므로 온도에 특히 신경을 써야하는 음식인데. 소바를 적셔서 먹는 츠유(간장다시국물)에는 와사비(고추냉이)와 무 간 것, 잔파를 넣어 면류의 맛을 돋군다.- 오로시소바삶아서 차게 한 메밀을 용기에 담고 가볍게 수분을 제거한 무즙을 얹고 가츠오부시, 잘게 썬 파, 달걀노른자를 위에 놓고 맛국물을 곁들여 먹는다.- 자루소바대나무 발이나 사각 틀에 담아내는 메밀국수를 말한다. 양념과 소바츠유를 곁들인다.(5) 라멘 (ラ?メン)일본어로 「ラ?メン」이라고 말하는 라면은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 양념에 따라 분류하면 된장으로 만든 미소라멘과 간장으로 만든 츠유라멘, 소금으로 간을 한 시오라멘이 있다.특히 일본의 3대 라멘은 삿포로의 미소라멘 키타의 소유라멘, 하카다의 돈코츠라멘이다. 삿포로의 미소라멘은 짜고 매운맛이 나는 라면으로 된장으로 만든 국물이 진수이다. 키타카라의 소유라멘은 간장라멘이라고도 하지루(맑은 국)와 미소시루(된장국)가 있다.- 스마시지루 : 다시(맛국물)를 그대로 써서 재료 자체의 향기와 풍미를 나타내는 맑은 국- 미소시루 : 된장을 풀어서 만든 국(6) 회 (刺身-さしみ)일본요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재료를 가급적 신선한 그대로 요리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요리가 생선회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요리는 재료를 반드시 가공하는데, 이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있다. 생선회는 날 생선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간장을 찍어 먹는다. 이 요리는 얼마나 우수한 재료를 분간하여 요리하는가를 보면 요리사의 실력을 알 수 있다.(7) 구이 (?き物-やきもの)야끼모노는 고기, 생선, 채소를 모두 이용하며, 재료의 원래 모양을 잘 살리기 위해 꼬치에 끼워 굽는 것. 재료의 영양분이나 맛을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울 때 기름이 빠지게 하거나 조미료가 배어들게 하므로 독특한 풍미를 더 할 수 있는 조리법이다.구운 음식을 접시에 담을 때는 구이 옆에 아시라이(곁들일 음식)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보통 오이, 시금치, 연근, 풋고추, 하 생강초, 무 등을 곁들인다.(8) 튀김 (てんぷら)어패류나 채소에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긴 음식을 덴뿌라라 한다. 덴뿌라는 16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로부터 조리법이 전해졌다고 한다.(9) 냄비요리 (なべもの)냄비요리는 간단하게 끓이면서 먹는 방법이 많으므로 재료가 우선 신선해야 하며, 딱딱한 것은 데쳐서 쓰기도 한다. 대구지리, 오뎅, 스키야키, 샤브샤브 등이 있다.4. 설날음식일본에서도 새해의 시작인 설날을 최대의 명절로 삼고 있다. 신정만이 유일한 설날이어서 보통 12월 28일부터 새해의 4, 5일까지 연휴에 들어간다. 가족들이 집에 모여 새해를 성대하고 즐겁게 맞이하기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고 정담을 나눈다.(1) 카가미 모찌새해에 먹는 모찌는 찹쌀가루를 쪄서 둥글게 찐빵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든다. 카가미 모찌는 새해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 사용되는 음식이므로 신이 머무는 가장 신성한 공간(도꼬노마)에 없는 음식이어서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찬합 3개에 담아 두었 다가 끼니때마다 혹은 손님을 접대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 세치요리로 멸치조림, 찐 새우, 검은콩조림, 연근, 다시마, 우엉, 당근, 토란 등이 있는데, 각각의 음식마다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져 있다.- 연근 : 앞날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는다.- 마른멸치조림 : 풍작을 기원한다.- 새우 : 긴 수염이 달린 새우는 장수를 의미한다.- 검은콩조림 :콩을 일본어로 ‘마메’라고 하는데, 이 말은 성실하고 부지런하다는 다른 뜻이 있어, 이렇게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다시마 : 일본어로 ‘곰부’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뻐하다’라는 뜻의 ‘요로고부’의 마지막 부분 발음과 비스하기 때문에 다시마를 먹으면서 일년 내내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원한다.5. 일본의 정찬 요리일본의 정찬요리는 관혼상제 요리인 本膳料理, 다도에서 내놓는 ?石料理, 本膳料理를 간소화한 ?席料理로 나뉜다. 이외에 채식 요리인 精進料理 등이 있다.(1) 本膳料理 (ほんじんりょうり)일본의 정식 광혼상제 요리인 本膳料理는 일본 안토, 도산시대에서부터 내려온 요리법이다. 本膳料理는 에도시대로 내려오면서 상차림이 다채로워지고 예술적으로 발전했다. 전래되어 오는 정식 잔치 요리이긴 하나, 매우 중요한 연회 이외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는 상차림이다.< 本膳料理의 상차림 >상은 다섯 개를 차리는 것이 정식이다. 다섯 개의 상은 각각 이름이 붙어있는 제 1상을 本膳이라 하며 그 다음부터의 상을 각각 제 2膳, 3膳, 4膳, 5膳이라고 한다. 차림은 국물의 숫자와 요리의 숫자에 따라 구분하는데 국물이 한 가지에 요리가 세 가지면 일집삼채, 국물이 한 가지에 요리가 다섯 가지면 일집오채라고 불리 운다.결혼식의 요리는 매우 호화로워 다섯 상에 세 가지 국물, 일곱 가지 요리를 낸다. 생일과 같이 집안의 행사엔 주로 일집오채, 이집칠채를 차리는데 요즈음은 여러 가지 오리를 큰 접시에 담아 한번에 차려내기도 한다.(2) ?石料理 (かいせきりょうり)다도에서 나온 요되었다.
1. 우키요에(浮世?)의 정의와 유래우키요(浮世)라는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근세 이전에는 계속되는 전란으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서민들이 불교의 염세사상에 따라 허무한 세상, 근심스러운 세상이라는 뜻으로 우키요(憂世)라고 표기하였다. 그러다가 근세에 이르러 사회가 안정되고, 현세는 순간일 뿐이라는 사고가 팽배해지면서 향락을 추구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우키요(憂世)‘는 어느새 `우키요(浮世)` 즉 속세, 현실이라는 의미로 바뀌게 되었고, 당시 유행하던 그림 형태에 우키요에(浮世繪)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 속세, 현실(浮世)의 여러 모습을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에도시대에는 도시 상공 계층, 즉 초닌(町人)들의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지배계급인 무사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닌 문화가 발달했는데, 우키요에도 대표적인 초닌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자주 등장되는 소재로는 기녀, 가부키 배우, 스모 선수, 명승지의 풍경 등으로 이는 당시 초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화제의 인물이나 유람지였다. 처음에는 육필화의 형태로 제작되었던 것이 서민층의 호응을 받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판화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일반적으로 우키요에라 함은 목판화(木版畵)를 뜻하며 그림내용은 대부분 풍속화이다. 그러나 우키요에라는 말은 일본의 역사적인 고유명사로, 보통명사로서의 풍속화와는 구별된다.우키요에 최초의 대가로 손꼽히는 사람은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이며 단일색상에서 2가지 색상의 채색판화로 이행한 것은 오쿠무라 마사노부[奧村政信]에 의해서였으며,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는 1765년에 여러 벌의 목판을 이용한 다채색 판화인 니시키에를 도입했다. 이러한 판화 기술의 발달은 우키요에의 인기를 더욱 높였고, 일본인들의 꿈과 정서를 담아 중요한 전통문화의 장르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1) 판화의 발달 원인? 대중에게 보여지기 위해 제작된 것이므로 다량 생산이 필요? 칼에 의한 예리하고 긴장된 선 묘사 등 판화 자체가 갖는 특이한 미의 발견(2) 판화의 발달는 주로 손으로 그리거나 단색 목판으로 제작했다. 주로 당시 인기가 있었던 대중 소설의 삽화로 많이 제작 되었으며, 히시카와 모로노부가 그린 이하라 사이카쿠)의 소설「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에 그려진 것이 현재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우키요에 라고 한다.다색 판화로서 우키요에가 등장한 것은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에 의해 1765년 이후에 도입 되었다. 이러한 다색판화를 ‘니시키에 (錦?)’라고 한다. 니시키에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에도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사교적인 놀이인 그림 달력을 교환하는 모임, 즉 에코요미교환(繪曆交換)을 계기로 발전했는데 이것은 문자를 쓰지 않고 일년간의 농사짓기나 누에치기의 일정 등을 한 장에 그리는 실용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만든 그림 달력을 정월초에 친지들에게 선물로 보내는 풍습이 생겨서 상업용으로 대량 출판하는 그림 달력의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고, 경쟁적으로 화려하게 만들려는 욕구가 확장되어 니시키에 유행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2) 주제의 다양성▶ 미인화 (美人畵)우키요에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에도시대 후기 미인화가 유행했던 이유는 에도 시내의 인구 중 무려 80%가 남성이었고, 이로 인해 유곽인 요시와라가 번성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키요에의 미인화 또한 이러한 배경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며, 대부분의 미인화에 기녀가 그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우키요에를 창시한 히시카와 모로노부는 목판화의 새로운 표현매체로써 생명력이 넘치는 미인상을 그려내었는데, 이후 미인화는 우키요에의 중요한 장르로서 정착되었다.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는 소녀 같은 일본 미인을, 도리이 기요나가[鳥居淸長]는 성숙한 미인을, 그리고 우타마로는 미인의 상반신만을 묘사하는 등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했다. 미인을 판별하는 기준은 시대와 계층에 따라서 다르지만, 우키요에에 등장하는 미인은 얼굴 형태가 비교적 길고, 눈썰미가 위를 향하며, 입술이 작다는 특징이 있다.이 그림은 우타마로가 그린 여자2시리즈에 중복으로 들어 배우를 그린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스모에(相撲繪), 유락풍속화(遊樂風俗畵), 무샤에(武者?), 춘화(春畵)가부키 배우와 같이 당시의 에도 초닌들의 흥미의 대상이었던 인기 씨름꾼을 모델로 삼아 그린 스모에도 나타났는데 이는 요즈음의 브로마이드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에도시대 중기에 들어서면 인기인의 브로마이드 대신에 기녀들의 거처나 가부키 극장의 풍속을 그린 유락풍속화나 전설이나 전기, 역사에 등장하는 무사를 주제로 하는 무샤에가 그려졌다.또한 남녀의 뜨거운 사랑 장면이나 이에 관련된 심리묘사를 주제로 하는 장르도 있었는데 이를 춘화, 비희화(秘戱畵), 염본(艶本)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런 종류의 우키요에는 풍기를 단속한다는 막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하여 정식 판매경로가 아닌 암거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사치스럽고 과장된 제작기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메이쇼에 (名所?) - 풍경화메이쇼에는 풍경화로 미인화의 절정기에 처음 탄생하는데 풍경화가 늦게 탄생한 이유는 음영법, 투시원근법등의 기법을 획득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키요에에는 일찍부터 풍경 묘사가 있긴 했으나. 대부분은 배경을 묘사한 것이었다. 풍경화에 필요한 기술들을 습득함에 따라 가츠시카 호쿠사이,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풍경화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여행붐과 더불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풍경화는 주로 명승지를 그린 것으로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과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등이 있다. 호쿠사이가 합리적 풍경화를 그린데 반해, 히로시게는 일본의 자연미를 노래하였다. 비, 바람, 안개, 눈 등의 아름다움과 나그네의 정취를 즐겨 그렸다. 우키요에 풍경화는 히로시게에 의해 일본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들 그림은 일종의 여행 안내서이자 여행지의 기념품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원래 우키요에에서 풍경화는 사람들의 생활 풍속과의 관 계를 늘 의식하며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불필요한 것은 노부 (菱川師宣 :1618-1694)히시카와 모로노부는 에도시대 전기의 우키요에시로 우키요에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책의삽화를 주로 그리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책의 삽화 정도로 취급되던 우키요에를 단순한 삽화의 수준을 초월한 감상 회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활달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선의 묘사와 적절한 구도를 지닌 풍속의 묘사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00종 이상의 에혼(繪本)과 염본(艶本) 50편 이상을 남겼다. 붓으로 채색하는 육필화(肉筆畵)의 그림책, 병풍, 족자등도 많이 남겨 인기가 대단했음을 말해주고 있다.2) 미인화의 대가 - 기타가와 우타마로 (喜多川歌徽 :1753?-1806)기타가와 우타마로는 에도시대 후기의 우키요에시로, 화가의 별명, 즉 화명(畵名)을 기타가와 도요아키(北川豊章)로 부르다가 가타가와 우타마로(北川歌徽)로 고친 후, 다시 화가로서의 성, 즉 화성(畵姓)도 바꾸어 기타가와(喜多川)라 불렀다.기타가와 우타마로는 미인화 가운데도 대상에 접근하여 여성의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여 그리는 [오쿠비에(大首繪)]라는 형식을 창안해내어 독자적인 작풍을 확립했다.여성의 우아한 모습을 그려내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쓰는 선을 그릴 때 검정색선 즉 묵선 대신에 빨간색 주선을 쓰거나 윤곽선을 생략하는 등 독창적인 표현법을 창안, 1792년부터는 미인화 시리즈를 발표, 각 계층 부인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이어서 전성기에 있는 기녀나 찻집의 여인 등 실제의 미녀를 모델로 하여 미인화 전문가로써의 빼어난 자질을 발휘하였다.그는 많은 작품을 남기기는 했으나, 지나친 다작으로 인하여 질적 저하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1804년에는 막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다룬 소설에 관련된 우키요에를 그렸다는 죄목으로 수감을 당하기도 하였다.우타마로 절정기의 걸작.에도 간세시기(1789-1801)에 소문난 세 미녀를 그린 호화스러운 작품 이다.오른쪽 방향으로 당시 미스 에도인 나니와야 오키타, 게이샤 중 예도 에 뛰어난 도요모토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초기의 미인화 시리즈로써, 얼굴 모양을 대담하게 재구성하여, 약간 우스꽝스러운 정도로 과장되어 있으나, 심리묘사가 잘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례가 없던 이런 작풍으로 개성 있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우키요에의 귀재(鬼才)로 추앙받고 있다.4) 특수한 묘사법을 개발 - 가쓰시카 호쿠사이 (葛飾北齋 :1760-1849)‘그림에 미친 화가 ...미국의 시사 월간지(라이 프)지난 천년간 세계사를 만든100대 인물’자기 혁신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가져 다양한 회 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일본. 중국. 서양을 가 리지 않고 여러 화파를 다루었다.미지의 분야에 대한 끝없는 도전 정신과 지칠 줄 모르는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항상 변화를 추구 했기에 넓은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었다. (서정적 인 풍속화, 장편소설인 요미혼의 삽화, 뛰어난 역 량을 보인 육필화, 만화 등)대체로 간략하고 간결한 표현으로 인해 장식적이면서도 마치 만화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2001년에 개봉되었던 프랑스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의 감독인 '미셜 오슬로'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그림에 영감을 준 인물로 호쿠사이를 말하기도 하였다.불굴의 화가로 알려졌던 그는 일생 동안 숱한 기행(奇行)-(30회 이상 화명(이름)을 바꾸고 93회나 집을 옭긴 이사 버릇)을 전하기도 했지만, 정열적이며 탐구하는 자세로 관철한 그의 작가생활은 일본미술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대표적인 풍속 판화들은 대부분 70대에 만든 작품이다.4) 풍경화의 완성자 - 우타가와 히로시게 (歌川廣重 :1797-1858)우타가와 히로시게는 안도(安藤) 히로시게로 부르기도 한다. 스승으로부터 스승의 화호(畵號)의 한 글자 [히로(廣)]와 본명의 [시게(重)]를 따서 히로시게(廣重)이라는 화호를 받은 후, 폭넓게 활동했으나 처음에는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작가로써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은 35세에 발표한 에도의 풍경를 그다.
- 교육 철학 및 교육사 - ‘삼국시대의 교육’◈ 고구려의 교육1. 태학 (太學)삼국시대에 제도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으로는 태학과 경당에 관한 기사가 있다. 태학은 고구려의 소수림왕 2년(372)에 설립되었던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관학인 동시에 최초의 고등교육 기관이라는 교육사적 의의를 갖는다.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여름 6월에 태학을 세우고 자제를 교육한다」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태학의 설립에 대한 정치적 의미는 국가체제의 정비와 관련하여 설명되어야 하는데 즉, 고국원왕때 있었던 전연과 백제의 침입은 고구려에 큰 타격을 입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구려는 국가의 체제를 정비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소수림왕 2년에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세웠으며, 다음해에 율령을 반포하였다. 다시 말해 불교는 국가의 정신적 통일을 위해 필요하였을 것이며, 율령의 반포는 바로 교육과 함께 국가 조직 그 자체의 정비였을 것이다. 이렇듯 태학이 불교를 수용하고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고대국가의 기틀을 확립한 소수림왕 집권기에 세워졌다는 것은, 교육이 국가의 정치적 발전 과정에 필수적으로 요청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구려의 태학 설립이 고대 중국의 왕조와 함께 문을 열었던 태학들에 비해 그 출발이 늦었다고는 하겠지만 유럽이나 중동ㆍ아시아 전역을 통틀어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에 비해서는 매우 빨랐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태학의 설치위치, 교육내용, 교육 대상, 교육 내용 등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 따라서 태학 설립에 영향을 준 동진(東晋)을 비롯한 중국의 교육기관과 신라의 교육기관에 관한 내용을 참조하여 태학의 구체적인 모습을 유추 할 필요가 있다.(1) 교육 대상고구려의 태학은 교육대상이 ‘子弟’라고만 하여 구체적인 대상과 운영모습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교육기관의 설치 장소가 수도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국가 중심으로 교육을 실행하며 그 대상을 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많은 영향을 받은 동진(東晋)의 태를 육성하고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국가적 요구에 부응하였음에 틀림없다.(2) 교육 내용태학의 교육은 유학서를 중심으로 하였을 것이다. 교육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당시 유학서가 고구려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다른 사료에서 알 수 있다. 『주서(周書)』와『북사(北史)』)에서는 고구려에 『오경』『삼사』『삼국지』『진춘추』등이 있다고 하였다. 오경(五經)은 유학의 기본 경전으로 시(詩) ? 서(書) ? 주역(周易) ? 춘추(春秋) ? 예기(禮記)를, 삼사(三史)는 사기(史記) ? 한서(漢書) ? 후한서(後漢書)를 말한다. 그리고 기타 중국의 태학에서 가르친 역서, 의서, 산서, 악서, 병서 등도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구려는 또한 교육을 하는 사람을 박사라고 하였는데 영양왕11년(600)의 기사는 이를 증명해준다.대학박사(大學博士) 이문진에게 명하여 옛 역사책을 요약하여 신집(新集) 5권을 만들었다. 국초에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할 때 어떤 사람이 사실을 100권으로 기록하여 이름을 유기(留記)라고 하였는데 이 때에 와서 고친 것이다.1. 경당 (?堂)고구려의 경당은 우리나라 교육 역사상 최초의 사학(私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의 고구려에는 상류계급의 자녀를 가르치는 태학(太學)이 있었는데, 경당의 설치시기는 관학(官學)인 태학이 설립된 이후인 것으로 짐작 된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유교적 사상을 교육 내용으로 운영한 기관이 태학이라면 보다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진 곳은 경당이다. 유학적인 사상적 교육은 물론이고 당시 중요하게 요청되었던 무사적 기능까지 생활에서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당이 삼국시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정치이념인 유교를 보다 지역적으로 확산시키고, 이로 인해 그들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데에 있다. 교육기관에서 학습한 사람들의 역할은 하층민에 대해 당시 지배 계층의 사상을 전달하는 중간 계층으로서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 고구려 태학과 경당이다. 태학이 수도에서 유학을 교육기관을 통해서 국가의 운영체제를 정당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빈번한 시기에 중간 계층을 효과적으로 양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최상위 지배 체제와 분리되어 양산된 중간계층은 국가 운영에 기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평가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경당은 구체적인 사료도 적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황으로 모습을 유추하여야 한다. 경당에 관한 기록은 [구당서]와 [신당서]에 짧게 등장한다.[구당서]에는풍속에 서적을 좋아하는데 문지기와 마굿간 지기까지 이른다. 큰 길거리에 큰 집을 지어 이를 경당이라고 부른다. 자제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주야로 여기서 독서하고 활쏘기를 익힌다.라고 나와 있고[신당서]에는사람들이 배움을 좋아하여 가난한 집에서도 서로 장려하여 길거리에 번듯한 집을 짓고 경당이라 불렀다. 미혼의 자제들의 이곳에 모여 경서를 읽고 활쏘기를 익혔다.라고 나와 있을 뿐이다.참고: 경당의 글자를 중심으로 학습 형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즉, 경(?)자는 밖에서 문을 잠근다는 뜻이므로 당시 학습자들은 외부 세계와 접하지 않고, 학습에 전념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당에서 기숙하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미혼자를 그 대상으로 한정하였다고 주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당서]의 기록을 중심으로 하면 국당(局堂)이 되며 국(局)자는 ‘일정한 한계’를 뜻하는 문자이므로 경당은 일정한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것 이라는 주장도 있다. 두 주장에서 경당의 학습이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1) 교육 대상[구당서]와 [신당서] 모두 미혼자임을 밝히고 있다. 고대 연령층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는 나이는 15-16세이다. 따라서 경당을 구성하는 연령층도 대략 16세라고 추정할 수 있다. 입학 자격에 대해서는 자제라고만 언급하고 있어 그 대상에 일반민도 해당되는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태학 관련 기사에서도 자제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당서의 기사와 신당서의 기사를 보면 마굿간 지기를 나타내는 문구가 있다. 이것을 보면 교육과 흡사한 교육 공동체였음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신분의 차별을 떠나 교육에 있어서는 평등한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참고: 어느 시대나 교육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어야 가능하다. 교육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과 교육 참여시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의 경우 인력은 직접적인 경제력이었다. 학습자는 학습의 기간 동안 경제적 활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경당에서 학습하는 이들 역시 교육 기간 동안 경제적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 교육 활동에 경제적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은 국학의 기사에서 알 수 있다.원년 봄 3월에 청주의 거노현으로 학생 녹음을 삼았다.위의 신라 국학 기사는 교육 활동에 경제적 비용이 발생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또 국학에 대해서 국가가 교육비용을 마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굿간 지기와 문지기와 같은 경제적 신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학 교육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은 사회적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2) 교육 내용독서와 활쏘기 등 문무교육을 관학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중국, 신라, 백제 등과 같은 다른 여러 나라와 대치하고 있던 고구려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적합한 교육을 실행했다 할 수 있겠다. 평소에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문무를 닦다가 나라에 큰 일이 생길 때는 민족을 위해 기꺼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의 위한 학문과 심신 수양을 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도 가지면서 공부해 나갔다.◈ 백제의 교육백제에 학교가 있었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백제는 특유의 찬란한 문화를 누리고 일본에 유학을 전한 것으로 보아 교육이 매우 발달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1) 박사 제도① 백제의 교육기관에 대해서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많은 사료의 박사라는 명칭으로 보아 학교가 있었음을 예측할 수 있다.② 박사의 명칭 - 박사란 유학의 경전에 능통한 학자들로서 교육의 소임을 맡은 관직으로 추측 일 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바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④ 백제에서는 박사들로 하여금 일본에 유학을 전하게 하였다.⑤ 백제에 있어서 학교 교육이 없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며, 오히려 고구려보다도 먼저 학교를 두어 박사로 하여금 교육을 담당케 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2) 학교 교육① 교육행정의 중앙기관인 내법좌평, 사도부, 지휘, 감독을 받는 학교가 있었다.- 남천 이전의 육좌평 중 내법좌평은 의례를 과장하였고, 조선시대의 예조에 해당하는 관직이 며, 오늘날의 교육부 장관에 해당한다.- 남천 이후에는 22부 중 오늘날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부서인 사도부가 있었다.② 교육과정은 고구려의 교육과 거의 동일하였다.◈ 신라의 교육1. 화랑도신라는 입지적 교통적인 문제로 삼국 중 가장 늦게 발전한 나라였다. 하지만 후에 삼국통일을 이루고 여러 뛰어난 문화의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신라 교육의 힘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화랑제도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역사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본기 37년 조에 남모와 준정이란 두 여자를 원화로 받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하여 300여 명의 무리가 모였으나, 이 두 여단장은 서로 시기하다가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하여 억지로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뒤 강물에 던져 죽여 버렸다. 이 일이 발각되어 준정도 사형에 처해지고, 그 무리들도 화목을 잃어 해산하였다. 그 후 진흥왕은 이 제도를 보완하여 귀족 출신의 외양이 잘생기고 품행이 곧은 남자를 뽑아 곱게 단장하여 이름을 화랑이라 하여 받들게 하였다.화랑도에는 그 지도자에 화랑이 있고 그 밑에 낭도가 있었다. 초기의 화랑도는 조직도 미미한 것이었으나 576년 이후 국방정책과 관련하여 이를 관에서 운영하게 되면서 총지도자에 국선을 두고 그 밑에 화랑이 있어 각각 문호를 맡았다. 화랑도의 총지도자인 국선은 원칙적으로 전국에 1명, 화랑은 보통 3∼4명에서 7∼8명에 이를 때도 있었으며, 화랑이 거느린 각 문호의 낭도는 수천 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