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탐방기방랑벽이 있는 줄은 모르지만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돌아다니면서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체험하고 학습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에는 시간이 없어 많이는 못 돌아다니고 있지만 한창 돌아다닐 때는 서울에 있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우리나라 궁 등을 돌아다니며 탐방하고 중요 볼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걸어다니곤 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한창 돌아다닐때 한번 가봐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하필 갔을 때가 월요일이라 휴장을 해 옆에 붙어 있는 용산공원만 돌아다니고 돌아 왔다. 그러나 요번 기회를 통해 국립 중앙 박물관을 가보게 되었다.국립중앙박물관은 지금에 있는 이촌동으로 온지가 얼마 안 되었다. 그 전까지는 경복궁에서 같이 운영되었지만 2009년을 계기로 지금에 있는 이촌동으로 옮겨와지게 되었다. 전에 경복궁 탐방 갔을 때에 보았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규모가 작아서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생각보다는 경복궁 내에 있는 작은 박물관이라 생각 되었었다. 한 나라에 있어서 중앙박물관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보기에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경복궁에서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신축해 이전해 온 것은 잘 한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봐왔던 어떤 박물관보다 규모가 컸다.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입구에서부터 현대적이고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모양으로 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관리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전세계에서 놀라온 여러 관광객 및 문화를 탐방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우리나라를 어필할만한 건물은 아니였다. 종묘나 경복궁 등의 전통적인 건물의 형상으로 우리나라만의 박물관을 건립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건물 안에 들어서자 여러 경호원들이 서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많은 문화재와 사료들이 있어서 그런지 경호원들이 군데군데 많이 서있었다. 그렇다고 무뚝뚝하고 그렇지는 않았다. 뭐가 어디 있는지 물으면 안내도 해주고 일종의 안내원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앞쪽으로는 월광사원랑선사탑비와 경천사10층석탑이 서있었다. 월광사원랑선사탑비는 보물 제360호이고 경천사 10층석탑은 국보 제86호이다. 처음 들어서자마자 두 탑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오신걸 환영한다는 듯이 서있었다. 그러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것은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훼손되었던 원래의 탑 형태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라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일제침탈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뇌게 되었다. 처음에는 1층부터 3층까지 ‘이런 게 있구나!’하며 돌아보았다. 그러던 중 봉사차원에서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긋하게 연세 드신 분들이 박물관에 찾아온 관람객에게 유물안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역사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다른 관람객에 껴서 문화재에 대한 내막을 듣고 왜 이 유물이 중요한지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한 예로 기억에 남는 것은 국보81호와 국보82호인 감산사 미륵보살?아미타불에 대해 설명이었다. 문화재는 보물과 국보로 나뉘게 되는 큰 부분은 특이한 문양과 독특한 기법도 중요하지만 누가, 어느 시대에 만들었으며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도 중요하다고 했다. 감산사 미륵보살은 겉으로만 보면 그런 것이 안 나오지만 돌 불상의 뒤쪽을 보면 서각으로 누가 만들었으며 만든 목적 등이 자세히 새겨져 있어서 그 가치를 더 쳐준다고감산사 미륵보살 아미타불했다. 나는 이렇게 1층 선사?고대관, 중?근세관, 2층 서화관, 기증관, 3층 조각?공예관, 아시아관으로 돌아다니며 박물관을 탐방했다. 그러던 중 1층 선사?고대관 신라실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국사책 표지에 항상 있던 말 탄 사람 토기 두 점(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 국보 91호)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 학교를 다닐 때부터 책으로만 지겹게 보았던 그 유물을 직접 보니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사실적으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말 등에는 짐이 안 실어져 있고 그릇 같은 것을 실고 가는 것인지 하는 의문점과 더불어 이 작품이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의 대표로 하는 보물인 국보에 등재 되어 있는지와 같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초등학교 때에 미술시간에 찰흙으로 만들었던 작품들 중에서 좀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유물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다 유심하게 보고 또 자세히 조사해 보기로 했다.말 탄 사람 - 주인말 탄 사람 - 하인2. 국보 제 91 호 ? 말 탄 사람 토기(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제 91 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이렇게 주인 토기와 하인 토기 두 개가 하나의 세트이다. 우리 국사 책에서는 주인 토기밖에 나오지 않아 종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지식은 하나인 줄만 알았다. 책에 두 유물을 같이 올려주었으면 이런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금령총에서 발굴된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와더불어 같이 출토된금령총금관도제기마인물상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주인상은 높이 23.4㎝×길이 29.4㎝, 하인상은 높이 21.3㎝×길이 26.8㎝이다. 주인상은 삼각형 관모를 쓰고 마구를 갖춘 말을 타고 있다. 인물 뒤에 있는 배형의 구부는 속이 빈 말의 몸통으로 통하는 병 아가리이고 말꼬리는 손잡이 구실을 한다. 하인상은 주인상과 같은 형태이나 상투머리에 수건을 동여매었고 웃옷을 벗은 맨 몸으로 등에 전대를, 오른손에 방울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말의 앞가슴에 뻗친 것은 물을 따르는 부리이다. 삼국시대의 공예조각으로서는 드문 수작이며, 1924년 가을에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금령총에서 금관과 함께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제작된 기마인물형 토기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유물로서, 입수구와 출수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점으로 보아 액체를 따라 마시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이 기마형 토기는 당시 신라의 기마 풍습과 복식, 무기, 마구, 공예의장 등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처럼 말 탄 사람 토기는 신라인의 옷차림새와 말갖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 주며, 당시 토기제작기술을 짐작하게하는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나 동물, 또는 물건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토기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것이라기보다는 제사와 같은 의례시 죽은 이의 안식과 사후세계에 대한 상징적인 염원을 담아 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금령총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에 금령총금관이 소장되어지고 있다. 금령총 금관은 현재 보물 제 338호로 등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