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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습혁명보고서』를 읽고
    『학습혁명보고서』를 읽고-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고찰과 평생학습체제로의 도약1. 들어가며‘학생은 마루타가 아니예요’라는 말을 외치는 아이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교육제도로 인해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이다.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임기가 1년 2개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볼 때 자주 바뀌는 교육부 정책에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까지 강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더욱이 2008년에 내신비중을 강화한다는 입시개정안에 따라 학생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학교에서의 생활이 내신경쟁으로 삭막하게 되어 가고 있다. 이와 함께 모든 초, 중등학교의 교원을 대상으로 교원평가제를 실시한다고 하여 교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에서는 8차 교육과정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7차 교육과정과 명백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정책이 이전의 교육 과정의 실패로 인해 시급하게 새로 내놓은 방안책이며 7차 교육과정의 아류작이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다. 교사들도 전교조뿐 아니라 투쟁을 벌이는 등 교육계가 뒤숭숭해졌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노트필기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니 학생들... 경쟁보다는 평등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의 중압감... 이 속에서 학교교육 운영의 부담감과 경쟁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학습혁명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우리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신지식인의 효율적 양성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방안을 모색해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신지식인의 양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교사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며 우리 교육의 발전 방향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2. 신지식인, 진정 우리 사회에서, 교육에서 필요한가?우리 사회는 현재,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정보라는 것이 그 자체가 자원으로 활용될 뿐 아니라 지식으로 다듬고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이동하면서 지식을 싹틔우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지식을 싹틔운 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지식을 학습하고 구성하는 사람으로 신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지식인이 중요한 인재가 된 사회 풍토 속에서 교육 분야에서도 신지식을 양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그러나 교육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교사들이 신지식인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조사해본 결과 신지식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이는 학교가 대학 입학이라는 목적을 고수하고 있고, 이 때문에 교사들은 대학입학 시험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기만 하면 되었다. 또한 교육계의 최고 전문가들조차 신지식인을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면만을 생각하고, 교육이 ‘일회용품’으로 전락할 것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다.또한 신지식인이 교육 분야에도 적용시키는 것이 시장경쟁의 원리를 교육 영역까지 확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입시중심교육인 우리 교육에 또 다른 경쟁을 부추기며 인성교육보다는 실용적인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도 인문학의 여러 과들이 통합되고 폐지되는 가운데, 직접 사회와 연계되는 과가 신설되고 인기학과가 되는 경향을 볼 때 이러한 교육방향을 부추기면 안 될 것이라고 본다.그러므로 신지식인 논의가 스스로의 완성을 향해 항해하는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발전, 집단의식의 성장, 삶의 완성, 그리고 교육체제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할 것이다.2. 현실과 괴리된 교육과정과 교사의 역할이러한 신지식인을 위해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것이 ‘학습’이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친다고 해서 이것을 다 알아듣지 못한다. 중. 고등학교 때를 떠올려 보면 수업에 잘 참여하여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이들이 학교 수업을 좋아해서 하는 경우는 드물었었다. 또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더더욱 수업에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한편으로는 공포스러운 시간이라고 느낀다. 이와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에까지 무관심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교사들이 정해진 교육과정 안에서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과 틀에 박힌 수업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볼 수 있다.하지만 이와 반대로 학생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하는 교사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기존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교사가 만든 수업으로 진행하거나, 수업에 여러 가지 교육방법과 교수기법을 도입하는 등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면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이렇게 만들어진 교육과정과 교사와의 괴리감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교사가 임의대로 교육과정을 바꾼다면 여기에도 문제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효율적인 교육효과를 주기 위해서, 교사가 교육과정을 바꾸어 실행한다고 해도 학생들은 교사가 의도하지 않았던 교육과정을 습득 할 수 있고 수업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교사가 만든 교육과정은 교사 한 명의 가치판단으로 이루어 진 것이기 때문에 뚜렷한 검증을 통과 한 것이 아니며, 이로 인해 그 효과성은 불투명하다. 학교에서의 수업이 학생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때, 교사의 불확실한 믿음만으로 시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그렇다고 교사는 정해진 교육과정을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교육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반성적 사고를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해보는 일도 분명히 필요하다. 이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가 지니는 학생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 일 것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원활한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 교육과정을 바꾼다면 교사의 수업에 학생들이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고 ‘학습’이 중시되는 수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확고한 교육 철학과 풍부한 교과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교육계획수립자, 다른 현장 교사 등 여러 집단과의 협의를 통해서 교육과정을 수정해나가고 만든다면 가장 최선일 것이다. 또한 교사들이 교육에 대해 논할 수 있는 학회, 모임 등을 통해서 여러 집단과 활발한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면 여기에서 불합리한 교육과정에 탄력적으로 수정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사 혼자 독단적으로 교육과정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에 거친 교육과정을 도입한다면 수업에 보다 발전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3. 교사의 발전을 위해서지식기반사회에 들어서면서, 학생들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종합하여 유용한 지식을 창조하는 창의력과 정보와 지식을 평생 동안 학습해 갈 수 있는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의 확산과 발전을 고려할 때 ICT활용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인성교육으로 사이버 공간에서도 남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다.이러한 능력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의 역할은 매우 크다. 그리하여 교사들은 수업을 할 때에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시청각 기재를 이용하거나 놀이 수업을 도입한다. 여기에서 교사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먼저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너무 많은 준비와 시간이 들고, 또 그것이 교사의 수고만큼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반면 수업 방법에 대한 극단적인 확신으로 수업 교구와 기법을 개발하는 데에 전념할 경우수업의 본질에 멀어질 수 있다.그러나 교사가 수업에 대해 충실히 이해하고, 사명감을 갖고 수업의 전문가가 된다면, 학생들이 활발히 참여할 수 있고, 수업을 기다리게 만드는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노력들을 교사학습조직을 통해서 공유하고 기록으로 남긴다면 교사들간에 상호 학습이 이루어지고 유기적 보완 및 반성을 할 수 있다.교사들의 이러한 노력과 함께 학교와 정부에서 교사들의 현장 연수와 개인 연구에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교사에 사기를 올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들의 근무 순환제도를 보다 효율적이고 책임감 있게 실행할 수 있도록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8.01.07| 4페이지| 1,000원| 조회(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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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국굴기를 읽고
    흔히 역사라고 하면 학자들의 연구실 한 구석에 두꺼운 책 속에 틀어박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는 한 개인의 앞날을 바꾸고, 한 나라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생동력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앎으로 해서 그 생동력을 내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역사의 중요성과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절실히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지금까지 학교에서 세계사와 역사를 공부했던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를 배움으로 해서 개인이 살아가면서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상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역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한미 FTA를 비롯한 세계화의 바람이나, 글로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자신의 역사를 경시하고 살아간다면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정체감이 흔들리고 강대국의 틈 속에서 이용만 당하고 도태되고 말 것이다.대국굴기를 읽으면서 누가 권력을 잡았는가, 권력을 잡은 세력의 행동을 규정짓는 이념이 무엇이었는가. 그것을 공고히 하는 제도는 어떠하였으며, 정치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강대국의 굴기의 노하우와 쇠락과 패망을 통해 살펴보았다. 또 세계의 역사 속에 한국을 주요한 전면에 등장시킬 수 있고 하찮은 존재로 구석으로 내몰릴지는 우리의 몫이므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훌륭한 지도자의 요건 - 리더십우리는 급변하는 21세기 살고 있다. 우리 주위의 모든 환경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칫 우리가 나아가야 할 좌표와 방향을 잃고 혼동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환경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대국굴기에 보면 나라의 흥망의 역사 중심에 항상 지도자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지도자, 즉 국왕과 귀족들은 전쟁이라는 모험을 감수하면서도 해외영토 확장에 나선 미래를 예견하는 힘과 적절한 시기를 잡은 기회포착 능력이 나라의 굴기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 발전이 그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적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라고도 해도, 지도자들이 현상유지를 위한 정치만을 했더라면 영토 확장과 이익을 가져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에 부응하는 변화를 수용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창조를 거듭해야 했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조직에는 지도자가 필요하며 리더의 역할에 따라 조직의 방향이 결정될 만큼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세계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 진정한 지도자를 선택하여 그 지도자와 함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잘 적응하며 자신은 물론 조직의 발전을 꾀해야 할 것이다.프랑스의 드골은 정치제도의 개혁과 알제리 정책에 있어서 유연함과 강한 신념을 통해 프랑스를 현대 민주국가로 도약시킨 지도자이다. 이렇게 강력한 리더십과 통치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통해 대국굴기를 이룰 수 있는 한편, 독일의 히틀러처럼 맹목적으로 ‘대독일 통일’을 실현하고자 하여 대외, 대내적으로 정치적인 신뢰와 명분을 잃고 분열만을 낳은 경우도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 라는 마키아벨리즘은 오늘날까지 언론 매체와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종종 등장하며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마키아벨리즘은 개인이나 당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국한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을 행하면서 소수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를 경계하고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지도자의 개인적 도덕성 역시 필요하다.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네덜란드는 열악한 자연조건과 부족한 지하자원 속에서도 네덜란드인들은 강인한 민족정신으로 환경에 맞추어 대책을 세우고 불리한 조건을 오히려 훌륭한 장점으로 바꾸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토지개간을 통해 대해를 육지로 만들고 자연조건에 맞는 새로운 농업 발전 모델을 모색해서 잡초조차 자라기 어려웠던 땅을 유럽 농업의 선진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포착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필요한 제품을 개발, 생산하여 성공한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은 국가의 악조건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와 열정을 통해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오늘날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한 시대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창의적 사고로 다양한 상상을 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창조적 능력이야말로 시대가 필요로 하는 능력일 것이다. 이러한 창조성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스티브잡스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였고, 번뜩이는 창의적인 인재들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를 즐긴다고 한다. 새로운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능을 중요시하는 그에게 끊임없는 창조에의 욕구, 상상력,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열정을 배워야 한다.국민들의 단결, 노력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자유와 민주를 갖춘 공업 사회를 이루었다. 이것은 서독인이나 동독인 모두가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민족의 분열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통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분열과 경제적 피해를 국민들의 노력과 지혜로 극복하였다.2004년에 독일은 베를린의 심장부에 대규모의 유태인 희생자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세웠다. 이 추모비는 독일 정부의 과거사 청산 일환으로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럽 전역의 유태인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적 위상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과거 청산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자기반성과 미래지향적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독일 정치 지도자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반성의 모습과 노력은 프랑스 등 이웃국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았다.독일과 같이 군국주의 침략 전쟁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던 일본도 민주혁명을 기점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재부상할 수 있었다. 이것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일본 국민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하지만 일본의 과거청산은 독일과 다르게 도쿄 한복판 야스쿠니 신사에는 해마다 일본의 정치가들과 일반인들의 추모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곳곳에서 독일에 비견되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에 대한 과거 청산은 미미한 수준이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과거에 대한 명확한 반성이나 배상 없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상징하는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으며 그것은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후세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시대가 변하였다고, 요즘 세대에 직접적인 아픔이 남아있지 않다 하더라도 역사적 의미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제의 침략을 기억하고 되새겨서 미래에 대비하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우리나라 역시 1960~80년대에 급속한 경제 성장을 달성하였다. 그것은 경제계발5개년계획 뿐 아니라 국민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서 가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50~60년대의 우리나라보다 형편이 나았던 인도는 현세보다 내세를 중요시하는 국민 의식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루기 어려웠고,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보다 훨씬 뒤처지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희생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노력과 이를 지원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인문/어학| 2008.01.07| 3페이지| 2,000원| 조회(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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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부인에 나타난 시대와 여성의 모습 평가A좋아요
    에 나타난 시대와 여성의 모습-그녀들은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1. 들어가며 라는 영화를 보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nike 광고를 제작하는 내용이 있다.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관건이다. 광고의 카피는 'No game, Jsut sport' 으로 한 여자가 새벽에 조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섹시한 옷이 아닌 나이키 운동복입고 있으며, 달리는 동안 그녀는 집, 직장, 주위의 모든 문제들을 잊고 자유를 느낀다는 내용이다. 여성은 달리는 동안만이라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며,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나 자신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길 원하는 여성의 심리를 광고에 담은 것이다. 달리는 순간만은 달린다는 것 자체가 완전한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이 광고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사회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누구에게 예속한 존재, 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외모, 행동, 생각들을 구속하며 살아가고 있다.우리나라는 특히 가부장제 지배체제에서 유교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남성에게 예속된 여성성이 더욱더 강화되어져왔다. 조선 시대 가부장제 지배 체제는 유교 이데올로기에 의해 더욱더 강화되었습니다. 남자는 하늘로, 모든 여자는 그 하늘을 떠받들고 우러르는 땅으로 규정하면서 남성 우월주의의 신화를 창출하였고, 그와 함께 정절과 현모양처로 형상화된 여성성은 여성의 비인간화를 가속화 시켰다.지금부터 을 통해, 영화와 소설에서 말하는 여성의 자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또 자유부인을 통해 50년대 사회의 정치와 섹슈얼리티가 어떠하였는지 살펴보겠다.2. 자유의 의미① ‘자유부인’의 자유는 무엇이었는가?부부간의 관계가 부창부수였던 전통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새롭게 떠오르면서 오선영은 평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유의 진정한 개념도 모른 채 무조건 가정을 벗어나 남자를 자유롭게 만나고 사회에 진출하여 돈을 벌고자 하였다. 하지만 오선영과 장태연, 두사람에게는 상호 존중하는 태도가 없었고, 오선영은 남편을 속이고 자신의 일들을 숨기는 데에 위해 불화의 상황을 무마시키려고만 하였다. 이렇게 부부 간에 불화와 반목이 심해지면서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였던 오선영은 다른 남자와의 만남에 심취하고, 장태연은 다른 여자에게 연모의 정을 품게 된다.하지만 자유를 찾아 나섰던 사회에서 신춘호에게 농락을 당하고 백광진에게는 사기를 당하고, 또 한태석에게 욕망의 대상뿐이었던 그녀는 버림받고 가정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가정! 여자들은 가정을 떠나서는 자유도 행복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자들의 자유와 행복이란 오로지 결혼이라는 토대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오선영은 가정에서 자유가 있고 행복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후회하는 것이다. 영화 에서 이러한 결말은 단순히 신춘호에게 농락당하고 한태석과의 외도를 들켜서 비참한 꼴로 집으로 돌아오지만 남편으로부터 밖으로 내몰리고, 대문 밖에서 울고 있다가 어린 아들로 인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으로 조금은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파탄을 맞이한 오선영은 결국 부인과 어머니의 직책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소설 에서는 남편에게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절당한 후 남편의 소중함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 등의 시간이 있었고, 남편의 용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오선영의 모습을 정당하고 바람직하게 그리고 있다. 자유와 방임을 부르짖었던 시대에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조금씩 용인되면서 오선영은 여성으로서의 주체의식을 갖고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돈과 허영심에 빠져 가정을 등졌고, 맹목적인 자유만을 추구했던 사회로의 진출은 결국 오선영을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이다.소설 에서 오선영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감옥이 아니고 따뜻한 안식처로 묘사했고, 가정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그들에게 애정과 사랑을 주었던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을 그리며 행복한 결말로 맺는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여성의 행복이며 자유일까?그러나 여남동권 시대라고 해서 아내의영역을 존중하는 동시에 남의 영역을 절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인 것이다. 이문제만은 진정한 민주발전을 위하여 자유부인들이 깊이 인식해야 할 시대적 과제의 하나인 것이다.자유부인 작가 역시 여성의 지위가 급부상하는 시대적 흐름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오선영이 남편의 제자에게 돈을 받고 성적을 위조하는 것이 잘못이기는 하지만 아내의 이름으로 남편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해놓고는, 오선영이 양품점에서 일하면서 황폐해진 가정에 대한 책임을 그녀에게만 뒤집어씌우고 있다. 가정에 대한 책임의 반은 분명 남편에게도 있는데, 양품점에서 일을 하기 보다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는 모습만을 부각시키면서 집을 비우고 일을 하는 것과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겹쳐 제시하여 사회적 활동을 하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게 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이 현모양처로서의 아내로 남아있기를 구속하고 아내의 영역,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라 본다.또한 탐욕과 성적인 욕망에 가득 찬 남자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오선영과, 중산층 부인들에 대한 비판이 더욱 더 강하다. 장태연이 박은미에게 연모의 정을 품었던 것과 다른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오선영의 잘못과 비견한데 오선영의 잘못만을 부각시키고, 장태연은 바람 핀 부정한 여성을 용서하는 마음 넓은 남성으로 그려내었다. 그리고 소설 곳곳에 그려지는 장태연의 청렴함과 오선영의 속물적인 모습을 대비하여 책을 다 읽고 나면 오선영의 잘못만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는 장태연이 박은미에게 일말의 연애감정을 느끼지 않고,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만을 아름답게 그려내어 오선영을 나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소설과 영화 모두 오선영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겉으로는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이것이 오선영에게 진정한 행복일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서는 연구밖에 하지 않는 남편과, 자신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에도 반드시 그의 허락을 구해야 하며, 정한 여성의 자유가 있었을까?서양문화가 들어오고, 시대가 변하면서 전통가족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생겼고 여성들의 경제활동에의 참여 증대가 조금씩 나타났다. 이는 가족 내에서의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는 것처럼 보여졌다. 하지만 50년대 사회는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사노동을 여성의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천부적인 책임으로 부과하였다. 이렇게 주부의 역할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았던 사회가 오선영이 주부의 역할을 벗어버리고 사회로 진출하고자 했던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주부를 집에서 노는 사람,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는 사회 속에서 지금까지 주부로 살아왔던 오선영의 삶을 스스로 깎아내리기에 충분하였고,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마음이 무조건적으로 사회 속으로 뛰어들게 한 것이다. 결국 50년대 시대와 사회가 가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자유라고 생각했던 오선영을 만든 것이다.또한 사회적 진출은 곧 돈이라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관념들이 오선영을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게 하였다. 부유한 부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가진 돈도 없으면서 돈이 많은 척 허영을 부리고 목돈을 얻기 위해 계를 든다. 또 돈을 변통해 준다는 백광진의 꾐에 넘어가 이용만 당한 것 등 여성의 경제화와 사회화가 미숙한 사회에서 오선영은 이렇게 자유를 더럽히고,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결국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몰랐던 오선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되었던 자유인 ‘춤’에 빠지게 되고 남자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림받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과연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간 오선영이 진정한 자유를 가정에서 찾아서 해피엔딩이 되었을까? 모든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결국 집으로밖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자들과 연애를 즐기고 돈만을 쫓아 다녔던 사회활동이 정상적인 자유가 아니었음을 느끼고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왔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반성하기도 하지만, 가족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주부로서의 삶에 의미여성으로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에 부딪혀 희생되어 버린 비극적 결말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3. 에 나타난 50년대 사회의 정치와 섹슈얼리티6 ? 25 전쟁 이후 전쟁이 가져온 파괴와 혼란은 그리고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황망하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무방비한 상태로 우리나라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서양문화를 떠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양 문화는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동양문화를 짓누르고 피식민자의 위치로 자리매김하였다. 자유부인은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가치관의 혼돈과 전통적 여성상의 변화라는 시대상황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비인간화된 시대적 상황은 여자의 허영심을 부추겨 사기를 치는 백광진이라든지,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려는 오병헌 국회의원,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학생 원효삼, 가정을 버리고 바람이 난 부인을 모두 돌아버렸다고,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하다고 보면서 자신은 그 순간에 한글 철자법을 배우고 있는 박은미를 가장 올바른 현대여성이라 생각하고 흠모하는 마음을 품는 정태연 역시 교수로서 부정적 행태를 보이는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또한 계를 통해 목돈을 얻고 고리대금을 하는 중산층 여성들의 모임, 허영과 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를 헐뜯고 무시하는 여성들은 사회적 활동을 시작한 그들의 모습을 추악하게 그리면서 그 시대의 퇴락을 그대로 보여준다.자유부인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한복을 촌뜨기의 옷으로 치부해버리고 부귀와 유행의 상징이었던 양복에 대해 집착한다. 양품점에 일을 하는 주인공과 비싼 돈을 주고 수입품을 고급선물로 주고받는 중산층의 모습, 춤에 빠진 여성들의 사교장이었던 댄스홀 등은 미국으로부터 기형적으로 이식된 자본주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땡큐, 마이 디어.”, “아이러브유, 마담.” 등과 같은 신춘호의 대사와 미국유학에 대한 꿈 등은 그 시대 대학생들의 무분별한 서양문화에 대한 동경을 말해준다. 이것은 예부터 내려왔던 정신적, 물질적 유산들을 되살리지 못하고, 서양문화다.
    인문/어학| 2008.01.07| 5페이지| 1,500원| 조회(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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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뽕에 대한 고찰 평가A좋아요
    영화 에 대한 고찰1. 영화 에 나타난 性, 외설인가 예술인가?1980년대는 광주 대학살이 반미시위와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고, 학생들과 노동자의 반정부시위와 노동운동은 그 규모가 점차 커져 국민적 지지를 얻으면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어갔다. 이렇게 거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중고생 교복과 머리형 자율화, 야간통금 전면 해제 등 자유화 정책을 통해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어느 정도 풀어나갔다. 이와 함께 여성들의 옷차림과 화장이 대담해졌으며 여성운동이 늘어나고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는 등 시대의 흐름과 함께 영화 속 여성의 모습도 바뀌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매춘을 하거나 우연하게, 또는 남성에 의해 성을 접하게 되면서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던 이전 영화와 달리 스스로 원하는 성, 남성을 쥐락펴락하는 여성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여성상의 반영과, 전두환의 3S정책에 힘입어 한국영화의 대부분이 성인물이었던 시대에 영화 이 1986년 개봉하였다.에서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자신을 욕하는 동네 아낙네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파는 안협집이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안협집은 돈을 위해서 남성들과 관계를 맺지만, 동네 남성들이 자신을 흠모하는 것을 즐기면서 그들을 농락한다. 이 영화는 평론가들에게 ‘에로티시즘이 짙은 작품이지만 여타의 아류작품들보다 드라마의 재미나 표현기법의 매력 등에서 성공한 것이지 섹스상표만을 갖고서 관객을 흡인하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평을 받으며 13만7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영화 흥행 6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영화 에서 안협집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나오지만 이것으로 을 포르노그라피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선 포르노그라피의 정의를 살펴보면, 포르노그라피는 최대한 성적 감각을 자극하는 데 주목적이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선정적인 장면만을 모아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토리도 없고 단지 성행위만이 존재하며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만이 존재한다. 어떤 영화가 포르노그라피인가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여성이 성적인 도구, 물건, 상품으로서 인간 이하로 묘사된다. ②여성이 고통이나 모욕감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된다. ③여성은 강간을 당할 때에도 성적인 쾌락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된다. ④여성은 온몸이 묶이거나 상처를 입는 등 신체적 훼손을 당하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된다. ⑤여성은 성적으로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묘사된다 ⑥여성의 신체부위의 노출이 확대된다. ⑦여성은 본래 창녀로 묘사된다 ⑧여성은 상처받고 열등감을 느끼며 고통, 치욕감,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묘사될 때이다.) 영화 은 ④항과 ⑧항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6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안협집은 십오륙 세적, 벼 몇 섬, 저고릿감 한 벌에 자신의 몸을 파는 상품으로 취급되며, 동네 남자들의 성적인 도구로 입에 오르내린다. 뽕잎을 훔치다 들켜 뽕을 지키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상황에 처해서도 자신의 정조를 팔아서 죄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방싯 웃기까지 하며, 동네 사람들이 자신이 몸을 판다는 것을 아는 것에 개의치 하지 않는다는 점이 창녀와 같다. 또한 일상적인 성, 결혼제도 안에서 또는 사랑과 연결된 정상적인 성이 아닌, 사랑이 제거된 성행위를 그린다. 계속 기침을 해대는 병든 사내와도 대낮에 포도밭에서, 또 일을 하다가 잠시 소나기가 쏟아질 때 이루어지는 마을 이장과의 성행위는 비정상적이고 감정이 없는 행위에 불가함을 보여준다. 또한 남성적 욕망이 투영된 시선은 카메라가 남성 시선과의 동일시되면서 안협집의 몸을 훑어보거나, 삼돌이가 안협집의 집에 찰싹 붙어 그녀를 몰래 훔쳐보는 것도 그러하다. 성행위를 할 때에도 항상 남자의 요구에 따르는 장면들이 많다는 것을 보았을 때 이 영화는 포르노그라피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이런 몇몇 요소가 포함되어있기는 하지만 포르노그라피와 달리 내러티브를 갖추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에로물은 대부분 뻔한 스토리에 재미있는 부분이나 야한 장면만을 중요시 하지만, 에서는 단순히 안협집의 육체나, 성행위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 영화에서 안협집이 그러한 비윤리적인 생활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무능력한 남편을 탓하기 보다는 관객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과거 이야기에 주목하고자 했을 것이다. 배고프다고 우는 동생들을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때리는 엄마를 보며, 장녀인 안협집은 배고픈 동생들을 위해 밭에 널린 감자를 보고 훔치게 된다. 하지만 곧 감자주인에게 걸려 감자 몇 알 때문에 순결을 잃고 마는 사연이 담겨 있다. 이처럼 안협집을 타락한 여성으로 만든 것은 가난이라는 사회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가난 때문에 성에 눈을 뜨게 된 안협집 자신의 행위를 말리는 이도 없고, 오히려 이웃집 여성이 매춘 행위를 주선해주거나 누에를 키우는 할머니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은근히 비윤리적인 행위를 강요하는 등,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도덕적 불감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마을 이장에서부터 초시영감에 이르기까지 온 동네 남성들은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고, 그녀와 해보지 않은 남성들을 무시하는 등의 농담을 즐기는 등 마을 전체가 비도덕성에 빠져있다. 무능력하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남편 때문에 안협집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파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행동밖에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이러한 이야기 구성을 볼 때, 이 영화가 성적인 만족을 주기 위해서만 만들었다고 볼 수 없다. 감독의 의도와 생각이 작품에 들어 있고, 에로티시즘이라는 도구를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사용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즉 소프트포르노그라피이냐 아니냐, 외설이냐 예술이냐의 차이를 따지는 것은 사회 통념을 고려하여 규범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할 수 있지만,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와 목표의식이 잘 담겨있는가를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주관적인 시각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은 외설이 주는 행동적 쾌락이 아닌 관객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 비판의식 등을 만들어 냈기에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말할 수 있겠다.2. 영화 의 특징1) 코미디성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영화를 볼 때에 가장 선호하는 장르가 코미디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액션장르라고 하니 우리나라 영화관객들은 ‘웃음’과 ‘액션’을 즐긴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980년대 영화관객들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명절과 같은 성수기에 코미디 영화가 다수 개봉하며, ‘웃긴데 남는게 없다’는 오명을 받으면서도 코미디는 가장 오래된 영화장르로 대부분의 영화 속에 이러한 요소를 포함시키고 있다. 코미디는 당대 사회의 편견과 문제를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영화 에서는 머슴이라는 이유로, 돈으로도 안협집을 가질 수 없는 삼돌이의 상황을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머슴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당했던 그가 마을에서 힘에 제일 센 장사로 그려져 보통 마을 사람들이 비교 당하게 한 것은 그 당시 잘못된 계급 사회의 문제를 꼬집어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안협집에게는 머슴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무시당한 것은 한계를 가진다고 본다. 또한 안협집에 부인의 은가락지를 빼다 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계란을 먹고, 감자를 먹고, 심지어 코피까지 흘리는 장면에서 부도덕한 남성을 희화화하는 풍자성을 느낄 수 있었다.또한 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웃음’이 삼돌이에 의해 구현되는데, 동네마을에서 힘겨루기가 이루어졌을 때 커다란 돌덩이를 들고 걷는 삼돌이의 표정과 걸음걸이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며, 안협집에게 추근덕대다가 그녀에게 밀쳐내져 소똥에 엉덩방아를 찧는 돌발 장면에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와 같이 관객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행동을 꾸준히 유발하며, 등장인물들의 과장된 몸짓과 대사는 이 영화의 코믹성을 연출해 준다.2) 토속성영화는 일제 치하 시대 용담골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1980년대 경제개발로 인한 삭막한 도시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농촌 풍경의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만족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경제 개발의 환상 속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일제시대, 옛날을 떠올리면 상처입고 가난했던 기억만을 떠올렸을 때에, 한가로운 시골동네의 모습이나 구수한 농담을 주고 받는 마을 사람들, 푸르게 펼쳐진 산과 밭의 모습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또한 현재도 그렇지만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요소로 ‘사투리’도 영화에서 이용된다. 안협집의 조각같이 예쁜 얼굴에서 “이제 뭐여~”라는 구수한 사투리를 통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투리의 묘미와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3) 인물화에 등장하는 안협집, 삼돌이, 김삼보는 소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능동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으로 나누어진 불균형의 세계에서 안협집은 더 이상 수동적 여성으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면 돈을 위해서든지 복수를 위해서든지, 남성을 유혹하고 관계를 맺는 것에 개의치 않아 하는 적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적극성이 타락성을 지녔기 때문에 동네 부인들에게 폭행을 당하지만, 그 후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보란듯이 초시영감까지 유혹하여 마을에서 내쫓김을 면하게 된다. 안협집의 예쁜 외모나 에로틱한 행동은 남성의 지배적인 시선에 의한 설정이라기보다는 (육체적 관계에 대한 요소가 크지만) 남성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녀의 위치가 남성보다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 그녀의 재물에 대한 욕심은 성적욕망과 어우러져 그러한 것들이 사람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근대적 가치관인 재물에 대한 무한정 소유 욕구와 전통적 윤리관의 붕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8.01.07| 4페이지| 1,500원| 조회(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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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업전야`, `새벽출정`,`내딛는 첫발은`의 인물들이 겪는 내적 갈등과 해결양상
    , ,의인물들이 겪는 내적 갈등과 해결양상1. 갈등의 원인일본의 이데올로기적 상황은 1945년에서 1970년까지의 이상의 시대와 1970년부터 1995년까지의 허구의 시대로 나누는데 이상의 시대는 커다란 이야기가 그대로 기능하고 있었던 시대, ‘허구의 시대’란 커다란 이야기가 그대로 기능하고 있었던 시대를 말한다. 우리도 이 흐름에 벗어나지 않는데 이상의 시대는 모더니즘, 허구의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할 수 있으며 그간 100년이 넘게 지속되어 오던 근대성에 대한 반대적 속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국가의 목표를 표방하는 ‘커다란 이야기’를 내세워 경제성장을 이끌어 내었다.이렇게 경제성장을 앞세워 효율성과 통합성이 강조되었던 흐름은 1970년대 들어 역류를 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라짐과 해체를 경험하고 있으며 또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 지식과 보편적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주는데 목적이 있었던 데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들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는 무의미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배우는 일반교육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는 지식을 중요시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 뿐 아니라 기술 발달과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자본주의 체제만을 최고의 가치이자 진리로 여겼던 노동현장에서 왜곡된 분배 구조와 사회 모순이 발생되면서 일어났다. 열심히 일해도 성장의 과실을 챙기지 못한 채 소외된 계층이 생겨났고 억압적 문화와 권력에 억눌린 사람들이 근대성의 한계에 대해, 근대성 자체에 대한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1960~70년대 당시 굉장히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하루 10시간이 넘는 근로 시간과 적은 임금으로 일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을 대표해, 전태일 열사는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를 외치며 평화시장에서 분신을 한다. 이렇게 그 시대 곳곳에서 발생한 문제와 부정들을 일으켰고, 사회 전체의 결속이 약화되면서 노동운동이 시작된 것이다.2. 갈등의 발생과정과 갈등 해결영화, 소설 속 1970년대 노동자들에게 일어났던 윤리적 갈등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의가 없는 노동현장, 자신들의 노동을 착취해가는 부조리한 사회계급에 저항할 것인가, 사회적 질서에 순응할 것이냐에 대한 갈등일 것이다.근대적 합리성은 그것을 추구함으로 해서 자연과 환경 그리고 인간 자신의 운명을 원하는 대로, 외부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심어주게 한다. 이러한 낙관주의에 빠져 맹목적으로 합리성만을 추구하다가는 도덕성과의 관계에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기 마련이다. 무도덕적 합리성은 가시적인 이익과 발전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개인의 이익과 발전은 보장해주지 못하며 오히려 위협하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고려하자면 합리성이 보장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1970년대는 도덕성은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진보만을 표방한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노동자의 이익은 무시된 채 불합리를 겪을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반발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영화와 소설에서 부정한 노동현실로 인한 갈등을 노동운동으로 표출해 사회계급에 저항하는 인물과, 사회적 질서에 순응해버리고 그러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인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현실에 대해 저항의지를 폭발하여 적극적으로 노동운동을 벌이는 인물은 영화 의 원기와 석구, 에서 강범과 용호 의 철순 등을 들 수 있다. 자본가들의 회유와 폭력에 맞서서, 일자리를 잃고 돈을 벌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노동운동에 앞장선다. 또한 한수의 여자 친구의 경우 방세를 빼서 운동기금을 모금하고, 순옥은 학교등록금을 빼서 노동운동에 쓰는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노동운동에 미쳐서 행동하는 양상을 보인다.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족 이외의 공동체문화를 경험하지 못하였고, 자율성과 독자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성립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위의 인물들은 소수의 주동자가 되어 자본가로부터, 또 시대로부터 억압과 희생을 당하고 있다고 깨닫고, 노동자들이 품고 있는 불만과 한이라는 정서에 기반한 연대감을 이루어내고자 하였다. 그들은 유인물과 연설을 통해서 그들을 일깨우고 조합원으로 만드려고 했으나 영화와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폭력에 얻어맞고, 더 큰 폭력으로 복수하려는 결말을 맞이하여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려 했던 시도들이 어떤 분명한 해결책을 가져오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탈근대적 이데올로기가 진보와 발전이라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타자일 수밖에 없고 탈근대성이 근대성에 있어 소수라는 점에서 다수를 이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또한 그들이 범하고 있는 한계로 형식에만 치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음은 에서 ‘스노비즘’에 대한 다음 설명이다.‘스노비즘’이란 주어진 환경을 부정할 실질적인 이유가 아무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식화된 가치에 입각해’ 그것을 부정하는 행동양식이다. 스놉은 환경과 조화하지 않는다. 비록 거기에 부정의 계기가 전혀 없다고 해도 스놉은 그것을 굳이 부정하고 형식적인 대립을 만들어내어 그 대립을 즐기고 애호한다.... 할복에서는 실질적으로 죽을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도 명예나 규율이라는 형식적인 가치에 입각하여 자살이 행해진다...... 스놉들의 자연과의 대립은 이미 어떤 의미에서도 역사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계몽이나 이성과 같은 ‘커다란 이야기’가 없어지고 있는 시기에 국가는 또 다른 ‘커다란 이야기’, 즉 속이 비어있는 겉모습만을 보여주고, 자본가들은 이것을 따르고 양상해 내었다. 이러한 시대에 노동자들 역시 노동운동을 정당화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기에 급급했고, 노동자의 비참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는 회유와, 노동조합에 들지 않으면 배신자라는 강요로 노동조합을 형성해나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의식 각성에 의한 단체가 아니었으므로 와해되기 쉬웠고, 자본가계급은 이들을 경쟁체제에 놓거나 이간질하여 모임을 해산시키기 용이했을 것이다. 이것은 내용과 형식이 분리되어 형식만을 중시했던 문제를 범한 것이라 생각한다.부조리한 상황을 타파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위의 인물들과 달리 에서 정식은 아버지는 다쳐서 집안에 누워 있고, 희망도 분노도 없는 노동자의 아내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환경에 얽매어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다. 아니 안한다는 것이 맞겠다. 영화 파업전야의 한수 역시 어려운 집안환경과 미래의 꿈을 위해, 파업농성에 참여하지 않고, 동료를 밀고하고 구사대활동을 하기까지 한다. 이 둘은 자본가의 벽, 자본의 벽에 결코 넘을 수 없다고 지레 체념해버리고, 자신의 권리를 위협하는 사회의 부조리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자신의 몸을 사리는 것에 몰두한다. 그러면서도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이것은 정식과 한수에 국한된 것이 아닌,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경향에 속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왜 노동조합을 함께 하지 못하고, 자본가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노동조합이 갖고 있는 탈근대적 사상은 구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해체를 가져오며, 인간에 대해서는 이성을 부정하고 욕망을 강조한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과 그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이 있어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끌어내야 된다는 그 당시 질서체계를 거부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도 인간을 통해 구성된 것이며, 사회보다는 인간을 중시하여야 하며, 인간은 합리적 존재보다는 욕망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인간 자체에 대한 의미를 찾게 되고, 억눌러져있었던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가식을 벗어버리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간의 발전, 진보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정식과 한수 뿐 아니라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불확실한 미래, 아니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는커 퇴보할 것을 알고,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저항의 세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다.또한 적응과 타협, 순응을 미덕으로 여기며, 이와 반대되는 것은 부정한 것, 빨갱이라고 치부해버렸던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 역시 그들의 갈등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갈등의 화를 안으로 삭히고 사회질서에 의한 것이라며 이기주의를 정당화해 버렸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도 그러하다. 에 보면 전태일은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였고,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14시간 노동에 커피 한 잔 값밖에 되지 않는 일당 50원을 받고서도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며, 더욱이 그것을 시정하여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린 소녀들이 재봉틀의 소음과 먼지 속에서 하루 종일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렇게 5년 이상 일을 하면 그들은 신경성 소화불량, 만성위장병, 신경통, 폐병 등의 질병을 앓게 되고, 병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은 거리로 쫓겨나게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전태일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생전 처음으로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 '바보회'를 조직하고 '근로기준법'을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평화시장의 노동실태를 정부에 신고하지만 그들 역시 악덕 업주들의 편이라는 것을 알고 좌절하게 된다. 이처럼 노동자 외에 기득권층은 그들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다 같이 잘 살자는 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도 노동자들은 차별과 억압, 착취라는 잡초에 얽매어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살아가고 기득권층은 노동자들이 가꾸어낸 꽃을 즐겨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양지에서 꽃과 함께 살아가는 기득권층에게 음지의 잡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무시해버린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가 보장하는 자유주의 속에서 오직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그것을 유지이다.
    인문/어학| 2008.01.07| 2페이지| 1,000원| 조회(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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