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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스페셜 도자기 감상, 전통도예와 인성 평가A+최고예요
    【 목 차 】Ⅰ. 서론3Ⅱ. 본론41. 각 화별 내용 요약4(1) 제 1화, ‘흙으로부터’4① 흙 그릇의 등장4② 강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 ‘불의 온도’ 4③ 최초의 자기 ‘중국’에서 만들어지다. 4(2) 제 2화, ‘신비의 자기’5① 교역의 변화 ‘비단 -> 도자기’5② 청자의 발전과 수출 5③ 고려의 ‘상감청자’ 5(3) 제 3화, ‘이슬람의 유산’5① 청자에서 백자로5② 이슬람과 중국의 합작품 ‘청화백자’ 6(4) 제 4화, ‘청화의 제국’6① 신비의 나라 ‘중국’, 신비의 그릇 ‘자기’ 6② 도자기를 만드는 선진 국가 ‘중국’ 6(5) 제 5화, ‘도전의 세기’7① 일본에 기회가 된 ‘임진왜란’ 7② 모방으로 시작된 델프트 도기 7③ 일본의 가키에몽7④ 아시아 도자기의 영향 7⑤ 유럽의 자기, ‘마이센 자기’ 8(6) 제 6화, ‘문명을 넘어’8① 300년 만에 종주국을 넘어서다8② 산업혁명과 도자산업 8③ 현대기술과의 접목9Ⅲ. 결론101. 과거 도자강국이던 중국과 한국이 현재 유럽이나 미국 시장에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현실인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102. 영상물을 본 감상11Ⅰ. 서 론전통도예와 인성‘처음 도자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던 내게, 그 해답을 준 것은 2004년 말 방영되었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총 6주간 방영된 그 프로그램을 빼먹지 않고 시청하였다. 그러면서 나의 궁금증은 풀려갔다. 굉장히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던 그 프로그램은 그리메상을 비롯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꽤 감명 깊게 본 다큐멘터리였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혀져갔고 그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게 된 것은 5년이 지난 대학 교양 수업 시간이었다.전통 도예와 인성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면서 그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도자기의 제작과정이나 기법 등을 대입하고, 분석하게 된 것이다. 도자기의 험난했던 탄생과정, 발전 도자기의 탄생과정, 발전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최초로 상감기법을 개발하고,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인정한 자기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 세계 최초로 자기를 개발하고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킨 중국이 왜 지금에 와서는 세계 도자시장에서 변방으로 몰려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레포트는 그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Ⅱ. 본 론전통도예와 인성1. 각 화별 내용 요약.(1) 제 1화, ‘흙으로부터’① 흙 그릇의 등장.고대인들은 흙으로 그릇을 만들기 시작한다. 정착과 농경생활로 인하여 그들은 저장할 그릇, 생활에 이용할 그릇이 필요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흙이었다. 흙은 주위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흙으로 만든 그릇은 쉽게 부서지고 물에 약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가볍고 단단하며 물이 새지 않는 그릇이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토기에 사탕수수 즙을 덧바르고 불에 토기를 구워내기 시작한다. 불에 구워낸 그릇은 단단해지기는 하였지만 역시 쉽게 물에 풀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고 흙의 약점을 극복하는 것이 숙제였다.② 강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 ‘불의 온도’토기의 단점인 약한 강도를 보완하기 위해 사람들은 토기를 굽는 온도에 집중하였다. 더 높은 온도를 얻기 위해선 풍부한 땔감과 높은 온도를 견디는 흙이 필요했다. 중동지역은 이 것이 부족하였으므로 도기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중국은 풍부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가마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토기를 굽는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토기는 도기로 발전했다. 토기를 굽는 온도의 상승을 위한 노력은 토기를 도기화시켰으며 광석을 녹이는 온도의 도달하며 새로운 기술 개발로 이어진다.③ 최초의 자기 ‘중국’에서 만들어지다.중국의 황하문명은 고대 문명중 가장 늦은 시작을 보였다. 하지만 자기 기술에서 만큼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가볍고 단단하며 물에 강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풍부한 땔감과 좋은 흙이 필요했다. 중국은 이런 환경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중국은 기가 이미 생활필수품이 되어있었다. 그에 따라 남송지역의 용천지역에서는 대량 생산을 위해 100여개의 가마가 있었고 한 번에 몇 천개씩 도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청자는 해외국가에서는 신비의 그릇으로 불릴 정도로 귀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중국의 도자기를 가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중국도자기는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특히 이슬람의 모스크를 장식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게 된다.③ 고려의 ‘상감청자’중국의 자기제조 기술이 제일 먼저 전파된 곳은 고려였다. 그리하여 고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고려는 독특한 비색의 자기를 발전시킨다. 고려의 청자는 자기의 종주국은 중국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색을 자랑했다. 고려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12세기 중엽 세계 도자사상 가장 독특한 청자장식 방법인 상감기법을 개발하기에 이른다.(3) 제 3화, ‘이슬람의 유산’① 청자에서 백자로유라시아 대륙 통일국가 대원제국의 성립으로 중국 내 자기문화는 혁명적 변화를 맞는다.흰색을 선호하는 몽고의 전통에 따라 중국황실에서 사용하는 자기가 청자에서 백자로 바뀐 것이다. 대원제국의 성립에 따라 징더진(경덕진)은 중국 도자산업의 메카가 된다. 경덕진은 도시 인구 50만 중 30% 이상이 도자산업에 종사한다는 명실상부한 도자도시이다. 이곳은 원대 관요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중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도자기 생산지이다.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흙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한 것도 그와 관련이있다.② 이슬람과 중국의 합작품 ‘청화백자’흰색을 숭배하여 백자를 생산하던 중국이 청화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시기 중국에는 페르시아인 들이 중국에 정착하게 되고 이로서 새로운 자기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자기 기술자들은 자기를 만드는 방법은 알았으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현재까지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에 팔린 것은 조선시대 철화용문항아리다. 그것은 철안료가 1300도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어려운 는데 사신들이 중국의 도자기 그릇을 탐을 내 연회가 끝날 때에 남아있는 도자기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유럽인들은 중국의 도자기를 얻기 위하여 태평양을 건넜다. 그들에게 중국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신비한 자기를 만드는 선진국가였다.(5) 제 5화, ‘도전의 세기’① 일본에 기회가 된 ‘임진왜란’차문화가 크게 발달한 일본은, 도자문화가 폭넓게 뿌리내렸지만 일본은 17C까지 자기를 전량 수입해야 했다. 전국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도공을 데려오라”는 특명을 내린 뒤에는 자기를 만드는 비법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자기산업은 극명하게 다른 곡선을 긋는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다완이 영주가 자신의 성과 다완을 바꿀 정도로 한국의 큰 인기가 있었다. 이렇듯 자기에 대한 열망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이때 특별한 명령을 내리는데 한국의 도공을 잡아 오라는 것이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세계도자기사의 일본과 한국의 운명이 달라지게 된다.② 모방으로 시작된 델프트 도기네델란드 델프트는 중국과의 자기무역으로 큰돈을 벌게 된다. 델프트는 이 따른 대형화제로 인해 도시의 주력사업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때 델프트 시민들은 도자기 공장을 만들어 어려움을 타파하고자 한다. 델프트 이때부터 유럽의 도자기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된다. 델프트 도자기는 중국 도자기의 모방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비싼 중국자기를 사지 못하는 유럽 사람들에게 델프트 도자기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③ 일본의 가키에몽1644년 명청 교체기, 국가적 내홍을 겪은 중국은 일시적인 교역 중단을 감행한다. 중국의 혼란으로 중국에서의 도자기 교역이 힘들어지자 유럽의 수출업자들은 일본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이 시기의 일본은 한국의 도공들로 인해 30년만의 고품질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고 자국내의 수요를 충족시켰고 수출을 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단지 중국자기의 모방품을 수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본 특유의 여백과 문양을 담은 채색자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는 유럽 내 자전역에는 불과 50년 만에 자기 기술이 퍼져나갔다. 400여 개로 분할된 국가들의 치열한 경쟁이 산업스파이를 등장시켰다.유럽각국의 왕들은 자기들의 기술력으로 자기를 만들고 싶어 했고 도자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로 많은 국가들에서 그들만의 자기 생산이 이루어 졌다. 이런 경쟁적 기술력으로 유럽은 더 이상 중국의 자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유럽자기는 급격한 성장을 이뤘으며 불과 300년 만에 도자기 종주국 중국을 넘어서게 된다.② 산업혁명과 도자산업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을 도자기 제작에 접목시킨다. 따라서 생산 시스템이 바뀌면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게 된다. 산업혁명은 불과 1세기만에 유럽사회의 생산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지금은 영국의 도자기 생산방식은 세계의 도자기 생산의 표준이 되었다. 영국의 특유의 특허법은 공장들 간의 기술경쟁을 유도했다. 또한 대량생산과 함께 판촉 활동도 벌여 나가므로 소비를 촉진시켰다.대량생산으로 인한 영국의 도기 사업은 산업자기 시대를 연 전사와 몰드기법의 발명, 그리고 본차이나 탄생까지 더 없는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③ 현대기술과의 접목21C 첨단기술의 총체는 우주산업이다. 우주선이 궤도진입에서 견뎌야 할 온도는 약 1800도, 우주선의 내화타일은 고온에서 구워내는데, 그 최고기술이 미국에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전통가마에서 새로운 내화타일을 제작하는 일본의 신기술을 도입할 예정에 있다.문명의 발전을 이어준 도자기는 현대문명에도 사용되고 있다. 현대의 모든 통신수단의 핵심 기술일 뿐만 아니라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도자기의 특성은 우주 산업에도 많이 사용되어 진다. 또한 도자 기술을 통해 새로운 도자 예술을 만들어 내었다.Ⅲ. 결 론전통도예와 인성1. 과거 도자강국이던 중국과 한국이 현재 유럽이나 미국 시장에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현실인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세계 최초로 도자기를 만들어 냈던 중국, 그리고 두 번째로 그 기술을 알게 된 한국.중국의 자기개발을 위한 시작은 다른 문명보다 .
    예체능| 2009.12.20| 13페이지| 2,500원| 조회(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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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의 문화]몽골과 한국의 전통 혼례에 대한 비교와 공통점,차이점 평가A좋아요
    - 목 차 -1. 序2. 몽골의 전통 혼례3. 한국의 전통 혼례4. 몽골과 한국의 전통 혼례 복식(1) 몽골의 전통 혼례 복식(2) 한국의 전통 혼례 복식5. 몽골과 한국의 전통 혼례 비교.(1) 공통점.(2) 차이점.6. 레포트 작성 후기.7. 참고 문헌.1. 序지구촌에서 한국인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몽골인은 최근 연구를 통해 한민족과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임이 밝혀지고 있다. 체질인류학적으로 얼굴과 신체 골격이 흡사하며 갓난아이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나타나는 민족은 몽골족, 만저우 퉁구스족, 한민족뿐이다. 유전자 지도에서도 몽골족과 한민족은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형제 국가 몽골의 전통 결혼식은 우리와 얼마나 닮았는지 알아보자.2. 몽골의 전통 혼례.몽골의 고대 결혼 형태는 계급별루 구별되었는데 높은 계급 자들은 약탈혼으로 결혼을 하였고 다른 지방에서까지 가서 신부를 맞이하였다. 몽골의 20여 개 민족 중 하나인 할하족의 풍습을 예를 들어보자. 할흐족 풍습이 몽골의 풍습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인구 중 약 80%를 이루는 다수 민족인 만큼 그들의 혼례의식이 대다수의 몽골인들이 행하는 전통 혼례 의식이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다.몽골민족의 전통혼례 풍습은 혼례전. 혼례식. 혼례후. 3단계로 나뉘어진다.할흐 족은 결혼 집례자를 ‘다(daa)’라고 하는데, ‘다’는 몇 가지 조건을 보고 뽑는다. 첫째, 우선 신랑?신부의 친척이 아닐 것. 둘째, 혼례 예법을 잘 알고 있을 것. 셋째, 가정을 세우는 것은 국가를 세우는 것과 같으므로 책임감과 명예를 가지고 있을 것. 넷째, 축사와 노래를 잘 할 것. 마지막으로 40세 이상인 남자일 것 등이다.첫 단계는 신부를 선택하여 청혼하고, 두 가정이 사돈관계를 맺고, 사돈간의 혈통관계를 확인하는 단계이다. 우선 신랑의 친척 서너 명이 신부집에 가서 집안의 불전(佛前)에 하닥을 바치고 신부 부모에게 우유를 바치며 딸을 부탁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신부집에서 하닥을 받으면 두번째로 신랑 아버지와 친척 2, 3명이 신하는 의미를 가지며, 우유를 담았던 두 개의 컵은 신랑 신부가 가지고 가서 쓴다.신부는 푸른색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예복을 입고,‘토르츠말개이’라는, 상부 중앙에 술이 달린 모자를 쓴다. 신부를 전송할 때 신부측에서 부모는 딸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딸은 시집가서 잘 살라는 내용의‘신부 보내는 노래’를 부르는데, ‘다’가 선창하면 모두 함께 부른다.신랑측 집으로 들어간 신부는 수테차이를 국자로 떠서 세 번 흘려내린 다음 주전자에 담아서 시부모가 될 사람에게 먼저 드리고 ‘다’를 비롯한 하객들의 위아래 순서대로 드린다. 이렇게 해서 잔치가 시작되며 신랑측 ‘다’가 잔치를 주도한다.잔치가 끝나면 손님들과 신부 어머니는 후행인들과 함께 돌아가고 신랑?신부만이 새 집에 남아 첫날밤을 치른다. 첫날밤을 치른 신부는 새벽에 시부모님 집안으로 들어가 화덕에 불을 피우고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 화덕에 불을 붙인다. 이것이 신혼 첫날 신부가 행하는 일의 전부다. 아마도 신혼의 단꿈에 빠진 신부를 위하려는 뜻인 것 같다.마지막 단계는 결혼식후 3일째 되는 날에 베푸는 잔치와 신부의 친정방문을 가리킨다. 3일이 지나면 신부 부모가 신랑집으로 와서 침대 곁에 둘러놓았던 막을 걷어내는‘후식타일그(막을 걷다)’를 한다. 이것은 두 사람만의 신혼생활이 끝나고 살림살이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음을 뜻하는 것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부 어머니는 신부에게 “돌은 있는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여자는 가는 곳에서 떠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고 떠나간다. 시집 간 여자가 영원히 살 곳은 시댁이라는 뜻이다.할흐족은 신부를 아래의3가지 기준으로 선택하였다. 첫째로 신부와 신랑의 나이띠, 기질을 맞추었다. 신부는 신랑보다 4~5세 이상 많으면 적당하다고 여겼으며, 13살의 나이가 차이가나면 맞지 않는다고 했다. 둘째. 여자의 바느질 솜씨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약혼할 때 하는 말에 ‘가죽으로 옷을 만드는 이는 당신 집에 있다. 보석을 꿰어 연결하는 자는 당신에게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 딸의 신부의 선을 보고 당사자들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신부집에서 허혼편지가 오면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납채문을 써서 홍색 보자기에 싸 보낸다. 신부집에서는 사주를 받으면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 보고 결혼식 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하는데, 사주를 보낼 때 신랑집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신부집으로 보낼 편지를 받들고 사당에 고한다. 신부집에서도 주인이 의관을 정제하고 나와 신랑집에서 보내온 편지를 소반 위에 공손히 받은 다음 역시 사당에 고한다. 그리고 나서 편지에 답장을 써주고, 사주를 가져온 사람을 후하게 대접한다. 신랑집 주인은 답장을 받으면 다시 이것을 사당에 고한다.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신랑집에서 보통 결혼식 전날 신부용 혼수(婚需)와 혼서(婚書) 및 물목(物目)을 넣은 혼수함을 보낸다. 신랑집이 가난한 경우 혼서와 함께 채단만을 보낸다. 채단은 보통 청색과 홍색의 비단 치마감을 일컫는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다른 옷감을 더 넣어 보내기도 하는데 이를 봉채(封采=봉치)라 한다.결혼식 당일 신랑과 그 일행이 신부집에 가는 것으로서 초행이라고 하는데, 신랑 외의 신랑 일행에는 상객(上客)?후행(後行)이 포함된다.신랑 일행이 신부집 마을에 도착하면 신부집에서는 안내인을 보내 일행을 정방에 맞이한다. 정방은 지방에 따라 노점?주점?사초방이라고 하는데, 신랑이 온 방향에서 신부집을 지나지 않는 집의 방이어야 한다. 신랑 일행이 정방에 들면 요기상이 나온다. 간단한 요기가 끝나면 신랑은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하고, 때에 맞추어 예를 행할 신부집으로 향한다. 신부집에 들어설 때 부정을 퇴치하는 뜻에서 짚불을 놓아 신랑이 그것을 넘어가도록 한다.시간이 되면 신랑은 신부집 친척의 안내로 신부집에 들어가게 되고, 이때 기러기를 바치게 된다. 신부집에서는 예의에 밝은 이가 문전에서 신랑을 맞아 세 번 읍하는데 이 때 신랑도 따라서 세 번 읍해야 한다. 이 때 신랑은 안고 있던 목안을 안고 들어가 미리 준비되어 있는 안상에 놓는다. 목안을 안상에 놓으면 신랑은눈다. 상객이 떠날 때 신부가 나와 절을 하는 지방도 있고, 서로 보지 않고 귀가하는 지방도 있다.저녁때가 되면 신방을 꾸민다. 신랑이 먼저 들어가 있으면 혼례복을 입은 신부가 들어온다. 이어 주안상이 들어오는데, 이상에는 술과 간단한 안주를 놓는다. 주안상의 술을 나눈 다음, 신랑은 신부의 족두리와 예복을 벗긴다. 족두리는 반드시 신랑이 풀어주어야 한다. 이때 '신방지킨다' 또는 '신방엿보기'라 하여 가까운 친척들이 신방의 창호지를 뚫어 엿본다. 촛불을 끄면 모두 물러난다. 촛불을 끌 때는 반드시 신랑이 옷깃으로 바람을 내어 꺼야 한다. 입으로 불어 끄면 목이 나간다고 전한다.첫날밤을 지낸 이틀날 아침이면 신방에 잣죽이나, 대례상에 얹어놓았던 용떡으로 끓인 떡국을 가져온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장인과 장모에게 절하며, 가까운 친척들에게도 인사한다.점심때를 전후하여 신부집의 젊은이들이 모여앉아 '신랑다루기'를 하는데, 이것을 동상례라고 한다. 신랑에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서, 그 답이 신통하지 않으면 신랑의 다리를 끈으로 묶어 힘센 사람이 일어서서 짊어지거나, 대들보에 매어 발바닥을 방망이나 몽둥이로 친다. 신랑이 소리를 지르면 장모가 나와 말리고 음식대접을 한다. 양반집에서는 신랑에게 시를 읊게 하거나 화를 맞추도록 하여 신랑의 학식과 지혜를 떠보기도 한다.첫날 밤을 치르고, 신부가 시집으로 오는 것을 우귀 또는 신행이라고 하는데, 신부가 우귀할 때에는 신부를 비롯하여 상객?하님?짐꾼이 행렬을 이룬다. 신부가 가마를 타고 갈 때는 가마 위에 호피(虎皮)를 엊고, 신부의 방석 밑에는 목화씨와 숯을 깐다. 길이 먼 경우에는 종이쪽지를 몇 개 가져가면서 개울을 건너거나 서낭당을 지날 때마다 하나씩 던진다. 이렇게 하면 잡귀를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신부가마가 신랑집 가까이 오면 사람들이 나아가 목화씨?소금?콩?팥 등을 뿌려 잡귀를 쫓는다. 또는 대문에 짚불을 피워 넘어오도록 하여 잡귀를 쫓는다. 신부가마가 대문을 들어서면 대청 앞에 가마를 세우고 신랑이 가마척들은 식사대접을 한다. 신부가 근친을 다녀와야 비로소 혼례가 완전히 끝난 것이 된다.4. 몽골과 한국의 전통 혼례 복식.(1) 몽골의 전통 혼례 복식.몽골 민족의 모든종족은 고유하고 독특한 형태의 복식과 수발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까지 전통복식 착용을 유지해왔다. 1940년대 혁명이전까지 할하족의 ‘날개’모양 수발양식이 남아있었다. 몽골 민족의 전통 혼례복식은 장식성이 뛰어난 민족성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발달한 수발양식과 관모로 대표될 수 있다.몽골민족은 변발이 발달된 민족이다.변발이 13~14세기에도 존재하였다. 기혼녀와 미혼녀 모두 변발을 하였으나 혼례를 중심으로 변발의 수나 늘어뜨린 모양으로 기혼녀와 미혼녀가 구분되고 또한 성별과 나이가 구분되었다. 몽골 민족의 여성들은 화려하고 담대한 장식을 사용하였으며 금속판을 부조하여 장신구로 널리 사용하였고 화려한 장식의 변발을 넣는 주머니도 발달하였다.몽골의 대표적인 수발양식은 할하족의 똘고이 이다. 부인의 수발양식으로 두갈래로 나눈 머리를 풀에 발라서 판판하게 만들어 여러 가지 보석으로 장식하고 끝이 뾰족한 모자를 착용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몽골족에서 혼례용 수발양식으로 행하였다.남자의 관모는 말가이 라 하는데 챙이있는 모자이다. 현재 몽골의 남성은 머리를 밀거나 짧게 잘랐으나 예전에는 머리의 반만 밀고 뒤쪽은 변발을 늘어뜨렸다.몽골의 전톤혼례에서 신부의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례였다.어르더스의 결혼식에는 양가 네분의 부모와 함께 머리를 만지는 두 분을 부모로 삼고, ‘여섯 분의 부모님’이라고 ‘존경’하였다. 신부의 머리를 만져 머리타락을 둘로 가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례로 부인이 된다는 뜻이다.몽골풍습 큰 사전에는 신랑과 신부의 전통 혼례복식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소개하였다.▶신랑의 전통혼례복식①델-가슴의 끝 테두리를 여러번 꿰메고,소매가 손을 가릴 수 도 있고 안 가릴 수도 있고 여러재단의 deel을 입었다.②한타즈-칼라가 높고 앞가슴이 있는 조끼③모자-델을 입으면 모자를 써도 된다.▶신다.
    인문/어학| 2006.06.01| 10페이지| 1,500원| 조회(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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