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이해하기목 차투자와 투기 위험 주식투자의 장점 증권분석 주식의 기본적 분석 주식의 기술적 분석 결론투자와 투기“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 도박투기는 투자와 명확하게 구별하기는 힘들지만, 투기는 투자와 달리 애초의 의도가 어느 정도의 위험에 대한 적당한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보통 개인적인 직관이나 사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쉽지만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을 이러한 투기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투기투자위 험A투자안이 B투자안보다 높은 수익률가능 A투자안을 상대적으로 좋은 투자안으로 일반적이게 받아들입니다.현실세계는 위험을 내포 하고 있다A투자안과 B투자안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선호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A투자안이 B투자안보다 더 좋은 투자안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주식투자의 장점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가능성 - 기업의 성장성 때문에 기업에 투자를 함으로써 높은 수익환금성 보장 - 증권시장을 통하여 수시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보관 및 관리의 편리성 - 증권회사에서 대행 → 투자자의 안전성과 편리성 보장높은 활용성 - 각종 보증금으로 대납상속과 증여의 용이성 - 복잡한 등기절차가 필요없이 명의개서로 가능증 권 분 석증권시장의 가격분석 - 전반적인 경제환경과 관련 산업전망 - 기업 내부 여건에 대해 분석증권사의 자료와 각종 공시자료본 인 이 직 접단기투자장기투자주식의 기본적 분석기업의 내재가치(intrinsic value)에 집중하여 분석 - 기업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분석 경제환경, 소속된 산업의 전망, 기업의 영업 및 재무관련 요인성장성 분석매출액 성장율 매출액성장률 = (당기 매출액-전기 매출액)/전기매출액 * 100%구분제 31 기제 30 기제 29 기매출액26,117,78620,084,17718,465,359영업이익4,481,5003,099,9592,856,220경상이익4,294,227440,853156,064당기순이익3,170,4033 = 8.8% 31기 : (26,117,786-20,084,177)/ 20,084,177* 100 = 30.0%성장성 분석영업이익 성장율 영업이익성장률=(당기영업이익-전기영업이익)/전기영업이익* 100% - 매출총이익에서 판매비와 관리비를 차감 제31기 영업이익 성장률 = (4,481,500-3,099,959)/ 3,099,959 * 100 = 44.6% 제30기 영업이익 성장률 = (3,099,959-2,856,220)/ 2,856,220 * 100 = 8.5%※ 제 31기 각 분석수치와의 비교 :매출가격 인상,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원가절감, 고정비의 레버리지 효과당기순이익 성장률 당기순이익성장률=(당기당기순이익-전기당기순이익)/전기당기순이익*100% - 당기순이익은 세(稅) 후 순이익으로 주주에게 귀속되는 이익 제31기 당기순이익 성장률 = (3,170,403-313,216)/ 313,216* 100 = 912.2% 제30기 당기순이익 성장률 = (313,216-123,505)/ 123,505* 100 = 153.6%※ 제 31기 각 분석수치와의 비교 : 영업외 비용의 감소안정성 분석구분제 31 기제 30 기제 29 기유동자산6,197,23120,084,17718,465,359고정자산18,512,57214,807,93515,284,204유동부채6,780,8715,415,5675,869,556고정부채4,597,3638,390,53211,366,020자본13,331,5686,969,9825,829,941유 동 비 율 유동비율 = 유동자산/유동부채 * 100% - 유동비율은 기업의 단기적인 상환능력을 측정 - 제31기 유동비율 = 6,197,231 / 6,780,871 * 100 = 91.4% - 제30기 유동비율 = 5,968,146 / 5,415,567 * 100 = 110.2% - 제29기 유동비율 = 7,781,313 / 5,869,556 * 100 = 132.6%※ 유동비율이 낮다는 것은 단기 지불능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 ※ 유동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31기 부채비율 = (6,780,871 + 4,597,363) / 13,331,568 * 100 = 85.3% - 제30기 부채비율 = (5,415,567 + 8,390,532) / 6,969,982 * 100 = 198.1% - 제29기 부채비율 = (5,869,556 + 11,366,020) / 5,829,941 * 100 = 259.6%※ 활황기에는 타인자본을 통해 여러가지 이득을 봄 ※ IMF 외환위기와 같은 불황기에는 뼈아픈 구조조정의 대가 치룸수익성 분석구분제 31 기제 30 기매출액26,117,78620,084,177영업이익4,481,5003,099,959경상이익4,294,227440,853당기순이익3,170,403313,216구분제 31 기제 30 기자 산24,709,80320,776,081부 채11,378,23413,806,099자 본13,331,5686,969,982(손익계산서)(대차대조표)수익성 분석총자산이익률(ROA) 총자산이익률(ROA) = 당기순이익/(기초자산+기말자산)/2 * 100% - 총자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수익창출에 대한 기여도 측정 - 주주의 투하자본 단위당의 이익※ 총자산이익률 = 당기순이익/총자산 = 당기순이익/매출액 * 매출액/총자산 (매출액순이익률) (자산회전율)자기자본이익률(ROE) 자기자본이익률(ROE) = 당기순이익/(기초자본+기말자본)/2 * 100% - 투자된 자기자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는가를 측정 ※ 당기순이익/매출액 * 매출액/총자산 * 총자산/자기자본 (매출액순이익률) (자산회전율) (자본구조)주식의 기술적 분석미래의 가격 움직임을 예측할 목적으로 주로 차트를 사용하여 시장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기술적분석의 전제 - 주가 움직임에는 모든 정보가 반영되어 있다. - 주가는 추세를 가지고 움직인다. - 역사는 반복된다.기술적 분석은 한눈에 파악 가능 하지만, 과거 자료를 통한 미래주가 예측방법이기에, 틀리거나,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 기술적 분석은, 그러나 시장가격과 이동평균값과의 괴리가 궁극적으 로 추세전환시점에서 시차(Time lag)를 발생시켜 투자자로 하여금 낭패를 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지지와 저항이 동 평 균 법이동평균선의 배열이동평균선의 교차추 세 분 석추세(Trend)란 가격이 움직이고 있는 방향 - 산(고점)과 골짜기(저점)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를 추세 - 추세는 크게 상승추세와 하락추세 그리고 횡보세로 구분 - 횡보세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기간 하락추세의 형 성을 위한 에너지가 비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횡보세 시에는 쉬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지지와 저항추 세 분 석추 세 선배 당1. 재무제표 승인 : 제 11 기 - 자산총계 (백만원) : 158,869 - 매 출 액 (백만원) : 296,709 - 부채총계 (백만원) : 120,231 - 경상 이익 (백만원) : 16,166 - 자 본 금 (백만원) : 20,000 - 당기순이익 (백만원) : 11,165 - 자본총계 (백만원) : 38,638 * 주당순이익 (원) : 2,958 * 외부감사인 감사의견 : 적정 2. 배당 내역 가. 주당배당금 : 600원 나. 배당총액 (원) - 현금 : 2,265,012,000 - 주식 : - 다. 배당률 - 시가대비 : 6.90 % - 액면가대비 : 12 % 라. 배당성향 : 20.29 %현 금 배 당 기업의 납세 후 순이익 중 유보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주주들에게 현금 으로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현금배당입니다.현 금주 식 배 당 경영진이 여러 목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사 내에 유보하고, 주식으로 배당하여 주주들의 보유주식수를 늘리는 것1. 신주의 종류와 수 : 기명식 보통주 319,996주 2. 신주의 1주당 발행가액 : 5,000원 3. 신주배정기준일시 : 2002년 01월 01일 4. 신주배정비율 : 0.05주/1주당 5. 신주의 재원 - 재평가적립금 1,599,980,000원 6. 배당기산일 : 2002년 01월 01일배당 수 익을 얻기 위한 전략배 당 과 주 가현금배당과 주가 현금배당 많은 기업일수록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추고 기업 ※ 지나친 현금배당 시행 시 기업 수익구조 악화 우려 ※ 배당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대주주들에 의해 소액 투자자들이 농락주식배당과 주가 무상증자 시 일반적으로 주가가 오르는 경향. 출자를 안하고도 공짜로 주식팔아 매도대금만큼 현금이 유입 회사의 유보이익을 미래의 성장가치를 높일 수 있는 투자처가 존재하 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주식 수가 많아져 희석(dilution) 효과의 초래 가능성유상증자와 무상증자 주식시장에서는 유상증자는 BAD뉴스로 인식 유상증자는 차입여건도 좋지 않고 유보금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택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식 수까지 많아지게 되어 희석효과까지 발생으로 비권장 사항.명인의 투자가치주 투자 (벤자민 그레이엄)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에 분산투자 균등매입 전략, 기대매입전략, 원금보전전략 ※ 주가가 기업의 순자산가치 2/3 이하일 때 주식을 매입성장주 투자 (토마스 로우 프라이스) 성장이 약속된 주식을 발굴 장기적으로 보유하고 성장이 멈추면 매도 유망 기업의 특징 및 성장기업의 조건 고려 종목 판단 유망업종 또한 급격히 쇠퇴가능 하므로 적시 판단 후 매도 필요기술적 분석 이용 (윌리엄 오닐) 전고점을 뚫고 올라가는 신고가 갱신 종목 매입 (공격적 단기투자 적합) CANSLIM법칙 충족 : C - 현재EPS(주당 순이익), A - 연간 주당 순이익, N - 무엇인가 새로운 것(신상품 또는 신고가) , S - 거래량 , L – 선도주 I - 기관의 선호도 , M(시장평균)주식투자방법 종합○인내심을 가진다 ○시장에 머무른다 ○사장처럼 생각한다 ○회사 경영진을 파악한다 ○가격이 중요하다 ○장세보다는 종목을 우선한다 ○인기 없는 주식을 매입한다 ○증권가 추천종목을 경계 ○처분시기를 분명히 한다 ○위험을 최소화한다주식매매 원칙○매매일지를 반드시 써라 ○실패 원인 분석을w}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SK그룹의 위기까지SK그룹의 국제금융거래ContentsDiamond Fund의 설립손해배상 청구소송J.P.Morgan과의 이면계약과 SK그룹에 대한 수사소버린의 등장과 SK그룹의 향방1234Diamond Fund의 설립Diamond Fund의 설립 배경1997년 1월, Morgan Guarantee Trust로부터 동남아시아의 채권에 투자할 경우 3~4% 포인트의 금리 차를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을 받음파생금융상품 이용할 경우 7%의 추가 수익 올릴 수 있다고 추가 제안J.P. Morgan 측의 파격적인 조건 1) 대출금(파생상품 매입자금)의 이자를 받지 않는다. 2) 태국 Baht화의 변동에 따라 대출금 상환금액을 정한다. 3) 대출금 상환시 원금의 1.5% 내지 3%를 깎아준다.Diamond Fund의 설립J.P Morgan과 SK증권1996년 4월에 들어서야 비로소 국제투자부가 만들어짐 해외투자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회사 별도의 파생상품운영팀없이 6명으로 이루어진 Ri나 Analysis팀이 SK증권의 모든 자산 을 관리SK증권은?J.P Morgan이란?미국 월스트리트에 본사를 두고 총자산 $2,620억에 이르는 세계최대 종합금융그룹 중의 하나 IMF 시, 뉴욕 외채협상에서 채권 은행단 대표로 한국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벌인 회사 위험관리에 뛰어나다는 평가(S P로부터 AA+등급 받음)Diamond Fund의 설립J.P. Morgan의 최대 자회사인 Morgan Guarantee Trust로부터 제안 받음1997년 2월 - SK증권 200억,한남투신, LG금속 등이 각각 50억 원씩 투자모두 300억원(당시$3,440만)을 모음말레이시아 라부안에 다이아몬드 펀드라는 역외 펀드를 설립Diamond Fund의 설립 및 투자Diamond Fund 설립 및 투자라부안이란?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동쪽에 자리잡은 곳으로 조세피난처(Tax Heaven)로 유명한 곳 $10,000로 1중일이면 회사 하나를 차릴 수 있고 자본이득이 면세되고 이자나 배당 종자돈을 기본으로 하여 3배 내지 5배의 차입금을 조달, 해외금융 투자에 나서는 역외펀드의 전형적인 형태Diamond Fund의 설립 및 투자TRS(Total Return Swap)계약SK증권 등은 1997년 2월 12일 $53,000,000를 차입하면서 Morgan Gurantee Trust와 TRS(Total Return Swap)라는 복잡한 파생상품계약을 맺음TRS란?신용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발행자가 기초자산을 계속 보유하면서 기초자산 기초자산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현금흐름을 별도로 약정된 현금흐름과 교환하고 일정시점에 기초자산의 변동에 따라 정산하기로 하는 계약TRS(Total Return Swap)계약TRS의 운용원리발 행 자기 업기초자산 가치하락분약정된 현금흐름기초자산 관련 총이익기초자산 가치상승분신용위험노출대출 (기초자산)인 수 자TRS(Total Return Swap)계약J.P. Morgan과 SK증권 간의 TRS계약1997년 2월 12일 J.P. Morgan은 $53,000,000을 다이아몬드 펀드에 출자하여 수익증권을 취득한 형태를 띠게 되며 그와 동시에 계약 만기일인 98년 2월 12일에 수익증권에서 발생하는 투자성과를 다이아몬드 펀드에 주고 그 대가로 계약상 정해진 공식에 의해 결정되는 금액을 받은 TRS계약을 다이아몬드 펀드와 체결거래 결과 다이아몬드 펀드는 만기일에 TRS계약에 의해 정해진 금액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J.P. Morgan으로부터 $53,000,000을 차입하여 수익증권의 기초가 되는 자산에 투자한 것과 동일한 경제적 효과를 갖게 됨TRS(Total Return Swap)계약TRS계약상의 대략적인 구조SK증권 측은 만기시점에 Baht화의 환율이 25.88보다 평가절상될 경우 이익을 보게 되지만 Baht화 환율이 평가절하될 경우에는 평가절하분 만큼 지불J.P. Morgan은 엔화가 122엔보다 평가절상시, 또는 Baht화가 평가절하시 이익을 보게됨다이아몬드 펀드는 Baht화와 루피아화가 안정되어 있을 때 3% 내외의 순익을amond Fund의 설립손해배상 청구소송J.P.Morgan과의 이면계약과 SK그룹에 대한 수사소버린의 등장과 SK그룹의 향방1234손해배상청구소송Morgan Guarantee와 보람은행을 상대로 채무이행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 어드밴스 펀드와 관련 Morgan Guarantee와 주택은행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SK증권과 주택은행을 상대로 뉴욕남부지방법원에 $3억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 파생상품에 대한 계약의무 이행을 둘러싸고 보람은행을 상대로 미지방법원에 약 $2억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SK증권Morgan Guarantee소송의 파장 및 파생상품 소송 해외사례10억 달러스미모토 금속1997년 초110억원수협1995년 1월270억원광주은행1995년12.4억 달러베어링1995년 2월1.6억 달러P G1994년 4월17억 달러미국 오렌지 카운티1994년 2월손실추정금액회 사시 기손해배상청구소송SK증권 측의 주장TRS (Total Return Swap)는 투자손실 부담을 한쪽에 모두 덮어씌우는 상품이며 이는 거래 쌍방 모두 위험회피를 할 수 있게 해주는 swap계약의 본질을 벗어난 사기였다.계약체결 당시는 swap 대상 통화인 엔과 Baht화가 일정 비율로 움직여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J.P Morgan은 Baht화의 폭락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고지하지 않았다.블랙-숄즈 옵션 가격결정 모형을 이용해 TRS에 따른 옵션과 선물가치를 계산한 결과 (-)13.11%가 나오는데 이는 처음거래를 시작할 때부터 3.61%의 손해를 보고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엔화와 baht화간 상관관계에서 안정성을 나타내는 결정계수(R2)가 최고 0.76 최저 0.40으로 나오는데 이는 0.90은 넘어야 안정적 상관관계로 보는 것에 비해 크게 못 미친다.J.P Morgan 측의 주장이 거래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상대방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무도 없다는 데 합의한 것이었다.국제적인 계약은 반드시 추가로 사게 됨.J.P Morgan 은 SK증권이 물어주는 돈으로 증자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SK증권으로 실제 유입되는 현금은 없었다. 그러나 계약과정에서 J.P Morgan을 증자에 끌어들이는 대신 나중에 주당 6,070원으로 되사줄 것을 보장해 주는 이면계약을 체결.결 과ContentsDiamond Fund의 설립손해배상 청구소송J.P.Morgan과의 이면계약과 SK그룹에 대한 수사소버린의 등장과 SK그룹의 향방1234JP모건과의 이면계약과 SK그룹에 대한 수사이면계약SK그룹과 JP모건의 '이상한 뒷거래'법망 피하기 위해 '이중거래' 동원 - SK와 JP모건은 이면계약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음SK증권은 주가가 떨어질 경우 SK글로벌의 미국 현지법인이 손실을 보전해 주겠다는 이면계약을 체결 문제는 이 계약과 별도 체결된 '옵션계약'SK와 JP모건 간 뒷거래로 인해, SK에 대한 법적 처리 뿐 아니라 국내 굴지의 재벌 그룹이 경영 실패를 불법적인 주식거래로 만회하려 했다는 도덕적 책임과 국부유출이라는 비판JP모건과의 이면계약과 SK그룹에 대한 수사'울며 겨자먹기식' SK와 '땅짚고 헤엄치기' JP모건 - SK그룹이 이 같은 거래를 추진했던 것은 이미 지난 99년 JP모건 쪽과 옵션거래를 위한 이면계약을 체결했기 때문거래로 SK글로벌의 싱가폴과 아메리카법인은 1091억원의 손실을 입게 됐고 JP모건쪽은 1000억원대의 이득을 봄JP모건과의 이면계약과 SK그룹에 대한 수사계열사를 통한 부당지원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위반 부분 .증권거래법과 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부분금감원과 공정위 등 불법행위 조사 착수JP모건과의 이면계약과 SK그룹에 대한 수사SK 증권JP모건SK 그룹SK 글로벌SK 증권워커힐최태원 회장SK 캐피탈참여연대금융감독원SK그룹-J.P. Morgan 이면거래 흐름표검찰고발공시위반 과징금 11억원 부과증자참여고가 매입 이면계약400억 원 사재 출연손실보전(1,000억 원)주식매각 허위발표1,000억 원에 매입2,405벌 회생안에 합의함 2003년 4월 소버린이 경영에 간여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표명이해관계자들의 입장SK 그룹시민단체 소액주주SK 노조채권단채권단보다 소극적인 입장을 표명함. 채권단의 지원요구에 부당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공식 선언함. SK글로벌의 부채는 1970년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인한 마이너스 수출등의 영향이 큰 것이라고 주장함채권단은 SK글로벌을 정상화 시키자는 쪽으로 의견을 맞춤. SK글로벌을 살리는 데에는 SK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함. 계열사들이 지원에 나서면 채권단도 일부 대출금을 자본금으로 바꿔 SK글로벌을 완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SK 노동조합은 민주노총 등 14개 민중 노동단체들과 함께 SK글로벌에 대한 부당지원 철회를 촉구함 ㈜SK의 대주주로 부상한 소버린 자산운용 역시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함참여연대가 대표적인 케이스. 계열사들이 도와주기보다는 시장 논리에 따라 도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함. 소액주주 100여명은 소액주주연합회를 결성하고 합의 안에 따른 8천 500억 출자전환 시 이사들을 배임혐의로 고발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함.결 론'소버린 사태'의 영향소버린은 대량지분 확보를 통해 이사회 교체 등 적극적인 경영 참여로 경영권 분쟁을 야기하였다.경영권위협의 현실화기업경영 환경 악화성장잠재력 약화국부유출 위험 가시화금융감독 시스템의 허점이번 사태의 경우 주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기업 가치 제고 효과보다는 경영권 불안에 따른 위험 요인이 부각되어 기업의 신용 등급을 하락시켰다.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으로 경영권 방어 비용 및 지나친 배당 등에 기업의 자금 여력을 소진하여 기업의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증대시켰다.소버린 사태는 신기술 이전, 고용 창출 등이 수반되지 않는 단기성 투자라는 점에서 국부 유출로 볼 수 있다.외국 자본의 부당 행위에 대한 처벌을 어렵게 하고 국내외 자본간 역차별 논란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결 론국제금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가운데 이루어진 국제금융거래에서
일단 이 책을 접하면서 처음에 느낀 점은 책 제목이 참 멋지다 라는 점이었다.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이라니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한 어떠한 것들을 논한 다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것부터 이 책을 집에 책꽂이 꼽아 놓으면 멋질 것 같다는 것, 뭐 기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기겁을 했는데 그가 이 책을 쓴 나이를 보고 놀랐다. 피코가 24살의 나이의 이런 연설문을 작성을 하였는데 현재 나의 나이인 25살에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 싶은 자괴감이었고 그가 24살의 나이에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일까? 라는 점이었다.일단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피코에 대해서나 내가 알고 있는 존엄성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먼저 파악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느끼기에 인간의 존엄성이란 의미는 “왜 인간으로서 존재하느냐? 인간의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생각했다. 존재하는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읽기도 전에 이런 질문을 던질 기회가 되었는데 찾아본 사전적 의미의 존엄성이란 감히 범할 수 없는 높고 엄숙한 성질이라는 의미 였다. 인간의 감히 범할 수 없고 높고 엄숙한 성질이란 의미와 책에서 닿는 의미를 비교 해보려고 했고, 또한 피코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나 그의 생애에 대하여 책에서 집중적으로 보았다.피코는 르네상스 인간관 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 받는다. 불과 32세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15세기 인물로 부유한 귀족 신분으로 고전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철학자 다운 심성을 갖춘 인물로 그 짧은 32세의 생애에 여러 가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15세기 후반의 중요한 신학자이자 정통 교리에 충실한 지식인,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교 인본주의를 대변하는 가장 순수한 인물상”이라고도 불리우고 시대의 반항아, 중세와의 단절을 시도한 영웅, 자유 사상가의 효시, 실존주의자의 모습이 여러 학자들에게서 평가 받고 있는 단면들이다. 그는 볼로냐에서 교회법과 페르라라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파도바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고 주석가 아베로에스에 심취하면서 아랍 사상 및 히브리 사상과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플로렌스를 방문하면서 그는 당대의 문법학자들이나 변설가들과 논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1485년에는 파리의 소르본느를 찾아가서 자기 사상과 철학적 소양을 공공연한 토론 석상에서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르네상스 지성의 특징인 삶의 자유분방함과 천재성이 융합되어 있었다고 볼수있다. 그리고 다음해에 연가를 짓기도 하고 같은 해에 자기 지식을 총동원하여 ‘명제집’을 발간 하였다. 그의 명제집은 15세기의 특유의 작품으로 그의 나이에 비해서 폭넓은 사색과 연구업적을 담은 저술로 평가받는다. 그가 쓴 명제집이 나오자마자 문화 철학적 개방정신과 종합 정신이 보수적인 학계와 교계의 비판을 받기 시작했고, 그 소문이 피코의 귀에 들리자 이듬해 로마에서 개최할 철학자대회에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교황앞에서 자기의 명제집에 관한 시비를 두고 변론과 토론을 갖기로 계획하여 연설문을 예전에 쓴 연설문을 재작성하는데 이것이 교수님께서 읽으라고 하신 레포트의 주제가 되는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이다. 그러나 이 연설문은 정작 로마에서 발표되지 못했고 학계에서도 알려지지 않다가 피코가 사망한 뒤에 1496년에야 간행되었다. 그가 쓴 명제집으로 인해 많은 파장이 일었는데 그가 주최하려고 했던 공개 토론 역시도 교황의 저지로 개최하지 못했고 그가 쓴 명제들이 문제가 되어 이단으로 몇 개의 명제가 삭제되었다. 이에 대해 피코는 변론서를이 작성하였고 이 교계의 조처에 대항해 변론서를 공표 한 것이 사태를 악화시켜 교황의 체포 명령을 발동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는 판결에 승복하고 그가 슨 명제집이 이단서로 소각당했고 단죄사면되어 나왔지만 그와 동시에 체포령이 내려졌다. 그는 몰래 로마를 빠져 나가 1488년 초 그레노블과 리옹 사이에서 체포됐고 파리로 이송되어 교황 사절들과 대면하게 된다. 그를 옹호하는 후원들로 인해 무사히 석방되어 플로렌스로 돌아왔고 그는 생애 최대의 집필 활동에 몰두한다. 그는 자기의 굴욕을 되씹고 자기 학설을 설득시키지 못한 자괴감에 젖어 인간의 오만을 숙이고 인간의 시직과 의지를 고양시키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일곱 형상론을 집필하였는데 이에 로마 당국이 다시 분개하여 또 메디치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책들을 집필하였는데 생애 마지막에 피코는 무슨 계기에선지 십자가를 중심으로 삶과 은총의 신비를 음미하고 있었다. 세상을 떠난 폴리지아노의 무덤을 자주 찾고 로렌조경의 임종을 지키며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경청하게 되고 산마르코로 자주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는 1494년 32세에 플로렌스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임종에는 사보나롤라가 임석하였고 재산은 얼마 전에 기관과 조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이었고 그의 장서들은 다른 조카에게 물려주었다. 그런데 그가 죽기 전에 내린 철학의 정의가 참 멋지다.“철학은 벌거벗은 본 모습을 남김없이 보입니다. 모두 눈앞에 드러내고 모두 판단에 맡겨지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두고 전적으로 만족할 만한 동기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철학에 관하여 당신이 무엇을 가리운다면 당신은 철학의 아름다움을 숨기는 것이요 철학의 찬사를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철학은 자기가 사람들에게 온전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기 바랍니다. 당신이 철학에 무엇을 섞든간에 당신은 철학을 부패시키고 불순하게 만들고 변질시크는 것입니다. 철학이야말로 정확하고 불가분한게 개별성 속에서 부상하는 것입니다.”여담이지만 이와 같은 철학의 정의가 중고등학생들에게 알려진다면 철학과가 과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위 단락에서 피코의 생애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는데 그의 생애와 그때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보았을때 그가 그의 철학과 그의 사상에 대한 동기나 의의를 알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르네상스에서의 인간 존엄성은 존엄과 품위를 가르키는 라틴어 DIGNITAS에서와 지성인들이 인간을 서술하면서 가장 즐겨 쓰던 용어가 되었고 일반적인 가치 개념으로 파악되는 것은 인간다움, 또한 인간의 본성에 합당함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가 알던 존엄성과 비교해 볼 때 의미는 통했다고 생각했고 인간의 존재함과 인간의 훌룡함과 더불어 같이 맞닿아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고찰하게된 계기로서는 휴머니즘과 인본주의가 한 몫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인간이나 그리스, 로마 고대 세계의 수사학과 시가, 역사, 철학등에 연구하면서 인간에 대해 많이 알고 철학적으로 접근할수록 이는 그 시대의 큰 틀을 잡고 있던 크리스트교와의 관계를 강화시켰고 이는 인간 존중과 이상이 불타오르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로렌조 발라의 경우 15세기에 ‘인간 조건’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는 촉발이 되며 전통 그리스도교 인간관과 현실 인간 경험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그것이 보수적인 종교계에 일종의 도전으로 간주되어 발라는 1444년 나폴리 종교 재판정에 서게 됐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예찬을 한 로렌조처럼 피코에게 영향을 준 철학자는 마네티였는데, 그는 “인간 존엄성과 탁월성”을 집필하였고 이는 지상에서의 인간 존엄성을 착안한 점이 특징을 이루는 이 책은 우주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를 부각시킨 인문주의 인간론에서 중요한 저서에 해당한다. 이런한 논전과 인문주의자들의 주제를 배경으로 이 레포트의 주제인 피코의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이 출연하게 된 것이다.그가 쓴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에 대해 생각해보면, 생애에서 언급됐듯이 철학자 대회의 개막 연설로 이루어지면서 어디까지나 평화의 예찬으로 점철되어야 했다. 그러나 명제집이 문제가 됨으로서 명제집과 보완적으로 쓰여진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이 출현했는데, 시비로 인해 이 이 화합을 뜻하던 연설문이 그 당시에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였고, 사후에 조카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 연설문은 20대 청년, 즉 지금 나의 동년배에 나이에 기백과 야심으로 인간과 학문의 자유 및 문화에 대해 근대적이고 계몽적인 시각 전환이 담겨 있는 글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사상에 대하여 접하였고 한결 같이 인간 근본 문제에 관한 진지한 탐색과 호소가 그 속에서 발견되는 데 경탄을 금치 못하기에 이러서 그는 인류의 원천적인 사상의 일치를 다시 회복시켜 보겠다는 젊은이다운 의지를 보였다. 이런 것들이 크리스도교와 근본적으로 일치함을 발견하였고 이로서 사상들의 종합을 이루어 보려는 야심에 불타 균형을 도모하려는 기본자세를 철학함의 바탕에 깔게 됐다. 그러므로 이 연설문은 피코의 학문적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설문은 그가 로마에 제재를 당하기 전에 작성했음으로 당당하게 자기의 소신을 표현하고 있다. 이 연설문에서 그가 그려내는 인간은 우주를 관조하는 인간이지만 실재 인간의 실존 여부 및 인간의 가치 알고, 즉 인간의 차지하는 위치에 대하여 강렬히 욕구를 표현 했을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신으로 인간의 자유와 선택에 대하여 알고 책임을 가지도록 하는 표현을 담고 있었다. 이는 그가 여러 가지 사상들 속에서 배운 호기심과 의지를 통합시켜 발전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연설문이 학자들의 시선을 끈 것은 19세기 후반기로서, 그제야 학자들은 이 연설문을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선언문’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고, 최초로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것은 20세기에 와서 였다. 피코에 인간 정의는 천상계와 지상계라는 두 세계의 중간점이고 이는 우주를 두 세계로 나누는 분할점이며 인간은 여러 가지로 변모 할 수 있는 미래이며 무한한 가능성이었다. 그가 쓴 인간은 특정한 인물이나 면모가 아니라 모든 것에 동화 될 수 있고 어떠한 것들도 받아 들 일수 있으며 윤리적 선택과 결정을 통해 현실 세계에 어떤 ‘권위’를 갖고서 모든 사물에 일일이 이름을 새로 부여 할 수 있는 귄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아까도 언급했듯이 사전적 의미의 인간의 존엄성과 또한 라틴어로의 존엄을 뜻하는 단어와도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게 되었는데, 이탈리아어과의 소속된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번기회를 통해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게 되었다는 점이 상당히 부끄러웠다. 흔히 듣기로 군주론은 어려운 책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재밌고 재미있게 처세술이나 통치술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고,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책을 읽은 기회를 통해 마키아벨리의 사상이나 책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레포트 때문에 억지로 읽은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지적 소양을 늘리는 계기로 느껴졌다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내가 생각하는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은 ‘인간은 악하다.’라는 것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말로 점철되었다. ‘인간은 악하다.’라는 말의 경우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를 통하여 마키아벨리즘과 성악설로 대표되는 순자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말한 홉스처럼 같이 언급되었다. 학창시절을 통해 전후 자세한 이야기의 언급은 없이 짧게 요약되어있는 그 짧은 문구들만을 볼 때 마키아벨리라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알고 보니 그 부분은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인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 의 경우 쉽게 이야기해서 수험생활을 하는 사람이 막상 죽을힘을 다해 노력을 했지만 그 시험 날 감기몸살이라도 걸려 컨디션이 나쁜 상태여서 시험 성적이 안 나왔다고 치자. 그 수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그 수험생은 그 시험에 합격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다면 그 수험생과 관계없는 사람들은 그 수험생의 낙방을 단지 노력을 안했거나 뭔가 머리가 나쁜 아이라서 등등의 자신만의 생각으로 정당화 시킬 것 이다. 상당한 비약이기는 하지만 이는 정치가들의 행동들과도 상당부분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과거의 선거의 경우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기가 당선만 된다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수많은 부정부패들이 만연되었었다. 이처럼 이런 문구들로만 차지하던 의구심이 사상사 수업을 통해서,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상당부분 의구심을 풀 수가 있었다.마키아벨리는 상당한 애국자였다. 그가 살던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였고 마키아벨리가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인간위주의 화려한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었고, 사실은 엄청난 위기와 투쟁이 상존했던 격동의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는 정치사적으로 민족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근대국가 형성기로서,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침략과 방어가 끊이지 않던 그러한 시대였다. 허나, 이탈리아만큼은 예외적으로 통일된 민족국가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나라였다. 반면, 이탈리아 국경 알프스 이북의 여러 나라에서는 프랑스 등 강력한 근대국가가 건설되었고, 이는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큰 위협으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주변 국가들은 이탈리아를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았고, 이탈리아는 내외적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1492년에는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피렌치를 침공하여 메디치 정권을 붕괴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이탈리아를 지켜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골몰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내적으로도 역시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외부세력이 강력한 근대국가를 형성하고 있는데 반해, 이탈리아는 본래 무수한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다가, 13세기에 들어서 겨우 몇 개의 나라로 정리되기 시작한 나라였다. 15세기에도 여전히 4~5개의 왕국(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등)이 혼재해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는 급격한 충돌과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피렌체 같은 경우에는 형식상 공화정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사회 각계층간의 불안정한 연합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각계층간의 불화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지도자들에게는 이러한 분열상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의 이러한 내외적인 어려움은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러한 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를 지켜낼 수 있는가"하는 것을 최대의 화두로 던져주었으며, 마키아벨리의 사상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하겠다. 이는 여러 가지 사료나 그가 한 언행을 통해서 수없이 들어나게 되는데, 그가 이 군주론을 쓰게 된 계기도 그의 애국심의 한 발로였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가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지 통일 이탈리아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이는 지금도 이탈리아의 우리나라 만큼의 지역 이기주의와 지역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에 큰 이유로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수업시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그 당시 이탈리아에 강한 힘을 넣길 바라고 있던 마키아벨리라는 위인이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를 꿈꾸며, 강력한 군주를 바라며, 그러니까 정치와 윤리의 구분을 통해 시대적 상황을 극복해 나가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도둑질을 해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면 이것은 과연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되는 것이냐며, 궤변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인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 타산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팽개쳐 버린다. 더군다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 이유는 인간이 모든 것을 바라는 힘과 욕망을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았으나 운명으로부터는 욕망을 성취할 힘을 적게만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언제나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얻은 것에 대해 언제나 실망한다.”그러므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키아벨리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차피 인간은 악하고 변덕스럽고 위선자인데다가 물욕에 눈이 멀었고 이해관계에 대하여 냉정해 지기 때문에 어차피 나쁜 인간에게 그런 도둑질을 하여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그런 명분은 어차피 성립하지 않는 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어디서인가 본 글인데, 수단은 목적에 종속되는 것이며,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이 핵심이라는 글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단이 되도록 통산의 도덕(선)에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것 또한 마키아벨리의 주문이라는 글이었다. 그러니까 군주는 국가의 보존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다. 국가의 존립에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즉, 군주의 행위의 결과)가 그 과정보다 훨씬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원하는 군주는 우리나라에서 생각할 수 있는 너그럽고 덕이 많은 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고 결단성 있으며 전쟁이라도 해야 한다면 피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전쟁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중요하게 군주의 자질로 양면성을 언급하였는데 이를 비유한 표현으로 여우와 사자의 성질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와 같은 양면성을 취해야하는 이유로 ‘사자는 책략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차릴 때는 여우여야 하고, 늑대의 혼을 빼려면 사자여야 한다.’라는 말로 설명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군주의 덕목이나 자질이나 행동 요건 등을 제시하였는데, 그는 고대 로마황제를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그중에서 군주론의 표본으로 삼은 사람이 체사레 보르자였는데, 그의 여러 가지 모습을 언급하였는데 정말 그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들을 떠올려 봤을 때 그들이 너그럽고 인자한 덕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세상을 사는 사람들 중에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추진력이나 힘을 다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이는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군주가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힘을 갖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라도 자기가 섬기게 될 군주가 연기라도 함으로서 자신의 시대에 맞는 강력한 국가를 이끌어 나가주기를 바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개인적으로 마키아벨리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가 정치영역을 윤리, 도덕,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해냈기 때문이다. 그가 산 시대에서 그러한 생각을 이렇게 글로서 표현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는 중세의 사상가들과는 달리 정치는 오로지 물고 물리는 치열한 현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치현상을 종교나 윤리룰 배제하고 순수하게 권력의 획득과 유지와 팽창의 차원에서 조망하였으며, 다른 어떤 제도나 가치보다도 최우선적으로 국가를 고려한 것이다. 내 생각으로 마키아벨리의 철학은 강력한 국가의 건설이나 생존을 위한 강력한 힘을 지상의 도덕으로 생각한 것이다. 군주론에서 이 사실을 적절하게 표현한 문구가 있다.
페트라르카(Petrarca)인문주의〔人文主義〕-르네상스가 태동 하는데 기본이 된 운동형태 -14세기부터 고대 로마의 문학, 미술, 철학 등을 일컬어 인문학(humanitas)이라 칭함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에서 인간의 참다운 가치를 재발견 하여 다시금 정립시킴 -인간(人間)에 대한 개성 및 존엄성이 최고의 가치로 대두 -주체적인 인간은 신념과 의지, 그리고 책임감 밑에서 지식을 탐구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 14-15세기 문학이 종교적인 색채에서 벗어나, 세속적 문학의 성향을 띄게됨피렌체의 한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 예수의 전기를 그린 벽화를 보면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이봐, 이 그림도 그렇지만 어째서 요셉은 언제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곧 한 사람이 이 말에 대꾸를 하였다. “그야 뻔하지, 자기 약혼자가 배가 불룩해졌는데도 그 애비가 누군지 알 수 없으니까” 약혼자라면 성모 마리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한 여성을 말한다. 폭소가 터지고 사람들은 사나이가 그토록 훌륭하게 응답한 재치를 칭찬하였다. 이 사람들은 당시 피렌체의 예술가와 휴머니스트들이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러 온 길에 벽화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 게다. 사나이의 이름은 지오또, 피렌체에서 한창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인기 화가였다. 사케티의 3백개의 이야기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위대한 페트라르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옆으로 내던져버렸다. 페트라르카는 또한 신학과 철학의 위대한 중세적 결합물인 스콜라주의도 버렸다. 중세의 스콜라학자들은 핀 꼭대기에서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춤을 출 수 있는가? 라고 물었다. 우리는 페트라르카의 반응이 어떠했을 것인지 상상할 수 있다. 그는 무슨 상관인가? 라고 말했을 것이다. 페트라르카는 현세의 영광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죽음의 승리르네상스-어원은 rinascimento(다시 태어남)로써 rinascere(다시 태어나다)라는 동사의 명사형 임 -시발점에 대한 많은 학설과 다양한 시각이 존재함 -고전 연구를 통하여, 영원한 인간상을 찾고, 그 주제를 인간의 존엄이라는 대목에 둠 -인간이성에 의하여 인도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신의 의지에 대한 순종을 대신함 -인간의 의식 전체와 관련된 일종의 사회혁신 운동이였음(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싶고, 알고 싶고, 하고 싶다는 욕망의 폭발,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다”-페트라르카의 생애-1130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아레초 태생 1311년 피사로 이주 1312년 아비뇽으로 이주 1316년 몽펠리에로 유학 1320년 볼로냐에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돌아옴 1326년 부친상, 법률공부를 그만두고 하급성직을 얻음 1327년 라우라와의 첫 대면 1330~1338년 라우라에 대한 사랑과 학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 1333년-리에주에서 키케로의 연설문 2편을 찾아냄 1337년-로마방문.-페트라르카의 생애-21340~1346년 종교적·도덕적 갈등과 문학적 변모 1340년 파리와 로마에 계관시인으로 초대 1341년 로마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에서 월계관을 수여 받음 1342년 프로방스에서 그의 사생아가 태어남 1343년 아비뇽으로 돌아감 1345년 베로나에 키케로가 아티쿠스·브루투스·퀸투스에게 보낸 서한들 을 발견, 보클뤼즈로 돌아가 작품을 손질함 1346년 콜라 디 리엔초를 열광적으로 지지, 아비뇽의 교황청과 소원해짐 1348년 라우라와 많은 친구들이 흑사병으로 죽음 1350년 로마로 순례여행을 떠남 1353년 프로방스를 떠나 밀라노에 자리 잡음 1361년 흑사병을 피해 파도바로 감 1362년 다시 흑사병을 피해 베네치아로 감 1367년 파도바로 돌아감 1374년 아르콰에 있는 서재에서 일하던 중 죽음을 맞이함-페트라르카의 작품- 1〈Epistolae metricae (압운서간:押韻書簡)〉 라틴어 6보격 시로 씌어진 66편의 편지로 이루어 진 작품 라우라에게 바치는 다수의 연가가 실려 있음〈Africa (아프리카)〉 페트라르카가 아비뇽 근교 보클뤼즈에서 쓴 작품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주제로 한 서사시 쓰기〈De viris illustribus (위인전)〉 로마 역사에 나오는 영웅들의 전기 페트라르카는 '구약성서'와 고전 세계, 그리스도교 세계의 이상들 간의 지속성을 강조하기 를 원했으므로 뒤에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시대의 유명인들의 전기로 확대되었음-페트라르카의 작품-2〈Secretum meum (나의 비밀)〉 페트라르카가 도덕적 위기를 겪은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 이 작품의 저작 동기가 자신의 세속적 생활과 신앙을 일치시킬 수 없다는 갈등과 주교로 있던 페트라르카의 동생 게라르도가 카르투지오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에서 비롯되 었다는 것이 (1342~43)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상상 속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주고받은 3편의 대화로 이루어진 자서전적 저술〈De vita solitaria (고독한 생활에 대하여 )〉 1346에 지어진 작품 인간이 자연과 학문 및 기도의 위로를 즐기며 사는 '고독한 생활'을 묘사 신학적 기초를 다진 작품De otio religioso (종교적 여가에 대하여 )〉 금욕적인 맥락에서 고독의 주제를 발전시킨 작품-페트라르카의 작품-3〈Canzoniere (칸초니에레) Rime in vita di Laura(라우라 생전의 시들), Rime in morte di Laura(라우라 사후의 시들)로 나뉨 페트라르카의 영적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도록 선별하여 배열 섬세한 미학적 취향과 대체적인 연대순으로 배열 외관상의 주제인 라우라에 대한 사랑에 국한되지 않고 세속적 쾌락에서 벗어나 신에 귀의 하는 모습을 보여줌〈Metricae(서한시)〉〈 Trionfi (승리)〉 인간의 영혼이 지상적인 정념들로부터 신 안에서의 충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좀더 일반화된 형태로 그린 시 단테 '신곡'을 모방 한 작품〈De sui ipsius et multorum ignorantia (자기 자신과 많은 사람들의 무지에 대하여)〉 베네치아에서 받은 비판적 공격(아리스토텔레스 저술의 아랍 '자연주의적' 해석을 따르는 4명의 청년들로부터 당한 모욕)에 대한 그의 인문주의적 옹호론페트라르카의 자아의식* 단테의 대한 시기심 1312년 당시 8세인 페트라르카와 단테의 만남 보카치오의 대한 질문에 대한 변명 1. 베르길리우스를 시기하지 않는 자기가 단테에 나쁜 감정을 품을리가 없다는 것 2.단테의 작품에 무관심했던 것은 다른 작품들의 수집에 열중한 나머지 그렇게 됐다는 것 3. 자국어 문학에서 단테의 명성을 인정하지만 자기는 단테처럼 무지한 대중의 찬양에는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 But 젊었을때 자국어문학에 관심, 명성을 얻고자 갈망 이탈리아어로 쓴 그시가 은연중 신곡에 비견페트라르카의 자아의식라우라에 대한 사랑 '그녀 자신의 덕성으로 인해 유명해졌고 나의 노래에 의해 널리 축복받은 라우라는 아비뇽의 산타 클라라 교회에서 1327년 4월 6일 첫시간에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내 눈앞에 나타났다가 1348년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작, 같은 도시에서 그의 빛이 우리에게서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그의 영혼이 내려온 천국으로 다시 되돌아 갔음을 굳게 믿고 있다.'라우라(조르조네 작품)고대 문화의 부활 페트라르카 자신이 중세보다 고대를 더욱 친근하게 느낌 이상적 가치 척도로서의 고대문화를 부활시키려는 그의 강한 신념 종교적 진리와 현세적 진리 르네상스 세계관의 내세적 종교관과 현세적 합리관의 대립 두가지 상반된 이상을 조화시키기 위한 고뇌 끝내 자신을 자신을 완전히 해방하지 못함페트라르카와 르네상스수사학의 모방만이 아닌 인간을 소재로! 페트라르카의 휴니즘은 '인간의 발견' 탈중세적인 근대적인 서정시 다만 자신은 자기자신을 도덕교육의 전달자 이상으로 자처하지 않음{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