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국가론』을 논함( 플라톤의『국가론』을 읽고 )과 목 명 :담당교수 :제 출 일 :학 과 :학 번 :이 름 :■□ 목 차 □■Ⅰ. 서론 .3Ⅱ. 플라톤의 국가론을 논함 ....31. 정의의 이익 ........42. 국가의 정의 ........43. 국가의 규모 ........54. 통치자의 조건 ....65. 이상적인 국가는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 ............66. 공산주의적 사유방식 ...........7Ⅲ. 결론 8참고 자료 ................9Ⅰ. 서론오늘날 우리가 흔히 서양철학을 논할 때, 대표적인 학자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말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우리는 플라톤을 말하기 전에 소크라테스를 먼저 말해야 하며, 또한 플라톤의 철학을 논하기 전에 소크라테스의 가르침, 소크라테스가 몸담았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살던 당시는 매우 어수선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막 그 싹을 틔우고 있었지만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민주주의 참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의 민주주의고, 선하고 지혜로운 자에게 통치를 맡겨야 한다는 국가관을 가지게 되었다.이런 플라톤의 사상은 그의 많은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 국가론은 플라톤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이 글에서는 이러한 국가론을 바탕으로 플라톤의 국가론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국가론 속의 이상적인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국가론의 관한 내 입장을 말하도록 하겠다.Ⅱ. 플라톤의 국가론을 논함사실 플라톤의 국가론이라는 책을 처음 펴봤을 때 가장 의아했던 것은, 책에서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소크라테스인 것이었다. 국가론의 저자가 플라톤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속에서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도 플라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읽어가는 내내 과연 플라톤은 언제 등장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물론 끝가지 플라톤은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그렇지만 비록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소크라테스이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입장이 바로 플라톤의 입장이며, 플라톤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플라톤의 국가론은 소크라테스와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서로 논쟁을 하면서 그 논쟁의 대한 해답을 찾는 방식의 대화법으로 이야기가 이끌어나간다.1. 정의의 이익정의의 이익을 논할 때,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란 통치자의 이익이며 통치자의 지배를 받는 이들에게는 정의가 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이런 트라시마코스의 의견에 대해서 국가론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는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며 참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언제나 국민의 이익을 돌본다고 반박하면서 트라시마코스의 의견이 잘못 되었다고 말한다.오늘날 우리사회를 봤을 때, 우리사회의 통치자는 어떤 모습을 가질까? 진정 통치자가 자산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국민의 이익을 돌볼까?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지금 우리사회는 아직도 후진국의 정치형태를 띄고 있다. 정치가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그들의 민이다. 그리고 수호자는 군인 또는 경찰이며 마지막으로 통치자는 말 그대로 지배자이다.플라톤은 이 세 계급이 각자 맡은바 직분을 다함으로써 국가 전체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질 때 국가의 정의가 실현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국가의 정의는 각 부류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즉 지배자는 수호자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 되며 수호자 역시 생산자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 되며 생산자 역시 그 누구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 된다. 바로 각 계급의 자립적 정체성 속에서의 계층적 질서 확립이 전제되어야만 국가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은 사회전체의 효용과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맡은 바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할은 물론 단순히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역할을 지닌다.사회에서는 경제적 역할로 생산 활동을 해야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고,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로서의 역할, 부모에 대해서는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이러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사회가 안정되고 국가의 기반이 잡힐 것이다.하지만 사회전체의 효용이 아니라 그 사회를 이루는 개인의 이익을 생각할 때 다른 생각이 든다. 사람의 역할은 엄격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그 주어진 역할에 과연 개인이 만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생산자 계급, 예를 들어 농부나 어부라 하더라도 능히 자신의 꿈을 위해 다른 직업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농부도 자신의 꿈이 정치가라면 선거를 통해 정치가가 될 수 있고, 수호자 계급, 가령 공직에 있는 사람도 공직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오늘날 직업선택의 자유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너무나 무시했다는 생각이 든다.국가론에서는 이러한 사람의 감정을 무시한 체, 계층적 질서를 중요시하였는데, 이러한 질서만을 강조한다면 사회 전체의 효용은 증가할 진 모르겠지만,느 정도 규모의 국가인지 의문시 되는데, 오늘날 강대국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많은 영토와 많은 국민은 그 나라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미국이 오늘날 세계의 최고 강대국으로 우뚝 설수 있는 중요한 원천 중 하나가 넓은 영토와 거기서 나오는 자원,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인접해 있는 이웃나라 중국만 봐도 넓은 영토와 국민을 바탕으로 해서 급속도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의 경우 분명 통합에 있어서도 저해될 것이고, 인종갈등이나 빈부격차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수반될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과 같은 경우처럼 연방정부의 형태로 분할해서 통치한다면 더욱더 강한 국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더군다나 오늘날, 국가를 뛰어넘는 초국적 기업, UN이나 WTO와 같은 특정 국가의 힘을 뛰어넘는 단체의 등장, 세계를 넘나드는 NGO 등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국가라는 장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 적정규모의 국가를 강조하는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 든다.4. 통치자의 조건플라톤은 통치자의 조건을 논하면서 통치자는 국가를 위한 일에는 열성을 다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일에는 초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소신을 끝가지 지킬 수 있는지, 중간에 유혹이나 강압에 못 이겨 자신의 책무를 잊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는지 살펴봐야 하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자를 뽑되 어려서부터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플라톤의 말처럼 통치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힘쓰고,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초연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에 의해서 유혹이나 강압에 의한 포획이나 지대추구 행위를 해서도 안 될 것이다. 통치자가 포획이나 지대추구에 의해서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면 전체 국익에 반하는 행동이 되고만다.그렇지만 충성심이 강한 자를 뽑되 어려서부터 지켜봐야 한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들을 어떻게 어려서부가를 다스려야만 이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철학자들이 국가를 통치하지 않는 한 어떤 방법으로도 이 세상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플라톤은 철학자는 단순히 철학을 한다고 해서 철학자가 될 수 없으며 그러한 사람들은 단순히 철학자를 흉내 내는 사람이지 철학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철학자는 선의 이데아를 축구해야 하며, 이러한 선의 이데아를 추구해야 만이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플라톤은 이러한 선의 이데아를 동굴로 비유해서 설명하였는데, 직설적으로 선의 이데아가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비유해서 설명하였기 때문에 과연 선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무척 막연한 느낌이 든다. 물론 대략적인 의미는 파악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많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그 의미가 무척이나 모호한 느낌이 든다.플라톤은 통치자가 아닌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이상적인 국가가 된다고 하였는데, 그의 말을 모두 인정해서 철학자가 통치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이상적인 국가가 될지는 의문이 든다. 철학자와 통치자의 역할은 분명히 다를 것이며, 학문을 많이 안다고 해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든다. 또한 철학이 국가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할지라도, 권력의 최고 정점인 통치자가 된다면 자신이 알고 지금까지 배운 대로 행동을 한다는 보장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배운 지식을 이용해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만 유익한 정치를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생각을 보면서, 그 지리적 배경은 다르지만 한국과 중국의 고대 유교사회가 생각났는데, 고대 한국과 중국의 지배세력은 유학을 공부한 유학자들이었고, 이들은 유교를 통해서 유학자들이 나라를 다스려야만 백성들이 바르게 될 수 있고, 나라가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로인해 근대화가 되기 전까지 한국과 중국은 유학자들이 왕과 함께 국가를 다스렸다.플라톤이 생각하는 국가도 동아시아 사회에서 유학자들이 국가를 다스린 것처럼,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다.
자치경찰제도과 목 명 :담당교수 :제 출 일 :학 과 :학 번 :이 름 :목 차Ⅰ. 서론 ............3Ⅱ. 자치경찰제도에 대하여 설명함.......31. 자치경찰제도의 개념32. 자치경찰제도의 법적근거..........41) 헌법적인 근거..........42) 법률적인 근거..........43. 자치경찰제도의 이념 및 원칙...54. 외국의 자치경찰제도51) 미국의 자치경찰제도52) 영국의 자치경찰제도63) 일본의 자치경찰제도.... 과거 중앙정부에 강력한 권한과 힘이 집중되던 중앙집권 체제에서 이제는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있다. 그에 따라서 중앙집권 체제와는 다르게 주민의 의사가 수렴될 수 있는 기회 또한 확대되었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의 인권과 민주성은 훼손되어도 된다는, 과거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대의 낡은 사고방식에서 민주성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능률성이나 효과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이러한 지방화의 물결과 함께, 지방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이 여러 가지로 논의되었고, 그 중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봐야 할 점이 바로 제주특별자치도 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세계화 시대에 맞춰 제주특별자치도 만의 경쟁력 확보와, 지역 실정에 맞는 행정을 위해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다른 여러 가지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제주시를 제주특별자치도로 변경함으로써 국방, 외교와 같은 중앙정부가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제외하고, 상당부분을 제주특별자치도의 의회나 지역주민들이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을 두었는데, 자치경찰제도도 바로 그러한 제도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여기에서는 이러한 자치경찰제도의 개념과 법적근거, 이념 및 원칙, 외국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자치경찰제도, 자치 경찰제도의 문제점과 효율적 운영 방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자치경찰제도에 대하여 설명함1. 자치경찰제도의 개념경찰의 개념은 그 시대와 문화의 특성에 따라 나라마다 다른 변천과정을 겪었고. 따라서 경찰이라는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에 따라 상대적으로 봐야 하는 것으로써, 경찰이라는 개념은 시대마다 조금은 상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절대군주국가 시대의 경찰이라는 개념은 국가 통치를 위하여 작용하였으며, 법치국가시대에는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소극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복리국가시대에는 복리행정의 기능강화에 의한 행정영역확대로 경찰의 개념이 봉사 지향적으로항은 ‘국가는 지방행정과 치안행정의 연계성을 확보하고 지역특성에 적합한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자치경찰제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하여 자치경찰제 도입의 법률적인 근거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11장 자치경찰의 장에서 기본적인 골격을 규정함으로써 제주지역에 한정하여 자치경찰을 실시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동 시행령에 자치경찰장비의 종류 및 사용기준, 자치경찰 공무원의 보수, 승진소요 및 최저 근무년수에 대하여 규정하였다. 또한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 운영 등에 관한 조례와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공무원 인사규칙 등의 자치법규가 있다.)3. 자치경찰제도의 이념 및 원칙)자치경찰제도의 존재필요성에 관하여 현재의 일반적 논의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그 당위성에 대하여는 이론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첫째, 법이론적 측면에서 국민주권주의, 직접민주주의, 권력분립주의에 기초하여 헌법상 규정된 지방자치의 실현의 한 내용으로 자치경찰을 파악할 수가 있다.둘째, 행정학적 이론측면에서는 일반행정과 구별되는 지방행정 내지 자치행정의 제도적 필요성에서 자치경찰의 당위성을 파악할 수가 있다.이러한 이념에 기초하여 자치경찰제도는 보충성의 원칙, 민주성 우선의 원칙, 주민참여와 통제 및 책임성의 원칙에 준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보충성의 원칙은 기초자치단체 우선의 원칙이다. 지방자치의 발생 원인을 보면 주민의 생명, 재산, 신체를 보호하고 생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자치경찰의 주된 임무이다. 따라서 경찰업무의 성격상 일선 기초자치단체가 자치경찰의 실시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업무 가운데 수사, 형사, 의사, 경비 등은 우리의 남북 간의 대치상황이나 지방자치의 역사의 일천함에 의하여 자치단체가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노출되므로 보충성의 원리에 의하여 자치단체가 할 수 없는 이러한 업무는 국가경찰이 그대로 수행하고 자치단체에 가장 필요한 기능인2) 영국의 자치경찰제도)영국은 영미법계의 종주국으로 자치경찰제의 전통을 기반으로 경찰의 조직과 운영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왔다. 2000년에는 종래 수도경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내무성 직속의 국가경찰로 운영되어 오던 수도경찰청을 자치경찰로 전환하였고, 광역단위로 지방경찰청을 설치, 독립된 지방경찰위원회의 관리 하에 두어 외형적으로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자치경찰제도를 만들어 가는 한편, 경찰활동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중앙통제를 강화해 나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영국의 자치경찰은, 일반적으로 지역에서 자치경찰의 직무수행을 원칙으로 하므로, 이들의 사무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모든 사무를 수행한다.구체적으로 주요사무를 보면 다음과 같다.① 일반경찰관에 의한 도보순찰, 고발사건처리, 범죄자처리, 차량순찰 등과 같은 일반적인 경찰업무의 수행② 경찰 보조인력에 의한 주로 행정적인 업무와 인사, 재정, 안전, 정보처리, 과학수사, 현장분석 분야에서의 경찰행정서비스 지원③ 특별지원경찰에 의한 교통경찰업무, 도보 순찰업무, 자동차 순찰업무 등 수행④ 지역사회경찰자문위원회, 주민고충위원회, 시민헌장제, 일반인 방문제도, 마을 방범경찰 등의 설치 운영3) 일본의 자치경찰제도)일본은 1872년 프랑스와 독일의 경찰제도를 모델로 국가경찰제도를 도입하여 2차세계대전 때까지 유지해 왔으나 패전 후 미국식 자치경찰제도를 도입하여 중앙과 광역자치단체인 도·도·부·현 단위에는 국가경찰을, 기초자치단체인 시·청·촌 단위에는 자치경찰을 운영하는 이원적 경찰제도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세분화된 자치경찰제도가 효율성을 저해하고 자치단체의 재정부족으로 비경제적이라는 지적이 대두되자, 1954년 ‘경찰의 민주성과 능률성의 조화, 분권성과 집권성의 균형, 정치적 중립성과 책임성의 실현을 도모’한다는 목표 아래 광역자치단체인 도·도·부·현 단위의 자치경찰제로 재편하였으며, ‘중앙의 국가경찰과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자치경찰간의 절충 및 합의제 공안위원회에 의한 경찰관리’라는 독특한 경찰제도를 자치경찰사무처리를 위한 치안행정위원회를 조직하고 있다.① 자치경찰사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지역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국가경찰과의 협의를 담당할 기구 필요함②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간 사무분담 및 사무수행방법, 자치경찰의 운영 지원 등에 관하여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소속하에 치안행정위원회를 두되, 위원장 1인과 당연직 위원 2인을 포함하여 법관·교수·지역주민 등 11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함③ 지역주민 등으로 구성되는 치안행정위원회를 둠으로써 지역치안활동에 지역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자치경찰의 민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셋째, 교통안전시설 관리업무의 이관에 대해서는① 국가경찰이 담당하고 있던 교통안전시설의 관리업무를 교통안전시설의 설치·관리비용의 부담주체인 제주특별자치도에 이관하려는 것임② 현재 국가경찰이 담당하고 있는 교통안전시설 관리업무를 제주특별자치도에 이관하고, 교통안전시설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소속하에 민간전문가와 국가경찰 등이 참여하는 교통시설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함③ 교통안전시설의 관리업무의 이관과 교통시설심의위원회의 설치를 통하여 교통안전시설 관리업무의 효율성과 민주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함3) 제주특별차지도의 자치경찰제도의 조직)(1) 자치경찰단제주특별자치도의 자치경찰단은 기본적으로 정부에서 마련한 자치경찰법과 내용면에서는 거의 동일하다.「제주특별법」에 의하여 자치단체인 시·군이 폐지되고, 기초단위의 자치행정기능이 제주도로 흡수됨에 따라 시·군 및 자치구 중심으로 구성된 자치경찰법안과는 차이를 두고 있다. 따라서 자치경찰은 도를 단위로 하여 설치되고 자치경찰사무의 원활한 집행을 위하여 도의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시인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자치경찰대를 설치토록 하였다.자치경찰대는 당초 ‘자치경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를 단위로 한 자치단체의 자치경찰대와는 차이가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의 보조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또한 자치경찰단 및 자치경찰대의 조직다.
통신언어의 문제점과 해결방안과 목 명 :담당교수 :제 출 일 :학 과 :학 번 :이 름 :목 차Ⅰ. 서론 ...........3Ⅱ. 통신언어의 현상 및 문제점 ..........31. 음운론적 현상 .........31) 축약 .......32) 첨가 .......43) 교체 .......42. 어휘적 현상 ...........51) 은어 .......52) 신조어 ....63) 비속어 10Ⅲ. 통신언어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 ...............101) 개인의 자발적인 노력...............102) 통신환경의 변화 ....103) 방송매체의 역할 ....114) 부모의 역할 ...........115) 장기적인 교육의 필요 .............116) 글쓰기 연습의 강화 ...............127) 한글의 우수성 제고 ...............12Ⅳ. 결론 ....12참고자료..........13Ⅰ.기에서는 이러한 일반 언어와는 다른 통신언어의 현상을 음운론적 현상, 어휘적 현상, 숫자·이모티콘의 사용으로 나눠보려 한다.1. 음운론적 현상1) 축약컴퓨터 대화방에서 타자를 쳐서 대화를 할 때에는 실제로 음성으로 대화하는 것보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빠른 대화를 하기 위하여 둘 이상의 단어를 하나의 단어로 축약해서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조별 발표 넘 힘들다내가 리포트 쩜 쓰니깐내가 20살 때 쯤엔첨에 보았을 때 보다아참 내가 접때 조사해보니깐.....이러한 축약으로 인해 더 빠른 의사전달이 가능할 수는 있으나, 통신상의 언어는 지나친 말의 축약으로 인해 전달하려는 말이 모호해지고, 정확한 의사전달에 있어서 불편함을 초래한다.2) 첨가푹 자공, 내일 보장~~저도 함 생각해 볼께영~~알았엉, 너도 한번 생각해 방~~내일은 열심히 조사를 해야짓~넵~알겠습니닷! 낼 바용~~문제점 머가 있을까영?????알았어염~~~~앙녕히 가세효통신상에서 대화를 할 때에는 보통 빠르고 신속하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이 대부분이지만, 특정 받침을 첨가하는 현상 또한 통신언어에 있어서 많이 쓰인다.) 첨가의 경우 아래와 같이 특정 단어에 ㅇ, ㅅ, ㅁ, ㅂ, ㅎ 등의 받침을 넣는 경우가 많다.이러한 지나친 받침의 첨가는 말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에도 방해가 될 뿐만이 아니라, 한글 문법체계를 파괴시키는 현상도 초래한다. 통신언어를 특히나 많이 접하는 초·중·고생의 경우 한글 맞춤법에도 혼동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나친 문법의 파괴로 인해 우수한 한글의 가치가 하락될 수 있다.3) 교체컴퓨터 통신 대화자들은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음운 교체를 자주 한다. 주로 교체를 많이 하는 경우는 ㅛ→ㅕ, ㅗ→ㅓ, ㄴ→ㅇ, 야→햐 등이 있는데 아래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아래와 같이 맞춤법을 무시함으로써 구어로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거나 자기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교체를 사용한다.)알았어여, 그건 제가 할게여전 광화문 사라여앙녕히 가세가락으로 타자를 치는 것)똥컴이네 ㅋㅋㅋㅋ (컴퓨터 완전 고물이네)나완정컴맹이지ㅏ나(컴퓨터를 못하는 사람)그럼 오빠 빠빠시~~~(바이의 힘준말, 잘가)내가 초딩이면 너는 유딩이야우리 중ㅇ딩때라방가(다시 만나서 반가워)당근이쥐-(당연하다)귀참돌이(귀찮아하는 사람)통신언어의 신조어는 이러한 단어를 아는 계층과 알지 못하는 계층 사이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많은 방해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잠수타지마” 같은 경우 통신언어를 많이 쓰이는 계층은 그것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통신언어를 잘 알지 못하는 계층은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신조어는 세대간, 계층간 의사소통의 방해요소가 된다.3) 비속어통신언어는 그 익명성이나 폐쇄성으로 상대를 직접 대면하고 말할 때보다 훨씬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대화하기 때문에, 일상 언어에서 보다 더 거칠고 냉소적인 어휘나 비속어가 많이 쓰인다.)안대 그자식 ㅄ이라서쌩까냐 ㅋㅋㅋ 콱!아 졸라 짱나거지깽깽이냐깝을 싸네 이게 ㅋㅋㅋ짜져, 짱나나완전 미친 싸이코 가타~~~~또아무여자한테나깝치고다니냐????샤발, 아슈발졸라, 이노무시키가아쩌러, 존나쩔어통신언어에서는 일반 구어체 언어에서보다 훨씬 비속어에 의한 표현이 많이 쓰인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인데, 비속어 표현이 문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특히나 더욱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비속어 표현이 단순히 통신상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통신언어를 자주 접하고 이러한 비속어 표현에 익숙한 사람들은 단순히 통신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이러한 비속어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아 대화를 하는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4) 약어약어 형태는 있어야 할 음절이 빠져 있는 상태이지만, 이는 실제 대화를 하는 대화참여자들도 쉽게 생략된 것을 짐작하고 원 상태로 인식하기에 경제성을 추구하기 위해 단어를 짧게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났다.) 실제로 본 조에서 실제 조사, 헤헤헤, 히히히, 크크크, 키득키득, 쿠겔겔겔ㅋㅋㅋ, ㅎㅎㅎ실제로 일반 언어에서보다 통신언어에서 이러한 의성어, 의태어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나 ㅋㅋㅋ 나 ㅎㅎㅎ의 경우 문장이 끝났을 경우에 계속해서 재차 반복함으로써 대화내용이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6) 외래어·외국어우리 고유의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래어나 외국어를 쓰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인터넷 환경의 어휘는 우리말로 대체할 수 없는 어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통신환경에서의 외래어·외국어 사용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우리 겜방 갈까?아 그럼 울집으로 컴온! ㅋㅋㅋ핸폰 뭐살지 고민중..오버하지마짜증 이빠이다트웨니 땐엔ㅈㅅㅈㅅ 배터리가.....스마일을 날리고 다니는아뒤, 빠이, 하이, 쏘리. 굿위의 예에서 보면 겜방(게임방)이나 배터리, 핸폰(핸드폰) 등은 사실상 우리말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은 표현들이다. 그렇지만 컴온, 오버, 이빠이, 하이, 쏘리 등은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우리 표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말들로 표현되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나치게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사용이 선호되는 우리 사회적 특성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나친 외래어의 범람은 우리 국어를 파괴할 수 있고, 우리 국어의 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다.7) 외계어통신상의 외계어는 언어 변형을 심하게 해서 정체불명의 언어라고도 하는데 사용자 대부분이 초등학생, 혹은 중·고생이나 20대 초·중반의 사람들이다. 외계어의 기원은 보통 쓰이는 통신체 보다 독특한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이 특수문자나 숫자 등을 조합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란뇽미니얕 ?.?* 느근뒤알까욬 (안녕 민희야 나 누군지 알아?)너아직 쪼그만home피 하냥??? (너 아직도 미니홈피 하냐?)위의 두 문장은 외계어 사용의 예이다. 사실 외계어라는 뜻이 너무나 모호하고 정확한 개념이 아니라 정확한 외계어 사용의 예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통신체에 )>.
"티베트와 중국"을 읽고(이한규, 티베트와 중국, 소나무, 2000.)(출처 : http://www.rogpa.com)목 차Ⅰ. 들어가는 말 .........3Ⅱ. 티벳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 ..31. 당대의 티벳과 중국.......32. 원대의 티벳과 중국......43. 명대의 티벳과 중국.......54. 청대의 티벳과 중국.......55. 라사조약에 대한 생각 ..66. 청 멸망 이후의 티벳과 중국............67. 1951년 부터 현재까지의 티벳과 중국.............7Ⅲ. 맺음말..8Ⅰ. 들어가는 말2008년 올림픽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려지게 됨에 따라, 전 세계는 티벳의 독립과 인권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서 티벳의 독립 시위가 일어나고 있고, 급기야 올림픽 성화가 꺼지는 일도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올림픽 성화 봉송을 둘러싸고 중국 학생들과 한국인들간의 폭력사태 문제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그렇다면 왜 세계 여러나라의 국가 중에 유독 중국 내 티벳의 인권과 독립에 대한 문제가 대두대고 있는지 궁금증을 가지게 됐다. 사실 리포트를 위해 책을 처음 선정할 때, 애초의 계획은 가능한 분량이 적고 쉬운 책을 선정하려 하였는데, 이 “티베트와 중국” 이라는 책을 본 순간 대체 과거에 티벳과 중국 간에 어떤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왜 티벳이 원래부터 중국의 영토라는 중국인의해 지배ㆍ통치되었는가 하는 역사 논쟁을 전개 하였고, 이러한 논쟁은 다시 과거에 티벳은 중국의 일부였는가 하는 문제로 비화되었다.따라서 여기에서는 중국 당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티벳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도록 하겠다.Ⅱ. 티벳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1. 당대의 티벳과 중국티벳 독립론과 종속론의 다툼은 흔히 토번과 당의 관계에 관한 논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양측은 모두 토번이 티벳 최초츼 통일국가였고, 토번과 당의 관계가 티벳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를 가진 첫번째 단계로 이해하고 있다.중국에서는 7세기 초, 티벳 고원에 살고 있던 유목 부족들을 통일시킨 송쩬감포가 당의 문성공주와 혼인한 사실과 그가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들인 사실을 티벳이 중국에 종속되었다는 증거로 사용된다.그러나 이러한 혼인관계는 근본적으로 티벳이 중국에 속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지금도 왕이 존재하는 중동 국가 중 왕이 미국인 부인을 얻었다고 시간이 더 흐른뒤에 중동의 왕이 미국인과 혼인하였다는 이유로 그 국가가 미국의 일부로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황당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과거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때 왕과 중국 공주가 혼인한 사례가 빈번하기 발생하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거에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우리 동아시아 사회를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이 중심 국가로 다른 주변 국가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과거에 속국이었다든지 더 나아가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사실이다.2. 원대의 티벳과 중국티벳측과 중국측이 전게한 논쟁의 쟁점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원대의 중국과 티벳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측이 역사상 티벳이 중국의 일부였음을 주장할 때 언제나 두서에 내놓는 말이 원대 이래로 티벳은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중국은 원대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은 다민족 국가라고 하지만 그근거가 된다고 인정한다면 과거 우리 대한민국이 원의 지배를 받았다고 우겨 우리의 영토가 중국의 영토라고 우기지 않을까? 란 걱정이된다. 기분은 나쁘지만, 비록 고려시대 때 원에게 완전한 주권을 잃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사실상 우리나라도 상당부분 원의 지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지금도 TV나 신문을 보다보면 심심찮게 중국의 역사왜곡 문제가 나오고 있다.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든지, 발해가 말갈족이 세운 국가라든지 하는 말도 안되는 말을 주장하는 중국인들의 행실을 보면서 화가 났던 기억이 있는데, 티벳과 중국 문제는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와 중국의 역사문제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3. 명대의 티벳과 중국명대에 들어서도 중국측은 명이 티벳에 대한 원의 권리를 그대로 계승하였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티벳이 명에게 조공을 받쳤다는 것은 든다.그러나 조공관계는 분명 불평등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독립적인 관계이다. 따라서 중국측이 이것을 두고 종속관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에 중국에 조공을 받치면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던 것처럼 티벳도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국가라고 생각한다. 조공관계는 서양 역사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동아시아 역사에서 끊인없이 일어났고, 하나의 문화로 이해해야지 그것을 이유로 과거에 자신의 영토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4. 청대의 티벳과 중국명이 망하고 들어선 청대에 있어서도 원이 몽고 제국이었고, 티벳과 원의 관계는 티벳인과 몽고인의 관계였듯이, 청 역시 만주 제국이었으며 티벳과 청의 관계도 티벳과 만주인의 관계로 생각된다.중국은 송ㆍ원ㆍ명ㆍ청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일 뿐 중국이 망한것이 아니고, 이들 모두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황비홍 등과 같은 원대나 청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 영화를 보면 한족이 이들 왕조에 저항하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물론 영화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중수 있을 것인가? 만약 중국측이 대신의 존재와 역할을 통해 티벳의 중국 귀속을 증명하려 한다면, 이와 동시에 대신이 파견되었던 기간 동안에 우리 대한민국도 중국에 귀속되었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말도 안되는 말이다.또한 티벳의 대다수 관원들은 여전히,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들의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티벳인에게는 티벳 법률이 적용되었고, 티벳인이 낸 세금은 티벳 정부로 귀속되었는데, 이것만을 보더라도 물론 청이 티벳에 대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티벳의 중국 귀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5. 라사조약에 대한 생각서구세력이 동아시아에 출현하여 아편전쟁과, 청불전쟁, 청일전쟁 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통적 동아시아 세계 질서는 전면적으로 와해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청과 티벳 관계도 전면적으로 수정을 강요받게 되었다. 영국 제국주의 세력은 티벳을 침공하여 티벳을 상대하여 라사조약이라는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였다.영국 제국주의 세력이 19세기 후반에 티벳과 제도적 외교 관계를 가지려 하였을 때, 티벳과 청 관계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가 이 시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티벳이 정말로 청의 영토라고 한다면 청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티벳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청의 황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영국군의 티벳 침공의 결과 맺어진 라사조약은 티벳에 대한 청의 주권을 배척하는 것이고, 영국과 티벳이 청제국을 배제한 채 직접 교섭하고 직접 조약 당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봐도 티벳이 중국의 영토라는 중국측의 주장은 실질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티벳은 청을 배제한 채 비록 불평등한 조약이긴 하지만 직접 조약을 체결하는 등 사실상의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6. 청 멸망 이후의 티벳과 중국제2차 세계대전이 1939년에 폭발하였다. 역사상의 다른 전쟁과는 달리 이 전쟁은 어떠한 1951년 부터 현재까지의 티벳과 중국1951년에는 티벳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소위 17조 협약이란 것이 체결되었으며, 그것에 근거하여 중공의 인민해방군이 티벳에 진주하였다. 곧 이어 티벳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티벳 사회의 개조가 진행됨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티벳인의 격렬한 저항이 일어나게 되었다.중국인들은 자기들이 티벳인민을 해방하고 티벳인민이 침략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지역자치와 종교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외국 세력과 영향력을 몰아내는 책무를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그렇다면 중국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과연 티벳이 누구로부터 해방이고 누구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며, 과연 티벳의 지역자치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냐고 말이다. 독립국으로써의 티벳을 침략하고 정복한 것이 과연 티벳인들을 자유롭게 한 것이며, 그들의 정치적ㆍ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이 과연 티벳의 종교의 자유를 실현시켰냐고 말이다.티벳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의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한 국가이다. 흔히들 동아시아 문화를 유교문화라고 말하는데, 티벳은 그들만의 독자적 불교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중국이 그들의 종교의 자유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중국은 티벳이 중국의 품안으로 돌아 왔다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티벳이 본래부터 중국의 영토였다고 한다면 왜 티벳에 대한 무력침공을 강행했으며, 왜 티벳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들이 티벳의 독립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티벳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중국이 티벳에 진주한 후 중국 정부는 티벳 고유의 정부체제를 파괴하고, 티벳의 경제, 문화, 교육 등을 중국의 경제, 문화, 교육 등에 통합시켰으며, 사회ㆍ경제적 구조 개조를 강행하였다. 과연 이것이 티벳의 고유한 지역자치를 보호하는 것일까? 중국과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티벳의 경제, 문화, 교육 등을 중국의 문화 등에 통합시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지역자치를 보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티베트와 중국의 분쟁(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는 입장에서)(출처 : http://www.rogpa.com)◆◇ 목 차 ◇◆Ⅰ. 서론.....1Ⅱ.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 21. 당대의 티베트와 중국 ....22. 원대의 티베트와 중국 ....23. 명대의 티베트와 중국 ....34. 청대의 티베트와 중국 ....45. 라사조약에 대한 생각 ....46. 청 멸망 이후의 티베트와 중국 .......5Ⅲ. 현대의 티베트와 중국의 문제 61.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무력 침공과 문화 말살 .62. 티베트의 경제ㆍ문화적 발전 ...........63. 종교의 자유에 대한 문제 ............... 물론 다른 국가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서로 다른 민족 간의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국과 티베트 간의 문제와 같이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비교적 조화를 유지하면서 국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 중에 유독 중국 내 티베트의 인권과 독립에 대한 문제가 국제적으로 대두 되고 있을까? 티베트가 원래부터 중국의 영토라는 중국인들의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티베트 사람들의 주장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이루어지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되었다.사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고, 중국 역사에 대한 책을 비록 소설 등을 통해서지만 많이 읽어봤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티베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티베트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발생해 티베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티베트가 중국 국가에 의해 지배ㆍ통치되는 것이 타당한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티베트 독립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양측은 티베트가 과거에 중국 국가에 의해 지배ㆍ통치되었는가 하는 역사 논쟁을 전개 하였고, 이러한 논쟁은 다시 과거에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였는가 하는 문제로 비화되었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티베트의 역사적 관계를 중심으로 중국과 티베트 양국 간 역사적 관계에 대한 나의 입장과, 아울러 현재 중국과 티베트 사이에 문제되는 몇가지 요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1. 당대의 티베트와 중국티베트 독립론과 종속론의 다툼은 흔히 토번과 당의 관계에 관한 논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양측은 모두 토번이 티베트 최초의 통일국가였고, 토번과 당의 관계가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를 가진 첫번째 단계로 이해하고 있다.중국에서는 7세기 초, 티베트 고원에 살고 있던 유목 부족들을 통일시킨 송쩬감포가 당의 문성공주와 혼인한 사실과 그가고 우겨 우리의 영토가 중국의 영토라고 우기지 않을까? 란 걱정이 된다. 기분은 나쁘지만, 비록 고려시대 때 원에게 완전한 주권을 잃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사실상 우리나라도 상당부분 원의 지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지금도 TV나 신문을 보다보면 심심찮게 중국의 역사왜곡 문제가 나오고 있다.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든지, 발해가 말갈족이 세운 국가라든지 하는 말도 안되는 말을 주장하는 중국인들의 행실을 보면서 화가 났던 기억이 있는데, 티베트와 중국 문제는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와 중국의 역사문제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3. 명대의 티베트와 중국명대에 들어서도 중국측은 명이 티베트에 대한 원의 권리를 그대로 계승하였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티베트가 명에게 조공을 받쳤다는 것은 든다.)그러나 조공관계는 분명 불평등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독립적인 관계이다. 따라서 중국 측이 이것을 두고 종속관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에 중국에 조공을 받치면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던 것처럼 티베트도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국가라고 생각한다. 조공관계는 서양 역사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동아시아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났고, 하나의 문화로 이해해야지 그것을 이유로 과거에 자신의 영토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4. 청대의 티베트와 중국명이 망하고 들어선 청대에 있어서도 원이 몽고 제국이었고, 티베트와 원의 관계는 티베트인과 몽고인의 관계였듯이, 청 역시 만주 제국이었으며 티베트와 청의 관계도 티베트와 만주인의 관계로 생각된다.중국은 송ㆍ원ㆍ명ㆍ청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일 뿐 중국이 망한 것이 아니고, 이들 모두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황비홍 등과 같은 원대나 청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 영화를 보면 한족이 이들 왕조에 저항하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물론 영화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중국 한족들이 정말로 원대나 청대를 그들을 포기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영국군의 티베트 침공의 결과 맺어진 라사조약은 티베트에 대한 청의 주권을 배척하는 것이고, 영국과 티베트가 청을 배제한 채 직접 교섭하고 직접 조약 당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봐도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라는 중국측의 주장은 실질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티베트는 청을 배제한 채 비록 불평등한 조약이긴 하지만 직접 조약을 체결하는 등 사실상의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6. 청 멸망 이후의 티베트와 중국제2차 세계대전이 1939년에 폭발하였다. 역사상의 다른 전쟁과는 달리 이 전쟁은 어떠한 나라도 관련되지 않거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남겨 두지 않았다. 티베트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티베트는 전쟁 기간동안 내내 중립 상태로 남아있었고, 그로 인해 직접 전쟁에 휩쓸려 들지 않았다. 전쟁 기간 동안 티베트는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주변 열강으로부터 강력한 압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외교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였다.) 이렇게 독자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티베트의 능력을 보더라도 티베트는 이 시대 중국의 영향력에서 상당 부분 벗어난 것을 볼 수 있다.티베트측은 1912년부터 1950년까지, 즉 중국에서 청이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건립되고 티베트에서 공식적으로 중국인이 축출된 이후 중국에서 중화민국이 퇴출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해방국이 티베트로 진주할 때까지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보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중국측에서는 결코 독립 국가의 지위를 가지지 못하였다고 반박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티베트가 그들 스스로 다른 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으며, 1951년에 중국은 왜 티베트를 침공하였냐고 물어 보고 싶다. 자기 국가를 침공한다......말이 되지 않는 말이다.Ⅲ. 현대의 티베트와 중국의 문제1.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무력 침공과 문화 말살1951년에는 티베트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소위 17조 협약이란 것이 체결되었으며, 그것에 과 현재와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다. 과연 티베트가 중국과 통합되지 않았으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오히려 티베트인들이 더 단합하여 더 많은 경제성장을 이루었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또한 티베트가 중국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서 경제적으로 발전하였는가? 예를 들어 북경과 상해 지역만 봐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티베트를 이런 지역들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많이 낙후되어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 티베트에서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은 오직 그들만의 생각이다.설혹, 티베트를 중국이 통합함으로써 엄청난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치더라도, 티베트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소망은 종교와 역사의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약간 좋은 음식이나, 좋은 의복, 좋은 주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티베트가 중국에 통합해서 티베트가 경제적 성장을 이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티베트의 독립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3. 종교의 자유에 대한 문제티베트는 라마교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사회이다. 7세기경 인도에서 전해진 대승 불교가 티베트 토착종교인 샤머니즘과 혼합되어 독자적인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가 탄생하였는데, 여기서는 특히 환생을 강조한다. 따라서 티베트인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정치ㆍ종교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 역시 죽음의 장벽을 넘어 다시 태어남으로써 영원히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신봉된다.)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이러한 티베트의 고유한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삶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생활하는 티베트인들의 정신세계는 중국의 강제점령 이후에 급속히 황폐화되고 타락하였다. 종교가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티베트를 중국에 통합시키기 위해서 중국은 티베트 승려들에 대해서 탄압의 강도를 높여갔고, 많은 사찰과 절이 파괴되었다.중국은 티베트를 소수민족자치구인 서장자치구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중국 정부는 진정으로 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