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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려 책을 읽고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딫이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사는 게 그런 것이 아닐까.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내 마음을 전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소통해 가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 그런 자잘한 일상들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요즘은 무한경쟁의 시대라고도 한다. 차도에 나가면 경적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조금만 참고 양보하며 기다리면 곧 길이 뚫리는데 모두들 자신만 생각하기 때문에 길은 더욱 꼬여가고 고성이 오고간다. 서로가 배려하면 모두에게 이득 일 텐데 이 사실을 다들 모르는지 남 탓만 하기 바쁘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은 나의 라이벌이자 경쟁자이고 그들을 밟고 위로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양보하면 결국 모두에게 이익인데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챙기고 성공 하느냐 에만 관심을 가진다. 나누고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너무 착하게 살면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참 많다. 이런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려보다는 경쟁이였고 그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그것에 대해 조언자는 이렇게 말한다. "손해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생각해봐. 사회에 경쟁만이 존재하지는 않아. 배려가 함께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야. 성공하는 조직, 발전하는 기업을 생각해봐. 배려가 없이는 경쟁력도 무너져 버린다고.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남에게 베푼 배려로 자신을 지키는 거야."이 책은 배려가 있는 곳에 성공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반드시 챙겨야 할 덕목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배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남에게 베푸는 배려가 곧 자신에게 베푸는 배려가 되며 배려가 곧 성공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배려로 자신을 지키며, 사회는 경쟁이 아니라 배려로 유지된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배려들이 모여 현재의 나 자신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베푸는 배려가 언젠가는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이다. 사소한 배려가 쌓여 어떻게 인생을 바꾸어 가는지 위의 이야기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었다.주인공 위는 수석으로 입사하여 회사 내에서 고속 승진을 계속하던 인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리대상으로 지목받는 프로젝트 1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혼란에 빠진다. 게다가 그를 못 견뎌하며 집을 나간 아내는 이혼서류를 보내온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이건 너무 부당해….”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시작한 1팀에서의 생활은 업무 스타일이 달라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으며, 늘 긍정적이다. 회사를 원망하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11층에서 만난 인도자는 사스퍼거니 뭐니 하면서 알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으며, 위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위는 인도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점들을 깨닫게 된다. 특히, 인도자가 중요한 순간마다 위에게 건네주는 세 장의 카드에는 배려의 중요한 원칙들이 적혀 있다. 첫 번째 카드에는 행복의 조건이, 두 번째 카드에는 즐거움의 조건이, 세 번째 카드에는 성공의 조건이 담겨 있다. 각각의 카드에는 생활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실천 명령들도 함께 들어 있다. 자신에게 솔직해 지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통찰력을 가지라는 이 세 가지 원칙들을 통해 위는 인생의 단순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나 스스로 위의 편에 서서 현실은 다르다고 핑계만 대고 있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이 책 주인공의 모습이고, 또한 나인지도 모르겠다.사람들은 작은 일에 감동을 받는다.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는 커다란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큰 사건이 나타났을 때가 아니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이 때로는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변수로 등장한다. 나를 넘어서는 도약대,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연결고리인 배려는 작지만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떨어진 신문을 다시 넣어 주는 데 몇 초, 버스 벨을 눌려 주는 데 몇 초 할머니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는데 몇 초 등 생활 속에서 배려를 해 주는 따뜻함을 표현한 광고에서도 보듯이 작은 관심 하나가 삶에 있어서 즐거움과 행복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듯 배려는 모두가 기분좋게 해주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을 일깨워주었다.
    독후감/창작| 2008.05.16| 2페이지| 1,000원| 조회(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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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려를 읽고
    책 소개성공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한국형 자기계발 우화!『선물』, 『선택』,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등 수많은 번역서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한 토종 비즈니스 우화가 출간되었다. 바로 한국형 자기계발 우화 『배려』가 그것이다.아스퍼거 신드롬(Asperger Syndrome), 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말이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세계 속에만 갇혀 있다. 아스퍼거는 이기적인 성격과는 다르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의 입장을 알면서도 자기 욕심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만, 아스퍼거는 아예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아스퍼거를 사회적 의미로 확대시켜 ‘사스퍼거(Social Asperger)’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즉 사회생활 속에서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뜻한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나눌 줄 모르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무자비한 사람들을 일컫는다.그런데 이러한 사스퍼거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삶의 의미나 목적은 잃어버린 채 목표를 향한 경쟁만 남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나누며 베푼다는 것은 전혀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경쟁과 이기주의 때문에 나타나는 여러 폐해들로 인해, 누구를 위한 경쟁인지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래서 경쟁하지 않고도 모두가 함께 잘살 수 있는 있는 방법을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다.배려는 만기가 없는 저축이다!『배려』에서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공존의 절대 원칙이다.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배려’로 자신을 지키며, 사회는 ‘경쟁’이 아니라 ‘배려’로 유지된다.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삶의 원칙, 배려!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배려들이 모여 현재의 나 자신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려는 ‘만기가 정해지지 않은 저축’과도 같다. 내가 지금 베푸는 배려가 언젠가는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이다.“성공은 베푸는 자의 것이다”『배려』는 나누며 베푸는 생활이야말로 일과 가정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임을 보여주면서 성공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책이다.성공이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충실하게 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대가이다. 경쟁자를 쓰러뜨리거나 누군가를 밟고 일어선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 자체만을 목표로 하고 달려가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다른 조직과의 경쟁에만 매달리는 기업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고객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면서 부단히 자신을 이겨내는 자기 경쟁력을 높인다는 뜻이다.성공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고민하라. 그러면 저절로 모든 것이 따라온다.책 내용“세상은 주고받는 것이란다.받은 다음에야 주려고 하면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주인공 ‘위’는 수석으로 입사하여 회사 내에서 고속 승진을 계속하던 인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리대상으로 지목받는 프로젝트 1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혼란에 빠진다. 거기다 그를 못 견뎌하며 집을 나간 아내는 이혼서류를 보내온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난 열심히 살아왔다고. 이건 너무 부당해….”그렇게 어쩔 수 없이 시작한 1팀에서의 생활은 업무 스타일이 달라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 그들은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 놀러 온 사람들 같다. 정리대상임을 뻔히 알면서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이상하기만 하다. 그러나 묘하게도 위는 1팀 내에 뭔가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으며, 늘 긍정적이다. 회사를 원망하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야?”그리고 11층에서 만난 ‘인도자’는 사스퍼거니 뭐니 하면서 알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으며, 위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위는 인도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점들을 깨닫게 된다. “정말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자기밖에 모르던 ‘위’는 갑자기 닥쳐온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하게 된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으며, 해결책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러기까지는 1팀의 팀원들과 수없이 충돌해야 했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반성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의 가치들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경쟁만이 전부가 아니라, 서로 나누며 배려하는 삶이야말로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특히, 인도자가 중요한 순간마다 위에게 건네주는 세 장의 카드에는 배려의 중요한 원칙들이 적혀 있다. 첫 번째 카드에는 ‘행복의 조건’이, 두 번째 카드에는 ‘즐거움의 조건’이, 세 번째 카드에는 ‘성공의 조건’이 담겨 있다. 각각의 카드에는 생활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실천 명령들도 함께 들어 있다. 이 세 가지 원칙들을 통해 위는 인생의 단순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이 책은 너와 내가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함께 배려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공존의 길임을 보여준다. 주인공 위는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온 현대인의 상징이다. 위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통해, 혼자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또한 내가 먼저 베풀며 나누는 삶이 주는 감동도 느낄 수 있다.일을 즐기는 사람만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일과 삶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배려가 시작된다. 세상은 배려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발전해 왔다. 이 책은 자신의 일과 생활로부터 소외된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배려’가 될 것이다.―이어령(국문학자, 전 문화부 장관)얼핏 느끼기에 ‘배려’와 ‘성공’이라는 단어는 조화가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남을 배려하다 보면 성공하기 어렵고, 성공하려면 모진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통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배려와 성공이 이웃사촌간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사소한 배려가 쌓여 어떻게 인생을 바꾸어 가는지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세상을 움직여온 동력이 배려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공직자 입장에서 ‘배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이희범(산업자원부 장관)
    독후감/창작| 2008.05.16| 4페이지| 1,000원| 조회(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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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개혁을 둘러싼 쟁점들
    1.들어가는 말IMF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한국경제의 변화 평가 - 재벌구조적 문제점이 크게 개선 VS 한국경제 성장의 원동력 소멸-주안점-1)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벌개혁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그 성과와 한계, 쟁점은 무엇인가?2) 우리사회에서 재벌은 점진적이나마 투명경영, 책임경영, 윤리경영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인가?2. 재벌개혁을 둘러싼 쟁점들쟁점관점A관점B1. 기업지배구조 개혁조치 정책평가o 내.외부 모니터링 작동의 계기o 시장규율 메커니즘 작동(제도도입, 관련법개정)o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한국경제 구조적 위기에 직면o 성장잠재력 훼손2. 총수체제와 피라미드 출자o 왜곡된 소유구조의 근원o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 강화o 대규모 투자 가능케 하는 성장 동력o 경영권 방어3. 재벌가문의 총수승계o 불법.탈법적 세습(상속)은 엄격히 규제o 경영권 세습 차단장치 필요o 기업지배권 승계는(과도적으로)보장o 기업집단의 유지와 그룹 지배구조의 연속성 문제4. 국민경제에 대한 재벌의 기여o 변화된 국내외적 상황에서 예전처럼 기여하지 못함(경제 양극화 현상)o 다시 한번 핵심동력이 되어야 함o 재벌중심의 고성장 고축적 발전전략 필요5. 재벌개혁의 방향o 재벌체제 ‘지양’혹은 ‘해체’o 재벌의 소유구조 해소를 전제한 책임전문경영체제, 독립기업들의 느슨한 연합체, 전문업종별 소그룹화o ‘사회적 타협’ (유럽)재벌의 지배권인정과 사회적 책임 요구3.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의 변화와 재벌1) 금융부문 변화 : 기업의 투자재원 자급도 상승, 부채비율 하락수익성 중시 - 위험관리의 중요성 상승, 상장기업들의 투자행태와 재무구조 변화, 배당금 지급액 증가영미형 주주가치 극대화, 영미식 주주자본 주의의 구성요소 중심으로 변화2) 기업지배구조 : 재벌계 기업의 ‘실질적 통제’ 메커니즘 작동, 소유구조의 개선 변화 없음3) 대기업의 금융회사 지배 : 은행부문 - 외국자본이 크게 증가, 비은행 금융기관- 영향력 계속 증가4. 경제시스템 변화의 방향1) 기업지배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경제시스템의 특성 파악기업지배구조 : 주주, 채권자, 종업원, 관련기업, 고객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들간의 권리와 책임의 구조, 합의된 게임의 규칙들로 정의, 특히 이해관계좌 범주.ㄱ. 주주모델 : 주주의 소유권에 기초하여 기업을 정의(미국식 기업)ㄴ. 이해관계자모델 : 주주 외 채권자, 종업원, 관련기업, 소비자, 지역주민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관계 집합으로 기업을 정의(유럽적 전통, 대륙적 전통)2) 한국경제의 구조 : 현재 주주모델과 재벌체제의 모순적으로 결합된 불안정한 상태한국사회 전반에 주주모델이 더욱 깊이 착근될 가능성 높음(미국이 한국에 대해 행사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특히 금융의 구조개선이 여기에 상당 적응)
    경영/경제| 2008.05.16| 2페이지| 1,000원| 조회(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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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혜석의 이혼고백서를 읽고.. 평가C아쉬워요
    < 레 포 트 >-‘이혼 고백서’를 읽고..-“나혜석”, 그녀는 누구인가저자 나혜석의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많은 서점들을 들러보고 인터넷에서도 찾아보았다. 하지만 오래된 책이라 그런 것 이었는지 찾기가 힘들었다. 혹시나 해서 들러 본 도서관에서 드디어 찾을 수가 있었다. 이혼 고백서. 제목 만으로도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한편으로는 결혼이나 남자, 사랑에 대해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을 한 것이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렇지만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특히 그 시대.. 나혜석 저자가 살았을 많은 변화와 어려움이 있었을 그 시대에.. 이혼을 하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음을 느낀다.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이혼이란 단어 자체가 좋은 의미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여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했고,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사회에서 그렇게 역동적으로 살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우선 나혜석에 대해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한 남자의 부인이고 네 자녀의 어머니이고, 며느리이기 이전에 미술과 문학 등의 예술에 많은 기여를 했고 여성들에게 깨어나기를 선도 했으며,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또한 굉장했다. 그리고 최초로 세계를 여행했고 일본 유학, 스캔들과 간통사건, 이혼사건, 이혼고백서 발표 사건, 고소사건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녀다.나혜석은 한국최초의 여성서양화가로 1896년 명문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오빠와 가족의 배려로 동경 여자 미술 전문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 할 수 있게 되었다.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 및 입선의 영광을 차지했으며, 1921년 우리 나라 여성으로는 최초로 세계를 여행했다.파리 유학 중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천도교 교령인 최린과의 연애 사건으로 외교관 남편 김우영과 이혼한 후 궁핍과 빈곤의 방황 속에서도 끈질기게 예술의 혼을 쌓았다. 절과 양로원, 거리의 방랑객이 되어 분노와 저항의 글과 그림을 남기고, 자유연애와 여권운동에 앞장섰던 그녀는 특히 춘원 이광수와의 스캔들, 이혼공개장 사건, 파리에서의 간통 사건 등으로 파문을 일으킨 불꽃 같은 여자였다.결혼까지의 내력을 보았을 때 정말 김우영이 나혜석을 진심으로 많이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결국에는 나혜석과의 긴 열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된다. 나혜석이 건 네 가지 조건 첫 번째,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사랑해주시오, 두 번째,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세 번째,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해주시오, 그리고 네 번째로 죽은 애인의 묘를 찾아주는 것이었고, 김영우는 그곳에 석비까지 세워주어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정말 김우영은 나혜석을 전 생명을 다하여 사랑하였던 것은 확실한 사실 이였다.그리고 11년간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가졌다. 작은 부부간 충돌이 생긴 뒤 반드시 아이가 하나씩 생겨나 결혼 생활에 있어서 무탈함을 보여주었다.최린과 통했었던 편지들, 마지막으로 최린을 상대로 한 제소 장에서 최린이 나혜석에게 있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개인적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혜석의 그 당당함과 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뒷부분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최린이 돈으로 이 재판을 취소해버렸다.그리고 나혜석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밝혀 냈다. 지금 세계를 여행해도 부러움을 사는데 그 옛날 1927년에 한국최초로 구미 여행과 동시에 파리 유학길에 올랐고 시베리아를 거쳐 파리, 런던, 스페인, 미국 등지를 다녔다. 남편과 즐겼던 외국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군더더기 없이 간단 명료하게 써내려 갔다. 읽는데 있어 부담도 없었고 즐길 수 있었다. 외국 미술사와 여러 화파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이 쉽게 담겨져 있었으며 그 또한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와 닿았다.그렇게도 열렬히 사랑했던 남편 김우영이 어떻게 한 여자를, 자신이 사랑했고, 자신의 아이들의 어머니이고, 아내이며, 노모의 며느리였던 그녀를 그렇게도 처참히 짓밟아 버릴 수 가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최린 또한 그렇다. 자신의 사랑만을 바라보게 만들어 놓았으면서 정작 어려울 때에, 즉 김우영과 이혼을 하고 나자 최린 자신 또한 그녀를 멀리하고 피했으며 버려버리는 야비함에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자신의 그 스캔들 때문에 어려워하며 김우영에게 빌고 또 빌고 있는데 김우영은 첩과 살았고, 웃으며 사회생활을 해나갔다. 이혼한지 사개월만에 재혼을 하였다. 나혜석과 별거를 하기로 서약까지 했으면서도 철저히 지키지 않고 버려버렸다. 끝내 한 여자를 벼랑 끝으로 밀어 버렸다.그럴 수 있는 남자들의 힘에 놀라고, 그것을 뒷받침 해 주고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준 사회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그 사회에, 남성에게 투쟁하던 나혜석과 같은 강한 여성들의 힘 또한 위대하다 생각이 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높혀 할 말은 하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만큼 우리 여성들은 주어진 능력과 지위와 힘을 포기하지 말고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힘든 과정에서도 절대 자신의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싸우며 고난과 고독을 이겨냈다.정조 부분에서 나혜석은 정조가 취미라 일컬었다. 정조가 여자들만이 지켜야 할 덕목이나 법이 아니라 남녀가 모두 가지고 있고 즐길 수도 있는 취미라 함을 의미할 것이다.그리고 1946년 50이 되던 해 그녀는 눈보라 치는 날 유언도 없이 거리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이 부분에서 확인이 정확히 되지 않는다고 되어있었다. 죽은 연도나 어디에서 어떻게 하다 죽어갔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묘비나 무덤 또한 확인이 되지 않는다 했다. 다른 이들은 자살을 하였다고도 했다. 단, 한가지 쓸쓸하게 고독을 짊어지고 세상을 떠난 것은 명백하리라 생각한다.특히 마지막 장인 그녀의 일대기. 짤막하게 중요하다 싶은 연도별로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설명 글을 보면서 정말 이 여자의 인생이 파란만장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불쌍하다 생각할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단 그녀의 예술적 혼과 열정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었다.이 책은 제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영우라든지 최린이나 실제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고, 문장의 끝이 실 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이었나이다’, ‘하였사외다’,’하나이다’ 등의 방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읽는데도 이상하게 속도가 나질 않았었다.나혜석은 자신이 이혼을 당하게 된 이혼의 부당함을 이 책에서 정확하게 끄집어 내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이 얼마나 많이 약한 존재이며, 얼마나 많은 상처와 어려움을 가지고 사는지에 대해서 강하게 이야기하고 밝혀내어 현실을 꾸짖고 있었다.책의 앞쪽에 있던 ‘남성은 평시 무사할 때는 여성이 바치는 애정을 충분히 향락하면서 한 번 법률이라든가 체면이라는 형식적 속박을 받으면 어제까지의 방자하고 향락하던 자기 몸을 돌이켜 오늘의 군자가 되어 점잔을 빼는 비겁자요, 횡포자가 아닌가. 우리 여성은 모두 이러한 남성을 저주 하고자 하노라’ 이 부분에서 나는 정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성우월주의 라는 무시하지 못하는 그런 사회였다. 지금도 그러한 잔재가 남아있는 사회에서 이런 말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가당치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단락을 읽어도 놀라움이 절로 나는데 그때 그 시기에 얼마나 더했을까 싶다. 한 가정 주부의 다소 파격적인 나혜석을 비판하는 글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여성이나 남성 모두 그녀에 대해 비 호감을 느끼고 격리 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혼고백서를 낸 후 가족, 친구 지인들 모두를 잃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자 하고 밝혀 내고자 하는 바를 해버리고야 마는 그런 그녀의 열정과 깨어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냄이다..고독, 번민, 고통 공포 모든 불길하고 불행하다 생각할 것을 가진 채로 일생을 끝마쳐야 했던 그녀는 힘든 과정에서도 예술을 했고, 여성들이 깨어날수 있도록 인도 했다.시대를 앞서가는 여성 이였고 나혜석의 일생은 부유한 명문가정에서 자랐고,호사로운 생활을 하는 자유 분방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최린과의 스캔들로 인해 가장 치명적으로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남편과의 이혼으로 암흑으로 치닫게 된 그녀의 일생이 우리나라의 여성 사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모습 이였다고 생각한다. 나혜석. 그녀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살았다면 정말 모든 영광과 지위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 일찍 태어나서 더없이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그녀는 갔고, 유언도 기일도 무덤도 없다. 단지 그 뜨겁던 가슴과 그 불타던 영혼만큼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떠돌고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나 또한 여성이다.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과 생각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난 이 이야기에 또 다시 자극 받았다. 레포트를 써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시작했었지만 지금은 이 사회에 선구자로서 성공적인 나혜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열심히 잘 해서 어느 부분에서든 깨어나 있길 바란다. 나혜석. 그녀 만큼은 아니더라도 사회에 변화를 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큰 큰사람이 되고 싶다.
    독후감/창작| 2007.02.02| 4페이지| 1,000원| 조회(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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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의 왜성, 왜관 지역 알아보고 답사하기
    부산의 역사R E P O R T부산의 왜성, 왜관 지역알아보고 답사지금으로부터 414년 전인 1592년 4월 14일, 15만 대군의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은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동아시아 역사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기나긴 7년 동안의 임진왜란 기간 동안 부산 및 울산 같은 동해안 지역은 아군과 왜군 사이의 최전선 지역이었다.우선, 임진왜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그래서 간략한 연도별로 구분하였다.연도월/일주 요 사 항15924/13왜적 30만 대군이 1번대를 선봉으로 차례로 부산포에 침입4/14왜적은 부산진성을 함락 시키고 또 군을 나누어 다대포진성과 서생포 만호진을 락시킴4/15좌병사 이각(李珏)이 울산군수 이언함(李彦咸)과 함께 동래성에 구원갔다가 성이 함락된 소식을 듣고 이(李)병사는 도망하고 군수는 포로가 됨4/20울산읍성과 좌병영이 함락됨4/24상주에서 순변사 이일이 패전함. 경상우도 의병장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이 봉기함4/28충주 탄금대에서 도순변사 신립이 패전함4/29선조대왕이 서북으로 피린함5/2왜적이 한양도성을 무혈 점령함5/7옥포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왜선을 대파함.울산 경주 의병들이 점령당한 좌병영을 기습 공격함5/18임진강 방어전에서 도원수 김명원이 대패함.6/5당항포 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대승함.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의 근왕병이 용인에서분산하여 패전함.6/7문천회맹과 문천전투에서 울산의병이 분전함.6/14평양성이 함락됨.7/4한산도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대승하고 제해권을 장악함.7/27묘향산에서 서산대사는 승군 도충섭이 되어 승군을 일어킴. 영천 의병장 권응수 장군이 천성을 탈환함.7/28의병장 곽재우 정암진에서 왜적을 격퇴함.8/1의병장 조헌 영규는 청주성을 탈환함.8/18금산성 전투에서 조헌 영규 임응춘 등과 장졸 700여원이 순절8/20좌병사 박진 군과 의병군 등 경주성 탈환전에서 왜적의 배후 기습으로 대패함.9/1부산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대승함.9/8경주 의병장들이 경주읍성을있는데 반해 왜성은 이 두 가지를 혼합한 평산성(平山城)이라 할 수 있다.또한, 왜성은 항구를 볼 수 있는 산정의 돌출부에 작은 규모로 축성된 데 비해, 조선의 성은 완만하게 이어진 넓은 산능선을 따라 넓게 울타리 치듯 축성되었다.둘째, 왜성은 주성곽을 중심으로 하여 겹겹이 성벽을 축조하고 있다.조선성은 기본적으로 성벽이 한 겹으로 되어 있고 성안은 자연지형을 이용하며, 내부에 별도의 성곽은 축성하지 않았다.셋째, 왜성의 성벽은 크고 작은 돌을 조합하여 쌓았다.반면, 조선의 성벽은 편평한 돌을 어울려서 쌓았기 때문에 조선의 성은 수직인데 반해 왜성은 칠십 도 각도로 경사져 있게 된다.또한, 조선식은 많은 양의 돌로 기초공사를 하고서 그 위에 성벽을 쌓아올리는 데 반해 왜성은 기초공사 없이 지면 위에 바로 쌓아올렸다.따라서, 성벽의 두께도 조선식에 비해 왜성은 두께가 보통 2-4미터 정도로 두텁게 쌓아졌다.넷째, 성문을 들어가면 조선식은 성안이 훤히 다 보이게 되어 있는데, 왜성은 ㄱ자형의 돌담 사이를 통과하여 나가도 가까운 거리 맞은 편에 돌담이 있어 군사가 돌담에 몸을 은폐하고서 침입자를 활 또는 조총으로 격퇴할 수 있게 세심한 주의를 기율여 만들었다.다섯째, 조선식은 총지휘소의 일정한 원칙이 없는데, 왜성에는 성내 가장 높은 자리에 덴슈카쿠(天守閣) 또는 혼마루(本丸)라고 부르는 망루가 보통 삼 층 건물로 지어져 있다.임진왜란 중에 축조된 왜성은 모두 경상도 해안과 전라도 해안에 약 20개가 넘게 위치하고 있다.구포왜성(龜浦倭城)종별: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6호지정년월일: 1972년 6월 26일시대: 조선시대소재지: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 산72-1 일원구포왜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명나라 연합군의 반격으로 후퇴하던 왜군이 해안에 성을 쌓고 장기전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1593년(선조 26) 7월~ 9월에 왜장 코바야카와(小早川隆景)와 다치바나(立花宗茂) 등이 쌓은 일본식 성이다.나베시마가 이끄는 왜군이 주둔하였다고 하는 김해성의 지성으로, 구법곡(九法谷어 있다.마지막으로 내부에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전개되는데 이 구릉의 정상 부는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하여 구릉의 유무를 볼 수 없게 되어있다.한반도의 남단인 기장은 동래와 함께 바다의 관문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태조 5년(1396) 8월 9일에 왜적의 배 120척이 경상도에 침입하여 우리의 병선 16척을 탈취해 갔고, 수군만호 이춘수(李春壽)를 살해하였으며, 동래, 기장, 동평성(東平城)이 함락되는 등 수없이 많은 왜적의 침탈이 빈번하였다.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침략군의 제2군인 가토 군은 동래, 기장, 언양, 울산으로 진격해 왔다. 4월 15일 동래 성이 함락되자 기장현감은 군졸을 모아 동래성 수복을 준비하던 중,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성을 버리고 지금의 일광면 조정리로 후퇴해 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1593년(선조 26년) 6월경에는 지금의 기장읍 죽성리(竹城里)에 왜장 구로타(黑田長政)가 왜성(倭城)을 쌓고 한때는 8,000여 명의 왜병이 주둔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기장지역은 7년간의 전란 동안 완전히 폐허가 되고 계속 왜군의 점령하에 있었던 것이다.기장의 주민들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지고 남녀노소가 겪은 피해는 형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기장주민들은 삼한 아래로 왜구의 침략과 노략에 대항하여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온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해 온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임진란 당시의 기장은 왜군의 본거지가 되었으므로 현청도 있을 수 없었고, 현감도, 향리도 없었으며, 백성들은 산 속 깊이 피난생활을 하였다. 이런 결과로 전란이 끝나자 기장현(機張縣)은 극심한 피해로 독립된 현으로 유지될 수 없었으며, 전란 때 현감(縣監)이 싸움 한번 해 보지도 않고 도주하였다는 문책으로 선조 32년(1599)에 폐현되고 말았다. 이때에 동래부(東萊府)도 동래현으로 강등된다. 폐현된 기장은 두 조각으로 나뉘어 남쪽은 동래현에, 북쪽은 울산군에 편입되었다. 그 뒤 18년 후인 1617년(광해군 9년)에 인된다. 석축과 토루는 지형에 맞추어 굴곡을 주었다. 이 곳의 내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동북쪽은 자연경사면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기한 산성의 서벽에 연결된다. 성으로 오르는 동쪽 길목에 현재 간이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우물도 한 개소가 남아 있다.왜관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왜구를 평화적인 통교자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회유책을 추진하였다. 왜구에 대한 회유책으로는 그들의 침략원인이 경제적인 데에 있었으므로, 왜에게 교역을 허가하여 줌으로써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화적으로 통교를 원하는 경우 남해안의 어느 포구에서든지 자유로운 무역을 허가하였는데, 이들을 성격에 따라서 사송왜인(使送倭人) ·흥리왜인(興利倭人) ·투화왜인(投化倭人)으로 분류한다.왜인들은 처음에 경상도의 연해안을 주로 이용하였지만, 점차 그 지역을 확대하여 무질서하게 내왕하게 되었고 여말선초 남해연안에 왜구들의 잦은 약탈로 인해 남해연안 일대의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없었다. 이에 조선정부에서는 고려말과 조선초에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정벌하기도 하였으나 완전한 해결책은 되지 못하였다. 조선에서는 그 폐단을 줄이기 위하여 태종7(1407)년부터 경상도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75581" 병마절도사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5272" 강사덕(姜思德)의 건의에 따라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78233" 부산포(釜山浦)와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36880" 내이포(乃而浦)를 왜인의 도박처로 한정시켜 출입과 교역품을 통제하기 시작하였으며, 상경왜인에게는 한양에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50670" 동평관(東平館)을 설치하여 숙소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은 잘 가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왜성과 왜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몇가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그것은 연향대청, 영가대, 초량객사, 표민수수소, 중구, 약조제찰비이다.연향대청조선과 일본의 양국관계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특히, 일본사절 활동은 철저히 통제되어 서울에 있던 동평관(東平館 : 일본사신들이 머무는 곳)은 폐쇄되고 부산의 왜관만이 대일교섭의 유일한 창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임진왜란 후 조선정부는 계속된 일본정부의 강화요청을 받아들여 두모포왜관(豆毛浦倭館 : 1607∼1678, 현 동구 수정시장 일대)을 세워 일본의 교역을 허락하였다. 그후 양국의 선린우호관계가 안정적으로 확대되자, 1678년(숙종 4)에는 그 규모를 확대하여 초량왜관(草梁倭館 : 1678∼1876, 현 용두산과 복병산 일대)을 세웠다.연향대청은 17∼19세기 양국간의 선린우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설물로 당시 규모는 연향대청 18칸, 헐소(歇所 : 일본사신들이 잠시 머물던 곳) 2칸, 헐청(歇廳) 2칸, 남문 3칸, 북문 1칸, 공수간(公須間 : 연향대청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던 곳) 17칸으로 1653년 동래부사 임의백이 처음 세웠다. 1868년 동래부사 이항이 중창하고, 1709년 동래부산 권이진이 거듭 중창하였는데, 그 위치는 초량왜관 북쪽 담장 밖에 있고 동래부의 남쪽 30리에 있었다.임진왜란 후 부산이 대일교섭의 유일한 창구가 되자, 일본사신들은 부산포에 도착하여 먼저 초량객사(草梁客舍 : 조선 임금의 전폐를 모셔놓은 곳)에서 예를 올리고 예물을 증정하였다. 이어서 연향대청으로 자리를 옮겨 동래부산과 일본사신이 공식적인 서계(書契 : 외교문서)를 교환하고, 동래부사의 환영연을 받은 뒤 일본사신 일행은 북문을 통하여 초량왜관으로 들어가 머물렀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연향대청은 1876년 초량왜관이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바뀌면서 철거되고, 그 자리에 제1소학교가 세워졌다가 현재 광일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대청동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영가대영가
    생활/환경| 2007.02.02| 22페이지| 1,000원| 조회(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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