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건국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 어떤 나라 사람들이라도 이 간디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간디 위인전을 통해서든지, 간디 영화를 통해서든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든지... 그만큼 간디라는 인물은 널리 알려졌고 그가 어떠한 일들을 했는지도 대충은 대부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머릿속에 간디라는 인물에 대한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이 결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간디라는 인물의 삶이 과연 어떠했고 도대체 왜 그의 삶이 그토록 높게 평가되어지고 그의 조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를 존경하고 추모하는지를 알고 그러한 위대했던 간디의 삶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보고 적용시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디의 사상들을 알아보고 그러한 사상들을 받아들이고 정말 우리의 삶에서도 간디와 같은 삶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보지 않겠는가?!간디의 사상에는 무엇이 있는가? 익히 들어온 바와 같이 비폭력 주의적 무저항주의가 있다. 또한 불복종, 비타협주의등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간디의 사상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과연 무엇을 뽑겠는가? 모든 사상들이 다 중요해서 어느 하나를 뽑아내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서슴없이 ‘사티아그라하‘라고 외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간디의 모든 사상은 ’사티아그라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용어의 의미는 ’사티아 - 진리‘ 의 ’그라하 - 주장‘ 이다. 아주 간단하다. 진리의 주장이라는 말이다. 간디는 그의 일평생동안 진리를 추구하며 살았다. 그렇다! 그의 삶의 목표는 진리 추구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그러한 명확하고 굳건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는 단호하게 그 목표에 기반을 두고 여러 사상들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민족들의 자유를 위해 앞장섰을 때에도, 민족내의 분열을 융화하기 위해서 활동했을 때에도 그는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러한 간디가 처음부터, 태어났을 때부터 진리를 알았었고 그것을 추구하려고 힘썼을까?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도 나약한 한명의 인간임에 틀림없었다. 인간이었기에 그 역시도 정욕에 사로잡혀 고민했던 적도 있고 도둑질을 한 적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약한 인감임에도 불구하고 간디가 그처럼 훌륭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나약함을 인정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하고자 했던 순수한 겸손함이 아닌가 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진리를 찾아가는 자는 티끌보다도 겸손해져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겸손을 얼마나 중시하였는지 알 수 있다.다시 생각하면 간디, 그는 정말로 단순한 삶을 살았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진리를 추구했다’라고 그의 삶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문구가 말하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 삶인지 이 세상 어떠한 사람이라도 알 것이다. 즉, 간디의 위대함은 그의 말과... 그의 생각과... 그의 행동이... 모두 함께 진리에 바탕을 두고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였기에 그는 육체에 관한 어떠한 욕심도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 누가 보기에도 연약한 몸을 가졌지만, 대단히 웅대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 간디가 인도 사람이었고 인도를 위해 헌신했다고 해서 인도라는 한나라에만 국한된 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그의 삶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본보기인 것이다. 진리추구... 어떠한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궁극적인 인류의 목표... 이 목표를 그는 이루어가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는 모든 인류의 모범이요! 꺼지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영혼인 것이다!우리 모두는 알아야 할 것이다. 갈수록 악해지는 이 세상에서... 종교도 타락하고... 믿음도 쇠퇴하고... 불신은 커져가고... 정말 마이너스적인 요소만이 더더욱 커져가고 있는 이 현시점에서...(물론 아름다운 부분들도 많지만...) 간디의 삶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란 말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삶’... 이 간디의 삶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적용시키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고 확실한 해결책인 것이다.마하트마...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써 시인 ‘타고르’가 간디에게 주었던 시이다. 그 후로 간디는 마하트마 간디라고 불리게 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간디를 표현함에 있어서 많이 부족하다. 너무나도 약한 표현이다. 하지만 마하트마 간디라고 변함없이 불리어온 이유는, 간디 그가 그 누구보다 겸손한 마음을 갖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마하트마란 칭호는... 그에게 있어 소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말보다도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그를 더욱더 빛나게 하는 칭호인 것이다!
☞ 단군 이래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88올림픽과 감동의 도가니였던 2002년 월드컵을 치르는 등의 업적을 이룩하며 역사의 한 부분을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모든 사람이 수긍할거라고 생각되는 특징이 있는데, 다름 아닌 ‘학벌중시주의’가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기 자식들이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안전하게 취직하거나 국가의 여러 고시들을 패스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부인할 수 없는 학벌중시사회인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학벌중시풍조가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이끌어져올 때부터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 누구나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풍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삶에 스며들어있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나라를 예전부터 이끌어왔던 지배층 계층의 머릿속에 꽉 잡혀있던 것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지 않는가?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그러면 예전의 우리나라 역사 중에서 ‘학벌‘ 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시대는 어느 시대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의 동의하에 조선시대라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진골, 성골하는 골품제도가 시행되었으므로 학벌보다는 핏줄을 더 중시했을 것 같고 고려시대는 불교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물론 과거제도 있고 유교적 측면도 있었지만...) 조선시대만큼 학문중시풍토가 그리 심했을 것 같지 않다. 조선시대 때야말로 유교 중에서도 성리학 중심의 국가로써 조선을 이끌었던 지배층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개인적인 능력, 그 중에서도 학문적 교양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조선이란 나라에서 속된 말로 한방에 뜰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란 공부 죽어라고 열심히 해서 과거시험을 뚫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풍토가 마련되어있으니 조선시대를 살았던 많은 유생들의 목표는 당연히 과거를 통해 정계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상물을 통해 지금까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었다. 이제껏 필자는 조선시대에 과거만 딱 합격해버리면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어 먹는 것에 있어서나 입는 것에 있어서나 아무 걱정 없이 살게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에 합격하고 난 후에 지금으로 말하면 수습사원으로 지내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차차 말단 벼슬부터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 입학해서 졸업한 후에 취직을 하게 되도 가장 끝 직책부터 맡아가면서 윗사람들 눈치 봐가면서 대접해가면서 말 그대로 피땀을 흘릴 대로 흘려야 위의 직책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은가? 즉, 다시 말해서 조선시대 때의 관리들 역시 지금시대처럼 내용은 약간 다를지라도 혹독한 노력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때, 관직에... 학벌에 그토록 집착하고 노력했던 까닭은 비디오가 말해 주는 것처럼 신분사회인 조선에서 관리가 되는 것은 양반신분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한 집안이 4대에 걸쳐 관리에 나서지 못하면 더 이상 그 후손들은 양반신분을 유지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학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중시되고 있는 학벌...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실일까?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본인은 철저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을 가하고 싶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끝없이 할 수 있겠지만 간단하게 말해보겠다.학벌주의가 가져오는 폐단은 먼저 우리나라의 인력을 국한된 범위에만 몰리게 한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현재의 대학 입시 풍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지원하고자 하는 과는 의,치,약,수의대에 거의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사대,교대에 편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속되게 말해서 안전빵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은 고려하지 않고 그냥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아니면 자기 스스로 생각했을 때 먹고 사는데 괜찮을 것 같아서 공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의대를 비롯한 사회가 인정하는 과를 들어가지 못할 경우에 마지못해 다른 과를 가게 되면 인생 끝난 것처럼 놀고먹자 대학생이 되거나 등록만 해놓고 재수, 삼수를 하거나 아니면 전공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이나 여러 고시들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어 버렸다.
☞ 지금까지 많은 리포트와 감상문을 써서 냈지만... 이번에 교수님께서 내주신 견학 감상문은 왜 이렇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여지껏 봤었던 비디오들은 그냥 보는 순간 생기는 생각대로, 느낌대로 즐기면서 썼는데 주제가 워낙 큰 주제라서 그런지... 뭘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안 잡혀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그냥 교수님께 제 심정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편하게 전시회 가서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말해보려고 합니다.저는 어렸을 적부터 꼴에 뭐라도 되는 것처럼... 좋게 말했을 때, 제 나름대로의 정의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일제시대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을 해서 일본을 욕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성질은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국사 담당이셨는데 일제강점기 범위 가르치실 때 엄청난 흥분을 하시면서 수업하셔서 그런지 저 역시 함께 흥분하고는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도 공부할 때나 이야기 할 때만 순간적으로 나오는 것이었을 뿐... 지나면 식어버리고... 결국 수능 공부의 한 부분으로만 넘겨온 꼴이 되었습니다. 또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시절의 자료가 많은 전시장도 몇 번 갔었던 것 같은데 그냥 눈으로만 한번 딱 봐버리고는 넘기고 정작 진지하게 일제시대의 우리 민족의 아픔을 깊게 느껴보려고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처럼 그냥 지내오다가 대학에 와서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교수님께서 이 견학과제를 내주신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여행을 통해서 일제에 관한 자료가 많은 장소를 한번쯤은 가봤음을 알고 계실 것이고 꼭 전시회를 가지 않아도 일제강점기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서 전시회에 있는 자료들보다도 훨씬 많고 자세하게 알 수 있는데 굳이 견학을 다녀오라는 이유가 뭘까 하고 좀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런 의문을 처음에 품었지만 가볍게 소풍 간다는 생각으로 여자친구(주제에 여자친구가 있답니다 ㅜ.ㅜ)와 함께 5월 21일 금요일에 5.18자유공원을 갔습니다. 버스 편을 몰라서 헤매고 헤매다 그냥 상무지구로 가서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기사 아저씨도 잘 모르셔서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물어보시고는 저희를 5.18자유공원이라고 크게 써진 돌 앞에 내려다 주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규모가 작은 것 같아서 약간 실망이 들면서 이런 과제를 과연 왜 내주셨을까하고 또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날씨도 좋았고 경치도 좋고 또 데이트 느낌도 물씬 나서 기분은 마냥 좋았습니다. 처음에 자유관이라고 써진 커다란 건물 안에 전시회가 있는 줄 알고 들어갔다가 없길래 당황하고 이곳이 아닌가 하고 둘 다 어리버리하다가 자유관 왼편에 작은 막사라고 해야하나... 암튼 작은 건물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쪽으로 가보았습니다. 그쪽으로 가보니 ‘과거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일제침탈과 역사왜곡 전시회’라고 써있는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봤습니다. 여기구나 하고 들어갔는데 규모가 너무 작아서 또 실망감이 생겼지만 처음부터 한번 천천히 살펴봐야지 하고 관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권 침탈 과정부터 시작해서 명성황후시해, 동학농민군 학살, 105인사건, 3.1학살로 시작해서 국민 총력 조선연맹, 강제노역,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징병 순서대로 걸려있는 글과 그림을 보아갔습니다. 내용은 분명히 예전부터 알고 있던 것과 거의 같은데 이상하게도 울화통이 터지는 정도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습니다. 한숨이 얼마나 크게 나오던지... 사진에서 보이는 우리 민족의 표정들이... 특히 정면을 보고 찍은 사진에서 사람들의 표정들이 한결같이 저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전시되어있는 방안에 전시물이 사방으로 둘려 쌓여있고 규모가 오히려 작은 것이 기운을 발산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효과적이었을까요... 정말 징병이란 테마로 걸려있는 전시물까지 보는데 괜한 죄책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딱 꼬집어 표현하기는 힘든 기운이 계속 느껴졌습니다. 거기까지 한숨 쉬며 보다가 그 다음 내용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별로 나누어진 일제의 침탈이었고 다음이 드디어 저와 제 여자친구의 혈압을 올릴대로 올려버린 정신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내용들도 마찬가지지만 정신대에 관한 것도 역시 한편의 지식으로만 알아왔습니다. 그런데 전시물의 내용 중에 정신대를 경험했던 한 여성의 글을 봤습니다.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을 행할 수가 있는지... 일본인들도 사람인데... 사람이라면 양심이 있을텐데... 아무리 침략지의 여성이라고하여... 그러한 행위들을 일삼을 수가 있는 건지... 정말 그 자리에서 전시물을 다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치솟았습니다. 흥분은 될 대로 되고 여자친구도 정말 속상했던지 얼굴 표정이 무서웠습니다. 그 글 이외도 정말 잔혹하기가 그지없는 행위들을 했던 내용들의 전시물이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속 터져서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속 터짐은 계속되었는데 다음 내용은 정말 뭘 몰랐던 어렸을 적부터 싫어했던 친일파!!! 놈들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먹히고 아주 긴 시간동안 일제의 통치를 받아온 것은 물론 일제의 잔혹한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 민족들 중에 있었던 변심자들... 즉 친일파 놈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끔씩 친구들이나 아는 형들과 친일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 아주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친일파들이 물론 나쁘긴 하지만 개인적 측면에서, 친일파도 인간이란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폭력을 비롯한 고통에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고 하면서 약간 친일파를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소수 있었고 오로지 100퍼센트 욕으로만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저도 역시 친일파에 대해서 이를 가는 입장입니다. 친일파를 약간 이해하려는 입장에 무조건 반대를 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친일파에 대해서 정말 화나는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들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속에는 뉘우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들도 가족이 있고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겉으로 그렇게 뉘우치지 않는 척 하는 것인지... 물론 가족부양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욕먹어야 마땅한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비롯한 자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 행위들이 우리 민족 전체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혹한 생지옥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저에게 있어서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양심이 있을 것이고 양심이 있다면 그런 행위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표현이 적합지 않는 속물입니다. 현재의 우리나라를 이끈다는 대다수의 윗사람들의 대부분도 일제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더러운 친일파 놈들이고! 과거의 자신들이 언제 친일파였던가 하면서 오히려 진실된 독립가처럼 행동하고... 그런 친일 행위의 근성은 지금에 와서 미국에 대한 개노릇으로 바뀌고! 정말 지금도! 자기 배만 부르면 된다는 식으로 배상해달라고 요구나 하고... 이따위 것들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욕밖에 나오지가 않습니다. 이야기하려면 끝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흥분을 좀 가라앉히겠습니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친일파에 대한 내용을 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희 둘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휴... 이런 암흑 분위기의 반전은 증거물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갔다 왔다는 증거물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카메라를 가져갔었습니다. 그나마 사진 찍으면서 그 속 터짐을 잠재울 수가 있었습니다. 저의 견학은 이렇게 증거물 산출로 막을 내렸습니다. 견학을 다녀와서 생긴 저만의 생각인데 교수님의 이 견학 과제의 의도가 일제시대의 아픔을 지식으로만 머리에만 담아두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보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에도 물론 많이 접했을지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형식적인, 의식적인 관람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견학을 저희들에게 요구하셨던 것 같은 저만의 느낌이 그냥 들었습니다. 저라는 녀석은 제가 생각해도 단점이 거의 99퍼센트 되는 것 같지만 유일한 1퍼센트의 장점이 어떤 것을 접할 때 무언가 얻고 느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제 스스로 제가 못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 견학을 통해서도 지금껏 지식으로만 순간순간만 흥분하고 느껴왔지만 그래도 대학생이 되어선지 뭔가 틀이 잡혔다는 생각이 듭니다. 잊을 수 없는 일제시대의 민족의 아픔... 그 당시 직접 살지 않아서 그 아픔을 완벽히 느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견학을 통해서 그 아픔이 제 몸에 어느정도 스며든 것 같습니다. 이 느낌, 항상 간직하고 우리 민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하는 마음에서, 제 역할에 충실해서 후에 꼭 우리 사회를 위해 티끌만큼이라도 도움 될 수 있는 제 자신이 되려고 합니다.
‘어떠할는지...조국을 떠난 이후로... 이승을 떠난 이후로...그대의 서글픈 모습... 여전히 그대로일까...아직까지도...나라를 잊는다는 것이... 기억에서 지운다는 것이...힘이 들진 않을는지... 고통스럽진 않을는지...수백 년 동안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한반도를 떠돌고 있진 않은가... 단종이여...그때의 일들을 생각하면...안타까움에 눈물이 흐르지는 않는가... 단종이여...허무하게 가버린 그대여... 힘없이 떠나버린 그대여...그대의 억울함이... 그대의 혼령을...이 땅에 붙들어놓고 있는 것인가...과연 그 무엇이라야...그 한 맺힌 마음을... 풀어 줄 수가 있단 말인가...그대를 생각하며... 노래하는 이 나조차도...답답함에 긴 한숨만 나오네...단종이여... 단종이여...’1453년 10월 10일 밤... 수양대군은 자신의 야심에 따라 당시 정부의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김종서를 찾아가 죽이고 황보인, 조극관등의 대신들은 왕명을 핑계로 대궐로 불러들여 참살한다. 그 후 어린 단종을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왕권과 신권을 장악하고 자신들 도운 수하들을 관직에 앉히게 된다. 이를 ‘계유정란’이라 한다.이러한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계유정란’... 이것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한번 살펴보고 다시 한번 이 사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1452년 본래 몸이 약했던 문종이 병사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게 된다. 12살의 나이로 정사를 돌보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문종 역시 죽기 전에 김종서, 황보인에게 단종을 잘 보필해달라고 했었기 때문에 나라는 왕권에 의해서가 아닌 신권에 의해서, 즉 의정부에 의해 운영되게 되었다. 평소 종친인 대군들, 그 중에서도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영향력은 상당히 커서 의정부 대신들의 그러한 세력장악을 불만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하여 의정부와 종친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흐르게 된다. 그 후 단종은 즉위교서를 반포하게 되는데 이 교서의 항목들 중, 14조와 22조가 문제를 만들게 된다. 14조가 말하는 바는 간접정치에 관한 것인데 이는 곧 의정부가 모든 일을 장악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22조는 분경을 금지시킨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종친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분경을 금하는 것은 자기들을 의심하는 것이라며 의정부와 종친들의 갈등은 더욱 커지게 된다. 더구나 ‘의정부가 있는 것은 알겠으나 군주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한지가 오래되었다.’라는 말까지 돌게 되었고 의정부는 인사결정에 대신들이 결정을 미리 표시한 것을 말하는 황표정사라 불릴 정도로 단종의 권위를 약화시키게 된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때에 수양대군은 당연히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야심을 위해 점차 세력을 키워나간다. 수양대군의 낌새를 눈치 챈 대신들은 비교적 왕권을 넘볼 확률이 적은 안평대군과 손을 잡고 그를 견제하려 했다. 이에 수양은 그 유명한 한명회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대신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대신들의 자신에 대한 견제를 따돌리고자 명나라로 가는 사신을 자처하게 되고 다녀온 후 곧바로 꾸며온 계획에 따라 김종서, 황보인등의 대신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실권을 거머쥐게 된다.영상물이 보여주는 내용들이 위와 같다. 그리고 수양대군과 김종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이러하다. 수양대군은 스스로의 야심에 따라 욕망을 채워 왕위에 올랐다는 비판을 받으나 후에 중앙 집권제를 확립하고 민생안정책과 유화적인 외교 활동을 통해 민간 생활의 편리를 꾀했으며 법전 편찬과 문화 사업으로 사회를 이끌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김종서는 육진개척의 공을 세우는 등 세종 때부터 조정에 헌신을 바쳤으나 단종 때 자신에게 지나친 권력을 집중한 것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고 수양대군에게 목숨을 잃었고 대역모반죄라는 누명까지 얻게 되었다. 허나 후에 다시 평가되어 만고의 충신으로까지 불리게 된다.여기서 나는 수양대군과 김종서라는 두 인물에 대해서보다 그 둘 사이에서 죄 없이 죽어간 단종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다. 단종에 대한 후세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왔고 항상 같은 말들뿐이다. 어린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았고 그 때문에 자신은 아무 힘없이 대신들과 대군들의 힘겨루기 속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17살의 나이에 명을 다하였다는... 뻔한 내용들로 주입식 적으로 머릿속에 인식되어 왔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밖에 단종을 기억할 순 없는 걸까? 이러한 판에 박힌 평가 말고 다르게 한번 생각해보자. 그는 조부인 세종의 칭찬이 자자할 정도로 명석했고 일찍부터 집현전 학자들의 교육으로 품성과 인성을 다듬어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평가가 형식적인 것에만 치우쳐 평가한 것이 아니고 사실이었다고 본다면 그가 아무리 어렸다고 했을지라도 왕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전의 성인들 중에서도 어린아이에게 가장 큰 덕이 있다고 말한 분도 있었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이러한 말들이 과연 그냥 나온 말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누가 아이들의 순수함, 겸손함을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가 아이들보다 더 순수할 수 있고 겸손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렇듯 단종은 왕실의 자손이요 한나라의 왕이었지만 그전에 한 순수하고 겸손한 아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바탕으로 깔고 있었던 단종을 믿고 왜 그에게 정치를 맡겨보지는 못했던 것인가?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아이들을 보면 신뢰하지 못하고 걱정이 앞서는 모순에 빠지긴 하지만... 그 당시 단종 또한 ‘나에게 맡겨줬으면...’하는 마음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겁도 났을 테고 신하들이기에 앞서 모두 자신보다 어른들이었으므로 말 꺼내기조차 힘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단종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기강대로 정치를 펴 나갈 수 만 있었다면 상황은 어찌되었을까? 필요 없는 희생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고 대신들과 대군들의 힘겨루기도 별 필요 없었을 것이며 오히려 화합하고 단결하게 되어 조정은 안정되었을 테고 그에 따라 자연히 백성들의 삶에 힘을 쏟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 있게 이와 같이 나름대로 근거를 들어 주장할 것이다. 문종이 단종을 대신들에게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대신들은 단종을 배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단종을 모반하려고한 무리가 있었다 해도 세력이 강한 종친인 대군들이 있기 때문에 견제를 당했을 것이다. 반대로 대군들 또한 어린 단종보다는 자신들이 더 왕에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역모를 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단종을 보필하는 대신들의 힘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어서 쉬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실제 역사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시점에서 단종의 역할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단종이 자신의 포부대로 나라를 다스려나갔고 자신의 뜻을 외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면 대신들이 자기들 뜻대로만 조정을 움직이려 한때 적절하게 이야기해서 조절했을 것이고 대군들이 이상한 낌새를 차린다고 하면 왕권의 힘으로 억제했을 것이다. 물론 나이가 어린 것이 대신들이나 대군들에게 약점으로 보일수도 있겠으나 어린나이의 강점인 순수함과 겸손함으로 욕심 없이, 흠집 없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과연 대신들이나 대군들이 끝까지 자신들의 사리사욕만 채우려고 들었을까? 오히려 어린 임금에게 감동하고 자신들의 잘못됨을 뉘우치고 위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위해 모범을 보이려고 힘썼을 것이다. 자기들 스스로는 서로 뭉쳐서 단합했을 것이고 말이다. 세종대왕이 다스렸던 시기를 훨씬 뛰어넘는 태평성대를 누렸을지 모른다는 것이 나의 포효이다.
☞ 인간이란 생물은 일반적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즉, 인간에게 있어서 음식이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에 부인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필자를 포함한...) 이렇게 중요한 음식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음식을 그냥 살기 위해서 먹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필자인 본인 역시 음식에 관하여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먹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냥 먹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음식에 대해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더 이상 음식이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게 된 이유는 세 편의 비디오를 감상하고 난 후에 음식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변화된 본인의 생각을 나름대로, 서툴고 형편없을지라도 한번 말해보겠다.첫 번째 비디오가 말해주는 내용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음식 문화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 문화의 음식 문화는 본래 육식이 주된 것이었고 이러한 서양식 음식 문화는 동양을 비롯한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동양권에 있는 많은 나라들은 각국의 고유의 음식 문화보다 서양의 것을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서양의 음식 문화는 부작용을 가져 왔다. 동양에 뿐만이 아니라 서양에까지 말이다. 그 부작용이라 함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장은 초식동물 형인데 서양의 식습관은 육식이 주를 이룬다. 그러므로 당연히 육식은 인간의 장에 무리를 주게 되고 그로 인하여 다른 많은 문제점들이 생겨난 것이다. 서양의 식습관의 폐해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과도한 서양 식습관의 추구는 인간의 욕심을 불러오게 되었고, 인간들은 음식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자 서양식의 주류가 되는 동물들(소, 돼지, 닭 등...)에게 인위적인 행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둬두고 인공적인 사료를 먹이고 구타하고 잠도 못 자게 하는 등... 동물에게 있어서는 정말 너무나도 괴로운 방법을 인간들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간들의 행위가 비단 동물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모르겠지만, 그 영향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광우병, 조류독감 등은 그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처럼 뒤늦게야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행위의 결과가 자기 자신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각종 보고서와 매스컴을 통해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서 알리고 있다. 작은 이러한 노력들로 인하여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본래의 식습관(‘육식이 최고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고 동양의 나라들도 다시금 자신들을 돌아보고 있다.이와 같은 비디오의 내용을 통해 본인이 생각하게 된 음식의 의미는 지나친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육식이 건강에 최고라는 지나친 생각이 초래한 건강의 위협, 음식을 통한 이윤추구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동물들에 대한 엄청난 압박, 그러한 압박이 결국 다시 인간들에게 돌아오게 되는 과정들을 깨닫게 한 것이 음식이 아닌가? 우리가 그냥 살기 위해 먹는다고 생각해 왔던 음식이 우리 인간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아닌가 한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비디오에서 언급했던 황금률을 생각하면서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잡아주는 길잡이가 음식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두 번째 비디오의 내용은 채식에 관해서이다. 첫 번째 비디오의 내용과 연결해서 과다한 서양 식습관의 추구로 인해서 건강의 많은 폐해가 생겨났는데 이러한 타개책으로 채식을 들었다. 비디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당뇨, 아토피성 피부염, 고혈압 등...) 채식을 함으로써 회복되었다.이 내용이 암시하는 바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하였듯이 사람의 장은 채식동물형이므로 사람에 맞는 섭취를 하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음식이 사람들에게 맞는 식습관을 경각케 하는 좋은 본보기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세 번째 것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식습관이 사람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소화에 뿐만 아니라 두뇌 활동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현미를 비롯한 여러 가지 채식의 중요성과 인스턴트식품의 단점들, 그리고 여성들의 임신 전의 식습관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들이 있었는데,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이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여성들의 식습관에 관한 것인 것 같다.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의 건강이 엄마들의 배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장차 어떠한 훌륭한 일들을 할 지 모르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여성들이 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성들 또한 함께 노력해야겠지만 말이다. 분유보다는 모유를 먹이고 임신 중에는 태교에 힘쓰면서 아울러 올바른 식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