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기 소 개 서성장과정및학교생활[왕따 덕분에 배웠습니다.]중학교 2학년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학급임원을 해왔고, 언제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제게 그 일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저에게 무시당했다고 느낀 친구가 주도한 따돌림은 다행히 1주일도 안돼 마무리 됐고, 저는 그 일을 계기로 인간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보다 더 배려하고 존중할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길렀고, 사람을 대할 때 차별 없이, 공평하게 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어디서든 조화로운 어울림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성 격 의장 단 점및 특 기[저는 2PM입니다.]저는 Practice Mode와 Play Mode 두 가지 기능을 한번에 수행하는 2PM입니다. 매사에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세로 노력하는 것은 물론 주어진 일을 적극 즐기면서 해나갑니다. 이런 자세 때문에 저는 신속하고 똑부러지게 일처리를 한다는 평을 듣습니다. 과외 아르바이트, 리서치 아르바이트를 하며 저의 이런 장점을 더욱 갈고 닦을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저의 단점은 한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에 소홀해지고, 쉽게 잊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고치기 위해 ‘포스트잇’과 체크리스트를 필수용품으로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고 체크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습니다.입사지원동 기[중소기업지원, 중진공이 최선입니다. 확실합니다.]무역협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중소기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기업들이 중소기업지원정책에 힘입어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며, 훌륭한 수출입 실적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반대로 또 많은 기업들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대출이나 무역기금 융자 등을 문의해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실감했고, 그들을 적극 돕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30여년간 ‘셰르파’ 정신으로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해온 중진공의 가치와 경험을 높이 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소기업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수많은 강소(强小)기업 신화를 써나가는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꼭 함께 하고 싶습니다.장 래 의포 부[고귀한 중진공인으로 거듭나겠습니다.]저는 주어진 업무처리는 기본으로 수행하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지원정책과 서비스 알리미’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런 게 있는 줄 몰라서 이용 못했다’라는 말이 절대로 나오지 않게끔 중소기업 측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서비스를 안내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팜플렛, 카달로그, 신문 기사 등을 발송하고, 메일과 문자, SNS 등을 통해 서비스와 제도를 널리 알려 많이 이용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데스크에 앉아서 서비스 이용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서비스 이용자를 찾아 나서겠다는 것입니다. 중소기업 측에게 고마우면서 귀찮은 그런 고귀한 존재로 거듭나게끔 부지런히 노력하겠습니다.
1. 자신에 대해 기술해보시오.[다리]초중고교 12년 내내 학급임원을 했던 저는 언제부턴가 친구들에게 ‘다리(달이)’라고 불렸습니다. 보름달처럼 둥근 얼굴을 가지고 있던 게 물론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학급 임원 을 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의 교량 역할을 잘 해낸 점이 그런 별명을 얻는데 크게 한몫했습니다. 저는 친구들 간의 불화나 오해 등을 해결하는데 앞장섰고, 선생님과 학우들의 메신저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또한 저를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고, 교류하는 데에도 재미와 보람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시절 저는 여행 동호회를 직접 만들었고, 시사 주간 잡지를 보는 스터디 모임을 조직 했습니다. 그런 모임을 통해 제 자신의 관계망을 확장시키는 한편, 다양한 사람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자처하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항상 사람 속에 배움이 있고, 감동이 있고, 삶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다리가 되어주며 살고 싶습니다.2. 학내외 활동 및 사회경험(인턴 등)[저예산 로드무비, 길 위에서 배우다]대학시절 ‘로드무비’ 라는 여행 동호회를 만들었던 저는 동갑내기의 친구들과 방학마다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했습니다. 여행 일정을 짜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산 책정과 집행의 중요성을 절감했으며,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여행을 하기 위해 항상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과정에선 지치고 힘들 때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법과 최대한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저비용, 고효율’을 지향하며 저예산 여행을 하곤 했는데, 그런 여정 속에서 낯선 사람들의 도움을 얻으면서 ‘인간미’와 ‘정’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잦은 여행경험을 통해 제 자신의 추진력과 한계를 시험하고, 도전정신과 문제 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3. 생애 힘들었던 경험/실패 및 극복사례[“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내게 최고의 사건이었다”]스티븐 잡스의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대학 1학년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짤리게 된 것은 내게 최고의 기회였다.” 라고 바꾸어 말하고자 합니다. 동아리와 과 행사 등으로 인해 바빴던 저는 종종 과외 스케줄을 미루곤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해고 통보를 받게 됐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다시 과외를 하게 된 저는 철저히 학생 위주로 스케줄을 짰고, 시간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또한 수업준비는 물론 퀴즈와 보충자료도 준비했고,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렇게 성실함과 배려의 자세로 과외 지도에 임한 결과 학생의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학부모님들의 소개로 끊임없이 과외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3년간의 학비를 충당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성실함과 확고한 시간관념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너무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소개서자신의 경험(성장과정, 학교생활, 연수, 여행 등) * [500 ~ 1000자][성실함을 배운 성장과정]양계장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은 하루도 거를 수 없는 닭 돌보는 일을 늘 성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며 이는 저에게 맡은 일을 할 때에 성실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2남 2녀 중 셋째인 저는 친구들에 비해 다소 많은 형제자매를 가졌고, 이는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았습니다. 양계장 일에 바쁘신 부모님을 돕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모든 남매가 주말이면 양계농장을 찾아가 다 같이 즐겁게 일을 했었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부모님의 일이 아니더라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먼저 다가가 즐겁게 도와주는 방법과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또한, 4남매로 인해 늘 북적거리는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단절과 침묵이 아닌 대화와 소통을 늘 이어갈 수 있었으며, 이러한 가족의 분위기에서 성장 과정을 보낸 저는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먼저다가가 인정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우물에서 개구리를 빼준 동아리활동]저는 학창시절 여러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종류의 경험을 하며 세상에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연맹에서의 활동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정기적인 노인복지회관에서의 봉사활동은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돌봐주고 마음 쓰며 심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유스그린이라는 환경 동아리활동을 통해 우리 자연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자연을 위해 몸으로 노력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대학교 시절 시사토론동아리 활동은 사회의 문제들을 여러 측면에서 생각하고 토론하며 생각의 장을 넓혔으며, 그 밖에 축제기간 주막활동, 철인 칠종경기 참여, 지리산 등반 등 여러 활동하며 조직원들과 협력하며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이러한 동아리 활동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조직 내에서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준비된 사회인이 되기에 좋은 경험이자 저의 자산이 되었습니다.자신의 특징(성격상 장단점, 생활신조, 특기 등) * [500 ~ 1000자][외유내강]이는 저를 아주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입니다.상대방과 조화를 이루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는 조금 배려하고 참는 경우가 있더라도 주위 사람과의 필요치 않은 언쟁을 삼가고 기쁨과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노력의 첫째는 먼저 웃는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웃고 상대방에게 배려하고 편안함을 주는 저의 모습에 정말 순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반면, 지각하지 않기, 상대방에게 피해 주지 않기와 같은 저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고, 쉽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으며 주어진 일을 끈기있게 다 해나가는 저의 정신력은 저의 강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취미 및 특기]최근 들어 열정적으로 빠져 있는 취미생활은 수영입니다. 6살 때 계곡에서 물살에 휩쓸려 죽을 뻔한 경험이 있는 저에게 물은 매우 무서운 존재였지만 한편으로는 물에서 자유로이 수영하고 놀고 싶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물의 두려움으로 미루고만 있었던 수영을 인턴 기간이 끝나고 공백기가 생기자 조금씩 게을러지는 저 자신을 바로잡고자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움에 물에 뜨기 위해 힘을 빼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지금은 자유형과 배영을 할 수 있는 단계가 되어 물에서 자유로이 놀 수 있는 바람도 이루고 물의 두려움도 극복하며 수영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저의 특기는 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입니다. 평소 어깨와 목의 뻐근함을 자주 느낀 저는 아픈 부위를 기억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 부위를 마사지 해주었더니 저의 굵은 손에서 나오는 힘과 더불어 효과 좋은 마사지가 되었습니다. 마사지하고 나면 힘들긴 하지만 남에게 도움이 되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마사지는 저의 자랑스러운 특기입니다.
무정, 이광수▷ 줄거리이형식은 김장로의 딸 선형의 가정교사가 되기 위해 가다가 친구이자 기자인 신우선을 만난다. 신우선과 헤어져 김장로 집에서 선형을 가르치고 하숙집에 돌아 와 자신을 찾아온 어렸을 때 헤어진 과거 은사의 딸인 영채를 만나 고생했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영채는 형식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몰라 자신의 기생 처지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다급히 떠난다. 형식은 영채가 떠난 뒤로 영채의 아름다움에 취한 자신과 기생인 것 같아 거부하는 자신과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영채와 선형을 비교해 본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잘 따르는 교사인 형식은 학생들이 실력도 없고 독선적이며 화류계에 다니는 배학감에 반발하여 동맹휴학을 하겠다는 듣고 학교에 가 배명식에게 충고했으나 서로 어긋나게 되고 교사들과 이야기하다, 계월향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영채인 듯싶어 배학감의 뒤를 밟았던 학생의 인도로 월향의 집을 찾아간다.월향이 손님과 함께 청량리로 갔다는 말을 듣고 예감이 이상하여 월향을 찾아가다 신우선을 만나게 된다. 신우선은 형식이 다니는 경성학교 교주 아들 김현식과 배명식이 월행을 범하려는 것을 알고 둘의 계교를 깨뜨리든가 그것이 안되면 돈이라도 뜯을 셈치고 종로 경찰서에서 형사를 데리러 나오던 것이었다. 형식의 이야기를 듣고 월향이 형식에게 어릴 때부터 마음을 받쳤다는 것을 알고 청량사로 함께 갔다. 그러나 월향은 형사와 함께 도착 했을때 이미 정조를 잃고 말았다. 형식은 월향이 영채인 것을 확인하고 가련한 월향을 집으로 데려다 준다. 월향은 아버지를 도울 목적으로 어려서 기생이 되었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던 아버지는 기생이 됐다는 말을 듣고 금식하다가 돌아가시고 두 오빠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죽게 되었다.월향은 정조를 지키며 자기에 맞는 위인을 기다리며 기생으로 살다가 그런 위인을 보았으나 기생으로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대동강 물에 빠져 죽은 월화의 영향을 받았고 형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계속 결심해 왔다. 월향은 자신의 순결을 잃어 버렸기 때록 수면제를 먹인다. 그 약이 감기약 아스피린인 줄 알고 지내던 '나'는 어느 날 그것이 수면제 '아달린'이라는 것을 알고 산으로 올라가 아내를 연구한다.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를 수면제, 그것을 한꺼번에 여섯 알이나 먹고 일주야를 자고 깨어나서, 아내에 대한 의혹을 미안해한다. 나'는 아내에게 사죄하러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그만 아내의 매음(賣淫)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도망쳐 나온 '나'는 거리를 쏘다니던 끝에 미시꼬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스물여섯 해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때 정오(正午)의 사이렌이 울고, '나'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고 외치고 싶어진다.‘날개’는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개인의 암울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나는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는 구절에서 화자가 고립되고 소외된 개인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공동체적 의식이 소멸된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외와 고립이라는 현상이 심화되면 자아에 몰두하게 되어, 심할 경우에는 정신분열의 증상까지 나타나게 된다. ‘날개’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극단적인 심리상태에 놓인 인물이다. 그는 누구와도 어떤 관계도 맺지 않으며, 누구에게라도 불릴 이름조차 작품 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를 외부와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끈은 아내이다. 아내가 매개 역할을 할 때에만 ‘나’는 세상의 일반적 가치에 관심을 가진다. 아내에게 주기 위한 것이 아닐 때, 그에게는 은화도 반짝거리는 장난감 이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와 아내의 관계라는 것도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이다. 주인공은 아내의 매춘에 의해 먹고 사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그는 아내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욕망조차 모두 아내를 향한 것일 뿐이다. 그러던 그가 미스꼬시 옥상에서 문득 날고 싶어진다. 이상과 욕망을 되찾고 자신의 날개로 ‘한번만 더’ 날아보고자 하고 있고, 북한은 혁명은 간데 없고 혁명의 자취만 있는 곳이었다. 즉, 이데올로기와 허위에 가득찬 곳이었다. 공개적인 광장만 있을 뿐, 개성적인 삶은 없는 곳이었다. 북한에서 그는 아버지의 힘으로 노동신문의 기자가 되지만 그가 작성한 기사가 당 간부들에게 핀잔을 듣자, 기자 생활을 버리고 노동판에 뛰어들어 작업한다. 그러던 중 실족으로 다리를 다치게 되고, 위문 온 무용수 은혜와 만나 새로운 사랑을 누리게 된다. 북한 사회에서 못 느끼는 삶에 대한 애착을 은혜를 통해 느끼려는 듯 명준은 은혜에게 매우 집착한다. 은혜의 모스크바 유학으로 명준은 은혜와 떨어지게 된다.한국 전쟁이 발생하고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가 되어 서울로 남하한 명준은 그곳에서 친구인 태식과 그의 아내가 된 옛 여인 윤애를 만나게 된다. 점령군 장교로서 그는 간첩 혐의로 잡혀온 태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윤애를 겁탈하려고 하나 실패하고, 둘을 탈출시킨다. 그리고는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 배치받아 가게 된다. 거기서 명준은 뜻밖에 간호병으로 자원 참전한 은혜를 다시 만나 동굴 속에서 재회의 기쁨을 누린다. 재회 속에 명준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명준에게 말하고 헤어져 가던 중 그녀는 전사하고 만다.결국 밀리는 전투 속에서 포로가 된 명준은 포로교환이 있을 때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그가 본 두 사회는 모두 환멸만이 있으며, 보람있는 삶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그는 인도로 가는 배 위에서 갈매기를 은혜와 딸의 환영으로 보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감상예전부터 이 소설의 제목은 줄곧 들어 왔지만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제목에서도 그렇지만 정말 이해하기 힘들고 철학적인 소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소설의 줄거리를 잠깐 소개 하자면 이렇다.주인공 이명준은 서울에서 그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월북하자 아버지의 친구인 변선생과 더불어 사는 인물이다. 그는 삶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살다가 아버지가 남로원당이라는 이유로 경찰에게 끌려가대 공원이라는 이 모임을 빌미로 너는 불쌍한 아이들을 팔았다고. 또 회사 대표였던 경애의 할아버지가 공원들에게 돌려 주어야 할 것을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으며, 경애 또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고통받는 걸 몰랐다는 것조차 죄라고 말한다. 경애는 윤호와 함께 있고 싶었던 것도 죄인가로 되묻고 집으로 돌아간다. 경애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치러졌다. 윤호는 이 해 자신이 가져야 할 사랑. 존경. 자유···와 같은 과제를 떠올려 보았다. / 한국문학 1977. 6월.⑺ 기계 도시 : 윤호는 삼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가 보았던 난쟁이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를 잊지 못한다. 윤호와 사귀는 은희도 윤호가 난쟁이 가족이 일하고 있는 은강을 큰 부피로 떠올리고 있다. 은강은 서울에서 가까운 서해 반도부에 위치한 곳으로 금속, 도자기, 화학, 유지, 조선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면적은 백구십육 제곱킬로미터에 인구는 팔십일만 명이다. 공장은 북쪽 지대에 있고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불기 때문에 매연이 이동을 했었는데 어느 날 공장 지대 상공에 머물던 매연이 주거지를 향해 불었다. 사람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양의 폐수는 바다로 흘러갔다. 은강에서 일하는 대다수 공원들은 빈곤 때문에 일자리를 얻었으며, 인간적인 대우를 이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고, 앞으로 이 곳 생활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난쟁이의 큰아들 영수는 윤호에게 은강그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방시키기 위해 은강그룹의 경영주를 죽이겠다고 말한다. 윤호의 옆집에 사는 은강그룹의 경영주를 죽일 수 있도록 자신을 윤호의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한다. 윤호는 난쟁이의 큰아들 혼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위해 도울 생각을 해 본다. / 대학신문 1977. 6월⑻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 영희는 나(영수)에게 독일에 있다는 릴리푸트읍 얘기를 한다. 억압, 공포, 불평등이 없는 난쟁이 마을 얘기였다. 벽돌 공장 굴뚝 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찬가지다. 우리가 무엇을 요구 할 수도 없고, 무엇을 요구 받지도 못한다면 그것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신이라지만, 차라리 야훼처럼 인간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실을 하는 것이-사실은 그 전해지는 행실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리저리 살을 붙여서 만든 소설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에겐 더 필요하다. 그것은 아마, 신이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지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더 절실히 다가가는 것이다.장마, 윤흥길- 줄거리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밤, 외할머니는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통지를 받는다. 이후부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향해 저주를 뱉는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친할머니가 이 소리를 듣고 노발대발한다. 그것은 곧 빨치산에 나가 있는 자기 아들더러 죽으라는 저주와 같기 때문이다.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고 있는 때라서 가족들은 대부분 할머니의 아들, 곧 삼촌이 죽었을 거라고 믿지만 할머니는 점쟁이의 예언을 근거로 아들의 생환을 굳게 믿고 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예언한 날이 되어도 삼촌은 돌아오지 않는다. 실의에 빠져 있는 할머니, 그때 난데없이 구렁이 한 마리다 아이들의 돌팔매에 쫓기어 집안으로 들어 온다. 할머니는 별안간 졸도한다. 집안은 온통 쑥대밭이 되는데 외할머니가 나타나 아이들과 외부인을 쫓아버리고 감나무에 올라앉은 구렁이에게 다가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 반응이 없자 할머니 머리에서 머리카락을 불에 그을린다. 그 냄새에 구렁이는 땅에 내려와 대밭으로 사라져 간다. 그 후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화해하게 되고 일 주일 후 숨을 거둔다. 장마는 거친다.- 감상윤흥길의 장마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어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나 이 작품을 꽤나 좋아했었다. 가볍게 읽히는 맛이 마음에 들었기도 했고, 순우리말을 매끄럽게(군더더기 없이) 써내려가는 작가의 필체가 마음에 들기도 했었다. 그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할리우드의 미래, 독립영화‘초강국 미국은 이제 옛말이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입지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 분야에서만큼은 미국이 아직도 세계를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으며, 이러한 패권 체제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할리우드가 떠~억 자리 잡고 있다.할리우드는 원래 지명이었으나, 수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그로 인해 많은 유명배우들이 등장한 곳으로 유명해져, 그 명칭이 이제는 미국의 영화와 텔레비전 계를 대표하는 대명사로 주로 쓰이게 되었다. 여튼 정부의 정책적인 육성과 대자본의 유입이 맞물려 할리우드는 영화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은 곧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과 같은 말이 되어 갔다. 그와 동시에 할리우드는 점점 위력적인 메이져(Major)가 되어 갔다. 이는, 곧 미국 영화계가 기득층이 되어 보수화 되었음을 의미한다. 할리우드의 보수화는 영화계의 참신함과 새로운 시도를 거세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이윤확보를 목적으로 한(상업성이 짙은) 영화가 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할리우드의 움직임에 저항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인디펜던트영화’이다.인디펜던트 영화는 대자본에 영합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에 반항 의식을 가지고 탄생한 것으로 감독들의 젊은 감각과 실험 정신, 그리고 자유 분방함을 주요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인디펜던트 영화는 ‘자본과 배급망으로부터의 독립’을 바탕으로 제작자의 의도대로 만들어지며, 또한 주제와 형식, 제작방식 면에서 상업영화와 차별화된다.이러한 인디펜던트의 영화의 선발주자로 나선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이다. 그의 작품 과 은 소예산으로도 제작되었으나 컬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등 영화계 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성공을 통해 할리우드에 인디펜던트 영화의 유용함을 깨닫게 되었고 미국 독립영화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한다.미 인디영화들을 활성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단연 뉴욕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였다. 이 영화제들은 ‘할리우드 데뷔를 위한 중요관문’이라 일컬어질 만큼 창조적 예술계를 세계의 영화 시장으로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을 철저하게 하고 있다. 선댄스와 뉴욕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영화인들은 미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창작자로 부상했고, 논쟁적인 작품 만들기에 주력했다.이러한 영화제들은 젊은 감독들의 역량을 발굴하고, 참신한 영화인들을 지지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는 독립영화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제를 통해 독립영화를 접하고, 매력을 알게 된 관객들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은 독립영화 존속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독립영화와 관객들의 교류를 돕기 위해 탄생한 것은 ‘안젤리카 영화관’이나 ‘필름 포럼’과 같이 독립영화만을 상영하는 극장들이었다. 이러한 극장들은 여기에서 거둔 이익들을 다시 영화제작을 위해 환원하는 등 독립영화와 상생하고 있다.이제 독립영화는 더 이상 ‘완전한’ 독립 상태는 아니다. 배급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 배급망을 타고 유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독립영화는 여전히 그 마이너적인 특색을 잃지 않고 있다. 인디펜던트 영화의 근간이 되는 작가주의와 실험정신, 그리고 소외 계층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은 아직도 여전히 건재한 것이다. 그 덕에 관객들은 신선한 창의력과 도도함이 돋보이는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자본에 굴하지 않는 예술적 고고함, 시대를 통찰하는 예리한 시선, 동시에 약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따뜻한 시선, 참신함과 도전정신, 그리고 자유분방함’과 같은 기질을 독립영화가 버리지 한, 그리고 독립영화의 유통을 돕는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한, 할리우드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홍상수 감독 식으로 말하자면 “독립영화는 할리우드의 미래다.”이에 비하면 한국의 독립영화계의 현 주소는 절망까지는 아니지만 안타까운 게 사실이다.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선전하는 김기덕 감독이나 , 와 같은 영화들의 쾌거를 보아선 작가정신 부재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작가들을 몰라주는 ‘세상’의 문제인 것이다. 솔직히 서울 외의 소도시에서는 독립 영화를 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전무하다. 어쩌다 좋은 영화가 한편 개봉했다고 해도 1주만 지나면 바로 상영이 중단되기가 부지기수이고, 아예 처음부터 개봉을 안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영화 매니아라할 지라도, 좋은 영화의 대부분을 DVD로, 또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더 많아 결국은 불법 다운로드로 만나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7~8000원의 영화비로나마 독립영화 예술계에 격려과 감사를 표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저예산 영화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경로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의 영화계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만이 승리자’가 되는 기형구조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예산의 독립영화에게는 아예 레이스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참가에만 의의를 두고 그에 만족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