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4
검색어 입력폼
  • 4차원영성에 대해서
    “4차원의 영성”에 대해서 (4th dimension of spirituality)Ⅰ. 4차원 영적 세계의 기초1. 십자가의 은혜4차원의 영적 세계에 대해 배우기 전에 먼저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 얻은 귀한 축복인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전적인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감사함과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환경을 바라보지 않는다. 4차원의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임을 믿고 시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2. 삼중 축복을 누리는 믿음제가 천막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시작하던 시절은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얻게 되는 축복을 전해주었고 삼중 저주에서 풀려나 삼중 축복을 받게 된 것을 말씀으로 선포했습니다. p. 34예수님을 믿게 되면 십자가의 은혜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 진다. 요한 삼서 1장 2절에서 말하는 삼중 축복은 영혼과 환경과 육체의 축복을 뜻한다.불순종의 결과로 형벌을 안게 되었는데 첫째,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결과로 죄인이 되어 형벌을 받게 되었고, 영이 죽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둘째, 땅의 소산을 얻기 위해서는 힘겹게 땀을 흘려 노력해야만 한다. 셋째, 육신의 질병과 사망의 저주를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신 저주는 크게 세 가지로 ‘삼중 저주’라고 말한다. 이 저주 안에 갇힌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삼중 저주를 삼중 축복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다.3. 오중 복음으로 이끄심삼중 축복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인간에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예비하셨던 삼중 축복의 소식은 당신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성취되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복음은 바로 이 축복들이다. 복음은 구원을 믿는다는 한 가지 의미만을 가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눅 24:29)” 여기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제 육신의 몸으로 너희와 함께할 순 없지만 성령을 보내어 너희와 함께하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이 충만한 삶은 능력이 있다. 성령이 부어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생긴다.신유의 복음 - 예수님은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인간을 위해 공생애 기간의 3분의 2 이상을 치유 사역에 할애하셨다. 현재 우리에게 나타나는 신유의 역사는 단순히 안 믿는 자들을 믿게 하려는 징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몸이 찢기며, 피 흘림을 통해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지고 가셨기 때문에 치유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다.축복의 복음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영과 육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활과 환경 속에 있는 수많은 저주를 물리치고 축복을 선물로 주셨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질 수 있도록 넘치게 주셨다. 넘치게 부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축복을 누려야 한다.천국과 재림의 복음 - 우리가 형통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천국과 재림의 복이 주어진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시작이다. 성경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유일한 부분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곧 오실 것이다.Ⅱ. 4차원 영적세계로의 초대1. 3차원의 인생, 4차원의 영성성경은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시며, 만유를 초월하신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을 차원의 개념에 넣어서 해석하면 4차원은 3차원에 있으면서도 3차원을 초월하고, 3차원은 2차원에 있으면서도 2차원을 초월하며, 2차원은 1차원에 있으면서도 1차원을 초월한다. 따라서 4차원은 시간과 공간속에 있으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렇다면 4차원은 영적인 세계인 것이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3차원의 세계에 있으면서 4, 하나님이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 내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인 선한 나라로 옮기셨다는 말씀이다.2. 4차원 영성의 네 가지 요소4차원의 영적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생각, 믿음, 꿈, 말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하나님은 인간이 4차원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첫 번째로 생각(thinking)을 주셨다. 4차원의 세계에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3차원에 그 결과가 반영된다. 인간의 몸과 모든 세계는 4차원을 움직이는 요소인 생각을 통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4차원을 바꾸는 두 번째 요소는 믿음(faith) 이다. 믿음은 4차원의 세계를 통해 3차원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다. 이 믿음은 성경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그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4차원의 세계를 프로그래밍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꿈이다. 하나님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꿈이 없으면, 즉 4차원이 꿈으로 프로그래밍 되지 않으면 3차원도 희망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꾸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꾸는 꿈은 개인 적인 욕망이나 잘못된 욕심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4차원의 네 번째 요소는 말이다. 말을 통해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4차원적 특성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성경은 구원을 받는 것도 “말로 시인하라”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의 귀와 마음에 들리도록 계속 말해야한다.Ⅲ. 4차원 영성의 삶1. 4차원의 생각, 이렇게 바꾸라생각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생각은 신체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각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실체이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3차원의 인생을 결정하는 4차원의 중요한 요소이다.① 하나님의 방식대로 생각하라먼저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닮아야 한다. 성령님과 함께하는 말씀과 기도는 3차서 담대해 지는 것이다.② 긍정적인 생각으로 무장하라생각을 긍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 몸은 일종의 4차원 컴퓨터실이고 전원을 켜고,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중의 하나가 생각이다. 생각은 4차원 세계에 파장을 일으켜 그 파장은 3차원의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삶에 결과를 출력하도록 만든다.③ 부정적인 생각을 대적하라4차원의 생각의 부정적 요소인 분노, 두려움, 열악한 환경 등과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날마다 환경을 초월하여 변화할 수 있다.④ 다섯 가지 복음과 세 가지 축복을 생각하라나는 용서받고 의롭게 거듭난 사람이다, 나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나는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나는 영생 복락을 누린 사람이다. 그리고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 라고 늘 생각해야 한다.생각의 거룩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 성령님의 인도와 지배를 받도록 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로 표현되어 그에 따라 움직일 때 생각이 그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셋째, 생각이 성경 말씀에 사로잡히게 해야 한다.2. 4차원의 믿음, 이렇게 바꾸라믿음이란 육신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현실화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 볼 때 우리의 삶 속에 그것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① 바라봄의 믿음 법칙을 사용하라목표를 바라보되 있는 것처럼 바라보아야 한다. 마음속에 소원을 품은 후 이미 이루어진 현실로 믿고 기도해야 한다.사람은 무엇을 심든 그대로 거두게 된다. 이것은 자연적인 법칙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영적인 법칙이기도 하다. 심으면 반드시 거둘 것을 기대하며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② 부정적인 유혹의 환경과 싸우라믿음을 지키고 인내하려 노력해도 세상이 인정하는 상식과 지식은 우리를 절망으로 끌고 간다. 어떤 환경의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겨낼 힘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이겨낼 수 있다로 사는 법을 학습하라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법,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학습해야 한다. 성령님을 만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한다.우리는 말씀과 성령님을 통하여 믿음의 도약을 할 수 있다. 믿음이 흔들릴 때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믿음이 강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성령님은 인생의 절망의 순간순간 마다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고 안내하시며 가르쳐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3. 4차원의 꿈, 이렇게 바꾸라하나님의 꿈은 크고 넓다. 그래서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꿈을 꾸어야 한다. 그리고 요셉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평생토록 부여잡아야 한다. 하나님을 통해 품게 된 꿈은 4차원 안에 있다. 이 꿈이 3차원을 점령하여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①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소망하라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크고도 정확하신지 잘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우리는 항상 마음속에 크고 비밀한 일이 나타날 것을 꿈꾸어야 한다. 흑암이 다가올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입을 넓게 열고 있어야 한다.② 마음에 꿈꾸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려라4차원의 요소인 꿈의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3차원에 나타나야 하는 현실의 상황은 실제로 일어나는 아주 사실 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실제 모습을 바라보고 목표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다 자세하고 확실한 목표를 얻기 위해 기도해야한다. 금식 기도를 하는 이유도 4차원의 세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라는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다.③ 꿈의 성취 과정에서 작은 일부터 실천하라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변화와 꿈의 성취를 간절히 바란다. 막연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사전준비는 필수 조건인 것이다. 하나한다.
    독후감/창작| 2011.10.28| 6페이지| 2,000원| 조회(262)
    미리보기
  • 갈라디아서3장
    목 차1. 들어가는 말2. 갈라디아서 3:1-14 연구1) 갈라디아서 구조분석2) 갈라디아서 3:1-14절 연구(1) 갈라디아서 3장 구조분석(2) 갈라디아서 3:1-5절 - 경험에 근거한 논의들(3) 갈라디아서 3:6-14절 - 성경에 근거한 논의들3. 나가는 말1. 들어가는 말갈라디아서 3장은 갈라디아서 전체 중에 가장 논증적인 부분이다. 바울은 3장에서 자신이 1, 2장에서 주장한 복음과 그를 반대하는 적대자들의 주장 즉 율법을 철저히 대비하며 자신의 복음이 옳음을 주장한다. 이 글의 취지는 3:1-14절까지 각 본문을 주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일반적인 해석을 살펴본 후 본문 가운데 논쟁의 소지가 있는 것들을 알아보고 그 논쟁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을 알아봄으로 좀 더 갈라디아서를 이해하는 것을 돕고자 하는 것이다.2. 갈라디아서 3:1-14절 연구1) 갈라디아서 구조분석A. I Section(바울의 사도직 변호와 복음의 독립성) 1-2장B. You Section(언약백성 신분의 조건과 삶의 근거) 3-6장a. 갈라디아인들의 신분변화의 원인 3-4장b.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살아가는 삶 5-6장이것을 말로 표현한다면 3, 4장에서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한 할례, 율법의 행위, 모세의 율법이 아브라함의 후손과 그 축복에 참여하는 필수 조건이 아님을 주장하고 5, 6장에서는 그들의 주장이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에도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즉 전반부는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분 문제와 관련해 직설법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후반부는 삶의 문제와 관련하여 주로 명령법 형식으로 이야기 한다.2) 갈라디아 3:1-14절 연구(1) 갈라디아서 3장 구조분석3장은 갈라디아서 중에서 가장 논증적인 장으로 3장에서는 갈라디아서 전체에서 바울과 적대자들을 가장 잘 표현하는 “율법”(16/32)과 “믿음(14/22)”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구약 인용(8/10) 또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장이 바로 3장이다.3장은 구조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볼 수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3:1-5의 경험에 근거한 논의들(a), 3:6-14의 성경에 근거한 논의들(b), 3:15-18의 대인적인 신학적 논의들(c).)본문을 살펴볼 때 구조는 롱에네커의 구조에 따라 3:1-5절까지 경험에 근거한 논의들과 3:6-14절의 성경에 근거한 논의들로 살펴보고자 한다.(2) 갈라디아서 3:1-5절 - 경험에 근거한 논의들이 부분은 서신의 증명 단락(3:1-4:31)까지의 서론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바울의 증거가 받아들여진다면 그의 독자들은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적대자들의 가르침을 배척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거부할 수 없는 체험 논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한 의를 주장하는 논증의 시작을 연다. 그리고 이 부분은 다음에 주장할 성경으로부터 근거를 주장하는 것의 토대가 된다. )①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라들아 누가 너희를 호리더냐? 너희 눈앞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명히 그려졌거늘”본문에서 바울은 갈리디아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홀렸다는 표현을 사용한다.이 표현을 가지고 존 스토트는 마귀적 활동에 의하여 갈라디아 사람들이 넘어갔다는 영적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호리다”(바스카이노)는 마술과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비유적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적대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본문에서 바울은 적대자들에 대하여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그리고 “눈앞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명히 그려졌거늘”이라는 표현은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다. 이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갈라디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았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즉 갈라디아 사람들이 유월절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았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갈라디아 사람들이 바울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말을 사용해서 바울의 결정적 근거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즉 바울은 신분의 변화는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좌우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③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느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인간적 노력으로 완성하려고 하고 있느냐?”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여 계속 성령으로 살았다면 그들은 바울의 적대자들의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성령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성령으로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하였다.④ “너희가 이같이 많은 것을 헛되이 겪었느냐-만약 실제로 그것이 정말로 헛되다면-?본문에서 개역한글이 번역한 “많은 괴로움”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갈라디아 교인들이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가?이것은 ‘파스코’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을 어원과 사용 빈도만으로 본다면 부정적인 고통의 의미가 강할 것이다. 하지만 문맥적으로 본다면 좋은 의미로 해석할 수 도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성령을 경험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⑤ “그렇다면 하나님이 율법의 행위들과 들은 것을 믿는 일 둘 중 어느 것에 기초하여 너희에게 자신의 성령을 주셨으며 너희 중에서 이적을 행하셨느냐?”이 본문은 2-4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는 문장이다.(3) 갈라디아서 3:6-14절 - 성경에 근거한 논의들이 부분은 다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의 주요 특징들을 강조하고(6-9절), 두 번째는 중심되는 세 구절)과 다음으로 매우 중요한 넷째 구절을 다루며, 한편으로는 율법과 저주의 양극단에 의거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 의 그리고 복에 의거하여 그 논의를 펼친다.)⑥ “아브라함을 예로 삼으라. 그가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바울은 자신의 근거를 위해 2-5절까지 성령 체험을 근거로 제시하였다면 이제부터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런데 바울은 왜 성경적 근거를 아로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분에 맞는 삶의 태도도 요구되기에 사회적 개념도 포함되어 “의”는 관계론적이고 종말론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이와 비슷하게 롱에네커는 2:15-20주해에서 명사 “의”는 15-16절의 동사 “칭의하다”의 법정적 의미 그리고 17-20절 논의의 윤리적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의”는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생활 방식 모두의 중심이라는 것이다.)그리고 이에 대하여 샌더스는 이 개념은 ‘개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근거에서 이방인이 최후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참여하느냐’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사야 2:2-3절)을 인용하여 최후의 날에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답하며 이방인들은 유대인으로 되어져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은 이방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즉 ‘믿음에 의해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의 이방인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의”라는 것은 신분의 변화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⑦ “그러므로 너희가 믿음에 의지하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것을 안다”이 본문에서 해석의 문제가 되는 것은 “너희가 .... 아브라함의 아들(자손)인 것..”라는 부분이다. 그 이유는 후에 3:16절에 아들(자손)은 단수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본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울이 갑자기 16절에서 말을 바꾸었는가?이에 대하여 샌더스는 바울이 이방인 신자들을 유일한 자손인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게 하기 위해 비장의 수단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즉 구원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유일한 자손, 즉 그리스도에게로 진행되고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될 수 있기에 아브라함의 성서적 약속이 상속된다고 논리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⑧ “하나님이 이방인서 풍부한 언어를 찾아냈으며 적절한 단어가 결합되어 있는 구절을 밝히게 되면 그 구절들을 한데 묶어서 자신의 입장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기독교로 개정한 이방인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증명하고자 했지만 성경에서 표면적으로 언급된 본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반대자들과 논증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연구하던 중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발견하고 17장의 할례 부분은 무시하고 아브라함의 부심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15:6절)과 18:18절)을 결합하여 자신의 입장을 증명하려 하였다. 즉 이 문장을 통하여 중요한 단어 믿음, 의로움, 이방인, 축복을 결합시켰다는 것이다.)이에 대하여 롱에네커는 바울의 성경 주해는 오늘날의 성경학자들이 사용하는 역사-문법적인 주해를 많이 넘어선다. 그러나 바울의 전제들과 물려받은 주해 절차들에 의거하여 이해될 때 바울의 성경에 근거한 논의들은 이해 가능하며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이것은 Betz의 의견과 동일한데 그는 지금 우리는 바울의 방법으로부터 바울의 시대에 기대되었던 것 보다 더 기대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 당시에는 어떤 사람의 개념과 사상이 증빙본문으로 제시되는 구절에 의해서 입증되거나 또는 그 구절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어떤 합의된 방법으로 증명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해석 방식으로 바울의 구약 인용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⑩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들에 의지하는 모든 자는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것들을 행하기 위해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에 계속 머무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느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바울은 여기서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나쁘기 때문에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이 완벽하게 율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저주 아래 있게 된다는 것이다.⑪ “하지만 분명히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율법이다”
    인문/어학| 2009.04.07| 4페이지| 2,000원| 조회(1,147)
    미리보기
  • 갈라디아서 3장 1~14절
    발표일 : 2009년 월 일갈라디아서3장 1 ~ 14절과 정 :과목명 : 갈라디아서학 번 :교수명 :이 름 :★본 발제물은 최갑종 교수님의 [바울연구 Ⅱ]를 중심으로 요약하였습니다.1. 서 론3장의 유대주의자들을 통해서 갈라디아 교회 안에 일어난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바울의 가르침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과 성령의 오심 이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도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며, 종말론적인 의와 구원에 이를 수 있느냐?”, 아니면 반대파의 주장처럼, “유대인의 메시야인 예수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다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들처럼 율법과 할례를 통하여 유대인화 되어야만 유대인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 있느냐?”예수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결정하고 유지하느냐(바울),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결정하느냐(유대주의자), 다른 말로 바꾼다면 성령이 신자의 모든 신분과 삶을 주관하느냐, 아니면 성령은 시작만 도와줄 뿐 완성은 신자 개개인 자신의 육적인 노력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2. 본 론1. 본문 특징 및 구조분석: 갈라디아서 3장 1절 ~ 14절특징: 갈라디아서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3장은 갈라디아서의 전체에서 바울의 가장 열띤 논증이 제시되고 있는 장이다. 특징적으로 3장에는 유대주의자들의 다른 복음인 “율법”이란 단어가 32번 중 3장에만 16번이 나타나며), 갈라디아서에서 바울복음을 대변하는 “믿음”이란 단어는 3장에 집중되어 전체의 22번 중 14번이 나온다.) 또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의 공격과 방어의 주된 무기인 구약 인용도 3장에 집중되어 10번의 구약 인용 중 8번이 3장에 나타난다.구조분석: 3장을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바울은 서두인 3: 1 -5에서 질문형 You Section(A)을 통해 논증하15-18의 율법에 선행하는 아브라함의 약속에 의한 논증(C')e) 3: 19-25의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믿음)의 길을 준비하는 율법의 부정적인 기능에 의한 논증(B')이렇게 볼 때 갈라디아서 3장은 3: 13-14을 중심으로 ABCDC'B'A' 형태의 교차대구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구조분석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바울은 자신의 논증의 결정적인 근거를 갈라디아교인들이 율법의 행위와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받은 성령체험(A)과 그리고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율법의 행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D)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2. 성령과 믿음 (3 : 1 - 5)1절에서 바울은 먼저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라는 사실이 여러분의 눈앞에 생생하게 제시되고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미혹하고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유대주의자들에 의한 갈라디아 교인들의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바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전파한 핵심적인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3:1의 선행절인 2:21과 관련하여 볼 때, 율법을 통하여 의를 추구하는 것은, 곧 갈라디아 교인들이 유대주의자들의 미혹을 받아 율법을 통하여 자신들의 보다 나은 신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마지막 때에 율법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신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고 무효화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2:21; 5:4; 롬3:21-31). 특별히 바울이 여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을 완료형 분사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현재적 사건임을 가리키고 있다.2절에서 바울은 성령을 강조한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갈 조건이 아니고, 바울이 전파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유일하고도충분한 조건이다.이처럼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이 전파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받아들임으로써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유대주의자들이 요구한 율법의 행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문제와는 하등의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본다.이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오는 성령은 바울의 방어(자신이 전파한 그리스도의 복음과 믿음의 필요 충족성)와 공격(율법의 행위는 성령과는 무관하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의 조건이 될 수 없다)의 핵심적인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 된다.바울의 본격적인 논증이 시작되는 3장에서, 2장의 안디옥 사건에서 강조한 율법의 행위와 대조되는 이신칭의(2:16))를 다시 사용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는 “성령”을 “율법의 행위”에 대항하는 자신의 논증의 기반으로 삼는 것 자체가 매우 의도적이다. 아마도 바울은 3장에 와서 성령을 자신의 논증의 결정적인 무기로 삼기 위해서 1,2장에서는 의도적으로 성령이란 말을 쓰지 않고 유보해 왔다가 3장에 와서 비로소 이 말을 처음 사용한 것 같다.바울은 3절에서 “여러분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육에 의하여 완성에 이르려고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통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이 추구하는 “율법의 행위”가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자들과 동등한 신분에 도달하여 그들과 동등한 교제를 가지려는 인간적인 노력과 그것에 대한 자랑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그들이 추구하는 율법의 행위는 더 나은 신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신분, 곧 그들이 복음을 받기 전의 육의 상태로, 하나님의 원수되었던 옛날의 상태로 다시 전락되는 일이 된다고 단언한다. 성령을 떠나서 육을 통해 완성에 이르려 하는 것은 결국 육으로부터 썩을 것밖에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주어진 성령이 신자의 통해서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역사하시는 방편은 “율법의 행위”(유대주의자들의 다른 복음)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전파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믿음의 응답”임을 천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의 행위에 의존한다면,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방편을 거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하나님까지 거부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3.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3 : 6 - 9)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믿음의 응답만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유지하는 유일하고 충분한 방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3:1-5의 갈라디아인들의 성령체험에 의한 논증에 연이어, 3:6-25까지 다섯 가지 논증을 덧붙이고, 그런 다음 3:26-29에서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이 다섯 가지 논증에서 돋보이는 것은 구약성경에 대한 호소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의한 성령체험을 먼저 말한 다음, 구약성경에 호소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령이 구약성경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것과, 또한 성령체험을 한 갈라디아교인들이 구약과 아브라함의 참된 계승자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첫째는 3:6-9의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 의한 논증이다. 여기서 바울은 먼저 창세기 15:6)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운 자로 간주한 것과 같이, 바울이 전파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믿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믿음의 사람들”로 보고, 그리고 아브라함과 동일한 길을 좇은 이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처럼 “의로운 사람들”로 여겨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모델로 삼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로운 자로 간주된 인들에게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아브라함처럼 이미 율법의 행위와 관계없이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이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며, 아브라함의 축복의 계승자들임을 확인시킨다. 따라서 갈라디아 교인들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위해 율법에 전혀 의지할 필요가 없다.4. 율법의 저주 (3 : 10 - 12)둘째는 3:10-12의 율법의 저주에 의한 논증이다. 여기서 바울은 6-9절의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는 달리, 누구든지 율법의 행위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녀됨과 그 축복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율법이 가져다주는 저주 아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율법이 결단코 갈라디아 교인들이 추구하는 의(5:4), 곧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바울의 논리는 3개의 구절을 통하여 3중적으로 전개된다.1) 바울은 신명기 27:26)에 근거하여(10b), 모세의 율법은 그 자체 모든 율법에 대한 전폭적인 순종을 요구하며, 그리고 율법의 모든 요구들을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결국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고 하는 자들은 율법이 가져오는 저주 아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나쁘기 때문에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저주 아래에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완벽한 순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아래 있게 되는 것이며, 저주의 원인은 인간의 불순종과 무능력에 있다고 본다.2) 11절 상반절의 ?τι 구절, “율법으로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가 보여주고 있듯이 바울은 인간이 모두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 죄인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롬3:23)), 율법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2:16).3) 바울은 적극적으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하박국2:4)을 인용하여(11b), 하나님께서 초지일관 정하신 사람이 힌다.
    인문/어학| 2009.04.07| 7페이지| 2,000원| 조회(1,689)
    미리보기
  • 누가복음 11장 5절 기도의비유
    『누가복음 11장 5절~8절:기도에 대한 비유』주석- 목 차 -목차 2서론 3본론 31. 누가복음의 전반적 배경 .......... 3A. 누가복음의 역사적 배경 .......... 3B. 누가복음의 문화적 배경 .......... 3C. 누가복음의 사회적 배경 .......... 52. 누가복음 본문의 위치 및 구조 ......... 7A. 본문의 위치 ........... 7B. 본문의 구조: 누가복음 11장 ... 73. 본문의 삶의 자리 .......... 84. 본문 분석 ......... 95. 본문 대조 ......... 96. 중요 단어 분석: “ajnaivdeia”에 따른 비다. 물론 사도행전은 안디옥교회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최초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려진 곳이 안디옥이고(행 11:26), 또한 최초로 예루살렘 모(母) 교회에 구제헌금을 보낸 것도 안디옥이며(행 11:27~30), 또한 최초로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한 것도 안디옥이다(행 1:3~4).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 바울의 세 차례에 걸친 선교여행이 안디옥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고 묘사하고 있는 누가의 사도행전과는 달리, 정작 바울서신 자체에는 안디옥에 대한 언급이 겨우 한 번 등장한다(갈 2:11). 이 점을 들어 일부 학자들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소속되었던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까닭에 비록 사도행전의 안디옥교회가 곧 누가복음의 배경 및 수신처였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며, 만일 이런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누가의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전혀 부재(不在)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논리는 마태의 공동체나 마가의 공동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정의에 따를 때 누가복음의 문화적 배경, 즉 누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누구였을까? 이 질문에 대하여, 이제까지 전통적인 견해는 누가 공동체가 이방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친(親) 이방적 성향을 띠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대한 증거로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내용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첫째로, 누가복음의 보편주의적 특징이다. 보편주의(universalism)란 유대인들만의 구원을 강조하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것으로, 이방인들을 배려하고 또한 그들의 구원을 인정 및 수용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이 보편주의가 부각되어 나타나는 복음서가 바로 누가복음이다. 예를 들면, 그 기원이 하나님까지 올라가는 족보(눅 3:23~38),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하여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이방인=눅 2:32; 4:한 직업을 집어치우라”고 말하였을 법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곧 아직 종말이 임박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또한 누가복음 19장 11절(“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에서 누가는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와 유사한 열 므나의 비유를 소개함에 있어서 서론을 달고 있는데, 이는 마태복음에는 전혀 없는 내용이다(마 25:14).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는 자들의 견해를 수정할 목적, 즉 종말이 그들의 기대처럼 임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신자들 가운데 임하였음을(눅 17:20~21)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마가복음과는 달리(막 13:6) “때[종말]가 가까웠다”고 선포하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주의를 주는 것은(눅 21:8) 임박한 종말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이다.세 번째로, 빈부(貧富) 및 재물문제에 대한 강조를 들 수 있다. 사실 이 특징은 누가복음을 다른 복음서들과 차별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누가복음의 사회적 성격을 여실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주님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의 설교에서 이미 나타나 있고(눅 3:10~14), 또한 주님의 취임설교(눅 4:18~19)에서도 발견된다.사실 주님의 첫 설교에 해당하는 취임설교는 주님의 사역과 교훈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은데, 누가복음의 취임설교는 마가, 마태복음과는 확실한 경계를 긋고 있다. 마가, 마태복음에서 주님의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와 그를 위한 준비로서 회개의 강조이다(막 1:15; 마 4:17).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이,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를 위한 메시아 사역을 선포하고 있다(눅 4:18~19). 그리고 이러한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은 복음서의 내용 가운데 계속하여 반복하여 등장하면서(눅 6:20; 7:u' prov" me kai;하면 벗이 나의 왔으나 in 여행중에 내게oujk e[cw o~ paraqhvsw aujtw'/:not 가지다 것 먹일 그에게7절- kajkei'no" e[swqen ajpokriqei;" ei[ph/, Mhv moi kovpou"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not 나를 괴롭게(고통)pavrece: h[dh hJ quvra kevkleistai kai; ta; paidiva mou제공하다 이미 문이 닫혔고 그리고 아이들이 나의met! ejmou' eij" th;n koivthn eijsivn: ouj duvnamai함께 나와 안에 침소에 이다 not 줄ajnasta;" dou'naiv soi.일어나 줄 너에게8절- levgw uJmi'n, eij kai; ouj dwvsei aujtw'/ ajnasta;" dia; to;내가말한다 너에게 비록~할찌라도 not 주다 그에게 일어나다 becauseeinai fivlon aujtou', diav ge th;n ajnaivdeian aujtou'됨을 벗 그의 because yet ******** 그의ejgerqei;" dwvsei aujtw'/ o{swn crhv/zei.일어나 주다 그에게 대로 필요하다5. 본문 대조개역판개역개정판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벗이여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내 벗이 여행 중에 내개 왔으나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5-6절)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문이 이미 닫혔고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하겠느냐? (7절)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그 강청함을 인하여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8절)또 이르시되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벗이여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내 벗이 여행 중에 내개 왔으나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5-6절)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문이 이미 닫혔고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기나 압력 수단이 아니다. 이런 해석이 본래 예수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비유에 이어서 소개된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요 구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아시고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2) “도와달라고 요청을 받고 밤중에 일어난 친구”로서의 해석: (ajnaivdeia를 “부끄럼을 당치 않게”, “창피당하지 않음을 위하여”로 해석할 경우)- ‘예레미아스’ 등의 현대 비유연구가들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누가복음 11장 5절~8절의 비유에 대한 전통적인 번역과 해석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였다. 대표적 비유 연구가인 ‘예레미아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밤중에 찾아온 친구”, “성가시게 졸라대는 친구 비유”란 명칭은 잘못된 것으로, 비유의 중심은 ‘간곡히 졸라대는 친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밤중에 일어난 친구’에 있으므로, 이 비유의 명칭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밤중에 일어난 친구 비유”라고 부른다.) 먼저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 초점은 기도하는 자에게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 두 번째 비유의 초점은 집안에서 도움을 받고 관대하게 채워주는 요청을 받는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아나이데이아 (ajnaivdeia) - ‘아나이데이아(ajnaivdeia)’의 본래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언어학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인 그 당시에 다른 문서에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또한 본문에서 이 단어의 주어를 누구로 보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구문법적으로 연구하려고 한다.주전 7세기의 아르킬로쿠스(Archilochus)에서부터 5세기의 플라톤(Plato), 소포클레스(Sophochles), 헤로도투스(Herodotus), 핀다르(Pindasr),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에 이르기까지 모두 ‘창피한 것을 모름’을 언급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가 파피루스에서 사용된 예를 살펴보면, 물튼(Moulton)과 밀리간(Milligan)은
    사회과학| 2008.03.01| 17페이지| 2,500원| 조회(1,874)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1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