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 에 담긴 신화적 요소를 찾아서‘신화’라고 하면 신에 대한 이야기 또는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화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신화를 표면적으로만 바라보아서 그렇다.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신화적 요소들을 우리 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이 신화적 요소라는 것은 신화 속에 나오는 신 또는 영웅들의 특징이나 이미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들은 유명 상표의 이름이나 영화 제작의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포츠 상표인 ‘Nike' 는 승리의 여신 nike 의 이름에서부터 유래된 것인데 이러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Nike 라는 상표가 승리라는 이미지를 가지기를 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렇듯 실제로 우리 생활 속에서는 신화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녹아 있는데 영화 또는 애니메이션에서의 신화적 요소의 사용은 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관람하기에 힘든 경우도 있다. 이는 작품 제작자들이 관람자가 기본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자라오면서 헤라클레스의 특징을 알지 못했다면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작자들은 신주위에는 헤일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애니메이션 상에서 그렇게 묘사를 했는데 이러한 내용을 잘 모를 경우와 아는 경우 그 이해의 정도가 다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애니메이션‘헤라클레스’는 한 영웅의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 생각하듯이 영웅은 특이한 출생신분, 그리고 여러 시련을 겪고 모험을 하며 마침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이 애니메이션에서의 내용 역시 별반 다르지는 않다. 신화 속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신화적 내용과는 약간 다르게 변형을 시켰다. 하지만 신화에 관련된 요소가 애니메이션 중간 중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작품을 감상한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이전에도 보았던 작품이지만 신화에 대해서 조금 알고 다시 보니 곳곳에 숨어있는 신화적 요소를 찾아 볼 수가 있엇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애니메이션‘헤라클레스’의 내용을 살펴본 후에 그 안에 들어있는 신화적 요소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 그 분석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인들의 영웅관을 분석하고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나 자신의 영웅관을 알아보려 한다.1.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의 내용이 애니메이션에서는 기존의 우리가 책으로 또는 들어서 알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헤라클레스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힘이 쎄다’라는 것이 잘 표현 되어 있는데 이는 어렸을 때 제우스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나 말대신 마차를 끌고 다니는 부분에서 잘 나타난다. 이 영웅은 하이데스의 계획에 의해서 인간세계로 버려지게 되고 그는 제우스가 진정한 영웅이 되면 신이 다시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진정한 신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인간세계에서 헤라클레스는 잘 적응을 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헤라클레스가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회체계 내에서의 정상적인 생활이 되지 않자 헤라클레스는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한 모험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서 도움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그는 악당이나 괴물을 없애게 되고 그 결과 영웅이 된다. 그리고 후에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습까지 거는 진정한 영웅적 행위를 함으로써 그는 잃었던 신성을 찾게 되고 신이 된다. 하지만 신이 된 그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다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된다.2.‘헤라클레스’의 신화적 요소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에는 여러 가지 신화적 요소가 들어있다. 우선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을 보면 어떤 신인지 짐작할 수 있게 각 신들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우스의 근육질의 몸과 나중에 번개를 던지는 모습, 그리고 하이데스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이를 잘 볼 수 있었다. 또한 신이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신들의 주변에 헤일로를 그려놓았다. 그리고 해가 뜨고 지는 장면에서 헬리오스가 마차를 이끌고 가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것으로 이 애니메이션이 신화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에는 단순히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을 보여주었을 텐데 신화와 관련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헬리오스를 등장시켰던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중간에 헤라클레스를 단련시켜주는 인물이 나올 때 헤라클레스 이전의 영웅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이전의 영웅들의 업적이나 약점을 말해주면서 이 애니메이션이‘신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었다. 이런 점은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동상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Pan과 비슷한 강물의 신의 모습도 나오는데, 이것은 Pan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 보단 Pan적인 요소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괴물들의 특징을 보아도 신화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이데스가 보낸 괴물 중에는 히드라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 괴물이 있었다. 머리를 자르면 두개가 나는 괴물이었는데 이 괴물 역시 신화에서 유래 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또한 후반부에 나오는 거인족들의 모습 역시 이 애니메이션이 신화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었다.마지막으로 사랑의 신 큐피드의 모습도 나오는데, 맥이라는 여성과 헤라클레스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큐피드의 동상의 화살에 맥이 엉덩이를 찔리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직접적인 큐피드의 역할은 없지만 헤라클레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었다.3.그리스 신화의 영웅관과의 비교영웅은 예외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로서 사회의 존경을 받기도 하고, 무시당하거나 경멸을 당하기도 한다. 영웅이 속한 세계는 어떠한 고통을 받고 있다. 신화에서의 영웅은 이러한 고통을 제거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수단을 모험을 통해서 얻는다. 이러한 모험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재성취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의 헤라클레스의 모습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는 헤라클레스가 하는 여러 모험은 헤라클레스 자신이 자기내부에 있는 ‘신적 능력’을 스스로가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영웅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정의는 두가지로 이루어 진다. 우선 첫째로 인간세계에서의 영웅에 대한 정의인데, 이는 외부의 세력(큰 괴물이나 재앙 등)으로부터 도시의 시민들을 지키는 자를 말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신의 세계에서의 정의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용기가 있는 자를 말한다. 이 두가지는 서로 관련이 있는 듯하고 비슷한 류의 정의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두 번째의 것은 첫 번째의 것을 넘어선 것으로서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는 임의로 헤라클레스가 사랑하는 여인‘맥’을 설정을 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려는 장면을 설정함으로써 두 번째 의미에 더 무게를 두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힘이 쎄다는 외부적 요소 역시 영웅이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이지만 자기를 희생하기 위한 내부로 부터의 강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이 점이 헤라클레스에서 말하고자 하는 영웅관인 것이다.반면 그리스 신화의 영웅관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영웅은 테세우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이다. 이들은 각기 모험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영웅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다이달로스를 죽인 테세우스나, 메두사를 죽이는 페르세우스, 히드라를 죽이는 헤라클레스를 보면 이들 세 명은 모두 그 사회의 인간들을 괴롭히는 어떠한 외부적인 적을 물리친다. 그리스 인들의 사고가 잘 나타나는 점은 괴물과 영웅의 싸움에서 영웅이 항상 이기는 것이다. 괴물이라는 것은 단순한 의미보다 상징적인 해석으로서 그리스 인들이 가지고 있던 선과 악의 개념중 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적을 물리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어떠한 장벽을 없애준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해소를 통해서 사람들의 삶은 안정을 얻게 된다.신화라는 것의 내용자체가 상징화된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신화적 요소를 꼼꼼이 부석하면 그리스 인들의 영웅관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부적 장벽에 대한 해소가 필요했는데 그러한 해소는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라는 전능한 존재와‘인간’이라는 완벽하지 못한 존재를 결합시켜‘인간’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하나의‘하이브리드’의 탄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탄생과정을 거쳐 영웅을 만든다. 즉,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그들은 느꼇고 이러한 한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들의 장벽을 해소했던 것이다.4.나의 영웅관내가 생각하는 영웅관 역시 그리스 인들이 생각하던 영웅관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영웅이라는 것의 의미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고 보는데, 그것은 시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영웅이란 외향적인 모습과 내향적인 모습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으로서 상황에 따른 적절한 판단과 행동으로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이다. 물론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목적을 위하는 사람이다. 전체적인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것이다. 전체적인 목적이라함은 전쟁이나 재난 같은 위급 상황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생각하는 영웅은 전쟁과 같은 상황에 잘 나타난다고 본다. 전쟁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국가를 위해 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긴급상황이기 때문에 그 영웅적 요소가 있느냐 없느냐가 잘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리더쉽 뿐만 아니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거나 적군을 물리치기 위한 기지 역시 필요하다. 또한 인륜적으로 상대방의 목숨 역시 소중히 여길 줄을 알아야 한다.
원근법과 자본주의우리는 원근법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면 그것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가운데 원근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아는 사람을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원근법이란 것이 탄생하기에는 다른 모든 제도가 만들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그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것이 탄생하기에는 특히 자본주의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대에는 복식 부기 체계의 발명에 의거한 은행과 상업의 합리화와 지중해상의 교역통로를 나타내는 수학적인 새로운 방법의 고안, 기계 시계의 도입과 기하학적 배열의 새로운 토지 체계 등 수학적 조직화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배경은 이탈리아 도시들로부터 만들어졌다. 베네치아나 제노바 같은, 봉건 영주들로부터 독립한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생겼고 이들은 계급간의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의 기틀을 마련해갔다. 이탈리아에서는 원시적인 영리 추구 대신에 합목적성, 계획성, 타산성이 지배적으로 되었고 영리 경제의 근간이었던 합리주의는 더욱더 철두철미한 것이 되었다. 도시들은 여러 산업과 길드를 재조직했고, 원거리 무역, 환어음, 최초 형태의 상업 회사들을 발명하거나 재발명했다. 특히, 은행업과 상업의 발달로 인해 복식 부기가 고안되고 인도 수 체계가 도입되었다. 이것은 화학적 태도의 변화와 원근법의 창안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탈리아에서의 상업 자본주의의 번창은 숫자를 다루는 일을 이전에 라틴어로 교육받은 사제들로부터 자신들의 토착어로 교육받은 상인과 장인, 과학자와 건축가들로 이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 수학과 인도 수체계가 도입되어 영향력이 증대되었는데 여기에 기여한 것이 복식부기 체계이다. 새로운 수 체계와 복식 부기는 이탈리아의 자본주의적 심성의 합리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 방법이 점차 기계화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인간을 화폐 가치로, 노동자를 단순히 투자와 수익성, 이익 가능성과 손실 가능성에 따라 차변과 대변 체계 속법은 이렇게 수학적 원리에 의해 생산과 교역을 합리화하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질서, 초기 자본주의적 기업가들의 심성을 사회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알베르티가 회화 평면을 구함에 있어 따라야 할 원리로 상정한 기하학적인 비례 개념은 상업 자본주의의 요구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서 큰 영향을 미친 것은 ‘3의 규칙’이라 불리는 형식주의이다. 원근법은 가시적 세계의 비례적인 확장과 단축에 기초한 회화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는 불충분 했기 때문에 소실점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이 점에서도 원근법과 자본주의 간의 친화성이 발견되는데, 원근법은 화면의 중심으로서의 소실점에 의거하여 가시적 세계의 대상들을 비례의 원칙에 따라 배치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산의 측면에서 자본주의와 원근법의 친화성을 찾아볼 수도 있다. 이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분업과 기계화가 점진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이것과 원근법 간에 발견할 수 있는 친화성은 르네상스 시대공간 개념과의 연관성에서 찾을 수가 있다. 신학에서 무한한 공간개념이 등장한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는 동질적인 공간 개념이 확립되는데 이것은 17세기 이후 수학과 물리학에서 개념화된 공간과 같은 것이다. 이 것은 골드슈타인의 주장으로 원근법은 자연력에 의해 가동되는 단순한 기계들을 이용하는 분업 생산의 시작을 반영하는 재현 양식이라는 것이다.합리성 외에 원근법과 자본주의 간의 친화성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고리가 있는데 그것은 현대성의 또 하나의 주축 원리로서의 주체가 그것이다. 원근법은 보는 주체의 중심성을 내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에 대한 현대적인 개념화이다.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이것은 예술가가 고려해야 하는 세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유기적 운동의 영향, 원근법적 단축의 영향, 보는 자의 시각적 인상에 대한 고려이다. 이것들은 모두 주관성에 대한 예술적 인지를 전제한다. 유기적 운동이 도입하는 ‘재현되는 것의 주관성’이란 그림 속에 재현되는 인간 형상의 차원에 관련된 것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대로이기 때문이다.하나의 중심 시점을 가진 원근법에서 인간이 우월한 중심적 위치를 점하는 것은 자본주의 아래 발전한 새로운 형태의 사유 재산 제도에서 자라난 개인주의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세계의 척도로서 인간의 모델은 개인적인 기업가이며 이들은 자기 자신의 독자적이고 합리적인 결정과 분석에 의지한다. 르네상스 시대 철학에서는 개인적 자아, 사적인 자아의 표현이 많아졌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 및 소유제도와 밀접히 연계된 정치 형태와도 상관이 있다. 독특한 제도로서의 도시 국과와 정부 형태는 새로운 사유와 세계관에 대한 관용과 수용을 용이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근법 체계는 사실상 구체적인 개인으로서의 인간보다는 텅 빈 형식으로서의 주체를 규정한다. 또 원근법적 시각은 이미 신체의 눈으로부터 추상된 시각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사회는 아직 이러한 주체개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17세기에는 원근법 회화 공간이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현대적인 주체와 관계 맺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소실점 기능의 변화로서 나타난다. 즉, 르네상스 이탈리아 사회에서 화가달의 실천에 의해 생산된 원근법 회화들은 아직 구체적인 인간과 고나계를 맺는 반면, 17세기의 원근법 회화들 가운데서는 데카르트적인 텅 빈, 추상적인 주체와 관계 맺는 회화들이 출현함을 볼 수 있다. 브루넬레스키의 실험과 알베르티의 규칙은 관람자의 신체를 하나의 눈으로, 그리고 하나의 점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을 내장하고 있다. 이것은 원근법 회화 앞에 서 있는 구체적인 개인으로서의 관람자의 신체를 비워 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원근법의 구성은 관람자의 물리적인 눈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관람자의 눈은 원근법 회화 내적으로 구성된 소실점에 스스로를 일치 시켜야 한다. 관람자의 눈의 위치와 화가의 눈의 위치를 일치시킴으로써 회화의 내러티브적 통일과 공간적 통일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라파엘로에서의 원근법 단계에서는 우리가 보는 것은 주체가 대상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원근법과 소실점물들의 무릎높이에 일치하며 중심 광선에 의해 형성되는 이 각도에서 이미지는 소실점과 관람자가 실제로 점유한 지점을 결합시키도 있다. 이 공간 효과는 보는 주체를 실제 신체적 현존으로 가정하며 이미지 내에서 크기들은 실제 경험적 크기에 상응하는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중심 광선이 물리적 축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경험적인 좌표로서 사유되고 있는 듯한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미지 속에 상상적인 두 번째 소실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는 경험적인 원근법과 이론적인 원근법의 두 지대로 분할되어 있으며 전자는 신체를 가진 관람자로서의 주체를 후자는 탈육화된 초월적인 주체를 함축하고 있는 결과를 낳는다.우리는 ‘라파엘로-센레담-베르메르’가 이루는 계열, 즉 ‘신체적 현존-내화된 보는 자-탈육화된 초월적 주체’의 이러한 계열을 원근법의 규칙에 이미 선취된 형태로 내장되어 있던 구조가 현대성의 사회,역사적 전개에 따라 점차 현실적으로 실현되어 온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탄생 순간부터 원근법의 규칙이 담고 있던 탈육화된 주체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속에서는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었고 여전히 소실점은 경험적 개인, 관람자의 신체적 현존에 준거하였다면, 현대성 시대가 본격화되던 17세기 원근법에서 소실점은 구두점화되고 더 이상 그림 바깥에 실존하는 구체적인 경험적 개인에 준거하지 않게된다.소실점에 의한 주체 구성의 측면에서 추적될 수 있는 변화를 통해 원근법적 시각 양식이 시대의 인식틀 및 현실적인 사회적 조건과 결부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이것을 통해 원근법이라는 것이 그 탄생배경이었던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잘 알 수가 있었다.원근법과 주체이 두 번째 부분에서는 르네상스와 현대성을 우선 다루었다. ‘현대적’이라는 것을 르네상스와 연관시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현대성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의 시대를 ‘현대’로서 이대성의 원리는 이성에 입각한 ‘합리성’ 이라고 한다. 이 합리성의 원리는 ‘주체성’의 원리와 연결된다. 합리성과 주체성은 분리되지만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태도와 원리에 의해 현대성을 파악하는 것이 그것을 시대 구분적인 범주로만 보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상이한 시대와 사회들 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정당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 설 때 르네상스와 현대성의 관계 역시 그 불연속과 연속의 상호 연관 속에서 파악하고, 적어도 르네상스를 중세와 단절하고 현대로 넘어가는 가교로서 정당하게 자리매김하기 더 수월해질 것이다.태도의 측면에서 르네상스를 살펴보면 르네상스인들은 이전 시대와의 단절로서 자기 시대를 이해했다. 르네상스는 서구의 역사를 고대와 중세와 현대로 분할하고 있으며 이 세 시대에 가치 판단을 부여하고 있다. 고대는 자신이 준거해야 할 전범으로 중세는 암흑시대로, 현재를 구조화하는 직접적인 과거를 ‘암흑’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비록 지나간 고대의 황금 시대의 부활일지라도 ‘빛나는’ 미래의 확실성을 설정한 르네상스는 확실히 혁명적인 사유 방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이 현대적 태도는 자신의 현대성을 여전히 고대에 준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불완전하고 반쪽자리에 불과했다. 중세의 암흑기와 단절하는 현대는 고대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신구 논쟁’ 에 가서야 비로소 극복된다. 다음으로 내용의 측면에서도 르네상스는 현대성의 시대와 일정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는 분명히 현대의 주체성의 원리가 함축하는 개인주의가 발아하는 원천의 하나였다.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르네상스는 현대성의 시대와 이어진다. 르네상스는 합리성의 지배력이 확장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또한 르네상스의 세계는 복합적이기도 했다. 기하학적인 수학적 합리성의 세계였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상징의 세계이기도 했다. 르네상스가 현대성의 ‘문턱’인 것은 이렇게 그것이 아직 이전 시대의 유산에서 완전다.
원근법의 공간, 주체, 그리고 소실점미술 작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한번 쯤은 느끼는 것이 있다. 평범한 일반인인 우리는 미술 작품을 볼 때 우리에게 익숙한 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긍정, 또는 부정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얼마나 친숙한가에서부터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친숙함은 그 사람이 어떠한 교육을 받았냐로부터 유래된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데 ‘교육’이라는 것은 그 사회의 문화,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관계들 속에서 우리의 사고체계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생긴 우리의 안목으로 미술작품을 보게 되는 것이다.이번 레포트에서 다룰 주제인 ‘원근법’에 대한 우리가 생각해 볼 것 역시 앞에서 언급한 친숙함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같은 경우에는 ‘원근법’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우리의 시각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특히 풍경화를 그릴 때 많이 사용된다. 나의 시각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에 다른 화가들(인상파 등)의 그림에 비해 그 작품을 볼 때 안정감, 친숙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표면적인 원근법의 이해라는 것을 주은우의 ‘시각과 현대성’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여기서 나오는 원근법에 대한 개념은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즉, 표면적인 원근법에 대한 이해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나의 사고자체를 흔들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원근법의 공간, 주체, 그리고 소실점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1. 원근법의 공간원근법에서의 공간은 현실에서의 공간과 다르게 인지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원근법의 가장 기본적인 발상 자체가 2차원적 ‘평면’에 3차원적 ‘공간을 재현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파노프스키의 고전적인 연구는 원근법을 ‘상징적 형식’으로 정의함으로써 원근법이 자연적인 시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따라서 변화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시각임을 보근법의 시각은 생리적인 시각으로부터 대담하게 추상된 시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원근법의 시각 공간은 무한공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전까지의 공간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무한이나 무라는 개념을 인정할 수가 없었고 그들은 텅빈 공간을 무서워 했다. 그들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불연속적인 것이었고 물체들은 동질적이고 무한한 차원적 관계들의 체계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그릇 속에 병치된 이질적이고 절대적인 내용들이 된다. 이러한 세계관은 중세에서는 발전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 ‘무’란 것은 신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무를 파괴하고 무화시켰다고 해설함으로서 한번 더 부정하게 된다. 원근법의 공간은 그것이 과학과 철학에서 담론으로 체계화되기 전에 시각 예술의 영역에서 선취된 무한한 공간이었다. 이 점은 소실점에서 잘 나타난다. 소실점의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사라지는 점’ 이다. 이는 원근법 상에서 직교선들이 무한대로 진행하면서 마치 수렴되는 듯이 나타나는 점이다. 그 선들은 무한하게 진행하면서 마치 수렴되는 듯이 나타나는 점이다. 하지만 실제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평행하게 무한히 달리는 것이다. 여기서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수렴한다고 하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즉 ‘무한’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상징화 시킨것이다. 이 소실점은 원근법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로 원근법의 무한한 공간을 조직하는 그것이다. 알베르티의 체계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산술적으로 통일된 공간 이미지를 수학적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심리적, 생리적 공간 구조로부터는 추상된 것이지만 무한한 연장의 공간적 구조를 구성하였다. 결국 원근법은 자의적으로 취해진 소실점에 중심을 두는 무한히 연장된 연속적인 공간을 구성하였으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단절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탈신학화된 공간이며 개별 대상들에 선행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은 물리적인 3차원으로 구성되는 연속적인 양으, 개념화되지 않은 형태로서 이미 선취한 것으로 이것은 그가 바로 통일된 무한한 공간과 형상들에 대한 통일된 정보 및 이것들의 공간 속에서의 정확한 상대적 배치를 이론화했던 것이기 때문이다.원근법에 대한 의문 역시 존재하는데 이는 ‘하나의 중심’에 의해 조직되는 무한한 공간인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르네상스인들은 무한한 것은 중심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원근법의 수학적 공간은 많은 것을 유클리드의 공리에 의지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근법의 공간은 그 자체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간과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원근법의 공간은 처음부터 무한의 문제를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은 무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심화되기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근법 체계는 가시적 세계를 비례적으로 확대하고 단축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 때 비례 자체는 모든 비율이 결정되는 투사점을 요구한다. 결국 원근법의 공간은 투사되고 좌표화된 공간이며, 가시적인 것들의 모든 위치는 지평선과 수직축 및 소실점과의 관계 속에 의미화된다.원근법에 대한 논란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논란들은 데자르그와 그 동시대인들에 의해 무한한 공간과 그것이 하나의 중심에 의해 조직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개념화되므로써 해결이 되었다. 이렇게 원근법은 자신이 가시적 공간 속에서 실천했던 것을 담론의 형태로 얻어지게 된 것이다.2. 원근법의 소실점소실점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근법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실점에 우리의 시각을 맞춤으로서 우리는 그 작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볼 수도 있다. 소실점과 일치된 보는 사람의 눈, 즉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눈이 가시적인 세계를 질서짓고 배치하는 중심이다. 따라서 원근법은 보는 사람을 가시적인 세계의 중심이 되는 ‘보는 주체’로 정립한다. 르네상스 원근법이 그림에 묘사된 주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이상적인 시점에 소실점을 위치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이 무한한 시각이 부여된다. 세계의 깊이는 보는 주체의 시점에 준거하여 제거된다. 지평선과 직교선들에 의해 깊이는 관람자로부터의 거리의 문제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이한 존재적 수준과 가치 수준에 예속되던 수직적인 깊이는 동질적인 수평적 깊이에 의해 대체된 것이며 따라서 세계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론적 의미를 상실한다. 더구나 소실점이 위치하는 지평선이 관찰자이 눈 높이에 고정된다는 것은 인간의 시각을 세계의 척도로 설정한다는 뜻이다. 중심자리에 위치한 시각적 주체는 대상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분리되어 대상들을 통제한다. 거리점은 이것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소실점의 위치와 동일하며 직접적으로 관찰자의 눈에 해당하는 것이다. 거리점은 관찰자의 눈에 고정됨으로써 세계의 척도로서의 인간을 재확언하며 역으로 거리점에 고정된 관찰자의 눈은 대상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척도로써 대상들을 가늠하고 분류하며 통제하는 힘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한 거리점과 소실점의 거리는 이론적으로 무한하다는 점에서도 세계의 척도의 눈에는 무한한 시각이 부여된 것이다. 이렇게 주체의 중심적인 시점에 의해 배치되고 변형된다는 점에서 원근법의 소시점은 설명의 과학을 위한 공간을 준비한 것이다. 이 공간은 모든 것이 추상화되고 등치되는 중립적이므로 동질적인 공간이며, 따라서 그 속의 사물들도 연속적이고 동질적인 공간상의 위치와 거리에 의해 계산 가능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3. 원근법의 주체원근법에서는 응시의 자리로서의 소실점이 시각의 주체를 구성하나다. 시각적 0으로서의 소실점은 이미지의 무한성을 창출하면서 연동자로서의 주격처럼 관람자의 시점을 화가의 시점과 일치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라캉에게서 발견하는 응시와 눈의 일치임을 알 수 있고 이것이 곧 동일시이다. 라캉은 ‘거울단계이론’에서 거울을 통해 우리가 동일시를 경험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그림을 볼 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소실점은 응시의 장소이며 대상으로서의 응시의 자리인 소실점과의 동일시를 통해 주체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 주체는 시각적 자기문에 가능하다. 소실점이란 것 자체가 부재하는 점, 즉 맹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원근법 코드 내에서 각각의 이미지는 관람자에게 단일체적인 보는 주체로서 그림 바깥에서 자신을 객관화할 가능성과 자기 자신을 지각할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가려진 이 큰타자의 응시의 자리에 자신의 눈을 일치시킴으로써 이미지들의 가시적 세계와 관계 맺고 이미지들의 배치가 창출하는 의미의 세계로 들어간다. 소실점과의 눈의 일치 또는 동일시를 통해 그는 주체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응시가 생략된 형태인 소실점과의 동일시 및 이미지들의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객관적 존재를 확증받기 때문에 주체의 시각적 에고의 환영이 구성된다. 이렇게 자신의 눈을 소실점이라는 응시의 자리에 맞추기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 할 수 있는 것이다. 원근법은 그 구성 자체로부터 시점을 연역하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인간은 이 그림의 구성이 자신에 앞서서 규정하는 시점, 즉 소실점에 자신의 눈을 종속시킴으로써 주체로 구성된다. 말하자면 시각 기관으로서의 눈은 원근법의 규칙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각적 주체를 구성하는 원근법의 시점은 자신의 투사적 공간 바깥에 준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성 자체로부터 연역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브루넬레스키의 실험에 의해서도 잘 나타난다. 원근법적 구성에 의해 생산되는 주체는 브루넬레스키의 구멍에 의해 제한당한다. 원근법이 정상적인 시각이 작동을 반복하는 듯이 보이는 한, 여기에 대해서 정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원근법뿐 아니라 시각의 작동 자체도 이미지가 주어진 지점에 집중되고 눈이라는 작은 틈을 통과하도록 제한되는 조건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 자연적인 작은 틈에 의해 에고의 종합 기능에 준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나’는 표면에 대한 투사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신체 표면의 심적인 투사인 것이다. 즉, 시각적 에고는 눈이라는 작은 툼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 그리므로 이러한 점에서 브루넬레스
Initial sequence of the chimpanzee genomeand comparison with the human genome오늘날 유전공학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다. 유전공학에 대한 연구는 인간이 어디서부터 왔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를 도와줌으로써 인간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줄 수가 있다. 1953년 왓센과 크릭에 의해 DNA 구조가 밝혀진 이후로 인간과 관련된 무수한 질병들은 DNA에 암호화 되어 있는 유전자와 그 유전자로부터 생긴 단백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헌팅턴병이나 근디스트로피 등의 유전자 관련 질병을 확인한 후에 여러가지 병의 발생이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일어남을 알게 되었고,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각 유전자를 만드는 암호가 담겨있는 DNA의 서열을 확인하려는 작업에 활기를 띄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생명체의 DNA 서열을 모두 밝히려는 계획이 수립되었는데 이것이 ‘게놈프로젝트’이다. 인간의 게놈정보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곤충, 마우스, 래트 등 실험모델생물의 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 방법이나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지적능력, 풍부한 감성, 고도의 기술개발능력 등 다양한 인간 고유의 특성을 규명하는 일은 지금의 동물모델시스템으로는 불가능 하다. 따라서 인간과 가장 유사한 모델실험동물 시스템이 필요한데 특히 게놈의 구조가 인간과 98%이상 동일하면서도 형태적인 차이는 물론 지식이나 감성 등 뇌의 활동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나타내는 침팬지의 게놈연구는 인간의 뇌 기능연구에 필수적인 정보로서 그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 말은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 정보에서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를 알아봄으로써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밝혀낼 수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인간 고유 질병의 메카니즘을 규명함은 물론 분자 수준에서 인류 진화의 역사 규명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줄 연구이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침팬지 게놈과 인간 게놈의 비교를 통한 차이와 평가된다.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이 각각 30억 개가 넘는 염기 쌍을 포함하기 때문에 4%란 아주 상당한 차이가 된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 3500만개의 염기 쌍이 서로 다르다는 결론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즉,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는 두 인간 사이에 비해서 10배 이상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미라는 말이다. 이 논문에서는 인간과 침팬지의 비슷한 점보다는 차이점에 더 신경을 썼다. 크게 게놈 sequencing, genome evolution, gene evolution로 나누어 졌다.1)Genome sequengcing and assemblySequencing시에 수컷 침팬지의 게놈을 이용을 이용한 것으로 데이터는 PCAP와 ARACHNE을 이용해서 정리를 했다. 이 논문에서는 주로 ARACHNE을 이용했는데 이는 이것이 좀 더 연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한 결과는 두 Haplotype의 일치를 보여준다. 침팬지와 인간의 게놈 비교를 위해서는 뉴클레오티드 단계의 정확성을 이용한다. 침팬지 게놈 시컨스의 98%가 Q40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WGS 시컨스 사이에서 단백질 코딩 할당 영역을 비교해 보면 침팬지의 염색체 21, 22 번의 시컨스와 인간의 게놈은 WGS 치환영역에서 넘어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더 높은 질의 염기를 얻기 위한 분석을 제한함으로써 WGS 조합의 뉴클레오티드 단계의 정확성은 ‘끝난’ 시컨스와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된다. 구조적 정확성 또한 일차 도너에서 온 반응이 끝난 BACs와의 비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최근에 복제된 부분들이다. 복제되고 독자적인 부분들의 BACs를 분석은 그 전의 것이 더 많은 코티그로 잘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디그 순서의 불일치 또한 복제되고 독자적인 부분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 또한 침팬지 게놈의 최근 연구는 침팬지들 사이에서의 분화도 설명해 준다. 서아프리카 침팬지의 다양성은 사람 인구의 다양성과 비슷하다.2)Genome evolution인간과 침팬지 사이것이다. 이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큰 규모의 염색체 구조를 가진 것은 지역적 패턴차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말해준다. Insertion 의 경우 완전히 싸인 insertion 과 덜싸여진 insertion으로 나누어 진다. 사람과 침팬지를 비교해 보면 사람의 insertion은 완전히 싸여 있었고 침팬지의 경우에는 insertion의 반만이 싸여져 있었다. 완전히 싸인 insertion의 분석은 대부분이 작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인간과 침팬지 게놈은 각각 40-45Mb 의 종특이적 진정염색적 시컨스를 가짐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뉴클레오티드 치환에 따른 것이다. 다음으로 ERVs는 인간혈통에서는 사라진 것으로 HERV-K만이 유일하게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침팬지와 인간의 특이적 insertion에서 찾아진다. 놀랍게도 침팬지 게놈은 두가지의 가역적인 요소들을 가진다. 이는 작은 것인 PtERV2와 큰 것인 PtERV1로 나뉜다. PtERV1같은 것은 인간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붉은털 원숭이에서는 발견되는 것이다.Alu요소들은 세 배 정도 인간에서 더 활성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침팬지 특이적 요소들은 AluYcl 에 속해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 Alu요소들은 두 개의 새로운 것에 들어있다.(AluYa5, AluYb8) 이것은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질 때 변이된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 Alu 요소들 중 몇몇은 고도로 다양화 되어 있는데 이것은 침팬지와 인간이 갈라지기 전부터 발달되었음을 보여준다.2.최근연구동향동물게놈프로젝트에 대한 최근 연구들을 살펴보았다. 이는 의견 개진이 아닌 단순한 연구동향에 대한 자료제시이다.1)붉은털 원숭이 게놈 지도 완성 [2007년 4월 13일]‘사이언스’ 4월호 에서는 ‘레서스 원숭이’로도 불리는 붉은털원숭이의 게놈 지도를 해독한 결과 인간과 93%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에게는 없는 일부 공유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성된 데 이어 6백만년 전 인류 조상과 갈라진 침팬지가 99%에 가까운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으며 다른 동물들의 게놈지도도 속속 완성되고 있어 다양한 유전자들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게 됬다. 연구진은 붉은털원숭이와 다른 영장류들을 비교함으로써 이들의 차이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근 200개라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이 가운데는 털을 만들고 면역반응에 관여하고 막단백질을 형성하고 난자와 정자를 결합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이번 연구에서 사람에게는 페닐케톤뇨증을 일으키지만 원숭이에는 그렇지 않은 유전자를 발견했고 붉은털원숭이가 사람과 침팬지보다는 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덜 갖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연구진은 또 일반적으로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들은 다른 영장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해 왔지만 영장류 전반의 유전자는 설치류나 개보다는 빠르게 진화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발견했다.2)주머니쥐 게놈 지도 완성 [2007.5.10]유대류 동물 주머니쥐의 게놈 지도가 완성되어 인간의 진화 역사와 질병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던져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노델피스 도메스티카라는 학명을 갖고 있는 남미 원산 주머니쥐는 회색 빛깔에 짧은 꼬리를 갖고 있으며 피부 주머니에 새끼를 넣고 다니는데 위험이 닥치면 죽은척 하는 몸길이 15cm의 작은 동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와 하버드 대학 등 연구진이 3년에 걸쳐 완성해 네이쳐지와 게놈 연구지에 동시에 발표한 주머니 쥐의 유전자 지도는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와 비교해 두 그룹이 언제 무슨 이유로 갈라져 나갔는 지를 밝히기 위한 대규모 연구의 한 부분이다. 연구진이 주머니쥐를 선택한 이유는 포유류 중에서 유대류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이들의 새끼는 배아기의 매우 초기에 태어나 어미의 주머니 속 젖꼭지에 매달려서 태아로서의 발단 단계를 마친다. 이들은 면역 기능이 없는데도 더러운 환경에서 생존하며 척수가 완전히 절단된 경우에도 새로 자라나는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어 인간에게에 일어났다는 점이라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이들은 유대류와 인간이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후 일어난 유전적 변화의 95%가 단백질 생성 DNA에는 개입하지 않고 유전자의 활동을 통제하는 DNA 염기서열에만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진화는 유전자 자체보다는 유전자 통제에 훨씬 많이 개입한다” 고 말했다.3)기타(과거 자료도 포함)2004년 12월 ‘국제닭게놈 염기서열 해독 컨소시엄’이 발표한 닭 게놈 지도에 따르면 닭의 염기쌍은 모두 10억개로 인간(31억 염기쌍)의 3분의 1 수준였다. 그러나 유전자 숫자는 2만∼2만3,000개로 인간(2만∼2만5,000개)과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놈 분석에 사용한 닭은 남아시아에 서식하고 있는 적색야계이다. 적색야계는 오늘날 집닭의 조상으로 현재 사육 중인 닭들과 유전적으로 유사하다. 이번에 발표된 닭의 게놈 지도는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분석 결과 사람과 닭은 3억1,000만년전에 초기 파충류에서 갈라져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최초의 새인 아르케옵테릭스가 나타난 것이 약 1억5,000만년전이므로 초기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의 분기는 훨씬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닭의 전체 염기서열 중에 인간 게놈과 동일한 부분은 2.5%에 불과했다. 과학자들은 이 부분에 생물의 생존과 관련한 정보가 담겨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닭의 게놈 정보는 이러한 진화과정을 설명하고 포유류가 잃어버린 유전자가 언제, 왜 없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닭의 유전자 분석 결과도 흥미롭다. 닭은 냄새를 맡지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놀랍게도 후각 유전자를 상당히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또 머리카락, 손톱, 부리나 깃털을 구성하는 케라틴 단백질 유전자가 인간과 닭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여 각기 독자적인 유전자 진화과정을 겪은 것으로 추정됐다. 또 지금까지는 인간에게서만 발견된 중요한 면역반응단백질인 ‘인터류킨-26’을 만드는 유전자가 닭에도 있는 것으로밝혔다.
나의 뿌리를 찾아서우리는 흔히 ‘신화’ 라고 하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또는 신비한 이야기 등으로 인식을 한다. 이 인식은 신화의 표면적인 내용에만 신경을 썼기에 그렇다는 것을 ‘살아있는 신화’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내가 무엇을 알기전에는 그것은 내가 아는 지식이 아닌 단편적인 표상일 뿐이다. 그 표상을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충분한 노력이 수반되었을 때 진실이 나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신화라는 어원의 뜻을 살펴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신화(myth)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 어원은 “발화(utterance)” 혹은 “사람이 말하는 어떤 것(something one say)” 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것을 알 수 있다. 즉 신화는 단순한 사실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의 리얼리티를 지닌다는 것이다. 경험상 증명될 수 없는 리얼리티를 전달하는 옛날이야기들은 인생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수반되는 위험들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그것이 속한 문화권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이런 것들은 이 책의 각 파트에서 잘 나타나 있었다. 특히 창건신화에서 잘나타나 있었는데 창건신화라는 것이 원래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잘 드러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이 책의 서문에서 보면 신화의 의미에 대한 다음단계인 어떻게 신화가 인간의 실존에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신화라는 것은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 속에 반영되어 있는 진리인 동시에 현대인들의 삶과도 연관이 있는, 인류전체에 대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진리라는 것은 신화라는 미로안 곳곳에 숨겨져 있다. 우리가 자세히 들여보지 않고 체험해 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진리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J.F.비얼레인이 쓴 ‘살아있는 신화’에서 여러 문화권의 세계관을 잘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관련된 여러나라의 신화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신화가 현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거의 모든 신화적 사건들은 그 사회가 속해있는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과 태도 및 기대치들에 토대를 두고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신화’에서 인상적인 구절인 ‘신화는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영원한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를 보면 이 말이 더 와닿게 된다. 즉,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통적인 요소는 인간의 무의식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이것으로 본연의 인간의 모습을 알 수가 있고 그리고 외부적인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는 모습을 봄으로서 내가 지금 속해 있는 사회의 특징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이 책은 크게 5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각 부분마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신화의 원천으로서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씩 드는 생각이나 행동들의 기원이 신화와 관련이 되어 있는 모습은 특히 아버지와 아들, 남녀간의 사랑에서 잘 나타나 있었다. 그 중 아버지와 아들에서의 이 구절을 살펴보았다.아버지로부터 정체성을 부여받고 다시 개인적인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그분들게 반항하는 두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다.이 구절을 보았을 때 반항하다는 것에서 사춘기가 떠올랐다.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더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구절이다.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의 말에 복종을 하다가 주체성을 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반항을 하게 되고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반항이라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모든 힘들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반항적인 모습은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 것 같았다. 미궁을 탈출하면서 다이달로스는 아들인 이카루스에게 너무 높게 날지 말고 너무 낮게도 날지 말아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다이달로스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너무 높게 날다가 떨어져 죽게된다. 이것과 저 구절의 유사점은 아버지, 즉 권위적인 힘에 대한 반항이라고 볼 수 있다. 이카루스는 아스러운 면도 있지만 부분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충분히 타당성을 지닌다고 본다. 즉,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자신의 주체적 시각에서 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죽음으로 이르렀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달로스라는 ‘아버지’는 자식들이 자신을 닮기를 바랬지만 자식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 볼 수도 있다. 특히 아들들은 아버지로부터 이미 정체성을 물려받았으면서도 자기만의 개별적인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토르와 오딘의 신화에도 잘 나타난다. 자기 자신만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 다른이들에게 ‘내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 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이룬 성과들만을 드러낼 뿐이다.다음 파트에서 나오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신화를 알아보자. 오늘날에도 중요시 여기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것은 예전에도 중요했기 때문에 많은 형태의 신화로서 나타나 있다. 특히 여기서 소개된 신화들의 특징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쳤을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이 가진 변화의 힘을 이야기했는데 신화는 인간의 실존이 타인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그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사랑은 인간이 진정으로 되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을 지향하는 생산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촉매제이며 우리의 사명을 자각하게 해주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랑의 힘은 신화를 구성하는 근본주제이며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의 주제이다.이 구절을 읽어보면 평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은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사랑, 연인들 사이의 사랑, 그리고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책에서는 주로 연인들 사이의 사랑이 주로 다루어졌다. 이 파트 역시 백년전, 천년전 사람들의 생각이나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진정한 사랑은 세상의 모든 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본다. 유한성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는 유한성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방법에 대한 서술이라고 본다. 인간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랑이라는 것이 더 돋보이게 된다고 본다. 만약 인간이 신처럼 죽지않는 불멸성을 지니고 있다면 사랑의 빈도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이런 것은 인간의 유한성이랑 틀안에서의 사랑이 얼마나 더 가치있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다.이런 아버지와 아들이나 남녀간의 사랑 말고도 중요한 것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신화들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종류의 신화들도 인간과는 연관이 있지만 앞의 두 신화는 직접적으로 인간관계와 관련있는 것을 다루었기 때문에 다르게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파트에서는 자연과 본성에 관한 신화를 다루었다.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면 마찬가지로 자연 또한 신의 일부이다.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것은 궂이 말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는 진실이다. 하지만 자연이 신의 일부라는 것에는 동감하기가 어렵다. 삼단논법의 방법으로 생각해보게 된다면 인간은 신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놓은 신화에 대한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자연, 즉 계절의 바뀜과 관련된 여러 신화들은 인간의 발상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인간의 창조적인 생각으로 나온 것을 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조금 더 낫게 바꾼다면 인간의 창조성은 신에 의한 자연의 관리를 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자연과 인간본성에 관한 신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부류의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공통점이 발견된다. 날씨를 관리하는 신이 납치되거나 숨거나 죽는다. 그리고 새롭게 부활 또는 복귀를 함으로써 그 날씨, 계절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먼옛날 우리조상들은 지금처럼 계절의 변화원인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신화를 만들어서 원인을 구명할려고 노력한 듯하다. 이렇게 신화라는 것을 만듦으로써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자신의 자각, 정체성, 주위의 환경에 는 우리자신의 인생의 거울이다.이 말은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것들 중 인간의 집단무의식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타장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기 전에 우리의 내부의 무의식 세계에서는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 영웅신화에 표현되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더 잘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신화라는 것은 우리 무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화에 대한 공부를 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웅을 꿈꾸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무력함을 느꼈었기 때문이고 그 것을 극복해줄 만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여러 한계들을 부딪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것을 극복할 만한 영웅을 바랬던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개인무의식과 달리 집단무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웅신화에서는 실재의 인간 삶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 형상적으로 제공되어져 있다. 우리들 각자는 바로 그러한 내면의 ‘영웅’에 해당하는 원형상에 의하여 자신이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무의식적으로 지시받게 되는 것이다. 원시심성의 집단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현대인들도 신화적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이 도야되고 있는 것이다.영웅신화를 살펴보면 그것이 만들어진 나라와는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들이 있다. 이 책에서 나온 테세우스, 쿠클레인, 오쿠니누시, 케찰고아틀의 이야기에서도 공통부분이 발견되었다. 신인 아버지와 인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거나 비정상적인 탄생,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겪는 시련, 죽음의 세계에 갔다오는 것 등 여러 가지 공통부분이 있었다. 이런 부분이 많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인간의 집단 무의식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항상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런 영웅신화를 만들어서 우리의 정체성과 관계성을 확립할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렸을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웅을 바라보던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