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지역발전 Report지역발전전략 에세이-역사·문화예술·교육의 도시 진주-학과 :학번 :이름 :제출일 :나는 남부지역의 중심도시라 할 수 있는 진주시에서 태어나 굽이쳐 흐르는 남강의 정기를 듬뿍 받고 자라난 진주토박이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진주시의 이미지는 '역사·문화예술·교육의 도시'였다. 하지만 타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왜 진주가 '역사·문화예술·교육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지는가하는 질문 혹은 비평을 들어온 터라 나 역시도 의구심이 들 적이 많았다.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의미 없는 타이틀은 아니다 이미 진주는 '역사·문화예술·교육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변화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어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면 내 고장 진주를 눈에 보이는 허울뿐만이 아닌 진정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역사·문화예술·교육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계획을 실행해 보고 싶었다. 건축을 전공하여 여러 강의나 서적을 통해 많은 문화도시에 대한 사례를 접해왔고 우리 진주역시 그들과 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미 진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도시이기 때문이다.진주시는 동쪽으로는 마산시, 함안군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하동군, 남쪽으로는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으로는 산청군, 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부지역의 중심도시이다. 또한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경전선철도와 남해안 고속도로가 동서로, 대전·진주·통영을 연결하는 통영대전 중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연결되어 문화교류의 교량역할을 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사천시, 북으로는 거창, 김천으로 연결되어 있어 바다와 육로를 연결시킬 수 있는 교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전국에서도 유일하게 3회 연속(6년간) 그린시티로 선정된 진주는 경남지역 7개 시·군에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는 진양호와 도심을 관통하는 남강, 도시외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6대산 공원, 경남수목원이 쾌적한 환경과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는 곳이다고 있다. 진주대첩과 개천정신을 근본으화 하고 있으며, 서제, 개제식, 가장행렬, 예술·문화행사 등 각양각색의 행사가 시내 전역에서 다채롭게 열린다. 남강유등축제는 2002년 개천예술제에서 분화·특화되어 이미 문화체육 관광부가 지정한 최우수 문화관광축제가 되었다. 10월 초순경 진주남강은 야간경관조명과 함께 수천 개의 유등으로 논개의 넋이 더욱 붉게 타오른다. 또한 진주 논개제는 전국 최초의 순수여성중심의 전통예술과 교방문화 축제로서 다양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전통문화의 산 학습장이다. 간혹 길을 가다보면 전광판에서 '소싸움의 발원지 진주'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다 진주는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인 소싸움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고장이기도 하다. 2006년에는 3,000석 규모의 상설소싸움경기장을 건립하여 진주소싸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여 매주 소싸움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 2008년에는 21C의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의 일환으로 이상근 음악제와 이형기 문학제를 개최하였다.)또한 진주를 찾는 관광객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축제와 진주성, 남강변 일대에 조성된 야관경관조명과 음악분수, 진양호, 산림박물관, 강주연못, 금호지 등은 찾는이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진주시민만을 위한 도시가 아닌 만인을 위한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발판은 이미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교육의 도시 측면에서 진주는 국립경상대학교를 비롯한 6개의 대학과 오랜 역사를 가진 명문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고 있으며 학생인구가 전체인구의 30.4%(100,587명)를 차지하고 있는 전통의 교육도시이다. 특히 경남과학고·예술고·체육고의 3개 특목고가 있으며, 진성면 지역에 경남자연과학원과 경남유아체험학습관이 건립되고 있어 명실상부한 경남 교육의 요람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되어 평생학습을 통한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교육도시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어 나가고 있다.)최근에 개최되. 이렇게 해서 문화는 도시와 그 시민을 특징짓는 문화적 특색으로 지역사회의 정체성, 소속감, 창조성 등을 활성화할 수 있다. 문화관광이 전체 산업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지역의 전통문화와 자연자원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문화산업을 끌어들여 성장의 동력을 삼고자 하는 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서 도입된 것이 도시문화와 지역발전이 연계된 '장소마케팅' 프로그램이다. 즉, 지방자치단체와 기업가가 연합하여 지역/도시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지역 이미지를 창출하여 외부의 기업가와 관광객으로부터 투자와 소비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인 것이다. 프레터는 도시마케팅의 핵심적 구성요소를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비전을 세운다. 둘째, 스스로를 파악한다. 셋째, 고객이 누구인지 명확히 한다. 넷째, 경쟁자를 파악한다. 다섯째, 고객이 누구인지 명확히 한다. 넷째, 경쟁자를 파악한다. 다섯째, 차별화된 상품을 찾는다. 여섯째, 한 목소리를 낸다.) 도시마케팅을 실현하는 것은 도시브랜딩, 이미지를 뒷받침하는 공간개발, 집중적 건설, 대규모 축제와 이벤트 등을 들 수 있다. 도시의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차별성과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산업과 장소마케팅이 서로 결합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문화산업과 관광의 결합이 중요하다.문화·예술을 토대로 한 문화도시 전략은 서구 유럽의 많은 공업도시에서 시행되었지만, 특히 글래스고와 빌바오, 그리고 도크랜드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알려지고 있다.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도시를 가로질러 클라이드 강이 흐르며, 서쪽으로는 32킬로미터를 가면 대서양 해안에 이른다. 시가지는 클라이드 강을 따라 형생되어 있다. 19세기 산업도시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글래스고는 기반산업의 쇠퇴로 인한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활용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시작하였다. 번영을 누리던 시기에 이미 많은 문화·예술관련 시설들이로 보고되었다.) 그리하여 구겐하임미술관을 구심점 삼아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온 강가를 대규모 문화단지로 꾸미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들은 단지 표면적인 변화이다. 빌바오가 경험한 가장 큰 소득은 시민의 마음속에 일어난 변화이다. 비관적 분위기를 낙관적으로 바꾼것이다. 빌바오 시민들의 삶의 질은 전과 비교하여 크게 향상되었고, 자신의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건 매력적으로 변한 도시는 경제적 이득을 얻게 하지만, 가장 큰 소득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자긍심이다. 스스로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도시를 찾아줄 사람은 없다.영국의 도크랜드는 쇠퇴한 도시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도시를 활성화 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런던의 부두였던 도크랜드는 과거 대영제국의 대표적인 해외진출의 관문으로 번성했던 곳이지만 항구의 폐쇄로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페허된 곳이었다. 런던은 이곳을 효과적으로 개발하여 도심의 팽창을 수용하면서, 도시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고자 하였다. 도크랜드는 도시를 새롭게 변화시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런던의 템즈강을 따라 조성된 문화예술 단지인 사우스뱅크를 연결하여 우중충한 도시의 이미지를 개선하였다. 새로운 양식의 건축물인 밀레니엄 돔을 도크랜드의 상징물로 내세우면서, 문화와 자연을 고려한 21세기 도시 재생 정책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여러 나라의 신도시 개발 사례들을 비교 분석해 볼 때 영국의 뉴타운이 갖는 두드러진 전통은 하나의 도시가 생산과 유통, 소비의 모든 기능을 갖춘 독립적인 자족도시로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즉, 영국의 뉴타운은 발족 당시부터 일자리를 가진 자족적인 도시로서 산업, 연령, 수입 등 모든 부분이 균형잡힌 도시로 만들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고용의 문제에 있어 주변지역 유기적 연결 관계를 갖고 발전하고 있어 지역 내의 뿌리가 매우 튼튼하다, 또한 개발의 참여에 있어 주거 부문은 개발공사에 의해 건설되어 왔지만,후원과 지원을 통해 결국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우리 지역을 발전시키면 시민의 삶의 질도 향상 된다는 점을 주민들이 인식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하도록 홍보하고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래스고의 사례에서 "글래스고를 더 좋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캠페인을 하고 시민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행사를 병행했던 것처럼 참신한 주제의 슬로건을 공모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주민참여를 유도한다. 그리고 채택된 슬로건을 바탕으로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주민들이 슬로건을 늘 인식하고 우리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한 도시가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요소를 갖춰야 한다. 그것은 삶의 질, 총체적 교육, 정보와 지식에의 용이한 접근, 국제적 네트워크와의 융합,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능력과 독창성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커뮤니티가 존재해야 한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먼저 활동적이며 헌신적인 리더십을 가진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다.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 엔진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인 리더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리더는 통찰력 있는 시각과 최신의 정보를 가지고, 커뮤니티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실천한다, 이처럼 리더는 중심도시로의 변화와 새로운 미래의 완성에 가장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다. 리더는 기회를 알아보고, 합의와 총론을 이끌어내고, 선택된 길을 따라 커뮤니티를 움직이도록 이끌 것이다.도시의 발전에 있어 두 번째로 주요한 전략적 핵심요소는 시민들이다, 글로벌 경제의 국제적 컨텍스트, 빠른 기술적 변화, 커가는 도시의 중요성, 그리고 경쟁의 강화는 사람과 사람의 가치를 더욱 강조하게 만든다. 앞에서 계속 언급해 왔듯이 한도시의 성공은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론 도시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사람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계획을 세우고, 또 그것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문화사Report영화『알렉산더』감상문사실 나는 알렉산더라는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지 않았고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무지한 편이었다. 역사에 대해 그다지 큰 흥미를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어서 장장 3시간짜리나 되는 알렉산더라는 영화에 접근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를 접함으로써 그 시대 혹은 인물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조금은 관심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한편으로 한 인물에 대한 모든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복잡하게 얽혀있던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코린토스 동맹을 성립시켰던 부왕 필립 2세가 암살되고 B.C 336년 알렉산더는 20살에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었다.필립 2세는 이 영화에서 굉장한 주정뱅이로 또 그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 여왕은 남편을 저주하고 자신의 욕망을 아들에게 투사하며 끝없이 아들을 조종하고자 하는데, 이에 영화는 어두운 가정환경 속 한 인간의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바로 자랄 수 있었던 건 평생의 의로운 친구 헤파이션이 있었으며 그들은 교육만이 무지함을 깰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학자에게 교육을 받고 자랐다.그는 그의 부왕이 성립시켰던 코린도스 동맹을 페르시아의 사주로 인해 그리스 동맹들이 협정을 깨고 반란을 일으키자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 태수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리스 도시들을 해방시켰다. 그러면서 부왕께서 이루지 못한 동방원정의 꿈을 실현시키게 되는데 그 첫 단계로 튀로스 같은 페니키아 도시들을 공격하고 페르시아의 지배를 원망하고 있던 이집트로 가서 훗날 이집트로 가게 되는데 이들은 알렉산더를 제우스와 동일시하던 아몬신의 아들로 받들며 환영받으며 훗날 이집트의 수도가 되는 알렉산드리아를 세운다. 바빌론 전투로 알렉산더는 그리스인의 영웅이 되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안하무인한 야만종인 페르시아 인들을 알렉산드리아 시민으로 만들고자 이집트에서 머물며 페르시아의 심장부로 진격한다. B.C.330년 가우가멜라에서 그는 페르시아의 육군을 격퇴시킴으로써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 같은 페르시아의 주요 수도들도 다 점령하게 되었다. 그는 스키타이, 소디아, 박트리아를 점령하면서 박트리아의 고산족 여자인 록산느와 결혼한다. 중요한 것은 그녀는 그리스인도 아니였으며 마케도니아 인은 더더욱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더가 어머니의 끊임없는 권유에도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민족과 결혼한 것은 회유책이었나? 아니면 후계자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사랑이었나? 어쨌든 알렉산더는 정복민들이 마케도니아인들보다 나은것이라고는 우월감뿐이라며 그들에게도 그리스 교육을 시키며 타 문명에 대한 오만을 역겨워했다.이제 알렉산더는 동방의 대제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인도로 향하려 하였다. 그러나 7년간의 원정동안 그는 민심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위대한 군주라 하더라도 긴 전쟁은 아랫사람들로 하여금 반발감을 갖도록 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그렇게 긴 시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해왔는가? 초기의 의기투합은 온데 간데 없고 군대가 점차 분열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사랑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뒤로하고 알렉산더는 반발하는 부하들을 반역자로 처형하고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로 향했다. 인더스 강에 이른 그는 인도의 지배자 포루스를 패배시켰다. 알렉산더는 더 이상 진군할 수 없었다. 이미 부하들 사이에서 불신이 팽배해 있었을 뿐 아니라 군주인 스스로도 나약해져 스스로를 독재자라며 힘들어 한다. 비로소 전투에 지칠 대로 지친 군대의 요구에 응해 B.C.324년 바빌론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해 알렉산더는 병이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32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알렉산더가 부하의 독배를 마시고 죽는 것으로 나오는데 안타깝게도 죽기 전 그의 모습은 그가 그리도 싫어하던 부왕필립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해 있었다. 바빌론으로 돌아왔지만 긴 동방원정의 끝을 찾지 못한 그는 끊임없이 어떤 안식처를 찾아 헤맨 것은 아닌가? 그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평생을 싸웠고 그럼으로써 자유로워 졌다. 그리스와 타 민족의 화합은 실패하였지만 그 어떤 성공보다도 영광스런 실패였다. 짧은 생 그가 남긴 것은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려 하였다는 것, 그래서 수많은 국가들로 이루어진 헬레니즘 문명은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알렉산더가 죽고 적절한 후계자가 없었던 그의 제국은 곧바로 프톨레 마이오스 1세가 창건한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 셀레우코스 1세가 창건한 ‘셀레우코스 왕국’ , 안티오고스의 후손중 하나인 안티고노스 고나타스가 통치한 ‘마케도니아’의 4개의 국가들로 나뉘어지기 시작하였다. 훗날 이들 커다란 왕국들과 함께 군소왕국들이 생겨났는데 주로 셀레우코스 왕국에서 분리된 왕국들이었다. 아탈로스 왕조에 의해 통치된 페르가몬 왕국, 그리스 식민자들이 통치했던 박트리아, 유다인들의 마카바이오스왕조, 인도?이란 계통 침입자들이 다스린 소왕국이었던 파르티아가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