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언행장이야기1李氏 女戒에 말하기를; 마음에 감추어져 있음이 情이며, 입밖에 내뱉음이 말이 되는 것이다. 말이란 인간의 갖은 영욕에 관계가 되는 중요한 것이며, 인간 상호 관계를 친밀하게도 하고 소원하게도 할 수 있는 중요한 마디가 되는 것이다. 또한 능히 굳은 것을 풀게도 하며,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사이를 하나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원한을 맺게도 하고,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자칫 이것이 커지는 날에는 나라를 뒤엎고 집안을 망치며, 작은 경우라도 六親을 이간하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현명한 여인들이 입을 조심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나 비방 같은 것을 불러들일까 두려워서인 것이다. 따라서 어른 앞에 있을 때나 조용한 곳에 호젓이 있을 때나를 막론하고, 모든 대화에 있어서 거슬리는 말이나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깊이 숙고하지 아니한 말을 입밖에 내뱉지 않으며, 장난삼아 해보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럽고 혼탁한 일에는 아예 기웃거리지도 않으며 의심받을 만한 장소에는 자리를 아니한다.이야기2曲禮에 이르기를; 모두 다함께 음식을 먹을 때에는 혼자서만 배불리 먹지 않으며, 또 여럿이 어울려 함께 밥을 먹을 때에는 불결하게 손으로 먹어서는 안된다. 혼자서만 한 웅큼씩 집어다 먹지 말 것이며, 먹던 밥을 밥통에 다시 쏟아 넣지도 말 것이다.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들이마시지 말 것이며, 쩝쩝 소리를 내며 먹지 말 것이며, 뼈까지 아삭거리며 갉아 먹지 말 것이다. 먹던 어육은 다시 접싱 놓지 말 것이며, 먹다 남은 뼈다귀라도 밥상머리에서 개에게 던져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구태여 음식을 더 먹으려고 억지를 부리지 말 것이며, 밥이 뜨겁다 하여 후후 불어서 뜨거운 기운을 흩날리게 해서도 안되고 기장밥을 먹을 때라도 젓가락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국을 먹을 때에는 건더기째 들이마시지 말며, 주인의 면전에서 국그릇에 간을 맞추지 말며, 이를 쑤시지 말며 젓국을 소리나게 훌쩍 들이 마시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손님이 주인의 면같이 앉지 않으며 또한 같은 그릇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이야기4城에 오르면서 손가락으로 이곳 저곳을 가리키지 말고 성 위에서는 소리쳐 부르지도 아니하는 것이다. 남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참고 자기 고집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해서는 안된다. 뜰에 오를 때에는 그 전에 반드시 헛기침 등 소리를 내어 안에서 알도록 해야 하며, 방문 밖에 신발이 두켤레가 있을 때는 잘 살피어서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소리가 난 연후에 들어갈 것이며, 안에서 아무런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거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방으로 들어갈 때는 눈길을 아래로 다소곳하게 내리깔 것이며, 방안으로 들어서서 빗장을 닫을 때에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지 말 것이다. 문이 열려 있었거든 본디대로 열어두고, 문이 닫혀 있었으면 역시 처음대로 닫아 놓아야 한다. 그러나 바로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때는 너무 꼭 닫지 말아라. 남이 벗어 놓은 신발을 밟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좌석을 밟고 건너지 않는다. 방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는 옷 매무새를 잘 가다듬고 구석자리를 찾아 앉으며, 대답을 할 때에도 ‘예’하며 순종하고 조신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이야기5무릇 시선을 상대방의 얼굴에만 두면 오만불손해 보이고, 상대방의 허리띠 부근만을 보면 근심스러워 보이고, 시선을 너무 기울이면 간사한 사람으로 보인다.제 2권 제 4장 부부장 하後漢의 和熹 鄧皇后는 太傅 鄧禹의 손녀이다. 아버지 鄧訓은 護羌校尉의 벼슬을 했으며, 어미니 陰氏는 光烈皇后의 사촌동생의 딸이다. 鄧皇后가 다섯 살 때 할머니인 太傅夫人은 손를 무척 사랑항 직접 머리를 깎아 주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나이가 많고 눈이 어두웠으므로 잘못하여 鄧皇后의 이마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런데 鄧皇后는 아픔을 참고 말을 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께서 그걸 아시면 여간 측은해 하시고 가엾게 여기실 것이 아니겠어요? 연세 람들조차 皇后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鄧皇后는 일찍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하늘을 더듬어보니 한없이 넓고 푸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 젖꼭지처럼 생긴 것이 있길래 고개를 쳐들어 그것을 빨아먹었다고 한다. 鄧皇后는 꿈풀이 하는 사람에게 解夢을 부탁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다. “堯 임금님은 꿈에 하늘을 휘어잡고 올라갔으며 湯 임금님은 꿈에 하늘에 이르러 하늘을 핥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꿈은 모두 聖王이 될 조짐을 보여준 吉夢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말할 수 없이 좋은 꿈입니다.” 또 어느날 관상쟁이가 鄧皇后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이는 성탕의 그릇입니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쉬쉬하였다. 鄧皇后의 叔父 ?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일찍이 듣자니 천명의 사람을 살려낸 사람은 자손이 제후로 봉함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訓 형님께서는 謁者가 되시어 石臼河를 수리하게 하여 해마다 사람을 살리셨으니 天道는 가히 미더운 것이라 반드시 집안이 福을 입게 될 것이다.” 그 이전에 할아버지 寓도 스스로를 찬탄하며 이런 말을 하였었다. “내가 밴만의 무리를 거느리면서도 전혀 한사람도 함부로 죽인 일이 없었으나, 후세 자손 중에 반드시 흥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永元 칠년에 鄧皇后는 다른 여러 집안의 자녀들과 함께 뽑히어 궁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 鄧皇后의 키는 일곱자 두치였고, 자태와 얼굴이 매우 곱고 아름다워서 여러 사람들 가운데 빼어났으므로 주위 사람들 모두가 경탄해 마지 않았다. 永元 팔년 겨울에 후궁에 들어가 貴人이 되었다. 이 때 나이가 열여섯살이었는데 온공하고 의젓하고 조심스러워 행동거지에 모두 法度가 있었다. 그래서 陰皇后를 가까이에서 섬기게 되니 새벽부터 저녁까지 조심스럽게 모시고 같은 또래 同列들을 대할 때에는 항상 克己하여 자기 자신을 낮추었다. 비록 궁중에서 부리는 종일지라도 다같이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和帝가 몹시 기특하에 여기며 사랑하였다. 그러던 중 鄧皇后가 병이 났다. 和帝는 특별히 것이면 즉시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혹 陰皇后와 함께 들어가 皇帝를 뵈올 때는 감히 마주 앉거나 는ㄹ어서지 아니하였다. 모든 행동을 몸을 굽혀 나직이 하고 스스로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皇帝가 무엇에 대해서 물으면 언제나 깊이 생각한 다음에 대답을 하였으며, 어느 경우건 감히 陰皇后를 앞질러 말하는 적이 없었다. 皇帝는 皇后의 마음 씀새와 겸손한 몸가짐을 알고 이를 찬탄하여 이르기를 “德을 닦는 노력이 바로 이러하구나.”라고 하였다. 皇帝의 寵愛가 점차 鄧皇后에게 쏠리자 陰皇后는 점점 거리를 두고 鄧皇后를 서먹서먹하게 대하더니 항상 찾아 뵙고자 하여도 번번이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하였다. 그 즈음하여 皇帝는 자주 皇子를 잃었으므로 鄧皇后는 後嗣가 많지 않을까 근심하여 늘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였다. 그러면서도 가끔 歌舞音曲에 재주있는 사람들을 뽑아 皇帝를 즐겁게 해드림으로써, 皇帝가 뜻을 넓게 펼치도록 배려함을 잊지 않았다. 陰皇后는 鄧皇后의 德을 칭송하는 소리가 날로 높아가는 것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하였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하늘에 저주의 기원을 하고, 해치려는 흉계까지 꾸몄다. 皇帝가 炳으로 드러누워 몹시 위급한 지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이 때 陰皇后는 은밀하게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다시 뜻을 얻어 세력을 잡게 되면 鄧氏 가운데 살아남는 무리들이 다시는 없게 할 것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鄧皇后는 눈물을 흘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서 陰皇后를 섬겨왔다. 그런데도 필경 그 어른께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니 이것은 내가 하늘의 죄를 얻었음이 분명하다.” 부인은 꼭 남편의 죽음을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周公은 몸을 바쳐 武王의 명령을 얻어내려 하였으며 越姬는 마음 속으로 반드시 皇帝를 따라 죽으리라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이제 나는 위로는 皇帝의 恩寵에 보답하고, 가운데로는 우리 血族의 災禍를 벗게 하고, 아래로는 사람돼지의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려 한다. 鄧皇后었는데 鄧貴人은 세 번이나 사양한 연후에 즉위하였다. 이 때 鄧皇后는 손수 표를 써서 감사의 마음을 올렸는데 “심히 德이 엷은 제가 小君으로 택함을 바았으나 皇后 자리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사옵니다.”라고 하였다. 이 때에 즈음하여 사방의 여러 나라에서 미리 貢物을 바치는데 다투어 진귀하고 화려한 보물들을 구하여 바치는 것이었다. 皇后는 즉위한 날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모두 금지시키고 설을 쇤 뒤에 오직 종이와 먹만을 바치게 하였다. 皇帝는 여러 차례 鄧氏 집안 사람들을 벼슬자리에 안지려고 하였으나 鄧皇后는 버번이 간절히 청하여 겸손하게 사양한 까닭으로 큰 오빠 즐 조차 皇帝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호분중랑장에 불과하였다. 元興 元年에 皇帝가 崩御하셨다. 그런데 큰아들 平原王은 병들어 있었고 여러 皇子들이 십여명이나 요절하였으므로 鄧皇后는 남은 皇子들을 즉시 비밀스레 궁 밖으로 내보내 민간에서 은밀히 기르도록 하였다. ?帝가 태어난지 갓 백일이 되자 鄧皇后는 이를 맞아다 皇帝로 세웠다. 이로부터 鄧皇后는 높임을 받아 皇太后가 되었고 조회에 임하였다. 和帝의 장례를 마친 후 궁인들은 모두 후원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太后가 貴人 周氏와 馮氏에게 策을 내리어 말하기를 “내가 貴人들과 더불어 皇帝의 배필로 택함을 받아 後庭으로 들어와서 함께 기뻐하고 서열을 나란히 한 지가 어느덧 십여년이 지났구료. 우리가 복이 없어 先帝께서 일찍 천하를 버리셨으니 외로운 마음에 근심이 가득차 우러를 곳이 없으며 낮으로 밤으로 길이 그리워서 설움이 가슴에서 솟구치오. 이제 마땅히 옛법에 따라서 후원으로 나뉘어 돌아가지만, 서러움이 맺히고 한숨이 늘어나니 燕燕之詩인들 어찌 여기에 능히 비할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그리고 貴人들에게 王靑蓋 수레, 고운 채색으로 장식한 수레, 수레 메는 말 각각 네필씩, 그리고 황금 삼십근, 잡명주 삼천필과 白越 사천端을 내렸다. 또 풍貴人에게는 皇帝의 붉은 인끈을 주고 步搖와 環佩를 가지지 않았다 하여 각각 한 벌을 더 주었다. 이 때에 새로 큰 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