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목 명 : 서양 생활 문화사담 당 교 수 님 : 박지배 교수님제 출 일 자 : 2010 .10 .24학 번 / 성 명 : 200703771 황휘동200501945 오승훈201003606 최준희201003379 주승현201000548 김소연201001316 박예지영국 성공회(The Anglican Domain)속의대한성공회(The Anglican Church of Korea)▶ 목 차Ⅰ. 성공회의 의미Ⅱ. 성공회의 역사1. 14C 이전 영국교회2. 성공회 성립 - 헨리 8세의 교황 권위 부정3. 성공회의 정립 – 진정한 성공회의 탄생4. 18 - 19C세기의 영국 성공회Ⅲ. 성공회의 특징1. 성공회 신앙의 기준이 되는 교리2. 본질적인 것에 일치, 비본질적인 것에 다양성3. 중용적(中庸的)인 입장에서 구교와 신교 일치 노력4. 성공회성당 속 건축양식Ⅳ. 대한성공회1. 대한성공회의 탄생2. 서울성공회성당3. 현재 대한성공회 현황Ⅰ. 성공회의 의미‘성공회’라는 파악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표면적인 명칭의 의미이다.성공회(聖公會)는 한자문화권인 한국, 일본, 중국에서 영국 국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따르는 교회를 총칭하는 말이다.본래 성공회라는 명칭은 니케아 공의회 의 신앙고백 가운데 교회에 관한 표현으로서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라고 한 것을 빌어 성(聖)과 공(公) 두 자에서 성공회라고 유래된 것이다.나라마다 다른 교회(성공회)의 명칭영국(국교)Church of England(영국국교회, 영국성공회)미국Episcopal Church(주교감독제교회)캐나다, 호주Anglican Church한국, 일본, 중국성공회(聖公會)각 나라마다 교회의 명칭은 달라서영국에서는 국교이기 때문에 Church of England, 미국에서는 Episcopal Church, 캐나다나 호주에서는 Anglican Church, 아시아권에서는 성공회라고 부른다.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성공회성공회는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하여 교황권의 관할과 교리상의 지배에서회는 극히 부패하여 수도원들이 부의 원천이 되었고 국내의 재화도 로마교회에 세금으로 납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국 국민들의 원성은 점점 높아 졌다.이에 헨리8세는 종교개혁자들 중 토마스 크롬웰을 자문으로 두고, 토마스 크랜머를 새 캔터베리 대주교로 세워 로마교회로부터 영국 교회의 독립을 결심했다.헨리8세는 영국 내부의 종교개혁적 열망과 대륙의 개혁세력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과 함께 영국교회의 재정, 행정, 인사권의 독립을 추진했다. 로마교회에 바치던 세금을 중단하고, 로마교황의 재판권을 거부하였으며, 영국교회 성직자임명이 영국인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는 등의 노력으로 로마교회에서 성공회는 독립할 수 있었다.3. 성공회의 정립–진정한 성공회의 탄생헨리8세는 본래 로마교회의 관습과 제도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원래 의도는 독립한 영국교회를 개혁된 공교회(Reformed Catholic)로 유지하는 것이었다.그러나 극단적 종교개혁을 시도한 크롬웰에 의해 수도원이 대거 정리되었고, 결국 성공회는 새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에 의해 종교개혁의 영향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들에 의해 영국 전역의 교회는 영어성서를 비치하여 신자들 누구나 성서를 읽게 되었다.그 후로 에드워드6세 때, 성당에서 성화와 성상을 제거하고 영어로 성서를 낭독할 것과 특히 성체성사에서 신자에게 성체와 보혈을 모두 받도록 하며 성직자 독신제도를 폐지하고 개혁신학을 수용한 공동기도서(1549)를 사용할 것을 국회에서 결의하였다. 바로 이 기도서에 기초하여 전세계 성공회는 각국의 상황에 맞게 기도서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로마교회의 화체설(化體說; 성체와 보혈이 그 자체로 예수의 실질적 몸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과 칼빈주의를 모두 거부한 ‘39개조’(The thirty-nine Articles)를 신학으로 확정했다. (1571)이외에도 수많은 정립을 했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영국 국내에서는 무수한 정치적 변동에 의해 로마가톨릭 신봉자들이 순교하거나 종교개혁자들이 순교하는 일이리에 빗대어 신학적 궁극성이나 절대적 원리를 내세우는 모든 주장을 상대화하려는 비판적 원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내적 성찰을 위하여 종교개혁 전통에서는 성서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오로지 성서로만”이라는 원리에도 약점은 있다. 즉 역사적인 발전을 간과하여 환상적인 원리적 신앙을 추구하기 쉽기 때문이다.이성여기서 이러한 환상을 피하기 위한 인간 이성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때의 “이성”은 해석자의 자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교회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판단하는 이성(cosmic and corporate Reason)이다. 또한 이성은 전통보다 앞선다. 전통은 이성을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성의 역할은 합일이 이루어지는 원칙을 제공한다. 이성은 인간의 경험을 사물의 본질과 조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성서에 담긴 계시는 특정한 역사와 조건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다른 역사 속에서 재해석되려면 이성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전통전통은 인간의 경험과 실천, 그리고 합의가 최종으로 만들어 낸 교회의 공동체적인 산물로서 교회의 중요한 권위이다. 즉 성서에 대한 이성적 작업으로 축적된 신앙의 결과물이 바로 전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은 성서와 이성에 의해 제공된 것에 종속되어야 한다. 전통은 성서에 속한 초자연적인 최고 진리를 가져다 줄 수 없지만, 개인적 판단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전통은 성서와 이성에 근거한 인간의 “실천, 경험, 동의”에 의해서 필요에 따라서 변경되고 폐지될 수 있다. 성공회는 이렇게 성서와 이성과 전통의 긴장 관계를 통해서 교회사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주장과 오류를 피하는 “중용”의 정신을 구현해 왔다.성공회 신앙의 3가지 특징관용성(resonable tolerance faith)어떤 그리스도교교단들은 ‘우리 교단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회는 성공회 외에도 훌륭한 기독교공동체와 거룩한 신자들의 모임은 얼마든오는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가톨릭과 일치하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사 효력에 관한 문제다. 성공회는 가톨릭처럼 칠성사를 인정한다. 그러나 성사를 집전하고 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따라 그 효력이 다르다는 인효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성사가 근원적으로 하느님이 베푸는 은총이라는 신앙에 근거, 성사를 집전하고 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상관없이 성사 그 자체로 효력을 지닌다(사효성)고 가르친다.또한 성공회는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제 독신 의무도 없다. 하지만 가톨릭처럼 독신을 지키는 수도자는 있다. 성서는 개신교처럼 구약 39권, 신약 27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직제는 가톨릭교를 교리는 개신교를개신교적 경향가톨릭교적 경향교황을 교회의 수장으로 삼지 않는다.주교, 사제, 부제, 수녀 제도가 있다.마리아 얘기를 하지 않는다.신부, 성당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신구약 성경은 약 66권만 인정한다.예배의식이 천주교와 흡사하다.칠성사가 있기는 하나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성호를 긋는다.성찬례에서 일반 신도도 포도주를 먹는다.고상 십자가, 묵주를 사용한다.성찬례에서 화체설(化體說)을 인정하지 않는다.매주 성찬례를 한다.4. 성공회성당 속 건축양식성공회 성당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 것이다.‘로마네스크’는 대체로 10세기 중반에서 12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에서 발달했던 미술 양식이다. 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은 ‘로마와 같은’ 이라는 뜻으로 당시 유럽의 전형적인 건물들이 두꺼운 벽과 아치가 있는 고대 로마의 석조 건축과 닮았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서유럽은 11세기 후반 즈음에 황제와 교황 간의 갈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교회가 제국 통합의 역할을 계속해 주리라 기대하면서 여러 가지 지원을 통해 원활한 관계를 유지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봉건 귀족들과 손잡고 그들의 절대 권력을 옹호하는 한편, 당시의 정신생활은 물론 모든 학문과 예술을 지배대전교구와 부산교구로 분할되어 대한성공회는 현재의 3교구 체제가 되었다. 3개 교구는 각각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교회발전과 사회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또한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회(NCC)에 속해 있으며 여러 교단들과 상호이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다.2. 서울성공회성당서울성공회성당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이다. 대한성공회 전신인 조선종고성교회 초대 주교로 1890년 제물포항에 도착한 C.G. 코프가 지금 자리에 있던 낡은 한옥에 십자가를 세우고 장림교회로 이름 짓고 정기미사를 드림으로써 역사가 시작되었다.1912년 도시계획에 의하여 남대문과 경복궁 사이에 대로가 준공되어 접근성이 좋아지고, 4대문 안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어서 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는 본 건물을 10년간의 구상과 모금으로 1922년에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 축성식을 가졌다. 서울성공회성당은 토착화 선교정책에 따라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적 건축미, 그리고 바실리카 양식을 살린 점이 특징이다.지금의 성당은 1926년 5월2일에 축성되었는데 당시에는 자금관계상 설계도면의 절반밖에 짓지 못하였다. 이에 서울대성당은 교회창립 103주년을 맞이하는 1994년에 이르러 교우들의 의지를 모아 교회의 오랜 숙원인 성당 완성을 위한 증축공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성당은 원래 하나의 성가대석과 7개의 주간을 가진 신랑과 2개의 날개부분으로 설계되었는데, 준공 당시의 건물에서 신랑은 3개의 주간을 갖추었고, 날개부분도 원 설계의 일부분만 완성시켰다. 이와 같이 이 성당은 건립된 부분이 면적상으로는 전체 계획된 것의 약 50%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제 침략기에 서양인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된 동양최초의 본격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성공회 성당의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서울 성공회 성당 유적과 유물순교추모비한국전쟁 중 믿음으om