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프랑스 노르만 귀족 출신의 토크빌은 9개월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썼다. 왜 미국이고, 왜 민주주의일까. 토크빌이 “미국은 단지 액자였고, 나의 그림은 민주주의였습니다.” 라고 했던 말을 되새겨보면 미국은 프랑스와의 비교를 위한 틀이었고 기본적인 사상은 민주주의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은 9개월간의 체류 후 쓴 제1권(1835년)과 5년 뒤에 출간한 제 2권(1840년)으로 책이 나뉘는데, 제 1권은 미국사회의 구체적인 제도와 습속을 소개하면서 민주주의의 성공적 사례와 조건들을 고찰하였고, 그에 반해 제 2권은 민주주의에 관해 다소 관념적으로 접근하여 체제를 분석하였다. 즉, 제 1권은 미국사회의 특성에 관심을 둔 ‘미국의’ 민주주의이며, 제 2권은 민주주의 제도 그 자체의 특징에 초점을 둔 미국의 ‘민주주의’이다.학술적인 의미에서의 비교는 비교 대상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적으로 설명하는 도구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의 비교는 존재에 대한 탐구이다. 무엇이든 어떤 대상의 존재는 다른 대상과의 비교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의 비교는 어떤 대상을 더 잘 알기 위한 도구가 된다. 토크빌이 비교한 미국의 민주주의와 프랑스의 프랑스 혁명 후의 사회는 두 가지를 모두 취하기 위함이었다. 토크빌은 왜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혁명이념과 대치되게 국가가 중앙 집중화 되었는가와 그리고 또한 왜 혁명을 통해 평등을 쟁취하고 그 대가로 자유를 지불해야 했는가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성공한 민주주의의 형태를 지닌 미국을 발견하고 관찰, 분석함으로서 프랑스의 구체적인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비교 연구를 하게 된다. 결국 비교 연구를 통해 프랑스 사회를 더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미국이 이렇게 비교를 위한 틀이었다면 토크빌이 궁극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사상은 민주주의론이다. 즉 민주주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그에 대한 민주적인 해결방안 모색이 토크빌 사상의 주를 이루고 있다. 먼저 토크빌이 말하는 민주주의를 정의하면, 그가 사용한 민주주의라는 말은 평등주의 경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귀족주의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했다. 이러한 평등주의 경향과 저항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분석하는 토크빌의 주된 개념은 조건의 평등의 진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건의 평등은 신의 섭리처럼 보편적, 지속적, 불가역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제조건의 평등이란 정치, 사회 등 모든 사회생활의 관계에 걸친 광범위한 평등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 사회의 총체적 상황을 가리킨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인 개념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제조건의 평등은 두 가지 방향으로의 결과가 가능한데, 첫째로는 평등화와 함께 자유도 보장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발전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를 저버리고서라도 평등에 집착하게 되는 민주적 전제주의로의 타락이다.민주적 전제주의를 창출하는 3가지 원천은 행정의 집중화, 다수의 횡포, 개별화 이다. 여기서 행정의 집중화는 제도적인 차원이고 다수의 횡포와 개별화는 삶의 방식에서 온다. 토크빌은 이러한 각 요인들이 결합하면서 민주적 전제주의를 부추긴다고 분석한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민주적 전제주의 3가지 요소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었는지를 지정학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 지성과 습속 비교연구를 통해 밝힘으로서 본론을 이어간다.먼저 토크빌이 말하는 미국의 지정학적인 요인은 주위에 적대적인 인접국가가 없다는 점과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점이었지만 지정학적 요인으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논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미국이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제도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그는 법률을 포함한 미국의 제도적인 국면을 조명하면서 연방 형태의 정부, 타운제도, 그리고 사법 제도를 분석하여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낙관한다. 분석의 전제는 영국계 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동질성과 자치 능력이다. 17세기 초 아메리카에 건설된 식민지들은 절대 왕정이 승리를 거두었던 유럽 대륙과는 달리 종교 정신과 자유정신, 장자 상속제의 파괴 및 소토지 소유 제도에 입각하여 개인주의적이고 평등한 민주 사회를 형성시켜 나갔다. 미국의 혁명은 바로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축적된 성숙한 자유 및 법과 질서에 대한 애호 정신에서 비롯했으며, 이후 미국 사회는 이해관계, 기원 및 언어, 비슷한 수준의 문화를 공유하는 주, 그리고 지방 자치 및 정치 훈련의 기본 단위가 되었던 자유 발생적인 타운에 기반을 둔 주권 재민 사상을 기본적인 정치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권 재민에 기초한 공화정은 미국 국가 제도 전체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공화정은 탄탄한 토대에 입각해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조망한다.이렇게 그는 미국의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 보다 지배적인 요인을 자연 환경과 지정학적 요인이 아닌 법률과 관습으로 파악하면서, 유럽 국가들도 그러한 이념을 각 사회의 조건에 적절히 적용시켜서 전제주의나 무정부 상태의 위협을 극복할 것을 촉구한다.2권에서는 민주주의적인 지성과 감정 및 관습이 미국 사회에 초래한 변화와 그 영향력을 관찰한다. 먼저 1부에서는 민주주의가 미국 지식인의 행동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며 문학과 예술, 과학과 기술에 미치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2부에서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미국인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특히 언론과 결사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보장을 위하여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3부에서는 민주주의가 풍습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여기에서 그는 사회의 평등이 사회도덕에 초래할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려한다. 평등이라는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환상 속에서 권위와 억압, 자유와 방종,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권력을 가르는 경계선이 뒤엉키는 상황은 민주주의라 할 수 없으며 혁명으로서 도덕을 순화하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 이것이 대혁명 이후 50년간 프랑스가 겪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2권 4부에서 토크빌은 민주 사회에 전제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우려하면서 대처 방안을 모색한다.미국의 민주주의가 영향을 끼치는 지적, 감정적, 풍습적인 범주들을 고려하며 결론적으로는 민주적 전제주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펼친다. 그가 생각했던 낙관론의 근거는 지방자치제도나 배심원제도와 같은 법적, 행정적인 자유로운 제도, 결사의 자유를 통한 자발적 결사들의 활성화, 교육과 종교를 통한 합리적 이익추구와 공익정신의 함양 등의 민주주의의 풍습과 관습들이었다.특히 자발적 결사체를 강조한 점은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비춰보았을 때 사회적 함의가 큰데, 그 당시 프랑스의 중앙권력은 모든 중간 권력체들을 제거해 버려서 시민사회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의 결여된 시민사회를 보았을 때 미국에 존재하는 자발적 결사체들은 유럽의 구성원들에게 시민 덕목을 부여함으로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상이었다.토크빌은 이러한 이유로 자발적 결사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다시 시민결사와 정치결사의 두 가지로 분류하여 이들의 상호지지가설을 확립하였다. 우선 정치결사는 국가권력을 직접적으로 견제하고 공공정신을 함양하며, 시민결사는 국가권력 확대를 간접적으로 견제하고 개인주의의 위험인 개인들의 고립화와 원자화, 사회적 연대감의 상실을 막는다. 그리고 이 두 결사는 상호지지를 통해 각각의 기능을 보다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민주적 전제를 막는 데 더 크게 기여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자발적 결사체를 시민사회의 핵심조직으로 보았으며, 시민사회를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다수 대중이 여론에 의한 전제정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완충기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국가와 개인 사이의 중간 영역인 자발적 결사들의 영역이라는 것이다.이렇게 시민의 덕목과 풍습과 함께 자발적 결사체를 강조하는 토크빌의 입장에서 볼 때 공화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토크빌은 프랑스의 귀족 출신으로 프랑스 혁명 후 자신을 자유주의자로 인식했던 것으로 볼 때 그는 가치상충적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는 자기 자신을 자유주의자로 인식했던 것에 덧붙여서 역사가와 정치철학자들에게 그는 자유주의자의 전형이었다. 그들은 토크빌을 국가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 시민적 자유를 선양한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 정치 사상가로 평가했다. 하지만 영미 권에서는 그를 대개의 경우 공화주의자로 분류하거나 공화주의 사상의 틀 안에서 논의하곤 한다. 이유는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분석하면서 미국에 나타난 공화주의 제도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평가한데서, 그리고 사회적 연대감과 소속감, 시민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촉진할 수 있는 자발적 결사체를 강조한데서 자유주의자에서 공화주의자로 회기 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토크빌은 가치상충적인 자유주의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프랑스와 미국, 왕정과 공화정 사이에서 이렇게 새로운 유형의 자유주의자인 토크빌의 사상과 미국의 공화주의 분석은 오늘날 미국 사회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첫째, 현대 미국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과 시민사회 활성화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현대 미국 사회는 행정 권력의 비대화, 정치참여의 과소화, 개인주의의 폐해 등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갖는 중요성을 시사하며 특히 정치적 무관심과 참여 저조의 현상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으로의 주권재민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는 대중사회의 위험성과 시민결사의 중요성이다. 대중들은 자본주의의 논리에 입각해 사적이익 추구와 이로 인한 개인주의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맞서서 민주주의의 시민덕목을 부여하는 자발적 결사체를 강조함으로서 19세기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 현대적 사회 비교분석을 하는 논의의 시발점을 제공해준다.
2010-1 탈경계시대의 비교문학 사회학과 0520539 박세근카프카 『변신』 비평문 - 영화 와의 비교어느 날 아침, 잠자던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카프카『변신』 中“And now, like Napoleon, I will divide and conquer.“척 러셀의 영화 짐 캐리의 대사 中문학을 포함한 많은 예술 장르에서 변신은 끝없는 화두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끝없는 부족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꿈꾸고 어김없이 변신을 갈망한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슈퍼맨 등 헐리우드 액션 영화들의 소재들이 그렇고, 그 중에 앞서 인용한 영화 마스크가 그렇다. 평범한 은행 샐러리맨인 짐 캐리는 우연히 고대 유물인 마스크를 발견한다. 마스크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짐 캐리가 얼굴에 마스크를 쓰면 초인적인 힘을 가진 불사신으로 변신한다.카프카의 『변신』에서도 짐 캐리와 비슷한 입장인 평범한 샐러리맨인 그레고르가 등장한다. 그는 어느 날 잠에서 깨자 거대한 갈색 딱정벌레로 변신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후로 직장에서 버려지고, 부모에게 버려지고, 자신을 그나마 위해주던 누이동생에게까지도 버림받고 마침내 죽게 된다. 카프카의 『변신』은 비극적이다. 현대인이 언젠가 혹시 처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을 비극적으로 형상화를 하고 있다. 게다가 육체적인 죽음 이외에도 사회생활로부터의 죽음, 가정으로부터의 죽음 등 참으로 여러 번 죽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같은 변신을 소재로 잡고 있지만 초인으로 변신하는 영화 와 너무도 대조된다.쓸모없는 벌레로의 변신과 쓸모 있는 초인으로의 변신이 이렇게도 다를까. 영화 의 짐 캐리는 변신 후에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도 차지하게 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피해만 끼치는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는 여러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자신이 아끼던 누이동생에게까지도 버려진다.마스크나 벌레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사람과는 다른 모습의 괴물로 변신했다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차이는 유용성의 유무였다. 경제적 합리성의 논리에 따라 현대 사회에서 유용성은 가치 판단의 커다란 기준이 되고 있다. 과연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는 기준은 삶과 죽음까지도 구분해 버린다. 현실은 냉혹하다. 카프카는 차갑게도 냉정한 현실은 사회 뿐만이 아니라 가정까지도 지배하는 기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쓸모 있는 사람, 쓸 만한 인재가 되기 위해 경쟁적으로 사회에 참여한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파르메니데스의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구분, 그리고 영겁회기를 이야기하는 니체사상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시작한다. 니체의 영겁회기는 우주에서 이미 일어난 모든 사건과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 그리고 앞으로도 일어날 모든 사건은 완전히 똑같은 사건들로서 완전히 똑같은 순서에 따라 이미 일어났으며 앞으로도 무한히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사상이다. 이러한 영원한 반복에 대한 가능성은 인간 존재에게 무거운 부담을 짐지운다. 영겁회기 속에서 인간 존재는 완벽한 인간상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영원히 순환하는 반복에서는 실수란 없다. 미시적인 의미의 인간 존재 뿐만 아니라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의미에서도 완벽한 역사상에 도달한다. 이렇게 영겁회기는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그리고 역사의 이데아가 존재한다면 영겁회기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쿤데라가 언급한 니체의 영겁회기 사상은 인간과 역사에서의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니체는 역사를 구성하는 사건 뿐만 아니라 자연의 주기의 무한한 반복을 강조하는 종교인 디오니소스 사상과 연결시킨다.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대립을 통해서 영원불변적인 디오니소스 사상을 영겁회기와 관련시킨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창조의 일면에 파괴가 따르는 자기 모순적인 생성을 의미하며 영원히 순환, 반복하는 세계를 디오니소스적 세계라 한다. 반면에 아폴론적 세계는 가상의 세계로서 고통과 공포로 가득차 있는 세계 속에서 인간 존재는 개별화의 원리를 믿고 의지하는 세계를 일컫는다.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는 이러한 개별화의 원리가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현실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세계를 뜻한다. 니체는 이러한 디오니소스적인 세계관과 자연관에서 영겁회기를 이야기한다.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세계 속에서 자연은 영원히 순환한다. 일출과 일몰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반복되고 벚꽃은 매년 피었다 진다. 오직 인간존재만이 반복성 없이 일회적인 삶을 산다.이러한 삶의 비반복성은 인간에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안겨준다. 잘못을 수정하고 싶어도, 역사를 되돌리고 싶어도 그것은 불가능할 뿐이다. 영화 에서는 주인공 이안이 어제의 하루를 반복되는 현실에 마주한다. 어제 애인인 사만다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녀와 보낼 마지막 하루에 자신의 모든 사랑을 담은 최고의 하루를 선물하려한다. 결론적으로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가슴 벅찬 하루를 함께 보내는 데에서 슬픔과 함께 만족을 되찾는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도 일회적인 인간존재의 본질, 그 가벼움 속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소망을 영화화한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희망사항이고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일뿐이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주인공의 말을 빌려 인생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최상의 형식을 철저하게 시험하고 새롭게 발견해야 하는 위대한 실험실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실험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실험에 실패한다고 해서 가설 수정과 조작화 과정을 되돌려서 다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쿤데라는 이렇게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일회성과 영원성,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의 이원대립적인 요소들, 그리고 그 요소들의 충돌과 갈등을 작품 전체를 통해 이야기한다. 쿤데라의 이원 대립적 요소들은 레비스트로스와의 연관 속에서 다시금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문화에서 공통된 심층구조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공통된 심층구조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공통된 보편적 사고 구조가 인간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저서 『슬픈 열대』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그러한 보편적인 사고 구조는 이분법적인 대립 구조를 발견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원시 종교 분석에서부터 시작 된 성과 속의 구분을 확장시켰다. 성과 속의 구분에서부터 시작된 선과 악, 빛과 어둠 등과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은, 쿤데라에게는 대표적으로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대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이원대립적인 요소들은 앞서 언급한 철학적 테마들 이외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인 토마스와 테레사, 그리고 이들과 대조를 이루는 사비나와 프란츠의 인물상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강하고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토마스와 그의 연인인 테레사의 약한 성격과 낭만적인 모습. 그리고 사비나와 프란츠의 상이한 유년 시절과 그로부터 성장한 배경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성격들의 대조 항을 따져보면 이원대립적인 심층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인물상이 전형성을 띄는 인물이라고 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며 영향을 주고받아 서로 변화해가는 입체적인 인물상으로서 파악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토마스의 변화를 두드러지게 찾을 수 있는데 방탕한 사랑의 방식이 낭만적인 사랑으로 변모하고, 인정받는 의사 생활을 버리고 테레사와 함께 농장에 가서 농촌생활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적인 변주로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토마스의 모든 삶을, 아니 극중 모든 인물들의 삶이 그렇게 진행된 것을 토마스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숙명론적인 말이다. 우리는 사실상의 짜인 각본대로, 우연의 힘을 빌린 운명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운명의 무거움, 필연성은 가치를 지니고 우리의 사랑이 가질 수 있는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우리 존재의 가벼움을 이겨내는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에밀 뒤르켐 자살론1. 자살론 의 내용Ⅰ서론1)『자살론』의 목적뒤르켐은 사회적 사실의 존재에 집중한다. 『자살론』에서는 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사실인 자살을 주제로 삼아 개인적 사실도 사회적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면서 그 과정을 정확한 객관적 자료인 통계를 토대로 설명해 냄으로써 사회학을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2) 접근 방법뒤르켐의 방법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자살률을 다양한 하위집단들과 비교하는 것과 자살률을 그와 관련된 다른 요소들의 비율과 비교하여 여러 대안적 설명들을 하나씩 기각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자살에 대한 하나의 설명으로, 자살은 정신병에 기인한다는 설명을 제시한다.Ⅱ본론1부) 비사회적 요인자살에 대한 기존의 생각들을 정리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자살의 원인으로 생각되던 모든 이론들에서 문제점을 지적해 나가며 기존의 상식에 도전한다. 예를 들어 자살은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뒤르켐은 정신병으로 자살을 규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모순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자살에는 자발적인 죽음이 빈번하기 때문에 정신병의 일종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두 번째 자살에 대한 원인인 인종과 유전에 대해서도 뒤르켐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살에 영향을 주는 원인으로 우주적인 요인을 드는 주장에 대해서 뒤르켐은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반박한다.2부) 사회적 원인과 사회적 유형기본 성격개별적 형태2차 변화기본적 유형이기적 자살무관심?자기만족의 나태한 우울증?회의적 환멸과 냉정이타적 자살열정과의지력?평온한 의무감?신비한 열정?평화로운 용기아노미성 자살흥분분노?평범한 생활에 대한 심한 비난?특정한 개인에 대한 비난(타살-자살)혼합유형이기적-아노미성 자살?선동과 무관심, 행동과 공상의 혼합아노미성-이타적 자살?격앙된 흥분이기적-이타적 자살?도덕적 용기를 내포한 우울증뒤르켐은 개인적인 동기와 이념을 무시하고 자살의 차이가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환경(종교적 신앙, 가정, 정치 사회, 직업적 그룹 등)에 주목한다. 자살론은 그가 사실을 연구하기보다 자살의 경향을 살펴봤다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자살에 대하여 4가지 구분 - 이기적(egoistic)자살, 이타적(altrustic)자살, 아노미적(anomic)자살, 숙명적(fatalistic)자살로 구분을 한다. 구분의 이유는, 사회가 얼마나 통합되어 있는지와 사회적 규제가 강한지 약한지에 따라 경향이 달라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 이기적 자살자살은 종교사회?가족사회?정치사회의 통합정도에 반비례한다. 개인이 속한 집단이 약화될수록, 개인이 집단에 덜 의존하게 될수록 개인은 그 자신에게만 더 의존하게 되며, 사적인 이익 이외의 어떠한 행동 규칙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개인적인 자아가 사회적인 자아를 누르고 오히려 사회적 통념의 자아를 희생시키는 상황이 일어나고 지나친 개의주의로 자살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를 이기적 자살이라고 한다. 개인은 그와 사회를 연결하는 유대가 끊어짐으로써 그와 삶을 맺는 유대가 이완된다.2) 이타적 자살집단과 개인의 통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집단을 위해 자살을 감행하는 것으로 집단의 선(good)을 위한 자살이다. 이기적인 자살의 형태가 지나친 개체화로 인한 것이라면, 이타적인 자살의 형태는 지나치게 부족한 개체화로 인한 것이다.a) 의무적인(obligatory)이타적 자살 : 특정한 상황에서 개인이 자살할 의무를 지는 경우. ex) 일제시대 항일 투쟁을 했던 애국지사b) 임의적인(optional)이타적 자살 : 개인이 굳이 자살할 의무는 없지만 특정 조건에서 자살하는 것이 관례인 경우의 자살이다. ex) 일본인들의 할복c) 격정적인(acute)이타적 자살 : 개인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서도 생명 포기 그 자체가 찬미를 받을 것으로 여기고 단지 희생의 환희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이다. ex)순교3) 아노미성 자살아노미성 자살은 전통적인 권위가 그 권위를 잃게 되는 순간에, 보상이 크면 클수록, 욕망은 통제되지 못하고 견디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규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욕망이 규제를 받지 못하므로 일종의 무규율 상태, 즉 아노미(anomy)가 고조된다. 이러한 인간의 활동이 충분히 규제되지 못함으로써 받게 되는 고통에 기인하고 있다. 그 발생 근원에 따라 아노미성 자살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가치관이나 사회 규범이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보다 자주 일어난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나 경제에 큰 변동이 생겼다던가 또한 자신의 지위가 갑자기 크게 변동한다던가 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불황?호황의 시기에 아노미성 자살이 많았다.4) 숙명적 자살아노미성 자살과 상반된 개념이 숙명적 자살이다. 지나친 규제의 결과 미래가 냉혹하게 봉쇄되고, 억압적인 규율에 의해 열정이 심하게 질식된 사람들의 자살로 이는 결국 사회의 엄격한 체제로 인한 자유를 선택하기 위한 자살로 지식인들의 자살과 연관되어 등장하고 있다.3부) 사회현상으로서의 자살의 일반적 성격자살에 대한 것을 현실 사회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이다. 자살이 기본적으로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에 자살과 다른 사회현상과의 관계를 논의해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자살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자살에 대한 분석의 성과를 뒤르켐은 그 실천적 귀결로 끌고 나간다. 그는 “문명에 대한 배상금”으로 여기는 자살 경향을 제한하면서도 문명의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해결책을 추구한다. 그는 여기서 형벌의 강화나 정치 사회와 강화 그리고 종교 사회의 강화, 가족의 강화와 같은 기존의 방법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가를 검토한다. 형벌의 강화라는 처방은 자살자라는 사실만으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사회적인 여론과 걸맞지 않은 해결책이기 때문에 기각된다. 정치 사회의 경우, “현대 국가는 개인에게 충분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기에는 개인들과 너무 큰 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강화된다고 해도 자살을 방지할 수 없으므로 기각된다. 종교 사회의 강화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는데, “종교는 이제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할 만큼 충분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 역시 집합적 존재로서 의미를 상실해 가기 때문에 대안이 되지 못한다.뒤르켐의 대안은 직업집단이다. 직업집단은 서로 결합된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배경과 문화와 직업의 동일성이 공동생활의 형성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직업 집단은 어디에나 퍼져 있어 지속적으로 개인과 접촉하며, 인간을 집합적 규율과 집합적 이상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뒤르켐은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 직업집단이 지닌 직업 집단이 내실 있는 연대의 창출지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 직업 집단의 변형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직업 집단이 사적인 집단에 머물기보다는 우리의 공적 생활의 한 기관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 자살론 비판뒤르켐은 자살론 을 쓰면서 가장 먼저 그 당시의 자살률에 대한 비교에서 유럽의 시대적 상황만을 중요함 관심으로 하였기때문에 다른 상황을 간과하였다. 뒤르겜의 『자살론』은 그가 처한 혼란기의 상황에서 개체와 구조라는 상관관계를 사회질서의 배열 원리라는 측면에서 그는 구조를 선택했다. 개체로서의 원리를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이렇게 그가 자살의 요인을 정신 질환 및 모방과 같은 비사회적 요인이 아닌 사회적 요인에서 자살의 원인을 찾은 그의 이론을 보면 그 당시 뒤르켐이 살고 있던 시대의 사상적 흐름 및 그의 주관적인 의미의 사상적 동기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인 개인의 자살과 그 원인들을 따져볼 때 정신 질환이라든가 모방과 같은 경우가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모방과 같은 경우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베르테르 효과는 동조자살 또는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서한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유래하였다.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베르테르는 여자 주인공 로테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당시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젊은 세대의 자살이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발간이 중단되는 일까지 생겼다. 베르테르효과는 이처럼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가 이름 붙였다. 그는 20년 동안 자살을 연구하면서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이런 연구 결과를 이끌어 냈다. 과연, 뒤르켐은 이런 자살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결국, 그는 기능주의적 분석의 태도에만 주목했다는 말이 된다. 이는 자살에 대한 요인을 비사회적인 요인보다는 사회적 요인에 그 무게 중심을 두었다는 데에 있다. 개체인 개인이 구조인 사회 그 본질적인 요소로 물상화하여 개인의 인간성을 간과한 것이다. 일종의 소외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상 『날개』 비평문 - 당신의 날개는 건강하십니까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諸行)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 둔 모양이오. 굿바이.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이상『날개』 中그 옛날의 아버지여, 그 옛날의 장인(匠人)이여,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소서.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中작가 이상(李箱)의 이상(理想)은 결코 펼치지 못했던 날개였을까. 『날개』가 이상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이자 예술가로서의 희망과 야심을 잃은 절망을 소설의 마지막부분에서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理想)에 향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날개. 그리고 현실을 비로소 넘어설 수 있는 수단. 날개의 상징적인 의미는 이토록 명확하다.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장인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 몰래 미궁을 빠져나가기 위해 날개를 만들었다. 날개는 미궁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그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는 예술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정과 종교와 국가를 초월하여 자기유배를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이달로스에게, 예술을 위한 영감을 고취해 달라는 도움을 요청한다.다이달로스의 날개, 디덜러스의 날개, 그리고 이상의 날개. 모두가 이상을 향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상징한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달랐다. 물론 디덜러스는 향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미궁을 빠져나갔지만 아들을 잃었고, 이상은 죽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상징한다. 계속해서 굿바이를 외치는 『날개』 앞 부분을 보면 예상할 수 있다.이상은 왜 이렇게도 날개를 펴지 못하고 현실과 굿바이를 했을까. 디덜러스처럼 현실을 초월하고 자신이 원하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기위해 고대의 장인,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상과 다르지 않다. 모두들 날개가 돋았던 겨드랑이를 긁으며 현실을 부정할 수 밖에 없다. 날카롭게도 비정하고 냉정한 현실은 우리의 이상을 가로막는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디덜러스처럼 예술적으로 비상하고 싶어도 날개는 쉬이 돋아나질 못한다. 단지 소설 『날개』의 주인공처럼 방 한켠에서 햇볕에 불장난이나 하고, 무의미한 외출만 반복할 뿐이다.돈이 모든 일의 목적이 되어버린 천민적 황금자본주의, 지독한 경쟁체제들. 이상이 살았던 식민지시대까지는 아니여도 이렇게 우리를 압박하는 현실 속에서는 우리는 무슨 목적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들이 혹시 기성품처럼 맞추어져 있는 것들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물론 그렇게 자신의 이상을 설정하고 날개를 펼친다 하더라도 문제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소설 『날개』의 주인공처럼 소통없는 이상은 죽음에 귀결될 뿐이다. 여기서 다시 디덜러스에게서 해답을 구해보면, 그는 가정과의 소통에서 가정을 초월했고 종교인들과의 소통에서 종교를 초월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언급한 다이달로스의 도움까지도 사실은 소통에서 비롯된 예술적 영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소설 『날개』의 주인공은 가정에서 자신의 부인과도 소통하지 못했다. 그리고 외출을 나가서도 길거리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영화 『도쿄』의 세 단편 중 봉준화 감독의 단편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 히키코모리가 한 사람을 ‘만남’으로서 세상을 다시 살아가게 되는 모습을 그린다. 소설 『날개』의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소통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