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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제국의 멸망원인
    Ⅰ. 들어가기Ⅱ. 로마제국의 멸망과 그 원인1. 내부원인2. 외부원인Ⅲ. 대 로마 제국의 몰락Ⅳ. 마치며Ⅰ. 들어가기BC 약 753년경 라틴 인에 의해 세워진 로마는 왕정 시대, 공화정의 시대 거치며 커다란 국가로 성장해 가고 BC 264년부터 약 백여 년에 걸친 포에니 전쟁 후 더욱 더 큰 제국으로의 발돋움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의 황제에 의한 제정 실시 후 약 200년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이때가 Pax Romana라 불리는 로마의 평화시대. 하지만 200여 년의 평화시대는 꿈인 양 왕조 페르시아의 건립, 게르만 족의 남하 등의 이유로 395년 로마제국은 동로마, 서로마로 나뉘게 된다. 후에 게르만 족의 대 이동으로 인한 영향으로 서로마 제국은 476년 멸망하게 되고, 동로마 – 즉, 비잔티움 제국은 게르만 족의 이동으로 인한 별다른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그들도 결국 1453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침입에 의해서 서로마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영원히 이어질 듯 했던 빛나던 제국의 영광. 그 누구도 쓰러뜨리지 못할 것 같았던 강인했던 로마의 국체(國體). 하지만 그 찬란했던 로마제국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토록 굳건했던 로마제국이 멸망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인지, 로마제국 내∙외부로부터의 영향으로 생겨난 멸망의 시초와 그 원인을 알아보도록 하자.Ⅱ. 로마제국의 멸망과 그 원인내부원인자영농의 몰락로마는 기원을 전후로 하여 공화정(군주제의 반대개념. 국가의 원수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다.)과 제정(황제가 다스리는 정치, 군주제)으로 나뉜다. 사회의 건전성이나 문화 등을 살펴보면 공화정 시기의 로마는 진취적이고 역동적인데 비해 제정 시기의 로마는 안정을 넘어서 정제되고 나태해지고 심지어 퇴폐해지기까지 하다. 개국의 역사 이래 어느 국가나 초창기에 중반까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기이므로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며 또한 생명력이 넘치긴 하지만 로마 같은 경우는 더욱이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주변 지중해 지역을 정복, 대 제국을 건설하기영하게 된다. 또한 정복지에서는 농산물들이 값싸게 대거 수입되었다. 이에 많은 노예와 방대한 재산을 거느린 신 귀족층이 등장하게 된다. 라티푼디움의 등장과 값싼 농산물의 수입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자영농들은 대거 몰락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신 귀족층의 고리대금도 한몫을 톡톡히 해내었다. 붕괴한 자영농들은 이탈리아 반도를 떠나 떠돌기도 하고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로마 등의 대도시로 몰려들어 빈민층을 형성,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하였다.하지만 곧 몰락한 자영농 층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바로 군인이 된다는 것. 이는 몰락한 자영농 층이 많은 부를 얻게 되는 유일한 기회였다. 포에니 전쟁 발발 당시 로마의 군인은 전체 로마인구의 1/8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에 달했다. 물론 군인들은 전쟁에 나가 받는 보상은 매우 미미하였기 때문에 이로는 생존이 불가능 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얻게 되는 전리품은 그 값어치가 남달랐다. 군인들은 전리품을 얻기 위해 열심히 싸웠고 따라서 대단히 잔인했으나 전설적인 정복군대로 기억되게 된다. 그러나 지중해 정복 후 로마의 정복 전쟁이 둔화되기 시작하면서 전리품을 얻을 기회가 사라지자 군인들은 더 이상 의욕적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로마의 국방은 크게 약화되어갔고 생계수단이 사라진 자영농 층은 빠르게 몰락해갔다. Pax Romana는 그들에게 평화와 안락의 시기가 아니라 고통과 죽음의 시기였다. 이로 인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민들이 점차 몰락, 나태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로마에서는 더 이상 예전의 기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로마의 멸망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종교적 원인로마제국은 3세기에 대외적, 대내적으로 동란시대를 겪게 됨으로써 사회, 경제, 정치이념의 모든 면에서 고전, 고대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질되어갔다. 이 변질의 시대에 제위에 오른 황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였다. 그리스도교 박멸을 목적으로 하는 최초의 조직적인 시도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3세기의 일이 변질되고, 전투정신도 교회의 숭고함에 묻혔다.로마의 분열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정치 체제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역시 황제 혼자서는 광활한 로마제국을 다스리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로마제국에는 동시대에 한 명의 황제가 아닌 두 명 이상의 황제가 등장하게 된다. 디오클레티아누스(Imperator Caesar 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Pius Felix Invictus Augustus) 황제는 286년 부제(副帝)인 막시미아누스를 정제(正帝)로 승진시켜 그에게 서방 통치를 맡기고 자신은 동방의 통치를 맡았으나 293년에는 다시 부제를 각각 새로 임명하여, 사분통치제(四分統治制, Titrarchy)를 확립하였다. 두 명의 아우구스투스(正帝)가 통치를 분담하고 두 명의 카이사르(副帝)가 이들을 보좌하는 식으로, 아우구스투스가 퇴위하면 카이사르는 아우구스투스가 되고 새로운 두 명의 카이사르를 임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4제(四帝)체재에서 지배권은 일반적으로 동과 서로 나뉘었다. 제국 각지의 다양한 문제로 야기되는 불일치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는데 결과적으로 이 체제의 등장 후 변경(邊境)은 더욱 효율적으로 방어되었고, 반란계획은 도모하기 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동∙서로마의 분열은 시작되고 있었다.디오클레티아누스가 세운 전제군주정체를 한층 견고하게 한 것은 황제 퇴위 후 내란을 수습한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였다. 황제는 312년 하늘에서 십자가의 표지(標識)를 보고 대립자 막센티우스를 격파, 로마로 입성한 다음 313년 밀라노에서 리키니우스와 회담, 그리스도교 공인의 칙령(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였다. 황제는 325년에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교의논쟁(敎義論爭)의 해결을 꾀하였다. 이어서 330년 새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를 개설하여 제국과 그리스도교의 결합을 더욱 더 굳건히 하였으나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동∙서로마는 서로 다른 정치, 종교의 길을 걷게 되며 사실상 분열이 되고 만다. 방법밖에는 없었다. 결국 이러한 로마황제들의 악화(惡貨)의 남발은 필연적으로 화폐가치의 하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후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외부원인(1). 지리적 요인로마제국은 중간에 지중해를 둔 도넛 모양의 지리적을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면에서 지중해서 로마제국의 큰 보물이었다. 고대 시대에 있어 가장 유용한 해상수송이라는 운송수단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지중해 연안 전역을 단일 제국으로 묶어 둘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지중해를 품고 있다는 말은 곧 육지의 국경선이 사람이 거주 가능한 면적에 비하여 지나치게 길었다는 이야기와도 상통했다. 따라서 국경지대에 심각한 위협이 있을 때 그것들을 방어하는데 막대한 인원과 자원이 소모되었고 그럼으로 인해 군사 이외의 다른 중요한 활동들에는 보다 적은 인력과 자원을 할애 할 수 밖에 없었다.이러한 국경선 방어의 난점은 동방보다는 서방의 제국에서 더욱 극심하였고 이 때문에 서로마 제국이 먼저 멸망한 것이라 한 수 있다. 서로마 제국은 약 2400km의 국경선을 방어해야 했던 데다가 동로마를 침입한 이민족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철벽에 가로막혀 서로마로 방향을 돌리는 일 또한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더욱이 극심했다.(2) 게르만 족의 침략363년 율리아누스 황제가 죽은 뒤 로마에는 이민족의 침입이 끊이질 않았다. 서부를 통치하던 발렌티니아누스 1세(재위 363-375)와 그의 동생 발렌스(재위 364-378)의 활약도 소용없이 서부에서는 알라만인이 침입해 왔고, 갈리의 바가브타에란도 격화되었으며, 브리타니아, 파노니아, 북아프리카 등도 어지러웠다. 또한 동부에서는 365년 고트족이 반란을 일으켰고, 376년 흉노에게 쫓기던 서 고트족이 제국 안에 정주할 땅을 찾아 남하하여 고트족과 함께 트라키아 전토를 짓밟고 마침내 발렌스 군대를 괴멸시켰다. 고트족은 한때 테오도시우스에게 쫓겨났으나 결국 382년 협정에 따라 제국 영내에 정주 할 것을 허락 받았다. 그 동안 테오도시우스 1세아케르가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를 폐하여 476년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다.Ⅲ. 대 로마 제국의 몰락476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인에게 멸망 당하고 약 1000년이 흐른 뒤에야 동로마제국은 그 뒤를 따른다. 동로마 – 비잔티움 제국은 7세기에 강성해진 이슬람 제국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기고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있는 발칸반도와 소아시아의 남부로 영토가 축소된다. 또한 비잔티움 제국 멸망의 주된 원인으로는 아랍인과 투르크인(터키인)들과의 끊임없는 전쟁이 거론된다. 비잔티움 제국은 당시 한 수 앞서던 이들과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끊임없이 국력을 소진해 나갔다. 그에 버금가게 비잔티움을 괴롭힌 것은 북쪽에서 내려온 불가리아인과 슬라브족들이었다. 당시 슬라브족은 비잔티움에 비하면 약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비잔티움이 아랍인들과의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져 가던 것을 고려하면 결코 그들이 비잔티움에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불가리아인은 몽골족의 한 일파로서 681년경에 오늘날의 불가리아 일대에 나라를 세워 지속적으로 비잔티움제국을 노략질해왔다. 불가리아가 발칸반도에서 위세를 떨치던 10세기경까지 비잔티움제국은 불가리아인의 침략에 시달린다. 사실 15C에 들어서면서 비잔티움의 세력을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었고, 결국 십자군 전쟁에서 계속 된 원정실패로 인해 거의 풍전등화의 상태에서 1453년에 오스만 트루크군에게 정복당하여 멸망하게 되었다.Ⅳ. 마치며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에는 게르만족의 침입이나 오스만 투르크족의 위협 등의 외부적 요인보다는 내부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되었으리라 사료된다. 외적(外敵)의 바람이 아무리 거세다 한들 그 뿌리가 굳게 뿌리내려 흔들리지 않고, 속이 곪지 않은 가지가 곧게 뻗어있었더라면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로마제국은 그 빛나는 영광을 안고 역사를 계속 써내려 갔을 것이다. 하지만 속이 썩은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하듯 오랜 폭정(暴政)과 내란(內亂)에 시달리던 로마제국은 결국 무릎을 꿇고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
    인문/어학| 2008.12.06| 6페이지| 1,000원| 조회(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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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성의전 연구
    1. 작품줄거리 소개강남에 안평국이라는 나라가 있으니, 산천이 수려하며 나라가 부강하고 평안하여 중국과 다름없는 고로 남방에서 유명하였다. 국왕의 성은 적이고 이름은 덕이니 옛날 적운평의 14대손이다. 국왕이 왕비와 20여 년을 같이 사는 동안에 두 아들은 두었으니 장자의 이름은 항의로 나이가 14세이고, 차자(次子)의 이름은 성의로 12세였다. 장자인 항의는 심성이 불측하고 어질지 못하여 늘 동생 성의를 시기하였고, 이에 반해 차자인 성의는 재주가 민첩하고 마음이 어질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왕이 성의를 세자로 책봉하려 하니 조정의 신하들이 간하여 말하기를 천명을 거스른다 하여 왕이 여러 신하의 말을 듣고 깊이 생각한 후 항의를 세자로 봉하였다. 그 해 늦봄에 왕비가 병이 들어 병세가 점점 심해지니 어떤 명의와 좋은 약으로 다스려도 차도가 없고 병세가 날로 더해졌다. 하루는 한 도사가 왕비의 병세를 진찰한 뒤 말하기를 왕후의 병세가 위태로우니 서천 서역국 청룡사에 있는 일영주를 적성의가 구하지 못하면 생명을 살릴 길이 없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후 성의가 서천에 가서 일영주를 얻어온다 하고 즉시 배를 준비하여 모후의 만류에도 불고하고 사공과 선원 10여명을 데리고 부왕과 모후께 하직을 고한 뒤 발행(發行)하였다. 배를 타고 나온 지 7일만에 난파하여 고난을 겪다 선한 선관을 만나 서천에 다다르게 된다. 서천에 도착하니 존자(금강경천불대사)가 적성의를 기다리고 있어 일영주를 주며 빨리 돌아가 어머니의 병환을 구하라 하였다. 그리고 적성의에게 힘든 일이 닥쳐올 것이나 결국엔 원한을 풀 날이 있을 것 이라 하며 덧붙였다. 성의가 서천에서 내려와 선관에서 백배 사례하고 배에 오르니 모든 사공들이 기뻐하며 안평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항의는 불량한 마음이 날로 커갔는데 성의가 약을 구해와 병이 회복된다면 모후가 성의를 더욱 사랑하실 것이니 자신의 왕위자리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부왕과 모후께 성의를 찾으러 간다 하고 서천으로 향한다. 행성한지 3일만에 항의와 성의가 만나게던 기러기라고 말해 주며 요새 밤마다 울어대니 이상하다고 말하였다. 왕비가 기러기에게 성의가 있는 곳을 알면 세 번 울라 말하니 기러기가 세 번 울었다. 왕비가 기뻐하며 슬퍼하며 편지를 써서 기러기의 다리에 매어주자 기러기가 머리를 세 번 숙이고 날아갔다.여름이 깊어지고 가을이 다가오는 음력 8월 보름, 채란공주가 적적해 하자 시녀가 성의를 불러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기러기가 슬피 울며 나타나 성의에게 다가와 울자 성의는 자신이 기르던 기러기임을 알아봤다. 기러기의 다리에 매어진 편지가 처음 모후의 부고임을 알리려는 줄로만 알고 슬피 울던 성의는 편지의 내용을 채란공주가 읽어주니 모후가 쾌차하심에 기뻐하였다. 성의가 편지를 향해 절하며 감격해 하는데 문득 두 분에 불빛이 일어나며 눈이 뜨여 상한 눈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성의는 기쁜 마음에 호승상의 집으로 가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호승상이 황제께 고하여 황제를 만나게 되었다. 황제는 성의가 안평국의 왕자란 모든 사실을 알고 채란의 배필로 생각하며 기뻐하였다. 황제 즉위 13년 춘삼월에 황제는 성의에게 과장에 들어가기를 권하고 장원급제를 하게 되자 한림학사를 내리고 부마로 택하게 된다.수개월이 지나 공주와 적성의는 안평국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 그 무렵 안평국 내외는 기러기가 가지고 온 편지를 보고 감격을 금치 못하며 매우 기뻐하였다. 이를 알게 된 항의는 성의를 진작 죽이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신하 적부리를 시켜 성의를 없애라 하였다. 안평국으로 가는 배에 기러기가 도착하고 안부를 물으니 기러기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여 채란공주는 좋지 않은 징조라 하여 대비를 하자 하였다. 예상대로 적부리가 나타나 성의를 범하려 하니 채란공주가 나서 싸웠다. 싸움이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침 기러기가 물에 몸을 적셔 모래를 날개에 가득 묻히고 적부리의 얼굴에 뿌리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적부리가 다시 한번 칼을 들자 기러기가 다시 모래를 뿌리고 채란이 그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적부리의 본은 방각본 11종, 필사본 16종, 구활자본 5종이다.1) 방각본방각본은 완판 3종, 경판 6종, 안성판 2종이 전한다.완판본ⓛ , 국문 목판본, 2책(77장),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소장완판본은 경판본에 비해 그 분량이 배 이상 되는데, 이는 경판본에 없는 군담화소인 공주와 기러기의 활약 부분은 물론 세부 사건이나 정황에 대한 설명 및 묘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완판 계열은 경판 계열과 달리 上, 下 권으로 분리되어 있다.경판본ⓛ , 목판본, 1책(31장), 상트 페테르부르크 동방 연구소 소장번각과 축약을 한 이본으로 판식이 일관되지 못하고 뒷부분이 축약되어 성립되었기 때문에 축약 부분의 오류가 심하다.② , 목판본, 1책(30장), 프랑스 파리 기메 박물관 소장30장본은 외형적 경제성을 띄고 있으나 뒷부분에 주요 묘사, 제문 내용 등을 삭제하고 단순히 줄거리만 따르는 형식으로 되어있다.③ , 목판본, 1책(23장), 국립중앙도서관 소장④ , 목판본, 1책(25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⑤ , 목판본, 1책(35장),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안성판① , 목판본, 1책(19장), 일본 동양문고 소장안성에서 23장본을 그대로 필사하여 판각하였다.2) 필사본① , 국문필사본 1책(33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② , 국문필사본 2책(69장; 결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③ , 국문필사본 1책(45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④ , 국문필사본 2책(62장), 김동욱 소장⑤ , 국문필사본 2책(72장), 조동일 소장⑥ , 국문필사본 1책(59장), 김동욱 소장⑦ , 국문필사본 1책(27장), 김동욱 소장⑧ , 국문필사본 1책(46장; 상권), 김동욱 소장⑨ , 국문필사본 1책(45장), 김동욱 소장3) 활자본구활자본은 5종이 전하는데 세창서관본(1916), 한성서관본(1915), 영창서관본(1915), 박문서관본(1917), 회동서관본(1926)등이 대표적이다. 그 내용은 대개가 경판 23장본과 일치한다.3. 작품론1) 내용분석① 주제은 주제가 孝이기는 하나 효성과존재가 나타나서 그를 돕는다. 그것은 주인공이 초월적 존재와 交通(교통)하여 그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도움을 얻어내는 신이한 힘을 가진 초월적 존재임을 암시한다.그런데 초월적 존재를 감동시켜 주인공을 돕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인공 성의의 지극한 효성이다. 물론 그것 이상의 존재적 우월성이 바탕으로 있기 때문이겠지만, 이 사실은 세속의 倫理的 規範(윤리적 규범)의 실천이 주인공의 초월적인 힘의 근본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세 번째, 성의는 새들의 보호와 도움도 받는다. 神話의 주인공들이 아이로써 버려졌을 때, 짐승의 도움과 보호를 받는 것처럼 적성의전의 주인공도 새들의 보호를 받는데, 그것은 그 주인공이 우주적 협조와 보호를 받는 신이한 존재임을 말해준다.마지막으로 표류에서부터 개안까지 주인공이 가장 참담하고 불행하던 시기에 고난과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만든 힘이 短笛(단적)을 연주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탈출할 수 없는 무인도에서 구원되게 하고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황제와 공주로 대표되는 상층세계에서 인정받아 그 세계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하였다.의 주인공은 物理的(물리적) 힘을 보이지 않는다. 악형 항의의 무력 앞에 그는 속수무책이다. 성의가 일영주를 구하여 돌아올 때 항의가 약을 빼앗고 부왕의 명령을 사칭하여 물에 빠져죽으라고 호령하는데도, 성의는 하늘을 향하여 탄식할 뿐이고 그러다가 눈을 찔러 맹안이 된다. 공주와 결혼하여 함께 귀국할 때도 성의를 죽이려고 가로막는 부패를 그 자신이 아닌, 호위하던 무사가 나서 제거한다. 그의 적대자가 형인 경우에 그 형이 비록 악인이라 할지라도 아우로서 물리적인 힘으로 懲治(징치)하는 것은 주인공에게 윤리적 손상이 돌아올 수 있고, 그런 점 때문에 물리적 힘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그렇지만 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다. 그의 힘은 쳐부수고 무찌르는 힘이 아니라 感動(감동)과 親和(친화)의 힘이다. 軍談類 英雄小說(군담류 영웅소설)의 주책봉되었다.⑭ 성의가 귀국하여 왕위를 계승하였다.은 이상과 같은 14개의 근간화소가 인과관계를 가지면서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하위구조로서 세 개의 삽화를 거느리고 있다.(가) 일영주를 구하여 오는 삽화, (나) 공주와 결혼하는 삽화, (다) 형제가 갈등, 투쟁하는 삽화가 그것이다. 이들 세 삽화는 각기 자체의 발단, 전개, 결말을 갖춘 어느 정도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가). 일영주를 구하여 오는 삽화는 ③~⑤ 번이 해당된다.이 삽화는 모후의 발병으로 발단된 사건이 힘들게 약을 구하여 돌아오는 발전을 거쳐 투약으로 쾌유되는 결말을 갖추고 있다. 중간에 행위의 주체가 교체되는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완결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삽화는 ‘집을 떠나서→모험과 艱難(간난) 끝에 무엇인가를 찾고→귀환하는' 탐색구조를 독립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악형의 방해를 받아 귀환이 좌절됨으로써 탐색에 대한 보상으로써의 자리와 명예가 따르지 못하고 새로운 여행이 계속되어 미완의 귀환상태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이 삽화는 격리→착수→복귀의 순서로 전개되는 탐색적 사건구조를 가지고 있다.(나). 공주와의 결혼삽화는 ⑤~⑪ 번이 해당된다.이 삽화는 주인공이 맹안이 되어 중국 황제의 궐내에 기거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고, 단저를 연주하는 신기가 직접적 동기가 되어 공주와 인연을 맺게 되고,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 극복되고, 과거에 장원급제함으로써 결혼에 도달하는 사랑 이야기다. 사랑의 시작이 있고 발전이 있고 결혼이라는 결말이 있는, 어느 정도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이 결혼삽화는 探索主旨(탐색주지)를 가진 서사유형에 나타나는 결혼과는 성격이 다르다. 타맥주지의 서사유형에서도 그 주인공이 결혼을 성취하지만 연애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 자체가 영웅적 주인공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은 투쟁과 그 성취에 대한 보상으로 얻어진다. 그러나 『적성의전』의 이 삽화는 음률을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나누는 낭만적 과정이 있다. 특히 그
    인문/어학| 2008.12.06| 9페이지| 1,500원| 조회(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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