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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조선 상업의 역사 평가A+최고예요
    제 1장 조선 초기의 상업1. 조선 초기 상업2. 시전3. 장시 -보부상4. 화폐 -조선시대 화폐 발행5. 객주, 여각6. 대외무역제 2장 조선 후기의 상업1. 상품화폐경제의 발달2. 시전 -금난전권, 육의전3. 난전4. 도고 -공인5. 사상도고6. 객주, 여각7. 장시의 발달8. 화폐의 발달 및 전황9. 대외무역조선 시대의 상업제 1장 조선초기의 상업1. 조선 초기 상업①지방의 생산력이 빈약, 교통의 불편으로 상업거래가 번영치 못하였고, 상업상 과세에서의 가렴주구②도시의 어용상인과, 지방에서의 시전상인에게만 상업상 특권을 부여⇒시전을 설치함으로써 이들이 조세와 부역으로 조달할 수 없는 물품을 지급하는 수단으로 삼음③?왕실과 정부의 필요물자도 조용조라는 현물부세수취를 통해 해결, 수공업제품도 장인들을 사역시켜 조달④15c에 고려시대 지방정기시가 소멸, 사무역이 금지2. 시전?정종 때 시전을 관설 했으나, 잦은 정변으로 미루어지다가, 한양천도 후 태종 때 본격적으로 설치⇒종로 1~3가, 남대문 1가(성종 때 확대되어 종로 4가 포함)?태종 때 행랑(비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길게 이어 만든 복도)을 설치하여 시전 상인 상점으로 이용?한성부에 시전을 중심으로 상업이 이루어지는 정도⇒서울 중심가인 운종가 일대에 자리(지금의 종로)?행랑을 중심으로 상업 활동한 시전상인들은 특정 상품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권한 가짐?국역을 부담(分役)⇒유분각전, 무분각전으로 구분?경시서를 설치하여 시전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아보았다(고려 문종 때 개경에 설치, 세조때 평시서로 개칭)?청재감(淸齋監)을 설치하여 시가의 청결을 감독케 함3. 장시?고려왕조 때 주현의 관아 부근에서 열렸던 장시는 조선왕조 개창 후 잠시 소멸?1470년경 전라도 무안지역에서 ‘장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현⇒에서 1470년 무렵 전라도 나주와 무안 등에 큰 흉년이 발생, 장문이 열렸다는 기록, 흉년의 극복 방 안이 되기도 함?15c말 전라도 전 지역, 16c전반에는 충청도, 16c 중엽에는 경상도17c후반 이후 모든 장시가 5일장으로 변모?대장(大場)도 형성되어, 소장에서 반출되는 상품을 집하하여 지역 외부로 반출, 지역 외부에서 들어오는 상품을 소장에 배급하는 기능 담당?조선 초기 보부상)은 국가 상업억제정책에 따라 노인(路引)을 발급받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상업에 종사⇒주로 길드적인 조직운영(장례, 상호부조 등), 관리로 하여금 전매특권을 부여 받음(어, 염, 무쇠그릇 등)보부상: ①임란때 행주산성의 권율장군에게 수천명의 양식을 조달②병자호란때는 청나라 군사의 포위망을 뚫고 양곡조달③1866년 병인양요때는 강화도에 군량을 운반④1811년 홍경래의 난때 의주의 보부상 허항이라는 자가 그들 1천명을 데리고 와서 관군을 도움⑤1894년 갑오 농민 전쟁 때는 보부상 엄순영, 최해승 등이 수 백명을 이끌고 농민군 토벌에 공 세움⑥1989년 황국협회는 보부상을 앞세워 독립협회를 분쇄하는 데 이용했고, 개화파의 테러에 보부상이 앞장섬4. 화폐①고려 시대의 화폐유통에 관한 역사적 사실②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정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며, 개국 초기의 민중생활을 안정 시키기 위한 경제정책의 일환③화폐의 주조 발행에 대한 일체의 지배권을 국가 또는 국왕이 장악하기 위해 저화나 동전을 법화로 유통④중국의 직, 간접적인 영향⑤조선정부가 초기에 포, 미 등 물품화폐가 가지는 한계를 느낌?당시 농민들은 물품 화폐로 면포와 미곡이 사용 됨⇒‘포화 경제’라고 함 (16c에는 상포와 악포는 소액환, 정포는 고액환으로 사용)※ 조선시대 화폐 발행?태종 원년 사섬서(司贍署)를 설치, 저화를 법화로 유통보급, 포화의 통용 억제, 그러나 성과 미미하여 저화 전용령을 폐지?세종 5년 주전소(鑄錢所)를 설치, 조선통보의 주조유통을 결정, 성과 미미?세조 6년에는 포화를 국폐로 규정함(경국대전의 호전에 규정), 저화도 사용?세조 10년 전폐(일명 팔방통보, 유엽전)를 주조, 유사시 전폐를 화살촉으로 사용하는 실용적 측면 고려?인조 11년 상평청에서 상평통보를 법화로 주조, 유통시제③조선정부는 저화나 화폐원료의 부족과 기술 인력의 동원 난으로 적당한 시기에 화폐를 만들 수 없었음④화폐 유통 정책 자체의 모순성과 그 운용이 불합리 하였다는 점⇒이는 화폐정책의 한계 내지 그 당시 사회 경제발전의 한계를 의미하던 것5. 객주, 여각?자본의 다과에 따라 많은 것이 여각, 적은 것이 객주이다?객주의 업무는 매매의 중개, 여객업, 은행업 등을 겸하고 있다?객주는 지방에 모여드는 객상을 위해 위탁판매, 대부, 예금의 업무와 숙박업을 겸하는 자도 있었다6. 대외무역?조선은 처음부터 쇄국주의정책을 실시해, 민간인의 외국인 진출을 엄격히 통제, 사신무역만 가능?명(공무역, 사무역), 여진(경성, 경원지역의 무역소), 일본(동래에 설치한 왜관)중심으로 무역 활동?명은 태종 때부터 친선관계가 확립되어 정기적, 부정기적인 사절을 파견하면서 조공, 회사의 형식⇒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문화적 실리를 도모?여진은 조공무역체제를 성립, 여진은 주로 광산물, 약재, 향료, 모피 등을 진상했고, 생필품, 공예품문화물 등을 회사 받았다?왜는 왜관을 설치, 이후 삼포를 개항하여 왜인과의 교역 허가제 2장 조선 후기의 상업1.상품화폐경제의 발달①대동법실시⇒공인들의 확대, 성장②17~18c 농업의 발달⇒상경농법, 이앙법, 견종법의 확산③경영형 부농층의 성장⇒상업적인 농산물 생산 ex)곡물, 면포(일반농작물), 담배, 채소, 염료, 약재(특수 농작물)④도조법의 확대⇒영농 과정 전체에서 소작인의 작물의 선택 가능, 소작료의 금납화⑤인구의 자연증가 및 농민의 계층분화가 심화되고 이촌향도현상이 나타남⑥수공업의 발달⇒민영수공업의 확대2.시전?도시의 발달로 시민들의 생활기호를 쫓는 가공 상품 종류 증가, 시전의 증가?시전과 사상의 분쟁, 시전상인간의 분쟁, 시전상인과 수공업자의 분쟁 등 상권 분쟁이 심화?임진왜란 이후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17c에 육의전과 같은 대규모 시전으로부터 이전 보다 훨씬 무거운 국역을 부담하게 되었고, 그 대가로 금난전권을 시전상인에게 부여?금난전권⇒숙종때笞)를 가함?착납권(捉納權) : 난전인을 잡아 들일 수 있는 권리(평시서?한성부 → 시전상인 행사)?도시 상업에서 소상품 생산자 및 소상인층의 자유로운 상품 판매를 막을 권리이자, 도시의 물가 상승과 도시 영세민의 생활을 압박하는 특권으로 조선 전기에 사용한 난전권과는 다름?특정 상인의 자본을 육성하여 재정수입 확대를 도모, 시전 상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의도⇒난전의 반발과 난전과 결탁한 세력가들의 반대로 좌절, 사상 체계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뜻함?중국으로 보내는 진헌품 조달, 관부에 수요에 따라 부과된 임시 부담금, 궁중 수리 도배를 위한 물품 및 경비의 부담, 왕실의 관혼상제의 수요품 조달 등의 역할※금난전권의 폐지(신해통공) 배경①체제공과 실학자들의 의견 반영②시전 상인과 사상 도고의 독점의 폐단③시전 상인에 대한 도시 빈민층, 영세 상인, 소생산자 층의 저항과 물가 문제가 심각④권세가, 궁방 등과 결탁한 사상 도고의 세력이 점차 확대⑤시전 상인과 연결된 노론의 정치자금원을 차단하여 노론 벌열의 세력 약화 목적, 사상과 남인 세력과 연결?신해통공(1791, 정조) : 육의전을 제외한 일반 시전이 가진 금난전권의 특권을 혁파하고, 육의전 상품을제외한 상품을 자유롭게 판매①-소상인과 생산자들은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게 되었음, 시전상인의 침탈로부터 중소 상인 보호②서울에서의 상품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물가의 앙등을 막음③사상도고의 경우 우세한 자본력과 광범한 유통망을 바탕으로 상권을 장악⇒1883년 쌀 폭등을 야기, 도시 소상인, 빈민들과 마찰※육의전(육주부전)-⇒선전(비단), 면포전(무명), 면주전(명주), 지전(종이), 어물전(생선), 저포전(모시)-기원 : 호란 이후 중국에 보내는 방물과 세폐를 분담케 한 인조 때 부터-특권 : 정부로부터의 자금대여, 외부 압력으로부터의 보호, 금난전권 의한 도고상업의 권리 부여3. 난전?난전은 조선 시기 시전 대장에 들어 있지 않은 상인의 상행위나 상업시설을 가리킴, 국역을 지지 않음?16c : 난전의관리나 노비, 도성민들도 적극가담⇒시전상인과 사상 간의 상권 분쟁 야기4. 도고?조선후기 상품의 매점 매석을 통하여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던 상행위를 했던 상인이나 상인 조직, 권력과 결탁?주로 물화의 보관, 생산과 소비의 시간적 조절을 통해 재화의 가치를 증대?주로 관상도고(시전상인, 공인, 경주인, 영주인), 사상도고가 있다?정부는 신해통공이후 여러 차례 도고 혁파령을 내렸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도고는 시전상인의 상행위를 억제 시켜 국개 재정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공인의 활동①공인 : 대동법 실시 이후 나타난 공납청부업자로 서울의 시전, 지방 장시를 중심으로 활동②역할 : 관청에서 공가를 미리 받아 필요한 물품을 사서 납부, 공인세와 국역의 부담③조달권을 가진 상품에 대한 금난전권 등으로 도고로 성장하여 상업자본을 축적했다④관청별, 물품별로 공동출자하여 계를 조직하기 도 함5. 사상도고?상품량과 상품 품목의 증가로 성장(17c부터 이현, 종루, 칠패 등에서 활동)※경강상인-한강변을 중심으로 정부의 세곡, 양반 지주층의 소작료, 소금, 어물등의 운반 및 상행위, 대표적 선상-17c 이후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으로 곡물이 주요 상품이 되면서 선탁을 이용한 곡물 도매상으로 발전-완도, 변산, 안면도, 장산곶 등 사해안가에 올라오는 선재를 도고, 발달된 조선술을 활용하여 조선업에 종사 하여 조선도고의 위치도 확보※송상-개성을 근거지로 하여 전국의 상품 생산지와 집산지를 연결할 수 있는 조직적 연락망과 유통망 갖춤⇒전국에 송방이라는 지점망을 형성하여 각지의 상품생산과 가격의 동향을 파악하여, 매점, 판매 활동(차인 파견)-동래 상인과, 의주상인을 조종하여 대일무역과 대청무역에서 주도권을 행사-주로 인삼재배, 가공, 판매에 종사-상거래 기입 방식인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置簿法)의 복식 부기를 사용, 의인법 활용※만상(유만, 만고)-17c 말 의주를 중심으로 대청 무역활동⇒주로 중강후시, 책문후시, 단련사 후시를 통한 무역-주로 비단, 약재, 문방구를 수입하고 은관장
    인문/어학| 2010.12.31| 6페이지| 2,000원| 조회(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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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일 문제의 가정
    예전에 교육 철학 시간에 니일의 서머힐의 학교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수업을 결정하며, 모든 정책 결정과 규율은 학생들이 정하며, 한마디로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 되는 그런 학교 였다. 머랄까,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자라면서 재수 없게도(?) 엄격한 학교만 걸려서, 많이 맞고 교사분들에게 많은 억압을 받아왔고, 또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이 영상을 시청 함으로써 책의 내용 역시 읽기전에도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 책 을 통해 과연 니일은 가정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인가에 대해 한번 살펴 보고자 한다생각보다 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한 그런 강요된 억압, 복종의 유형과 그에 따른 아이들의 장애를 아주 상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니일의 입장은 "문제의 아동"은 없다. 문제의 부모만 있을 뿐이다고 보았다. 어쩌면 문제의 인간성만이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유아기의 훈련은 개의 훈련과 비슷하므로 아기를 엄격하게 다루면 그 아기는 복종적이고 열등한 성인으로 자라나게 된다. 파시즘(fascism)은 유아기 때부터 아기들이 그들의 본성을 간섭받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아직도 계속 되고 있으며, 아기는 스스로 자신에게 알맞은 수유 시간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지한 산부인과 의사들과 어머니들이 불합리한 육아 방식으로 아기의 자연 본능과 행동을 억누르고, 즐거움과 자발성을 파괴하는 참으로 무모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육아법이 전 인류의 정신적, 신체적 병폐를 야기 시키고 있다고 보았다그리고 정신 침해 과정은 청결 문제에서 생긴다고 보았다. 청결의 훈련과 성 혐오 훈련은 놀랍게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이 세계는 성에 대해 혐오감과 두려움을 갖고 자라난 수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신경증에 걸려 있다. 내 친구 중 한명이 남들과는 굉장히 다르고, 항상 소화불량에 걸려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떻게 자라왔는지 알아 보았는데, 부모님께서 결벽증이 심하셔서 심지어 자신의 아들이 밖에 있는 놀이터에도 놀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밖에서 뛰어놀고 흙, 먼지 다 묻혀 가며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이 잘못된 부모의 양육방식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그것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내 친구의 모습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이제 불행한 가정의 아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 가정의 아이는 불행한 가정 문제 때문에 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성 회복의 문제와 관련하여 신경증의 치료가 아닌 교육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 할 수가 없고 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보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 정신을 발달 시켜야 된다고 보았다. 난 이 부분에 대해서 절충론을 택하고자 한다. 물론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하지만, 아직 자아의 성숙이 덜 발달 되었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제약은 필요하다고 본다. 제약이라는 단어 보다는 아이들이 사회에 올바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코치해 준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이겠다.가정에서의 거짓말 중에 가장 해로운 거짓말은 종교적 ,도덕적 거짓말이라 보았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거짓말로 가득 차 있으며 아이들은 자유스러울 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 부모의 잘못을 흉내 내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은 잘 모르는 사태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무지한 부모들은 거짓말과 금지로써 그런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상처를 받는 것은 마음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떠한 거짓말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럼으로써 다른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자녀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나쁜 어머니는 아이에게 "너는 엄마를 사랑하니?"라는 질문을 되풀이 하는 어머니이다고 보았다. 그 질문 속에는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데서 생기는 죄의식과 거기에 근거한 의심이 담겨져 있다. 어린 아이들은 사랑의 증거를 보여 달라는 부모들의 요구 때문에 시달림을 받는다. 아이는 결국 이런 부모들에게 사랑을 찾을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대신에 미움을 찾게 된다. 아무도 사랑을 강요 할 수 없다. 어떤 부모이든지 더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다고 한다. 교육을 시험과 학위의 문제로 볼 수 없듯이 사랑도 실리주의자들의 편협한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사회의 적대감과 긴장을 바로 보지 않는 한 가정안에서의 적대감과 긴장의 해소책은 찾아 볼 수 없을 것 이다. 사회를 병들어 가게 하는 것도 바로 가정의 편협한 도덕선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불안 과 두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불안한 아이들은 대개 불안한 부모의 아이들이다. 현실적인 것에 대한 주의와 불안 사이에 뚜렷한 구별을 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불안은 어린이와 어른의 생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우리는 가끔 불안해 진다. 그런데 불안은 우리가 직접 행동할 때 보다는 어떤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때 더 심한 것 같다. 불안은 내적인 신경증으로 자신의 생활과 일, 사랑에서 특히 사랑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다. 불안은 화를 잘 내는 아이의 문제를 파악되는데 폭력적인 분노를 갑자기 터뜨리는 아이는 큰 불안의 짐을 안고 있다. 아이들은 보통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터뜨릴 경우가 많으므로 효과를 별로 거두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어서 많은 중, 고등학생들을 접하고 있다. 물론 다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이지만, 가끔씩 불안감을 호소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아이들을 가끔씩 볼 수 있었다. 물론 간접적이지만 이런 아이들의 가정배경을 조심스럽게 살펴 본 결과, 대 부분 가정의 상황이 부모와의 불화로 인한 아이의 잦은 가출, 부모간의 불화로 인한 이혼이 많았다. 이 책을 읽어 보며, “아...정말 사주팔자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것이구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근본적인 아이들의 사주팔자는 부모님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그리고 오늘날 종교와 신비주의, 기성세대의 권력이라는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도덕의식, 권위와 같이 삶을 질식시키는 것은 모두 비합리적인 권위라고 보았다. 부모의 통제가 바로 핵심적인 이유이며 그것은 부모의 사랑과 반대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일하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가정 내의 권위부터 없애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정의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은 누구든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때이다. 가정 내의 민주주의를 고려해 보기 전에 먼저 학교 내의 민주주의를 살펴보자. 학교 내에서의 자율이 잘 이루어지려면 그것을 잘 운용해 나갈 수 있는 소수의 청년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가정에서 투표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부모가 아이들에게 권위로써 군림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누릴 수 있다. 가정은 소단위일 뿐이나 중요하고 강력한 단위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증오가 가정 내에 있다면 시장, 학교, 교회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가정은 자연적인 단위이며, 부모의 사랑이 필수적인 육아실이다. 역시 이 부분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존중해야만, 지금의 문제의 가정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다.
    교육학| 2010.12.31| 3페이지| 1,000원| 조회(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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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 시대의 언어문제와 예술 작품
    이때는 고전 라틴어를 최고의 언어로 하며, 또 사용하고 연구하는 그러한 시대이다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1420년경에 마사치오, 브루날레스키, 도나텔로가 있다. 특히 마사치오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조또의 투시법을 완성하였다. 원근법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중세적 요소인 성경에 나오는 주제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도 도나텔로의 상은 성경을 주제로 했지만, 인간의 인체를 조각한 아주 파격적인 작품으로 평할 수 있다. 고전 인문주의 시대의 언어문제는 1434년 플라비오와 브루니의 논쟁이 있다. 브루니는 고전 라틴어가 로마민중들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입장 이었고, 플라비오는 모든 민중들이 사용한 동질성의 언어라는 입장으로 속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게르만 족의 침입으로 라틴어의 순수성이 타락했다고 보았고 통속어의 기원이라 보았다. 이러한 입장을 ‘재앙이론’이라 한다. 이는 훗날 16c 언어논쟁을 야기 하게 된다. 플라비오 중심의 대부분의 인문주의자들은 당시 저급한 통속어에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라틴어의 우수성을 찬양하며, 라틴어만이 완벽한 문학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이때는 1400년대 중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로 이야기를 시작 할 수 있다. 당시 인쇄술의 개발은 혁신을 가져올만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0년 전에 만들어진 고려의 인쇄술 개발도 물론 큰 업적일 수는 있으나, 지배층에게만 국한된, 일반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못한, 영향력이 적은 것이 한계였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속어로된 출판물을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속어인문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그리스 문화가 유럽으로 유입 된다. 이때 활약한 인물이 바로 코시모 데 메디치로 들 수 있다. 이들은 그들의 학문, 특히 플라톤 철학을 전하여, 피렌체 중심의 신플라톤주의가 부활하게 된다. 이 신플라톤주의로 자유의지와 이데아론에 대한 고찰이 있게 된다. 특히 자유의지를 통해서 구원에 대한 수동적인 인간이 아닌 자신의 자유의지의 작용에 의한 적극적인 태도가 구원에 기여 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 시켰다. 즉 인간 스스로의 창조성, 자아의 설계 등, 인간의 자주성을 강조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휴머니스트들의 수사학으로 학문적 전이현상이 있게 되면서 의지 중심의 세계관이 구축된다. 이는 이전에는 없었던 그리스 문화의 이해를 심화시켰고, 완벽한 그리스문화의 이해를 가능케 했다. 그리스가 부활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력은 엄청났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당시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 허영과 사치 등 한마디로 퇴폐 주의적 문화가 판을 치게 되고 이는 로마의 멸망까지 야기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속어 인문주의가 인쇄술의 발달로 대중에게 까지 널리 전파 된 점이다.언어적 측면에서는 1400년대 중반까지 전반적으로 아직까지 고전 라틴어가 최고의 언어로 인정이 되었다. 그리고 키케로나 베르길리우스 등 최고로 인정받는 라틴어 문학작품을 모범으로 삼아, 이것을 모방하는 것이 최고의 문체이자, 아름다운 문체, 완벽한 문법이었다. 즉 라틴어만이 완벽한 문학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인문주의자들의 입장이었다. 이것은 라틴어이외의 것은 인정하지 않고 문화적 전통계층과 예술의 추구는 라틴어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1400년대 말 점차 속어에 대한 연구가 시작 된다. 속어문화가 1370년 보카치오가 죽으면서 시작된 100년간의 침체기가 이제 회복기로 전환 된 것이다. 그리고 1400년대 말부터 1500년 초까지는 라틴어와 속어가 섞인 일명 ‘마카로니풍’이 나타나 과도기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이런 흐름의 중심에 바로 1470년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있었다. 그는 15c 중 후반, 속어 부흥운동을 시도한 자로써, 속어를 게르만 족으로 부터의 해방을 추구했고, 라틴어처럼 풍부하면서도 지식적 언어를 만들 기 시작한다. 알베르티 이외에도 당시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는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프랑스어로 썼고, 알베르티의 회화론이 토스카나어로 번역되는 등 속어에 대한 관심 연구의 흐름이 일기 시작했다. 폴리치아노, 로렌초 군주, 보티첼리를 중심으로 속어가 완전히 부활 한다. 로렌초 군주는 속어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속어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 했고, 토스카나어, 라틴어, 그리스어, 속어에 능통한 폴리치아노의 작품을 통해 속어에 대한 고귀성과 우아함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또 한명의 인물인 폴리치아노는 그의 사상이 당시 피렌체인들의 사상과 일치하게 됨으로 속어의 전통을 본격적으로 복구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기 시작한다. 이 당시에 대표적인작품으로 보티첼리의 이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전의 성경적인 소재가 아닌 그리스 신들을 소재로 하였고, 여성들의 생동감 있는 표정과, 인체미를 다양하게 표현했다. 성서 중심의 예술 성향을 점차 벗어나는 추세였다.16c 르네상스 시기는 벰보의 의 편찬은 결정적으로 언어 논쟁을 낳게 되고, 결국 벰보의 입장이 승리를 거두면서 속어가 정식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들은 주로 속어를 고전 라틴어 수준에 놓으려는 노력을 한다.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보다는 인물 특히 배경을 신화로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등이 있다. 작품 역시 자연, 동물, 인간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실제로 많은 해부를 했고 이를 통해 인체학을 발달 시켰고, 기하학 등의 연구를 통해 그림에 있어서 완전한 투시법이 완성되었다.르네상스를 세계화시대에 적용시키자면 세계화의 물결로 인해 우리 곳곳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이런 때에 르네상스의 의미 즉 옛 문화를 본받아 새로운 문화의 창출, 결국 우리는 고유문화를 전통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현대 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세계화 시대에 걸 맞는 문화를 만들어 내야한다. 르네상스를 풍미 했던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중세의 신중심의 사상에서 머물지 않았다. 유연한 사고와,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다. 그리고 예전에는 동양과 서양과 예술적 특징, 사고, 교육방법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예술에 있어서는 서양은 원근법을 사용한 작품이 많았다. 즉 뒷부분이 작게 그렸고, 앞부분이 크게 그려졌던 것이다. 이를 통해 서양인들은 자기 중심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예술을 통해 추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양 같은 경우는 역투시법을 사용하여 대상을 중심으로 한 예술 작품이 많았다. 즉 뒷부분을 크게 그리고 앞부분을 작게 그렸던 것이다. 역시 이를 통해서 동양인들의 타인을 배려하고, 나의 관점 보다는 상대방의 관점을 더 중시하는 사고를 추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자기 PR 시대라고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서양에서 나온 것이다. 즉 서양은 말을 어떻게 잘하고 아름답게 표현할까에 초점을 맞췄다면, 동양은 마음을 중시 여겼고, 말 잘하는 것을 사기꾼이나 하는 짓이라고 치부해 버릴 만큼 말을 아끼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교육에 있어서도 서양은 부모의 간섭을 배제한 스스로의 교육을 중시 여겼다면, 서양은 부모의 간섭을 긍정하고, 교육의 형태 또한 수동적인 학습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세계화 시대로서 동, 서의 경계선이 많이 붕괴된 상황이다. 이때 단순히 한쪽으로만 치우친 그런 사고가 아니라, 동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세계관, 가치관, 사고방식이 필요 할 것이다. 한마디로 유연한 사고를 가진 팔방미인이 대세인 것이다. 그리고 요즘 웰빙이 대세이다. 예전처럼 단순히 밥만 잘 먹으면 되는 육체적인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 건강한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원한다.
    인문/어학| 2010.12.31| 3페이지| 1,000원| 조회(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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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천국운동의 전개 평가A+최고예요
    - 태 평 천 국 운 동 -과 목 : 동양현대사교 수 : 허증 교수님학 번 : 06122371이 름 : 김 태 민학 과 : 역사교육과제출일자 : 2010. 05. 16ⅰ. 서론ⅱ. 본론1. 태평천국운동의 배경 및 원인2. 홍수전과 배상제회3. 태평천국운동의 전개① 금전촌 봉기에서 남경점령시기까지② 남경 도읍시기③ 지도부 내분 발생 시기④ 안경함락~천경함락 시기4. 태평천국운동의 의의 및 평가ⅲ. 결론ⅰ.서론이번 레포트를 수행하면서 어떤 기준으로 주제를 선정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사실 처음 들어본 사건들이 대부분이었고, 대략적으로 모든 주제에 대한 사건들과 의의를 살펴보다가 태평천국운동이 가장 눈에 띠게 되었다. 일단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전통적인 유교 국가인 중국 전체를 호령하는 세력으로 까지 성장했던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난 한국 근대사에 참 관심이 많다. 현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변혁기를 거친 시기인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 제일 좋아했던 사건 중 하나가 동학 농민운동이다. 여기서 연상되어 태평천국운동을 택했고, 역시 이 둘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중국판 동학농민운동이라 한다면 태평천국운동을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레포트를 통해 태평천국운동에 대해 파헤쳐 보도록 하자ⅱ. 본론1. 태평천국운동의 배경 및 원인)일단 태평천국운동의 배경 및 원인은 크게 내, 외적 요인으로 분석 할 수 있다.내적으로는 이미 건륭제 말기부터 진행된 폐해, 즉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군기의 해이, 가경 초에 폭발한 백련교도의 반란 등 각지 반란 및 민란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향촌사회 역시 지주와 부상, 고리대업자, 관료들의 토지 집적으로 인해. 대부분의 자영농들이 전호로 몰락했으며, 지주들은 전호들에게 50%이상의 지대를 납부하게 해 그 부담이 꽤 컸다. 당연히 전호의 생활은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었고,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져 갔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자연재사람들 특히 운수업 노동자의 실업을 야기 했다. 그리고 당시 광동지역에는 예전부터 객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유입해 들어 왔다. 객가들은 당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있었으며, 척박한 토지를 경작하고 있었고, 응집된 주거 형태 또한 갖지 못했다. 이런 불만들과 당시 본지 인들과의 적대적 관계는 충분히 반란의 위험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객가들은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배상제회를 조직하여 강력한 결속과 이념을 확보했다.이외에도 서양 물품의 다량 유입은 수공의 체제의 몰락 등은 청의 경제적 위기를 초래 했으며, 사상적으로 중국에 널리 퍼진 기독교 사상은 태평천국운동의 반란 세력들을 결집시키기에 충분 했다.이런 태평천국운동은 아편전쟁으로 중국 제도의 여러 가지 모순이 드러난 가운데 기독교의 평등사상과 유교의 대동사상을 지도원리로 삼고 이런 사상의 영향을 받은 불우한 지식층과 유민들이 중국의 근대화라는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꿈꾸며 일으킨 반봉건적 혁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2. 홍수전과 배상제회홍수전은 화현에 이주한 객가의 중농 정도의 집안에서 출생했다. 그는 당시 학인들처럼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1827년 14살 때 현시에는 합격했지만 원시에는 낙방, 생원 자격을 얻지 못했고, 1836년도에 실패했다. 그는 당시 광주에서 )이라는 개신교 선교 팜플렛을 보게 되었고, 이는 홍수전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후 홍수전은 1년 후 다시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했고, 이후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서 금빛 수염의 근엄한 노인으로부터 진도와 검), 권능을 부여 받고, 천상의 요마를 구축하고 세계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6년 후 다시 과거에 응시했으나 좌절했다. 4번의 좌절 후 의 진리를 터득, 예전의 이몽과 일치함을 발견했다. 꿈속에 나타는 노인은 상제 즉 여호바로 중년 남성은 천형 즉 예수이며, 자신은 천부의 제 2자인 크리스트의 동생으로 인식했다. 그는 도덕적 타락이 절정에 달한 중국에 대한 신의 농민, 폭파지식을 갖고 있는 광산 노동자, 숯구이 등이었다.배상제회는 객가 출신인 풍운산 등이 조직한 것으로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하였다. 그들은 대대적으로 농민들과 객가 농민, 숯구이 노동자들을 포교 했으며, 간음과 절도 도박, 우상숭배를 금지, 효도와 상제 숭배 등을 강조했다. 광서성에 걸쳐 조직을 확대한 배상제회는 이후 지주 세력과의 대립으로 종교 활동에서 본격적인 정치운동으로 그 성격이 변화하였다.3. 태평천국운동의 전개태평천국운동은 멸만흥한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청조를 타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이런 태평천국운동의 전개 과정은 크게 4시기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①금전촌 봉기에서 남경점령시기까지1850년 7월 배상제회원들은 금전촌으로 소집, 군사적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회원들은 남자뿐만이 아니라 여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윽고 2만 여의 강력한 무장집단을 형성한 배상제회 지도자들은 신사 층과 연계된 청조의 지방군대와 충돌해야 했다. 홍수전은 청군에 의해 화주에서 포위를 당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양수청의 활약으로 구출되었다. 이후 홍수전은 천왕에 즉위하게 되었고, 이때 의 군대편제를 이용하여 군대를 편성했다. 태평군은 북진을 하게 되었고 광서성 중부의 영안을 점령하였다. 이때 당시 임칙서가 사망하고 그 후임자들은 무능했기 때문에 이들을 진압할 수 없었다. 영안시기에 태평군은 초보적인 정권체제를 정비할 수 있었고, 이어 天曆을 반포하고 正朔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관복, 의례 등에서의 계급적 차별제도를 정하였다. 그리고 태평군 장병에게 사재의 소유를 금지하고 성고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그해 12월 양수청, 소조귀, 풍운산, 위상휘, 석달개 등이 각각 동왕, 서왕, 남왕, 북왕, 익왕에 봉하고 양수청에게 통수케 함으로써 군사 정치적 지도체제를 확립했다. 그러나 1852년 6월 전주를 점령한 직후 북동쪽의 호남성으로 진출하던 태평군은 변경이 취약지인 쇄의도에서 호남 신녕현 출신 신사인 강충원이 이끄는 향용의 기습으로 풍운산이 전사하는 등들도 부분적인 전투에 참여 했으며, 전족이 폐지되었고 특징적인 사실은 관직에도 취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교의 배척, 공자묘 파괴 등은 당시 향신 층의 큰 반발을 샀다. 이후 1853년 가을에 )를 간행하여 혁명운동의 새로운 지향 점으로서의 정치, 경제, 사회의 체제이념과 정책을 정립했다. 이어서 1853년 5월 북경을 향한 북벌과 함께 서정을 개시했다. 6월에 안경을, 9월에는 구강을 점령하는 등, 양자강 수로와 향촌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안휘, 강서, 호복에의 진출은 1854년 3월 이후 태평군의 최대 적대세력인 증국번의 상군의 저지를 받기 시작하였으나,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태평천국은 파멸에 이르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내적 계기는 전기의 강력했던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싹트고 있었다.③ 지도부 내분 발생시기이미 태평천국운동 체제 내에서는 구제도의 부활 반발, 지나친 이상적 제도, 지도층 내에서의 권력다툼 및 내분 등으로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홍수전과 양수청간에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결국 양수청은 더 나아가 천왕을 제거하고 권력을 찬탈하려는 듯한 행동을 취한 결과 북왕 위창휘에 의해 몰락하였다. 위창휘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남경을 떠난 석달개 일족을 습격했고, 위창휘 또한 반대세력의 반격을 받아 결국 주살되었다. 석달개는 이후 자신을 추종하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남경을 떠남으로써 운동의 주류를 이탈하여 산천으로 진출하려다 낙병장에게 괴멸 당하게 되어 독자적인 군사 행동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천경사변의 결과로 태평군 정예가 타격을 입고, 태평천국의 지도자는 천왕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 천왕은 홍씨 이외는 불신하였고, 홍씨 일가의 전제왕조로 태평천국을 변질시켰다. 즉 자신은 예수와 자신의 공동계승인으로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1857년 복왕, 안왕에 봉해진 천왕의 두 형은 무능하면서도 사치, 부패, 축재에 탐닉하였다. 이로부터 비롯된 작위 남발은 행정체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물론 운동 말기에 이르러서 제한적이긴 하였지 역시 새로운 조약 체제를 기반으로 입지를 확보하려 했고, 서양의 군대 원조에 관심이 있었다. 결국 태평군의 동정을 재개를 시작으로 영국과 프랑스군과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주로 영국과 프랑스는 직접 개입보다는 청군에 대한 근대적 훈련, 무기 등의 제공에 적극 적이었고, 이 군대는 나중에 상승군)이라는 공식 칭호를 받고 태평천국운동 진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1864년 서양의 원조를 받은 상승군과 증국번, 이홍장의 향용 등 한인지배층의 군대에 의해 천경은 함락되고 홍수전은 병사하게 되었다. 이후 잔여 세력은 염군과의 연대로 1868년까지 태평천국의 명의가 유지되기는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1864년에 붕괴되었다고 볼 수 있다. 태평천국의 뒤를 이어 한때 북경을 위협했던 염군) 반란은 이미 남경에 건도한 태평천국에 호응하여 1853년에 발발했지만. 결국 진압되게 되었다.4.태평천국운동의 의의 및 평가태평천국운동은 중국의 혁명 운동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이 태평천국운동은 결국 무엇이었으며, 어떤 역사에 과제를 남겼는가?전통적 질서의 저항인가? 가부장적 질서, 유교적 윤리, 전제적 통치체제를 기반으로 하면서 농민의 평균주의 적 소망을 대동사회로 제시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이단적 종교인 배상제 교리로 표현되었고 체제이념으로서의 유교의 정통적 권위는 파괴되었으며, 강력한 전통체제의 옹호자인 신사 층의 저항을 야기했다.그렇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의 서막을 열었던 것인가? 19c중국사회 모순 특히 지주 전호제에 따른 폐단과 신정 정치체제의 토대위에서 청조 치하 피지배층의 궁극적인 개인적, 사회적 해방을 추구했으며, 서구 문물 도입에 능동적이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들의 저항은 그들을 압도하는 중국 전통의 무게가 심대했고, 서구와의 접촉 또한 피상적이었다.그러면 종교적인 혁명 운동인가? 물론 태평천국의 독특한 역량을 낳게 한 특성은 종교적 측면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 정치적 목표가 불명확했고 종교적 결집력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인문/어학| 2010.12.10| 8페이지| 1,500원| 조회(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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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것이 아는것이다 레포트
    예전에는 옛날 유명한 성현들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말을 위한 말, 말 뿐인 말로 보이는 문장은 나에게는 전혀 유용하지 않으니 공부할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머리 아프게 하는 복잡하고, 해석을 필요로 하는 문장은 더욱 더 싫어했다. 유명한 성현들의 사상을 접할 때도 현실적 추구 보다는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모습들 또한 싫어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예전 내 삶도 참 현실에 찌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체 이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문에 대한 깊이 또한 깊어지자, 성현들의 말씀이 단순히 내 삶과 동떨어진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철학적인 부분에 요즘 많은 관심을 가지려 하고 있다. 이번 한문입문의 과제를 통해, 공자의 철학은 무엇이며, 과연 어떤 이상적인 사회상, 인간상 등을 추구 했으며, 어떤 어록을 남기셨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르면 모른다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라는 책을 택했다. 내가 예전에 이 책 제목을 보았다면, “모르는 거면 모르는 거지 멀 또 안다고 그러는건고...”하며 그저 탁상공론에 불과한 문장으로 취급 했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피와 살이 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매일 하루에 한번씩 고문을 읽고 마음속으로 곱씹는다. 이번 책을 통해 옛날 공자의 뜻을 한번 되새기고 내 삶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책의 모든 파트를 다 언급하고 싶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짚고 내 삶에 적용해 보도록 하겠다.①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도에 뜻을 두어라, 덕에 근거를 두고 인에 의지하며 예에 노닐어라.”내 삶을 돌아 볼 때 과연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돌이켜 보았다. 과연 덕으로써 순수하게 그 사람이 좋아서 가까이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가진 능력, 돈, 지위 등이 부러워서 가까이 한 것인가?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덕에 근거를 둔 삶을 살아라. 정작 나는 덕으로써 사람을 사랑하고 대했는지, 난 덕도 없으면서 남에게 덕을 바라지는 않았는지....이해관계에 따라 맺어진 인간관계는 언제나 허무 할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이해관계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이 점점 더 인정이 메말라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②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나는 나면서부터 도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민첩하게 이것을 구하는 사람이다.”요즘 세상은 수많은 지식들이 범람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흡수하느라 늘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옛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을 알고 돌이켜 보게 하고 반성하라고 해석했다. 그것이 바로 지혜라고 했으며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내 생각이지만 지식은 누구나 노력만 하면 남들 만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지혜는 아무나 갖출 수 없다. 지혜로우려면 겸손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란 것이 가진게 있으면 남들에게 뽐내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뽐내다 보면 자만하게 되고, 자만하게 되면 있던 이웃도 떠나게 된다. 나도 현재 대학생으로써 수많은 지식들을 접하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 돌이켜 보는 데는 소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돌이켜 보고, 반성한다. 그리고 다량의 지식 소유를 목표로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게 지혜 또한 가 질수 있도록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해야겠다.③子曰 三人行에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들 중에서 훌륭한 점이 있다면 그것을 가려서 따르고, 나쁜 점이 있다면 고치면 된다."이 글을 유심하게 보았다. 왜냐하면 처음에 선생님의 자질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선생의 가르침은 지식 전달이 아닌 사람이 되는 길로 인도하려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나도 미래에 선생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의 자질 면을 돌이켜 봤을 때 이게 과연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선생님의 행실, 생각일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진정한 선생님은 학문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고 올바른 삶의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남의 잘못을 보고 자신에게 타산지석으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흔히 사람들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남들을 헐뜯는 말 빨은 정말 최고다. 하지만 그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그걸 통해 내가 과연 바른 길로 걷고 있는지 돌이켜 보면서 남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게 아니겠는가 생각한다.④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無宿諾“한마디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로일 것이라고 공자가 말했다. 왜냐하면 자로는 승낙한 것을 어기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여기서 저자는 남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나도 물론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외모, 성격, 말투 등을 보며 그 사람을 평가한다. 그리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면 무시하거나, 그 사람의 단점, 잘 못된 점을 철저히 파고들어 짚 눌러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부끄러운 언행이었다. 조금만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남을 생각했으면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반성을 해 본다.그리고 공자에게 인정받은 자로 같은 사람이 지금 과연 존재 할지 생각 해 보았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옳은 것이 아니면 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자로...나도 물론 바른 길을 걷는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는 자로와 같이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⑤魯人爲長府. 閔自騫曰, 仍舊貫如之何, 何必改作. 子曰, 夫人不言, 言必有中“노 나라 사람이 임금이 살 별관을 다시 지으려고 했다. 이에 대해 민자건이 이렇게 말했다. 옛날 것을 그대로 두고 수리하면 어떠하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꼭 다시 지어야 하는가? 민자건의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말을 하면 사리에 어긋남이 없다.”
    인문/어학| 2010.12.10| 3페이지| 1,500원| 조회(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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